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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楞嚴經

능엄경 楞嚴經 卷第八

by 산산바다 2019. 12. 9.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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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頂首楞嚴經 卷第八

 

8권에서는 보살의 수행하는 단계57()를 설한뒤 경의 이름을 밝히고, 지옥/아귀/축생/인간/신선/천인/아수라라는 일곱갈래의 중생이 생겨난 원인그 각각의 생존양상을 설명하였다. 여기서 의 53위와는 달리 사가행(四加行)을 넣어 57위로 한 점이나 중생의 갈래에 신선을 포함시킨 점 등은 이 경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이다.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阿難如是衆生一一類中亦各各具十二顚倒猶如捏目亂華發生顚倒妙圓眞淨明心具足如斯虛妄亂想汝今修證佛三摩地於是本因元所亂想立三漸次方得除滅如淨器中除去毒蜜以諸湯水幷雜灰香洗滌其器后貯甘露云何名爲三種漸次一者修習除其助因二者眞修刳其正性三者增進違其現業

아난아, 이러한 중생은 낱낱 종류 가운데 각각 열두 가지 뒤바뀜을 갖췄으니, 마치 눈을 눌렀을 때 어지러운 꽃이 발생하는 것과 같다. 미묘하고 원만하고 진실하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뒤바뀌어 이와 같이 허망한 어지러운 생각을 갖춘 것이니라.

네가 이제 부처님의 삼마제(三摩提)를 닦아서 증득하려면, 이 근본 원인이 되는 원래의 어지러운 생각에, 세 가지 차례로 닦는 방편[三漸次]을 세워야만 비로소 없앨 수 있느니라.

그릇 속에서 독한 꿀을 제거하려면 끓는 물과 재 섞인 향료로 그릇을 씻어내야만 감로(甘露)를 담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세 가지 점차(漸次)란 무엇이겠느냐. 첫째는 수습(修習)으로서 그 돕는 원인을 제거하는 행이고, 둘째는 진실한 수행으로서 근본 성품[正性]을 뽑아내는 행이며, 셋째는 증진하는 법으로서 현재의 업을 어기는 행이니라.

 

  云何助因阿難如是世界十二類生不能自全依四食住所謂段食觸食思食識食是故佛說:『一切衆生皆依食住。』阿難一切衆生食甘故生食毒故死是諸衆生求三摩地當斷世間五種辛菜是五種辛熟食發淫生啖增恚如是世界食辛之人縱能宣說十二部經十方天仙嫌其臭穢咸皆遠離諸餓鬼等因彼食次舐其辱吻常與鬼住福德日銷長無利益

무엇을 돕는 원인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이러한 세계의 12류 중생은 스스로 보전하지 못하고 네 가지 음식으로 살아간다. 이른 바 단식(段食)과 촉식(觸食)과 사식(思食)과 식식(識食)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설하시기를 '일체중생은 다 음식을 의지하여 살아간다'고 하셨다.

아난아, 일체중생은 맛난 음식을 먹으면 살고, 독을 먹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중생이 삼마제를 닦으려면 마땅히 세간의 다섯 가지 매운 채소[五種辛菜]를 끊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매운 채소는 익혀서 먹으면 음욕을 일으키고 생으로 먹으면 노여움을 돋우느니라. 이렇게 매운 채소를 먹는 세상 사람이 비록 12부경(部經)을 잘 설할지라도, 하늘과 신선은 그 더러운 냄새를 싫어하여 다 버리고 멀리 떠나느니라. 또 매운 채소를 먹을 때는 굶주린 귀신[餓鬼]들이 그 입술을 핥음으로, 항상 귀신들과 더불어 사는 격이니, 복덕(福德)이 날로 소멸하여 영원히 이익이 없느니라.

 

是食辛人修三摩地菩薩天仙十方善神不來守護大力魔王得其方便現作佛身來爲說法非毁禁戒贊淫怒疑命終自爲魔王眷屬受魔福盡墮無間獄阿難修菩提者永斷五辛是則名爲第一增進修行漸次

또 이 매운 채소를 먹는 사람이 삼마지(三摩地)를 닦을지라도, 보살과 하늘과 신선과 시방의 좋은 신들은 와서 수호하지 않으니, 힘센 마왕(魔王)이 그 방편을 얻고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면서 금계(禁戒)를 비방하여 헐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婬怒癡]을 찬양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죽은 뒤에 스스로 마왕의 귄속(眷屬)이 되었다가, 마의 복을 다 받고 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느니라.

아난아, 보리를 닦는 사람은 영원히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끊어야 한다. 이것이 첫째 증진수행의 차례[第一增進修行漸次]이니라.

 

  云何正性阿難如是衆生入三摩地要先嚴持淸淨戒律永斷淫心不餐酒肉以火淨食無瞰生氣阿難是修行人若不斷淫及與殺生出三界者無有是處常觀淫欲猶如毒蛇如見怨賊先持聲聞四棄八棄執身不動后行菩薩淸淨律儀執心不起禁戒成就則於世間永無相生相殺之業偸劫不行無相負累亦於世間不還宿債是淸淨人修三摩地父母肉身不須天眼自然觀見十方世界睹聞佛法親奉聖旨得大神通游十方界宿命淸淨得無艱險是則名爲第二增進修行漸次

무엇을 근본 성품[正性]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일 중생이 삼마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먼저 청정한 계율을 엄하게 지키면서, 영원히 음욕심(婬欲心)을 끊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며, 음식을 불로 잘 익혀 조리해서 먹어야 하고, 날것으로 먹지 않아야 한다.

아난아, 수행자가 음욕과 살생을 끊지 않고 삼계(三界)를 뛰어넘으려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니, 마땅히 음욕을 잘 살펴서 독사처럼 여기고 원수처럼 보아야 한다. 먼저 성문(聲聞)4(;波羅夷)8()를 잘 지켜서, 몸을 단속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고, 뒤에 보살의 청정한 율의(律儀)를 행하여 마음을 단속해서 일어나지 않게 하여라. 금계(禁戒)를 성취하면, 세상에 서로 태어나고 서로 죽이는 업이 영원히 없어지며, 도둑질과 겁탈을 행하지

않으면, 서로 허물을 짊어질 일이 없고, 세간에서 묵은 빚을 갚을 일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청정한 사람이 삼마지를 닦으면, 부모에게 받은 육신으로 천안통(天眼通)을 구하지 않고도, 자연히 시방세계를 관찰하게 되며,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게 되며, 친히 거룩한 뜻을 받들어 큰 신통을 얻고, 시방세계를 마음대로 유행하며 지난 세상의 일[宿命]이 청정하니, 어려운 일이 없느니라. 이를 둘째 증진수행의 차례라고 하느니라.

 

  云何現業阿難如是淸淨持禁戒人心無貪淫於外六塵不多流逸因不流逸旋元自歸塵旣不緣根無所偶反流全一六用不行十方國土皎然淸淨譬如琉璃內懸明月身心快然妙圓平等獲大安隱一切如來密圓淨妙皆現其中是人卽獲無生法忍從是漸修隨所發行安立聖位是則名爲第三增進修行漸次

무엇을 현재의 업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이렇게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에 음욕을 탐내지 않으니, 바깥 여섯 경계[六塵]에 그다지 방탕하게 흐르지 않으며, 방탕하게 흐르지 않기 때문에 근원을 돌이켜 스스로 돌아가느니라. 경계[]를 이미 인연하지 않고 감관[]이 짝할 상대가 없으며, 흐름을 돌이켜 유일한 진실이 완전하여 여섯 작용이 행하지 않으므로, 시방국토가 밝고 맑아서, 유리 안에 밝은 달이 달린 것과 같으리라. 그러면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미묘하고 원만하고 평등하여 매우 안온한 경지에 들어서, 일체여래의 원만하고 청정하고 미묘하고 비밀한 도리가 다 그 속에 나타나니, 이 사람은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며, 이로부터 차례로 닦는 가운데 곳에 따라 수행을 일으켜서 안전하게 성인의 자리에 들게 되느니라. 이를 셋째 증진수행의 차례라고 하느니라.

 

  阿難是善男子欲愛乾枯根境不偶現前殘質不復續生執心虛明純是智慧慧性明圓塋十方界乾有其慧名乾慧地欲習初乾未與如來法流水接卽以此心中中流入圓妙開敷從眞妙圓重發眞妙妙信常住一切妄想滅盡無餘中道純眞名信心住

아난아, 이 선남자가 애욕이 말라서 감관과 경계가 짝을 맺지 않음으로 현재의 몸을 다하고 나서 더 이상 계속 태어나는 일이 없으며, 집착한 마음이 비고 밝아서 지혜가 순수하고, 지혜의 성품이 밝고 뚜렷하여 시방세계를 비추는 가운데, 애욕의 습기가 말라서 생긴 지혜를 간혜지(乾慧地)라고 한다. 이 지혜는 애욕의 습기가 처음 말랐을 뿐, 아직은 여래의 법이 흐르는 물과 닿지 않았느니라.

