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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時調 감상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by 산산바다 2008. 7. 5.

 산과바다

 

 

  

 


        시조 감상


141  산가에 봄이 오니 자연히 일이 하다        이정보

142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이정신

143  남이 해할지라도 나는 아니 겨루리라       이정신

144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이조년

 자규(두견새 또는 소쩍새)

 

145  구름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이존오

146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이직

147  깜장새 작다하고 대붕(大鵬)아 웃지 마라   이택

148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이항복

149  굽어는 천심녹수 돌아보니 만첩청산        이현보

150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이현보

151  어부가(漁父歌)                           이현보

152  오려 고개 숙고 열무우 살졌는데           이현보

153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황

154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이황

155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인평대군

156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임제

157  가락지 짝을 잃고 네 홀로 날 따르니       작자미상

158  바람아 부지 마라 비올 바람 부지 마라     작자미상

159  벼 비어 소에 싣고 고기 건져 아이 주며    작자미상

160  사랑이 거짓말이 임 날 사랑 거짓말이      작자미상

 

 

 


141 산가에 봄이 오니 자연히 일이 하다 / 이정보

산가에 봄이 오니 자연히 일이 하다

앞내에 살도 매며 울 밑에 외씨도 빠고

내일은 구름 걷거든 약을 캐러 가리라


산가(山家) : 산촌의 농가. 시골집.

외씨 : 오이씨.

빠고 : 뿌리고.

약 : 약초를 말한다.


<감상> 산골 농가에 봄이 오니 일손이 몹시도 바빠진다. 앞 내에는 고기잡이어살도 매어 놓아야겠고, 울밑에는 오이씨도 뿌려야 하겠으며, 내일

날이 개거든 약초도 캐러 뒷산으로 가야 한다. 봄을 맞은 농가의 생동하는 모습이 즐겁기만 하구나! 지극히 한국적인 옛 농촌 풍경이 너무도 목가적이 아니냐. 평화 바로 그것이로다! 계절적 배경이 봄이라서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142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 이정신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이정신(李廷藎) 자세한 연대미상. 자는 집중(集仲), 호는 백회재(百悔齎). 조선 영조 때의 가인으로 벼슬은 현감을 지냈다. 시조 13수가 전한다.


매아미 : 매미.

쓰르라미 : 참매미 비슷한데 몸집이 작고, 저녁 무렵에 풀밭에서 애처롭게 운다.

산채(山菜) : 산나물. 산에서 나온 나물.

박주(薄酒) : 변변치 못한 술. 술을 낮추어서 말할 때에 쓰는 말.

초야(草野) : 시골의 궁벽한 곳. 벼슬을 안 하고 시골에서 사는 것을 초야에 묻힌다고 한다.


<감상> 매미는 매암매암 맵다 울고, 쓰르라미는 쓰르람 쓰르람 하며 쓰다고 운다. 고추 양념의 산나물을 맵다고 하느냐, 텁텁한 막걸리를 쓰다는 것이냐.


우리는 궁벽한 초야에 묻혀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매운지 쓴지 모르고 달게 먹으며 살고 있단다. 속세를 떠난 듯 세속적인 고락을 초월하고, 또 세속적인 부귀와 영화를 한바탕의 꿈으로 돌린 채, 얽매인 데 없이 유유히 소박한 삶을 즐기던 옛 사람의 담담한 생활 철학이 돋보이는 느낌이다. 매미와 쓰르라미의 소재도 좋거니와 그 울음소리의 비유가 묘를 이룬다.



143 남이 해할지라도 나는 아니 겨루리라 / 이정신


남이 해할지라도 나는 아니 겨루리라

참으면 덕이요 겨루면 같으리니

굽음이 제게 있거니 갈올 줄이 있을랴


이정신(李廷藎). 자는 집중(集仲), 호는 백회재(百悔齋). 영조 때의 가객으로 창에도 능하였다. 벼슬은 현감을 지냈으며, 시조 12수가 전한다.


겨루리라 : 상대하리라. 맞서서 싸우리라.

굽음이 : 그릇됨이. 잘못이.

갈올 줄이 : 맞서서 싸울 까닭이. '갈오다'는 맞서서 견주다, 함께 나란히 하다, 겨루다의 뜻을 가진 옛말.


