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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전강영신(田岡永信)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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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영신(田岡永信)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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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영신(田岡永信)선사 (1898~1975) 오도송(悟道頌)

 

 

昨夜三更月滿樓(작야삼경월만루) : 어젯밤 삼경에 달빛은 누각에 가득하더니

古家窓外蘆花秋(고가창외로화추) : 고가의 창밖엔 갈대꽃 만발한 가을이로구나.

佛祖高德喪神命(불조고덕상신명) : 부처와 조사도 여기서는 신명을 잃었는데

潺潺流水過橋來(잔잔류수과교래) : 다리 아래 잔잔히 흐르는 물은 다겁을 지나오는구나.

 

 

* 전강선사(田岡禪師 1898~1975) 法名영신(永信).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 하시고 지은 오도송(悟道頌)이다.

 

1975113(음 갑인년 122)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 인고? (),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77, 법랍61.

 

스님은 처음에 만공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했다가 재 발심을 하고 다시 정진하였으며마침내는 전법게(傳法偈)를 전수받으면서 선종 제 77의 법맥을 계승하게 된다이후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組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등 전국 유명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였다.

 

또한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주지담양 보광사(普光寺조실인천 보각사(普覺寺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1960년 망월사(望月寺조실을 차례로 지냈으며스님은 이후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普禪院)을 개설하여 15여년에 걸쳐 후학 지도에 전념하였다이러한 스님의 선풍은 제자 송담(松潭)스님이 용주사에서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다.

 

1962년 대구 동화사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무문관(無門關조실 및 조계종 장로원 장로를 역임하였으며, 1969년 용주사에 중앙선원을 설립하고 용주사 선풍 진작에 크게 공헌 하였다끝으로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조실을 역임한 스님은 1975 113일 앉은 채로 입적했다.

 

* 77조 전강 영신(田岡永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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