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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김삿갓 詩

과거에 장원급제한 시제

by 산산바다 2006. 8. 1.

산과바다

 김삿갓 김병연의 묘

 



김삿갓 金炳淵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한

 

"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 牛天 " 이라는 시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김삿갓

金炳淵: 1807~1863년 조선 후기 시인 본관은 安東 자는 性深 號는 蘭皐이다.

아버지는 安根, 경기도 양주 명문 세도가 집안에서 출생 하였다. 1811년(순조 11)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 罪에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의 救援을 받아 兄 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祖父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며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詩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詩가 많아 民衆 시인이라 불렀다. 아들 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화순에서 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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