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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미지서(與微之書)/與元微之書 - 백거이(白居易)

by 산산바다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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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미지서(與微之書)/與元微之書 - 백거이(白居易)

           미지에게 보내는 글

 

 

四月十日夜樂天白

  微之微之不見足下面已三年矣不得足下書欲二年矣人生幾何離闊如此況以膠漆之心置於胡越之身進不得相合退不能相忘牽攣乖隔各欲白首微之微之如何如何天實為之謂之奈何

  僕初到潯陽時有熊孺登來得足下前年病甚時一札上報疾狀次敘病心終論平生交分且云:「危惙之際不暇及他惟收數帙文章封題其上:『他日送達白二十二郎便請以代書。』」悲哉微之於我也其若是乎又睹所寄聞僕左降詩

  「殘燈無焰影幢幢此夕聞君謫九江垂死病中驚坐起暗風吹雨入寒窗。」此句他人尚不可聞況僕心哉至今每吟猶惻惻耳且置是事略敘近懷

  僕自到九江已涉三載形骸且健方寸甚安下至家人幸皆無恙長兄去夏自徐州至又有諸院孤小弟妺六七人提挈同來昔所牽念者今悉置在目前得同寒暖飢飽此一泰也

  江州風候稍涼地少瘴癘乃至虵虺蚊蚋雖有甚稀湓魚頗肥江酒極美其餘食物多類北地僕門內之口雖不少司馬之俸雖不多量入儉用亦可自給身衣口食且免求人此二泰也

  僕去年秋始遊廬山到東西二林間香爐峰下見雲水泉石勝絕第一愛不能捨因置草堂前有喬松十數株修竹千餘竿青蘿為牆垣白石為橋道流水周於舍下飛泉落於簷間紅榴白蓮羅生池砌大抵若是不能殫記每一獨往動彌旬日平生所好者盡在其中不惟忘歸可以終老此三泰也

  計足下久得僕書必加憂望今故錄三泰以先奉報其餘事況條寫如後云云

  微之微之作此書夜正在草堂中山窗下信手把筆隨意亂書封題之時不覺欲曙舉頭但見山僧一兩人或坐或睡又聞山猿谷鳥哀鳴啾啾平生故人去我萬里瞥然塵念此際蹔生餘習所牽便成三韻云

  「憶昔封書與君夜金鑾殿後欲明天今夜封書在何處廬山庵裡曉燈前籠鳥檻猿俱未死人間相見是何年?」

  微之微之此夕此心君知之乎樂天頓首

 

 

四月十日夜樂天曰:(사월십일야낙천왈:)

사월 초 열흘 밤 낙천이 말하노라.

 

 

微之微之不見足下面已三年矣; 不得足下書欲二年矣.(미지미지불견족하면이삼년의; 부득족하서욕이년의.)

미지여, 미지여, 그대를 못 본지 어느새 삼년이나 되었고, 그대의 서찰을 못 받아 본지도 두 해가 다 되어가는구려.

 

* 足下(족하) : 서찰에 쓰는 나이나 지위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에게 쓰는 높임말

 

 

人生幾何離闊如此!(인생기하이활여차!)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렇게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한단 말인가!

 

* 離闊(이활) : 오래 떨어져 지내다.

 

 

況以膠漆之心置於胡越之身, 進不得相合退不能相忘牽攣乖隔各欲白首(황이교칠지심치어호월지신, 진부득상합퇴불능상망견련괴격각욕백수)

하물며 아교와 옷 칠처럼 들러붙어 있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서로 남과 북으로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니, 나간다 한들 서로 만날 수 없고, 물러선다 한들 서로 잊을 수 없어 떨어져 그리워 하면서 머리 만 하얗게 세어가고 있네그려.

 

* 膠漆(교칠) : 아교와 옷 칠 또는 아교와 옷 칠처럼 단단하게 결합한 것을 가리킨다. 우정이 깊은 것을 가리킨다.

* 胡越之身(호월지신) : 몸이 서로 남과 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 牽攣(견련) : 마음에 두다. 그리워하다. 속박되다. 연루되다.

* 乖隔(괴격) : 분리되다. 나누어지다.

 

 

彌之微之如何如何天實爲之謂之奈何!(미지미지여하여하천실위지위지내하!)

미지여! 미지여! 어찌해야하는가! 어찌해야하는가! 진실로 하늘이 그리 한 것이라면 어찌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가!

