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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時調 감상

기러기 우는 밤에 홀로 잠이 없어

by 산산바다 2008. 7. 4.

산과바다

 




  

    시조 감상

 

 

   1   기러기 우는 밤에 홀로 잠이 없어        강강월康江月

 2   하늘에 뉘 다녀온고 내 아니 다녀온다    강백년

 3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야 다 늙거다    강백년

 4   편지야 너 오는냐 네 임자는 못 오더냐   강백년

 5   초당의 밝은 달이 북창에 비꼈으니       곽기수

 6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길재

 7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김광욱

 8   대막대 너를 보니 유신하고 반갑고야     김광욱

 9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 중에 호미메고  김굉필

10   나온댜 금일이야 즐거온댜 오늘이야      김구

11   오리 짧은 다리외 4수                   김구

12   추월이 만정한데 슬피 우는 저 기럭아    김두성

13   눈물이 진주라면 흐르지 않게 두었다가   김삼현

14   내 정령 술에 섞어 님의 속에 흘러 들어  김삼현

15   금로에 향진하고 누성이 잔하도록        김상용

16   오동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김상용

17   설원이 만창한데 바람아 부지 마라       김상용

18   나 보기 좋다 하고 남의 님을 매양 보랴  김상용

19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쟈 한강수야     김상헌

20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이 반이로다       김상현

 

 


1

★ 기러기 우는 밤에 내 홀로 잠이 없어 / 강강월康江月


기러기 우는 밤에 내 홀로 잠이 없어

殘燈 도도 혀고 전전불매하던 차에

창 밖에 굵은 빗소리 더욱 망연 하여라


康江月 (연대 미상. 맹산 기생. 字 天心)


잔등(殘燈) : 꺼지려는 등잔불.

도도 혀고 : 돋워 켜고.

전전불매(輾轉不寐) : 잠 못 들어 이리저리 뒤척임.

망연(茫然) : 멍해지다. 망망하다.


<현대어 풀이>

끼룩끼룩 기러기 울어 잠 못 드는 기나긴 밤

가는 등불 다시 돋워 이리저리 딩구는데

창 밖에 또 굵은 빗소리 마음 더욱 쓸쓸하네


<감상> 작자는 맹산 기생이며 자는 천심이란 기록뿐이다. 긴 가을 밤 무슨 생각이 많아 잠들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다.

기러기가 울고 간 것만도 쓸쓸한데 또 창 밖에 굵은 빗소리가 들리나니 너무 쓸쓸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옛 사람들이나 현대인이나 흔히 있는 불면의 괴로움을 잘 표현하였다.



2

하늘에 뉘 다녀온고 내 아니 다녀온다 / 강백년(姜柏年)


하늘에 뉘 다녀온고 내 아니 다녀온다

팔만 궁녀를 다 내어 뵈데마는

아마도 내 님 같은 이는 하늘에도 없더라


강백년(姜柏年) 1603~1681. 자는 숙구(淑久), 호는 설봉(雪峯)  한계(閑溪) 청월헌(聽月軒). 인조 때에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문 약간이 전한다.

<감 상> 하늘에 누가 다녀왔느냐. 내가 다녀오지 않았는가. 하늘의 8만 궁녀를 모조리 다 데려다가 나한테 보여 주었지마는 그 많은 천녀(天女)들 중에도 내 님같이 고운 여인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과장이다. 그러나 역시 일면의 진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마약이니 마법사이니 하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3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야 다 늙거다 / 강백년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야 다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알으실까

아모나 내 형용 그려다가 님의 손대 드리고저


강백년(姜柏年) 1603~1681. 자는 숙구(淑久), 호는 설봉(雪峯)  한계(閑溪) 청월헌(聽月軒). 인조 때에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문 약간이 전한다.


양자 : 모양. 모습.

님으로야 : 님으로 인하여.

늙거다 : 늙었다.

아모나 : 시조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이는 말인데, 감탄의 뜻이 있는 '아무나, 누구든지' 뜻이다.

형용 : 모습.

님의 손대 : 님에게.


