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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時調 감상

낚시줄 걸어 놓고 봉창에 달을 보자

by 산산바다 2008. 7. 4.

 산과바다

 

                   

 


        시조 감상


101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주초이로다       원천석

102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월산대군

103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유응부

104  추산이 석양을 띠고 강심에 잠겼는데        유자신

105  사랑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유희춘

106  사랑 모여 불이 되어 가슴에 피어나고       유희춘

107  미나리 한 펄기를 캐어서 씻우이다          유희춘

108  사랑을 낱낱이 모아 말로 되어 섬에 넣어    유희춘

109  바람 불어 쓰러진 나모가 비온다고 싹이 나며 유희춘

110  사람이 죽어지면 어디메로 보내는고         유희춘

111  바람 불으소서 비올 바람 불응소쇠          유희춘

112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간 생각하니         유희춘

113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윤두서

114  내 집이 길치인 양하여 두견이 낮에 운다    윤선도

115  우는 것도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윤선도

116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추 먹은 후에          윤선도

117  낚시줄 걸어 놓고 봉창에 달을 보자         윤선도

118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윤선도

119  꽃은 무슨 일로 피여서 쉬이 지고           윤선도

120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윤선도



101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주초이로다.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주초이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지은이 : 원천석(元天錫, 호는 耘谷, 고려 말의 隱士) 고려에 망운이 깃들어 정사가 문란해지자 시국을 개탄하고 향리인 원주의 치악산에 들어가, 이 색 등과 사귀면서 농사와 부모 봉양에 힘썼다. 조선으로 나라가 바뀐 뒤 왕자시절의 태종을 가르치기도 했다. 태종 즉위 후에 몇 차례의 부름에도 끝내 불응하고, 태종의 친행에도 몸을 숨겼다. 그때 태종이 올라섰던 그의 집 섬돌을 후인이 '태종대'라 일컬으며, 지금 치악산 각림사(覺林寺) 곁에 있다. 저서로 '야사(野史)' 6권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는 않는다.


유수하니 : 운수가 있으니. 만월대(滿月臺) : 고려의 궁터.

목적(牧笛) : 목동이 부는 피리 소리.

부쳤으니 : 붙여 있으니.


<감상> 이 작품을 통해 볼 때, 작자 원 천석은 이 색이나, 길 재와는 그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작게는 시조의 표현을 주도하는 관점에 서도 그 취향이 매우 다르다.


전자는 여조의 멸망이라는 역사의 운명 속에 자신의 그것을 보았고, 그 바깥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지 않으려는 주체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이 시조를 통해 원 천석을 살필 때 그는 자연인으로서의 관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나간 역사에 얽매이는 일이 없고, 닥쳐오는 새 왕조에 영합하려는 심기(心氣)가 없다는 사고의 세계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권력이 점철하는 세상 만들기 작업에 뒤따르는 어지러움, 인간에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그 관점에의 골격 속에 살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행동의 씨를 뿌림으로써 그 인과(因果)를 받는 한계 내부의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염세주의적 인성(人性)의 소유자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그는 흥망에 끝이 있다는 시간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사고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특정한 현실에 얽혔던 인간관계는 반드시 동일 선상에 기하학과도 같이 한 점에서 뚜껑을 열고 나오는 하나의 낱말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정념의 때가 자기를 잡아당기기도 하며, 또한 그것에 얽매이기도 하는 것이다.


흥망은 역사의 어쩔 수 없는 섭리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나 당사자들과의 근거리에서 더불어 살아온 위치에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만월대의 영화도 가을 풀 시들 듯이 퇴락 하니, 그 무서운 허무 앞에서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 여기에선 그 당당했던 5백년 왕업이라는 긴 시간의 위세도 한개 목동의 피리에 얽힌 흘러간 역사의 여울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석양에 지나는 길손이 이 풍경을 보고 그저 눈시울을 적실 뿐. 어째서 원 천석은 자신을 길손으로 아무렇게나 전화시켜도 좋은 입장을 지녔는가? 이 점이 그가 정 몽주와는 다른 점이라 하겠다.



