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大佛頂首楞嚴經 卷第十
제10권에서는 오음의 근본을 설하여 경의 본론을 끝낸 뒤 이 경의 공덕과 유통에 관하여 부언하였다.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阿難!彼善男子修三摩地,想陰盡者,是人平常,夢想銷滅,寤寐恆一,覺明虛靜,猶如晴空,無復*重前塵影事。觀諸世間,大地河山,如鏡監明,來無所粘,過無蹤迹,虛受照應,了罔陳習,唯一精眞。生滅根元,從此披露,見諸十方,十二衆生,畢殫其類,雖未通其各命由緖,見同生基,猶如野馬。熠熠淸擾,爲浮謗塵,究竟樞穴,此則名爲行陰區宇。
若此淸擾,熠熠元性,性入元澄,一澄元習,如波瀾滅,化爲澄水,名行陰盡。是人則能超衆生濁,觀其所由,幽隱妄想,以爲其本。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제(三摩提)를 닦아서 상음(想陰)이 다 사라지면, 평소에도 꿈과 생각이 소멸하여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깨달음의 밝음이 맑게 개인 하늘처럼 비고 고요하여, 거칠고 무거운 앞 경계의 그림자 모양이 없어지느니라. 세상의 대지와 산과 강들을 보아도 거울이 밝게 비치듯 와도 와서 붙는 일이 없고 가도 간 흔적이 없다. 빈 그대로 받아들여 비춰 응해서 전혀 묵은 습기[陳習]도 없고, 오직 하나의 정교한 진실뿐이니라. 여기에 생멸의 근원이 열려 드러남으로, 시방의 12류 중생들이 종류마다 생기는 곳을 죄다 보게 되느니라. 비록 아직은 각 생명이 유래한 시초[各命由緖; 識陰]를 통하지 못했을지라도, 같이 태어나는 공동의 터[同生基]가 마치 아지랑이가 번들거리듯 맑게 흔들리면서 뜬 감관[浮根塵]이 짜이는 구경의 주요 원천[究竟樞穴]을 보느니라. 이를 행음의 보금자리[行陰區宇]라고 한다.
만일 이 맑게 흔들려 번들거리는 근원의 성품이 그 성품[性] 그대로 원래 고요한 자리[元澄; 識陰]에 들어가서 단번에 원래의 습기를 가라앉히면, 마치 파도가 사라져서 고요한 물로 화한 것과 같은 상태를 행음(行陰)이 다 사라진 경계라고 하며, 이 경계에 든 사람은 능히 중생탁(衆生濁)을 초월하느니라. 그 행음(行陰)에 가린 까닭을 살펴보면, 깊이 숨은 망상[幽隱妄想]이 근본이니라.
阿難!當知是得正知,奢摩他中,諸善男子,凝明正心,十類天魔,不得其便,方便精硏,窮生類本∘於本類中,生元露者,觀彼幽淸,圓擾動元,於圓元中,起計度耆,是人墜入二無因論∘
아난아, 잘 알아야 한다. 바른 지견을 얻고 사마타(奢摩他)에 든 선남자들은 밝음을 굳히고 마음을 바로잡아 열 가지 하늘 마가 그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비로소 정교하게 연마하여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이 때 태어나는 근본 종류 가운데 태어나는 근원이 드러난 행자가 저 깊고 맑고 원만하게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원만한 근원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두 가지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二無因論]에 떨어지느니라.
一者,是人見本無因∘何以故?是人旣得生機全破,乘於眼根八百功德,見八萬劫所有衆生,業流灣環,死此生彼,衹見衆生輪迴其處,八萬劫外,冥無所觀∘便作是解:此等世間,十方衆生,八萬劫來,無因自有∘由此計度,亡正遍知,墮落外道,惑菩提性∘
첫째는 이 사람은 근본[本]을 보고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은 이미 생겨나는 틀이 완전히 무너진 경계를 얻었으니, 눈 감관의 8백 공덕에 의지하여 8만 겁 안에 있는 중생들이 업의 흐름을 따라 굽이돌며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나는 모양을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지 중생이 그 곳에서 윤회하는 모양만 볼 뿐, 8만 겁을 떠나서는 아득하여 본 일이 없으니 '이 세간의 시방 중생은 8만 겁 동안 원인 없이 저절로 있다'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헤아리기 때문에 두루 아는 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二者,是人見未無因∘何以故?是人於生,旣見其根,知人生人,悟鳥生鳥,烏從來黑,鵲從來白,人天本豎,畜生本橫,白非洗成,黑非染造,從八萬劫,無復改移∘今盡此形,亦復如是,而我本來,不見菩提,云何更有成菩提事?當知今日,一切物象,皆本無因∘由此計度,亡正遍知,墮落外道 惑菩提性;是則名爲第一外道,立無因論∘
둘째는 이 사람은 끝[末]을 보고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사람은 태어나는 데서 이미 그 근본을 보았으니, 사람은 사람을 낳는 줄 알고, 새는 새를 낳고 까마귀는 본래 검고 고니는 본래 희며, 사람과 하늘[天]은 서서 다니고 축생은 기어 다니며, 흰 것은 씻어서 희어진 것이 아니고, 검은 것은 물들여 검어진 것이 아니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만 겁 동안 더 이상 달리 바뀌는 일이 없으니, 이제 이 형상을 다할지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본래 보리를 본 적이 없는데, 어찌 다시 보리를 이루는 일이 있겠는가. 마땅히 현재[今日]의 일체 물상은 다 본래 원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생각 때문에 두루 아는 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첫 번째 외도가 내세운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無因論]'라고 한다.
阿難!是三摩中諸善男子,凝明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圓常中,起計度者,是人墜入四遍常論∘
아난아, 이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은 밝음을 굳히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항상 원만한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두루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논리[四徧常論]에 떨어지느니라.
一者,是人窮心境性,二處無因,修習能知,二萬劫中,十方衆生,所有生滅,咸皆循環,不曾散失,計以爲常∘
二者,是人窮四大元,四性常住,修習能知,四萬劫中,十方衆生,所有生滅,咸皆體恆,不曾散失,計以爲常∘
三者,是人窮盡六根,末那執受,心意識中,本元由處,性常恆故,修習能知,八萬劫中,一切衆生,循環不失,本來常住,窮不失性,計以爲常∘
四者,是人旣盡想元,生理更無,流止運轉,生滅想心,今已永滅,理中自然,成不生滅,因心所度,計以爲常∘由此計常,亡正遍知,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二外道,立圓常論∘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과 경계의 본질에서 두 곳이 원인이 없는 이치를 추궁하여 닦고, 2만 겁 가운데 시방 중생이 소유한 생멸은 모두 다 순환하여 잠깐도 흩어지거나 잃지 않음을 알고는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4대(大)의 근원을 추궁하여 네 성질이 항상 머무는 이치를 닦고, 4만 겁 가운데 시방 중생이 소유한 생멸이 모두 다 자체가 항일(恒一)하여 잠깐도 흩어지거나 잃지 않음을 알고는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여섯 감관[6根; 6識의 뜻]과 7식과 8식[執受; 8식]을 끝까지 추궁하여,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본원의 유래한 곳은 성품이 영원히 항일하므로 그대로 닦아서, 8만 겁 가운데 일체중생이 순환하여 잃지 않음을 본래 영원히 머무는 진리로 알고, 잃지 않는 성품을 추궁하며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넷째는 이 사람은 '상음[想]의 근원이 다 없어졌으니, 생(生)의 이치는 더 이상 흐르거나 멈추거나 옮기거나 구르는 일이 없다. 생멸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제 이미 영원히 멸했으니, 이치 가운데 자연히 생멸이 아닌 법을 성취한 것이리라'고 헤아리는 마음으로 인하여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영원하다는 생각 때문에 두루 아는 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두 번째 외도가 내세우는 원만한 영원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自他中,起計度者,是人墜入四顚倒見,一分無常,一分常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은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자타(自他)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소견의 한 편은 영원하지 않고 한 편은 영원하다는 논리'에 떨어지느니라.