<감상> 젊어서 그리던 님을 늙어서 생각한다면 이런 넋두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리운 님에 대한 연모의 전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십분 수긍이 간다. 아직도 내 자신이 직접 부딪치기는 쑥스러우니, 제삼자인 "아모나"를 빌려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임금에 대한 사모' 또는 충성으로 보면 연군(戀君),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4

편지야 너 오는냐 네 임자는 못 오더냐 / 강백년(姜柏年)


편지야 너 오는냐 네 임자는 못 오더냐

장안도상 넓은 길에 오고가기 너뿐일까

일후란 너 오지 말고 네 임자만 ······


장안 도상(長安道上) : 서울 장안의 넓은 길 위.

일후(日後)란 : 다음엘랑. 다음에는.


강백년(姜柏年) 1603~1681. 자는 숙구(淑久), 호는 설봉(雪峯)  한계(閑溪) 청월헌(聽月軒). 인조 때에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문 약간이 전한다.

<감 상> 편지를 인격화하여 그것에게 님 그리는 정을 부친 것이 재치있는 착상이다. 그 표현 또한 소탈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 장안의 넓디넓은 그 좋은 한길을 님은 왜 직접 오지를 못하고, 편지 네가 대신 오느냐. 너를 대신 보내더냐?  다음부터는 네가 오지 말고, 네 임자만 왔으면 좋겠구나. 편지로서는 만족할 수 없고 오직 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 종장 맨 끝구의 '오너라'가 생략되어 있다. 시조를 창으로 부를 때에 흔히 그것을 생략하는데, 이것도 그런 경우로 여운을 남기는 방법을 쓴 것 같다.



5

초당의 밝은 달이 북창에 비꼈으니 / 곽기수

초당의 밝은 달이 북창에 비꼈으니

시내 맑은 소리 두 귀를 절로 씻네

소부의 기산영수도 이렇던둥 만둥


곽기수(郭期壽) 1549~1616. 자는 미수, 호는 한벽당. 광해군 때의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시문으로 세월을 보낸 사람. '한벽당 문집'이 있다.


소부(巢夫) : 중국 요순시대의 은사. 흔히 허유(許由)아 아울러 쓰인다.

기산영수(箕山嶺水) : 기산은 중국 하남성에 있는 산이며 영수는 안휘성에서 회수로 흘러드는 강인데, 기산을 지나간다. 소부 · 허유의 고사로 더욱 유명하다. 허유는 요임금이 그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하자, 귀가 더러워졌다고 영수로 달려가 귀를 씻었다. 소부는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영수에 갔다가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가 없다고 상류로 몰고 가버렸다고 한다.


<감상> 초당에 비친 휘영청 밝은 달이 북녘 창을 비스듬히 비치고 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 포착한 감각이다. 거기에 옆 냇가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두 귀를 씻어 준다. 맑고 깨끗한 물소리라는 뜻이다. 어느 음악이 이 자연의 선율보다 더 아름다우랴. 냇물에 귀를 씻는다 하니 소부 · 허유의 고사가 생각난다. 이만하면 나도 소부 · 허유를 본받을 수 있는 지은이의 유유자적함 또한 멋스럽다. 이 어디에 세상의 속기가 있는가. 오염과 공해에 찌들린 현대인이 이런 정경에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 당연하지 않은가?



6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길재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지은이 : 길재(吉再 1353~1419 호는 冶隱,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여말삼은(麗末三隱)으로 일컬어짐, 시호는 忠節, 저서는 '야은집' '속야은집' '야은언행습유'가 전함


필마(匹馬): 한 필의 말.

의구(依舊)하되: 예나 다름없으나.

인걸(人傑): 뛰어난 사람.

태평연월(太平烟月) : 태평한 세월.


<감상>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야은(冶隱)의 이 시조는, 고려의 고관 별직을 다 거친 그로서 고려가 망한 뒤의 옛 도읍을 찾은 감회가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말 창왕의 문하주서(門下注書)까지 지내던 중 향리의 노모를 섬기기 위해서 선산(善山)으로 내려가 칩거 했었다. 그러한 그였기에 무너진 여조(麗朝)의 옛 정을 찾아 말을 몰고 구도(舊都)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감회는 자못 착잡할 수밖에..


산천은 그 옛날과 다름이 없으나, 세상을 걱정하고 지식을 천하에 널리 펴던 뛰어난 친구들은 자취를 감춰 만날 길이 없구나.. 오백 년을 이어온 여조의 역사가, 그 화려하던 영화도 간데없이 텅 빈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의 폐허, 세정의 허무, 그 모든 것이 눈앞을 스치는 하나의 주마등과 같구나! 역사의 어제와 오늘의 경계엔 그만큼 엄청난 세월이 거칠었던가를 돌이켜 볼 때 모두가 꿈만 같이 자기와의 거리가 엄청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더구나 창왕의 문하주서까지 지내면서 여조에 충성을 다한 몸으로 흘러간 왕조에의 추억은 가슴을 조였을 것이다.


