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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時調 감상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by 산산바다 2008. 7. 4.

 산과바다

 

 


        시조 감상


81   묻노라 저 선사야 관동풍경 어떻더니        신위

82   내 가슴 헤친 피로 님의 양자 그려내어      신흠

83   내 사랑 남 주지 말고 남의 사랑 탐치 마소  신흠

84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거다         신흠

85   논밭 갈아 기음내고 돌통대 기사미 피워 물고 신희문

86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치니          안민영

87   빙자옥질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안민영

88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안민영

89   늙은이 저 늙은이 임천에 숨은 저 늙은이    안민영

90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안민영

91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안민영

92   청우(靑牛)를 빗기 타고 녹수를 흘러 건너   안정

93   전 나귀 모노라니 서산에 일모로다          안정

94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양사언

95   태평 천지간에 단표를 둘레메고             양응정

96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오경화

97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왕방연

98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우탁

99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쥐고     우탁

100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원천석



81

묻노라 저 선사야 관동풍경 어떻더니 / 신위


묻노라 저 선사야 관동풍경 어떻더니

명사십리에 해당화 붉어 지고

원포에 양량백구는 비소우를 하더라


신위(申緯) 1769~1847. 자는 한수, 호는 자하(紫霞). 조선 정조 때에 이조참판을 지냈다. 시 ·서 · 화에 능하여 삼절(三絶)의 이름이 높았다.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많은 시(한시) 작품을 남겨서 유명하다.


선사(禪師) : 선을 닦는 스님.

명사십리(明沙十里) : 함경남도 원산 동해안에 있는 모래톱인데, 하얗게 고운 모래가 10리나 깔려 있고, 그 위에 빨간 해당화가 요염하게 피어 있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승지이다.

원포(遠浦) : 먼 포구이니 동해 바닷가를 이름이다.

양량백구(兩兩白鷗) : 쌍쌍이 날으는 갈매기.

비소우(飛疎雨) :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훨훨 날아다닌다.


감상 - 구름처럼, 물처럼 온 세상을 흘러 다니는 스님. 그는 관동 풍경도 두루 보았겠기에 그에게 물었더니, 명사십리에는 지금 해당화가 한창이요, 보슬비 내리는 포구에는 흰 갈매기들이 빗속을 쌍쌍이 날고 있더라는 것이다. '관동 풍경'은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끌어넣는다. 검푸른 동해바다의 맑은 물과 빼어난 산세도 좋거니와, 해변은 가는 곳마다 백사청송(白沙靑松)의 절경이다. 더욱이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게 된다면 '선경(仙境)'도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82

내 가슴 헤친 피로 님의 양자 그려내어 / 심흠

내 가슴 헤친 피로 님의 양자 그려내어

고당 소벽에 걸어두고 보고지고

뉘라서 이별을 삼겨 사람 죽게 하는고


지은이 : 신 흠(申欽)1566~1628.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영의정을 지냈으며, 조선 중기 한문학의 대가로서 글씨를 잘 썼다. 시조도 31수나 남겼으며,'상촌집' 60권이 전한다.


고당 소벽(高堂素壁) : 높은 집의 흰벽. 집의 바람벽.

보고지고 : 보고 싶다. 보고자 한다.

뉘라서 : 시조의 종장 첫머리에 많이 쓰이는 말로서, '어느 누구가'의 뜻을 가진 감탄사이다.

삼겨 : 생기게 하여.


<감상> 나의 안타까운 이 가슴을 베어 헤쳐서 나오는 그 붉은 피로 임의얼굴을 그려서, 그것을 내 방 바람벽에 걸어 두고 항상 보고 싶구나. 어느 누가 이별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어 이렇게 사람을 죽도록 애타게 하는고? 이별의 슬픔을 심각하게 그린 노래이다.


 

83

내 사랑 남 주지 말고 남의사랑 탐치 마소 / 신흠(申欽)


내 사랑 남 주지 말고 남의 사랑 탐치 마소

우리의 두 사랑에 잡사랑 행여 섞일쎄라

평생에 이 사랑 가지고 백련동락 하리라.


신흠(申欽)1566~1628.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영의정을 지냈으며, 조선 중기 한문학의 대가로서 글씨를 잘 썼다. 시조도 31수나 남겼으며,'상촌집' 60권이 전한다.

