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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論語

論語(논어) 10. 鄕黨(향당)

by 산산바다 2016. 2. 28.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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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논어) 10. 鄕黨(향당)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焉  唯謹爾.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기재종묘조정  편편언  유근이

 

공자께서는 동네에서는 매우 공손하여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종묘와 조정에서는 분명하고 유창하게 말씀하시되 아주 신중하게 하셨다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조여하대부언  간간여야  여상대부언  은은여야  군재  축적여야  여여여야

 

조정에서 하대부와 말할 때는 온화하고 즐겁게 했고, 상대부와 말할 때는 예의 바르게 하셨다. 임금이 계시면 걸음걸이조차 조심했지만 의젓했다.

 

 

 

君召使擯 色勃如也 足躩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襜如也  趨進  翼如也  賓退  必復命曰  賓不顧矣.

군소사빈 색발여야  족곽여야 읍소여립  좌우수  의전후첨여야  추진  익여야  빈퇴  필복명왈  빈불고의

 

임금이 불러 외국 귀빈을 접대하기를 시키면 얼굴빛을 정중하게 하고 발걸음을 조심했다. 귀빈들과 함께 서서 인사를 할 때는 왼쪽 귀빈에게는 왼손을 위로 얹어 읍하고, 오른쪽 귀빈에게는 오른손을 위로 얹어 읍하셨다. 옷은 언제나 가지런하게 하셨다.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나가실 때는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했다. 귀빈이 돌아간 다음에는 반드시 임금님께 보고하였다. '손님이 뒤돌아보지 않고 잘 가셨습니다.'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行不履閾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  似不足者

입공문 국궁여야  여불용  입불중문  행불이역  과위 색발여야  족확여야  기언  사부족자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  似不息者  出降一等  逞顔色  怡怡如也  沒階  趨進翼如也  復其位  踧踖如也.

섭제승당  국궁여야  병기  사불식자  출강일등  영안색  이이여야  몰계  추진익여야  복기위  축적여야

 

조정의 문을 들어가실 때는 몸을 굽혀 절하는 듯, 송구스러워하시고, 문 가운데 서지 않았으며 문지방을 밟고 다니지 않았다. 임금이 있는 자리를 지날 때는 얼굴빛을 정중하게 하여 발걸음을 조심했고, 그 말이 부족한 듯이 하셨다.

 

당에 오를 때는 옷자락 앞을 여미고 공손하게 하시고, 또한 숨을 죽여 마치 숨을 쉬지 않는 듯이 하셨다. 그리고 조정을 나와서는 한 계단을 내려와서야 얼굴을 흡족하게 펴셨다. 계단을 다 내려와서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 마치 나래편 듯 하셨고.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신삼가는 자세로 조심스레 업무에 임했다.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足蹜蹜如有循  享禮  有容色  私覿  愉愉如也.

집규  국궁여야  여불승  상여읍  하여수  발여전색  족축축여유순  향례  유용색  사적  유유여야

 

규를 들어 바칠 때는(사신으로 외국에 가서) 몸을 굽힌 듯 공손히 들고, 위로 쳐들 때는 읍하는 것 같이 하고내릴 때는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것 같았다. 신중한 안색으로 종종걸음을 걸어 공손함을 보이셨다. 가져간 선물을 전할 때는 환한 얼굴을 하시고 사적으로 만날 때는 유쾌하게 하셨다.

 

* () - 옥으로 만든 것으로 외교의식 때 쓰는 신표이다.

 

 

 

君子  不以紺緅飾  紅紫  不以爲褻服  富暑  袗絺綌  必表以出之.

군자  불이감추식  홍자  불이위설복  부서  진치격  필표이출지

 

緇衣羔裘 素衣麑裘 黃衣狐裘. 褻裘長 短右袂 必有寢衣 長一身有半.        

치의고구 소의예구 황의호구설구장 단우몌 필유침의  장일신유반

 

군자(공자)는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이나 진보라 색으로 옷 테두리를 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평상복을 만들어 입지 않았다. 더운 날에는 고운 베나 거친 베로 만든 홑옷을 입었지만 반드시 안에 속옷을 입었다.