왕조가 자기의 생명이자, 신성한 지상 명제로 생각해 왔던 봉건 귀족의 처지에서 여조의 멸망은, 곧 자신의 멸망으로 생각하는 당시의 의식 구조로서 사라진 영화의 발자취들이며 백성을 다스린 경륜을 주고받던 벗들의 부재(不在)를 찾아서라도 말을 몰고 구도(舊都)를 찾은 자로서는 남다른 역사에의 비애가 있었을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천하가 바뀌어 옛 신하들이 새 임금을 모시노라고 여조의 잔영을 찾는 그의 심상에는 꺽이지 않는 한 임금에의 단심(丹心)이 서리어 있음을 우리는 쉽게 읽을 수 있다.


간결하고 지정적인 듯한 이 시조가 우리들의 폐부를 찌르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속된 세정과 눈앞의 이익을 찾아 몸을 바꾸는 전신(轉身)들에 대한 하나의 항의로써 그의 구도(舊都)답사는 인간이 지니는 하나의 역행 의식으로서 빛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행위의 배경을 아울러 들여다보면서 이 작품을 읽을 때 거기엔 문인묵객 이상의 표현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 김광욱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감상>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부귀도, 공명도, 그리고 세상의 번거로움도 걱정되는 일도 모두 잊어버리고, 마침내 나 자신까지도 잊어버렸으니, 남이 나를 아니 잊을 수 있겠는가? 망아(忘我)의 경지, 달관의 경지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지은이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밤마을에 은퇴하여 살면서 지은 이른바 '율리유곡(栗里遺曲)'의 하나인데, 점층법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도연명 죽은 후에 또 연명이 났단 말이

밤마을 옛이름이 마초아 같을시고

돌아와 수졸전원(守拙田園)이야 긔오 내오 다르랴


하고 노래함으로써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도연명을 자처하였다.


종장을 다시 음미해 보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남이 나를 기억해 주기를 애써 바라는 것이 범부(凡夫)의 심정이요, 부질없는 욕망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그것을 털끝만큼도 탓하지 않았다. 너그러운 포용이요 달관의 경지이다. 명리에 집착하기 쉬운, 이해타산에 너무나도 얽매인 현대인의 맹성(猛省)을 위한 타산지석이 될 만도 하지 않은가. 탐욕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거기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거기에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8

대막대 너를 보니 유신하고 반갑고야 / 김광욱


대막대 너를 보니 유신하고 반갑고야

내 아이 적에 너를 타고 다니더니

이제란 창 뒤에 섰다가 날 뒤세우고 다녀라


김광욱(金光煜)1580~1656. 자는 회이(悔而), 호는 죽소(竹所). 광해군 5년 병조정량으로 있을 때에 박응서의 옥사에 연좌,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나오지 아니하였다 하여 파직되어, 고양행주에서 10년 동안 살다가, 인조반정후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문집에 '죽소집'이 있고, 연시조 '율리유곡(栗里遺曲)'14수가 있다.


대막대 : 대나무 막대기. 아이들 적에는 대발[竹馬]이 되고, 늙어서는 대지팡이[竹杖]가 되는 대막대기.

유신(有信)하고 : 신의(信義)가 있고. 믿음직하고.

이제란 : 이제는.


<감상> 지은이의 호가 죽소(竹所)인 것으로 미루어서도 그는 대를 몹시 좋아했나 보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대, 사철을 한결같이 푸른 대는 옛 부터 지사의 절개에 곧잘 비유되었다. 결이 곧아서 쭉쭉 곧게 쪼개져 나가는 것에서 '대쪽 같은 성품'이라는 말도 생긴 것이다. 그 대를 어린 시절에는 대말을 만들어 말놀이를 하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의지하고 다닌다.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산천을 유람할 때도 대는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대는 인생의 반려(伴侶)가 되었다. '율리유곡(栗里遺曲)' 중의 한 수이다.