102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 월산대군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 호는 風月主)

세조의 손자요, 성종(成宗)의 형인 왕족으로서, 이름은 정, 자는 자미, 호는 풍월정. 서사를 좋아하였고 문장이 뛰어나, 그의 시작이 중국에까지 널리 애송되었다 함. 고양의 북촌에 별장을 짓고 일생을 자연에 묻혀 지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35세의 일기로 짧은 생애를 끝마쳤다.


추강(秋江) : 가을의 강. 가을철의 싸늘한 강.

차노매라 : 차노라! '~노매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무심(無心)한 : 별다른 욕심이나 잡념 따위가 없는 허허한 마음.


<감상> 가을 강에 찾아오니 물결이 차구나! 낚시는 드리우나 고기도 아니 무는구나. 그래서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가 홀로 쓸쓸히 돌아오는구나! 초 · 중 · 종장의 끝머리를 모두 '~노매라'로 끝맺음으로써 계절적인 배경에서 주는 스산함을 배제하고 오히려 경쾌한 리듬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되풀이와 다짐의 효과이다. 특히 가을 밤의 강의 싸늘한 풍경이 적절한 소재와 적절한 구성으로 짜여져 있어서 운치를 더해 준다.


"물결이 차노매라" "고기 아니 무노매라" "빈배 저어 오노라"등의 구절은, 말 그대로는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그 문의는 오히려 매우 긍정적이며 여유있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풍성함이 엿보이므로, 지은이의 문학성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준다. 이 작품은 자연을 사랑하던 그의 정서적인 면을 단적으로 보여 준 작품이다.


밤의 장막이 내린 다소 찬기마저 느끼게 하는 가을의 강변, 빈 낚싯대만을 싣고 돌아오는 쓸쓸한 고깃배 한 척, 동원된 낱말들과 상황은 퍽 쓸쓸하고 부정적인 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은 까칠까칠하거나 막히는 데가 없어 그러한 부정성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자의 의도적인 계산에 의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종장에서 '무심한 달빛'을 끌어들임으로 삭막한 분위기에 부드러운 서정성을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103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 유응부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落落 長松이 다 기울어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 하리오


유응부가 단종을 생각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던 김종서, 황보인 등이 먼저 수양대군에게 참살을 당하매 그를 슬퍼하고 분하게 여기어 지은 것이라 한다. 작자는 뒤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살되어 사육신의 한 분으로 추앙받고 있다.


<감상> 나라의 큰 기둥인 중신(重臣)이든, 앞으로 유망한 젊은 신하든 닥치는 대로 생명을 앗아버리는 세조 일파의 잔학한 처사를 한탄하며 정변(政變)으로 인한 인재들의 희생을 개탄하고 있는 작품이다. 각 장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순서에 의하여 배열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은유적 수법으로 처리하여 표현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초. 중. 종장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구성으로, 원인--결과--가상의 단계로 이루어졌다. 한편, '바람, 눈, 서리' 등은 세조의 포악함을 '낙락장송'은 김종서와 같이 참살된 그의 아들을 비롯한 정의의 청년 학사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내었다.



104

추산이 석양을 띠고 강심에 잠겼는데 / 유자신

추산이 석양을 띠고 강심에 잠겼는데

일간죽 둘러메고 소정에 앉았으니

천공이 한가히 여겨 달을 조차 보내도다


유자신(柳自新)1533~1612. 광해군의 장인으로 형조참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세자 광해군을 따라 평안북도 강계(江界)에 갔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인조반정으로 다시 깎기어버렸다.


석양(夕陽)을 띠고 : 저녁 햇빛을 받고, 석양에 비친 단풍든 산은 더욱 아름다운 것.

강심(江心) : 강 속.

일간죽(一竿竹) : 한줄기의 대나무 장대라는 말이니, 낚싯대를 이르는 말.

소정(小艇) : 작은 배. 매상이.

천공(天公) : 하늘을 인격화한 존칭.

달을 조차 : 달까지.


