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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해안선사(海眼禪師)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8.

산과바다

해안당 대종사 행적비 (海眼堂大宗師行跡碑)  내소사 천왕문 앞 오른편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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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선사(海眼禪師) (1901~1974) 오도송(悟道頌)

 

 

鐸鳴鐘落又竹覓(탁명종낙우죽멱) : 목탁소리 종소리 또한 죽비소리에

鳳飛銀山鐵壁外(봉비은산철벽외) : 봉황은 은산철벽을 넘어 날았다네.

若人問我喜消息(약인문아희소식) : 내게 기쁜 소식을 누가 묻는가.

會僧堂裏滿鉢供(회승당리만발공) : 회승당 안의 만발 공양이라 하노라.

 

 

* ·현대 호남 불교의 큰 어르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해안선사(海眼禪師)는 경봉스님과 함께 경봉 西 해안으로 불리며 선풍을 떨쳤던 선승(禪僧)이다.

스님은 1901년 음력 37일 전북 부안군 산내면 격포리에서 아버지 김해 김씨 치권공과 어머니 은율 송씨의 3남으로 출생했다.

 

이름은 성봉(成鳳)이라 했으며 커서는 봉수(鳳秀)라 불렸고 당호는 해안(海眼)이다.

17세가 되자 호남의 대 본찰인 백양사에서 머리를 깎고 송만암 대종사를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그해 백양사 지방 학림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무오년 스님의 나이 18세가 되는 해 12, 납월 팔일 성도절(成道節: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음력 128)을 앞두고 선원에서는 연례행사로 7일간 용맹정진을 하게 되었다.

스님은 학명 조실스님으로부터 은산철벽을 뚫으라.’는 화두를 받고 생사의 간두에 서서 화두 일념에 자타를 홀연히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위의 悟道頌 그때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위 오도송은 내소사 천왕문의 주련에도 걸려있다.

 

1968년 봄, 따르던 재가불자들이 모여 불교 전등회(佛敎傳燈會)를 조직하고 계절마다 정진 법회를 개최해 7일 또는 21일 참선 정진을 시작하자, 이 모임의 회주가 되어 성의를 다해 지도했다.

 

197437, 해안은 자신의 74번째 생일과 불교 전등회 창립 4주년을 기념해 열린 법회에서 운집한 불자들에게 자신의 임종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마지막 법문을 내렸다.

'여러분의 수행은 향상 일로에 있고, 이제는 내가 없더라도 정진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전등회 회원 여러분들은 혼탁한 세상에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부디 정법을 수호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정진해서 부처님의 등불을 온누리에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틀 후 새벽, 운집했던 불자들이 모두 떠나고 몇몇 불자들만이 남아있던 서래 선림에 여명이 비추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도량석 목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예불이 끝나자 대중들은 해안의 안부를 살피고자 조실 안으로 모여들었다. 방안에는 무거운 기운이 맴돌았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 오늘 갈란다.' 나지막한, 그러나 담담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린 것은 해안이었다.'이제 손님도 다 떠났고 조용해서 좋구나. 그제도 말을 했지만 내가 떠난 후에도 공부들 열심히 하고 전등회를 잘 키워야 할 것이야

 

해안은 수제자 혜산 수좌를 바라보았다.

'남은 일은 해산에게 부탁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

순간 슬픔을 이기지 못한 한 제자가 흐느꼈다. 울음소리를 들은 해안이 그를 타일렀다.

'울지 마라. 모두가 이렇게 가고 또 오는 것. 이제 병든 몸이 더 있어봤자 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죽거든 제사는 생일날 지내라. 실은 생일날 가려했지만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 오늘 가는 것이니 그렇게 알아라. 그리고 혹 사리가 나오더라도 물에 띄워 없애 버리고 비()같은 것은 일체 세우지 마라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해안은 열반송이라도 남겨달라는 제자들의 애타는 요구를 끝내 물리치지 못해 게송을 읊었다.

 

生死不到處 : 생사 없는 곳에

別有一世界 : 따로 한 세계가 있으니

垢衣方落盡 : 때묻은 옷이 떨어져 다하면

正是月明時 : 바로 이 달 밝은 때 이니라

 

이윽고 해안은 피로한 기색이 되어 자리에 누웠다. 이내 호흡이 거칠어졌다. 손이 잠시 들리는 듯 하더니 힘없이 떨어졌다.

1974년 음 39일 세수 74, 법랍 57세로 입적

열반을 알리는 종소리가 봉래산 골짜기에 은은히 번져 나갔다. 그날에는 유달리 새벽하늘이 떠오르는 햇빛에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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