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행로난삼수(行路難三首) - 이백(李白)
세상살이 어려워라
其一
金樽淸酒斗十千(금준청주두십천) : 금 항아리 좋은 술은 한 말에 수천금
玉盤珍羞値萬錢(옥반진수치만전) : 옥쟁반 좋은 안주 일만 냥의 값이어라
停杯投箸不能食(정배투저부능식) : 술잔을 멈추고 젓가락 내던져 먹지 못하고
拔劍四顧心茫然(발검사고심망연) : 칼 뽑아 사방을 둘러보니 마음이 답답하다
欲渡黃河冰塞川(욕도황하빙새천) :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물길 막고
將登太行雪滿山(장등태항설만산) : 태행산에 오르려니 눈이 산에 가득하다
閑來垂釣碧溪上(한내수조벽계상) : 한가히 돌아와 푸른 개울에 낚싯대 드리우다
忽復乘舟夢日邊(홀복승주몽일변) : 홀연히 다시 배에 올라 서울을 꿈꾼다.
行路難 行路難(행로난 행로난) : 세상살이 어려워: 세상살이 어렵구나!
多歧路 今安在(다기노 금안재) : 갈림길 많은데: 난 지금 어디 있는가?
長風破浪會有時(장풍파낭회유시) : 장풍파랑의 큰 뜻: 때맞춰 나타나리.
直挂雲帆濟滄海(직괘운범제창해) : 그러면 바로 구름 같이 높은 돛 달고 창해를 건너리.
다른 해석
金樽淸酒斗十千(금중청주두십천) : 금 항아리 맑은 술 수만 되
玉盤珍羞直萬錢(옥반진수치만전) : 옥쟁반에 귀중한 음식은 만전의 값어치
停杯投箸不能食(정배투저불능식) : 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차마 먹지 못하고
撥劍四顧心茫然(발검사고심망연) : 칼 빼어 동서남북 둘러봐도 마음은 막막하다.
欲渡黃河冰塞川(욕도황하빙식천) :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강을 막고
將登太行雪滿山(방등태행설만산) : 태행산을 오르려니 온산이 눈으로 덮혔네.
閑來垂釣碧溪上(한래수조벽계상) : 한가로이 푸른 시내에 낚시를 드리울까
忽復乘舟夢日邊(홀복승주몽일변) : 갑자기 다시 이윤(伊尹)처럼 발탁되는 꿈이나 꿔 볼까
行路難 行路難(행로난 행로난) : 가는 길이 어려워라! 가는 길이 어려워라
多歧路 今安在(다기로 금안재) : 여러 갈래의 길, 지금 어디가 편안할까?
長風破浪會有時(장풍파랑회유시) :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런 때가 오리니
直掛雲帆濟滄海(직괘운범제창해) : 구름 끝에 돛을 올려 푸른 바다 건너가리.!
* 금 술동이에 맑은 술이 찰랑대니 그 값어치는 만금에 달하는 것이다. 옥쟁반에는 훌륭한 안주가 담겨져 있으니 그 값어치는 만금에 달하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술과 훌륭한 안주를 두고 결국 나는 잔과 젓가락을 놓은 채 술과 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한다. 이에 분연히 칼을 빼어들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음이 막막하기만 하다. 나는 황하를 건너고 싶지만 얼음이 물길을 가로 막고, 태행산을 오르고 싶어도 온 산에 눈이 가득하다. 옛날 강태공처럼 한가롭게 푸른 시냇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다가 홀연 다시 배를 타고 장안으로 가는 꿈을 꾸며 다시 등용되기를 기다린다.
아! 가는 길이 어찌도 이리 어렵단 말인가. 여러 갈래 길 가운데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긴 바람을 타고 만리의 물결을 헤쳐 나갈 때가 있을 것이니, 그날이 오면 나는 곧 구름 같은 돛을 달고 저 창망한 바다를 건너가리라.
