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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長阿含經

長阿含經 17. 淸淨經

by 산산바다 2015. 2. 12.

산과바다

 

 

 

 

長阿含經

 

17. 淸淨經  청정경

 

 

청정경(淸淨經)주나(周那)라는 사미가 아난에게 외도 스승인 니건자가 죽자 그 제자들이 두 파로 분열되어 서로 다툰다는 소식을 전하자 부처님께서는 이를 인연으로 무쟁(無諍)의 정법(正法)을 말씀하셨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在迦維羅衛國緬祇優婆塞林中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가비라국) 면기(緬祇)에 있는 우바새의 동산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有沙彌周那在波波國夏安居已執持衣鉢漸詣迦維羅衛緬祇園中至阿難所頭面禮足於一面立白阿難言波波城內有尼乾子命終未久其諸弟子分爲二分各共諍訟面相毁罵無復上下迭相求短競其知見我能知是汝不能知我行眞正汝爲邪見以前著後以後著前顚倒錯亂無有法則我所爲妙汝所言非汝有所疑當諮問我大德阿難彼國人民事尼乾者聞諍訟已生厭患心

 

이 때 사미(沙彌) 주나(周那)는 파파(波波)국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가유라위국 면기에 있는 동산의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아난에게 아뢰었다.

 

저 파파성 안에 살던 니건자(尼乾子)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제자들이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서로 맞대고 헐뜯고 욕하면서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그 지견(知見)을 다투어 "나는 이것을 알 수 있지만 너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이며, 뒤바뀌고 어지러이 얽혀 어떤 일정한 법칙도 없이 서로 "내가 하는 말은 옳고 네가 하는 말은 그르다. 너에게 의심이 있거든 마땅히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대덕(大德) 아난이여, 그때 니건자를 섬기던 저 나라 사람들은 이 다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阿難語周那沙彌曰我等有言欲啓世尊今共汝往宣啓此事若世尊有所戒勅當共奉行

아난이 주나 사미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세존께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너와 함께 나아가 이 사실을 세존께 아뢰리라. 만일 세존께서 어떤 가르침이 계시거든 우리는 다 같이 받들어 행하자.”

 

 

爾時沙彌周那聞阿難語已即共詣世尊頭面禮足在一面立爾時阿難白世尊曰此沙彌周那在波波國夏安居已執持衣鉢漸來至此禮我足語我言波波國有尼乾子命終未久其諸弟子分爲二分各共諍訟面相毁罵無復上下迭相求短競其知見我能知是汝不能知我行眞正汝爲邪見以前著後以後著前顚倒錯亂無有法則我所言是汝所言非汝有所疑當諮問我彼國人民事尼乾者聞諍訟已生厭患心 

그 때 사미 주나는 아난의 말을 듣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그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 사미 주나가 파파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이곳에 와 제 발에 절하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파국에 살던 니건자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제자들이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맞대고 헐뜯고 욕하면서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저들의 지견을 주장하여 "나는 이것을 알 수 있는데 너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들 합니다.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이며, 뒤바뀐 소견으로 어지러이 얽혀 어떤 일정한 법칙도 없이 "내 말은 옳고 네 말은 그르다. 너는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파파국 백성들은 이 다툼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世尊告周那沙彌曰如是周那彼非法中不足聽聞此非三耶三佛所說猶如朽塔難可汙色彼雖有師盡懷邪見雖復有法盡不眞正不足聽採不能出要非是三耶三佛所說猶如故塔不可汙也彼諸弟子有不順其法捨彼異見行於正見周那若有人來語彼弟子諸賢汝師法正當於中行何以捨離其彼弟子信其言者則二俱失道獲無量罪所以者何彼雖有法然不眞正故周那若師不邪見其法眞正善可聽採能得出要三耶三佛所說譬如新塔易可汙色然諸弟子於此法中不能勤修不能成就捨平等道入於邪見若有人來語彼弟子諸賢汝師法正當於中行何以捨離入於邪見其彼弟子信其言者則二俱見眞正獲無量福所以者何其法眞正

 

세존께서 주나 사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나야,

저 그른 법에서는 들을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의 말씀이 아니다.