9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 중에 호미메고 / 김굉필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 중에 호미메고

山田을 흩매다가 녹음에 누었으니

목동이 牛洋을 몰아 잠든 나를 깨우도다


세우중(細雨中) : 가랑비 속.  흩매다가 : 흩어 매다가


감상 - 지은이도 한 때는 벼슬에 나아간 적이 있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에 결국은 희생되었다. 파쟁과 모함, 권모술수 속에서 해가 뜨고 해가 저물던 중세 우리나라 선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영일(寧日)이 있을 수 없었고, 자기 벼슬에 대한 혐오는 곧잘 초야(草野)에 묻혀버리는 것으로 웅변되곤 하였다.


권문(權門)을 멀리하고 초야에 묻히면, 생활태도나 사고방식도 일변하여 시골 농부들과 어울려 그들처럼 생활하였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위한 가장 자유스러운 보신책(保身策)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가랑비 속에 삿갓과 도롱이를 걸치고 호미를 든 작자의 모습은 어디를 보나 때묻은 벼슬아치의 모습은 찾아볼 길 없고, 흙냄새 물신 풍기는 농부 그대로가 아닌가. 거기에 아침 한나절 산밭을 매다가 한낮이 되어 점심을 치르고, 노곤한 몸을 풀밭에 뉘인 모습 또한 가식 없는 농군의 모습이요, 생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낭만적인 생활에 젖어 있을 때, 거기에는 파쟁도, 모함도, 권모술수도 있을 수 없으며, 오직 해방된 자유인으로서의 평화와 안식으로 충만 되어 있을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저만치 목동이 이끌고 다가오는 소와 염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지은이 : 김굉필(金宏弼) : 조선전기의 학자, 호는 한훤당(寒暄堂).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정통했고, 효성이 지극했음.

1494년 참봉(參奉)에 천거되고 형조좌랑(刑曹佐郞)이 되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류되어 사사(賜死)당 함. 시호는 문경공(文敬公).


작자는 어려서는 성격이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매로 치는 일이 많아 그를 보면 몸부터 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분발하여 점차 학문에 힘쓰게 되었고 점필재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울 때 어느 날 스승은"네가 성학에 뜻을 두었다면 마땅히 이것부터 먼저 시작하라"하였다 그의 이 말은 꿈속에도 잊지 아니하고 평생에 소학으로 몸을 닦고 옛 성현의 도로써 준칙을 삼아 뜻을 굳게 하고 학문에 전력하며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사대부의 가정에 가훈이 있는 경우가 드문 것을 보고 "가범(家範)"을 지어 자손을 훈계하고 실행하였는데 요즘의 우리가 말하는 가훈의 선구자인 셈이다.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던 그가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로서 분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 때 드디어는 무오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을 받게 된다.


그가 극형을 받을 때 목욕재계한 뒤에 의관을 갖추고 태연한 안색으로 "신체발부는 이 모두 부모에게서 주신 것이다. 이제 상처를 받게 되니 죄스럽기 비할 데 없다"는 말을 남기고 목에 칼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가 그의 나이 51세였다. 죄 없는 선비로 죽음을 당하였으나, 마지막 순간에도 죽음에 임하는 선비의 의연한 모습을 보였으며, 수염 하나까지 부모를 생각하며 소중히 하는 효행의 실천을 보여주었다.


후에 그의 억울함이 밝혀져 도승지에 추종되고 개혁정치가 추진되면서 성리학의 기반구축과 인재양성에 끼친 업적이 크게 부각되었는데 조광조를 비롯한 제자들의 정치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하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는데 조광조, 이장곤, 김안국, 김정국 등이 있다.


20여인에 달하는 그의 문인들은 두 차례나 걸친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성향이 치인(治人)보다는 수기(修己)에 편향되어 적극적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결여된 탓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10

나온댜 금일이야 즐거온댜 오늘이야 / 김구


나온댜 금일이야 즐거온댜 오늘이야.

고왕금래에 유없는 금일이여,

매일에 오늘 같으면 무슨 성이 가새리


나온댜 : 즐겁도다.

고왕금래(古往今來) : 예로부터 이제까지.

가새리 : 가시겠느냐?


즐겁도다 오늘 이 세상, 어찌 오늘 즐겁지 않을 건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 날과도 비교할 수 없이 즐거운 이

오늘, 날마다 이같이 즐거우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이 시조는 얼른보아 오늘을 노래한 시조임을 누구나 한 번 읽어보는 순간 쉽사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이란 어떠한 시간일까?

