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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時調 감상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by 산산바다 2008. 7. 5.

 산과바다


 

      시조 감상


121  잔들고 혼자 앉아 먼 뵈를 바라보니         윤선도

122  산길은 길고길고 물길은 멀고멀고           윤선도

123  청류벽에 배를 매고 백은탄에 그물 걸어    윤유

124  대동강 달밝은 밤에 벽한사를 띄워 두고    윤유

125  방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이개

126  달이 두렷하여 벽공에 걸렸으니            이덕형

127  다만 한간 초당에 전통 걸고 책상 놓고     이덕형

 

 

128  서산에 일모하니 천지에 가이 없다         이명한

129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이명한

130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곧 날 양이면        이명한

131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

132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이색

 

 

133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이순신

134  노프나 노픈 남게 날 권하여 오려 두고     이양원

135  녹양이 천만산들 가는 춘풍 매어 두며      이원익

136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이육사

137  칠곡은 어디메고 풍암에 추색이 좋다       이이

138  각시네 꽃을 보소 피는 듯 이우나니        이정보

139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이정보

140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이정보



121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흘 바라보니 / 윤선도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우움도 아녀도 내 됴하 하노라


우움도 : 웃음도.

아녀도 : 아니하여도.

못내 : 잊지 못하고 늘.


<감 상>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고산 윤선도의 시 세계는 자연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데에 있다. 내가 완전히 자연 속에 몰입된 상태, 자연이 곧 나요, 내가 곧 자연이라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술잔을 들고 거나한 기분으로 혼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운 님을 만난 것보다도 더 반갑고 흐뭇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옆에 그 님이나 다정한 친구가 이야기하거나 웃지 않아도 즐겁기만 하다는 것이다.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신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라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연이 곧 신이요, 신이 다름 아닌 자연이기 때문이다. 하늘도 자연이니 하늘이 곧 신이요, 신의 경지에 들면 인간이 곧 하늘이다. 인내천(人乃天)이라는 생각도 바로 이러함이 아닌가 한다.



122 산길은 길고길고 물길은 멀고멀고 / 윤선도


산길은 길고길고 물길은 멀고멀고

어버이 그린 정은 만코만코 하고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울고 가나니


윤선도 : 호는 고산. 이조 시대의 시인으로서 최고의 시조작가. 전라도 해남에서 일생 보냄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많은 단가를 지음


하고하고 : 많고 많고

외기러기 : 윤선도 자신의 모습을 비유함.


<감상> 윤선도 30살에 당시 간신 이 이첨 일파의 잘못을 적어 병진소를 올렸는데, 소는 임금님께 닿지도 못하고 윤 고산은 함북 경원으로 유배를 당한다. 멀리 변방에 유배당한 자신의 처지를 날아가는 기러기에 의탁하여 읊은 노래.  "산길은 멀고멀고, 꼬불꼬불 물길은 아득도 한데 어버이 그리는 마음은 많기도 하다. 하늘에 무리에서 떨어져 울면서 홀로 날아가는 외기러기신세인 나.



123 청류벽에 배를 매고 백은탄에 그물 걸어 / 윤유


청류벽에 배를 매고 백은탄에 그물 걸어

자넘은 고기를 눈살같이 회쳐 놓고

아이야 잔 자주 부어라 무진토록 먹으리라


청류벽(淸流壁) : 평양 모란봉의 부벽루에서 연광정으로 내려오는 대동강가에 있는 바위로 된 절벽. 경치가 매우 좋다.

백은탄(白銀灘) : 청류벽 건너편 능라도 남쪽에 있는 여울인데, 물놀이 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것을 청류벽과 함께 보통명사로 풀이한 이가 있는데, 그것은 평양을 모르는 이의 잘못이다.

눈살같이 : 하얀 생선회가 눈같이 신선해 보인다는 뜻.