 

검은 옷을 입으면 (검은 색의) 염소 갖옷을 걸쳤고, 흰 옷을 입으면 (흰색의) 사슴 갖옷을 걸쳤으며, 누런 옷엔 (누런색의) 여우 갖옷을 걸쳤다. 그리고 반드시 잠옷을 입으시니 길이가 몸의 한 배 반이었다.

 

 

 

狐貉之厚以居  去喪  無所不佩  非帷裳  必殺之  恙裘玄冠  不以弔  吉月  必朝服而朝.

호맥지후이거  거상  무소불패  비유상  필쇄지  양구현관  불이조  길월  필조복이조.

 

여우와 담비의 두터운 털로 방석을 삼으시고, (상이 있을 때에는)상을 마치고 나서야 허리에 온갖 패물을 차셨다. 조회나 제사 때 입는 옷이 아니면(천 한 폭을 통으로 쓰지 않고) 약간의 천으로 재봉했다. 조문할 때는 검은 염소 갖옷과 검은 관 차림으로는 나서지 않았다. 초하루에는 반드시 조복을 차려입고 조회에 나갔다

 

* 공자의 까다로운 의복습관을 정리한 대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단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며, 또 의복에서도 삼가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리에 맞는 적절한 의복을 차려입는 태도를 보여준다.

 

 

 

齋必有明衣布  齋必變食  居必遷坐.  

재필유명의포  재필변식  거필천좌

 

재계할 때는 반드시 (도복과 같이) 베로 만든 명의를 입었다. 그리고 평소 먹던 음식을 바꾸었고, 잠자리도 옮겼다.

 

 

 

食不厭精  膾不厭細  食饐而餲  魚餒而肉敗  不食  色惡不食  臭惡不食  失飪不食  不時不食

사불염정  회불염세  사의이애  어뇌이육패  불식  색악불식  취악불식  실임불식  불시불식

 

割不正  不食  不得其醬  不食  肉雖多  不使勝食  唯酒無量  不及亂  沽酒市脯  不食  不撤薑食  不多食

할부정  불식  부득기장  불식  육수다  불사승사기  유주무량  불급란  고주시포  불식  불철강식  불다식

 

밥은 곱게 찧어서 한 것을 좋아했고, 생선과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좋아하셨다. 쉰밥과 맛이 간 생선, 상한 고기는 먹지 않으셨다. 색이 변한 것과 냄새가 고약한 것도 먹지 않았다. 익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셨고 식사 때가 아니면 먹지 않으셨다.

 

반듯하게 썬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고, 음식에 어울리는 장이 없으면(간이 맞지 않으면) 먹지 않으셨다. 고기는 많아도 밥보다 많이 먹지 않으시고 단지 술은 많이 마셨으되 취할 지경까지 마시지 않으셨다. 시장에서 사온 술과 포는 드시지 않았다. 생강은 꼭 챙겨 잡수지지만 많이 드시지는 않았다.

 

 

 

祭於公  不宿肉  祭肉  不出三日  出三日  不食之矣  食不語  寢不言  雖疏食菜羹  瓜祭  必齊如也

제어공  불숙육  제육  불출삼일  출삼일  불식지의  식불어  침불언  수소사채갱  과제  필제여야 

 

나라의 제사에 참여하고 받아 온 고기는 날을 넘기지 않았으며, 사흘을 넘긴 것들은 먹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나 잠자리에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꼭 감사의 예를 취했는데 마치 재계하듯 했다.

 

 

 

席不正  不坐.

석부정  불좌.

 

자리가 반듯하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鄕人儺  朝服而立於阼階.

향인음주  장자출  사출의.   향인나  조복이립어조계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에는 지팡이 짚은 노인들이 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따라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굿을 할 때는 조복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계셨다.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康子饋藥  拜而受之曰  丘未達  不敢嘗

문인어타방  재배이송지강자궤약  배이수지왈  구미달  불감상

 

다른 나라로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으려 할 때는 두 번 절하고 보냈다. 강자가 약을 보내니 이를 절하고 받으시며 공자 말씀하시길, '내가 이 약의 성분을 모르니 감히 맛을 볼 수가 없구나.' 하셨다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구분  자퇴조왈  상인호  불문마.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나와 묻기를, 사람이 다쳤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군사식  필정석선상지  군사성  필숙이천지  군사생  필축지

 

侍食於君  君祭  先飯  疾君視之  東首  加朝服拖紳君命召  不俟駕行矣.