곧 이 마음으로 가운데[; 乾慧觀心中]에서 가운데[; 中道直觀]로 흘러 들어가면, 원만하고 미묘한 경지가 환하게 열려서, 진실하고 미묘하고 원만한 경계로부터 더욱 진실하고 미묘한 경계가 발생하여 미묘한 믿음이 영원히 머물러서, 일체의 망상이 남김없이 멸하여 다한 가운데, 중도가 순수하고 진실한 자리를 신심주(信心住)라고 한다.

 

 

眞信明了一切圓通陰處界三不能爲礙如是乃至過去未來無數劫中舍身受身一切習氣皆現在前是善男子皆能憶念得無遺忘名念心住

진실한 믿음이 환하게 밝아서 일체를 원만하게 통달하여, 5()12()18()의 장애를 받지 않으며, 이와 같이 나아가 과거와 미래의 한량없는 겁 동안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은 일체 습기가 다 앞에 나타나서, 이 선남자가 다 잘 기억하여 잃거나 잊지 않는 자리를 염심주(念心住)라고 한다.

 

妙圓純眞眞精發化無始習氣通一精明唯以精明進趣眞淨名精進心心精現前純以智慧名慧心住執持智明周遍寂湛寂妙常凝名定心住

미묘하고 원만한 경계가 순수하고 진실하여 진실한 정기가 변화를 일으켜, 시작 없는 겁의 습기가 하나로 통하여 정교하게 밝아서, 오직 정교한 밝음이 진실한 청정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자리를 정진심(精進心)이라고 한다.

마음의 정진이 앞에 나타나서 순전히 지혜만 작용하는 자리를 혜심주(慧心住)라고 하며, 지혜의 밝음을 그대로 유지해서 두루 고요하고 맑은 가운데 고요하고 미묘함이 항상 엉기는 자리를 정심주(定心住)라고 하며,

 

定光發明明性深入唯進無退名不退心心進安然保持不失十方如來氣分交接名護法心覺明保持能以妙力回佛慈光向佛安住猶如雙鏡光明相對其中妙影重重相入名回向心心光密回獲佛常凝無上妙淨安住無爲得無遺失名戒心住

선정의 빛이 밝음을 일으키고 밝은 성품이 깊이 들어가서 오직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나지 않는 자리를 불퇴심(不退心)이라고 한다.

마음의 정진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여 잃지 않고 시방 여래의 기분(氣分)과 어울려 닿는 자리를 호법심(護法心)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밝음을 보호하여 유지하고 묘한 힘으로 부처님의 자비한 빛을 돌이켜서, 부처님을 향하여 편안히 머무는 능력이, 마치 두 거울의 광명이 마주하여 그 가운데 묘한 그림자가 겹겹이 서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자리를 회향심(迴向心)이라고 하느니라.

마음의 빛을 은밀히 회향하여 부처님의 변함없이 엉긴 더없이 묘한 맑음을 얻고 무위(無爲)의 경지에 편안히 머물러 잃지 않는 자리를 계심주(戒心住)라고 한다.

 

住戒自在能游十方所去隨願名願心住

()에 자재하게 머물러 시방을 유행하면서 소원 따라 가는 자리를 원심주(願心住)라고 한다.

 

 

  阿難是善男子以眞方便發此十心心精發揮十用涉入圓成一心名發心住心中發明如淨琉璃內現精金以前妙心履以成地名治地住心地涉知俱得明了游履十方得無留礙名修行住行與佛同受佛氣分如中陰身自求父母陰信冥通入如來種名生貴住旣游道胎親奉覺胤如胎已成人相不缺名方便俱足住容貌如佛心相亦同名正心住身心合成日益增長名不退住十身靈相一時具足名童眞住形成出胎親爲佛子名法王子住表以成人如國大王以諸國事分委太子彼刹利王世子長成陳列灌頂名灌頂住

아난아, 이 선남자가 진실한 방편으로 이 열 가지 믿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의 정기가 빛을 발하여 열 가지 작용을 밟아 들어가서 원만하게 한 마음이 된 자리를 발심주(發心住)라고 한다.

마음 가운데서 밝음을 일으킴이 마치 깨끗한 유리 안에 정교한 황금이 나타나듯, 앞의 묘한 마음으로 밟아서 경지[]를 다져 성취한 자리를 치지주(治地住)라고 한다.

마음과 경지가 서로 통하여 알고 함께 명료해져서 시방을 자유롭게 다녀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는 자리를 수행주(修行住)라고 한다.

수행이 부처님과 동일하여 부처님의 기분(氣分)을 받음이 마치 중음신(中陰身)이 스스로 부모를 찾을 때처럼, 은밀한 신호[陰信]가 가만히 통하여 여래의 종성(種姓)에 들어가는 자리를 생귀주(生貴住)라고 한다.

이미 도의 태()에 노닐며 직접 깨달음의 후사[覺胤]를 받듦이, 마치 태를 이미 이루고 사람의 모양을 모자람 없이 갖춘 것과 같은 자리를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라고 하며, 용모도 부처님 같고 마음상태도 부처님과 동일한 자리를 정심주(正心住)라고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성취하여 날마다 더욱 자라나는 자리를 불퇴주(不退住)라고 하며, 열 가지 몸[十身]의 영묘한 모양을 일시에 다 갖춘 자리를 동진주(童眞住)라고 한다.

형상을 이루고 태에서 나와 친히 불자(佛子)가 된 자리를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며, 성인(成人)을 표함이 마치 대왕이 나라의 일들을 태자에게 나눠 맡기려고 장성한 찰리왕세자(刹利王世子)를 위하여 관정식(灌頂式)을 행함과 같은 자리를 관정주(灌頂住)라고 하느니라.

 

  阿難是善男子成佛子已具足無量如來妙德十方隨順名歡喜行善能利益一切衆生名饒益行自覺覺他得無違拒名無嗔恨行種類出生窮未來際三世平等十方通達名無盡行一切合同種種法門得無差誤名離疑亂行則於同中顯現群異一一異相各各見同名善現行如是乃至十方虛空滿足微塵一一塵中現十方界現塵現界不相留礙名無著行種種現前咸是第一波羅蜜多名尊重行如是圓融能成十方諸佛軌則名善法行一一皆是淸淨無漏一眞無爲性本然故名眞實行

아난아, 이 선남자가 불자(佛子)가 되고 나서 한량없는 여래의 묘한 덕을 원만하게 갖추고, 시방에 알맞게 순응하는 행을 환희행(歡喜行)이라 하며, 능숙하게 일체중생의 이익을 잘 처리하는 행을 요익행(饒益行)이라 하며,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우치면서 어기거나 거절함이 없는 행을 무진한행(無瞋恨行)이라고 한다.

종류마다 불법에 출생케 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3세와 평등하고 시방을 통달한 행을 무진행(無盡行)이라 하며, 일체와 합동(合同)하여 가지가지 법문이 어긋나거나 잘못이 없는 행을 이치란행(離癡亂行)이라 하며, 같은 가운데 여러 다른 모양을 나타내고, 낱낱 다른 모양에서 각각 같은 모양을 보이는 행을 선현행(善現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시방허공에 이르기까지 미진(微塵)을 충분히 갖추고, 낱낱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를 나타내어, 티끌을 나타내고 세계를 나타내어도, 서로 막히거나 걸리지 않는 행을 무착행(無著行)이라 하며, 가지가지 앞에 나타나는 것마다 다 제일바라밀다(第一波羅蜜多)가 되는 행을 존중행(尊重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원만하고 융통하여 시방 모든 부처님의 법칙을 잘 성취하는 행을 선법행(善法行)이라 하며, 낱낱이 다 청정하여 샘의 번뇌가 없고, 한결같이 진실 무위하여 본래 그대로 작용하는 행을 진실행(眞實行)이라고 하느니라.

 

  阿難是善男子滿足神通成佛事已純潔精眞遠諸留患當度衆生滅除度相回無爲心向涅盤路名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回向壞其可壞遠離諸離名不壞回向本覺湛然覺齊佛覺名等一切佛回向精眞發明地如佛地名至一切處回向世界如來互相涉入得無掛礙名無盡寶德藏回向於同佛地地中各各生淸淨因依因發揮取涅盤道名隨順平等善根回向眞根旣成十方衆生皆我本性性圓成就不失衆生名隨順等觀一切衆生回向卽一切法離一切相唯卽與離二無所著名如相回向眞得所知十方無礙名無縛解脫回向性德圓成法界量滅名法界無量回向

아난아, 이 선남자가 신통을 원만하게 갖추고 불사(佛事)를 성취하고 나서 순수하고 깨끗하고 정교하고 진실하여, 온갖 장애의 시름을 멀리 벗어나게 되어 당연히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제도하는 모양이 사라져 없는 가운데, 무위(無爲)의 마음을 돌려서 열반의 길로 향하는 자리를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이라고 하며, 무너뜨릴 것을 무너뜨리고 온갖 벗어나야 할 것을 멀리 벗어난 자리를 불괴회향(不壞迴向)이라고 한다.