[감 상] 설사 남이 나를 해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와 맞서서 싸우지 아니하련다. 참으면 덕이 되고, 겨루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거늘, 더구나 잘못은 내

게도 없지 않을 터인데, 그와 맞서서 싸울 까닭이 있겠는가.


노자의 '부쟁(不爭) 사상'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는 일이 없다[水善利萬物而不爭]."고 말하고, 또한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고 하였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아서 복수의 악순환을 계속할 뿐, 거기에서는 평화를 찾을 길이 없다. 결국에는 유(柔)가 강(剛)을 이기는 법이라면 일견 비굴하게 느껴지는 '부쟁'이 더 높은 차원의 덕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에는 비상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忍'자는 마음에 칼날을 갖다댄 모양이다.


공자도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으뜸이다."고 하면서,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나라를 이룩하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해지고, 부부가 참으면 평생을 해로할 수 있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깎이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화가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내없이 성취되는 인생의 대업은 없다. 인내의 나무에 평화의 꽃이 피고 성공의 열매가 달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의 지팡이를 짚고 살아가야 한다."고 한 말은 천고의 금언이다.



 

144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하야 잠 못 들어 하노라


지은이 : 이조년(李兆年, 1269~1343, 호는 梅雲堂)


은한(銀漢) : 은하수

일지춘심(一枝春心) : 한 가지에 어린 봄 뜻

자규(子規) : 두견새, 소쩍새, 접동새


<감상> 흰 배꽃이 피어 있는 가지 위에 달빛이 더욱 희고, 은하수가 높은 이 한밤(밤 11시부터 오전 1시 사이)에 배꽃 가지에 어려 오는 봄. 그 봄을 느끼는 마음에 또 하나 움터오는 내 마음을 두견이야 어찌 알랴마는 아픈 마음 수북하게 쌓여 오는 이 밤, 잠을 이룰 수 없어 더욱 괴롭다는 뜻으로 이 시조의 동심원을 그려 낼 수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춘심이란 봄을 그리는 마음인지 봄을 그렸던 마음의 회상인지 그 이미지의 소재가 가져야 할 한정(恨定)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애매한 상태가 그대로 작품 속에 남아 있어서 시조가 갖는 표현의 서정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더구나 봄이 갖는 양면성인 자연, 다시 말해서 작자가 갖는 자아 밖의 부분과 봄의 촉매로 유발된 감정 내부의 봄의 이미지가 사랑이 움트던 과거의 모사(模寫)인지 좀 더 구상성(具像性)을 지닌 언어로 전화되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누구나 사람이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법이다. 어두운 겨울이 그 무서운 베일을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우주 위에 떠오르는 봄의 손길은 너무나 우리들의 마음에도 갖가지 촉각의 봄을 피워 주기 마련이다. 그것도 새하얀 배꽃이 깊은 밤을 밝히고 달빛이 서려 이마를 적시는 봄. 다감한 문인묵객의 감정을 어찌 그냥 잠들게 하겠는가. 감정의 층계를 지나치게 내려오다가 보면 시간은 어느 새 아침을 알릴지도 모를 만큼 회상의 봄에 잠기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늙음이 가고 젊음이 솟아올라 감정의 아름다운 도착(倒錯)에 얽매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상태에서 세월이 무심하고 인생은 허무하다는 자연과 불교의 그림자가 구름처럼 떠오를 것이다.


이 시조에 동원된 '배꽃, 은하수, 삼경, 다정' 등의 포인트 자체가 하나의 감정 탱크로서 그 자체에 풍겨오는 감정의 인소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145 구름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이존오


구름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 있어 임의 다니면서

구태여 광명한 날빛을 따라가며 덮나니


지은이 : 이존오(李存吾, 1341 ~ 1371 호는 石灘 또는 孤山 고려말의 문신)


허랑(虛浪)하다 : 허무맹랑하다. 실없고 터무니없다.

임의(任意) : 제 마음대로.

날빛 : 햇빛.

덮나니 : 덮느냐?