* 〈행로난〉은 악부잡곡가(樂府雜曲歌)이다. 이 시는 이백이 천보(天寶) 3년(744)에 지은 작품으로서, 그가 벼슬길에 있다가 장안에서 낙양으로 떠날 시점에 지은 것이다. 이백의 〈행로난〉 제1수는 세상살이의 어려움 때문에 훌륭한 안주와 좋은 술을 대하고도 차마 먹지 못하고 마음만 아득해 지는 느낌을 담아내었다. 〈蜀道難(촉도난)〉과 〈行路難(행로난)〉은 모두 벼슬길의 험난함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태공과 이윤의 고사(故事)를 빌어 다시 長安으로 복귀하여 자신의 포부를 펼칠 날이 왔으면 하는 심사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 斗十千(두십천) : 술의 값어치가 만금에 달한다는 의미이다. ‘十千’은 천의 열 배, 즉 萬을 뜻한다.
* 珍羞(진수) : 진귀하고 맛 좋은 음식을 뜻한다. ‘羞(수)’는 ‘饈(수)’字와 동일하다.
* 拔劍四顧心茫然(발검사고심망연) 欲渡黃河冰塞川(욕도황하빙새천) : 이 구절은 포조(鮑照)의 〈擬行路難(의행로난)〉에, “상을 마주하고 먹을 수 없어, 검을 빼들고 기둥을 치며 길게 탄식한다.[對案不能食 拔劍擊柱長歎息]”라는 시구를 차용한 것이다.
* 太行(태행,태항) : 산 이름으로, 주봉(主峰)은 산서성(山西省) 진성현(晉城縣) 동남부에 있으며, 하북(河北)과 하남(河南)의 경계가 된다. 또한 분하(汾河)의 동쪽, 갈석산(碣石山)의 서쪽으로서 만리장성(萬里長城)과 황하(黃河) 사이에 있는 모든 산이 태행(太行)산맥을 이룬다.
* 滿山(만산) : ‘暗天’이라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垂釣碧溪上(수조벽계상) : 강태공(姜太公)이 위수(渭水)의 반계(磻溪)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가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등용되었다고 한다.
<참고>육도삼략: http://blog.naver.com/swings81/220881118943
* 日邊(일변) :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宋書(송서)》 〈符瑞志(부서지)〉 上에, “이지(伊摯:伊尹)가 탕임금의 부름을 받을 때 배를 타고 해와 달 근처를 지나가는 꿈을 꾸었다.[伊摯將應湯命 夢乘船過日月之傍]”라는 구절이 있다. 이후로 ‘日邊(일변)’은 황제가 있는 서울을 가리키게 되었다.
* 長風破浪(장풍파랑) : 《宋書》 〈宗慤傳(종각전)〉에 의하면, 종각이 어릴 적에 그의 숙부 종병(宗炳)이 그에게 소원을 묻자, 종각이 대답하길 “원컨대, 긴 바람을 타고 만리의 물결을 깨뜨리고 싶습니다.[願乘長風(원승장풍) 破萬里浪(파만리랑)]”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훗날 원대한 포부를 비유하게 되었다.
其二
大道如靑天(대도여청천) : 큰 길은 푸른 하늘과 같은데
我獨不得出(아독부득출) : 나만이 나갈 수가 없구나.
羞逐長安社中兒(수축장안사중아) : 부끄러워라: 장안의 귀족 자제들 쫓아
赤雞白狗賭梨栗(적계백구도리률) : 닭싸움과 흰 개 달리기 놀이로 배와 밤 내기한 것이여
彈劍作歌奏苦聲(탄검작가주고성) : 칼을 휘두르며 노래 불러 괴로움을 알리고
曳裾王門不稱情(예거왕문부칭정) : 왕실에 옷자락 끌며 가는 것은 마 속 마음 아니라네
淮陰市井笑韓信(회음시정소한신) : 회음의 시정배들 한신 장군을 비웃고
漢朝公卿忌賈生(한조공경기가생) : 한조의 공경들은 가생을 기피하네
君不見(군부견) :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昔時燕家重郭隗(석시연가중곽외) : 옛날 연나라가 곽외를 존중하여
擁彗折節無嫌猜(옹혜절절무혐시) : 왕이 비 들고 허리 굽혀도 꺼리고 시기하지 않은 것을
劇辛樂毅感恩分(극신낙의감은분) : 극신과 낙의가 은혜에 감복하여
輸肝剖膽效英才(수간부담효영재) : 간 내고 쓸개 쪼개 충성을 다하여 재주를 다 받쳤네
昭王白骨縈蔓草(소왕백골영만초) : 소왕의 백골도 덩굴과 잡초에 묻혔거니
誰人更掃黃金臺(수인갱소황금태) : 어떤 사람이 다시 소왕의 부름 받아 황금대를 쓸 것인가?