본래의 깨달음이 고요하여 깨달음이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지런한 자리를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迴向)이라고 하며, 정밀한 진실이 밝음을 일으켜서 지위[]가 부처님과 같은 자리를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迴向)이라 한다.

세계와 여래를 통하여 들어가서 걸림이 없는 자리를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迴向]이라고 하며, 부처님과 동등한 지위에 들어 지위 가운데 각각 청정한 수행원인[淸淨因]을 내고 그 원인[]을 의지해서 빛을 발하여 열반의 길을 취하는 자리를 수순평등선근회향(隨順平等善根迴向)이라고 하며, 진실한 선근[眞根]을 이미 성취하고 나서 시방중생이 다 나의 본성임을 증득하고, 중생의 성품을 원만하게 성취하여 중생을 잃지 않는 자리를 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隨順等觀一切衆生迴向]이라고 한다.

일체 법과 일치한 가운데 일체 모양을 벗어나서 일치함과 벗어남에도 집착이 없는 자리를 진여상회향(眞如相迴向)이라고 하며, 진실이 본래 여여한 경지에 들어 시방에 걸림이 없는 자리를 무박해탈회향(無縛解脫迴向)이라 하고, 성품의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하여 법계의 한량이 사라진 자리를 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迴向)이라고 하느니라.

 

阿難是善男子盡是淸淨四十一心次成四種妙圓加行卽以佛覺用爲己心若出未出猶如鑽火欲然其木名爲暖地又以己心成佛所履若依非依如登高山身入虛空下有微礙名爲頂地心佛二同善得中道如忍事人非懷非出名爲忍地數量銷滅迷覺中道二無所目名世第一地

아난아, 이 선남자가 청정한 41()을 다하고 나면, 그 다음에 네 가지 미묘하고 원만한 가행(加行)을 성취하느니라.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았으나, 그 깨달음의 경지가 나올 듯하면서도 아직 나오지 않음이,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피울 때 그 나무에 불이 붙으려는 상태를 난지(煖地)라고 한다.

또 자기의 마음으로 부처님이 밟은 경지를 성취하였으나, 의지한 듯하면서도 의지하지 못함이,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몸은 허공에 들었지만, 아래는 미약한 걸림이 있는 상태를 정지(頂地)라고 한다.

마음과 부처가 둘이 동등하여 중도(中道)에 잘 들었으나, 마치 일을 참는 사람이 품은 것도 아니고 벗어난 것도 아닌 상태를 인지(忍地)라고 한다.

()와 양()이 소멸하여 미혹과 깨달음이 중도인지 중도가 아닌지 둘 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를 세제일지(世第一地)라고 하느니라.

 

  阿難是善男子於大菩提善得通達覺通如來盡佛境界名歡喜地異性入同同性亦滅名離垢地淨極明生名發光地明極覺滿名燄慧地一切同異所不能至名難勝地無爲眞如性淨名露名現前地盡眞如際名遠行地一眞如心名不動地發眞如用名善慧地

아난아, 이 선남자가 대보리(大菩提)를 잘 통달하여 깨달음이 여래와 통해서 부처님의 경계를 다한 경지를 환희지(歡喜地)라고 하며, 다른 성품이 같은 성품에 들어가서 같은 성품도 멸한 경지를 이구지(離垢地)라 하며, 맑음이 끝까지 다하여 광명이 발생하는 경지를 발광지(發光地)라고 한다.

밝음이 끝까지 다하여 깨달음이 원만한 경지를 염혜지(燄慧地)라고 하며, 일체 같고 다름이 이를 수 없는 경지를 난승지(難勝地)라고 하며, 무위진여(無爲眞如)의 성품이 맑고 밝게 드러난 경지를 현전지(現前地)라고 한다.

진여의 경계를 끝까지 다한 경지를 원행지(遠行地)라고 하며, 한결같은 진여의 마음을 부동지(不動地)라 하며, 진여의 작용이 일어나는 경지를 선혜지(善慧地)라고 한다.

 

 

  阿難是諸菩薩從此已往修習畢功功德圓滿亦目此地名修習位慈陰妙云覆涅盤海名法云地如來逆流如是菩薩順行而至覺際入交名爲等覺阿難從乾慧心至等覺已是覺始獲金剛心中初乾慧地如是重重單復十二方盡妙覺成無上道是種種地皆以金剛觀察如幻十種深喩奢摩他中用諸如來毗婆舍那淸淨修證漸次深入阿難如是皆以三增進故善能成就五十五位眞菩提路作是觀者名爲正觀若他觀者名爲邪觀。?

아난아, 이 보살들이 여기서부터 이후는 닦는 공덕을 마치고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하므로, 이 지()를 수습위(修習位)라고 한다.

자비의 그늘과 묘한 구름이 열반의 바다를 덮고 있는 경지를 법운지(法雲地)라고 하느니라.

여래는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왔고, 이러한 보살은 열반의 흐름을 따라 행하여 깨달음의 경계에 들어 어울리는 경지를 등각(等覺)이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이렇게 마른 지혜의 마음으로부터 등각에 이르면, 이 깨달음은 비로소 금강처럼 견고한 마음[金剛心]의 첫 마른 지혜[初乾慧地]를 얻느니라.

이와 같이 겹겹이 단(; 初乾慧, 煖位, 頂位, 忍位, 世第一位, 等覺, 金剛乾慧)으로 복(; 十信, 十住, 十行, 十廻向, 十地)으로 열 두 자리[十二: 初乾慧地, 十信, 十住, 十行, 十迴向, 煖位, 頂位, 忍位, 世第一位, 十地, 金剛乾慧地, 等覺]를 닦아야만, 비로소 묘한 깨달음[妙覺]을 다하여 더없이 높은 도를 이루느니라.

이 가지가지의 지위마다 다 금강(金剛)의 마음으로 환술과 같은 열 가지 깊은 비유를 관찰하고, 사마타(奢摩他) 가운데서 모든 여래의 관찰 법[毗婆舍那: 觀察]으로 청정하게 닦고 증득하여 점차 깊이 들어가야 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다 세 가지 증진수행 법[增進]을 쓰기 때문에 훌륭하게 55위의 진실한 보리의 길을 잘 성취할 수 있느니라.

이러한 관찰이 바른 관찰이요, 이와 다른 관찰은 삿된 관찰이니라.

 

  爾時文殊師利法王子在大衆中卽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當何名是經我及衆生云何奉持佛告文殊師利是經名大佛頂悉怛名般怛羅無上寶印十方如來淸淨海眼亦名救護親因度脫阿難及此會中性比丘尼得菩提心入遍知海亦名如來密因修證了義亦名大方廣妙蓮華王十方佛母陀羅尼咒亦名灌頂章句諸菩薩

萬行首楞嚴汝當奉持

이 때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가 대중 가운데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며, 저희들과 중생들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대불정실달다반달라무상보인시방여래청정해안(大佛頂悉怛多般怛囉無上寶印十方如來淸淨海眼)'이며, 또한 구호친인도탈아난급차회중성비구니득보리심입변지해(救護親因度脫阿難及此會中性比丘尼得菩提心入遍知海)이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여래밀인수증요의(如來密因修證了義)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대방광묘연화왕시방불모다라니주(大方廣妙蓮華王十方佛母陀羅尼呪)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관정장구제보살만행수능엄(灌頂章句諸菩薩萬行首楞嚴)이라고도 이름 하니, 너희들은 마땅히 잘 받들어 지니도록 하여라."