<감상> 이 작품의 작자는, 신돈(辛旽)으로 말미암아 무력과 부패가 휩쓸던 고려말의 정치와 사회 속에 몸을 담았던 인물이다. 신돈의 출신은 옥천사(玉川寺)의 사비(寺婢)의 아들이었으나, 김원명(金元明)의 천거를 받아 세상에 나와 1365년 공민왕 14년에 진평후(眞平候)에 올랐고,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므로 이 시조 속의 구름이란 하늘을 방황하는 자연의 구름이 아니라, 임금의 총애를 가리는 마음 검은 신돈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시조가 흔히 구사하는 短音으로 된 메터퍼의 일종이다. 이 시조는 이 메터퍼 하나로 그 표현의 주축인 바퀴를 굴려서 하나 의 형식을 지어냈다 할 만큼 이에 의존하고 있다.


흔히들 구름을 가리켜 무심하다느니, 속 빈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들에 평행하여, 그는 이 시조의 기복을 하나의 반어(反語)로 시조의 이미지를 구성해 가고 있다. 말하자면, 구름은 무심히 하늘을 흐르는 일종의 풍향에 실려 흐르는 타동사(他動詞)가 아니라 제 생각을 쉴 새 없이 먹칠하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떠다니면서 굳이 햇빛을 가리는 실없고 터무니없는 자폐 행위의 전문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름은 세익스피어의 작품 '멕베스'에 나오는 '이어고'처럼 도처에서 어두운 눈에 촛불 아닌 촛불을 켜서 눈길을 딴 곳으로 돌려 제 목적을 이루는 방편으로 유도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惡의 씨, 바로 이것을 뿌리는 사람을 가리켜 그가 선택한 메타퍼는 이상한 인생의 깊은 비밀을 파헤치면서 의미의 여운을 우리들의 머릿속에 풍겨 주고 있는 것이다. 햇빛이 가득 찬 대낮의 사물을 어둡게 보이게 하여 제대로 대상인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구름의 악마 성을 그는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카인'의 후예가 지니는 고뇌의 한 단면이 이 속에도 움터나 있는 것이다.



146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 이직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이 직 : 호는 형재. 고려 공민왕 때 학자, 여말에 이성계를 도와 조선의 개국공신이 됨


<감상>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이직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벼슬을 하면서 두 나라를 섬긴다고 비판하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노래다.

겉으로만 희고 속이 검은 무리들보다는 자신의 입장이 당위성이 있음을 피력한 노래다.



147 깜장새 작다하고 대붕(大鵬)아 웃지 마라 / 이택


깜장새 작다하고 대붕(大鵬)아 웃지 마라

구만리 장천을 너도 날고 나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니 네오 제오 다르랴



148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 이항복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 삼아 뛰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철령 높은 봉우리를 쉬어서 넘어가는 저 구름아

귀양가는 외로운 신하의 억울한 눈물을 비처럼 띄어가지고 가서

임금님 계신 깊은 궁궐에 뿌려서 나의 충성심을 알려 드리려무나


주제  귀양가는 신하가 자신의 충성심을 임금께 호소함.

지은이 : 이항복(1556-1618)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로 유명한 오성 대감임.



149 굽어는 천심녹수 돌아보니 만첩청산 / 이현보


굽어는 천심녹수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십장홍진이 언매나 가렸는고

강호에 월백하거든 더욱 무심하여라


굽어는 : 굽어보면. 천심녹수(千尋錄水) : 천 길이나 깊은 맑은 물.

십장홍진(十丈紅塵) : 열 길이나 쌓인 티끌, 곧 속세. 언매나 : 얼마나


굽어보면 천 길이나 깊은 맑은 물이고, 돌아서 보니 겹겹이 솟은 푸른 산이다. 열 길이나 쌓인 티끌의 속세는 이 깊은 물과 산에 가리어진 듯 멀고 은서지(隱棲地)에 달이 밝으니 무슨 야망이 있겠는가. 자연에 몸을 파묻고 마음이 그 속에 편하니 다른 생각이야 또 있겠는가.


지은이 : 이현보 벼슬도 여러 해 지내면서 부귀를 누렸으나, 노후 10여 년 동안은 향리에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悠悠自適)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 시조도 물이 맑고 강이 흐르는 자연 속에서 달이 밤을 비치는 시간의 한정(閑情)을 노래한 것이다.