<감상>

알뜰한 우리 둘만의 순수한 사랑에 절대로 잡사랑이 섞여서는 안 된다. 이 순수성을 잃지 않고 백년해로(百年偕老)하겠다는 욕망이 진실 되게 표현되었다. 내 사랑을 남에게 빼앗기지도 않겠지만, 남의 사랑을 결코 넘보지도 않겠다는 결백성과 그 의리와 의지가 또한 장하다.



84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거다 / 신흠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거다

풀 속의 푸른 벌레 나비되어 나타난다

뉘라서 조화를 잡아 천변만화 하는고


속잎 : 풀이나 나무의 꼭대기 줄기 가운데에 돋아나는 잎사귀.

변하거다 : 변하였다.

뉘라서 : '누가 능히'의 뜻으로, 시조의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인다.

조화(造化)를 잡아 : 조화를 부리어. 조화는 조물주의 작용. 삼라만상을 만들어 기르는 힘.

천변만화(千變萬化) : 천만 가지로 변화함. 불가사의한 변화.


<감상> 그렇게도 한창이던 꽃이 어느덧 지고, 뒤이어 속잎이 힘차게 돋아 오르니 철도 이제 바뀌었다. 꽃피는 계절에서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 되었구나. 또 풀 속에 있던 푸른 벌레들도 이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식물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이렇게 변화를 계속하는구나!

그런데 그 누가 조화를 부리어 이렇게 천변만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천지간에 일어나는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은 그 누구의 조화일까?

여기에서 철학이 생기고, 종교가 싹트고, 과학이 형성되어지는 것이리라.



85

논밭 갈아 기음내고 돌통대 기사미 피워 물고 / 신희문


논밭 갈아 기음내고 돌통대 기사미 피워 물고

콧노래 부르면서 팔뚝춤이 제격이라

아이는 지어자 하니 허허 웃고 놀리라


신희문(申喜文) 연대미상. 자는 명유. 시조 14수가 전한다.


돌통대 : 대통을 흙이나 나무 따위로 만든 담뱃대.

기사미 : 잎담배를 썰어서 만든 것을 말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카지미'라는 일본말이다. 이렇게 디면, 이 시조는 많은 의문점을 안고있다. 지은이의 신원조차 분명치 않으니 더욱 그렇다. 출전은 최남선 본 '청구영언'이다.

지어자 하니 : 지화자 하고 흥을 돋우니.

허허하고 : 원음은 '후'이고, 속음은 '허'이니, '허허'또는 '후후'하는 웃음소리의 의성어이다.


<감상> 농민들의 즐거운 행락 장면의 한토막 같은, 흥겨운 농촌 풍경이다. 논밭의 기음매기가 끝났다. 돌통대에 기사미 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부르면서 얼씨구 팔뚝춤이 제격이로구나. 곁에서는 '지화자 좋다'로 흥을 돋우니 웃음보따리가 터져 나온다. 이런 한때가 있음으로 해서 고된 농사일도 즐겁기만 하다. 그래서 농요(農謠)가 있고, 농악이 있지 않은가. 이런 일들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니, 그것으로 이 시조는 제구실을 톡톡히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가벼우면서도 흐뭇한 감동을 던져 주는 가작이다.



86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치니 / 안민영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치니

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매화를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 한들 봄뜻이야 앗을소냐


안민영(安玟英) 1816~?.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 박효관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歌曲源流)'를 박효관과 함께 엮었다. 저서로 '주옹만록(周翁漫錄)'이 전한다. 30수에 가까운 시조 작품을 남기고 있다.


산창(山窓) : 산가(山家), 산방(山房)의 창문. 산중에 있는 집의 창문이라는 말.

침노하니 : 침범하니.

얼우려 : 얼게 하려고. 찬바람이 매화 봉오리를 얼게 하려고 한다는 말.

봄뜻 : 봄이 하려고 하는 뜻이니, 봄의 의지(意志), 봄기운, 춘심(春心).

앗을소냐 : 빼앗겠는가. 못 빼앗는다.