<감상> 평양은 옛부터 멋과 풍류의 고장이요, 청류벽 밑의 대동강은 흥과 뱃놀이의 명소였다. 거기에서 배를 띄우고 놀다가, 백은탄에 올라가 천렵(川獵)을 하게 되는데, 고기잡이 회쳐 놓고 한잔 기울이면 그것이 바로 신선놀음이었다. 거기에 평양 기생의 간드러진 권주가가 곁들면, 참으로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고 온 산하'이기에 더욱 그립기만 하구나. 애타게 그리운 북녘의 산천이여!

이 시조는 지은이 윤유가 평양감사 때에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읊은 노래이다.

바위 병풍을 두른 듯한 청류벽 밑에 배를 매어 놓고, 맞은편 백은탄 여울목에 그물을 친다. 백은탄은 능라도 때문에 둘로 갈라진 대동강의 동쪽 물줄기가 능라도 남쪽에서 서쪽 물줄기로 달려드는 여울목이다. 천렵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거기에 그물을 치고 자 넘은 고기를(아마도 잉어 일 것이다. 대동강은 잉어가 유명하다) 잡아서 회를 친다. 눈살같이 하얀 신선한 회를 앞에 놓았으니, 안마시고 배길소냐. 술잔 좀 자주자주 부어라. 그리고 춘심아 '수심가' 한 마디 불러 보아라. '무진토록' 먹으리라. 오늘하루 나를 잊고 즐겨 보리라.



124 대동강 달밝은 밤에 벽한사를 띄워 두고 / 윤유


대동강 달밝은 밤에 벽한사를 띄워 두고

연광정 취한 술이 부벽루에 다 깨거다

아마도 관서가려는 예뿐인가 하노라


윤유(尹游) 1674~?. 자는 백숙(伯叔), 호는 만하(晩霞). 조선조 숙종 때에 이조 · 형조 · 호조의 판서를 역임하였고, 글씨를 잘 썼다. 평양에서 읊은 시조 두 수가 전한다.


벽한사(碧漢僿) : '벽한'은 푸른 하늘과 은하수이니 하늘을 말하고, 신선이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뗏목이 벽한사이다.

연광정(練光亭) : 평양 대동문 옆, 대동강가의 절벽 위에 서 있는 큰 정자로서 경치가 매우 좋다. 평양의 의기(義妓) 계월향(桂月香)이 임진왜란 때에 왜장을 부등켜 안고 대동강 물속으로 떨어졌다는 곳.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과 명나라 장수 심유경(沈惟敬)이 강화 담판을 여기에서 하였다. 고려의 시인 김황원의 유명한 시 "長城一面溶溶水大野東頭點點山 (긴 성을 끼고 돌며 대동강은 굽이쳐 흐르고, 넓은 들 동쪽 끝에는 산들이 울멍줄멍)"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시인 김황원도 이 정자에 올라 그 풍광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하루 종일을 끙끙거리다가 겨우 이 한 수를 남기고 소리 쳐 울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부벽루(浮碧樓) : 모란봉 중턱 대동강가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위에 나는 듯이 솟아 있는 누각이다. 바로 눈 아래에 수양버들이 덮인 능라도

가 바라보이며, 또 옆에서는 영명사(永明寺)의 은은한 범종 소리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알려 준다. 그리고 여기서 바라다 보이는 대동간의 경치는 길게 세로로(가로가 아닌) 보는 강물의 경치로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한 절경이라고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원문에 부벽교(浮碧橋)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부벽루'의 잘못된 표기이다.

관서가려(關西佳麗) : 관서지방(평안도)의 아름다운 경치.


<감상> 달밤의 대동강 뱃놀이는 천하일품이다. 연광정 밑에서 술과 미색을 싣도, 병풍을 둘러친 듯한 청류벽(淸流壁) 밑을 지나 백은탄(白銀灘)에 부서지는 달빛을 타고 부벽루에 이르는 풍경은 천하일품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맛본 사람이 라면 다 알 것이다.'관서의 절경이 여기뿐인가 하노라'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125 방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이개


방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 타는 줄 모르는다.

우리도 천리에 님 이별하고 속타는 듯하여라


혔는 : 켜 있는.  눌과 : 누구와.  모르는다 : 모르느냐?