* 三耶三佛: samm-sambuddha이다. 정변지(正遍知)정등각(正等覺)이라는 뜻이다. 또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번역하기도 한다.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저들에게 스승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고 있고,

또 그들에게 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그 법으로는 번뇌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이 아니어서, 마치 썩은 탑에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저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따르지 않고 삿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행하려고 할 때에 주나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바른 것이어서 마땅히 그 법을 행할 만한데 왜 버리느냐?"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 때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도()를 잃어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에게 비록 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眞正)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듣고 행할만하며 또 번뇌를 벗어나게 한다면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일 것이니,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러나 저 모든 제자들이 이 법 가운데 있어서 부지런히 닦지도 않고 성취하지도 못해 평등한 도를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들에게 와서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바른 법이다. 마땅히 그 법을 행해야 하겠거늘 왜 그것을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려 하느냐?"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진정한 도를 보아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은 진정(眞正)하기 때문이다.”

 

 

佛告周那彼雖有師然懷邪見雖復有法盡不眞正不足聽採不能出要非三耶三佛所說猶如朽塔不可汙色彼諸弟子法法成就隨順其行起諸邪見周那若有人來語其弟子言汝師法正汝所行是今所修行勤苦如是應於現法成就道果彼諸弟子信受其言者則二俱失道獲無量罪所以者何以法不眞正故周那若師不邪見其法眞正善可聽採能得出要三耶三佛所說譬如新塔易爲汙色又其弟子法法成就隨順修行而生正見若有人來語其弟子言汝師法正汝所行是今所修行勤苦如是應於現法成就道果彼諸弟子信受其言二俱正見獲無量福所以者何法眞正故

 

부처님께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

주나야,

저들에게 스승이 있다지만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또 법이 있다지만 그것은 다 진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법은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또 그것은 번뇌를 벗어나게 하지 못하며 삼야삼불의 말씀도 아니니,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성취하고 그 행을 순종하여 모든 삿된 소견을 일으켰을 때에 주나야,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도 옳다. 이제 이처럼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면,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道果)를 성취하리라"라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제자도 그 말을 믿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함께 도를 잃고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이 진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들을 만하며 또 번뇌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일 것이니,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성취하고 수순(隨順)하며 수행하여 바른 소견을 내려고 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도 옳다. 이제 이처럼 부지런히 수행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제자도 그 말을 믿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다 바른 소견으로서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

 

 

周那或有導師出世使弟子生憂或有導師出世使弟子無憂云何導師出世使弟子生憂周那導師新出世間成道未久其法具足梵行淸淨如實眞要而不布現然彼導師速取滅度其諸弟子不得修行皆愁憂言師初出世成道未久其法淸淨梵行具足如實眞要竟不布現而今導師便速滅度我等弟子不得修行是爲導師出世弟子愁憂云何導師出世弟子不憂謂導師出世其法淸淨梵行具足如實眞要而廣流布然後導師方取滅度其諸弟子皆得修行不懷憂言師初出世成道未久其法淸淨梵行具足如實眞要而不布現而今導師便速滅度使我弟子不得修行如是周那導師出世弟子無憂

 

주나야,

혹 어떤 도사(導師)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을 생기게 하고, 혹 어떤 도사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의 근심을 없애 준다.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생기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나야, 도사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成道)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은 구족하고 범행(梵行)이 청정하며 여실한 진요(眞要)인데 이를 잘 펴서 나타내 주지도 못하고 도사가 어느새 멸도(滅度)에 든다고 하자. 그 때 그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어 모두들 근심에 잠겨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 스승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한 지 오래지 않지만,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했으며 여실한 진요였다. 끝내 펴서 나타내 주지도 못하고 이제 도사께서 갑자기 멸도에 드셨으니, 우리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구나."

이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없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사가 세상에 나왔는데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하며 여실한 진요이다. 그리하여 그 법을 널리 편 뒤에야 도사가 바야흐로 멸도에 든다고 하자. 그러면 그 제자들은 모두 수행할 수 있어 근심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스승은 세상에 나와 성도한 지 오래지 않지만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했으며 여실한 진요이다. 그리고 널리 펴신 후에야 도사께서는 멸도하시어 우리 제자들이 모두 수행할 수 있게 하셨다."