一者,是人觀妙明心,遍十方界,湛然以爲究竟神我,從是則計,我遍十方,凝明不動,一切衆生,於我心中,自生自死,則我心性,名之爲常,彼生滅者,眞無常性∘
二者,是人不觀其心,遍觀十方恆沙國土,見劫壤處,名爲究竟,無常種性;劫不壤處,名究竟常∘
三者,是人別觀我心,精細微密;猶如微塵,流轉十方,性無移改,能令此身,卽生卽滅,其不壞性,名我性常;一切死生,從我流出,名無常性∘
四者,是人知想陰盡,見行陰流,行陰常流,計爲常性,色受想等,今已滅盡,名爲無常∘由此計度,一分無常,一分常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三外道,一分常論∘
첫째는 이 사람이 묘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원만함을 관찰하고는 고요한 경계[湛然]를 구경의 신비한 나[究竟神我]로 여기고, 여기서 생각하기를 '나는 시방에 두루 밝음을 굳혀서 흔들리지 않으나, 일체중생은 나의 마음 가운데서 저절로 생겼다가 저절로 죽을 뿐이니, 나의 심성(心性)은 영원하고 저 생하고 멸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은 관찰하지 않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시방국토만을 두루 관찰하여, 겁이 무너지는 곳을 보고는 끝까지 영원하지 않는 종류[種性]라 하고, 겁이 무너지지 않는 곳을 보고는 끝까지 영원한 경지라고 하느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따로 관찰하기를 '나의 마음은 정밀하고 미세함이 마치 미세한 티끌과 같아서, 시방에 흐르고 굴러도 성품은 옮기거나 바뀌지 않는 가운데 이 몸을 생기게 하고 멸하게 한다'고 하여, 그 무너지지 않는 본질을 나의 성품의 영원이라 하고, 일체 생사는 나에게서 흘러나왔으니 영원하지 않는 성질이라고 하느니라.
넷째는 이 사람은 상음(想陰)이 다 사라졌음을 알고 행음(行陰)의 흐름을 보면서, 행음이 항상 흐르는 상태를 영원한 본질로 생각하고,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과 상음(想陰)은 이제 이미 멸하여 없으니 영원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이렇게 한 편은 영원하지 않고 한 편은 영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세 번째 외도가 내세운 한 편이 영원하다는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分位中,生計度者,是人墜入四有邊論∘
一者,是人心計生元,流用不息,計過未者,名爲有邊;計相續心,名爲無邊
二者,是人觀八萬劫,則見衆生八萬劫前,寂無聞見,無聞見處,名爲無邊;有衆生處,名爲有邊∘
三者,是人計我遍知,得無邊性,彼一切人,現我知中,我曾不知彼之知性;名彼不得,無邊之心,但有邊性∘
四者,是人窮行陰空,以其所見,心路籌度,一切衆生,一身之中,計其咸皆半生半滅,明其世界,一切所有,一半有邊,一半無邊∘由此計度,有邊無邊,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四外道,立有邊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나뉘어진 자리[分位]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한계가 있다는 논리[有邊論]'에 떨어지느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으로 태어나는 근원의 흐르는 작용이 쉬지 않는다고 헤아려서, 과거와 미래를 한계 있는 경계[有邊]로 생각하고, 현재 상속하는 마음을 한계 없는 경계[無邊]로 생각하느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8만 겁을 보면 중생들이 보이지만, 8만 겁 이전은 적막하여 듣거나 본적이 없으니, 듣거나 본적이 없는 곳을 한계 없는 경계라 하고, 중생이 있는 곳을 한계 있는 경계라고 하느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두루 알아서 한계 없는 성품을 얻었으니, 저 모든 사람은 내가 두루 아는 경계에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조금도 저들의 아는 성품을 알지 못하는 것은, 저들은 한계 없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단지 한계 있는 성질만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넷째는 이 사람이 행음(行陰)의 공한 이치를 추궁한 소견으로 마음의 길을 따라 일체중생의 한 몸을 깊이 따져보고, 모두 다 반은 생하고 반은 멸한다고 생각하여, 그 세계의 일체 소유(所有)도 절반은 한계 있는 경계로, 절반은 한계 없는 경계로 밝히느니라.
이렇게 한계 있는 경계와 한계 없는 경계를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네 번째 외도가 내세운 네 가지 한계 있는 논리[有邊論]'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知見中,生計度者,是人墜入四種顚倒,不死矯亂,遍計虛論∘
一者,是人觀變化元,見遷流處,名之爲變;見相續處,名之爲恆;見所見處,名之爲生;不見見處,名之爲滅;相續之因,性不斷處,名之爲增;正相續中,中所離處,名之爲滅;各各生處,名之爲有;互互亡處,名之爲無;以理都觀,用心別見,有求法人,來問其義,答言:我今亦生 亦滅,亦有 亦無,亦增 亦減,於一切時,皆亂其語,令彼前人,遺失章句∘
二者,是人諦觀其心,互互無處,因無得證,有人來問,唯答一字,但言其無,除無之餘,無所言說∘
三者,是人諦觀其心,各各有處,因有得證,有人來問,唯答一字,但言其是,除是之餘,無所言說∘
四者,是人有無俱見,其境枝故,其心亦亂,有人來問,答言亦有,卽是亦無,亦無之中,不是亦有,一切矯亂,無容窮詰∘由此計度,矯亂虛無,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五外道,四顚倒性,不死矯亂,遍計虛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지견(知見)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소견으로 죽지 않는 뜻을 교란(矯亂)하여 두루 헤아리는 헛된 논리'에 떨어지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변화의 근원을 관찰하여 옮겨 흐르는 곳을 보고는 변한다고 하며, 상속(相續)하는 곳을 보고는 한결같다고 하며, 보이는 곳을 보고는 생(生)이라 하며, 보는 곳이 보이지 않으면 멸(滅)이라 하며, 상속의 원인에서 그 성질이 끊어지지 않는 곳을 불어난다[增]고 하며, 상속하는 가운데 사이[中]가 여읜 곳을 줄어든다[減]고 하며, 각각 생기는 곳을 있다[有]고 하며, 서로 서로 없어지는 곳을 없다[無]고 한다. 이치로는 전체를 다 관찰하면서 마음을 쓸 때는 별도로 보고, 법을 구하는 사람이 와서 그 뜻을 물으면 '나는 이제 생기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불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고 답하여, 언제든지 모두 그 말을 어지럽히면서 앞사람에게 글귀[章句]를 잃게 하느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이 서로 서로 없어지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여 무(無)로 인해서 증득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로 답하여 무(無)라고 말할 뿐, 무(無)라는 말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느니라.