行路難(항노난) : 세상살이 어려워라
歸去來(귀거내) : 차라리 돌아가련다.
* 큰 길은 푸른 하늘같이 넓고 넓건만, 어이하여 나만 홀로 그 길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가. 장안(長安) 저자거리에서 귀공자를 쫓아다니며,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하여 닭싸움과 사냥개 경기에 하찮은 것들을 내걸고 도박하는 것을 나는 수치스럽게 여겼다. 맹상군(孟嘗君)의 식객 풍환(馮驩)처럼 울분에 싸여 칼을 빼어들고 두드리며 강개한 노래로 괴로운 소리 내는 것과, 왕후나 권문세가의 문객이 되어 주위를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보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는구나. 회음(淮陰)의 시정배들은 큰 인물이 될 한신(韓信)의 자질을 몰라보고 오히려 그를 비겁하다 비웃었고, 한(漢)나라의 공경(公卿)들은 가생(賈生)을 시기하여 모함하였고 임금도 그를 멀리하였다.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그 옛날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천하의 현사(賢士)를 초빙하기 위하여 곽외(郭隗)를 먼저 존중해 스승으로 모셨으며, 빗자루 들고 허리 굽혀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을. 이에 극신(劇辛)과 악의(樂毅)가 그 은혜에 감격하여 간을 빼내고 쓸개를 쪼개는 충심을 보이고, 자신들의 빼어난 재능을 아낌없이 바치지 않았는가. 이제 소왕(昭王)은 백골이 되어 덩굴 풀 속에 엉켜있으니, 현사(賢士)를 맞이하던 황금대(黃金臺)를 어느 왕이 다시 비를 들고 쓸겠는가. 가는 길 험난해라. 이제 모든 것을 단념하고 돌아가야 하는가.
* 제2수에서는 불우한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다. 현종(玄宗)의 지우(知遇)를 입어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임명되었지만, 출세를 위하여 권문세족에게 빌붙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주위의 비웃음과 시기를 받아야 했던 한신(韓信)과 가의(賈誼)는 당시 이백의 현실적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천하의 현사를 초빙하기 위하여 몸을 굽혔던 연나라 소왕과 그에 부응하여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펼쳤던 극신(劇辛)과 악의(樂毅)를 통하여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드러내며, 그에 따른 깊은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다.
* 社中兒(사중아) : 부귀가의 자제를 뜻한다. ‘社(사)’는 민간의 조직이나 단체를 일컫기도 하였는데, 여기서는 장안 귀족자제들의 모임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 赤雞白狗(적계백구) : 鬪雞走狗(투계주구)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鬪雞(투계)’는 닭싸움을 뜻하고, ‘走狗(주구)’는 사냥개로 하는 수렵이나 달리기 경주를 뜻하는데, 모두 도박의 놀이이다. 당 현종이 닭싸움을 좋아하여 닭싸움꾼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 彈劍作歌(탄검작가):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마음의 불평을 토로한다는 의미이다. 《史記》의 〈孟嘗君列傳(맹산군열전)〉에, 풍환(馮驩)이라는 식객이 맹상군의 대우에 대한 불만을 품고 칼을 치며 노래하길 “긴 칼아, 돌아갈까 보다. 밥을 먹는데 물고기 반찬이 없구나.[長鋏歸來乎(장협무래호) 食無魚(식무어)]”, “긴 칼아, 돌아갈까 보다. 출타를 하는데 수레가 없구나.[長鋏歸來乎(장협무래호) 出無輿(출무여)]”라고 불평을 노래하였고, 이로 인해 풍환이 점차 좋은 등급의 대우를 받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 曳裾王門(예거왕문): 황후권귀가(王侯權貴家)의 문하에 식객이 되는 것을 뜻한다. 《漢書》 〈鄒陽傳(추양전)〉에, 추양(鄒陽)이 오왕(吳王)에게 보낸 글 가운데 “고루한 마음을 꾸미고자 하였다면 어느 왕의 문하에서인들 긴 옷자락을 끌지 못하겠습니까.[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不可曳長裾乎]”라고 하였는데, 후대에 권세가의 식객이 되는 것을 ‘曳裾(예거)’라 하였다.