 

  說是語已卽時阿難及諸大衆得蒙如來開示密印般怛羅義兼聞此經了義名目頓悟禪那修進聖位增上妙理心慮虛凝斷除三界修心六品微細煩惱卽從座起頂禮佛足合掌恭敬而白佛言大威德世尊慈音無遮善開衆生微細沈惑令我今日身意快然得大饒益世尊若此妙明眞淨妙心本來遍圓如是乃至大地草木蠕動含靈本元眞如卽是如來成佛眞體佛體眞實云何復有地獄餓鬼畜生修羅天等道世尊此道爲復本來自有爲是衆生妄習生起世尊如寶蓮香比丘尼持菩薩戒私行淫欲妄言行淫非殺非偸無有業報發是語已先於女根生大猛火后於節節猛火燒然墮無間獄琉璃大王善星比丘琉璃爲誅瞿曇族姓善星妄說一切法空生身陷入阿鼻地獄此諸地獄爲有定處爲復自然彼彼發業各各私受唯垂大慈發開童蒙令諸一切持戒衆生聞決定義歡喜頂戴謹潔無犯

이 말씀이 끝나자, 아난과 대중은 여래께서 열어 보이신 밀인반달라(密印般怛囉)의 뜻을 받들고, 겸하여 이 경의 완벽한 뜻을 갖춘 이름을 들으니, 선나(禪那)로 성인의 자리를 닦아 더욱 위로 향하는 묘한 이치를 단번에 깨달아서, 심려(心慮)가 텅 비어 3()에서 마음을 닦는 6()의 미세한 번뇌를 끊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대한 위덕(威德)을 갖추신 세존이시여, 자혜로운 음성으로 차별 없이 중생의 깊고 미세한 번뇌를 훌륭하게 깨우쳐주시니, 저는 이제 몸과 마음이 상쾌하며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묘하고 밝고 진실하고 청정하고 묘한 마음이 본래 두루 원만하다면, 이와 같이 넓은 땅과 풀과 나무와 꿈틀거리는 미물까지도 본원(本元)이 진여(眞如)이며, 그대로 여래께서 성불(成佛)하신 진실한 본체입니다. 부처님 자체의 진실[佛體眞實]이라면, 어째서 또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수라와 인간과 천상 등의 길이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이 길은 본래 그대로 있는 것입니까, 중생의 망상습기로 생기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보살계(菩薩戒)를 받은 보련향(寶蓮香) 비구니는 남몰래 음욕을 행하면서 '음행은 살생도 아니고 도둑질도 아니니 업보가 없다'고 망언하다가 그 말이 끝나자, 먼저 여근(女根)에서 일어난 맹렬한 불이 온몸의 마디마디를 태우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습니다. 또 유리(瑠璃)대왕과 선성(善星)비구도 마찬가집니다. 유리는 구담족(瞿曇族)을 죽인 죄로, 선성은 '일체 법이 공하다'고 한 거짓말로, 각각 살아 있는 몸으로 아비지옥(阿鼻地獄

)에 빠졌습니다. 이 모든 지옥은 일정한 곳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연히 저들마다 업을 일으켜 각각 홀로 받는 것입니까. 부디 큰 자비를 내리시어 어린 어리석음을 깨워주시고, 계를 지닌 중생들이 결정된 뜻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높이 받들어 조심하여 깨끗이 지켜서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佛告阿難快哉此問令諸衆生不入邪見汝今諦聽當爲汝說阿難一切衆生實本眞淨因彼妄見有妄習生因此分開內分外分阿難內分卽是衆生份內因諸愛染發起妄情情積不休能生愛水是故衆生心憶珍羞中水出心憶前人或憐或恨目中淚盈貪求財寶心發愛涎擧體光潤心著行淫男女二根自然流液

阿難諸愛雖別流結是同潤濕不升自然從墜此名內分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시원하게 잘 물었다. 모든 중생이 삿된 견해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물었으니, 너는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아난아, 일체중생은 참으로 본래 진실하고 청정하나, 저 허망한 보는 작용에 따라 허망한 습기가 생기니, 이로 인하여 내분(內分)과 외분(外分)으로 나뉘어 열린 것이니라.

아난아, 내분은 곧 중생의 분내(分內)이니, 온갖 애욕의 집착[愛染]으로 인하여 허망한 정을 일으켜서 정이 쉬지 않고 쌓이면, 애욕의 물이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속으로 맛난 음식[珍羞]을 생각하면 입안에서 침이 나오고, 마음속으로 앞사람을 생각하여 가련하게 여기거나 한탄하면, 눈 속에 눈물이 고이며, 탐욕으로 재물과 보배를 구하여 마음속에 애착의 군침을 흘리면 온몸이 탐욕 빛으로 윤택해지고, 마음속으로 음욕을 행하려고 하면 남근(男根)과 여근(女根)에서 자연히 정액[]이 흐르느니라.

아난아, 온갖 애욕이 비록 다를지라도 흘러서 맺힘은 한가지니, 젖어 축축한 것은 오르지 못하여 자연히 아래로 처지기 마련이다. 이를 내분(內分)이라고 한다.

 

 

  阿難外分卽是衆生份外因諸渴仰發明虛想想積不休能生勝氣是故衆生心持禁戒擧身輕淸心持咒印顧盼雄毅心欲生天夢想飛擧心存佛國聖境冥現事善知識自輕身命

阿難諸想雖別輕擧是同飛動不沈自然超越此名外分

아난아, 외분(外分)은 곧 중생의 분외(分外)이니, 온갖 간절한 우러름으로 인하여 빈 생각을 밝혀서 생각이 쉬지 않고 쌓이면, 뛰어난 기운이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으로 금계(禁戒)를 지키면 온몸이 가볍고 맑아지며, 마음에 주인(呪印)을 지니면 돌아보는 모습이 웅대하여 씩씩해지고, 마음으로 천상에 나기를 원하면 날아다니는 꿈을 꾸며, 마음을 부처님의 나라에 두면 성스러운 경계가 은연중 나타나고, 선지식을 섬기면 스스로 몸과 목숨을 가볍게 여기느니라.

아난아 온갖 빈 생각이 비록 다를지라도 가볍고 들뜸은 한가지니 날아 움직이는 것은 가라앉지 않고 자연히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이를 바깥 몫이라고 하느니라.

 

  阿難一切世間生死相續生從順習死從變流臨命終時未舍暖觸一生善惡俱時頓現死逆生順二習相交純想卽飛必生天上若飛心中兼福兼慧及與淨願自然心開見十方佛一切淨土隨願往生情少想多輕擧非遠卽爲飛仙大力鬼王飛行夜叉地行羅刹游於四天所去無礙其中若有善願善心護持我法或護禁戒隨持戒人或護神咒隨持咒者或護禪定保綏法忍是等親住如來座下

아난아, 일체세간에는 생사가 서로 이어지고 있는데, ()은 순종하는 습기를 좇고, 죽음은 변한 흐름을 좇느니라. 죽음이 닥쳐서 아직 따스한 감촉을 버리기 전에는 일생의 선악(善惡)이 동시에 모두 나타나서, 죽음을 거역하고 생을 순종하는 두 습기가 서로 어울리느니라.

순수한 생각[]뿐이면 곧 날아 올라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만일 날아오르는 마음 가운데 복덕과 지혜와 청정한 원을 겸하고 있다면, 자연히 마음이 열려서 시방 부처님을 뵙게 되고 일체 정토에 소원대로 왕생하느니라.

()이 적고 생각이 많으면 멀리까지 가볍게 날지는 못하나, 곧 날아다니는 신선[飛仙]이나, 힘센 귀신 왕[大力鬼王]이나, 날아다니는 야차(夜叉), 땅에 다니는 나찰(羅刹)이 되어, 네 하늘[四天]에 놀며 다니는 데는 걸림이 없느니라. 그 가운데 만일 좋은 원과 좋은 마음이 있어서 불법[我法]을 보호하여 지키거나, 혹은 금계(禁戒)를 보호하여 계를 지키는 사람을 따르거나, 혹은 신비한 주문[神呪]을 보호하여 주문 가진 사람을 따르거나, 혹은 선정(禪定)을 보호하여 법인(法忍)을 안전하게 지킨다면, 이들은 친히 여래의 자리 아래에서 부처님을 모시게 되느니라.

 

 

情想均等不飛不墜生於人間想明斯聰情幽斯鈍情多想少流入橫生重爲毛群輕爲羽族七情三想沈下水輪生於火際受氣猛火身爲餓鬼常被焚燒水能害已無食無飮經百千劫九情一想下洞火輪身入風火二交過地輕身有間重生無間二種地獄純情卽沈入阿鼻獄若沈心中有謗大乘毁佛禁戒誑妄說法虛貪信施濫膺恭敬五逆十重更生十方阿鼻地獄循造惡業雖則自招衆同分中兼有元地

()과 생각()이 균등하면 날지도 못하고 처지지도 않아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생각은 밝아서 총명하고 정은 깊어서 우둔 하느니라.

정이 많고 생각이 적으면 축생[橫生]으로 흘러 들어가서, 무거운 것은 털 달린 짐승[毛群]이 되고, 가벼운 것은 깃 달린 짐승[羽族]이 되느니라.

정이 7푼이고 생각이 3푼이면 수륜(水輪)에 잠겨 내려가서 화륜(火輪)의 경계에 태어나는데, ()가 맹렬한 불을 받아 몸이 아귀(餓鬼)가 되니 항상 불에 타서 물도 몸을 해치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며 백 천겁을 지내느니라.

정이 9푼이고 생각이 1푼이면 화륜(火輪)을 뚫고 내려가서 몸이 풍륜(風輪)과 화륜(火輪)이 맞닿아 지나는 곳에 들어가서는, 두 가지 지옥 곧 고통을 쉴 틈이 있는 가벼운 지옥[有間]과 고통을 쉴 틈이 없는 무거운 지옥[無間]에 태어나느니라.