 

주나야,

이것이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다.”

 

 

佛告周那此支成就梵行謂導師出世出家未久名聞未廣是謂梵行支不具足周那導師出世出家旣久名聞廣遠是謂梵行支具足滿周那導師出世出家旣久名聞亦廣而諸弟子未受訓誨未具梵行未至安處未獲己利未能受法分布演說有異論起不能如法而往滅之未能變化成神通證是爲梵行支不具足周那導師出世出家旣久名聞亦廣而諸弟子盡受敎訓梵行具足至安隱處已獲己利又能受法分別演說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是爲梵行支具足滿

 

부처님께서 다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

()가 성취된 범행에 대해 말해주리라.

이른바 도사가 세상에 나왔다가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지 않았으면 이것을 범행지(梵行支)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이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으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이고 그 이름 또한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제자가 아직 그 훈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범행을 구족하지 못하고 안락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아직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아직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異論)이 일어났을 때 법답게 가서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아직 변화를 부리지 못하며 신통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이고 그 이름도 널리 퍼져 모든 제자들이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을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이미 자기의 이익을 거두었고 또 법을 받아 분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 능히 법답게 가서 그것을 없애고 변화를 구족하여 신통을 증득하였다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 한다.

 

 

周那導師出世出家亦久名聞亦廣諸比丘尼未受訓誨未至安處未獲己利未能受法分布演說有異論起不能以法如實除滅未能變化成神通證是爲梵行支未具足周那導師出世出家亦久名聞亦廣諸比丘尼盡受敎訓梵行具足至安隱處已獲己利復能受法分別演說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是爲梵行支具足滿周那諸優婆塞優婆夷廣修梵行乃至變化具足成神通證亦復如是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또한 오래 이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비구니가 그 교훈을 받지 못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 능히 법으로써 실답게 멸하지 못하고 변화가 없어 신통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도 오래 이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며, 모든 비구니가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을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러 자기의 이익을 거두며, 또한 능히 법을 받아 분별하고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나면 능히 법답게 멸하며,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면, 이를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모든 우바새우바이가 널리 범행을 닦고 나아가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을 증득함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周那若導師不在世無有名聞利養損減則梵行支不具足滿若導師在世名聞利養皆悉具足無有損減則梵行支爲具足滿若導師在世名聞利養皆悉具足而諸比丘名聞利養不能具足是爲梵行支不具足若導師在世名聞利養具足無損諸比丘眾亦復具足則梵行支爲具足滿比丘尼眾亦復如是

 

주나야,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지 않고 그 명성[名聞]이 없으며 이양(利養)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고 명성과 이양이 다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성과 이양이 다 구족하더라도 모든 비구가 명성과 이양을 구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성과 이양이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고 모든 비구 대중도 또한 그것을 구족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다. 비구니 대중들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周那我出家久名聞廣遠我諸比丘已受敎誡到安隱處自獲己利復能受法爲人說法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皆亦如是周那我以廣流布梵行乃至變化具足成神通證周那一切世間所有導師不見有得名聞利養如我如來至眞等正覺者也周那諸世間所有徒眾不見有名聞利養如我眾也周那若欲正說者當言見不可見云何見不可見一切梵行淸淨具足宣示布現是名見不可見

 

주나야,

나는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며 나의 모든 비구들은 이미 나의 가르침을 받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얻었고 또 능히 배운 법을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답게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며 신통을 증득하였다.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도 또한 그러하다.

 

주나야,

나는 그로서 널리 범행을 유포하고, 나아가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

 

주나야,

일체 세간의 모든 도사 중에 그 명성과 이양을 얻은 것이 나 여래지진등정각과 같은 이는 보지 못했다.

 

주나야,

모든 세간의 온갖 무리들 중에 그 명성과 이양이 나의 무리와 같은 자들은 보지 못했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히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爾時世尊告諸比丘頭藍子在大眾中而作是說有見不見云何名見不見如刀可見刃不可見諸比丘彼子乃引凡夫無識之言以爲譬喩如是周那若欲正說者當言見不見云何見不見汝當正欲說言一切梵行淸淨具足宣示流布是不可見周那彼相續法不具足而可得不相續法具足而不可得周那諸法中梵行酪酥中醍醐

* 의 대치.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울두람자(鬱頭藍子)가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 鬱頭藍子: Uddaka Rmaputta로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여 도를 배웠던 두 선인(仙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로 비유를 들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무엇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네가 바로 일체 범행을 청정하게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여 흘러 퍼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이니라.