* 稱情(칭정) : ‘稱(칭)’은 저울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相當(상당)’ 또는 ‘符合(부합)’의 뜻으로 쓰였다.
* 淮陰市井笑韓信(회음시정소한신): 한신(韓信)이 회음(淮陰)에 살 때, 시정배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나와 조롱을 당한 고사를 인용하였다. 《史記》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에, “회음 시정(市井)의 소년 중 한신을 모욕한 자가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네가 비록 몸이 장대하고 칼을 차고 다니길 좋아하지만 속마음은 겁을 먹고 있을 뿐이다.’라고 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욕을 보이며,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면 나를 찌르고, 죽을 각오가 되지 않았으면 내 가랑이 아래로 나와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때 한신이 한참 그를 보다가 그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 나오며 바닥을 기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신을 비웃으며 겁쟁이로 여겼다.[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曰 若雖長大 好帶刀劒 中情怯耳 衆辱之曰 信能死 刺我 不能死 出我袴下 於是 信熟視之 俛出袴下蒲伏 一市人皆笑信 以爲怯]”라고 하였다.
* 漢朝公卿忌賈生(한조공경기가생): 가의(賈誼)가 한(漢) 문제(文帝)의 신임을 얻어 박사(博士)로 등용되었으나 다른 신하들이 질시하여 장사태부(長沙太傅)로 좌천된 고사를 인용하였다. 《史記》 〈屈原賈生列傳(굴원가생열전)〉에, “천자가 가의에게 공경(公卿)의 지위를 주고자 의논하니 강관(絳灌), 동양후(東陽侯), 풍경(馮敬) 등의 무리들이 모두 방해하며 가의의 단점을 말하기를, ‘낙양의 사람으로 나이 어린 초학자가 오로지 권력을 천단하고자 하여 여러 일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천자는 뒷날 가의를 멀리하고 그의 의론을 쓰지 않았으며, 곧 가의를 장사왕태부(長沙王太傅)로 삼았다.[天子議以爲賈生任公卿之位 絳灌東陽侯馮敬之屬 盡害之 乃短賈生曰 雒陽之人 年少初學 專欲擅權 紛亂諸事 於是 天子後 亦疏之 不用其議 乃以賈生爲長沙王太傅]”라고 하였다.
* 昔時燕家重郭隗(석시연가중곽외): 연(燕)나라 소왕(昭王)은 즉위한 뒤, 현사(賢士)들을 많이 초빙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하였는데, 곽외(郭隗)를 스승으로 초빙한 것을 계기로 많은 현인(賢人)들이 모여들었다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史記》 〈燕昭公世家(연소공세가)〉에, “곽외가, ‘왕께서 반드시 선비들을 부르고자 한다면 저 외(隗)부터 먼저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하물며 저보다 현명한 사람이야 어찌 천 리가 멀다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때 소왕이 곽외를 위하여 궁을 짓고 스승으로 섬기니, 악의(樂毅)가 위나라로부터 왔고, 추연(鄒衍)이 제나라로부터 왔고, 극신(劇辛)이 조나라로부터 오는 등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왔다.[郭隗曰 王必欲致士 先從隗始 況賢於隗者 豈遠千里哉 於是 昭王爲隗改築宮而師事之 樂毅自魏往 鄒衍自齊往 劇辛自趙往 士爭趨燕]”라고 하였다.
* 擁篲折節(옹수절절): 빗자루를 들거나 허리를 굽혀 상대방을 존중하는 행위이다. 《史記》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에, “〈추연(鄒衍)이 연(燕)나라에 오자〉 연(燕) 소왕(昭王)이 빗자루를 들고 앞장섰으며, 제자들이 앉는 자리에 들어가서 수업받기를 청하였다.[昭王擁彗先驅 請列弟子之座而受業]”라고 하였다.