<감상> 찬바람이 눈을 몰아다가 산장 창문에 부딪치니, 찬 기운이 집안으로 스며들어 고이 잠자는 매화에게 침범해 온다. 그러나 제아무리 겨울이 매화를 얼게 하려한들 대자연이 섭리요, 조물주의 조화인 봄이 이이 와서 매화가 방긋이 꽃을 피우려는 봄뜻이 있는데, 그것까지 네가 빼앗아 갈 수 있겠느냐. 이른바 안민영의 '영매가(詠梅歌)'의 하나로서 헌정 6년 어느 겨울날, 그의 스승 박효관의 산방에서 벗과 미녀들과 더불어 거문고 타고 노래 부르며 놀 때, 박효관이 가꾼 매화가 방안에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지은 8수 중의 하나이다.



87

빙자옥질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 안민영(安玟英)


빙자옥질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지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안민영(安玟英) 1816~?.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 박효관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歌曲源流)'를 박효관과 함께 엮었다. 저서로 '주옹만록(周翁漫錄)'이 전한다. 30수에 가까운 시조 작품을 남기고 있다.


빙자옥질(氷資玉質) : 얼음 같이 맑고 깨끗하고, 구슬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자질. 매화의 깨끗하고 아름다움을 형용한 말.

황혼월(黃昏月) : 저녁달. 황혼은 땅거미 질 무렵.

아치고절(雅致高節) : 우아한 풍치과 높은 절개.

<감상> 빙옥같이 맑고 아름다운 성품과 바탕을 지닌 것은 눈 속에 피어 있는 바로 너로구나. 그윽한 향기[暗香]를 가만히 풍기면서 저녁달과 때를 맞추어 용케도 피었구나! 생각 건데, 우아한 풍치와 높은 절개를 보여 주는 것은 매화 너뿐인가 보다.



88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 안민영(安玟英)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물이 하 맑으니 고기를 헤리로다

백운이 내 벗이라 오락가락 하는구나


하 : 하도, '하'는 크다, 많다는 뜻의 '하'이다.

헤리로다 : 세리로다. 셀 만하도다. 물이 하도 맑아서 그 밑에서 노니는 고기의 수를 셀 수가 있을 정도라는 뜻.


안민영(安玟英) 1816~?.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 박효관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歌曲源流)'를 박효관과 함께 엮었다. 저서로 '주옹만록(周翁漫錄)'이 전한다. 30수에 가까운 시조 작품을 남기고 있다.

<감상> 산이 하도 높고 깊어서, 고요하고 호젓해서 두견새도 시간 감각을 잃고 대낮에 울어대는 산마을, 물이 하도 맑고 투명해서 바닥에서 노는 물고기의 수를 셀 수 있는 그런 시내,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흰구름, 그리고 그것들을 벗삼고 살아가는 주인공 ······. 이쯤 되면 인간과 신선의 구별은 부질없는 것인 것 같다. 오염 속에 살고 있는 현대 도시인에게 일말의 향수를 느끼게 함에 충분하다. 이런 것은 또 어떠할까?



89

늙은이 저 늙은이 임천에 숨은 저 늙은이 / 안민영


늙은이 저 늙은이 임천에 숨은 저 늙은이

시주가 금여기로 늙어 오는 저 늙은이

평생에 불구문달하고 절로 늙는 저 늙은이


임천(林泉) : 숲과 샘이니, 산림천석(山林泉石)으로 은사(隱士)가 숨어 사는 곳.

시주가(詩酒歌) :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노래 부름.

금여기(琴與基) : 거문고와 바둑.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는, 늙은이의 고상한 취미 생활.

불구문달(不求聞達) :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를 구하지 아니함.


<감상> 늙음을 한탄하기만 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그 늙음을 즐기는 인생도 있어 퍽이나 대조적이다. 늙으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따라서 '외로움'이라는 것이 늙은이의 인생을 괴롭히게 마련이다. 그 고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노후의 행 · 불행이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 시와 술과 노래와 거문고와 바둑 등, 이만한 수준의 취미를 가졌다면 능히 그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불구문달"의 인생관이 서 있다면 늙음이나 죽음도 오히려 즐거울 것이다.


취미가 다양한 사람은 노후의 고독을 덜 느낀다. 주체 못할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과 무료를 취미 생활을 하면서 달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생활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예켠대 음악가, 화가 등의 예술인이나 취미 산업의 경영자 등이 일반적으로 장수를 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취미는 젊어서, 적어도 30~40대까지에는 길러 두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90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 안민영(安玟英)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춘광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라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던고


북 : 피륙을 짤 때에 씨의 실꾸리를 넣어 가지고 날의 틈으로 왔다갔다 하게하여 씨를 풀어 주며 피륙을 짠느 제구.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 석 달(90일) 동안의 따뜻한 볕. 봄의 풍광.