 

주나야,

저 인과가 계속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인과가 계속되지 않는 법은 구족하여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범행(梵行)은 비유하면 낙()과 소() 가운데 제호(醍醐)와 같은 것이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是法躬自作證謂四念處四神足四意斷四禪五根五力七覺意賢聖八道汝等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作是言彼所說句不正義理不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諸賢我句如是汝句如是我義如是汝義如是何者爲勝何者爲負若彼比丘報言我句如是我義如是汝句如是汝義如是汝句亦勝汝義亦勝彼比丘說此亦不得非亦不得是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受同一師同一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법 가운데서 몸소 스스로 증명을 얻었다. 이른바 4념처(念處)4신족(神足)4의단(意斷)4()5()5()7각의(覺意)와 현성의 여덟 가지 도()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다 함께 화합하고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하니라. 여래의 정법에 대하여 마땅히 스스로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어 마치고 나서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자리에서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말한 구절은 옳지 않고 그 뜻도 옳지 않다"고 말하거든 비구들은 그런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여러분,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한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내 뜻은 이러하다. 너의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그래서 너의 글귀가 낫고 너의 뜻도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바른 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是言彼所說句不正義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比丘我句如是汝句如是何者爲是何者爲非若彼比丘報言我句如是汝句如是汝句亦勝彼比丘說此亦不得言是不得言非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안락을 얻어 마치고 나서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어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말한 글귀는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그 뜻은 바르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네 글귀는 이러하다. 네 글귀가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할 것이요,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를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是言彼所說句正義不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比丘我義如是汝義如是何者爲是何者爲非若彼報言我義如是汝義如是汝義而勝彼比丘說此已亦不得言是亦不得言非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比丘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안락을 얻고 나서 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다가 "저 사람이 말한 글귀는 바르지만 뜻은 바르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나의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너의 뜻이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더라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또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비구는 다 함께 화합하여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를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如是言彼所說句正義正比丘聞已不得言非當稱讚彼言汝所言是汝所言是是故比丘於十二部經自身作證當廣流布一曰貫經二曰祇夜經三曰受記經四曰偈經五曰法句經六曰相應經七曰本緣經八曰天本經九曰廣經十曰未曾有經十一曰譬喩經十二曰大敎經當善受持稱量觀察廣演分布

 

안락을 얻고 나서 또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다가 "저 사람의 말은 글귀도 바르고 뜻도 또한 바르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그르다고 하지 말고 마땅히 그를 칭찬해 말하라.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12부경(部經)에 대하여 몸소 진리를 깨닫고 마땅히 널리 유포해야 한다.

12부경이란 첫째는 관경(貫經), 둘째는 기야경(祇夜經), 셋째는 수기경(受記經), 넷째는 게경(偈經), 다섯째는 법구경(法句經), 여섯째는 상응경(相應經), 일곱째는 본연경(本緣經), 여덟째는 천본경(天本經), 아홉째는 광경(廣經), 열째는 미증유경(未曾有經), 열한째는 비유경(譬喩經), 열두째는 대교경(大敎經)이다. 마땅히 이것을 잘 받아 지니고 헤아려 관찰하고 널리 펴서 분포하라.

 

 