* 劇辛樂毅感恩分(극신악의감은분): 극신(劇辛)과 악의(樂毅)가 연나라 소왕의 예우에 감복하여 신하가 되었음을 뜻한다. 극신(劇辛)과 악의(樂毅)는 각각 조(趙)나라와 위(魏)나라 출신의 모사(謀士)와 병법가(兵法家)로서, 5개 제후국의 동맹을 주도하여 제(齊)나라를 멸망시키는 공을 세웠다.
* 輸肝剖膽(수간부담): 간을 빼내고 쓸개를 쪼개는 것으로, 충심을 다한다는 뜻이다. 《史記》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에, “신이 배와 가슴을 열고 간과 쓸개를 꺼내어 저의 계책을 바친다 하여도 그대가 사용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臣願披腹心 輸肝膽 效愚計 恐足下不能用也]”라고 하였다.
* 黃金臺(황금대) :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천금(千金)을 놓고 천하의 현인들을 초빙하였다고 전하는 대(臺)의 이름이다. 《文選(문선)》 이선(李善)의 주(注)에 《上谷郡圖經(상곡군도경)》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황금대는 역수(易水) 동남쪽 18里에 있는데, 연나라 소왕이 臺 위에 千金을 두고 천하의 선비들을 끌어들였다.[黃金臺 易水東南十八里 燕昭王置千金於臺上 以延天下之士]”라고 하였다. 후에 賢士를 예우하여 초빙하는 전고가 되었다.
其三
有耳莫洗穎川水(유이막세영천수) : 귀 있어도 영천의 물에 씻을 생각 말고
有口莫食首陽蕨(유구막식수양궐) : 입 있어도 수양산 고사릴랑 먹지 말아라.
含光混世貴無名(함광혼세귀무명) : 난세에는 빛을 감추고 무명으로 돌아가라
何用孤高比雲月(하용고귀비운월) : 고고함을 드러내본들 무슨 소용이랴
吾觀自古賢達人(오관자고현달인) : 내가 아는 그 옛날 수많았던 영웅호걸
功成不退皆殞身(공성불퇴개운신) : 높은 공 이루고도 하나같이 몸 다쳤네.
子胥旣棄吳江上(자서기기오강상) : 오자서는 오강에 내버려지고
屈原終投湘水濱(굴원종투상수빈) : 굴원은 상수물가에 몸을 던졌소.
陸機雄才豈自保(륙기웅재개자보) : 육기의 큰 재주가 어찌 자신 한 몸을 보존하였던가.
李斯稅駕苦不早(리사세가고부조) : 재상 이사의 휴식은 아쉽게도 때가 늦었다네.
華亭鶴唳詎可聞(화정학려거가문) : 화정에 학의 울음 어찌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上蔡蒼鷹何足道(상채창응하족도) : 상채의 푸른 송골매를 어찌 말하랴
君不見(군부견) :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吳中張翰稱達生(오중장한칭달생) : 오나라 사람 장한은 통달한 사람이라
秋風忽憶江東行(추풍홀억강동항) :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홀연히 강동으로 돌아갈 생각했다네
且樂生前一杯酒(차낙생전일배주) : 살아서 한 잔 술을 즐기려네.
何須身后千載名(하수신후천재명) : 이 한 몸 죽은 뒤에 천년 이름을 어디에 쓸 건가
* 이 세상에서는 고결함을 지나치게 드러내서는 안 되니, 귀가 있어도 허유(許由)처럼 潁川의 물에 씻지 말 것이요, 입이 있어도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 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의 빛을 감추고 재주와 지혜를 간직한 채 세상과 뒤섞여 무명(無名)의 삶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니, 어찌 자신의 고고(孤高)함을 드러내어 저 하늘의 구름과 달에 스스로를 견줄 필요가 있겠는가.