감상 방안에 켜 있는 촛불은 누구와 이별하였기에 겉으론 눈물을 지우고 속 타는 줄 모르느냐? 우리도 천리 바깥에 임을 이별하고 속이 타는구나.


방안을 밝히면서도 스스로의 멸신(滅身)을 모르듯, 지은이는 임을 이별하고 멸신봉공(滅身奉公)으로 천리밖에 계시는 임을 밝히고자 남몰래 마음을 다듬는다. 다른 사육신의 시조에서도 느껴지는 일이지만, 그 모든 노래가 내용에 있어서는 감정이 벅차고 단장(斷腸)의 아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가락은 꽉 짜인 질서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것은 그들의 됨됨을 나타내는 뿌리로서 세계관이 튼튼한데다가, 이를 표현하는 능력이 하나의 독특한 달관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실의 힘이란 표현형식, 이를테면 스타일에도 독특한 인격을 풍겨 주기 마련이다.


밤늦게까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사념의 선도자로서 물끄러미 이 궁리 저 궁리에 잠기다가, 문득 타는 촛불에 착상의 날개가 앉는 그 품(措辭)이 남달리 시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시조가 갖는 특징이다. 길 잃은 행인에게 갈 길을 밝혀 주듯 촛불은 입으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서 말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 모습이 자기가 천리 바깥에 가 있는 임과 이별한 처지와 꼭 닮았을까. 으쓱해지는 깊은 밤, 하염없이 눈물짓는 촛불은 임과 이별한 자기의 마음이 타듯 하기만 한다.


여기서 임이란 단종이다. 생각하면 유교에 몸이 젖었던 선비들의 윤리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았고, 삼강오륜의 우두머리에 군위신강(君爲臣綱), 군신유의(君臣有義)를 두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 같은 군신의 도리에 살았던 지식인으로서 정통 왕위의 계승자인 단종에의 헌신성은 어느 누구도 지워 버릴 수 없는 절대의 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시조는 그러한 심성의 표현이다. 타는 촛불에 의탁하여 마음을 표현해 낸 비범(非凡)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른 곳을 살펴보니 조금 달리 표현된 부분도 있다


홍촉루가(紅燭淚歌)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

저 촉(燭)불 날과 같아서 속타는 줄 모르도다


이 시조는 영월땅으로 귀양간 단종과 헤어진 뒤 남몰래 단종을 그리는 충성심을 노래한 글이다. 옥중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글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의 촛불과 같이 불태운 대의(大義)가 잘 나타나있다.


지은이 : 이개는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호는 백옥헌(白玉軒),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훈민정음>과 <동국정운>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사육신으로 국문을 당할 때 그는 작형(灼刑)을 당하면서도 태연하였다고 한다. 성삼문등과 함께 같은 날 거열형(車列刑)을 당하였는데,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갈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우정처럼 중하게 여길때에는

사는 것 또한 소중하지만

홍모처럼 가벼이 여겨지는 곳에는

죽는 것도 오히려 영광이네

새벽까지 잠자지 못하다가 중문밖을 나서니

현릉의 송백이 꿈속에 푸르구나


우정 : 우나라 우왕이 9주의 쇠를 거두어 9주를 상징하여 아홉 개의 솥.

홍모 : 기러기 털, 아주 가벼운 것

현릉 : 문종의 능



126 달이 두렷하여 벽공에 걸렸으니 / 이덕형

 

달이 두렷하여 벽공에 걸렸으니

만고풍상에 떨어짐직 하다마는

지금 취객을 위하여 장조금준 하노매


이덕형(李德馨)1561~1613.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 선조 13년 나이 갓스물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항복(李恒福) ·이정립(李廷立)등과 함께 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서른 살에는 이미 벼슬이 예조참관 겸 대제학에 이르렀다. 임진란 수습에 힘써 영의정에 올라, 호성(扈聖) · 선무(宣武)공신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이항복과 특히 절친하여 기발한 장난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으며, 글씨를 잘 썼다.


두렷하여 : 둥글어서. '밝다'는 뜻도 들어 있다.