셋째는 이 사람은 그 마음이 각각 있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여 유(有)로 인해서 증득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로 답하여 이것[是]이라고 말할 뿐 이것이란 말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느니라.
넷째는 이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함께 보다가 그 경계가 갈라지므로 그 마음도 어지러워져서,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있기도 한 것이 곧 없기도 한 것이며, 없기도 한 가운데 있기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여 일체를 교란(矯亂)하여 따질 수 없게 하느니라.
이렇게 허무(虛無)한 교란을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다섯 번째 네 가지 뒤바뀐 소견으로 죽지 않는 뜻을 교란하여 두루 헤아리는 헛된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無盡流,生計度者,是人墜入死後有相,發心顚倒∘或自固身,云色是我;或見我圓,含遍國土,云我有色;或彼前緣,隨我迴復,云色屬我;或復我依,行中相續,云我在色∘皆計度言,死後有相,如是循環,有十六相,從此或計,畢竟煩惱,畢竟菩提,兩性並軀,各不相觸∘由此計度,死後有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六外道,立五陰中,死後有相,心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끝없이 흐르는 경계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모양이 있다고 마음을 내는 뒤바뀜'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스스로 몸을 굳게 지켜서 색(色)이 바로 나라 하기도 하며, 혹은 나는 원만하게 국토를 두루 머금었다고 보고 나는 색을 소유[有]했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저 앞의 인연이 나를 따라 회복된다고 하여 색은 나에게 속했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또 나는 행음(行陰)의 상속을 따른다 하여 나는 색 안에 있다고 하기도 하면서, 모두 헤아려 말하기를 '죽은 뒤에 상이 있다'고 하므로, 이와 같이 순환하여 열여섯 모양이 있게 되느니라.
이로부터 혹은 번뇌는 끝까지 번뇌이고 보리는 끝까지 보리이니, 두 성품이 나란히 달려도 각기 서로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 모양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여섯 번째 외도가 내세운 5음(陰) 가운데서 죽은 뒤에 모양이 있다고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先除滅,色受想中,生計度者,是人墜入死後無相,發心顚倒∘見其色滅,形無所因,觀其想滅,心無所繫,知其受滅,無後連綴,陰性銷散,縱有生理,而無受想,與草木同∘此質現前,猶不可得,死後云何更有諸相?因之勘校,死後相無,如是循環,有八無相∘從此或計,涅槃因果,一切皆空,徒有名宇,究竟斷滅∘由此計度,死後無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七外道,立五陰中,死後無相,心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먼저 멸한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과 상음(想陰)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마음을 낸 뒤바뀜'에 떨어지느니라.
그 색음(色陰)이 멸한 자리를 보고 형체는 원인 할 곳이 없다고 하며, 그 상음(想陰)이 멸한 자리를 보고 마음에 얽매인 경계가 없다고 하며, 그 수음(受陰)이 멸한 자리를 알고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연결될 수 없다고 하면서 '음(陰)의 성질이 소멸하여 흩어져버렸으니, 비록 태어나는 이치가 있더라도 수음[受]과 상음[想]이 없음으로 초목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앞에 있는 이 몸[質]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죽은 뒤에 어찌 더 이상 온갖 모양이 있으랴'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곰곰이 따져서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하므로, 이와 같이 순화하여 여덟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견해가 있게 되느니라. 이로부터 혹은 열반의 원인과 결과도 일체 공하여 이름만 있을 뿐, 구경에는 아무것도 없다[斷滅]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일곱 번째 외도가 내세운 5음(陰) 가운데서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마음을 낸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行存中,兼受想滅,雙計有無,自體相破,是人墜入死後俱非,起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행음(行陰)이 있는 가운데서 수음(受陰)과 상음(想陰)의 멸한 경계를 겸하여 쌍으로 있고 없는 모양을 헤아려 자체의 모양을 파하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함께 부정[俱非]하는 뒤바뀜을 일으킨 논리'에 떨어지느니라.
色受想中,見有非有,行遷流內,觀無不無,如是循環,窮盡陰界,八俱非相,隨得一緣,皆言死後,有相無相∘又計諸行,性遷訛故,心發通悟,有無俱非,虛實失措∘由此計度,死後俱非,後際昏瞢,無可道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八外道,立五陰中,死後俱非,心顚倒論∘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과 상음(想陰) 가운데서 있는 것을 보아도 있는 것이 아니며, 행음(行陰)이 흘러 옮기는 속에서 없는 것을 보아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이와 같이 순환하여 음의 경계[陰界]를 추궁하여 다하고 여덟 가지 함께 부정하는 모양[八俱非相]을 한 연[一緣; 四陰의 한 연씩]마다 따라 얻고는, 다 죽은 뒤에 유상(有相)이며, 무상(無相)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온갖 행(行)의 성질이 옮겨 달라진다고 헤아리기 때문에, 마음에 통하여 깨달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유무(有無)를 함께 부정하면서 허와 실을 종잡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 함께 부정하는 경계를 헤아림에 따라 뒤의 경계는 어리둥절하여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잃어버리느니라. 이를 '여덟 번째 외도가 세운 5음(陰)가운데서 죽은 뒤에 함께 부정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後後無,生計度者,是人墜入七斷滅論∘或計身滅,或欲盡滅,或苦盡滅,或極樂滅,或極捨滅;如是循環,窮盡七際,現前消滅,滅已無復∘由此計度,死後斷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九外道,立五陰中,死後斷滅,心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뒤로 계속 없는 곳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7단멸론(斷滅論)'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몸[身; 欲界의 人天]을 단멸이라 생각하고, 혹은 욕심이 다한 곳[欲盡; 初禪天]을 단멸이라 하며, 혹은 괴로움이 다한 곳[苦盡; 二禪天]을 단멸이라 하고, 혹은 지극히 즐거운 곳[極樂; 三禪天]을 단멸이라 하며, 혹은 지극히 평등한 곳[極捨; 四禪天과 無色界]을 단멸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순환하여 일곱 경계를 끝까지 추궁하여, 현재 눈앞에 소멸하여 멸하고 나면 더 이상 돌아오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斷滅]고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아홉 번째 외도가 세운 5음 가운데서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소견으로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後後有,生計度者,是人墜入五涅槃論∘或以欲界,爲正轉依,觀見圓明,生愛慕故;或以初禪,性無憂故;或以二憚,心無苦故;或以三禪,極悅隨故;或以四禪,苦樂二亡,不受輪迴,生滅性故;迷有漏天,作無爲解,五處安隱,爲勝淨依,如是循環,五處究竟∘由此計度,五現涅槃,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十外道,立五陰中,五現涅槃,心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뒤로 계속 있는 곳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다섯 열반(涅槃)의 논리'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욕계천[欲界]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正轉依]으로 삼는 것은 원만한 밝음을 보고 애착하여 사모하기 때문이며, 혹은 초선천[初禪](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성품에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이선천(二禪天)(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마음에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삼선천(三禪天)(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지극한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며, 혹은 사선천(四禪天)(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없어서 생멸의 윤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뇌가 있는 하늘을 무위(無爲)의 경지로 잘못 알고, 다섯 곳의 안온함을 뛰어나게 깨끗한 의지처(勝淨依)로 여기고, 이렇게 순환하여 다섯 곳을 구경(究竟)으로 삼느니라.