 

僕初到潯陽時有熊孺登來得足下前年病甚時一札, 上報疾狀次敘病心終論平生交分(복초도심양시유웅유등래득족하전년병심시일찰, 상보질상차서병심종론평생교분)

내가 막 심양에 이르렀을 때 웅유 등이 와서 그대가 지난해 몹시 아팠을 때 쓴 편지를 받았다고 했는데, 서찰에서 먼저 그대가 앓고 있는 병의 상태를 말하고, 그 다음으로는 병이 생겼을 때의 심정에 대해 말하고, 끝으로는 우리가 오랫동안 나눈 우정에 대해 말했다고 하더군.

 

* 潯陽(심양) : 하천 이름이면서 지명이기도 하다. 장강(長江)이 흘러가는 쟝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북쪽 일대를 가리킨다.

* 熊孺登(웅유등) : 인명. 백거이와 교유한 시인이다.

* () : 고대에 글씨를 쓰던 작은 나뭇조각. 간찰(簡札). 필찰(筆札).

* 交分(교분) : 벗 사이의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친하여진 정)

 

 

且云危惙之際不暇及他惟收數帙文章封題其上, 曰他日送達白二十二郞便請以代書(차운위철지제불가급타유수수지문장봉제기상, 왈타일송달백이십이랑변청이대서)

또 말하기를 병이 중할 때 다른 일을 돌아볼 시간이 없어 오로지 몇 봉의 문장을 수집하여 그 위에 이름을 써두었는데, 이르기를 “나중에 백이십 이랑(백거이)에게 보내 내 대신 편지를 쓰게 하라.”고 했다 들었네.

 

* 危惙(위철) : 병세가 위중한 것을 가리킨다.

* () : 글이나 그림의 봉투.

* 白二十二(백이십이) : 백거이를 가리킨다. 숫자는 형제 중 배항(排行)이다. 숫자로 이름을 나타 내는 것은 당조(唐朝)에서 유행하던 것이었다. 진소유(秦少游)진칠(秦七)’, 한유(韓愈)한십팔(韓十八)’로 쓰는 식이다.

 

 

曰悲哉微之於我也其若是乎!(왈비재미지어아야기약시호!)

슬프도다! 미지의 나에 대한 마음이 이와 같았구나!

 

又睹所寄聞僕左降詩云(우도소기문복좌강시운)

또 부쳐온 글을 보고 듣자니 내가 좌천을 당했을 때 지은 시에서도 말하기를

* 左降(좌강) : 벼슬을 낮추다(=강직降職).

 

 

殘燈無焰影幢幢(잔등무염영당당) : 사위는 등잔불꽃에 그림자 일렁일 때

此夕聞君謫九江(차석문군적구강) : 구강으로 쫓겨 가는 그대 소식이 밤에야 들었네.

垂死病中驚坐起(수사병중경좌기) : 목숨 걸린 병중에도 놀라 일어났더니

暗風吹雨入寒窗(암풍취우입창한) : 비바람 몰아치는 한 밤중에 찬 기운이 몰려오네.

(제목이 문낙천수강주사마聞樂天授江州司馬)

* 幢幢(당당) : (그림자가) 어른어른하다. 흔들거리다.

 

 

此句他人尙不可聞況僕心哉!(차구타인상불가문황복심재!)

이 같은 시구는 다른 사람도 듣기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내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至今每吟猶惻惻耳(지금매음유측측이) : 지금도 읊을 때마다 마음이 처량해지고 만다네.

且置是事略敘近懷(차치시사약서근회) : 이 일은 제쳐두고 근래의 심경에 대해 말해보겠네.

僕自到九江已涉三載形骸且健方寸甚安(복자도구강이섭삼재형해차건방촌심안)

내가 구강에 온 지도 어느덧 삼 년이 되었는데, 몸도 웬만한데다가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다네.

 

* 惻惻(측측) : 마음이 슬프고 쓰라리다. 비통해하다. 쓸쓸하다. 처량하다.

* 且置(차이) : 우선은 내버려두다. 다음으로 미루어 문제 삼지 않다.

* 微之(미지) : 원진(元稹)

* () : 문체의 한 종류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하가 황제에게 진언하는 공문 성격의 글로 상서上書 또는 주서奏書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 오가는 개인적인 서찰을 가리킨다.

* 九江(구강) : 지명

* 形骸(형해) : 몸과 몸을 이루는 뼈. 보통은 몸을 가리킨다.