그 '오늘'을 이해하자면 물론 '어제'에 대한 특정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오늘'을 이해할 실마리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오늘'이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 다시 말하면 먹구름에 짓눌렸던 '어제'와는 아주 다른 '오늘' 그것은 햇빛이 찬란하고 내일에의 언덕이 희망으로 수놓아진'오늘'이 아닐 수 없다. 어두웠던 '어제'와 대비해서 찬양한 '오늘'이란 상황 분석이 이 시조를 이해하는 하나의 길목. 자암집에 따르면, 지은이는 중종(中宗)께서 달밤에 그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노래도 잘 할 터이니 한 번 불러 보라고 술까지 내리어 명하므로 즉창(卽昌)으로 지은 것이 이 작품이라고 되어 있다.


이 시조의 배경이 되어있는 중종은 성종(成宗)의 둘째 아들이요, 유래 없는 폭군이었던 연산군(燕山君)의 뒤를 이어 현량과(賢良科)를 채택하는 등 연산의 폐정을 쇄신한 임금이다. 선천적으로 호학(好學)인데다가, 근 40년간이나 오래 왕위에 머물렀던 임금이라는 것도 특이할 만하다.


이러한 배경을 미리 알고 이 시조를 다시 읽어보면, 어제란 더 말할 것도 없이 폭정으로 백성을 괴롭히던 연산군 치하의 나날을 가리키는 비유의 구실을 하고 있고, 오늘이란 중종이 연산군의 폐정을 일소하고 선정을 베풀던 평안한 나날의 지칭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살 만한 세상을 가리켜 '즐겁도다'로 첫머리를 선뜻 가져오는 착상의 대담성은 선정에 기쁜 나머지 저절로 초사(初詞)가 대담해지는 하나의 생리 현상이라 하겠으나, 어쨌든 학정(虐政)에서 깨어난 사람이 전체의 안목으로 그 세대를 구가하는 비약은 더 한층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지은이 : 김구(金絿,1488~1534) 호는 자암(自庵) 1511(중종 6) 별시 문과에 급제. 홍문관 정자(正字).부수찬, 1519(중종 14) 부제학 때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조광조. 김정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15년만인 1533(중종 28)에 풀려 향리인 예산(禮山)으로 귀향. 이듬해 세상을 떠남, 조선 초기의 사대 서예가의 한 사람. 그의 글씨를 그가 살던 인수방(仁壽坊) 이름을 따 '인수체'라 한다. 저서로 자암집(自庵集),글씨를 모은 자암필첩, 가사로 화전별곡(花田別曲)이 전한다.



11

오리 짧은 다리외 4수 / 김구

 

오리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되도록애

검은 까마귀 해오라기 되도록애

향복무강하샤 억만세를 누리소서


오리의 짧은 다리가 학의 다리처럼 길어 질 때까지 검은 까마귀가 백로처럼 희게 될 때까지 복을 누리기를 끝없이 하셔서 억만년까지 오래오래 사시옵소서


오리의 짧은 다리가 학의 다리처럼 될 수 없는 것이며, 검은 까마귀가 백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까지 만수무강하여서 백성들을 잘 다스려 달라고 노래하는 글이다. 지나친 과장이 들어있다. 그러나 표현 속에 담고자 했던 속뜻을 헤아려 읽어야 할 것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폐정을 바로잡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 왕으로 신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작자 또한 조광조와 더불어 도학정치에 뜻을 가지고 평소 중종을 존경하고 충성을 다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김구는 먼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 유배지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경기체가 "화전별곡"을 짓고 자연시조를 지으면서 세월을 보냈다.


작자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하여 연산군 9년 漢城試(한성시)에 1등으로 뽑혔고 생원, 진사시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하여 시관을 놀라게 했다. 일찍부터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여 학문의 깊이가 조광조, 김식과 견줄 만하다 했다고 한다. 음율에도 뛰어나 안평대군, 양사언, 한호등과 더불어 조선전기 4대 서예가로 손꼽힌다. 시조 5수와 수많은 한시, 그리고 경기체가인 화전별곡이 그의 문집인 <자암집>에 전하고 있다.


지은이 : 국문학자들은 자암 김구가 정치적 격동기였던 중종때 절의를 지킨 기묘 명현의 한사람으로 또한 뛰어난 서예가라는 것보다 5수의 시조작품을 민족 문학의 유산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에 더욱 주목되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나온댜 금일이야 즐거온다 오늘이야

고금왕래에 유(類)없는 금일이여

매일이 오늘 같으면 무슨 성이 가새리


좋구나 오늘이여, 즐겁구나 오늘이여,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시없는 즐거운 오늘이여,

날마다 오늘 같다면 무슨 힘들고 고생되는 일이 있겠는가?