세상을 멀리하고 속세의 잡된 일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는 자족의 상태에서 모자람이 없고 애환이 없는 듯 담담한 심정은, 마치 고려자기의 그 빛을 연상할 만큼 담담하여 한 포기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감회에 사로잡힐 만하다.


이 시조의 특징은 다른 작가의 경우와는 달리 과거에의 미련이 없다는 점이다. 두고 온 임이라든가 벗들에 대한 그리움과는 상관없는 자연에의 신앙이 그 속에 생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관대작을 지내다가 유배간 대부분의 경우와는 그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사람에 지치고, 믿음에 속았던 과거에 대한 단절만이 자신에의 길이요, 마음을 기르고, 시간을 이성과의 동화에서 삶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유일한 생리의 재창조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말없는 무수한 말을 무진장하리만큼 내장(內藏)하고 있는 자연은 무욕을 가르쳐 주는 교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시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150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 이현보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인사이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까

암전의 모수모구이 어제 본듯 하여라


이현보(李賢輔)1467~1555.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 호조참판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조를 지었으며, 10장으로 전하던 '어부사'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전한다. 또 '농암집'이라는 시문집이 있다. 호조참판 때에 은퇴하려 하자, 임금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굳이 고향으로 내려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뜬 시조 '귀거래사'를 지었다.


농암(聾巖) : 지은이의 고향인 경상도 예안군 분천리 분강(汾江)가에 있는 바위 이름인데, 이것을 그의 호로 삼았다. 바위 위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흐르는 강물 소리 때문에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하여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노안(老眼) : 늙은이의 눈.

유명(猶明) : 오히려 밝다.

인사(人事)이 : 사람의 일이. 인간세상의 일이. 주격 조사 '~가'가 아직 안 쓰이던 흔적이 이것이다. '모수모구어'도 마찬가지.

가실까 : 변할까.

모수모구(某水某丘)이 : 물과 언덕들이. 무슨 강, 무슨 언덕 할 것을 특정 지명 대신 이렇게 통틀어서 부른 것.


<감상> 지은이가 벼슬을 그만둔 70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그리던 산수를 돌아보고 감회에 젖어 지은, 이른바 '농암가'라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진 듯, 고향산천이 선하기만 하구나. 사람에 관한 일들은 변한 것이 많지만, 산천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오른 농암 앞에 펼쳐져 흐르는 이 물, 저 언덕들이 어제 본 듯 변함없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구나. 오래간만에 그리운 고향 산천을 다시 보니 그 어떤 부귀영화에 비할 수 없는 반가움과 즐거움이 절로 우러나는구나. 어린 아이처럼 자연을 반기는 옛 선비의 모습이다.



151 어부가(漁父歌) [1~5연] / 이현보

 

1연

이중에 시름없으니 어부의 생애로다

일엽편주를 만경파에 띄워두고

인세를 다 잊었거니 날 가는 줄을 알랴


이 가운데 걱정이 없는 것은 낚시꾼의 생활이로다.

조그마한 조각배를 넓은 바다 물결 위에 두둥실 띄워놓고 속세의 일을 다 잊어버리고 있는데 세월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으랴


2연

구버는 천심녹수(千尋綠水) 도라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십장홍진(十丈紅塵)이 언매나 가롓난고

강호애 월백(月白)하거든 더옥 무심(無心)하얘라.


아래를 굽어 보니 깊고 푸른 물이 흐르고 있고, 주위를 돌아보니 겹겹이 둘러 싼 푸른 산이로구나.

열 길이나 되는 붉은 먼지(어지러운 세상사)로 얼마나 가려져 있는가?

강촌에 달이 밝게 비추니 마음에 아무 근심이 없구나.