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 푸르른 신록과 꽃다운 풀이 꽃보다 나은 시절. 꽃이 지고 녹음이 우거질 무렵.


안민영(安玟英) 1816~?.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 박효관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歌曲源流)'를 박효관과 함께 엮었다. 저서로 '주옹만록(周翁漫錄)'이 전한다. 30수에 가까운 시조 작품을 남기고 있다.

<감상> 녹음방초 승화시에 느끼는 감상을 사물에 비유하여 교묘하게 잘 읊었다. 실실이 푸르른 수양버들 사이를 노란 꾀꼬리가 오락가락하는 풍경 ---- 이것은 옛부터 한국 특유의 멋진 풍경 ---- 을, 날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피륙을 짜내는 북에 빙하였다. 그리해서 짜내는 피륙이 나의 시름 --- 봄에 느끼는 계절적인 감상 --- 이라는 것이다. 늦봄에서 첫여름 사이의 싱그러운 푸르름에서 느끼는 한국적인 감회가 아련하다.


사람들은 흔히 경치를 말할 때에 봄의 꽃과 가을의 단품을 든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거의 개념적 · 유형적(類型的)인 관념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침잠(沈潛)의 세계를 볼 줄 아는 이에게는 그것들의 속됨을 떠나서, 오히려 꽃이 거의 다 진 뒤의 녹음과 방초의 계절을 더 값진 것으로 느낀다. 우선 속인들이 법석을 떨지 안아서 좋다. 신록 사이를 누비는 꾀꼬리도 좋거니와 대지를 덮은 방초의 싱그러움이 더욱 좋지 않으냐. 특히 한국의 첫여름은 그야말로 황금의 계절이다. 생기발랄한, 생명력이 샘솟는, 삶의 보람을 가장 왕성하게 느끼는 계절이 바로 이 무렵이다. 그래서 구십춘광이 짜낸 시름에서 '누가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더나?"고 짐짓 반발해 보게도 되는 것이다.



91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 안민영(安玟英)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조차 부동터라


눈 기약 : 눈 올 때에 한 약속.

암향 부동(暗香浮動) : 가만히 알 듯 모를 듯 풍기는 그윽한 향기가 떠돈다. 매화의 향기를 향용 하는 말로 많이 쓰였다.


안민영(安玟英) 1816~?.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 박효관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歌曲源流)'를 박효관과 함께 엮었다. 저서로 '주옹만록(周翁漫錄)'이 전한다. 30수에 가까운 시조 작품을 남기고 있다.

<감상> 이것도 사군자(四君子)중의 하나인 매화를 읊은 '영매가(詠梅歌)'의 하나이다. 늙고 옹이져서 검고 우툴두툴한 줄기에 가늘고 어린 가냘픈 가지가 드문드문 나 있는 '성긴 가지.' 거기에 무슨 꽃이 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였는데, 눈 속에서 한 약속을 능히 지켜서 두세 송이 연분홍 예쁜 꽃이 가냘프게 피었구나. 어두운 데서 촛불을 들고 가까이 가서 완상할 제, 그윽한 암향조차 풍기니 제구실을 다하는구나! 두세 송이 핀 가냘픈 매화, 그것이 풍기는 그윽한 향기, 더욱이 봄도 아닌 아직 추운 겨울날 핀 매화이기에 더욱 대견스럽고, 보는 이의 감회는 한결 아련할 것이다.



92

청우(靑牛)를 빗기 타고 녹수를 흘러 건너 / 안정


청우(靑牛)를 빗기 타고 녹수를 흘러 건너

천태산 깊은 골에 불로초를 캐러 가니

만학(萬壑)에 백운이 잦았으니 갈 길 몰라 하노라


천태산은 중국에 있는 신선이 산다는 산의 이름이다 이 작품을 통해 볼 때, 그는 노자(老子)의 풍도를 본받고자 한 것 같다.

즉, 그것은 노자가 서유(西游)를 할 때 타고 다닌 소가 바로 청우(靑牛)였기 때문이다 불로초를 캐러 가고 싶지만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속인으로써는 갈 수 없는 곳이지만,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이 깔려있다.

