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韓國易學의 특질
『周易』은 중국을 비롯해 한자를 사용하는 동양의 여러 민족이 과거 수천 년 동안 읽어 온 최고(最古)의 고전이다. 특히, 한국에 있어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오경(五經)·삼사(三史) 등을 학술 사상의 중심으로 삼아 왔으며, 그 가운데서도 『周易』을 다른 경전에 비해 최고의 원리가 담긴 최상의 경전으로 여겨 왔다.
중국에 있어서 『周易』을 13경의 으뜸으로 두었지만 이는 송대·명대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진(秦)나라의 분시서(焚詩書)에서도 『주역』은 점서(占書)로 보아 화를 면했고, 당나라의 국학에서 경전을 대경(大經)·중경(中經)·소경(小經)으로 분류할 때에도 『주역』을 소경으로 취급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대체로 『周易』은 점술로 응용되는 경향이 짙다.
『周易』이 본래 고대에서는 점서였던 것이 후대에 와서 윤리·철학서로서 면모를 바꾸게 된 것은 중국과 한국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周易』의 경학사적(經學史的) 위치는 고대로부터 항시 그 사상사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역학 사상은 주자학이 전래한 이후 크게 전환한다. 종래의 신비적 요소를 지양하고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역 사상 이해의 중심을 이룬다. 그리하여 조선조의 학자들은 주술적 점술을 억제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이론적·성리학적 입장에서 역리를 연구하게 되었으나 이는 송학(宋學)의 전래와 관련이 있다. 송학의 성립 자체가 역과 『中庸』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성리학의 기본이 되는 주요 문헌인 『근사록(近思錄)』·『성리대전(性理大全)』, 또는 한국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및 『성학집요(聖學輯要)』가 모두 『周易』과 『태극도설』을 학술의 연원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성리학이 상하 500년 동안 학술 사상의 중심을 이루어 오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역리의 이해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성리학의 이기설(理氣說)이나 심성정론(心性情論)은 『주역』의 “역유태극 시생양의(易有太極是生兩儀)”라 한 기본 명제에 대한 해석과 이론이며, 그것을 어떻게 전개하는가 하는 입장과 학설에 따라 학파가 갈라진다. 따라서, 태극을 이로, 음양을 기로 보아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 사상(易思想)의 차이가 생긴다.
역에는 변역(變易)·불역(不易)·간이(簡易)의 삼의(三義)가 있다. 그러나 어느 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사상도 달라진다. 한국에 있어서 변역의 측면을 강조하는 기학파의 대표로서 서경덕(徐敬德)을 들 수 있는데, 서경덕은 음양지기(陰陽之氣)를 철저화하여 태허지기(太虛之氣)의 유기론(唯氣論)을 주장하였다.
형이상은 (道)이고, 형이하는 기(器)라 함은 성리학의 일반적 견해인데 서경덕은 유형·무형간에 기가 있을 뿐이라 하며, 기의 취산(聚散)이 있을 뿐이고 기의 증멸(增滅)은 없다고 보았다. 취하여 물(物)이 형화(形化)하고 산하여 청허지기(淸虛之氣)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의 삼의 가운데 변역의 측면을 심화한 것으로, 서경덕의 경우 만물 중의 물(物)도 물이며, 천지도 물의 한 형태인 것이다. 개물(個物)만이 산하여 허기(虛氣)로 돌아가고 신기(新氣)로 생래(生來)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천지도 변해 태허지기로 돌아가 후천지(後天地)로 개벽되는 것이며, 이것은 기의 승강취산(升降聚散)의 기능이라고 본다.
서경덕은 음기와 양기의 양능(良能)으로 생성변화가 이루어지는 법칙을 이(理)라고 보았다. 서경덕의 역리에 의하면 천지를 만고불변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천지 미생(未生) 전을 전천지(前天地)라 한다면 천지가 멸한 뒤에는 후천지가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화담 철학의 특징이며 탁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로 제기된 것은 인간의 주체성과 창의성이다.
서경덕의 기론이 아무리 자연의 이법(理法)을 통찰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주체적 능동성과 자유로운 권능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종의 기수지학(氣數之學)으로 간주, 이학파에서는 이를 비판한다. 그 대표적 학자가 이황(李滉)이다.
이황은 태극을 강조해 “지극히 존귀하여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요, 어떠한 것에도 명령받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만물 중의 태극보다 인심(人心) 중의 태극을 강조해 인간 자아의 인격과 생명의 주체성을 진리의 근본으로 삼는다.
태극은 불역지리(不易之理)로서 천고불변의 인륜강상(人倫綱常)을 부식(扶植)하려는 입장이며, 역 삼의(三義) 가운데 불역의 측면을 취한 것이라 하겠다.
과학이 어떻게 발달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기계와는 구별될 수밖에 없으며 그 까닭을 알게 하는 것이 퇴계 철학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러나 천리(天理)를 지극히 높인다 해도 그 천리가 구체적 현실과 어떻게 매개되는가 하는 점이 문제다. 즉, 무에서 유가 나오게 되는 논리적 비약을 설명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여 역에 있어서 태극지리(太極之理)와 음양지기의 상호 관계성이 문제된다.
객관적 사실의 기의 세계와 주관적 관념의 이의 세계를 모순 없이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는 것은 주체적 인식 능력에 연유한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극(人極)을 성취해야만 한다.
『周易』과 『태극도설』에 의하면 인극, 즉 황극(皇極)이 확립될 수 있다면 사물을 달관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며,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귀신(鬼神)과 더불어 합일해 천하지리(天下之理)를 쉽게 해득할 수 있다고 한다.
『周易』에서 “쉽고 간단하고 착함은 지덕과 일치된다(易簡之善配至德).”라 한 것이 이를 말한다. 진리 인식의 주체인 성덕(盛德) 또는 명덕(明德)의 극치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객관에 대한 주관의 뜻이 아니라 주객 미분(主客未分)의 근원적 주체를 확립하는 인극인 것이다. 김항(金恒)의 『정역(正易)』에 “천지가 일월이 없으면 빈 껍데기요, 일월도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다(天地匪日月空殼日月匪至虛影).”라 한 것이 그것이다.
한국 역학이 인간의 진리에 근원을 두고 인극을 추구했다는 것은 역학 사상뿐만 아니라 한국 사상의 본령(本領)이며 특질인 것이다.
단군의 탄생이 천신(天神 : 天·陽)과 웅녀(熊女 : 地·陰) 사이에 화합해 이루어진 ‘중(中 : 人間)’ 사상이라는 점과 그 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인간을 강조한 점, 대승 불교 사상으로서 성(聖)과 속(俗)을 일원화하고 유(有)와 공(空)을 원융(圓融)하는 원효(元曉)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율곡 철학에서 이상적인 이와 현실적인 기를 묘용(妙用)하는 ‘이기지묘론(理氣之妙論)’,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 등은 모두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 한국 사상의 일관된 맥락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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