시식어군  군제  선반  질군시지  동수  가조복타신군명소  불사가행의

 

임금이 음식을 하사하시면 반드시 자리를 반듯이 하고 먼저 맛을 보았다. 임금이 날고기를 하사하시면 반드시 익혀서 먼저 조상에게 올렸다. 임금이 산짐승을 하사하시면 반드시 잘 길렀다.

 

임금을 모시고 식사할 때는 임금이 감사의 예를 취하고 난 후 먼저 음식 맛을 보았다. 병이 들어 임금이 문병을 오시면 머리를 동쪽에 두고 조정에 나갈 때 입는 예복을 몸에 덮은 후 그 위에 띠를 늘어뜨리고 맞았다. 임금이 부르면 수레에 멍에 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나섰다.

 

 

 

入太廟  每事  .

입태묘  매사 

 

태묘에 들어서서는 진행하는 절차마다 물었다.

 

 

 

朋友死  無所歸  曰於我殯.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붕우사  무소귀  왈어아빈.   붕우지궤  수거마  비제육  불배

 

벗 하나가 죽었는데 거두어 줄 사람이 없었다. 공자 말씀하시길, '장례를 내가 치러 주리라.' 그러나 벗이 지낸 선물은 제사 지낸 고기가 아니면 비록 수레나 말이라도 절하지 않았다.

 

* 제사 지낸 물건은 귀하게 생각해서 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받지만, 그 밖의 선물에 대해서는 귀한 물건이라도 친구간에 새삼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안 했다는 뜻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각박한 풍조와는 다른 시대였기 대문이다.  

 

 

 

寢不尸  居不容  見齊衰者  雖狎  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必以貌  凶服者式之  式負版者

침불시  거불용  견제최자  수압  필변  견변자여고자  수설필이모  흉복자식지  식부판자

 

有盛饌  必變色而作迅雷風烈  必變升車  必正立執綏車中  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유성찬  필변색이작신뇌풍열  필변   승차  필정립집수거중  불내고  불질언  불친지

 

잠잘 때는 마치 죽은 사람같이 축 늘어져 자지 않았고, 집에서는 편하게 앉았다. 상복 입은 사람을 보면 비록 친한 사이라도 얼굴빛을 고쳤고, 관모를 쓴 사람과 눈먼 이를 보면 비록 자주 보는 사이라도 반드시 예를 갖추었다. 수레를 타고 가다가 상복 입은 사람을 만나면 인사했고, 나라의 지도나 호적을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했다.

 

좋은 음식을 대접 받으면 반드시 얼굴빛을 고치고 일어나 인사했다. 갑작스런 천둥과 사나운 바람을 만나면 반드시 얼굴빛을 고쳤다. 수레를 탈 때는 반드시 똑바로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수레 안에서는 두리번거리지 않았으며말을 빨리 하지도 않았고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지도 않았다.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山梁雌雉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색사거의  상이후집  왈산양자치시재시재  자로공지  삼후이작

 

(산길에서 꿩을 몇 마리 만났다) 사람 기척을 느낀 꿩들이 곧 날아 올라 빙빙 돌더니 다시 내려앉았다.

공자 말씀하시길, '산마루의 꿩들이 때를 만났구나. 때를 만났어!' 자로가 꿩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자 꿩들은 다시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 예로부터 논란이 많은 대목으로 무언가 빠진 글자나 오자가 있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공자가 때로구나 한 말을 자로가 잘못 알아 배고픈 시간이니 잡아먹자는 뜻으로 생각해 잡아서 바쳤더니 공자가 세 번 냄새만 맡고 일어섰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양백준은 으로, 으로 보고 위와 같이 해석했다. 그 해석이 더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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