이렇게 다섯 곳을 현재 그대로 열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열 번째 외도가 세운 5음(陰) 가운데서 다섯 곳을 현재 그대로 열반이라는 소견으로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阿難!如是十種禪那狂解,皆是行陰,用心交互,故現斯悟∘衆生頑迷,不自忖量,逢此現前,以迷爲解,自言登聖,大妄語成,墮無間獄∘汝等必須將如來語,於我滅後,傳示末法,遍令衆生,覺了斯義,無令心魘自起深孽,保持覆護,消息邪見;敎其身心,開覺眞義,於無上道,不遭枝岐,勿今心祈,得少爲足,作大覺王,淸淨標指∘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禪那)의 미친 견해[狂解]는 모두 행음(行陰)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엇갈려 다투는 까닭에 이러한 깨달음이 나타나지만, 중생들은 완고하게 미혹하여 스스로 헤아리지 못해서, 이러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미혹을 견해[解]로 삼고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노라 하면서 대망어(大妄語)를 지어 무간지옥[無間獄]에 떨어지느니라.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을 간직해서 내가 열반한 뒤 말법(末法)에 전하여, 중생들이 두루 이 뜻을 깨달아서 마음의 마가 스스로 깊은 재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지키고 보호하여 삿된 견해를 소멸케 하여라. 또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한 뜻을 열어 깨닫도록 가르쳐서 더없이 높은 도에 헷갈린 길[枝岐]을 만나지 않게 하고, 마음에 조금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이 없게 하여, 부처님[大覺王]이 목적한 청정한 뜻을 이루도록 하여라.
阿難!彼善男子,修三摩地,行陰盡者,諸世間性,幽淸擾動,同分生機,倏然隳裂,沈細綱紐,補特伽羅,酬業深脈,感應懸絶∘於涅槃天,將大明悟,如雞後嗚,瞻顧東方,已有精色∘六根虛靜,無復馳逸,內外湛明,入無所入∘深達十方,十二種類,受命元由;觀由執元,諸類不召,於十方界,已獲其同;精色不沈,發現幽秘,此則名爲識陰區宇∘
若於群召,已獲同中,銷磨六門,合開成就,見聞通鄰,互用淸淨∘十方世界及與身心,如吠*璃,內外明徹,名識陰盡∘是人則能超越命濁,觀其所由,罔象虛無,顚倒妄想,以爲其本∘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제(三摩提)를 닦아서 행음(行陰)이 다 사라지면, 모든 세간의 본질[性]인 깊고 맑게 요동하는 공동의 생명 틀[同分生機]에서 문득 미세하게 잠긴 주요매듭[沈細綱紐]이 허물어지고, 또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업을 갚는 깊은 맥에서 감응(感應)이 멀리 끊어지니, 열반의 하늘에 장차 크게 깨달음이 밝으려는 조짐은 마치 나중에 우는 닭소리를 듣고 동쪽을 돌아보면 이미 정교한 빛깔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에 여섯 감관이 비고 고요하여 더 이상 치달음이 없고 안과 밖이 고요히 밝아서 들어가도 들어갈 곳이 없는데 이르러, 시방의 12류 중생이 생명을 받는 근원[元]과 유서[由]를 깊이 사무쳐서 유서(由緖)를 보고 근원을 잡으니, 온갖 종류가 생명을 불러들이지[召] 못한 가운데, 시방의 유정 경계[界]에 이미 동화[同]하는 능력을 얻게 되며, 정교한 색(色)이 잠기지 않고 그윽한 생명의 비밀[幽祕]이 열려 나타나느니라. 이를 식음(識陰)의 보금자리라고 한다.
만일 여러 종류들이 생명을 불러들이는 곳에서 이미 동화하는 능력을 얻은 가운데, 여섯 문[六門; 六根]을 소멸하고 합쳐 여는 능력을 성취하면, 보고 듣는 작용이 가깝게 통해서 서로 융통한 작용[互用]이 청정하여, 시방세계와 몸과 마음이 폐유리(吠瑠璃)와 같이 안과 밖이 밝게 사무친 상태를 식음(識陰)이 다 사라진 경계라고 하며, 이 경계에 이른 사람은 능히 명탁(命濁)을 초월하느니라. 그 식음(識陰)에 가린 까닭을 살펴보면, 있는 듯하나 없는 모양이 허무한 뒤바뀐 망상[罔象虛無顚倒妄想]이 근본이니라.
阿難!當知是善男子,窮諸行空,於識還元,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能令己身根隔合開,亦與十方諸類通覺,覺知通㳷,能入圓元∘若於所歸,立眞常因,生勝解者,是人則墮,因所因執,娑毗迦羅,所歸冥諦,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一,立所得心,成所歸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外道種∘
아난아, 잘 알아야 한다.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식음[識]에서 근원을 돌이켜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니 자기 몸에 따로 막혀 작용하는 감관을 합쳐 열고, 시방의 온갖 종류와 통하여 깨달아서 깨달아 아는 작용이 꼭 맞게 뚫려야만, 원만한 근원으로 들어갈 수 있느니라.