순수한 정 뿐이면 곧 잠겨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간다. 만일 잠기는 마음 가운데 대승을 비방한 죄와 부처님의 금계를 헌 죄와 거짓말로 속여 설법한 죄와 헛되게 시주의 보시를 탐한 죄와 분에 넘게 공경을 받은 죄와 5역죄(逆罪)10중죄(重罪)가 있으면, 다시 시방의 아비지옥(阿鼻地獄)에 태어나느니라.

나쁜 업을 따라 지은 죄는 비록 자신이 홀로 불러들이나, 여럿이 공동의 몫[衆同分] 가운데서는 원래의 땅[元地; 地獄을 뜻함]을 겸하느니라.

 

  阿難此等皆是彼諸衆生自業所感造十習因受六交報云何十因阿難一者淫習交接發於相磨硏磨不休如是故有大猛火光於中發動如人以手自相磨觸暖相現前二習相然故有鐵床銅柱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行淫同名欲火菩薩見欲如避火坑

아난아, 이런 일들은 모든 중생이 자기 업으로 감염된 경계[所感]로서, 열 가지 습인(習因)을 지어 여섯 어울린 과보[六交報]를 받는 것이니라.

무엇을 열 가지 원인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첫째는 음욕의 습기로 접촉하여 어울리는 행위[交接]이니라. 서로 비비는데서 발생하여 문지르고 비비는 작용을 쉬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맹렬한 큰 불빛이 그 가운데서 발동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스스로 손을 마주 비비면 따뜻한 기운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타기 때문에 무쇠평상과 구리기둥의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음행을 지목하여 '애욕의 불꽃'이라고 이름 하셨으며, 보살은 애욕의 경계를 보면 불구덩이를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二者貪習交計發於相吸吸攬不止如是故有積寒堅冰於中凍冽如人以吸縮風氣有冷觸生二習相凌故有吒吒波波羅羅靑赤白蓮寒冰等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多求同名貪水菩薩見食如避瘴海

둘째는 탐욕의 습기로 계략을 일삼아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빨아 들이키는데서 발생하여 당기는 작용을 그치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차가움이 쌓인 딱딱한 얼음 가운데서 얼어 터지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입으로 공기[風氣]를 빨아 들이키면, 서늘한 촉감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능멸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타타(吒吒) 파파(波波) 라라(囉囉)'라는 추위를 참는 소리와 푸르고 붉고 흰 연꽃 빛깔의 차가운 얼음 등의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탐욕으로 많이 구하는 일을 지목하여 '탐욕의 물[貪水]'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탐욕의 경계를 보면 장독(瘴毒)이 흐르는 바다를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三者慢習交陵發於相恃馳流不息如是故有騰逸奔波積波爲水如人口舌自相綿味因而水發二習相鼓故有血河灰河熱沙毒海融銅灌舌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我慢名飮疑水菩薩見慢如避巨溺

셋째는 아만(我慢)의 습기를 따라 능멸로 어울리는 행위니라. 서로 자랑하는데서 발생하여 달려 흐름이 쉬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솟구쳐 달리는 물결이 물결을 쌓아 물이 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입안을 혀로 핥아서 연이어 맛을 보면 물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두드리기 때문에 죽은 뒤에 피의 강물, 잿빛 강물, 독한 바닷물, 끓는 구리물을 붓고 삼키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도 다 같이 아만(我慢)을 지목하여 '어리석은 물을 마시는 짓'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아만(我慢)의 경계를 보면 큰 소용돌이를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四者嗔習交衝發於相忤忤結不息心熱發火鑄氣爲金如是故有刀山鐵橛劍樹劍輪斧鉞如人殺氣飛動二習相擊故有宮割斬斫銼刺擊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嗔恚名利刀劍菩薩見嗔如避誅戮。 

넷째는 성냄의 습기를 따라 충돌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거슬리는데서 발생하여 거슬림이 맺혀 쉬지 않고 마음의 열이 불을 일으켜서 기운을 달구어 쇠가 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칼산과 쇠몽둥이와 칼 나무와 칼 바퀴와 도끼와 작두와 창과 톱의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펄펄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치기 때문에 죽은 뒤에 생식기[]를 헐고 몸을 잘라내고 목을 베고 몸을 두 쪽 내고 허리를 꺾고 몸에 말뚝을 박고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치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성냄[瞋恚]을 지목하여 '날카로운 칼'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성냄의 경계를 보면 죽이는 곳을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五者詐習交誘發於相調引起不住如是故有繩木絞如水浸田草木生長二習相延故 有械枷 鎖鞭杖撾棒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奸僞同名讒賊菩薩見詐如畏豺狼

다섯째는 속임수의 습기를 따라 유혹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달래어 꾀는데서 발생하여 이끌어 일으키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밧줄로 묶고 주리를 틀고 몸을 얽어 칼을 씌우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물이 밭에 스며들어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연이어 끌어들이기 때문에 죽은 뒤에 칼을 씌우고 족쇄를 채우고 채찍질하고 곤장을 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간사한 거짓을 지목하여 '남을 모함하는 도적[讒賊]'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속임수의 경계를 보면 승냥이와 이리처럼 두렵게 여기느니라.

 

  六者誑習交欺發於相罔誣罔不止飛心造奸如是故有塵土屎尿穢汚不淨如塵隨風各無所見二習相加故有投溺騰擲飛墜漂淪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欺誑同名劫殺菩薩見誑如踐蛇虺

여섯째는 속임의 습기를 따라 기만(欺瞞)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업신여겨 속이는데서 발생하여 꾸며 속이기를 그치지 않고 날랜 마음으로 간사한 꾀를 내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티끌과 먼지와 똥과 오줌의 더럽고 부정한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티끌을 바람에 날려 보내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관이 서로 더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빠져 가라앉고 치어 오르고 날리다가 떨어지고 물에 뜨고 잠기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속임을 지목하여 '겁살(劫殺)'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속임의 경계를 보면 뱀을 밟은 듯 피하느니라.

 

  七者怨習交嫌發於如是故有飛石投礫匣貯車檻盛囊撲如陰毒人懷抱畜惡二習相呑故有投擲擒捉擊射抛撮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怨家名違害鬼菩薩見怨如飮鴆酒

일곱째는 원망의 습기를 따라 거리낌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한을 품는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돌멩이가 날리고 큰 돌을 던지고 궤짝에 가두고 수레 울에 갇혀 끌려가고 독 안에 담기고 포대에 쌓여 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몰래 독을 가진 사람이 가슴속에 악을 쌓아 품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잡아 삼키기 때문에 죽은 뒤에 집어던지고 잡아들이고 치고 쏘고 내동댕이치고 거머쥐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원망하는 사람을 지목하여 '몰래 해치는 귀신'이라고 하셨으며, 보살들은 원망을 보면 짐독의 술[鴆酒]을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八者見者習交明如薩迦耶見戒禁取邪悟諸業發於違拒出生相返如是故有王使主吏證執文藉如行路人來往相見二習相交故有勘問權詐考訊推鞫察訪披究照明善惡童子手執文簿辭辯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惡見同名見坑菩薩見諸虛妄遍執如臨毒壑

여덟째는 나쁜 소견의 습기를 따라 밝힘[]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살가야(薩迦耶)와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와 같은 온갖 업이 삿되게 깨닫고 거역하는 데서 발생하여 상반된 견해를 내놓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왕사(王使)의 주리(主吏)가 문적(文籍)으로 증명하여 집행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길가는 사람이 오고가면서 서로 보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죽은 뒤에 힐문[勘問]하고, 유도하여 사실을 심문[權詐考訊]하고, 고문[推鞫]하고 방문조사로 증거를 대고[察訪], 숨긴 일을 드러내어 규명하고[披究], 업경대(業鏡臺)로 비춰 밝히고[照明], 선악동자(善惡童子)가 문부(文簿)로 변론하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나쁜 소견을 지목하여 '나쁜 소견의 구덩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온갖 허망하게 두루 집착한 소견의 경계를 보면 독 구렁[毒壑]에 들어가듯 멀리하느니라.

 

  九者枉習交加發於誣謗如是故有合山合石耕磨如讒賊人逼枉良善二習相排故有押捺蹙漉衝度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怨謗同名讒虎菩薩見枉如遭霹靂

아홉째는 덮어씌움의 습기를 따라 가해(加害)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모함하고 헐뜯는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두 산이 합하는 사이에 끼이기도 하고 두 바위가 마주 부딪치는 사이에 치이기도 하고 방아와 맷돌에 부서지기도 하고 보습에 혀와 몸이 갈리기도 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남을 모함하는 도적이 어질고 착한 사람을 핍박하여 죄를 덮어씌우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배척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누르고 비비고 방망이로 때리고 눌러 앉고 짓밟아 문지르고 자루로 걸러내고 몸을 짓눌러 실처럼 뽑아내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원망하여 헐뜯음을 지목하여 '간특한 범[讒虎]'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덮어씌움의 경계를 보면 벼락을 만나듯 멀리하느니라.