<감상>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산이 저녁 햇빛을 받고 강 속에 잠겨 있는데, 낚싯대를 둘러메고 가서 작은 배 위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앉아 있노라니, 하늘이 한가로이 여겨서 달까지 보내주는구나! 강심에 잠긴 가을 산의 석양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작은 배 위에 앉아 있는 멋 또한 비길 데 없다. 게다가 동녘 하늘에 달까지 둥실 솟아오르니, 이 기분을 그 무엇에 견주리.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다. 천공이 한가로이 여겨 달을 보내 주었다는 표현을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진심이 담겨 있어 더욱 호감이 간다.



105

사랑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 유희춘


사랑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구만리 장공에 넌즈러지고 남는 사랑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가없은가 하노라


긴긴 사랑 : 길고도 긴 사랑. 끝이 없는 사랑.

내내 사랑 : 끝없는 사랑.

구만리 장공(長空) : 9만 리나 되는 높고 먼 하늘. '구(九)'는 꼭 고정수 9가 아니라 무한대의 수를 의미한다.

넌즈러지고 : 쭉 뻗어 늘어지고.

<감상> 나의 님에 대한 사랑은 9만리 장공에 닿고도 남을 만큼 끝이 없는 긴긴 사랑이다. "긴긴 사랑, 내내 사랑"은 결국 공간적 · 시간적으로 모두 끝이 없다는 뜻이다. "구만리 장공에 넌즈러지고 남는 사랑"도 긴긴 사랑, 내내 사랑을 이어받은 멋진 점진법(漸進法)이다. 기 · 승 · 전 · 결(起承轉結)의 4단 논리 형식으로 볼 때에는 이 중장이 바로 '승 · 전'에 해당된다.



106

사랑 모여 불이 되어 가슴에 피어나고 / 유희춘


사랑 모여 불이 되어 가슴에 피어나고

간장 썩어 물이 되어 두눈으로 솟아난다

일신에 수화상침하니 살동말동 하여라


<감상> 비유도 묘하거니와 리듬도 은반에 구슬이다. 가슴을 태우는 사랑의 불꽃, 애간장을 다 썩히는 슬픔의 눈물, 그야말로 한 몸에<수화상침(水火相侵)물과 불이 한꺼번에 침노함>이니 살지말지 모르겠구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뜨거운 사랑과 그 아픔이 애절하게 표현된 시조이다.



107

미나리 한 펄기를 캐어서 씻우이다 / 유희춘


미나리 한 펄기를 캐어서 씻우이다

년대 아니아 우리 님께 받자오이다

맛이야 긴치 아니커니와 다시 씹어 보소서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경사(經史)에 밝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전라감사 등을 지냈고, 선조 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한 펄기 : 한 포기. 한 떨기. 한 묶음.

씻우이다 : 씻으오이다. 씻습니다.

년대 : 여느 데. 다른 데.

아니아 : 아니라. 아니어서.

받자오이다 : 바치옵니다.

긴치 : 긴(緊)하지. 대수롭지. 변변치.

아니커니와 : 않겠지마는.


<감상> 미나리를 한 묶음 캐어서 맑은 물에 정성들여 씻습니다. 다른 데가 아니라, 우리 님께 바치려고 말입니다. 맛이야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요 마는 그래도 다시 잘 씹어 보십시오. 내 정성의 맛이 날 것이외다. 옛날에는 봄 미나리가 계절 식품으로서 참으로 신선하고 귀한 식품이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맛보게 했던 것이다.


지은이가 전라감사가 되어 완산(完山) 진안루(鎭安樓)에서 봉안사(奉安使) 박화숙(朴和淑)과 함께 놀면서 지은 시조라고 한다. 옛스러운 순 우리말로 다듬은 것이 마치 고려가요를 읽는 맛이 난다.



108

사랑을 낱낱이 모아 말로 되어 섬에 넣어 / 유희춘


사랑을 낱낱이 모아 말로 되어 섬에 넣어

크고 센 말께 허리 추켜 실어 놓고

아이야 채 한번 제겨라 님의 집에 보내자


<감상> 님에 대한 나의 이 사랑을 낱낱이 모아서 그것이 얼마나 되나 말로 되어 섬에다 넣은 후, 크고 힘센 말에게 허리를 추켜 가면서 잔뜩 실어 놓고, 한번 크게 채찍질을 해서 님의 집으로 보내자꾸나. 그것을 님이 실제로 보면, 내 사랑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 알아보고, 그 백분의 일이라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눈에 보이게끔 구체화한 데 시상(詩想)의 기발함을 느끼게 한다.