벽공(碧空) : 맑고 높은 푸른 하늘.

만고풍상(萬古風霜) : 비바람 · 서리 등을 겪은 오랜 세월.

장조금준(長照金樽)하노매 : 아름다운 술통을 오래도록 비추어 주는구나!


<감상> 휘영청 밝은 달이 높푸른 하늘에 둥그렇게 걸려 있구나. 비바람 겪어오는 오랜 세월 동안에 어쩌면 떨어짐직도 하건마는, 그래도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하늘 위에 높이 떠서 오늘까지 술 취한 나그네를 위하여 이렇게 이 좋은 술통을, 이 흥겨운 자리를 훤하게 비추어 주는구나! 달 아래에서 베풀어지는 술자리는 한결 흥이 솟는 법, 그것이 허물없는 친구와의 것이라면 더더욱 흥겨운 것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이태백은 달까지도 좋아하였는가 보다. 다음의 시조가 그것을 말해 준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와 놀던 달아

이백이 기경비상천 후(騎鯨飛上天後)이니 놀과 놀러 밝았는다

내 역시 풍월지호사(風月之豪士)이라 날과 놔이 어떠니

                                          작자미상



127 다만 한간 초당에 전통 걸고 책상 놓고 / 이덕형


다만 한간 초당에 전통 걸고 책상 놓고

나 앉고 님 앉으니 거문고는 어디 둘꼬

두어라 강산풍월이니 한데 둔들 어떠리


<감상> 초라한 한간짜리 오막살이. 전통('전동'의 원말. 화살을 넣어 두는 통)은 벽에다 걸어 놓고, 바닥에 책상을 놓고 나앉고 님이 앉으니 거문고 놓을 곳이 없구나. 에라, 나는 강산풍월주인(江山風月主人) 자연을 벗 삼고 사는 인생이니, 강산풍월을 노래하는 거문고야 바깥에 놓아둔들 어떠하랴?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풍류객의 매인 데 없는 생활이 눈에 선하다. 무예의 상징인 화동개 글 읽어 지식과 도덕을 닦는 책상, 예술---풍류를 익히는 거문고뿐, 장농 · 옷걸이 · 밥상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구나. 옛선비의 글을 읽고,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무예와 풍류를 익히어 고차원적인 인생을 탐구하는 생활을 노래했다. 그것을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하였으니 얼마나 즐거웠으랴.

옛사람들은 이렇게 인생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살려고 하였다. 이 점은 현대인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28 서산에 일모하니 천지에 가이 없다 / 이명한


서산에 일모하니 천지에 가이 없다

이화에 월백하니 님생각이 새로웨라

두견아 너는 누를 그려 밤새도록 우나니


일모(日募)하니 : 해가 저무니.

가이 없다 : 끝이 없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안 보인다는 뜻.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니 : 배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데, 달이 휘영청 밝으니, '이화'와 '월백'은 옛시에 많이 쓰인 소재인데, 사실 이것들은 서로 어울리어 만화경을 이룬다. 요즘에 보는 것 같은 과수원의 키 작은 배나무가 아니라, 옛집 앞마당이나 뒤란에 우뚝 서 있던 수십 년 묵은 배나무에 배꽃이 만발하면 밤에도 온 동네가 환할 지경이다. 달밤의 그것은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서 사람을 꿈나라로 끌어 넣는다.

새로웨라 : '새로우에라'의 준말로 새롭도다.' ~에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감상> 해가 서산을 넘으니 어디까지가 땅이요,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분간할 수가 없구나. 앞뜰 큰 배나무에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서 배꽃의 경관을 더욱 현란하게 해준다. 이 광경, 이 환상적인 분위기는 사람의 마음을 낭만의 세계로 이끈다. 님 생각이 나지 않고 배길손가. 옛님의 생각이 새로워진다. 두견이마저 지칠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울어대어 내 마음을 휘저어 놓는구나!


옛시조 중에서 가장 문학성을 높이 평가받는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와 서로 맥이 통하는 시조이다.

이 시조를 깊이 이해하는 데는 '이화 월백'의 경험--체험이 선결 조건이 된다.