 

  十者訟習交喧發於藏覆如是故有監見照燭如於日中不能藏影二習相陳故有惡友業鏡火珠披露宿業對驗諸事是故十方一切如來色目覆藏同名陰賊菩薩觀覆如戴高山履於巨海

열 번째는 송사의 습기를 따라 말다툼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감춰 덮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거울로 비추고 촛불로 밝히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햇빛에 그림자를 감출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두 습기가 서로 펴서 늘어놓기 때문에 나쁜 벗과 업 거울과 불구슬로 지난 죄업을 들춰내고 증거를 대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같이 덮어 감춤을 지목하여 '숨어 있는 도적'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덮어 감추는 경계를 보면 높은 산을 이고 큰 바다를 밟는 것처럼 무겁게 여기느니라.

 

 

  云何六報阿難一切衆生六識造業所招惡報從六根出云何惡報從六根出一者見報招引惡果此見業交則臨終時先見猛火滿十方界亡者神識飛墜乘煙入無間獄發明二相一者明見則能遍見種種惡物生無量畏二者暗見寂然不見生無量恐如是見火燒聽能爲鑊湯洋銅燒息能爲黑煙紫燄燒味能爲焦丸鐵糜燒觸能爲熱灰爐炭燒心能生星火迸灑煽鼓空界

무엇을 여섯 과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일체중생이 6()으로 업을 지어 불러들인 나쁜 과보가 여섯 감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쁜 과보가 여섯 감관에서 나온다고 하겠느냐.

첫째는 보는 작용의 업보(業報)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보는 작용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시방세계에 가득 찬 맹렬한 불꽃을 보면서, ()자의 혼령[神識]이 날아 떨어져서 연기를 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밝음을 보는 작용이니, 가지가지 나쁜 경계를 두루 잘 보면서 한량없는 두려움을 내는 일이며, 하나는 어둠을 보는 작용이니, 적막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량없는 공포를 일으키는 일이다.

이러한 보는 작용의 불[見火]이 듣는 작용[]을 태우면 가마솥의 끓는 쇳물과 끓는 구리 물이 되고, []을 태우면 검은 연기와 검붉은 불꽃이 되며, []을 태우면 불에 탄 알맹이와 쇠죽이 되고, 촉감[]을 태우면 뜨거운 재와 화로의 숯이 되며, 의식[]을 태우면 작은 불꽃들이 생겨서 빠르게 번져 허공계(虛空界)를 세차게 두드리느니라.

 

  二者聞報招引惡果此聞業交則臨終時先見波濤沒溺天地亡者神識降注乘流入無間獄發明二相一者開聽聽種種鬧精神二者閉聽寂無所聞幽魄沈沒如是聞波注聞則能爲責爲詰注見則能爲雷爲吼爲惡毒氣注息則能爲雨爲霧灑諸毒蟲周滿身體注味則能爲膿爲血種種雜穢注觸則能爲畜爲鬼爲糞爲尿注意則能爲電爲雹摧碎心魄

둘째는 듣는 작용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듣는 작용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하늘과 땅이 파도에 빠져 잠기는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神識]은 휩쓸려 내려가서 흐름을 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들음이 열린 작용이니, 가지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이 아득하여 어지러워지는 일이며, 하나는 들음이 막힌 작용이니, 적막하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유명(幽冥)의 넋이 침몰하는 일이다.

이러한 듣는 작용의 물결[聞波]이 듣는 작용에 흘러들면 책망과 힐난이 되고, 보는 작용에 흘러들면 우레와 우레 소리와 악독한 기운이 되며, 숨에 흘러들면 비와 안개가 되어 온갖 독충(毒蟲)이 흩어져서 신체에 가득 차게 되고, 맛에 흘러들면 고름과 피가 되어 가지가지 잡된 더러움을 이루며, 감촉에 흘러들면 축생과 귀신과 똥과 오줌이 되고, 의식[]에 흘러들면 번개와 우박이 되어 마음의 넋을 부셔 무너뜨리느니라.

 

  三者嗅報招引惡果此嗅業交則臨終時先見毒氣充塞遠近亡者神識從地湧出入無間獄發明二相一者通聞被諸惡氣薰極心擾二者塞聞氣掩不通悶絶於地如是嗅氣衝息則能爲質爲履衝見則能爲火爲炬衝聽則能爲沒爲溺爲洋爲沸衝味則能爲餒爲爽衝觸則能爲綻爲爛爲大肉山有百千眼無量砸食衝思則能爲灰爲瘴爲飛砂礰擊碎身體

셋째는 냄새 맡음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냄새 맡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독한 기운이 멀고 가까운 곳에 꽉 찬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이 땅에서 솟아 나와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냄새 맡음이 통한 작용이니, 온갖 나쁜 냄새를 심하게 맡는 가운데 마음이 뒤흔들리는 일이며, 둘째는 냄새 맡음이 막힌 작용이니, 기가 가리어 통하지 않는 가운데 땅에 넘어져서 기절하는 일이다.

이러한 냄새 맡는 기운[齅氣]이 숨에 부딪치면 막힘과 통함이 되고, 보는 작용에 부딪치면 불과 횃불이 되며, 듣는 작용에 부딪치면 잠김과 빠짐과 녹음과 끓음이 되고, 맛에 부딪치면 썩는 것과 쉬어 변하는 것이 되며, 감촉에 부딪치면 불어터짐과 썩어 문드러짐과 산처럼 큰 살덩어리가 되어 백 천의 구멍에서 한량없는 벌레들이 뜯어먹는 것이 되고, 생각에 부딪치면 재와 장독[瘴毒]과 날리는 모래와 자갈이 되어 몸을 쳐부수느니라.

 

  四者味報招引惡果此味業交則臨終時先見鐵網猛燄熾烈周覆世界亡者神識下透掛網倒懸其頭入無間獄發明二相一者吸氣結成寒冰凍冽身肉二者吐氣飛爲猛火焦爛骨髓如是嘗味曆嘗則能爲承爲忍曆見則能爲然金石曆聽則能爲利兵刃曆息則能爲大鐵籠彌覆國土曆觸則能爲弓爲箭爲弩爲射曆思則能爲飛熱鐵從空雨下

넷째는 맛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맛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쇠 그물에 붙은 맹렬한 불꽃이 치열하게 타올라 세계를 두루 덮는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神識]은 아래를 뚫고 내려가다가 그물에 걸려 머리가 거꾸로 매달린 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첫째는 빨아들이는 기의 작용이니, 그 기운이 맺혀 차가운 얼음이 되는 가운데 육신이 얼어 터지는 일이며, 둘째는 내뱉는 기의 작용이니, 그 기운이 날려 맹렬한 불꽃이 되는 가운데 골수(骨髓)가 타서 문드러지는 일이다.

이러한 맛보는 작용이 맛을 만나면 승복(承服)과 참음이 되고, 보는 작용을 만나면 불에 달군 쇠와 돌이 되며, 듣는 작용을 만나면 군사의 예리한 칼이 되고, 숨결을 만나면 커다란 쇠 울타리가 되어 국토를 가득 덮으며, 감촉을 만나면 활과 화살과 쇠뇌와 쏘는 것이 되고, 생각을 만나면 날아다니는 뜨거운 쇠가 되어 허공에서 비 오듯 내리느니라.

 

  五者觸報招引惡果此觸業交則臨終時先見大山四面來合無復出路亡者神識見大鐵城火蛇火狗虎狼獅子牛頭獄卒馬頭羅刹手執槍軀入城門向無間獄發明二相一者合觸合山逼體骨肉血潰二者離觸刀劍觸身心肝屠裂如是合觸曆觸則能爲道爲觀爲廳爲案曆見則能爲燒曆聽則能爲撞爲擊爲射曆息則能爲括爲袋爲拷爲縛曆嘗則能爲耕爲鉗爲斬爲截曆思則能爲墜爲飛爲煎爲炙

다섯째는 감촉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감촉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큰 산이 사방으로 밀려와 합쳐서 더 이상 나갈 길이 없는 모양을 보는 가운데, 망자의 혼령[神識]은 또 커다란 무쇠 성[大鐵城]의 불 뱀과 불개와 호랑이와 이리와 사자를 거느리고 손에 창검을 든 소머리 옥졸[牛頭獄卒]과 말머리 나찰[馬頭羅刹]이 성문 안으로 몰아넣는 모양을 보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향하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합하는 감촉작용이니, 합치는 산이 몸을 핍박하여 뼈와 살과 피가 터져 나오는 일이며, 둘째는 떼는 감촉작용이니, 칼과 검이 몸에 닿아서 심장과 간을 도려내는 일이다.

