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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樂天 白居易 詩

수원구대신재죽유회견기(酬元九對新栽竹有懷見寄) - 백거이(白居易)

by 산산바다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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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구대신재죽유회견기(酬元九對新栽竹有懷見寄) - 백거이(白居易)

             미지(微之)가 대나무를 새로 심고 느낀 감회를 시로 지어 보낸 것에 답하여

 

題注: 頃有贈元九詩云: 有節秋竹竿, 故元感之, 因重見寄.

근자에 (내가) 미지에게 보낸 시에서 말하기를 가을날 대나무 같은 절개를 지녔다(有節秋竹竿)’고 말했더니 그것에 감동한 미지가 다시 시를 지어 보내와서

 

 

昔我十年前(석아십년전) : 십 년 전 내가 과거에 급제하여

與君始相識(여군시상식) : 자네를 처음으로 알게 됐을 때

曾將秋竹竿(증장추죽간) : 자네는 가을날 쭉쭉 뻗은 대나무처럼

比君孤且直(비군고차직) : 짝도 없이 혼자서 곧기만 했지.

中心一以合(중심일이합) : 그러다 마음이 맞는 것을 알았고

外事紛無極(외사분무극) : 바깥일 번거롭고 끝이 없었지만

共保秋竹心(공보추죽심) : 함께 가을 대나무 마음을 간직하고서

風霜侵不得(풍상침부득) : 이런저런 풍상을 잘도 견뎠지.

始嫌梧桐樹(시혐오동수) : 일찍부터 오동나무 싫어했던 건

秋至先改色(추지선개색) : 가을이면 맨 먼저 빛깔 변해서였고

不愛楊柳枝(불애양류지) : 늘어진 버들가지 좋아하지 않은 것도

春來軟無力(춘래연무력) : 봄이 오면 흐늘흐늘 힘이 없었기 때문이네.

憐君別我後(연군별아후) : 헤어진 뒤 자네를 마음에 품고

見竹長相憶(견죽장상억) : 대나무 볼 때마다 자네를 생각하면서

長欲在眼前(장욕재안전) : 오랫동안 만날 날만을 바라오다가

故栽庭戶側(고재정호측) : 대문 옆에 대나무를 심었었다네.

分首今何處(분수금하처) : 지금은 서로가 따로 떨어져

君南我在北(군남아재북) : 자네와 내가 남북으로 갈려 있는데

吟我贈君詩(음아증군시) : 자네에게 보내준 시를 읊으며

對之心惻惻(대지심측측) : 대나무 보는 내 마음 처량도 하네

 

 

이 시는 원화(元和) 5(810) 작이다. 이때 원진은 강릉부(江陵府) 사조참군(士曹參軍)으로 좌천되어 있었고, 백거이는 경조부(京兆府) 호부참군(戶部參軍)으로 있었는데, 대나무를 심고 난 심경을 시로 지어 나누면서 짓게 된 시다.

원진도 이때 대나무를 심고 나서(種竹)란 시를 지었다.

낙천(樂天)이 미지(微之)를 만나 두 사람 사이에 교유가 시작된 것은 정원(貞元) 18(802), 이부(吏部) 임용고시 서판발췌과(書判拔萃科)에 동반 급제했을 때부터였다.

낙천은 홀로 멀리 떨어져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는 미지를 홀로 곧은(孤且直)대나무에 견주어 말하면서 대나무와 같은 곧은 마음으로 함께 격려하고 믿어주며 바깥에서 어떤 일이 소란을 부리더라도 풍상을 잘 이겨낼 것(外事紛無極, 風霜侵不得)을 심심상인(心心相印)하는 벗에게 당부하는 한편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짐하고 싶었을 것이다.

 

 

* 원진(元稹 779~831)

()나라 때 시인으로 자는 미지(微之) 또는 위명(威明)이고 낙양(洛陽) 사람이다. 북위(北魏) 종실인 선비족 탁발부의 후예로 부친 원관(元寬)과 어머니 정씨(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신악부(新樂府)를 제창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둘을 원백(元白)으로 병칭하였다. 어려서 부친이 세상을 뜬 뒤 모친을 따라 봉상(鳳翔)에 있는 외가로 가서 자랐다. 정원(貞元) 9(793)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을 제수한 뒤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다. 정원 19(803) 세도가의 딸 위총(韋叢)과 결혼했다. 직간을 잘하여 보수적인 관료와 환관들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구세력과 타협하여 벼슬살이를 했다.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를 지내던 중 진중에서 병사했다. 염시(艶詩)와 도망시(悼亡詩)에 특히 능했다.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60권과 소집小集10권을 남겼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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