3연

청하에 밥을 싸고 녹류에 고기꿰어

노적화총에 배 매어두고

일반청의미를 어느분이 알으실꼬


푸른 연잎에다 밥을 싸고 푸른 버들가지에 잡은 물고기를 꿰어 갈대꽃 떨기에 배를 매어두니,

이런 일반적인 맑은 재미를 어느 사람이 알 것인가


4연

산두에 한 운이 기하고 水中에 백구비라

무심코 다정하니 이 두 것이로다

일생에 시름을 잊고 너를 쫓아 놀으리라


산머리에는 한가로운 구름이 일고 물위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네

아무런 사심없이 다정한 것이 이 두가지 뿐이로다

한평생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고 너희들과 더불어 놀리라


5연

장안을 둘러보니 북궐이 천리로다

어주에 누어신들 잊은 적이 있으랴

두어라 내시름 아니라 제세현이 없으랴


서울을 돌아보니 대궐은 아득히 천리밖에 있구나

고깃배에 누워있은들 임금님을 잊은 적이 있겠느냐

두어라, 내가 근심하지 않아도 임금님을 도와 세상을 다스릴 어진 사람이 없겠는가


어부가는 효종때 윤선도에 의해 어부사시사로 훌륭히 개작된다.

지은이 : 이현보의 시조에는 한문 어구가 너무 많아 흠이라고 지적되고 있지만, 한글 사용이 금지되던 연산군 때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위의 5수는 작자가 벼슬을 내놓고 노후 10년 동안 고향에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할 때의 풍류를 그린 것이다


1연은 번거로운 세상에서 초탈한 어부의 생활을 노래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작자의 괄괄한 성격을 가리켜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 했다는데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나보다.


2연은 강호에 묻혀 사는 어부의 욕심 없는 청렴한 생활을 그린 것이며(고시조34)


3연은 요즘 같으면 재미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을 일반적인 맑은 재미라고 한 것은 그의 글의 정도를 가름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신선놀이 같은 그런 장면이다.


4연은 속세의 일들을 잊고 구름과 갈매기를 벗삼아 즐겁게 살아가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5연은 강호에 묻혀 어부의 생활을 하면서도 왕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선비의 기품이 절도 있게 드러나 있으면서도 자연에 몸담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던 고집과 절개가 글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는 글이 아닌가 생각된다.



152 오려 고개 숙고 열무우 살졌는데 / 이현보


오려 고개 숙고 열무우 살졌는데

낚시에 고기 물고 게는 어이 내리는고

아마도 농가의 맑은 맛이 이 좋은가 하노라


오려 : 올벼. 일찍 익은 벼.

열무우 : 어린 무우. 열무김치가 일품이다.


<감상> 덜 익은 오려가 탐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남새밭의 열무는 살이 쪄서 먹을 만하게 되었는데, 앞 내에서는 낚시에 고기

가 물리고, 철 따라 게가 내리는구나. 벼가 익어서 벼를 베게 될 무렵에는, 상류나 논물에 있던 참게가 물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이때의 게는 속이 차고 장도 많아 게장을 담가 먹으면 그 맛이야말로 일품이다.

논밭에 황금물결 일렁이는 이 무렵의 농촌은,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부르다.



153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이퇴계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1)>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료

초야우생이 이렇다 어떠하료

하물며 천석고황을 고쳐 무슴하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서 세상의 공명이나 시비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이렇게 살아간들 어떻겠는가? 더구나 자연을 버리고 살 수 없는 이 버릇을 억지로 고쳐서 무엇 하겠는가


도산십이곡은 전 6곡과 후 6곡의 총 12곡으로 되어 있는 연시조이다 전 6곡은 '言志'로서 사물에 대한 감흥을 노래한 것이고, 후 6곡은 '言學'이라 하여 학문과 수양에 힘쓰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글은 전 6곡 중에 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이 무엇 하며 사는 지 무슨 상관인가하며 자연의 사랑이 나타나있는 글이다.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2 >

연하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 가네

이중에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고자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을 삼아

태평스러운 시대에 하는 일없이 병으로 늙어가고 있다.