諸比丘我所制衣若塚間衣若長者衣麤賤衣此衣足障寒暑蚊虻足蔽四體諸比丘我所制食若乞食若居士食此食自足若身苦惱眾患切已恐遂至死故聽此食知足而已諸比丘我所制住處若在樹下若在露地若在房內若樓閣上若在窟內若在種種住處此處自足爲障寒暑風雨蚊虻下至閑靜懈息之處諸比丘我所制藥若大小便酥油蜜黑石蜜此藥自足若身生苦惱眾患切已恐遂至死故聽此藥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옷은 혹은 무덤 사이의 옷, 혹은 장자의 옷, 혹은 추하고 천한 옷이다. 이 옷들은 추위와 더위, 모기나 등에를 막기에 충분하고 몸뚱이를 가리기에 넉넉하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음식은 빌어온 음식이거나 혹은 거사의 음식이니 이 음식이면 스스로 족하다. 몸이 괴롭고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 음식을 허락한 것이니 족한 줄 알면 그만인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주처(住處)는 혹은 나무 밑에 있거나 혹은 한 데 있으며, 혹은 방 안에 있거나 혹은 누각 위에 있으며, 혹은 굴 속에 있고 혹은 그 밖의 여러 곳에 있다. 이 주처들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를 막기에 족하며 한적하고 피곤할 때 쉴 곳이 된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약은 대소변소유(?)흑밀(黑蜜)석밀(石蜜) 등이니 이런 약이면 스스로 족하다. 혹은 몸에 고통이 생기고 온갖 병이 닥쳐와 마침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 약을 허락한 것이다.”

 

 

佛言或有外道梵志來作是語沙門釋子以眾樂自娛若有此言當如是報汝等莫作此言謂沙門釋子以眾樂自娛所以者何有樂自娛如來呵責有樂自娛如來稱譽若外道梵志問言何樂自娛瞿曇呵責設有此語汝等當報五欲功德可愛可樂人所貪著云何爲五眼知色可愛可樂人所貪著耳聞聲鼻知香舌知味身知觸可愛可樂人所貪著諸賢猶是五欲緣生喜樂此是如來至眞等正覺之所呵責也猶如有人故殺眾生自以爲樂此是如來至眞等正覺之所呵責猶如有人私竊偸盜自以爲樂此爲如來之所呵責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爲樂此是如來之所呵責猶如有人故作妄語自以爲樂此是如來之所呵責猶如有人放蕩自恣此是如來之所呵責猶如有人行外苦行非是如來所說正行自以
爲樂此是如來之所呵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 어떤 외도(外道) 범지가 와서 "사문 석자(釋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라.

 

"그대들은 <사문 석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 중에 여래께서 꾸짖는 것이 있고,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 중에 여래께서 칭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외도 범지가 다시 "구담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꾸짖는가?"라고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5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면 애착을 가질 수 있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되며 귀가 소리를 듣고, 코가 냄새를 맡고, 혀가 맛을 맛보고, 몸이 촉감을 느끼고 나면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된다.

 

여러분, 바로 이 5욕의 인연이 희락(喜樂)을 일으킨다. 이런 것들은 여래지진등정각께서 꾸짖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지진등정각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몰래 도둑질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梵行)을 범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행이 아닌 이교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諸比丘呵責五欲功德人所貪著云何爲五眼知色可愛可樂人所貪著耳聞聲鼻知香舌知味身知觸可愛可樂人所貪著如此諸樂沙門釋子無如此樂猶如有人故殺眾生以此爲樂沙門釋子無如此樂猶如有人公爲盜賊自以爲樂沙門釋子無如是樂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爲樂沙門釋子無如是樂猶如有人故作妄語自以爲樂沙門釋子無如是樂猶如有人放蕩自恣自以爲樂沙門釋子無如是樂猶如有人行外苦行自以爲樂沙門釋子無如是樂

 

모든 비구여,

여래께서는 사람들이 다섯 가지 욕망의 공덕을 탐내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꾸짖으신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나서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되며,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느끼고 나서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즐거움이라지만 사문 석자에게 이러한 즐거움은 없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중생을 죽이고 이를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범행을 범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방탕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이교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若外道梵志作如是問何樂自娛沙門瞿曇之所稱譽諸比丘彼若有此言汝等當答彼言諸賢有五欲功德可愛可樂人所貪著云何爲五眼知色乃至意知法可愛可樂人所貪著諸賢五欲因緣生樂當速除滅猶如有人故殺眾生自以爲樂有如此樂應速除滅猶如有人公爲盜賊自以爲樂有如此樂應速除滅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爲樂有如此樂應速除滅猶如有人故爲妄語自以爲樂有如此樂應速除滅猶如有人放蕩自恣自以爲樂有如此樂應速除滅猶如有人行外苦行自以爲樂有如是樂應速除滅猶如有人去離貪欲無復惡法有覺有觀離生喜入初禪如是樂者佛所稱譽猶如有人滅於覺內喜一心無覺無觀定生喜入第二禪如是樂者佛所稱譽猶如有人除喜入捨自知身樂賢聖所求護念一心入第三禪如是樂者佛所稱譽樂盡苦盡喜先滅不苦不樂護念淸淨入第四禪如是樂者佛所稱譽

