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浣溪沙(感舊) 완계사(감구)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30.

산과바다

옛날을 생각하며

蘇軾 詩 HOME

 

 

 

                浣溪沙(感舊) 완계사(감구) : 소식(蘇軾)

                옛날을 생각하며 (浣溪沙는 사패명(詞牌名)이다.)

 

徐邈能中酒聖賢劉伶席地幕青天潘郎白璧為誰連

無可奈何新白髮不如歸去舊青山恨無人借買山錢

 

 

徐邈能中酒聖賢(서막능중주성현) : 서막(徐邈)은 취하여도 술의 청탁을 말할 수 있었고

劉伶席地幕青天(유령석지막청천) : 유령(劉伶)은 땅을 자리로 삼고 푸른 하늘을 천막으로 삼았다네.

潘郎白璧為誰連(반랑백벽위수련) : 반안(潘安)의 백옥 같은 얼굴 누구와 얼굴 맞대리오.

無可奈何新白髮(무가내하신백발) : 새로 나는 흰 머리칼 어찌할 수 없으니

不如歸去舊青山(불여귀거구청산) : 죽어 옛 고향 산에 돌아감만 못하네.

恨無人借買山錢(한무인차매산전) : 은거할 산 살 돈 빌려 줄 이 없음이 한스럽다네.

 

 

* 浣溪沙(완계사) : 당나라의 교방곡명이었다가 후에 사패명(詞牌名)이 되었으며, 소정화(小庭花)라고도 한다. 쌍조 42자이다.

* 徐邈能中酒聖賢(서막능중주성현) :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曹操)가 금주령을 내리자 주객(酒客)들이 술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하여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고 불렀다. 이때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이 몹시 술을 좋아한 나머지,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적발되자 성인에게 걸렸다. [中聖人]”라고 익살을 부렸는데, 뒤에 문제(文帝)가 서막을 보고는요즘도 성인에게 걸려드는가? [頗復中聖人不]”라고 묻자스스로 징계하지 못하고, 때때로 다시 걸려들곤 합니다. [不能自懲 時復中之]”라고 답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7魏書 徐邈傳

 

이백(李白)월하독작4(月下獨酌四首) 2수에 已聞清比聖(이문청비성)復道濁如賢(부도탁여현)賢聖既已飲(현성기이음)何必求神仙(하필구신선): 이미 청주는 성인에 비한다는 말 들었고 다시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말하누나. 성현을 이미 마시니 어찌 굳이 신선을 찾을 것 있겠는가.”라는 표현이 있다.

* 劉伶(유령) : 서진(西晋)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 자는 백륜(伯倫)이고 위(()시기 패국(沛國,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수계현(濉溪縣) 사람이다. 건위장군(建威將軍) 왕융(王戎, 234~305)의 참군(參軍)으로 일한 적이 있으며, ()나라 무제(武帝)때 조정에 무위(無爲)의 정치를 강조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무능하다는 이유로 파면되었다. 술을 좋아했던 그는<주덕송(酒德頌)>이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으며, 전통적인 예법(禮法)을 경멸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완적(阮籍), 혜강(嵇康) 등과 더불어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꼽힌다.

 

유령의 주덕송에 行無轍跡(행무철적), 居無室廬(거무실려). 幕天席地(막천석지), 縱意所如(종의소여) : 길을 다녀도 수레바퀴 자국이 없으며 거처함에 정해 놓은 집이 없었다. 하늘을 천막으로 삼고 땅을 자리로 삼으며 마음 가는 대로 내어 맡기는구나.”라는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 潘郎(반랑) : 潘安(반안). 반악(潘岳 : 247~ 300). 자는 안인(安仁)으로 서진(西晉)시대의 문학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과 용모가 뛰어나 유명했으며 수레를 타고 외출할 때면 여자들이 자신에게 얼굴을 돌리게 하려고 과일을 던지는 바람에 수레에 온갖 과일로 가득 찼다고 한다. 하양현령(河陽縣令), 태부주박(太傅主簿)을 지냈다.

* 潘郎白璧為誰連(반랑백벽위수련) : 連璧(연벽). 夏侯湛(하후담)은 서진(西晉) 초국(譙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자는 효약(孝若)이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문장이 풍부하고, 새로운 단어를 잘 만들어냈다. 용모가 아름다웠고, 반악(潘岳)과 사이가 좋아 경도인(京都人)들이 연벽(連璧)이라고 불렀다.

* 白璧(백벽) : 白玉(백옥).

* 無可奈何(무가내하) :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방법이 없다.

* 舊青山(구청산) : 고향의 산.

 

이 사()는 동파전집(東坡全集) 및 전송사(全宋詞)에 실려 있으며 송() 신종(神宗) 원풍(元豐) 7(1084) 4월 소식(蘇軾)49세 때 유배를 갔던 황주(黄州)에서 여주단련부사(汝州團練副使)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지은 사()이다. 소식(蘇軾)은 원풍(元豐) 3(1080) 2월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원풍 7(1084)까지 황주에 유배되어 있었으며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정혜원(定惠院)에서 함께 어울렸던 벗인 서득지(徐得之) 유당년(劉唐年), 반빈로(潘邠老)와 헤어져 홀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세 친구를 서막(徐邈), 유령(劉伶), 반악(潘岳)에 비유하여 옛 일을 회상하였으며, 자신이 점차 나이 들어감으로 벼슬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고 싶은 마음을 읊은 사()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