이러한 생활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게 허물되는 일이나 없었으면 한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지내는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안개와 바람 같은 영혼의 자유가 부럽다

몸의 허물을 염려하는 마음은 이미 바람 냄새가 배었다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3 >

순풍이 죽다하니 진실로 거짓말이

인성이 어질다하니 진실로 옳은말이

천하에 허다영재를 속여 말씀할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순박한 순풍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순풍이 죽었다는 말로써 이 세상의 많은 슬기로운 사람들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느냐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4 >

유란이 재곡하니 자연이 듣기 좋애

백운이 재산아니 자연이 보기 좋애

이중에 피미일인을 더욱 잊지 못하얘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가 산골짜기에 피었으니, 그 냄새가 자연히 맡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묻혀 살건만, 그럴수록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5 >

산전에 유대하고 대하에 유수로다

떼 많은 갈매기는 오명가명하거든

어떻다 교교백구는 멀리 마음하는고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그 언덕 아래로 물이 흐르는 구나

갈매기들은 떼를 지어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저 귀하고 좋은 흰 망아지는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가?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6 >

춘풍에 화만산하고 추야에 월만대라

사시가흥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야 어느 그지 있을꼬


봄 바람에 꽃을 산에 가득피어 있고, 가을바람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비치니,

계절마다 일어나는 흥취는 사람의 흥겨워함과 같구나.

게다가 물속에서는 고기가 뛰고 하늘에는 소리개가 날며 아름다운 구름은 그림자를 짓고 찬란한 태양은 그 빛을 온누리에 던진다. 이러한 대자연의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겠는가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7 >

천운대 돌아들어 완락재 소쇄한데

만권생애로 낙사 무궁하얘라

이중에 왕래풍류를 일러 무슴할꼬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공부방인 완락재가 깨끗한데,

거기서 많은 책을 벗 삼아 생활하는 즐거움이 끝이 없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대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천운대는 도산서원 근처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을 말하고, 완락재는 퇴계가 거처하던 서재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퇴계는 독서와 면학의 즐거움과 여가를 산책으로 즐겼던 생활이 한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자연의 감흥이 아닌 학문과 수양에 관한 깨달음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8 >

뇌정(雷霆)이 파산하여도 농(聾)자는 못 듣나니

백일이 중천하여도 고자는 못 보나니

우리는 이목 총명남자(聰明男子)로 농고 같이 말으리


우렛소리가 산을 무너뜨릴 듯 심하게 나고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며,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솟아도 장님은 못 보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장님이 되지 말아야 한다.


중장의 고 : 소경 고 目-18획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9 >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뵈도 예던길 앞에 있네

예던길 앞에 있으니 아니 예고 어쩔꼬


옛 성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또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그러나 옛 성현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옛 성현들이 행했던 바른길이 우리 앞에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그분들이 행하던 바른길이 앞에 있는데 우리가 행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10 >

당시에 예던길을 몇해를 버려두고

어데가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온고

이제나 돌아오나니 연데마음 말으리


그때 학문과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버려두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시는 딴 데 마음을 두지 않겠다.


퇴계는 69세 때 완전히 관직을 떠났는데 벼슬하면서도 늘 마음속으로 학문을 떠나지 않았다 중장의 글귀는 그동안의 벼슬살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관직을 완전히 떠나고 이제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겠다는 다짐의 글이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저렇게 젊다 어찌 보면 그 나이에는 노년을 이제는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것이 더 보편적인 사람의 생각일 수 있으나, 그는 평생을 학문을 했음에도 살아 있는 동안 쉼 없이 가르침과 깨달음에 대한 자세가 늘 학생의 첫 걸음처럼 시작뿐이었던 것 같다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11 >

청산은 어이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게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 하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흐르는가

우리도 저 푸른 산과 흐르는 물처럼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푸르게 살리라


변하지 않는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의 변화무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아쉬움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과 같이 萬古常靑(만고상청)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퇴계는 그것을 학문에서 찾았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국학자료원 '고시조산책' 성낙은 편저 참조 했습니다.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12 >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몰래라


긔 : 그것이 성인(聖人) : 여기서는 공자와 맹자.

몰래라 : 모르겠도다.


지은이 : 이 시조는 '도산십이곡' 중에서 후육곡에 속하는 작품이다

지은이는 조선 유교의 총 본산이라 일컬을 만큼 그 조예가 깊은 석학으로서,

그 학덕으로 백성의 숭상을 한 몸에 받은 이 퇴계(李退溪) 바로 그 분이다.