* 方寸(방촌) : 마음을 가리킨다.

 

 

下至家人幸皆無恙.長兄去夏自徐州至又有諸院孤小弟妹六七人提挈同來.(행지가인행개무양. 장형거하자서주지우유제원고소제매육칠인제설동래)

아래로 집안 식솔들도 다행히 모두 건강하게 지내지. 서주에 계신 큰 형님이 지난해 이곳을 찾아오셨고, 또 여러 곳에 있던 어리고 외로운 아우들과 누이들도 함께 와있다네.

 

* 徐州(서주) : 지명

* 提挈(제설) : 정성 들여 키우다. 도와주다. 주재하다. 지배하다. 휴대하다. 지니다.

 

 

昔所牽念者今悉置在目前得同寒暖飢飽此一泰也.(석소견염자금실치재목전득동한난기포차일태야.)

전에는 걱정스러웠던 일이 지금은 모두 눈앞에 있어서 추울 때나 따뜻할 때나나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함께할 수 있으니 그것이 첫째가는 편안함이라네.

* 牽念(견념) : 걱정하다. 괘념하다.

 

 

江州風候稍涼地少瘴癘乃至蛇虺蚊蚋雖有甚稀. 湓魚頗肥江酒極美其餘食物多類北地.(강주풍후초량지소장려내지사훼문예수유심희. 분어파비강주극미기여식물다류북지)

가주의 기후도 점차 시원해져서 습하고 더워서 생기는 질병이 적고 심지어 독사나 모기 같은 것들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네. 분수(심양강)의 고기는 자못 살찌고 강주에서 나는 술은 맛이 좋으며 다른 먹을 것들도 북쪽과 닮은 것이 많다네.

 

* 江州(강주) : 지명

* 蛇虺(사훼) : 뱀을 가리킨다. 악독한 사람을 가리킨다.

* 蚊蚋(문예) : 사람이나 짐승의 피를 빠는 벌레를 가리킨다. 질이 나쁜 사람에 대해서도 쓴다. ‘䘇蚋라고도 쓴다.

* () : 하천 이름(쟝시성江西省에 있는 용개하龍開河의 옛 이름). ‘湓水라고도 쓴다.

* 瘴癘(장려) : 숲 속의 습하고 무더운 기운에 의해 생기는 병을 가리킨다.

 

 

僕門內之口雖不少司馬之俸雖不多, 量入儉用亦可自給身衣口食且免求人此二泰也.(복문내지구수불소사마지봉수부다, 양입검용역가자급신의구식차면구인차이태야)

우리 집 식구들 입이 적지 않고 사마가 받는 녹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것에 맞춰 아껴서 쓰면 자급도 가능해서 몸에 걸치는 옷이나 입으로 먹어야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면할 수 있으니 이것이 두 번째 편안함일세.

 

* 司馬(사마) : 원래는 자사(刺史) 밑에서 군사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였지만 이때에 이르러서는 실권이 거의 없는 한직으로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허울로 붙여진 벼슬에 지나지 않았다.

 

 

僕去年秋始遊廬山, 到東西二林間香爐峰下見雲水泉石勝絶第一愛不能捨,(복거년추시유여산, 도동서이림간향로봉하견운수천석승절제일애불능사)

내가 작년 가을부터 여산을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동쪽과 서쪽 두 숲 사이 향로봉 밑에 이르러 구름과 물, 샘과 돌 등을 보았더니 그 경치가 하도 뛰어나 차마 그곳을 떠나올 수가 없었다네.

 

 

因置草堂前有喬松十數株修竹千餘竿; 靑蘿爲牆垣白石爲橋道; 流水周於舍下飛泉落於簷間; 紅榴白蓮羅生池砌; 大抵若是不能殫記.(인치초당전유교송십수주수죽천여간; 청라위장원백석위교도; 유수주어사하비천낙어첨간; 홍류백련나생지체; 대저약시불능탄기)

그래서 초가집 한 채를 들인 뒤 그 앞에 열 그루 남 짓 키 큰 소나무와 천여 그루 대나무를 심고, 푸른 덩굴로 담장을 삼고 흰빛 돌은 다리위에 깔아두고, 물길은 집 아래를 돌아 흐르고, 폭포수는 처마사이로 떨어지고, 붉은 석류와 하얀 연꽃이 연못과 그 주변에서 자란다네. 사는 것이 이러하니 다 적을 수가 없네그려.