129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 이명한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아이야 시절이 좋을 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이명한 : 호는 백주(白州). 이조 인조 때의 학자. 한성부윤, 대제학, 이조, 예조판서 등을 역임


샛별 : 새벽 동틀 무렵에 동쪽 하늘에 가장 크게 반짝이는 별. 샐별 . 금성(金星). 명성(明星). 효성(曉星). 계명성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사립 : 사립문. 시비(柴扉).

베잠방이 : 베로 지은 짧은 홑바지.

좋을 손 : 좋을 것 같으면.


<감상> 동쪽 하늘의 샛별이 지자 부지런한 종달새가 벌써 하늘 높이 떠서 지저귀는구나! 이른 새벽, 밭에 나가 김을 매려고 호미를 들고 사립문을 나서니 길가 풀숲에 맺혀 있는 찬이슬에 베잠방이가 함빡 젖는구나! 아침 이슬이 많이 내리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풍년이 들어 시절이 이렇게도 좋은데, 베잠방이쯤 젖는다고 무슨 상관이냐?

농촌 생활의 즐거움이 생동한다. 명랑,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주옥 같은 가작이다. 특히 종장의 감칠맛 나는 구절은 그 얼마나 좋은가?



130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곧 날 양이면 / 이명한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곧 날 양이면

님의 집 창 밖이 석로라도 닳으련마는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은이 : 이명한(李明漢)1595~1645. 자는 천장(千章), 호는 백주(白洲). 병자호란 뒤에 척화신(斥和臣)의 한 사람으로 심양에 끌려가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세상을 비판하고 은퇴하였다.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자취곧 : 자국이. 흔적이. '~곧'은 강세 조사.

날 양이면 : 날 것 같으면.

석로(石路) : 돌길.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서러워하노라.


<감상> 꿈속에 다니는 길이 만일 자취가 남는다면, 나의님의 집 창밖은 돌길이라도 다 닳아버렸을 것이다. 그토록 내가 님 만나보러 자주 다녔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꿈길이라서 다닌 흔적이 나지 않으니 허망하기 그지없구나. 얼마나 다녔으면 돌길이 다 닳을까. 그렇게도 많이 님을 찾았건만, 그것이 꿈이라 눈에 띄는 흔적이 하나도 없으니, 님께서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을까. 그것이 안타깝구나!


재치가 넘치는 착상으로 그 애절한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구슬 같은 가작이다.



131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지은이 : 이방원(李芳遠 1376~1422) 이조 3대 왕, 태종(太宗)으로 태조의 5남.


만수산(萬壽山) : 개성 서문 밖에 있는 산

드렁칡 : 칡덩굴


<감상> 해동악부(海東樂府)와 포은집(圃隱集)에는 '如此赤何如 如彼赤何如 武輩若此爲 石死赤何如'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태종(太宗)이 정 몽주에게 절개를 굽혀 같은 무리에 들어올 것을 넌지시 떠본 시조이다. 이를 가리켜 '하여가(何如歌)'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절개를 굽히면 어떻고 안 굽히면 또 어떠냐는 식의 회유다. 개성(開城) 서문 밖을 가로막고 선 만수산에 칡덩굴이 얽혀 험한들 무슨 일이 있을까 보냐, 우리도 이같이 얽히고 얽혀서 몇 백 년이라도 권세를 누려보자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개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정 몽주의 군신론(君臣論)을 지칭하고 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조(李朝)를 창건한 이 태조는 봉건시대의 모든 혁명이 그러했듯이 일종의 역성혁명(易性革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더구나 정 몽주와 같은 대학자(大學者)로서는 고려조(高麗朝)의 한 무관(武官)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을 왕으로 섬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힘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왕권을 잡은 권력에 아랑곳없는 정 몽주는 한편으로 다시없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왕의 덕(德)과 인(仁)을 백성에게 보여 줌으로써 민심을 수습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고 보면 정 몽주의 가담(加擔)이야 말로 그것을 수습하는 열쇠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대 이 방원으로서는 머리를 숙여서까지 그를 끌어드릴 수는 없는 군주(君主)의 입장이고 보니, 고두백배(叩頭百拜) 모셔올 수는 없었다. 신하의 길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정 몽주의 군신론에 망설임과 재고(再考)를 촉구하는 암시나 해 볼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넌지시 만수산에 칡덩굴이 우거져 왕조의 갈 길이 험한들 뭐 두려울 게 있겠느냐고 허세를 부려 정 몽주의 전향(轉向)을 권고해 보았던 것.