나온댜 : 기쁘도다

성이 가새리 : 성가시고 초췌하겠느냐, 힘들고 고생되리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태평성대의 감격을 노래하는 글이다. 작자가 어느 날 玉堂(옥당)에서 숙직할 때 소리 내어 글을 읽고 있었다. 마침 중종이 산책을 하다가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옥당으로 들어왔다. 황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작자에게 왕은 "달이 밝은지라 후원에 나왔다가 그대의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이 끌려 찾아왔노라, 이럴 때 어찌 군신의 예의를 가릴 것이랴. 마땅히 친구로서 사귈지어다." 하고는 술을 가져오게 하여 함께 술을 마시면서 "노래도 한번 불러보라"고 하니 위의 시조와 어제 올린 "오리 짧은 다리.."두 수를 즉석에서 지어 불렀다 한다.


山水내린 골에 삼색도화 떠오거늘

내성(性)은 호걸이라 옷입인채 들옹이다

꽃일랑 건져안고 물에 들어 속과라


삼색도화 : 색색의 복숭아꽃

들옹이다 : 풍덩 뛰어들다

속과라 : 속구치는 구나


무릉도원의 정취를 쉬운 우리말로 읊은 걸작으로 우리말의 멋을 잘 살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글이다.

처음 대하는 순수한 우리말이 군데군데 있다.


골짜기를 따라 떠내려 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옷을 입을 채로 뛰어들어 꽃은 몸으로 건져 안고

물속에서 물장난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태산이 높다 하여도 하늘 아래 뫼히로다

하해깊다 하여도 땅위에 물이로다

아마도 높고 깊은 것은 성은인가 하노라


임금에 대한 지극한 정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는 글이다.

태산과 하해에 성은의 높고 깊음을 비유한 글이다. 초장은 후에 양사언의 시조로 발전 승화된다.


여기를 저기삼고 저기를 예 삼고져

여기저기를 멀게도 생겼구나

이몸이 호접이 되어 오명가명 하고져


호접 : 나비

오명가명 : 오며가며


작자가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유배자의 恨과 유배생활에서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시조로 보여준 작품이다.

나비가 되어 오며가며 노닌다는 표현 속에 마음을 비운 학자의 애상이 잠겨있다.



12

추월이 만정한데 슬피 우는 저 기럭아 / 김두성


추월이 만정한데 슬피 우는 저 기럭아

상풍이 일고하면 돌아가기 어려우리

밤중만 중천에 떠 있어 잠든 나를 깨우는고


김두성(金斗性) 자세한 연대는 미상. 조선조 숙종 때에 김천택 · 김수장 등과 더불어 경정산가단에서 활동한 가인. 그의 시조 19수가 전한다.


추월(秋月)이 만정(滿庭)한데 : 가을 달이 휘영청 뜰 안에 가득히 비치고 있는데.

상풍(霜風)이 일고(一高)하면 : 서리치는 찬바람이 한번 높이 일면.


<감상> 4계절 중에서도 가을 달은 유난히 맑고 밝은 것, 그것이 뜰에 가득 휘영청 밝으니, 그러지 않아도 감상에 젖기 쉬운 가을인데, 높은 하늘에는 슬피 울며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처량하구나. 겨울을 나려고 가을에 북쪽에서 날아오는 저 기러기야, 차가운 서릿바람이 한번 일게 되면 돌아가기가 힘들 터인데, 한밤중에 하늘 높이 떠서 나의 잠을 깨우는구나! 가을 밤, 더욱이 달밤과 기러기 울음소리, 이것은 시의 좋은 소재가 되고도 남는다.



13

눈물이 진주라면 흐르지 않게 두었다가 / 김삼현(金三賢)


눈물이 진주라면 흐르지 않게 두었다가

십년 후 오신 님을 구슬성에 앉히련만

흔적이 이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김삼현(金三賢)연대 미상. 조선조 숙종 때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지냈으며, 벼슬을 물러난 뒤 장인 주의식(朱義植)과 더불어 자연을 벗 삼고 산수를 즐기면서 시 짓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시조 6수가 전하는데, 그의 시풍은 낙천적이고 명랑하다.