 

* 喬松(교송) : 키가 큰 소나무

* 修竹(수죽) : 키가 큰 대나무

* 飛泉(비천) : 폭포

* () : 다하다.

 

 

每一獨往動彌旬日平生所好者盡在其中不惟忘歸可以終老: 此三泰也.(매일독왕동미순일평생소호자진재기중불유망귀가이종로: 차삼태야)

혼자서 갈 때 마다 열흘씩 돌아보는데 평생에 좋아 했던 것들이 모두 그 안에 있어서 돌아가는 것을 잊을 정도라 (이곳에서) 생을 마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것이 세 번째 편안함이라네.

 

計足下久得僕書必加憂望; 今故錄三泰以先奉報, 其餘事況條寫如後云云.(계족하구득복서필가우망; 금고록삼태이선봉보, 기여사황조사여후운운)

생각은 오랫동안 해 왔지만 내 글이 그대에게 근심과 기대를 보탤 것이라 생각하여 오늘에야 이렇게 세 가지 편안함에 대해 적어 먼저 알리는 것이고, 그 나머지 일들과 형편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뒤에 조목조목 나눠 쓰는 것과 같네.

 

* 條寫(조사) : 나눠서 쓰다.

 

 

微之微之作此書夜正在草堂中山窗下, 信手把筆隨意亂書封題之時不覺欲曙.(미지미지작차서야정재초당중산창하, 신수파필수의난서봉제지시불각욕서)

미지여! 미지여! 초당의 창 밑에서 깊은 밤에 이글을 쓰고 있는데, 붓을 들고 마음 따라 어지럽게 글을 쓰느라 다 쓴 서찰을 봉에 넣을 때까지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네.

 

舉頭但見山僧一兩人或坐或睡; 又聞山猿谷鳥哀鳴啾啾.(거두단견산승일양인혹좌혹수; 우문산원곡조애명추추)

고개를 들어 언뜻 보니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는 것 같기도 한 산승 한둘이 눈에 들어오고, 귀를 기울이니 산에서는 원숭이들이 울고 있고, 골짝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네.

 

平生故人去我萬里瞥然塵念此際蹔生, 餘習所牽便成三韻云:(평생고인거아만리별연진념차제잠생, 여습소견변성삼운운:)

평생의 벗은 멀고 먼 만리 밖에 있는데 이때에 느닷없이 속세 생각이 일어 버릇에 이끌려 바로 삼운시를 지었네.

 

* 瞥然(별연) : 단시간에. 갑자기.

* 塵念(진념) : 세상에 대한 생각

* () : 잠깐. ‘과 같다.

*餘習(여습) : 바뀐 것 없이 익은 버릇대로

*三韻(삼운) : 뒤에 이어지는 시의각운, , , 을 말한다.

 

 

憶昔封書與君夜(억석봉서여군야) : 지난날 그대에게 보낼 글을 쓰던 밤

金鑾殿後欲明天(금란전휴욕명천) : 금란전 뒤로 아침이 밝아왔는데

今夜封書在何處(금야봉서재하처) : 오늘밤엔 어디에서 글을 쓰고 있는가?

廬山庵裡曉燈前(여산암리효등전) : 여산에 있는 암자 속 등불 앞이네

籠鳥檻猿俱未死(농조함원구미사) : 새장 속 새와 우리 안 원숭이 모두 죽기 전

人間相見是何年(인간상견시하년) : 세상에서 서로 볼 날 그 언제일꼬?

 

* 金鑾殿(금란전) : 당대(唐代)에는 궁전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나중에 황제의 정전(正殿)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籠鳥檻猿(농조함원) : 새장 속의 새와 우리 속의 원숭이, 즉 자유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微之微之此夕此心君知之乎!(미지미지차석차심군지지호!)

미지여! 미지여! 오늘밤 내 마음을 그대 아는가!

 

樂天頓首(낙천돈수)

* 頓首(돈수) : (서찰의 처음이나 끝에) 경의(敬意)를 나타내기 위해 쓰는 말이다.

