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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여행이 좋아**/사찰 여행

속리산 법주사

by 산산바다 2006. 10. 6.

속리산 법주사

06.10.1. 동반하여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속리산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꼬불꼬불한 열두구비 말티고개를 넘는 고생없이 속리산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보은군 보은읍 누청리-내속리면 중판리를 잇는 길이 6.94㎞의 왕복 2차선 도로가 말티고개 옆으로 

속리터널(길이 1198m)이 뚫려 속리산 법주사쪽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정이품송 앞에 주차하고 잠시 안내문을 읽어보고...

 

 

속리산으로 들어 가는 길 가운데 위치하여 동쪽으로 도로가 있고 서쪽엔 천황봉에서 발원한 한강 상류의
한 지류인 속리천이 흐르고 있다. 밑부분에는 외과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아직도 수세는 싱싱하고
나무 모습은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듯 단아하여 곧잘 명승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나무란다. 

 이 나무의 고유한 이름은 정이품송이니 나무가 벼슬품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이 17의 3번지에 서있는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1962년 12월23일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높이 15m, 가슴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북쪽 10m의 노거수이다. 
          

 

<전설 및 설화>
       1464년에 신병에 고통받던 세조가 온양온천과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이 나무 아래 이
       르러 타고가던 연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연 걸린다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
       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관광호텔앞길로 법주사 쪽으로 걸어가면서 저 멀리 문장대가 보임이 상쾌하다.

 

 

매표소를 들어서서 오리길의 숲길은 맑은공기에 쾌적한 솔향이 마음을 안정시키는듯 하네...

 

 

길가에 감로수... 지나가는 나그네 목 축여 가라고 한구기 쉬원하구나...

 

 

 

 

금강문 들어가기전에 놀이를 금하라는 비석이 있네.

(조선시대에 불교를 멸시하며 선비들이 여기에와서 기생과 더불어 놀이를 많이 하였다고 함. 세조왕이 여기를 다녀간후 이 비를 세워 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세웠다나...?)

 

 

 

순례자의 뒤를 따라 금강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감

 

 

청동미륵불상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법주사팔상전

법주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5층 목탑(木塔). 국보 제55호. 5층의 옥개는 네모지붕이며 그 위에 상륜부가 완전하게 남아 있다. 1968년 해체 중수할 때 5층 도리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고 심초석(心礎石)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동판에 새긴 글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에 의하면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고 1626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철당간자주(鐵幢竿支柱)  불교의식에서 불당을걸어놓는 용도로 쓰였던것이다.  : 고려시대

 

 

 

 

 

청동미륵불상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 팔상전, 원통보전, 천왕문, 금강문(金剛門), 일주문(一柱門), 약사전(藥師殿), 삼성 각(三聖閣), 명부전(冥府殿), 요사(寮舍) 등의 건물과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 석련지(石蓮池, 국보제64호),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보물 제216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현존하고 있다.

 

 

 

법주사쌍사자석등(통일신라) 

8각을 기본으로 하면서 간석에 변화를 준 이 석등은 구성이 간결하고 전체 비례가 적당하여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걸작으로 꼽히며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제5호. 높이 330cm. 이 석등은 일반형 석등의 간석(竿石) 부분을 8각기둥 대신 쌍사자로 변화를 준 이형석등이며, 쌍사자석등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범종각은 팔상전의 동쪽 정면에 있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1976년 종무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었다.

안에는 범종(梵鍾)·운판(雲板)·법고(法鼓)·목어(木魚) 등이 있다. 이 네 가지의 법구(法具)가 불당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를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네 가지 법구들은 각각의 용도와 의미를 지닌다.

먼저 범종은 지옥에서 한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운판은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모두 이 소리를 들음으로써 영원한 해탈심을 느끼게 한다. 또한 법고는 땅 위에 사는 네 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생명들을 위해 울린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전남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 충남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極樂殿)과 함께 한국의 삼대불전(三大佛殿)으로 일컬어지며, 중층불전으로 그 희소성을 가지고 있는 건축 문화재이다.

 

 

전각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 삼존대불이다.

 

법주사 대웅보전 삼존대불은 보물 제1360호로 전체높이 5m50㎝, 허리둘레 390㎝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소조불상(진흙으로 빚은 불상)으로 1626년에 조성됐다.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왼편에는 설법인을 한 노사나불, 오른편에는 항마촉지인을 취한 석가모니불이 협시하고 있다

 

 

 06년 9월 12일 열린 법주사 대웅전 개금불사 점안식.

보은 법주사(주지 도공 스님)가 9월 12일 오전 9시 30분 사부대중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웅보전 삼존불 점안식을 봉행했다.

 

팔상전-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에 표현한 탱화인 '팔상도'가 배치되어 있는 건물이라 "팔상전"이라..

 

 주불전인 대웅보전과 미륵전(彌勒殿, 일명 龍華殿이라고도 지칭하며 고려시대 건립되었으나 조선후기 철거되고 현재는 그 위치에 대형 청동미륵불을 건립)의 배치 축이 팔상전을 중심으로 서로 직교하는 형식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미륵전이 사라진 조선후기 이후는 일주문부터 팔상전을 거쳐 대웅보전에 이르는 직선 축을 중심으로 가람을 구성하였으며, 이 직선축 위에 일주문, 천왕문, 팔상전, 극락전(極樂殿, 현재는 없어짐), 대웅보전 등의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며 사찰의 중심공간을 형성하였다.

 

법주사 경내 암벽에 부조된 고려시대 마애불상. 보물 제216호. 높이 500cm. 광배는 생략되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설법인(說法印)을 결하고 있고 연화좌 위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내려딛고 있는 의상(倚像)이다.

 

 

 

 마애여래의상 아랫쪽에 고승의 부도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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