<감상>

만일 내가 흘리는 이 눈물이 진주라면, 흐르지 않게 고스란히 모아 두었다가 10년 후에 찾아오신 그리운 님을 구슬성에 앉혀 호강을 시키련만, 눈물이 진주가 아니어서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리니, 그것을 슬퍼한다는 것이다.

구슬 같은 눈물이라 했으니 그것을 진주에 비긴 것은 지극히 당연하나, 구슬로 성을 쌓아 진주성에 님을 앉히겠다는 착상은 참으로 기발하다. 그야말로 구슬 같은 가작이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읊어 보고 싶은 시조다.



14

내 정령 술에 섞어 님의 속에 흘러 들어 / 김삼현


내 정령 술에 섞어 님의 속에 흘러 들어

구회간장을 다 찾아 다닐망정

날 잊고 남 향한 마음을 다 스로려 하노라


지은이 : 김삼현(金三賢)연대 미상. 조선조 숙종 때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지냈으며, 벼슬을 물러난 뒤 장인 주의식(朱義植)과 더불어 자연을 벗 삼고 산수를 즐기면서 시 짓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시조 6수가 전하는데, 그의 시풍은 낙천적이고 명랑하다.


정령(精靈) : 정신과 영혼

구회간장(九回肝腸) : 구곡간장. 꼬불꼬불하고 긴 창자.

스로려 : 쓸어 버리려.


<감상> 비유의 묘를 얻은 표현이라 하겠다. 지극한 사랑임을 한눈에 느낄 수가 있는 시조이다. 박효관의 "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 초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 와 같은 시상이지만, 그것이 점잖고 담담한 데 비하여 이것은 너무도 철저하고 집요하다. 내 정령이 술에 섞여 님의 뱃속으로 들어가. 구곡간장을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다른 님을 향한 님의 마음을 깨끗이 쓸어내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재치 있는 표현으로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지은이의 강렬한 독점욕을 노래했다.


박효관의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초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와 같은 시상이지만, 그것이 점잖고 담담한대 비해 이것은 너무도 철저하고 집요하다. 내 정령이 술에 섞여 님의 뱃속으로 들어가. 구곡간장을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다른 님을 향한 님의 마음을 깨끗이 쓸어 내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재치 있는 표현으로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지은이의 강렬한 독점욕을 노래했다.



15

금로에 향진하고 누성이 잔하도록 / 김상용


금로에 향진하고 누성이 잔하도록

어디 가 있어 뉘 사랑 바치다가

월영이 상난간케야 맥받으려 왔나니


지은이 : 김상용(金尙容)1561~1637.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 김상헌(金尙憲)의 형으로 광해군 때에 도승지 · 대사헌 · 형조판서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다가 함락이 되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폭사하였다. 온화 청렴한 성품에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으며, 시조로 '오륜가' 5수와 '훈계자손가' 9수 등이 있다.


금로(金爐) : 금으로 만든 향로. 향로를 미화항 한 말.

향진(香盡)하고 : 향이 다 타 버리고.

누성(漏聲) : 물시계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잔(殘)하도록 : 다해지도록. 밤이 깊어 가도록.

월영(月影)이 상난간(上欄干)케야 : 달그림자가 난간 위에 오르게 되어서야.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맥(脈)받으려 : '맥받다'는 맥을 보다라는 뜻으로 진찰하다인데, 여기에서는 남의 속을 떠 본다는 뜻으로 쓰였다.


<감상> 금향로에 피워 놓은 향도 이제 다 타 버리고, 물시계 소리도 다해가서 밤이 깊을 대로 깊었는데, 그 동안 어디 가서 누구하고 사랑을 속삭이다가 달그림자가 난간 위까지 올라오게 되어서야 겨우 찾아와 얄밉게도 남의 속을 떠보려 하느냐.



16

오동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 김상용


오동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내 시름 하니 잎잎이 수서이로다

이후야 잎 넓은 나무를 심을 줄이 이시랴


<감상> 크고 둥그런 오동잎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유난히도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마음속에 시름이 많은 이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애꿎은 그 오동잎을 원망해 보는 것이다. 다시는 오동나무를 심지 않겠노라고.......