예로부터 현명하고 통달한 사람들을 내가 보았더니, 功名을 이룬 후 물러나지 않아 결국은 몸을 망치고 죽음에 이르렀다. 오자서(吳子胥) 같은 이는 오강(吳江)에 그 시신이 버려졌고 굴원(屈原) 역시 상수(湘水)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육기(陸機)는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지만 끝내 자신을 지키지 못하였고, 이사(李斯) 또한 일찍 물러나지 않은 탓에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그러니 육기(陸機)가 어찌 화정(華亭)의 학 울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겠으며, 이사(李斯)가 상채(上蔡)에서 매를 가지고 토끼사냥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은 들어보지 못했는가, 진(晉)나라 소주(蘇州)의 장한(張翰) 이야기를. 그는 원래부터 성품이 曠達하여 齊나라 왕 冏이 그에게 벼슬을 주었는데도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문득 고향의 고수나물, 농어회, 순채국이 생각나 즉시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말하였다. “우선 생전에 한 잔 술 마시며 즐거움 누릴 뿐이지, 어찌 하필 죽은 뒤에 천년의 명성 남기려 하느냐”고.
* 이전의 우수(憂愁)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그는 “공을 이룬 뒤 물러나지 않은 이들은 모두 몸을 망쳤다.”고 하면서 오자서(伍子胥), 굴원(屈原), 육기(陸機), 이사(李斯) 등 역사 속의 인물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허유(許由)나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지나치게 고고(孤高)하여 천년 후에도 그 이름이 남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 그는 장한(張翰)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지금의 삶 속에서 한 잔 술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를 희망하지만 거기에는 달관ㆍ체념의 뜻과 아울러 비탄(悲歎)의 기운이 담겨 있다.
* 潁川水(영천수) : ‘潁川(영천)’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다.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인 허유(許由)가 출사(出仕)를 원치 않아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들은 후 이곳에서 귀를 씻었다고 전해진다. 〈高士傳(고사전)〉에, “허유가 중악(中岳), 영수(潁水)의 북쪽 기산(箕山)의 아래에서 밭을 갈았다. 요(堯) 임금이 그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 하니, 그는 그 말을 듣지 않고자 하여 영수(潁水)의 물가에서 귀를 씻었다.[許由耕於中岳 潁水之陽 箕山之下 堯召爲九州長 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之濱]”고 하였다.
<장자 소요유 2장 참조>: http://blog.naver.com/swings81/220889854840
* 首陽蕨(수양궐) : 수양산(首陽山)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이라고도 하고 혹은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굶주리며 은거하던 곳인데, 그들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고 전한다. 《史記》 〈伯夷列傳(백이열전)〉에, “무왕이 은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자 천하가 周나라를 종주로 삼았다. 그러나 백이 숙제만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의리를 지키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서 은거하며 고사리를 캐서 먹었다.[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고 하였다.
<한유의 백이송 참조> : http://blog.naver.com/swings81/220909685905
* 含光混世(함광혼세) : ‘含光(함광)’은 재주와 지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간직하고 있음을 말한다. 含光混世(함광혼세)는 《老子(노자)》의, “지혜의 빛을 부드럽게 하고 속세의 티끌과 함께 한다.[和其光 同其塵]”와 그 뜻이 같다.
* 殞身(운신) : 몸을 버려 죽는 것을 말한다.
* 子胥旣棄吳江上(자서기기오강상) : 오자서(伍子胥)가 충직하게 간언(諫言)하였지만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듣지 않았고, 도리어 오나라 왕에게 사사(賜死)당하여 그 시신이 오강(吳江)에 던져졌다.
* 屈原終投湘水濱(굴원종투상수빈) : 굴원(屈原)은 초(楚)나라 대부(大夫)로 이름은 평(平), 자는 영균(靈均)이다. 회왕(懷王)은 그의 재주를 중히 여겼으나 훗날 근상(靳尙)ㆍ자란(子蘭) 같은 무리에게 참소와 비방을 당해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이에 굴원은 〈離騷(이소)〉 〈漁父(어부)〉 같은 글을 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회왕(懷王)의 아들인 경양왕(頃襄王) 때 굴원은 또다시 멀리 내침을 당하였고, 자신의 충군우국(忠君憂國)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등용되지 못하자 5월 5일에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史記》 〈屈賈列傳(굴가열전)〉에 그의 사적(事蹟)이 자세히 보인다.