옛날 한나라 때 어떤 사람이 약초를 캐러 천태산에 들어갔다 가 두 여자를 만나 반년을 머물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 동안 7대가 흘렀다는 얘기가 있다.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게 되는 이상향?

작자 안정은 조전전기의 문인이다. 호는 죽창으로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공서린, 윤자임 등과 숙직하다 투옥되었으나 이튿날 석방되기도 했다. 신사무옥 때는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어 양성현감에 제주되기도 했으나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 거문고와 글 화초 등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사군자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93

전 나귀 모노라니 서산에 일모로다 / 안정


전 나귀 모노라니 서산에 일모로다

산로 험하거든 간수나 잔잔커나

풍편에 문견폐하니 다왔는가 하노라


전 나귀 : 발을 저는 나귀.

일모(日暮)이로다 : 해가 저물었도다.

간수(澗水) :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

풍편(風便)에 문견폐(聞犬吠)하니 : 바람결에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


발을 저는 나귀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새 해가 저물었도다.

산 길이 이토록 험하니 골짜기를 흐르는 물인들 잔잔하겠는가.

바람결에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 마을로 다 들어섰나 보다.


산이 있고 물이 흐르는 이른바 산수(山水)에 집을 짓고 한가롭게 살아가는 그 길은 죄를 짓지 않는 삶의 길로서 봉건시대의 젊은이들에겐 더 없이 사랑을 받아 왔다. 이것은 어쩌면 그들의 이상향(理想鄕) 이었는지도 모른다. 나귀를 타고 어디에 갔다 오는 것일까? 물론 세속의 부귀영화를 찾아다니다가 오는 걸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위인이라면 유달리 산간에 집을 짓고 살아갈 턱이 없겠으니 말이다. 아마도 방수심산(訪水尋山)하느라고 나귀가 지쳐서 절룩거리도록 헤매었던 것 같다.

산은 험할수록 세속을 멀리 떠나 있어 좋고, 산골짜기의 물이 소리 내어 흐를수록 경치는 더욱 아름다운 법이니, 이런 곳이 야말로 바로 지은이가 찾을만한 곳임에 틀림없다.


지은이 : 작자 안정은 조선전기의 문인이다. 호는 죽창으로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공서린, 윤자임 등과 숙직하다 투옥되었으나 이튿날 석방되기도 했다. 신사무옥 때는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어 양성현감에 제주되기도 했으나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 거문고와 글 화초 등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사군자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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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양사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楊士彦(1517~1584).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 서예가로서 안평대군 . 김 구 . 한 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4대 명필로 손꼽힌다. 지방관을 두루 역임했으며, 자연을 사랑하고 산수를 즐겨 금강산을 자주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호가 '봉래'인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하고 기발하였다.


태산(泰山) : 중국 산동성에 있는 산으로 높은 산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뫼 : 메. 산의 옛말.


너무도 잘 알려진 시조인 동시에, 격언처럼 교훈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시조인데, 노력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꾸준한 노력을 강조한 뜻으로, 오늘날의 "하면 된다." 와도 일맥상통하는 주제이다. 진리에 합치되는 신념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강인한 의지가 있으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거기에는 극기, 인내, 감투(敢鬪) 등의 정신력과 아울러 육체적인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안일하고 나약하게 성장한 현대 도시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서울 올림픽의 메달리스트들이 거의 예외없이 역경 속에서 고통과 싸우면서 자란 의지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저간의 소식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산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철석 같은 신념과 그것을 강행 실천한 의지가 세계 정상을 정복하였고, '오로지 않고 뫼만 높다'하던 사람은 발밑에도 못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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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 천지간에 단표를 둘레메고 / 양응정


태평 천지간에 단표를 둘러메고

두 소매 느리혀고 우�우�하는 뜻은

인세에 걸린 일 없으니 그를 좋아하노라


단표(簞瓢)  도시락과 표주박.

느리혀고 느직하게 끌고.

우�우� 우줄우줄.

인세(人世) 인간 세상.


지은이는 대내외적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이조 명종(明 宗) 때의 선비였다. 작품 전체의 흐름이 우선 리드미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즐거움과 흥겨운 정황을 절로 느끼게 한다. 마치 도시락과 물통을 메고 나비처럼 춤추며 소풍 길에 오른 어린 학생들의 흥겨운 행열을 보는 듯하다. 이 작품의 분위기를 십분 살린 대목은 중장의 '우�우�' 에 있다.