109

바람 불어 쓰러진 나모가 비온다고 싹이 나며 / 유희춘(柳希春)


바람 불어 쓰러진 나모가 비온다고 싹이 나며

님 그려 든 병이 약 먹다 하릴소냐

저 님아 널로 든 병이니 네 고칠까 하노라


하릴소냐 : 병이 나을쏘냐? '하리다'는 '낫다'의 옛말.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경사(經史)에 밝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전라감사 등을 지냈고, 선조 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감상> 거센 바람이 불어서 쓰러져 버린 나무가 비가 온다고 해서 되살아나며 님 그려서 생긴 병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나을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님 너 때문에 생긴 병이니 너만 이 이 병을 고칠 수 있다. 제발 나를 사랑해 달라. 뱉듯이 다담하게 적어 놓은 것이 부담 엇이 읊을 수 있어서 좋다.



110

사람이 죽어지면 어디메로 보내는고 / 유희춘


사람이 죽어지면 어디메로 보내는고

저생도 이생같이 님한테로 보내는가

진실로 그러할작시면 이제 죽어 가리라


<감상> 사람이 죽은 뒤에 저승에서도 이승처럼 님에게로 보낸다면 이제 당장에라도 죽겠다는 말이다. 죽기를 맹세하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 사랑인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렇게도 위대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인가 보다. 죽음과 바꾸겠다는 사랑을 읊은 노래는 허다하지만 이런류의 표현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읽는 이의 주의를 끌게 되는 것이다.



111

바람 불으소서 비올 바람 불응소쇠 / 유희춘(柳希春)


바람 불으소서 비올 바람 불응소쇠

가랑비 그치고 굵은 비 내리소서

한길이 바다가 되어 님 못 가게 하소서.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경사(經史)에 밝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전라감사 등을 지냈고, 선조 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감상>

바람아 불어라, 비야 오너라. 가랑비가 억수장마로 변하여 있는 대로 퍼부어라. 그래서 큰길이 바다가 되면 님을 언제나 내 곁에 붙잡아 둘 수 있지 않겠는가.



112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간 생각하니 / 유희춘(柳希春)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간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1513~1577.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경사(經史)에 밝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전라감사 등을 지냈고, 선조 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감상> 님께서 나에게 부채를 보내준 뜻을 잠깐 생각해 보니, 내 가슴속에 붙는 불을 이 부채로 끄라고 보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밤낮으로 흐르는 눈물도 못 끄는 불인데, 부채라고 해서 어찌 끌 수가 있겠는가?



113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 윤두서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윤두서(尹斗緖)1668~?.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종애(鍾厓).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서화에 능하였다. 그의 시조는 이 한수 밖에 전하지 않는다.


<감상> 초야에 묻혀 있는 인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 언젠가는 알 사람이 있고 햇볕 볼 날이 있을 것이니, 구태여 나서려 할 것이 무엇이랴.

흙 속에 묻혔어도 옥은 옥인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오늘에 있어서도 자중(自重)이나 자애(自愛)나 자숙(自肅)은 필요하고, 너무 설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실이니, 자기 수양의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114

내 집이 길치인 양하여 두견이 낮에 운다 / 윤선도


내 집이 길치인 양하여 두견이 낮에 운다.

만학천봉에 외사립 닫았는데

개조차 짖을 일 없어 꽃 지는 데 조오더라


길치 :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호젓한 외딴 곳.

만학천봉(萬壑千峰) : 일만 골짜기와 일천 봉우리이니, 높고 험한 산이 겹겹이 싸여 있는 것. 깊은 산골.

외사립 : 사립은 대나 싸리 따위로 엮은 시골집의 대문짝. 외사립은 그것이 한짝만으로 되어 있으니 그렇게 말한다. 아주 초라한, 시늉만의 대문.

조오더라 : 졸더라.