여기서 만일 돌아갈 곳에 영원한 진리의 원인[眞常因]을 세우고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원인을 세운 곳에 원인을 두는 집착에 떨어져서, 사비가라(娑毘迦羅)와 같이 명제(冥諦)로 돌아가 의지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여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첫 번째 소득(所得)이 있는 마음을 세우고 돌아간 결과[所歸果]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외도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阿難!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所歸,覽爲自體,盡虛空界,十二類內,所有衆生,皆我身中,一類流出∘生勝解者,是人則墮;能非能執,摩醯首羅,現無邊身,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二,立能爲心,成能事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大慢天,我遍圓種∘
아난아,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돌아갈 곳[識陰]을 자체(自體)로 보고 '온 허공세계의 12류 중생은 모두 나의 몸속에서 한 종류로 흘러나왔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할 수 없는 데서 할 수 있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마혜수라(摩醯首羅)와 같이 한없는 몸을 나타내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두 번째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세우고 할 수 있는 일의 결과[能事果]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나는 두루 원만하다는 대만천(大慢天)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所歸,有所歸依,自疑身心,從彼流出,十方虛空,咸其生起,旣於都起,所宣流地,作眞常身,無生滅解∘在生滅中,早計常住,旣惑不生,亦迷生滅,安住沈迷∘生勝解者,是人則墮,常非常執,計自在天,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三,立因依心,成妄計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倒圓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돌아갈 곳에 돌아가 의지할 곳이라 하여, 스스로 의심하기를 '몸과 마음은 저기에서 흘러나왔으며, 시방의 허공도 다 저기에서 생겨났다'고 하면, 곧 모두 일으켜 떨쳐 흐르는 자리[都起所宣流地]를 영원히 머무는 진리의 몸[眞常身]으로 여겨 생멸이 없는 법으로 아느니라. 이것은 생멸 가운데 있으면서 미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常住]라고 생각한 것이니, 이미 생멸을 떠난 진리도 모를 뿐 아니라, 생멸 자체도 미혹한 것이니라. 이렇게 편안히 머물러 미혹에 잠겨 있으면서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져서 자재천(自在天)과 같이 생각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세 번째 의지하는 마음[因依心]을 세우고 허망한 헤아림의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뒤바뀐 원만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所知,知遍圓故,因知立解,十方草木,皆稱有情,與人無異∘草木爲人,人死還成十方草樹,無擇遍知∘生勝解者,是人則墮,知無知執,婆吒霰尼,執一切覺,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四,計圓知心,成虛謬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倒和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아는 경계에서 아는 능력이 두루 원만한 까닭에 아는 능력을 따라 견해를 세우면, '시방의 풀과 나무들도 다 유정(有情)으로서 사람과 다름이 없으니, 풀과 나무들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다시 시방의 풀과 나무가 되는 일을 가리지 않고 두루 안다'고 하느니라.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져서 파타(婆吒)나 선니(霰尼)와 같이 일체를 깨달았다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네 번째 원만하게 아는 마음을 헤아려 허망하고 그릇된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뒤바뀐 지견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圓融,根互用中,已得隨順,便於圓化,一切發生,求火光明,樂水淸淨,愛風周流,觀塵成就,各各崇事,以此群塵,發作本因,立常住解,是人則墮,生無生執∘諸迦葉波,幷婆羅門,勤心役身,事火崇水,求出生死,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五,計著崇事,迷心從物,立妄求因,求妄冀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顚化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하게 융통한 감관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서 이미 순조롭게 따르는 능력을 얻고는, 곧바로 '원만한 변화에서 일체가 발생한다'고 하여, 불의 요소에서 광명(光明)의 이치를 구하고, 물의 요소에서 맑은 이치를 즐기고, 바람의 요소에서 두루 흐르는 이치를 좋아하고, 흙[塵]의 요소에 성취하는 이치를 관찰하여, 각각 숭배하고 섬기면서, 이 여러 요소[群塵]가 일으켜 짓는 근본원인을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 여기는 견해를 세우면, 이 사람은 생멸이 없는 법[無生]을 생긴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모든 가섭파(迦葉波)와 바라문(婆羅門)들과 같이 열심히 마음을 닦고 몸을 부려 불을 숭배하고 물을 섬기며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다섯 번째 숭배하고 섬기는 일을 생각해서 집착하고 마음을 미혹하여 물체를 따르면서 허망하게 구하는 원인을 세우고 허망하게 바라는 결과를 찾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뒤바뀐 변화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圓明,計明中虛,非滅群化,以永滅依,爲所歸依∘生勝解者,是人則墮,歸無歸執,無相天中,諸舜若多,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六,圓虛無心,成空亡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斷滅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뚜렷이 밝은데서 밝음이 텅 비었음을 헤아려 온갖 변화를 완전히 멸[非滅; 絶滅]하여, 영멸의(永滅依; 外道의 涅槃)로써 돌아가 의지할 곳을 삼고,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돌아갈 곳이 없는 데를 돌아가려는 집착에 떨어져서, 무상천(無想天)의 순야다(舜若多; 空性에 집착한 部類)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여섯 번째 원만하게 비어 없는 마음[圓虛無心]으로 공하여 없는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단멸(斷滅)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圓常,固身常住,同于精圓,長不傾逝∘生勝解者,是人則墮,貪非貪執,諸阿斯陀,求長命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七,執著命元,立固妄因,趣長勞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妄延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는 자리[圓常]에 몸을 굳혀 영원히 머물러서, 정밀한 원만함과 한 가지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탐하지 않아야 할 것을 탐내는 집착에 떨어져서, 아사타(阿斯陀)들과 같이 긴 수명을 구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일곱 번째 생명의 근원을 집착하여 견고한 허망의 원인[妄因]을 세우고 긴 수고로움의 결과로 향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涅槃城]을 등져서 허망하게 수명을 늘리는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觀命互通,卻留塵勞,恐其銷盡,便於此際,坐蓮華宮,廣化七珍,多增寶媛,恣縱其心∘生勝解者,是人則墮,眞無眞執,吒枳迦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八,發邪思因,立熾塵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天魔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생명이 서로 융통함을 관찰하고 문득 번뇌[塵勞]에 머물러서, 그것이 스러져 사라질까 염려하여, 곧 이 기회에 연화궁전에 앉아서 널리 일곱 가지 보배를 변화시키고, 보배로운 아가씨들을 많이 불려서, 마음껏 즐기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여기는 집착에 떨어져서, 타기(吒枳)와 가라(迦羅)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여덟 번째 삿된 사유의 원인[邪思因]을 일으켜 진로번뇌를 치성케 하는 결과[熾塵果]를 세운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천마(天魔)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於命明中,分別精麤,疏決眞僞,因果相酬,唯求感應,背淸淨道,所謂見苦斷集,證滅修道,居滅已休,更不前進∘生勝解者,是人則墮定性聲聞,諸無聞僧,增上慢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九,圓精應心,成趣寂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纏空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생명이 밝은 가운데서 정밀과 거칢[麤]을 분별하여 진실과 허위를 결단하고, 인과(因果)를 서로 갚는다 하여, 오직 감응(感應)만을 구하면, 청정한 도를 등지느니라. 이른바 고(苦)를 보고 집(集)을 끊으며, 멸(滅)을 증득하여 도를 닦아서, 멸(滅)에 머물러 이미 쉬어 버리고, 더 이상 닦아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에 떨어져서 얻은 법 없이 얻었다고 교만을 부리는[增上慢者] 무식한 비구[無聞僧]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아홉 번째 정밀하게 응하는 마음을 원만히 갖춰서 열반[寂]으로 향하는 결과를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공(空)에 얽매인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末圓∘若於圓融,淸淨覺明,發硏深妙,卽立涅槃,而不前進∘生勝解者,是人則墮,定性辟支,諸緣獨倫,不迴心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十,圓覺㳷心,成湛明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覺圓明,不化圓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가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 융통하고 청정한 깨달음이 밝은 데서, 깊고 묘함을 밝히고 연마하여 곧 열반이라 주장하고 더 이상 닦아나가지 않으면서,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정성벽지(定性辟支)에 떨어져서 연각(緣覺)과 독각(獨覺)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열 번째 깨달음의 융통한 마음을 원만히 갖춰서 고요한 밝은 결과를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깨달음을 원만하게 밝히려고 하나 원만하게 밝히지 못하는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阿難!如是十種禪那,中途成狂,因依迷惑,於末足中,生滿足證,皆是識陰,用心交互,故生斯位∘衆生頑迷,不自忖量,逢此現前,各以所愛,先習迷心,而自休息,將爲畢竟,所歸寧地∘自言滿足,無上菩提,大妄語成,外道邪魔,所感業終,墮無間獄∘聲聞緣覺,不成增進∘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禪那)를 닦다가 중도에 미치는 것은 미혹을 의지한 탓이며,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 만족하게 증득했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다 이 식음(識陰)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엇갈려 다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자리에 나지만, 중생들은 완고하게 미혹하여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각기 애착해온 이전 습기로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멈춰 쉬면서, 장차 최후에 돌아갈 편안한 자리로 여기고 스스로 말하기를 '더없이 높은 보리를 만족하게 성취했노라'고 하며 대망어(大妄語)를 짓느니라. 그러다가 외도(外道)와 사마(邪魔)는 받은 업이 끝나면 무간지옥[無間獄]에 떨어지고,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더 이상 향상하지 못하느니라.