뜰에 오동나무를 심어 놓으면 봉황이 날아와서 깃을 들인다는 전설이 있어서 옛 큰집들 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특히 '벽오동'을 많이 심었는데 지은이와 같은 사대부의 집에 오동나무가 없을 리 없다. 그러므로 이런 시조가 나올 만하지 않은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일상적인 소재에서 느끼는 감흥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17

설원이 만창한데 바람아 부지 마라 / 김상용


설원이 만창한데 바람아 부지 마라

예리성 아닌 줄을 판연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적이면 행여 귄가 하노라


설월(雪月) : 눈 쌓인 밤에 휘영청 비치는 달.

만창(滿窓) : 창안에 가득히 비친다. 환하게 비치는 것을 뜻한다.

예리성(曳履聲) : 신발을 끄는 소리. 발자국 소리.

판연(判然)히 : 뚜렷이. 확실히. 똑똑히.

아쉬온 : 아쉬운의 아어형.

귄가 : 그이인가.


<감상> 눈 쌓인 밤에 휘영청 밝은 달빛이 창 가득히 비치고 있는데, 바람 소리까지 윙윙 들려온다. 밖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바람 소리이지, 님이 나를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아닌 줄을 뻔히 알건마는 그래도 하도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행여 님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가 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눈 덮인 겨울의 달밤에 님 생각이 아닌 줄을 뻔히 알면서도, 하도 그립고 아쉬울 적이면 행여 그이인가 한다는 것이다. 바람 소리, 그것과의 인연으로 생기는 자연의 소리, 인간으로서의 정을 그것을 의탁할 만큼 자연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구나! 님 향한 그립고 아쉬운 정을 이 자연의 소리로써 달랠 만한 경지에 도달한 이 사람은 분명 자연인(自然人)이구나.



18

나 보기 좋다 하고 남의 님을 매양 보랴 / 김상용(金尙容)


나 보기 좋다 하고 남의 님을 매양 보랴

한 열흘 두 닷새에 여드레만 보고지고

그 달도 설흔달이면 또 이틀을 보리라


김상용(金尙容)1561~1637.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 김상헌(金尙憲)의 형으로 광해군 때에 도승지 · 대사헌 · 형조판서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다가 함락이 되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폭사하였다. 온화 청렴한 성품에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으며, 시조로 '오륜가' 5수와 '훈계자손가' 9수 등이 있다.

<감상>

내가 보기 좋다고 해서 남의 님을 늘 볼 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한 열흘에다가 두 닷새면 20일, 거기에 또 여드레만 더 보면 한 달에 스무여드레를 보게 되니, 그 달이 큰 달이어서 30일이라면 두 번은 더 볼 수가 있겠구나! 그러니까 하루도 빼지않고 매일 보는 셈이 된다. 남의 님에 대한 짝사랑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거리낌 없는 대담한 표현인가. 저속한 듯하면서도 소박하고 멋이 있는, 또 한편으로는 익살스럽기까지 한 표현 기교이다. 이런 것들이 대개 무명씨인데 실명씨의 작이니 어인 일일까.



19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쟈 한강수야 / 김상현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쟈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古國山川)을 떠나고쟈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나는 이제 떠나가노라(언제 올지 모르지만) 삼각산아, 돌아와서 다시 보자꾸나

한강물아. 정든 고국의 산천을 떠나기는 하겠다만

지금의 시대가 너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주제 : 조국을 떠나야 하는 우국지사(愚國之士)의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심정

출처: 청구영언 고금가곡

지은이 : 김상현



20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이 반이로다 / 김상현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치 마라 위기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커니 두려운 일 없에라


공명(功名) :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림. 곧 높은 명예와 영광을 얻는 것.

영욕(榮辱) : 영광과 치욕. 영광스러운 일과 욕된 일.

부귀(富貴) :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아짐.

한가커니 : 한가하거니.

없에라 : 없도다! '~에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감상> 부귀와 공명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현실적인 이상이다. 그러나 공명에는 영광과 더불어 욕됨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부귀 또한 그것 때문에 위험한 일이 닥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귀도 공명도 탐내지 않는 우리는 항상 몸이 홀가분하고 마음이 편안하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어서 좋다.


부귀와 공명은 일시적인 것이지 결코 영원한 것은 못된다. 그것을 굳이 탐한다는 것은 모두 악의 근원이 되는 욕심에 지배되는 것이니,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탐내고[食], 성내고[嗔], 어리석음[癡]을 여의고, 무외(無畏)의 경지를 터득한 불보살의 경지를 지은이는 터득한 것 같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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