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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答徑山維琳長老(답경산유림장로)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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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答徑山維琳長老(답경산유림장로) : 소식(蘇軾)

                    경산사 유림(維琳) 스님에게 답하였다.「임종가臨終歌」로도 불린다.

 

與君皆丙子各已三萬日一日一千偈電往那容詰

大患緣有身無身則無疾平生笑羅什神咒真浪出

 

 

與君皆丙子 : 그대와 나는 같은 병자생

各已三萬日 : 각각 이미 삼만 일을 살았네.

一日一千偈 : 하루에 천 개의 게송 외우니

電往那容詰 : 시간의 흐름 속에 어찌 멈추리.

大患緣有身 : 큰 병은 몸이 있는 인연이고

無身則無疾 : 몸 없으니 바로 괴로움도 없노라.

平生笑羅什 : 평생을 구마라집을 비웃은 건

神呪眞浪出 : 신통한 주문이 진정 소용없기에.

 

 

* 徑山(경산) : 항주성(杭州城) 서쪽 50km 지점에 있는 산으로 당나라 때 창건된 경산사(徑山寺)가 있는데, 이 절은 항주의 영은사(靈隱寺)와 정자사(淨慈寺), 그리고 영파(寧波)에 있는 천동사(天童寺) 및 육왕사(六王寺)와 함께 선원오산(禪院五山)으로 불린다.

* () : 소식(蘇軾)이 항주(杭州)에 있을 때 경산사(徑山寺) 주지였던 유림(維琳) 화상을 가리킨다.

* 丙子(병자) : 소식이 태어난 인종仁宗 경우(景祐) 3(1037)이 바로 병자년(丙子年) 섣달 열아흐렛날이었다.

* 電往(전왕) : 번개처럼 질주하다.

* 羅什(나집) : 동진(東晉) 때 후진(後秦)에서 역경사로 활약한 서역고승 구마라집(鳩摩羅什)(Kumarajiva, 344~413)을 가리킨다.

* 神咒(신주) : 영검한 효력을 발휘하는 주문을 가리킨다.

 

휘종*徽宗) 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1101), 상주(常州)로 가는 배 안에서 이질로 큰 고생을 한 소식은 가까스로 상주에 도착한 뒤 바로 병상에 드러눕고 만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벗 전세웅(錢世雄)은 하루 걸려 그의 집을 찾았고 7월 하순에 접어들자 소식은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무렵 항주에서 유림(維琳) 화상이 먼 길을 무릅쓰고 소식을 찾아와 임종을 앞둔 소식에게 극락왕생을 생각하는 한마음으로 주문을 외워보라고 했다.

그러자 소식이 힘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구마라즙이 죽을 때 어땠습니까?”

전하는 이야기로는 유림 화상이 소식의 시 마지막 두 구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소식이 그 뜻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임종을 앞둔 구마라즙이 서역에서 함께 온 제자들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세 차례나 범어(梵語)로 된 주문을 외우라고 말했고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따랐지만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서는 정말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유림 화상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는 점에서 왕생극락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소식의 과장된 이야기일 것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소식이 죽음에 대해 이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금강경에서 말하는 이른바六如를 제대로 체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如露亦如電,應作如是觀.(일체유위법,여몽환포영,여로역여전,응작여시관.)

일체의 함이 있는 법(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금강경金剛經32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중에서

 

병상에 누운 소식은 하루 걸려 찾아오는 전세웅에게 자신이 써 모아둔 글을 주며 자신이 죽고 30년이 지난 뒤에 출간하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 시는 세상을 뜨기 이틀 전에 지었다고 해서 임종가臨終歌로도 불린다.

 

 

송휘종 정국 원년(1101) 7, 소식이 임종하기 이틀 전에 그의 옛 친우이며, 옛날 항주에 있을 때 경산사(徑山寺)의 주지였던 유림(維琳) 스님이 상주(常州)로 병 문안차 소식을 방문하였다.

유림 스님은 소식에게 여동파문질(與東坡問疾)이란 시를 지어 소식의 마지막을 위로해주었고, 이에 소식은 위의 답경산림장로(答徑山琳長老)란 시로 유림 스님에게 답하였다.

 

근심과 병이라는 것은 본래 몸의 인연에 의하여 생기는 것인데, 자기에게는 원래 몸이라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병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본래 하나의 사물도 없다는 혜능의 오도송을 인용하여 객관적인 자기 몸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유림 스님에게 병문안 올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두 구에서는 구마라집이 임종 전에 자기의 병을 낫게 하려고 제자에게 신통한 주문을 외우라고 한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같이 소식이 생사에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은 바로 만물이 실체가 없는 공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소식은 육조의 게송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인용하여 사람의 자성이 청정함을 주장하거나 혹은 모든 번뇌를 벗어난 안심(安心)의 경지와 선종의 공사상을 선양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복잡다난한 일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게송을 원용하여 인생의 해결점을 모색하는 동시에 정신적인 고뇌로부터 탈피하려 하였고, 이러한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로 세속적인 것을 초월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시인은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수연자적(隨緣自適)하거나, 낙관광달(樂觀曠達)하며 해학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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