汝等存心,秉如來道,將此法門,於我滅後,傳示末世,普令衆生,覺了斯義,無今見魔,自作沈孽∘保綏哀救,消息邪緣,今其身心,入佛知見,從始成就,不遭岐路∘如是法門,先過去世,恆沙劫中,微塵如來,乘此心開,得無上道∘
너희들은 명심해서[存心] 여래의 도를 간직하여 이 법문을 가지고, 내가 열반한 뒤 말법(末法)에 전해서, 널리 중생들에게 이 뜻을 깨달아 알게 하여 견마(見魔)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재앙을 짓지 않게 할 것이며, 잘 보호하여 가엾게 여겨 구제해서 삿된 인연을 소멸시키고,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에 들게 하고 처음부터 성취해서 갈림길을 만나지 않도록 하여라.
지난 세상 항사겁(恒沙劫)의 미진(微塵) 여래께서도 이 법문을 의지하여 마음을 열고 더없이 높은 도를 얻으셨느니라.
識陰若盡,則汝現前,諸根互用,從互用中,能入菩薩金剛乾慧,圓明精心,於中發化∘如淨琉璃,內含寶月,如是乃超 十信 十住 十行 十迴向 四加行心,菩薩所行,金剛十地,等覺圓明∘入於如來妙莊嚴海,圓滿菩提,歸無所得∘
식음(識陰)이 다 사라지면 현재 너의 모든 감관은 서로 융통하게 작용할 것이며, 서로 융통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보살의 금강간혜(金剛乾慧)에 들어가면, 뚜렷이 밝고 정밀한 마음이 그 속에서 일으키는 변화는 마치 깨끗한 유리 안에 보배의 달을 먹음은 듯 하리라. 이와 같이 10신(信)과 10주(住)와 10행(行)과 10회향(迴向)과 4가행심(加行心)과 보살이 행할 금강10지(地)를 뛰어넘어 등각(等覺)이 원만하게 밝은 가운데, 여래의 묘장엄해(妙莊嚴海)로 들어가서 보리를 원만하게 성취하여 얻을 법이 없는 경지로 돌아가느니라.
此是過去先佛世尊,奢摩他中毗婆舍那,覺明分析,微細魔事∘魔境現前,汝能諳識,心垢洗除,不落邪見∘陰魔銷滅,天魔摧碎,大力鬼神,褫魄逃逝,魑魅魍魎,無復出生∘直至菩提,無諸少乏,下劣增進,於大涅槃,心不迷悶∘
若諸末世愚鈍衆生,未識禪那,不知說法,樂修三昧,汝恐同邪,一心勸令,持我佛頂陀羅尼咒,若末能誦,寫於禪堂,或帶身上,一切諸魔所不能動∘汝當恭欽十方如來,究竟修進,最後垂範∘」
이 법문은 바로 과거 부처님 세존께서 사마타(奢摩他)의 비바사나(毗婆舍那)에서 깨달음의 밝은 지혜로 분석하신 미세한 마의 일이니, 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났을 때 네가 잘 알아서 마음의 때를 씻고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면, 음마(陰魔)는 소멸하고 천마(天魔)는 꺾여 무너지고, 힘센 귀신은 넋을 잃고 달아나며, 이매망양(魑魅魍魎)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리라. 그러면 바로 보리로 나아가는데 모자란 일들이 없으니, 열등한 자[下劣; 二乘]들도 증진(增進)하여 대열반(大涅槃)에 마음이 미혹하거나 답답하지 않으리라.
만일 말세에 우둔한 중생들이 선나(禪那)도 모르고 설법할 줄도 모르면서 삼매(三昧)를 즐겨 닦을 때, 네가 그들이 삿된 마[邪]와 함께 어울릴 것을 염려한다면, 나의 불정다라니주(佛頂陀羅尼呪)를 권하여 일심으로 지니게 하여라. 만일 외우지 못할 경우에는 선당(禪堂)에 써 붙이거나 몸에 지니기만 해도, 일체 온갖 마가 흔들 수 없느니라. 너는 마땅히 시방 여래께서 끝까지 닦아 나아가도록 최후에 내리신 모범을 존중해야 하느니라."
阿難卽從坐起,聞佛示誨,頂禮欽奉,憶持無失∘於大衆中,重復白佛:「如佛所言,五陰相中,五種虛妄,爲本想心,我等平常,未蒙如來微妙開示∘
又此五陰,爲倂銷除?爲次第盡?如是五重,諧何爲界?罹願如來,發宣大慈,爲此大衆,淸明心目,以爲末世一切衆生,作將來眼∘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정중히 받들어 기억하여 잃지 않고, 대중가운데서 다시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5음(陰)의 모양 가운데 다섯 가지 허망이 본래 생각하는 마음[本想心]'이라고 하셨으나, 저희들은 평소에 여래로부터 자세한 가르침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이 5음(陰)을 한꺼번[倂]에 없애야 합니까? 아니면 차례로 없애야 합니까? 또 이러한 다섯 겹은 어디까지를 경계로 정해야 하겠습니까? 부디 여래께서는 큰사랑을 베푸셔서 이 대중의 마음과 눈을 깨끗이 밝혀주시고, 말세(末世)의 일체중생에게도 장래의 안목이 되게 하옵소서."
佛告阿難:「精眞妙明,本覺圓淨,非留死生,及諸塵垢,乃至虛空,皆因妄想之所生起∘斯元本覺,妙明眞精,妄以發生,諸器世間,如演若多,迷頭認影∘
妄元無因,於妄想中,立因緣性,迷因緣者,稱爲自然,彼虛空性,猶實幻生,因緣自然,皆是衆生妄心計度∘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정밀하고 진실하고 미묘하고 밝은 본각(本覺)은 원만하고 청정하여 생사와 온갖 티끌 번뇌와 때 번뇌와 내지 허공까지도 머문 일이 없으니, 모두 허망한 생각으로 발생하여 일어난 경계이니라. 원래 본각(本覺)이 묘하고 밝고 진실하고 정밀한데서, 허망하게 온갖 물질 세간이 발생했으니, 마치 연야다(演若多)가 제 머리를 미혹하고 그림자로 잘못 안 일과 같으니라.
망상이 원래 원인이 없는데, 허망한 생각 가운데 인연의 성질을 세우기도 하고, 인연이 미혹한 자는 자연이라고 하나, 저 허공의 본질도 실제는 오히려 환영(幻影)으로 생겼으니, 인연과 자연도 다 중생의 허망한 마음으로 헤아릴 뿐이니라.
阿難!知妄所起,說妄因緣,若亳元無,說妄因緣,元無所有∘何況不知,推自然者?
