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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포석정(慶州 鮑石亭)에 가보다

by 산산바다 2015. 6. 9.

산과바다

 

경주 포석정(慶州 鮑石亭)에 가보다

2015. 6. 3.

산과바다는 꽃돼지벗님과 대릉원을 둘러보고 경주 남산 서쪽에 있는 포석정지의 포석정을 둘러보았다.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의 별궁이 있던 곳으로,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 석구(石構)만 남아 있는데 돌 홈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그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놓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기던 곳이다. 돌 홈 모양이 구불구불하여 전복껍질 모양과 같으므로 포석정이라 하였다는군요.

 

 

 

 

통일신라시대의 연회장소로 여겨져 왔으나, 1998년 근처에서 많은 유물과 함께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들이 출토되면서 이곳이 신라 왕실의 별궁이던 장소이자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의식을 행하던 곳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경주 남산 서쪽 계곡(경주시 배동 454-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963121일 사적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돌 홈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그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놓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기던 곳이다. 돌 홈모양이 구불구불하여 전복껍질 모양과 같으므로 포석정이라 하였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기록은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현재 건물은 없어지고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물길의 너비는 약 30cm, 깊이는 20cm이며, 높낮이의 차는 5.9cm, 타원형 물길의 길이는 약 22m에 이른다.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술을 담은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王羲之)는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개울에 몸을 깨끗이 씻고 결제사(潔祭祀)를 올렸다. 그리고 개울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이자 놀이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이 왕희지가 쓴 <난정기>에 전해져 오는데, 이를 본따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유상곡수연의 유배거를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큰 돌거북을 만들어 놓고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다가 그 거북의 입으로 물이 나와 돌 홈으로 흘러가게 한 것인데, 지금은 없어져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의 기록에 의하면 제49대 헌강왕(876~886)이 포석정에 행차해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남산신이 임금 앞에 나와 춤을 추었는데 신하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임금은 손수 일어서서 남산신이 춤추던 모습을 흉내내어 보였다. 그 후부터 그 춤이 널리 행하여졌는데 남산신의 이름을 따서 '어무산신(御舞山神)' 또는 '어무상심(御舞祥審)', '상심무(祥審舞)'라 했으며 이 춤은 고려시대까지 유행하였다 한다.

927년 경애왕(景哀王 4)은 후백제 견훤 군대의 습격을 받아 이 포석정에서 최후를 마쳤다고 알려져 있다.

 

 

포석정지의 포석정을 둘러보고 나와 경주 시내에 있는 분황사와 황룡사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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