지은이 : 송천 양응정은 중종 35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명종 7년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호당에 들어갔으나 권신 윤원형에 의해서 김홍도와 함께 탄핵을 받고 파직을 당했다가 복직되었다 시문에 능했던 송천은 선조때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또한 효행이 지극하여 정문이 세워지기도 했다. 저서로는 <송천집>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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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 오경화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작은아들 글읽고 며늘아기 베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한다.

마초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하더라.


오경화(吳擎華)연대 미상. 잔느 자형(子衡), 호는 경수. 시조3수가 전하나 신원은 미상이다.


곡구롱(谷口弄) : 꾀꼬리 우는 소리의 한자 의성어.

며늘아기 : 며느리의 애칭.

마초아 : 때마침. 시조 종장 첫머리에 감탄의 뜻을 겸하여 흔히 쓰인다.

지어미 : 마누라. 아내.


<감상> 꾀꼬리 우는 소리에 낮잠을 깨어 일어나 보니, 작은 아들은 책을 읽고, 며늘아기는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고 있는데, 손자 놈은 그 옆에서 꽃놀이에 여념이 없다. 때마침 마누라는 익은 술을 거르면서 잘 익었는가 맛을 보라고 한다. 과거 우리 보통 가정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전원에 위치한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그렸다.

핵가족 운운하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거의 맛보기 어려운 정겨운 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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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 왕방연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여희옵고 : 이별하옵고. 앉아이다 : 앉았나이다. 안 같아야 : 마음 같아서. 예놋다 : 흘러가는구나


감상 -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임을 남겨 둔 채 떠나니 내 마음 가눌 길 없어 잠시 냇가에 앉아 괴로움을 달래 본다.

여기서 앉아이다. 즉, 앉았나이다로 경칭(敬稱)을 쓴 데 유의해야 하겠다.


지은이: 왕방연 말하자면 세조의 명을 받아 의금부도사라는 벼슬의 몸으로서 단종을 영월(寧越)에 유배시킬 때, 호송의 책임을 맡았던 지은이 : 왕방연으로서는 죄 없고 어린 임금인 단종에 대해 단장(斷腸)의 아픔을 가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영월에서 호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죄책감으로 길이 어둡고 염세의 기운이 그의 머리에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심정은 '여희옵고'라든가 '앉았나이다' 또는 '고운 임금'이라는 경칭(敬稱) 속에 두드러지게 풍기고 있다. 종장에 나오는 '저 물도 내 안(내 마음 속)같아서 눈물이 흘러 어두운 길에 흘러가는구나!' 에서 더욱 고조되어 나타난다.


집권자의 심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종에 대한 애절한 노래를 읊을 수 있었다는 것은, 비록 벼슬은 세조가 준 것이지만 마음은 군신유의(君臣有義)의 대강(大綱)에 살았던 것 같다.


이 시조는 그 벼슬과 사람의 도리와 신하의 도리 사이에서 불의에 봉사한 자신의 죄책감에 우는 심회(心懷)의 표현이었기에,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눈물을 흘리며 흘러 내려간다로 표현되어 있다.


고대에 산 사람들은 죄책감에 괴로워지면 인적이 드문 자연을 찾아가는 버릇이 있었다.

여기서 자기를 달래고, 죄의식을 씻어서 마음을 다시 가누는 보금자리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연은 그 많은 사연들을 귀담아 들어 주는 '어머니의 품' 구실을 했던 것이다.


남몰래 가슴 아팠던 괴로운 귀로(歸路)의 감회, 삼강오륜의 한 모서리가 자신의 세계에서 찢어져 나간 듯한 괴로움들을 밤길에 흘려보낸 정신의 정리. 이 시조엔 그러한 君臣有義의 정리가 자책하는 감정의 세계에 새삼 부각되어 나온다. 그것은, 새 임금을 모시는 입장에서의 고민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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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 우탁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적은덧 빌어다가 마리 우혜 불리고저.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지은이 : 우탁(禹倬, 1263~1342 고려 말의 학자, 호는 易東, 시호는 文僖)


마리 : 머리

우혜 : 위에


<감상> 事理의 깊은 심층에서 기거를 하며 현실을 바라보면서 사는 인간에겐 예나 지금이나 간에 계절의 움직임에 그렇게 큰 관심을 쏟지 않는 법. 그 보다도 事理의 개발이란 더 큰 일거리가 항상 그를 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봄은 정신의 고향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도 그리운 심볼이 아닐 수 없었다.