<굴원의 어부사 참조> : http://blog.naver.com/swings81/220883875099
* 陸機雄才豈自保(육기웅재개자보) : 육기(陸機)는 오군(吳郡:지금의 江蘇省 吳縣) 사람이다. 그는 吳나라 대사마(大司馬)인 육항(陸抗)의 아들이었는데 오나라가 멸망한 후 진(晉)나라로 들어가 낙양(洛陽)에 이르렀고 장화(張華)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진(晉)나라 혜제(惠帝) 태안(太安) 2년(303),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 등이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를 치는데 육기를 후장군(後將軍) 하북대도독(河北大都督)으로 삼았다. 육기는 왕수(王粹)ㆍ견수(牽秀) 등의 여러 군대를 이끌고 녹원(鹿苑)에서 싸웠는데 그의 군대가 대패하였다. 환관(宦官) 맹구(孟玖)가 육기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참소하니, 사마영은 화가 나서 견수로 하여금 육기를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육기는 사형에 임하여 태연자약한 얼굴로 “화정(華亭)의 학이 우는 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으랴?”고 탄식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 43세였다. 화정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서쪽의 평원촌(平原村)으로 육기 형제가 일찍이 함께 놀던 곳이다. 《晉書(진서)》 〈陸機傳(육기전)〉에 이 일이 자세히 보인다.
* 李斯稅駕苦不早(이사세가고부조) :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상채(上蔡:지금의 河南省 汝南縣 북쪽) 사람이다. 순경(荀卿)을 좇아 배우다가 공부를 끝마치자 서쪽으로 진(秦)나라에 들어가 여불위(呂不韋)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훗날 진(秦)나라 왕(王)에게 등용되었는데, 진나라 왕(진 시황제)이 천하를 평정한 뒤에 이사(李斯)를 승상(丞相)으로 삼으니 법령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사의 장남인 유(由)는 삼천(三川)의 태수(太守)가 되었고 여러 아들들은 모두 진(秦)나라 공주와 결혼하였으며, 딸들은 모두 진(秦)나라의 여러 公子들에게 시집갔다. 삼천의 태수인 이유(李由)가 휴가를 얻어 함양(咸陽)으로 돌아가니 백관(百官)의 장(長)들이 모두 나와 축수(祝壽)하였다. 대문과 뜰에 있는 거기(車騎)를 천(千)으로 헤아릴 정도였는데, 이때 이사는 깊이 탄식하면서 “나는 상채(上蔡)에서 태어난 평민일 뿐인데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자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는 법인데, 나는 언제 어디에서 말의 멍에를 풀고 휴식하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훗날 진시황(秦始皇)이 병들어 죽자 이사는 조고(趙高)에게 무고(誣告)를 당하였는데, 이사의 父子가 도적들과 내통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사는 함양의 저자에서 허리가 잘려 죽는 형벌을 받았다. 형벌을 받기에 앞서 이사는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내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누런 개를 끌고 매를 팔뚝에 얹고서 상채(上蔡) 동문 쪽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라고 하였다. 세가(稅駕)는 말의 멍에를 풀고 수레를 멈춘다는 뜻으로, 휴식함을 이른다. 《史記》 〈李斯列傳(이사열전)〉에 자세히 보인다.
* 張翰(장한) : 자(字)는 계응(季鷹)이고 오(吳)나라 사람이다. 제(齊)나라 왕 경(冏)이 그를 불러서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을 삼았다. 훗날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 吳 땅의 고수나물, 순채국, 농어회가 생각나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경(冏)이 싸움에서 패하자 사람들은 모두 장한이 기미를 미리 알아챈 것이라고 하였다. 장한은 마음 내키는 대로 유유자적 살면서 세상에서 이름을 구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나 죽은 뒤에 이름이 남도록 하느니 차라리 지금 당장 한 잔 술을 마시겠다.[使我有身後名 不如卽時一杯酒]”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광달(曠達)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晉書(진서)》 〈文苑傳(문원전)〉에 자세히 보인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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