132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이색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온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지은이 : 이 색(1328-1396) : 자는 영숙, 호는 목은. 고려삼은의 한 사람. 원나라에서 벼슬도 했으며, 귀국해서는 그가 배운 학문과 능력을 발휘하여 조정에 크게 봉사하였다. 성균관 대다성 문하시중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를 발탁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정도전 등 여러 문사들이 배출되었다. 저서로 '목은집'이 전한다.


주제 : 봄을 기다림(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

뜻 : ㆍ잦아진 골에 : 잦아진 골짜기에.

ㆍ머흘에라 : 험하구나.

ㆍ구름 : 간신의 무리들

ㆍ매화 : 우국지사

ㆍ석양 : 기울어 가는 왕조의 운명

해설 : 흰눈이 거의 다 녹아 없어진 골짜기에 험한 먹구름만 뭉게뭉게 끼었구나. 그런데 나를 반겨 줄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어 있는가? 해 저무는 석양녘에 혼자 외로이 서 있어 갈 곳을 몰라 하노라.


충신과 지사들(백화. 매화)이 몰락하고 간신들(구름)이 들끓는, 나라가 기울어 가는 이 판국에 몸 둘 곳을 몰라 하는 지은이의 심정을 이렇게 읊은 것이다. 고려의 500년 사직은 무너져 내리고, 이성계 일파의 신흥 세력은 이미 개국의 길을 달리고 있는데, 이 판국에 갈 곳 몰라 하는 지은이의 심정이야마로 '착잡함', 바로 그것일 것이다. 지은이의 감회가 참으로 절실하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감회가 샘솟는다. 이심전심이라고 해도 좋다.



 

133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섬 달이 밝은 밤에 망루에 혼자 앉아서

큰 칼 옆에 차고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깊은 근심에 잠겨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한 가락 피리소리에 애간장이 다 끊어 지는구나


주제 ;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장군의 근심 가득한 충성심.

이순신(1545-1598) ;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타고 왜적을 물리친 명장.

 



 

134 노프나 노픈 남게 날 권하여 오려 두고 / 이양원(李陽元 ; 1533-1592)


노프나 노픈 남게 날 권하여 오려 두고

이보오 벗님내야 흔들지나 마르되야

나려져 죽기난 섧지 아녀 님 못 볼가 하노라


전문 풀이

높기도 높은 나무 위에 나를 올라가라고 권해 올려놓고

여보게 친구 분들아 흔들지나 말아주소

떨어져서 죽는 것은 슬프지 아니하여도 님을 보지 못할까 두렵구나.


<감상>

작자는 선조가 요동(遼東)으로 건너가 내부(內附)하였다는 풍문을 듣고 통분 강개하여 피를 토하고 세상을 하직할 만큼 강직하고 우국 연군의 정이 간곡하였던 청렴결백한 선비였다. 모두가 조정의 신하로서 또는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국난에 처한 조국의 위태로움을 극복하고자 노심초사하는 데 반해서 간신배들은 당파 싸움에만 급급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작자의 분노와 원망이 시적 풍자와 상징으로 승화되어 있으며 조삼모사(朝三暮四)한 세상인심을 개탄하고 있다. 또한 종장에서는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임금에 대한 불충(不忠)과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나라의 앞날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하는 충신의 굳은 절직(節直)이 잘 묘사되어 있다. 선조 때 작자는 중신(重臣)들의 추천으로 영의정의 중책(重責)을 맡았으나, 간신배들은 이를 보좌하기는커녕 모함을 일삼아 자신들의 당쟁의 수단으로 사용함을 크게 개탄하여 지은 시조로서 그들에게 풍자를 통한 원망과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ㆍ출전 : <진본 청구영언>