靑山마저도 얼어 붙인 겨울을 미워하는 봄, 그 산을 덮고 있던 차가운 눈을 녹여 준 다정한 봄바람과 한 번 이야기라도 주고받고 싶은 심정은 門人墨客이 가질 법한 당연한 착상이다.


그러나 만나고 싶은 사람은 손 쥘 사이도 없이 가버리는 것이 또한 시간의 농간이기도 한 것. 마찬가지로 석별의 정을 나눌 사이도 없이 어디론가 제 갈 길을 찾아 행방을 감춘 빈 人性의 허무에는 어쩌면 인생의 아쉬움을 담은 그 무엇이 깔려 있을 법도 하다. 짧은 순간이나마 그 봄바람을 자기의 머리 위에 머물게 하여 얼어붙은 겨울을 녹여 주듯, 자기의 백발을 젊게 하여 젊은 날로 되돌려 보고 싶은 심정이 감정의 謙虛(겸허)에 널리 퍼져 가는 운치도 곁들여 깊이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산과 봄과 흘러간 인생이 이뤄 놓은 삼각형의 한가운데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선 작자의 초상이 서 있는 듯한 구성을 우리는 엿볼 수 있겠다. 인생과 자연은 어떤 교훈마저도 풍겨가면서 이 시조의 한 가운데를 관류(貫流)하고 있다.

몸은 늙어서 비록 죽음을 옆에 끼고 앉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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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쥐고 / 우탁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몬저 알고 즈름길로 오더라.


지은이 : 우탁(禹倬, 1263~1342 고려 말의 학자, 호는 易東, 시호는 文僖)


<감상> 우탁의 작품 속엔 늙음과 백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인간이 갖는 심정을 그가 자신의 주제로 삼고 읊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없을 수 없다. 젊어지려고 해도 젊어질 수 없는 육체를 노상 청춘의 귀속물인 양 화장하고, 그 위장 속에 행복을 느끼는 얕은 세계나 죽음에 대한 쓸데없는 혐오에 대해 어지간히 민망하게 여겼던 일면이 그의 소재 선택에서도 역력하게 엿보인다.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늙음이 오면 내리 치려고 할 만큼 우탁이 어리석은 만용의 소유자가 아닐 바에야 주제가 자신의 내부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탐나는 나머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장대로 별을 따려는 어리석음이 있었을 리가 없다면, 이 작품속의 알레고리는 인간 일반에 던져주는 하나의 교훈이고, 발생의 밑바닥이라 하겠다.


꽃의 영원한 행복을 희구하는 어리석은 욕망들에 대해 그는 자신이 마치 그렇게 경험한 것처럼 가설의 감정을 이입(移入) 하여 그 구성이나 서술에 쓰고 있다. 즉, 온갖 방법도 소용없이 늙음은 자기가 막지 못한 허다한 지름길로 어느새 들어와 있더라고...

부질없는 일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란 그 거개가 시간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의 할 일은 따로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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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 원천석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원천석(元天錫) 자세한 연대 미상.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 고려 말의 학자이며 의사(義士).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원주 치악산에 숨어 살았다. 태종의 어릴 적 스승이었으므로, 그가 왕위에 오르자 여러 번 간곡히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한시집 두 권이 남아 있어 고려 말의 사적과 그의 충성된 면모를 엿 볼 수가 있다.


굽다턴고 : 굽었다고 하던고?

세한 고절(歲寒高節) : 추운 겨울에도 변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푸른, 높은 절개.


<감상> 눈을 맞아서 그 무게로 한때 휘어진 대나무를 그 누가 굽었다고 하던고? 굽힐 그런 절개라면 찬 눈 속에서도 저렇게 푸를 수가 있으랴? 생각건대, 엄동설한에도 끄떡없이 그 추위를 이겨내는 굳센 절개는 오직 대나무 너뿐인가 하노라. 권력에 굽히지 않는 지사의 굳은 마음을 비유한 것인데,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신의 뜻을 노래한 것이 분명하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고려의 녹을 먹던 내가 어찌 조선왕조에 절개를 굽힐 수 있겠는가. 그래서 태종의 간곡한 청도 끝내 물리쳤던 것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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