이 시조는 그의 학문이 어떠한 믿음과 생각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퇴계는 주자(朱子)의 이기이원설(理氣二元說)을 발전시킨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그 학문의 원리로 삼고 있으며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그 윤리설(倫理說)로 내세웠다. 이 시조는 그가 주자의 깊고 높은 학행(學行)을 어떠한 몸가짐으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면학(勉學)의 태도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초장과 중장에는 學의 기본 성격인 보편성과 일반성을 실제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있으면서도, 노래가 생명으로 하고 있는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수사학적(修辭學的) 배려(配慮)를 져버리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그가 쓰는 구절에서 몸에 배어있는 어떤 학덕(學德)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학문이란, 인생의 의미가 끝없이 깊듯이 누구나 다 맛볼 수 있는 개방성(開放性)을 지니고 있음을 동시에, 아직껏 이 길의 끝장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종장(終章)이 없다는데 그 심오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 자체의 생리가 하나의 인간에게 생활화 될 때 풍겨오는 기풍(氣風)이 이 시조의 가락마다 스며있다는 것은 이 시조가 갖는 가장 큰 자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시조의 핵심이라 일컬을 만한 대목은 쉽거나 어렵거나 늙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하게 되는 것이 학문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퇴계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학행(學行)은 어떤 경우이든 쉽다든가 어렵다든가 혹은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영역 밖에 그 자체로써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실 퇴계는 지행일여(知行一如)를 그의 학적 이념으로 삼고, 그 근본정신은 성(誠)에 두었다.

그리고 그 성으로 가는 끈기 있는 노력을 경(敬)이라 하였으며, 이 敬이 바로 퇴계가 내세운 학문의 태도이며 정신이었다.



154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 이황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봬고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어떨꼬


고인(古人) : 옛사람. 옛 성인들을 가리킨다.

못 봬 : '못 뵈(보이)'로 하여 끝의 '이'는 감탄형 어미로 풀이하기도 하나, ' 봬(뵈어)'로 하여 '~있다, ~도다'라는 어미의 생략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봐'로 해서'보아'로 풀이할 수도 있다.

녀던 길 : 가던 길, 즉 행하던 도리. '녀다>녜다>예다'로 변천하였으며,'니다'도 같은 말이다.


<감상>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중 후 6곡의 제3수이다. 옛사람의 행하던 도리를 자신도 힘써 배우고 밝혀 행하여야겠다는 결의가 단적으로 표현된 노래라 하겠다. '도산십이곡'은 전6곡 · 후6곡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6곡에서는 겉도는 세속적인 부질없는 마음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맑고 순수한 심성(心性)을 닦으려는 의지를 읊었고[言志], 후6곡은 학문을 닦고 심신을 수양하는 심경을 읊었다[言學].


이 시조는 앞장의 꼬리를 뒷장 머리에서 이어받는 식의 이른바 연쇄법의 기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옛 성현들도 나를 못 보았고 나도 옛 성현들을 직접 뵈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이 행하던 도리, 즉 학문은 내 앞에 남아서 전하고 있지 않느냐. 그 훌륭한 길이 이렇게 남아 있으니, 그 길을 나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옛 성현들이 가던 길을 몸 바쳐 가야 하겠다.


다음은 후6곡 중의 제6수이다.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그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다 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몰라라


우부도 성인도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는 것이 학문이요, 쉽고도 어려운 것이 학문의 길이다. 그것에 몰두하여 세월 가는 줄을 모르는 즐거움이 곧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퇴계의 학문하는 태도를 읊은 것이다.



155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 인평대군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고야

남의 흉 보고라 말고 제 허물 고치과저


인평대군 : 호는 송계. 인조의 셋째 아들, 효종의 아우, 본명은 묘. 병자호란  후에 심양과 북경을 여러 차례 내왕하고 시조 3수가 전함.


<감상> 자기 허물을 전혀 잊고 남의 허물만 들춰내는 못난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노래다. 세상 사람들이 입들이 성하여서 자신의 허물은 돌보지 않고 남의 흉만 보는구나. 남의 흉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 하려무나.



156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임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임제(林悌) 1549~1587.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 성격이 강직하고 고집이 세어 벼슬은 선조 때에 예조정랑(禮曺正郞)에 그쳤으나, 재주가 뛰어나고 문장이 시원스러웠으며, 특히 시를 잘 지었다. 한문 소설인 '수성지(愁城誌)'와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을 지었다. 벼슬에 뜻이 없어 전국을 노닐며 시와 술로 울분을 풀었다. 시국을 강개(慷慨)하는 지사적인 인물이다.