ㆍ종류 : 평시조

ㆍ성격 : 풍자시

ㆍ제재 : 당쟁

ㆍ주제 : 당쟁을 일삼는 간신배들 풍자



135 녹양이 천만산들 가는 춘풍 매어 두며 / 이원익

 

녹양이 천만산들 가는 춘풍 매어 두며

탐화봉접인들 지는 꽃을 어이하리

아무리 사랑이 중한들 가는 님을 어이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광해군 때에 영의정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 선조 임금을 호위하여 공신이 되었다. 폐모론에 반대하다 홍천으로 귀양 갔으나,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녹양(綠楊) : 푸른 버들.

천만사(千萬사) : 천가닥 만가닥이나 되는 많은 실. 버드나무의 늘어진 많은 실가지를 뜻한다.

탐화봉접(耽花蜂蝶) : 꽃을 찾아다니는 벌 나비. 耽은 즐긴다는 뜻.


<감상> 버드나무의 푸른 실가지가 천가닥 만가닥인들 지나가는 봄바람을 어이 붙들어 맬 수 있으며, 꽃을 찾아다니는 벌 나비인들 지는 꽃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봄이 가고 꽃이 지는 것은 조물주의 조화요, 대자연의 섭리이다. 그러니 인간의 사랑이 제아무리 중한들 뿌리치고 떠나가는, 혹은 세상을 버리고 가는 님을 어떻게 할 도리가 있겠는가.


지은이는 인품이 대쪽같이 곧아 의절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어진 재상 유성룡을 정인홍 등이 모함하는 것을 영의정인 그가 적극 변호하다가 파직된 일이 있으며, 또 광해군의 폐모를 반대하여 귀양도 갔었다 그러면서도 인조반정 후에 폐위된 광해군을 처형하려는 논의에도 극력 반대하였다. 천명을 거스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그의 인생관이다. 지은이의 너그러운 사람됨을 이 시조에서 역력히 읽을 수 있지 않는가.



136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외 1편 / 이육사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올가 하노라


잠조차 없는 밤에 燭태워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오매라

저 달 상기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 하노라


* 문우인 신석초선생에게 쓴 엽서에서 처음 발견(중앙 2004.7.28)



137 칠곡은 어디메고 풍암에 추색이 좋다 / 이이

 

칠곡은 어디메고 풍암에 추색이 좋다

청상이 엷게 치니 절벽이 금수로다

한암에 혼자 앉아서 집을 잊고 있노라


이 이(李珥)1536~1584. 자는 숙헌(淑獻), 호는 율곡(栗谷) · 석담(石潭). 퇴계 이 황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태두(泰斗), 일찍이 어진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가르침을 받아 문필이 뛰어났으며, 29세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선조 때에 대제학 · 이조판서 · 우참찬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기 전에 유명한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국방에 힘쓸 것을 역석 하였으나, 안일주의에 빠진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임진란의 7년 풍진을 겪었다. 벼슬을 그만둔 후에는 황해도 해주 고산에 은거하며, 학문과 교화에 힘썼다.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칠곡(七曲) : 고산 아홉 굽이의 일곱째 굽이.

청상(淸霜) : 깨끗한 서리, 곱게 내린 서리.

금수(錦繡) : 비단에다 수를 놓음.

한암(寒岩) : 찬 바위. 싸늘한 바위.


<감상>'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중 제7곡을 읊은 것,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곳 수양산 아홉 굽이의 경치를 읊은 연시조 10수 중 의 하나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바위의 가을 경치가 좋기도 하구나! 맑은 서리가 곱게 살짝 내리니 절벽이 온통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구나! 싸늘한 바위 혼자 앉아서 그것을 바라보노라니 그 경치에 도취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잊고, 번거로운 세간사도 다 잊고 있다.