是故如來與汝發明:五陰本因,同是妄想∘汝體先因,父母想生,汝心非想,則不能來,想中傳命∘如我先言:心想醋味,口中涎生,心想登高,足心酸起;懸崖不有,醋物未來,汝體必非,虛妄通倫,口水如何因談醋出?是故當知,汝現色身,名爲堅固,第一妄想∘
아난아, 망(妄)이 일어난 곳을 안다면 망의 인연을 설하겠으나, 망이 원래 없다면 망의 인연을 설한다 해도 원래 아무것도 없는데, 더욱이 어찌 알지 못하고 자연으로 미루겠느냐.
그러므로 여래는 너에게 5음의 본 모양은 다같이 망상이라고 밝힌 것이니라.
너의 몸은 당초에 부모의 생각으로 생겨났으나, 네 마음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생각 가운데 와서 생명을 전할 수 없었으리라. 내가 앞서 '마음으로 신맛을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생기고, 높은 벼랑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발바닥이 시큼하다'고 말했듯이, 높은 벼랑이 있지도 않고 신 물건이 오지도 않았는데, 네 몸이 분명 허망과 통하는 종류가 아니라면, 어째서 신 이야기를 따라 입에서 침이 나오겠느냐. 그러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현재 너의 색신(色身)을 첫 번째 견고망상(堅固妄想)이라고 하느니라.
卽此所說,臨高想心,能今汝形,眞受酸澀∘由因受生,能動色體,汝今現前,順益違損,二現驅馳,名爲虛明,第二妄想∘
또 말한 바와 같이 높은데 오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너의 형체에 실제로 시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여기에 수음(受陰)이 생긴 까닭에 몸[色體]을 움직일 수 있게 하였으니, 네가 지금 현재 이익은 따르고 손해는 어기는 두 가지가 뚜렷이 달리는 작용을, 두 번째 허명망상(虛明妄想)이라고 하느니라.
由汝念慮,使汝色身,身非念倫,汝身何因?隨念所使,種種取像,心生形取,與念相應∘寤卽想心,寐爲諸夢,則汝想念,搖動妄情,名爲融通,第三妄想∘
네 생각으로 네 몸[色身]을 부리고 있는데, 몸은 생각의 종류가 아님에도, 너의 몸은 무슨 이유로 생각의 부림을 따라 가지가지로 본뜨고[取像] 마음이 나면 몸[形]이 취해서 생각과 상응하여, 깨어 있는 동안은 생각하고 잠자는 동안은 꿈을 꾸겠느냐. 이렇게 너의 생각이 흔들리는 허망한 정[妄情]을 세 번째 융통망상(融通妄想)이라고 하느니라.
化理不住,運運密移,甲長髮生,氣銷容皺,日夜相代,曾無覺悟∘阿難!此若非汝,云何體遷?如必是眞,汝何無覺?則汝諸行,念念不停,名爲幽隱,第四妄想∘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여 가만히 옮기는 가운데, 손톱이 자라고 털이 나고 기운이 스러지고 용모가 쭈그러지면서 밤낮으로 서로 바뀌고 있으나, 잠깐도 깨닫지 못하느니라. 아난아, 이것이 만일 네가 아니라면 어째서 몸이 변하며, 만일 분명 진정한 너라면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냐. 이렇게 너의 모든 행음(行陰)이 생각마다 멈추지 않는 작용을 네 번째 유은망상(幽隱妄想)이라고 하느니라.
又汝精明,湛不搖處,名恆常者,於身不出,見聞覺知,若實精眞,不容習妄∘何因汝等,曾於昔年,睹一奇物,經歷年歲,憶忘俱無,於後忽然,覆睹前異,記憶宛然,曾不遺失?則此精了,湛不搖中,念念受熏,有何籌算?
또 너의 정밀하고 밝고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곳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경지[恒常]라고 한다면, 몸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나오지 않아야 하며, 또 만일 참으로 정밀하고 진실한 경지[精眞]라면 망(妄)을 익히는 작용을 용납하지 않아야 하리라. 그런데 무슨 이유로 너희들은 예전에 본 기이한 물건을 여러 해가 지나서 기억하는지 잊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뒤에 홀연히 이전의 기이한 물건을 다시 보면, 분명하게 기억하여 조금도 잃지 않는 것이냐? 이 정교한 앎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생각마다 받아 훈습하는 작용을 어떻게 헤아리겠느냐?
阿難!當知此湛非眞,如急流水,望如恬靜,流急不見,非是無流,若非想元,寧受妄習?非汝六根,互用合開,此之妄想,無時得滅∘故汝現在見聞覺知,中串習幾,則湛了內,罔象虛無,第五顚倒,細微精想∘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고요한 경계도 진실이 아니니라. 마치 급하게 흐르는 물이 겉으로 보기엔 담담하여 조용한 듯 하나, 흐름이 빨라서 보이지 않을 뿐, 흐름이 없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이 만일 생각의 근원이 아니라면 어찌 생각의 습기[想習]를 받아들이겠느냐. 네 여섯 감관의 서로 융통한 작용이 합쳐 열리지 않는다면, 이 망상은 사라질 때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가운데를 꿰어 익히는 미세한 기미[中串習幾]이니라. 이것이 고요히 아는 속에 있는 듯한 모양이 허무한 상태[罔象虛無]를 다섯째 전도미세정상(顚倒微細精想)이라 하느니라.
阿難!是五受陰,五妄想成,汝今欲知因界淺深,唯色與空,是色邊際;唯觸及離,是受邊際;唯記與忘,是想邊際;唯滅與生,是行邊際;湛入合湛,歸識邊際∘
此五陰元,重疊生起,生因識有,滅從色除∘理則頓悟,乘悟倂銷;事非頓除,因次第盡∘我已示汝,劫波巾結,何所不明,再此詢問?
汝應將此,妄想根元,心得開通,傳示將來末法之中,諸修行者,今識虛妄,深厭自生,知有涅槃,不戀三界∘
아난아, 이 5수음(受陰)은 다섯 망상으로 이뤄졌느니라.
너는 이제 원인의 경계[因界]가 얕은지 깊은지를 알고자 하였으니, 물질[色]과 공(空)은 색음(色陰)의 가장자리[邊際]이고, 닿음[觸]과 뗌[離]은 수음(受陰)의 가장자리이며, 기억[記]과 잊음[忘]은 상음(想陰)의 가장자리이고, 사라짐[滅]과 생김[生]은 행음(行陰)의 가장자리이며, 고요한 데 들어가서 고요함과 합함은 식음(識陰)으로 돌아가는 가장자리니라.
이 5음(陰)은 원래 겹겹으로 겹쳐 생겼으니, 생기는 법[生]은 식음(識陰)을 근거로 있으나, 멸하는 법[滅]은 색음(色陰)으로부터 제거하느니라. 이치[理]로는 단번에 깨달아서 깨달음을 따라 모두 소멸할 수 있으나, 실제[事]로는 단번에 없애지 못하니 수행절차를 밟아 없애야 하느니라. 나는 이미 너에게 겁바라천(劫波羅天)수건의 매듭으로 밝혔는데, 무엇이 분명하지 않아서 다시 또 묻는 것이냐?
너는 마땅히 이 망상의 근원으로 마음을 열어 통하고 나서, 장래 말법(末法)의 수행자들에게 전하여 허망함을 알고 깊이 싫어하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나게 하며, 열반이 있음을 알고 3계(界)에 연연하지 않게 하여라.