<감상> 한낮에 소쩍새가 우는 산골. 만학천봉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산골. 드나드는 사람도 없어, 외 사립을 하루 종일 닫아둔 채 개조차도 짖을 일이 없어 나무 밑에서 졸고 있다. 너무너무 조용하구나. 고요의 극치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졸고 있는 개의 머리 위로 펄펄 꽃잎이 떨어진다.

정(靜) 중(中)의 동(動)이다. 조용히 떨어지는 꽃잎의 움직임이 있어, 이 숨 막힐 듯 하고 더욱 고요해지고 한결 맑아진다.



115

우는 것도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 윤선도


우는 것도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 집이 냇속에 들락달락

말가한 깊은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송강(松江) · 노계(蘆溪)와 더불어 조선조 3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장가에 송강. 단가에 고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조에 있어서는 송강과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시 세계는 '자연 속에 몰입한 인생'의 경지를 보여 준다.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 '오우가(五友歌)'등 89수가 전한다. 고산은 어려서부터 총명이 뛰어나고 풍모가 단아하였으며, 문과 초시에 장원 급제, 그 후 40여 년 동안 당쟁 틈바구니에서 부침(浮沈)하면서 별로 높은 벼슬을 지내지는 못했으나, 죽은 뒤에 이조판서를 추증되었다.


냇속에 : 연기 속에. 밥 짓는 굴뚝 연기도 좋고, 연무(煙霧)로 생각해도 좋다.

들락달락 :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모양. 출몰(出沒), 은현(隱現)하는 모양.

말가한 : 말간. 맑고 깨끗한.

소(沼) : 못. 냇물이 흘러가다가 갑자기 깊어진 곳.

뛰노나다 : 뛰노는구나! '~나다'는 '~노다, ~놋다'와 함께 감탄형 종결어미.


<감상> 어부사시사 중의 춘사(春詞)의 넷째 수로서, 봄의 어촌풍경을 그린 것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이것은 청각적으로 잡은 흥취요, 저기 바라다 보이는 저 푸른 버들 숲, 이것은 시각적으로 잡은 풍경이다. 또 저 멀리 아스라이 냇속에 들락달락하는 어촌의 두세 집, 말간 깊은 소에는 온갖 고기들이 봄을 즐기듯이 뛰놀고 있다. 봄의 어촌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바로 그것이로다.



116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추 먹은 후에 / 윤선도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추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슬카지 노니노라

그남은 여남은 일이야 부럴 줄이 있으랴


풋나물 : 풀과 나뭇잎의 연한 싹을 뜯어서 만든 나물.

슬카지 : 실컷.

노니노라 : '노닐다'는 '놀다'와 '니다'의 복합동사로, '~노라' 에서 노는 동작이 계속되는 것을 뜻한다.

그남은 : 그 밖의

여남은 : 그 밖의 다른.

부럴 줄이 : 부러워할 것이.


<감상> 보리밥을 풋나물 반찬으로 알맞게 먹은 뒤에 시냇가로 나가서 큰 바위 끝 물가에서 실컷 노는 것이 나의 하루의 생활의 전부다. 그 밖의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부귀영화도 호의호식도 다 관심 밖의 일이라는 뜻이다.


벼슬에도 별로 뜻이 없고, 강호에 숨어서 자연을 벗 삼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보리밥을 풋나물에 알맞추 먹고(고량진미를 포식하지 않는다), 바위 끝 물가에서 노닐기를 실컷 한다.' 그 밖의 다른 일은 아무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고산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실천하였다. 현대인 중에서 고량진미를 포식하고, 노닐기(운동이나 활동)는 적게 하며, 마음은 언제나 욕구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틀림없이 비만이다 혈압이다 당뇨다 하고 성인병에 시달린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공해 속에서 동물적인 본능 충족에 여념이 없는 현대인, 보약이라면 별의별 것을 다 먹어치우는 현대의 일부 부유층의 생활 태도와 옛사람의 이 생활 태도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일부에서 '자연식'을 강조하는 일도 결국은 옛사람의 이 방법을 따라 보자는 것이 아닐까? 이래서 문명과 원시는 함수관계에 있는가 보다



117

낚시줄 걸어 놓고 봉창에 달을 보자 / 윤선도


낚시줄 걸어 놓고 봉창에 달을 보자

하마 밤들거냐 자규소리 맑게 난다

남은 흥이 무궁하니 갈 길을 잊었닷다


봉창(蓬窓) : 배에 있는 창을 말한다.