이와 같이 합하는 촉감이 촉감을 만나면 감옥 길[]과 관망대[]와 가두는 청사[]와 문초하는 책상[]이 되고, 보는 작용을 만나면 불타고 불사르는 것이 되며, 듣는 작용을 만나면 때리고 치고 찌르고 쏘는 것이 되고, 숨을 만나면 홀쳐 묶고 포대에 담고 고문하고 결박하는 것이 되며, 맛을 만나면 보습으로 갈고 재갈물리고 베어내고 잘라내는 것이 되고, 생각을 만나면 떨어지고 튀어 오르고 삶아내고 구어 내는 것이 되느니라.

 

  六者思報招引惡果此思業交則臨終時先見惡風吹壞國土亡者神識被吹上空旋落乘風墮無間獄發明二相一者不覺迷極則荒奔走不息二者不迷覺知則苦無量煎燒痛深難忍如是邪思結思則能爲方爲所結見則能爲監爲證結聽則能爲大合石爲冰爲霜爲土爲霧結息則能爲大火車火船火檻結嘗則能爲大叫喚爲悔爲泣結觸則能爲大爲小爲一日中萬生萬死爲偃爲仰

여섯째는 생각의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생각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사악한 바람이 몰아쳐서 국토가 부서지는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神識]은 바람에 날려 공중에 올랐다가 바로 떨어져서 바람을 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첫째는 미혹하여 깨지 못한 경계이니, 극도로 미혹하여 황망한 가운데 날뛰기를 쉬지 않는 일이며, 둘째는 미혹하지 않고 깨어 있는 경계이니, 괴로움만 깨달아 아는 가운데 한량없이 삶기고 불에 타는 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는 일이다.

이러한 삿된 생각이 생각에 맺히면 벌 받는 방향과 장소가 되고, 보는 작용에 맺히면 비춤과 증명이 되며, 듣는 작용에 맺히면 합쳐 부딪는 큰 돌과 얼음과 서리와 티끌과 안개가 되고, 숨에 맺히면 큰 불 수레와 불 배와 불 우리가 되며, 맛에 맺히면 큰 외침과 뉘우침과 눈물 흘림이 되고, 감촉에 맺히면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면서 하루 동안 만 번 살고 만 번 죽는 것과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되느니라.

 

  阿難是名地獄十因六果皆是衆生迷妄所造若諸衆生惡業圓造入阿鼻獄受無量苦經無量劫六根各造及彼所造兼境兼根是人則入八無間獄身口意三作殺盜淫是人則入十八地獄三業不兼中間或爲一殺一盜是人則入三十六地獄見見一根單犯一業是人則入一百八地獄由是衆生別作別造於世界中入同分地妄想發生非本來有

아난아, 이를 지옥의 열 가지 원인과 여섯 가지 결과라고 하는데, 모두 중생의 미혹한 망상으로 지은 경계이니라.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두루 갖춰 짓는다면, 아비지옥[阿鼻獄]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한량없는 겁을 지내느니라.

여섯 감관이 각기 따로 지어서, 저 짓는 업이 경계와 감관을 겸한다면, 이 사람은 8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느니라.

몸과 입과 뜻의 셋으로 살생과 투도와 음욕을 짓는다면, 이 사람은 18지옥에 들어가느니라.

3()을 겸하지 않고 중간에 한번 살생을 범하거나 한번 투도를 범한다면, 이 사람은 36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여섯 감관 가운데) 보는 작용일 경우, 보는 작용의 한 감관만이 단독으로 한 업을 범한다면 이 사람은 108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이로 인하여 중생이 각기 따로 지을지라도, 세계 가운데서는 같은 몫의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망상으로 발생한 일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라.

 

  復次阿難是諸衆生非破律儀犯菩薩戒毁佛涅盤諸餘雜業曆劫燒然后還罪畢受諸鬼形若於本因貪物爲罪是人罪畢遇物爲形名爲怪鬼貪色爲罪是人罪畢遇風成形名爲魃鬼貪惑爲罪是人罪畢遇畜成形名爲魅鬼貪恨爲罪是人罪畢遇蟲成形名蠱毒鬼貪憶爲罪是人罪畢遇衰成形名爲癘鬼貪傲爲罪是人罪畢遇氣成形名爲餓鬼貪罔爲罪是人罪畢遇幽爲形名爲魘鬼貪明爲罪是人罪畢遇精爲形名魍魎鬼貪成爲罪是人罪畢遇明爲形名役使鬼貪黨爲罪是人罪畢遇人爲形名傳送鬼

 

阿難是人皆以純情墜落業火燒乾上出爲鬼此等皆是自妄想業之所招引若悟菩提則妙圓明本無所有

또 아난아, 이 중생들이 계율[律儀]를 비방하여 파하거나 보살계를 범하거나 부처님의 열반을 훼방하거나 그 외 잡된 업을 지으면, 여러 겁에 걸쳐 불에 타는 고통을 당하다가, 죄 값을 다 치른 뒤에, 온갖 귀()의 형체를 받느니라.

만일 본래 원인이 물건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물건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괴귀(怪鬼)라고 하며, 색욕[]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바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발귀(魃鬼)라고 하며, 유혹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축생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매귀(魅鬼)라고 하며, 한풀이를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충()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고독귀(蠱毒鬼)라고 하며, 나쁜 기억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쇠퇴한 운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여귀(癘鬼)라고 하느니라.

오만(傲慢)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기()를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아귀(餓鬼)라고 하며, 거짓 꾸밈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어둠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염귀(魘鬼)라고 하며, 밝힘[]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정령(精靈)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망양귀(魍魎鬼)라고 하며, 일의 성취를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밝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역사귀(役使鬼)라고 하며, 무리지음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사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전송귀(傳送鬼)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이 사람들은 다 순수한 정()으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업의 불길이 다 타고 말라서 위로 벗어 나와 귀()가 되었으나, 이것들은 다 자기 망상의 업으로 불러들인 경계일 뿐이다. 만일 보리를 깨친다면 미묘하고 원만하게 밝아서 본래 아무것도 없느니라.

 

 

  復次阿難表業旣盡則情與想二俱成空方於世間與元負人怨對相値身爲畜生酬其宿債物怪之鬼物銷報盡生於世間多爲梟類風魃之鬼風銷報盡生於世間多爲咎徵一切異類畜魅之鬼畜死報盡生於世間多爲狐類蟲蠱之鬼蟲滅報盡生於世間多爲毒類衰癘之鬼衰窮報盡生於世間名爲蛔類受氣之鬼氣銷報盡生於世間名爲食類綿幽之鬼幽銷報盡生於世間多爲服類和精之鬼和銷報盡生於世間多爲應類明靈之鬼明滅報盡生於世間多爲休徵一切諸類依人之鬼人亡報盡生於世間多於循類阿難是等皆以業火乾枯酬其宿債傍爲畜生此等亦皆自虛妄業之所招引若悟菩提則此妄緣本無所有如汝所言寶蓮香等及琉璃王善星比丘如是惡業本自發明非從天降亦非地出亦非人與自妄所招還自來受菩提心中皆爲浮虛忘想凝結

또 아난아, ()의 업이 이미 다 없어져서 정()과 생각[]의 둘이 다 함께 비어야만, 비로소 세상에서 원래 빚진 사람과 더불어 원한의 상대로 서로 만나서, 축생이 되어 그 묵은 빚을 갚게 되느니라.

물건에 붙은 괴귀(怪鬼)가 물건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올빼미 종류가 되고, 바람에 붙은 발귀(魃鬼)가 바람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흉조(凶兆)를 전하는 일체 이상한 종류[咎徵一切異類]가 되며, 축생에 붙은 매귀(魅鬼)가 축생이 죽고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여우 종류가 되고, 충에 붙은 고독귀(蠱毒鬼)가 충이 멸하여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독을 품은 종류가 되며, 쇠퇴한 운에 붙은 여귀(癘鬼)가 쇠퇴한 운이 다하여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회충의 종류[蛔類]가 되느니라.

기를 받은 아귀(餓鬼)가 기가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먹히는 종류가 되며, 어둠에 붙은 염귀(魘鬼)가 어둠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복종하는 종류가 되고, 정령(精靈)과 어울린 망양귀(魍魎鬼)가 어울림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시절을 따르는 종류[應類]가 되며, 밝음에 붙은 신령한 역사귀(役使鬼)가 밝음이 멸하여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길조(吉兆)를 전하는 일체 종류가 되고, 사람을 의지한 전송귀(傳送鬼)가 사람이 죽고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사람을 따르는 종류가 되느니라.

아난아, 이들은 다 업의 불이 마르고 나서 그 묵은 빚을 갚느라고, 기어 다니는 축생이 된 것이다.

이 들도 또한 모두 자기의 허망한 업으로 불러들인 경계일 뿐이다. 만일 보리를 깨친다면 이 허망한 인연은 본래 아무것도 없느니라.