망아(忘我)의 경치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고산 일곱째 굽이의 황홀한 경치에 넋을 잃고 있는 율곡은 자연 속에 자아를 던져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 바 '요산망귀(樂山忘歸)'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138 각시네 꽃을 보소 피는 듯 이우나니 / 이정보


각시네 꽃을 보소 피는 듯 이우나니

얼굴이 옥 같은들 청춘을 매었을까

늙은 후 문전이 냉락하면 뉘우칠까 하노라


각시네 : 아가씨들! 각시는 '아가씨, 색시'의 옛말.

피는 듯 이우나니 : 피었는가 하면 어느덧 벌써 시들어 버리나니.

냉락(冷落)하면 : 영락하여 쓸쓸해지면.


<감상>아리따운 아가씨들! 꽃을 좀 보소. 피는 듯 이우는 것이 꽃인 것처럼 우주만상이 다 무상한 것이오. 아가씨의 지금 얼굴이 옥같이 아리땁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할 줄 아는가. 붙잡아 매어두지 못할 청춘이라, 머지않아 주름살이 잡힐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부귀영화도 꿈같은 것이니, 세도가 한창일 때는 그렇게도 성시를 이루던 문전도, 늙어서 할 일없이 되면 영락하여 쓸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 때서야 뉘우친들(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도 있듯이 청춘도 번개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정승집개가 죽으면 문안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간다."는 염량세태(炎凉世態)에 대한 개탄도 뒤범벅이 되었구나. 이것이 허무주의로 달리면 부정적인 인생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달관으로 보면 생활 철학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저 냉소로 대할 것이 아니라, 내 인생관의 보제(補劑)로 삼으면 약이 될 것이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139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 이정보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 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하려뇨


완월장취(玩月長醉) : 달을 벗삼아 즐기면서 거나한 기분으로 오래도록 노닌다.


<감 상> 아름다운 꽃, 밝은 달을 보면 한잔 술을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술이라면 의당 벗과 더불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데에 멋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리운 것이 친한 벗인데, 그 벗과 달 밝은 밤에 꽃 아래에서 한잔 건네면 더 부러울 것이 또 무엇이랴. 화조월석(花朝月夕)에, 벗님네와 더불어 담론의 꽃을 피운다는 생각만 해도 쾌남아의 가슴 설레는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작자 미상의 이와 비슷한 주제를 가진 시조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으니, 배교하여 보라.


꽃피자 술이 익고 달밝자 벗이 왔네

이같이 좋은 때를 어이 거저 보낼소니

하물며 사미구(四美具)하니 장야치를 하리라 (작자 미상)"


4미는 꽃·술·달·벗을 가리키며 그것들이 고루 갖추어졌다 해서 '사미구'라 하였다.



140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 이정보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李鼎輔) 1693~1766. 자는 사수(士受), 호는 삼주(三洲). 영조때에 이조판서 · 예조판서 · 대제학을 지냈으며, 젊어서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에 탕평책(湯平策)을 반대하는'시무11조(時務 十一條)'를 올려 파직 된 적도 있다. 글씨와 한시에 능하였고, 시조도 78수나 남긴 대가이다.


삼월동풍(三月東風) : 따뜻한 봄바람. 우리나라의 봄바람은 거의 동풍이다.

낙목 한천(落木寒天) :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날.

피었는다 : 피었느냐. '~는다, ~난다, ~ㄴ다'는 의문형 종결어미.

오상고절(傲箱高節) : 매서운 서리를 이겨내는 꿋꿋하고 높은 절개.


<감 상> 국화야, 너는 어째서 모든 꽃들이 다투어 피는 따뜻한 봄을 다 지나 보낸 뒤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버린 쓸쓸하고 추운 늦가을에 너 혼자서 외로이 피어 있느냐, 생각건대 그 매서운 서리, 한번 내리면 모든 식물이 다 시들어 버리는, 그 서리를 이겨 내는 높고 굳센 기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지사(志士)의 절개에 비유하여 기린 노래이다. 꽃이란 따뜻한 봄철에 핀다는 일반적인 개념을 깨뜨리고, 추운 가을에 핀다는 파격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국화이기에 이런 기림을 받는 것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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