<감 상> 황진이가 살아 있을 적에 교분이 있던 지은이가 평안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풀숲에 덮여 있는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면서 읊은 시조라고 한다.


푸른 풀이 어수선하게 우거져 있는 이런 쓸쓸한 골짜기에서 그대 진이는 자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누워 있는 것인가? 그 아리땁던 얼굴은 지금 어디에다 두고, 백골만 싸늘히 묻혀 있단 말인가. 살아생전에 한 것처럼, 술잔을 잡고 권주가라도 한번 다정하게 불러 줄 사람이 이제는 없으니 그것이 슬프구려. 인생무상을 실감나게 표현한 시조다.


백호는 또 한우(寒雨)라는 기생에게 다음 시조를 지어 주어 풍류남아의 면모를 보였다.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이 잘까 하노라


그랬더니 재치 빠른 한우는 이렇게 화답하였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琵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이래서 시가 좋고, 시인이 멋있구나!



157 가락지 짝을 잃고 네 홀로 날 따르니 /작자미상

가락지 짝을 잃고 네 홀로 날 따르니

네 짝 찾을 제면 나도 님을 보련마는

짝 잃고 그리는 한은 너나 내나 다르랴


<감상> 님 여읜 자신의 신세를 짝을 잃은 가락지에 비유하여 애틋한 심정을 표현한 기교가 교묘하다.


가락지는 두 개로 한 쌍을 이루는, 주로 여자가 끼는 반지이다. 반지나 가락지는, 다같이 손가락에 끼는 장신구라는 점이 공통점이고, 반지는 하나인데 가락지는 두 개로 쌍을 이루어 주로 여인네가 낀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반지는 하나이니 독립적이요, 가락지는 두 짝이 모여 쌍이 되어야 하니 다분히 의존적이다. 그러한 가락지가 한 짝을 잃었으니 몹시 쓸쓸할 수밖에.......


'짝 잃은 외가락지의 신세'라는 구절서는 님 그리는 '한'이 맺혀 있다. 한국문학은 특히 여인네의 문학은 '한의 문학'이라는데, 그 한이 여기도 서려있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한국의 여인상은 애수(哀愁)의 화신이라는 인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가 보다. 물론 지난 날 이야기다.



158 바람아 부지 마라 비올 바람 부지 마라 / 작자 미상


바람아 부지 마라 비올 바람 부지 마라

가뜩이나 차변된 님 길 질다고 아니올쎄라

저 님이 내 집에 온 후에 구년수를 지소서


차변된 : 마음이 변함.

구년수(九年水) : 중국 요임금 때 있었다고 하는 9년에 걸친 홍수


온 님 와서 내 품에 안긴 님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바람 불고 비 내리고, 한길이 바다가 되게 하라는 데 대하여 이 경우는 온다고 한 님이 아니 올세라 바람아 불지 말며 비야 오지 마라. 그러다가 님이 내 집에 온 뒤에는 막 퍼부어서 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속성을 짐작케 하는 대표적인 시조들이다.



159 벼 비어 소에 싣고 고기 건져 아이 주며 /작자미상

벼 비어 소에 싣고 고기 건져 아이 주며

이 소 네 몰아다가 술을 먼저 걸러라

우리는 아직 취한 김에 흥치다가 가리라


<감상> 옛날 우리의 농촌은 이런 멋에 살았던 모양이다. 여기에는 농약도, 화학비료도 없었다. 공해도, 오염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미개한 농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경운기나 트럭 대신 소 등에 볏단을 실었다. 그리고 고기는 기를 쓰고 잡지 않아도 된다. 건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맥주가 맛좋고 편리하다고들 말하지만 걸러서 마신 막걸리의 맛은 더욱 일품이다. 그림 같은 옛 농촌 생활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시조다.



160 사랑이 거짓말이 임 날사랑 거짓말이 / 작자미상


사랑이 거짓말이 임 날사랑 거짓말이

꿈에 뵈단말이 긔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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