 

 

백거이(白居易 772~846)

당조(唐朝)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조적은 태원(太原)(지금의 산시성(山西省)에 속함) 이지만, 증조부 때 하규(下邽)(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위남渭南 북쪽)로 옮겨 살았다. 조부 백황(白湟)이 공현(巩縣)의 현령을 지낼 때, 신정(新鄭) 현령이 친한 친구였는데, 신정의 산천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을 보고 신정성 서쪽의 동곽택촌(東郭宅村)으로 이사하였다. 백거이는 대종(代宗) 대력(大曆) 7(772) 정월 20일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백(李白)이죽은지 10, 두보(杜甫)가 죽은지 2년 뒤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80029세로 진사에 급제 하였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는 유명하다. 80736세로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좌습유(左拾遺)가 되어 유교적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정치사회의 결함을 비판하는 일군의 작품을 계속 써냈다. 신악부(新樂府) 50수는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이다. 811, 마흔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에는 어린 딸마저 잃자 인생에 있어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814년 태자 좌찬선태부(左贊善太夫)에 임용되었으나, 이듬해에 일찍 이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시가 의 대상이 되었던 고급 관료들의 반감을 사서 구강(九江)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그곳에서 인생에 대한 회의와 문학에 대한 반성을 거쳐 비파행琵琶行(816)을 지었다. 818년 충주자사(忠州刺史)가 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장안(長安)에 돌아왔으나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 822년 자진해서 항주자사(杭州刺史)로 장안을 떠났다. 항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촉발되어 시작을 계속했고, 문학적 지기 원진(元稹)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50, 824)을 편집하게 되었다. 825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전임되었고, 827년에는 중앙으로 올라가 비서감(秘書監)이 되었다. 82958세가 되던 해에 낙양(洛陽)에 영주하기로 결심한 뒤, 하남부(河南府)의 장관이 되었던 때도 있었으나 태자보도관(太子補導官)이라는 명목만의 직책에 자족 하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세 가지 벗으로 삼고 취음선생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날을 보냈다. 831년 원진 등 옛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자 인생의 황혼을 의식하며 낙양 교외 용문(龍門)의 여러 절을 자주 찾았고, 그 곳에 있는 향산사(香山寺)를 복원하여 향산거사라는 호를 쓰며 불교에 빠져 들었다. 이 때에 이르러서는 문학에 대한 충동까지 번뇌로 보아 참회하는 입장에서 광언기어(狂言綺語)의 문집유백창화집劉白唱和集5, 백씨문집白氏文集60권 등을 834839년에 걸쳐 연고 있는 사찰에 봉납하였다. 84271세 때 형부상서(刑部尙書) 대우로 퇴직하였는데, 백씨문집70권에 이르렀다. 그 뒤로도 그의 광영(狂詠)은 계속되었는데 조정의 불교 탄압정책을 풍자하는 작품을 쓰기도 하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75권의 전집을 편정(編定)하였는데, 그것을 완성한 이듬해 무종(武宗) 회창(會昌) 6(846) 8월 낙양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문학은 그의 생애 동안 낭만주의와 이상주의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변모를 거듭 하였으나 언제나 그 안을 일관 했던 것은, 문학이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생활의식이나 생활 감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그의 시는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미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소를 치는 아이나 말을 모는 사람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고, 배나 절의 기둥이나 벽에 쓰이기도 했으며, 멀리 국경 밖 외국으로까지 전해졌다. 특히 그의 시어는 통속적이고 읽기 쉬워서 늙은 할미도 읽고 그의 미를 알수 있다는 뜻의 노구능해(老嫗能解)’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백씨장경집75권 가운데 71, 그리고 백향산시집40권이 있다.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3,800여 수 인데, 그 중에서도 비파행, 장한가,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등은 불멸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되었다.

 

 

원진(元稹 779~831)

자는 미지(微之) 또는 위명(威明)이다. 당조(唐朝) 때 낙양(洛陽) 사람이다. 북위(北魏) 종실인 선비족 탁발부의 후예로 부친 원관(元寬)과 어머니 정씨(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신악부(新樂府)를 제창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 사람을 원백(元白)으로 병칭하였다. 어려서 부친이 세상을 뜬 뒤 어머니를 따라 봉상(鳳翔)에 있는 외가로 가서 자랐다. 정원(貞元) 9(793)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을 제수 한 뒤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다. 정원 19(803) 세도가의 딸 위총(韋叢)과 결혼했다. 직간을 잘 하여 보수적인 관료와 환관들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구세력과 타협 하여 벼슬살이를 했다.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를 지내던 중 진중에서 병사했다. 염시(艶詩)와 도망시(悼亡詩)에 특히 능했다.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60권과 소집小集10권을 남겼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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