하마 : 벌써. 이미.

밤들거냐 : 밤이 들었느냐? '~거'는 과거시제 보조어간.

자규(子規) : 두견새, 소쩍새, 접동새,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 등의 다른 이름이 수 없이 많다. 그만큼 옛시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새인 것이다.

잊었닷다 : 잊었더라. 잊었도다. '~닷다'는 뜻을 강조하는 종결어미.


<감상> 앞 내에 배 띄우고 밤낚시를 즐기는 모양이다. 잠간 낚싯줄을 걸어 놓고 봉창에 비친 달을 쳐다본다. 벌써 밤이 깊었는지 소쩍새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 맑기도 하구나. 하늘에 달뜨고 소쩍새 울음소리 먼데서 들려오니 잔잔한 물 위에 부서지는 달빛이 더욱 흥겹구나! 갈 길을 잊었노라. 이 경치, 이 흥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자연에 흠씬 젖어 푹 빠져 버렸구나. 낚시가 무슨 고기 잡으려는 낚시냐. 낚싯줄 드리워 두고 봉창에 비치는 달구경이나 하자. 밤하늘을 가르며 먼데서 들려오는 자규의 맑은 소리나 들어 보자. 남해 바다에 띄워 놓은 밤배에서 즐길 수 있는 교향악이요 낭만의 영상이다. "갈 길을 잊었닷다"는 화룡점점이다.


해남반도 남쪽 멀리 바다 끝에 보길도라는 낙도에는 고산이 벼슬을 물러나 강호 생활(江湖生活)을 했던 유적지가 있다. 넓은 못을 파고, 산더미 같은 바위를 여기저기 날라다 놓았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부용동이라 일컫는 연못에는 연잎이 우산 같다. 고산이 살던 집은, 왜정 때에 흔적을 없애 버리고 국민학교를 지었다. 거기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는 바닷물이 내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배를 띄우고 낚시를 즐겼던 모양이다. 그의 '어부사시가'가 여기서 태어났다.


동녘 멧부리에서 달이 솟아오르고, 숲에서 자규 소리 들려오면, 비록 고산이 아니더라도 시흥이 절로 샘솟을 듯한, 여하튼 그런 곳이다. 고산이 자연을 좋아했는지, 자연이 고산에게 산을 좋아하게 했는지, 아리숭한 그런 고장에서 이 시조가 나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산이나 자연보다도 조물주에게 먼저 고개가 숙여진다.



118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 윤선도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감상> 오우가 6 수중에 서사(序詞)이다. 그의 <산중신곡> 중에 있는 것으로 자연, 즉 물(수) 돌(석)솔(송) 대(죽) 달(월) 이야말로 선비가 진실로 벗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 이유를 개별적으로 노래하였다. '내 벗이 몇이냐  하면 물과 돌, 소나무 대나무이다 동산에 달이 떠오르니 그 또한 더욱 반갑구나. 그만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119

꽃은 무슨 일로 피여서 쉬이 지고 / 윤선도


꽃은 무슨 일로 피여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윤선도 : 호는 고산. 조선 시대의 시인으로서 최고의 시조작가. 전라도 해남에서 일생을 보냄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많은 단가를 지음.


<감상> 고산의 오우가의 하나인 '돌'에 관한 시조로서, 꽃이  좋다고 하지만 피어나서 쉽게 지고, 풀도 잠깐 푸르다가 누렇게 변하는데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120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 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었는다

저러코 사시에 푸르니 그를 조하 하노라


<감상> 오우가 중에서 대나무를 기린 노래로서 대나무가 지니고 있는 곧고, 겸손하며 푸른 기상을 읊은 노래이다. 나무도 풀도 아니면서 곧기는 무슨 까닭이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토록 사계절은 늘 푸르니 그것을 좋아하노라.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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