阿難!若復有人,遍滿十方,所有虛空,盈滿七寶,持以奉上微塵諸佛,承事供養,心無虛度∘於意云何?是人以此施佛因緣,得福多不?」
阿難答言:「虛空無盡,珍寶無邊,昔有衆生,施佛七錢,捨身猶獲轉輪王位,況復現前,虛空旣窮,佛土充滿,皆施珍寶,窮劫思議,尙不能及,是福云何,更有邊際?」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시방에 두루 원만한 허공에 가득 찰만한 7보를 가지고, 티끌처럼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잠시도 헛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 보시한 인연으로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느냐?
아난이 답했다. "허공도 다함이 없고 보배도 끝이 없다고 하셨으니, 옛날 어떤 중생은 부처님께 7전(錢)만을 보시하고도, 오히려 몸을 버린 뒤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는데, 더욱이 이 눈앞의 허공을 이미 다하고 부처님의 국토가 가득 차도록 모두 진보(珍寶)를 보시한 일이겠습니까. 겁이 끝나도록 말하거나 생각해도 오히려 따를 수 없는데, 이 복이 어찌 또 끝이 있겠습니까.
佛告阿難:「諸佛如來,語無虛妄∘若復有人,身具四重十波羅夷,瞬息卽經此方他方,阿鼻地獄,乃至窮盡十方無間,靡不經歷∘能以一念,將此法門,於未劫中,開示末學,是人罪障,應念消滅,變其所受地獄苦因,成安樂國∘得福超越前之施人,百倍千倍,千萬億倍,如是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말씀에는 허망함이 없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몸에 네 가지 무거운 죄와 열 가지 바라이(波羅夷) 죄를 가득 짊어지고 순식간에 이 곳 저 곳의 아비지옥(阿鼻地獄)을 겪어야 할 지경이거나, 심지어 시방의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끝까지 두루 다 겪어야 할 지경이라도, 일념(一念)으로 이 법문을 가지고 말겁(末劫) 가운데 배우지 못한 이들을 깨우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죄와 업장은 생각 따라 소멸해서, 그 받을 지옥고통의 원인은 변하여 안락한 국토가 되느니라. 따라서 얻는 복도 앞의 칠보로 보시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백배 천배 천만억 배이며, 이렇게 계속 계산[算數]하고 비유(譬喩)해도 따를 수 없느니라.
阿難!若有衆生,能誦此經,能持此咒,如我廣說,窮劫不盡,依我敎言,如敎行道,直成菩提,無復魔業∘」
佛說此經已,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一切世間天人 阿修羅,及諸他方菩薩 二乘 聖仙 童子,幷初發心大力鬼砷,皆大歡喜,作禮而去∘
아난아, 또 만일 어떤 중생이 능히 이 경을 외우고 이 주문을 지닌다면, 내가 아무리 겁이 끝나도록 오래 설할지라도 다 설할 수 없느니라. 내가 가르친 말[敎言]을 의지해서 가르친 대로 도를 행한다면, 바로 보리를 성취하여 더 이상 마의 업이 없어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자,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와 모든 세상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다른 곳에서 온 보살과 이승(二乘)과 성선동자(聖仙童子)와 처음 발심한 대력귀신(大力鬼神)들은 모두들 무척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유통분(流通分)
"阿難!若復有人,遍滿十方,所有虛空,盈滿七寶,持以奉上微塵諸佛,承事供養,心無虛度。於意云何?是人以此施佛因緣,得福多不?
阿難答言:"虛空無盡,珍寶無邊,昔有衆生,施佛七錢,舍身猶獲轉輪王位,况復現前,虛空旣窮,佛土充滿,皆施珍寶,窮劫思議,尙不能及,是福云何,更有邊際?"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시방(十方)에 두루한 허공(虛空)에 가득한 칠보(七寶)를 가지고 미진수(微塵數)와 같은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供養)하여 마음에 헛되이 지나감이 없게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 보시(布施)한 인연(因緣)으로 복(福)을 많이 얻겠느냐?”
‘아난’이 사뢰었다.
“허공(虛空)이 끝이 없으니 진보(珍寶)도 끝이 없습니다. 옛날에 어떤 중생(衆生)이 부처님께 칠전(七錢)을 보시(布施)하고도 죽어서 전륜왕(轉輪王)이 되었는데, 하물며 허공(虛空)에 가득하고 불국토(佛國土)에 충만한 진보(珍寶)를 현전(現前)에 모두 보시(布施)하는 행동은, 비록 겁(劫)이 다하도록 생각하여도 끝이 없는데, 하물며 그 지은 복(福)이야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佛告阿難:"諸佛如來,語無虛妄。若復有人,身具四重十波羅夷,瞬息卽經此方他方,阿鼻地獄,乃至窮盡十方無間,靡不經曆。能以一念,將此法門,於未劫中,開示未學,是人罪障,應念消滅,變其所受地獄苦因,成安樂國。得福超越前之施人,百倍千倍,千萬億倍,如是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阿難!若有衆生,能誦此經,能持此咒,如我廣說,窮劫不盡,依我敎言,如敎行道,直成菩提,無復魔業。"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인 여래(如來)의 말씀은 허망(虛妄)하지 않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몸으로 사중(四重)과 십‘바라이’죄(十波羅夷罪)를 모두 지어서, 순식간(瞬息間)에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아비지옥(阿鼻地獄)들을 두루 거치고 내지 시방(十方)의 무간지옥(無間地獄)까지 경력(經歷)해야 하는 중죄(重罪)를 범하였더라도, 한 생각에 능히 이 법문(法門)을 가지고서 말법(末法)의 초학자(初學者)에게 개시(開示)하여주면, 그 사람의 죄(罪)와 업장(業障)이 찰나(刹那)에 소멸하여 그가 받을 지옥(地獄)의 고인(苦因)이 변하여 안락국(安樂國)을 이룬다. 또 복(福)을 받는 것이 앞에서 보시(布施)한 사람이 지은 복(福)의 백배(百倍)·천배(千倍)·천만억배(千萬億倍)가 되어서, 이와 같은 산수(算數)와 비유(譬喩)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난’아. 만약 어떤 중생(衆生)이 이 경(經)을 능히 외우고 신주(神呪)를 능히 지니면, 내가 겁(劫)이 다할 때까지 그 공덕(功德)을 말한다 하더라도 다 말할 수가 없고, 내가 가르치는 말을 의지하여 가르친 도(道)를 행하면, 바로 ‘보리’를 이루고, 마(魔)의 장난이 일체 없게 된다.”
佛說此經已,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一切世間天人、阿修羅,及諸他方菩薩、二乘、聖仙、童子,幷初發心大力鬼神,皆大歡喜,作禮而去。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설(說)하여 마치시니, ‘비구’ㆍ‘비구니’ㆍ신남(信男)ㆍ신녀(信女)와 일체(一切) 세간(世間)의 천(天)·인(人)·‘아수라’와 타방(他方)의 ‘보살’·이승(二乘)· 성선동자(聖仙童子)와 처음 발심(發心)한 대력귀신(大力鬼神)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예배(禮拜)하고 돌아갔다.
楞嚴經終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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