네가 말한 보련향(寶蓮香) 등이나, 유리왕(瑠璃王)이나 선성비구(善星比丘)의 이러한 악업(惡業)은 본래 자신이 밝혀서 일으킨 일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준 것도 아니다. 자기 망상으로 불러들인 결과를 도로 자신이 받는 경계이며, 보리의 마음 가운데는 허망하게 떠서 엉겨 맺힌 망상이니라.

 

  復次阿難從是畜生酬償先債若彼酬者分越所酬此等衆生還復爲人返徵其剩如彼有力兼有福德則於人中不舍人身酬還彼力若無福者還爲畜生償彼餘直阿難當知若用錢物或役其力償足自停如於中間殺彼身命或食其肉如是乃至經微塵劫相食相誅猶如轉輪互爲高下無有休息除奢摩他及佛出世不可停寢汝今應知彼梟倫者酬足復形生人道中參合頑類彼咎徵者酬足復形生人道中參合異類彼狐倫者酬足復形生人道中參於庸類彼毒倫者酬足復形生人道中參合狠類彼蛔倫者酬足復形生人道中參合微類彼食倫者酬足復行生人道中參合柔類彼服倫者酬足復行生人道中參合勞類彼應倫者酬足復行生人道中參於文類彼休徵者酬足復行生人道中參合明類彼諸循倫酬足復行生人道中參於達類阿難是等皆以宿債酬畢復形人道皆無始來業計顚倒相生相殺不遇如來不聞正法於塵勞中法爾輪轉此輩名爲可憐愍者

또 아난아, 축생으로 묵은 빚[先債]을 갚을 때, 만일 빚 갚는 중생이 갚을 몫보다 더 많이 갚았다면, 이들 중생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 나머지 몫을 되돌려 받는다. 이 때 만일 돌려줄 사람이 힘이 있고 복덕을 겸한다면, 사람의 세상에서 사람의 몸을 버리기 전에 더 받은 노력을 되갚아 주겠지만, 만일 복이 없다면 다시 축생이 되어 나머지 몫을 갚게 되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돈과 재물을 빌려 쓰거나 그 힘을 부렸을 경우, 빚을 충분히 갚는다면 저절로 끝나겠으나, 만일 중간에 저 중생의 몸과 생명을 죽이거나 혹은 그 고기를 먹는다면, 이러한 상태는 미진겁(微塵劫)이 지나가도 계속되어 서로 잡아먹고 서로 죽이기를 마치 바퀴가 서로 높낮이를 따라 구르듯 쉬지 않을 것이며, 사마타(奢摩他)의 힘이나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면 영원히 멈추지 않으리라.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올빼미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완고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흉조(凶兆)를 전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이상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여우의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용렬한 무리와 섞이느니라.

저 독을 품은 무리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사나운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회충의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미천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먹히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유약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복종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노역(勞役)의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시절을 따르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글을 아는 무리와 섞이느니라.

저 길조(吉兆)를 전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총명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순종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통달한 무리와 섞이느니라.

아난아, 이들은 다 묵은 빚을 갚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모두 시작 없는 옛적부터 업에 얽혀 뒤바뀐 탓으로, 서로 태어나 서로 죽이면서, 여래도 만나지 못하고 바른 법도 듣지 못하여, 번뇌 가운데서 번뇌 그대로[法爾] 굴러다니니 이런 무리들을 가련하다고 하느니라.

 

 

  阿難按有從人不依正覺修三摩地別修妄念存想固形游於山林人不及處有十仙種阿難彼諸衆生堅固服餌而不休息食道圓成名地行仙堅固草木而不休息藥道圓成名飛行仙堅固金石而不休息化道圓成名游行仙堅固動止而不休息氣精圓成名空行仙堅固津液而不休息潤德圓成名天行仙堅固精色而不休息吸粹圓成名通行仙堅固咒禁而不休息術法圓成名道行仙堅固思念而不休息思憶圓成名照行仙堅固交遘而不休息感應圓成名精行仙堅固變化而不休息覺悟圓成名絶行仙

阿難是等皆於人中練心不修正覺別得生理壽千萬歲休止深山或大海島絶於人境斯亦輪回妄想流轉不修三昧報盡還來散入諸趣

아난아, 또 사람에 속한 부류로서, 바른 깨달음을 의지하여 삼마지(三摩地)를 닦지 않고, 따로 허망한 생각을 닦아서 생각[]을 보존하여 형상을 굳히고, 사람이 닿지 않는 산림(山林)의 깊숙한 곳에서 노니는 열 가지 신선이 있느니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약 복용 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복용하는 도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지행선(地行仙)이라고 하며, 풀과 나무의 약물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약물의 도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비행선(飛行仙)이라고 하며, 금석(金石)의 약물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은 가운데, 변화의 도를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유행선(遊行仙)이라고 하며, 움직이고 멈추는 법을 견고하게 지켜서 기()와 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공행선(空行仙)이라고 하며, 진액(津液)을 새롭게 하는 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윤택한 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천행선(天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정색(精色)의 보존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순수한 정기의 흡수 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통행선(通行仙)이라고 하며, 주문 법[呪禁]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술법(術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도행선(道行仙)이라고 하며, 일정한 사념(思念)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생각하는 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조행선(照行仙)이라고 하며, 음양의 짝 맞추기를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감응의 법[感應]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정행선(精行仙)이라고 하며, 변화의 이치를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깨달음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절행선(絶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이들은 다 사람들 가운데서 바른 깨달음을 닦지 않고, 별도로 마음을 단련하여 사는 이치를 깨달아서 천만 세의 수명을 누리는 가운데,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 속이나 큰 바다의 섬에 머물러 살고 있지만, 이들 역시 윤회하면서 허망한 생각으로 흘러 다닐 뿐이니, 삼매(三昧)를 닦지 않으면, 과보가 다한 뒤에 다시 돌아와서 온갖 세상[諸趣]으로 흩어져 들어가느니라.

 

 

  ?阿難諸世間人不求常住未能舍諸妻妾恩愛於邪淫中心不流逸澄瑩生明命終之后鄰於日月如是一類名四王天

아난아, 모든 세상 사람이 영원한 진리[常住]를 구하지도 않고, 아직은 처첩의 은혜와 사랑도 버리지 못했으나, 마음이 삿된 음행에 방탕하게 흐르지 않고 몸이 맑고 밝아서 광채가 나면, 죽은 뒤에 일월과 가까운 곳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4천왕천(天王天)이라고 한다.

 

 

於己妻房淫愛微薄於淨居時不得全味命終之后超日月明居人間頂如是一類名仞利天

자신의 처방(妻房)에서 음행을 즐기는 정은 엷고 미약하나, 청정하게 머무를 때 청정한 맛이 완전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뒤에 일월(日月)의 밝은 세상을 뛰어넘어 인간 세상의 최정상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도리천(忉利天)이라고 한다.

 

 

逢欲暫交去無思憶於人間世動少靜多命終之后於虛空中朗然安住日月光明上照不及是諸人等自有光明如是一類名須燄摩天

음욕의 경계를 만나면 잠시 어울렸다가 돌아서면 아무 생각이 없는 성품으로서, 인간 세상에 흔들림이 적고 고요함이 많은 사람은, 죽은 뒤에 허공세계에 밝게 안주하는데, 해와 달의 광명이 그 위까지 닿지 않으나, 이 사람들의 몸에는 저절로 광명이 비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수염마천(須燄摩天)이라고 한다.

 

 

一切時靜有應觸來未能違戾命終之后上升精微不接下界諸人天境乃至劫壞三災不及如是一類名兜率陀天我無欲心應汝行事於橫陳時味如嚼蠟命終之后生越化地如是一類名樂變化天無世間心同世行事於行事交了然超越命終之后遍能出超化無化境如是一類名他化自在天

언제나 조용히 지내다가 응해야할 접촉 상대가 왔을 때 어기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뒤에 정밀하고 미묘한 세계에 올라가서 태어나는데, 아래의 인간과 하늘 세계들과 접하지 않고, ()의 무너지는 시기에 이르러도 3()가 미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도솔타천(兜率陀天)이라고 한다.

나는 음행할 욕심이 없으나 너를 따라 관계한다는 심정으로, 뜻과 달리 관계를 맺으면서도 밀을 씹듯 맛을 모르는 사람은, 죽은 뒤에 뛰어넘어 변화의 세계[化地]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낙변화천(樂變化天)이라고 한다.

세상일에 마음이 없으나 세상일을 함께 행하고, 일을 행하며 어울리면서도 뚜렷이 초월한 사람은, 죽은 뒤에 변화의 세계와 변화가 없는 세계를 초월한 경계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고 한다.

 

阿難如是六天形雖出動心迹尙交自此已還名爲欲界

아난아, 이러한 여섯 하늘이 형체로는 비록 흔들림에서 벗어났으나, 마음의 자취는 아직도 어우러져 있으니, 이 하늘까지를 욕계(欲界)라고 하느니라.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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