 

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사문 구담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칭찬하시는가?" 하고 묻거든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여러분, 5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나아가 마음이 법진(法塵)을 알고 나면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범행을 범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방탕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외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탐욕을 여의고 다시 악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각()과 관()을 없애고 안으로 기뻐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는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간다면, 그런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기쁨을 버리고 사()에 들어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이 구하는 바인 호념일심(護念一心)의 제3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즐거움도 다하고 괴로움도 다하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기억[]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若有外道梵志作如是問汝等於此樂中求幾果功德應答彼言此樂當有七果功德云何爲七於現法中得成道證正使不成臨命終時當成道證若臨命終復不成者當盡五下結中間般涅槃生彼般涅槃行般涅槃無行般涅槃上流阿迦尼般涅槃諸賢是爲此樂有七功德諸賢若比丘在學地欲上求安隱處未除五蓋云何爲五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戱蓋疑蓋彼學比丘方欲上求求安隱處未滅五蓋於四念處不能精勤於七覺意不能勤修欲得上人法賢聖智慧增盛求欲知欲見者無有是處諸賢學地比丘欲上求求安隱處能滅五蓋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戱蓋疑蓋於四意處又能精勤於七覺意如實修行欲得上人法賢聖智慧增上求欲知欲見者則有是處諸賢若有比丘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自獲己利盡諸有結使正智解脫不爲九事云何爲九一者不殺二者不盜三者不淫四者不妄語五者不捨道六者不隨欲七者不隨恚八者不隨怖九者不隨癡諸賢是爲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自獲己利盡諸有結正智得解遠離九事

* 의 대치.

 

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너희들은 그 즐거움에서 얼마만한 공덕의 과() 를 구하느냐?"고 묻거든 마땅히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이 즐거움에는 7()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현세에서 도증(道證)을 이루는 것이다. 만일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면 목숨을 마칠 때 도증을 이루는 것이요, 만일 목숨을 마칠 때에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5하결(下結)을 다해 중유의 단계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거나 다른 세계에 태어나서 반열반에 들거나 그 곳에서 수행하여 반열반에 들거나 수행하지 않고도 반열반에 들거나 가장 위의 세계인 아가니타천(阿迦尼)에서 반열반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 즐거움의 일곱 가지 공덕이다.

 

여러분, 만일 배우는 위치[學地]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安穩處)를 구하는데 아직 5()를 없애지 못했다고 하자.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진에개(瞋恚蓋)수면개(睡眠蓋)도희개(掉戱蓋)의개(疑蓋)가 그것이다.

저 배우는 위치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면서 아직 5개를 없애지 못했고 4념처(念處)를 정근하지 않고 7각의(覺意)를 정근하지 않는다면 상인(上人)의 법과 현성의 지혜를 늘려서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 학지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여 능히 탐욕개진에개수면개도희개의개 등 5개를 없애고 또 4념처를 정근하고 7각의를 여실히 수행한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상인의 법과 현성의 지혜를 늘려서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버리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의 번뇌를 다하며,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9()를 행하지 않는다.

* 모든 유(): 3() 즉 욕유(欲有)색유(色有)무색유(無色有)를 말한다.

 

어떤 것이 아홉 가지인가?

첫째는 살생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간음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도()를 버리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욕심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성냄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는 두려움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의 번뇌를 다하며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9()를 멀리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

 

 

或有外道梵志作是說言沙門釋子有不住法應報彼言諸賢莫作是說沙門釋子有不住法所以者何沙門釋子其法常住不可動轉譬如門閫常住不動沙門釋子亦復如是其法常住無有移動或有外道梵志作是說言沙門瞿曇盡知過去世事不知未來事彼比丘彼異學梵志智異智觀亦異所言虛妄如來於彼過去事若在目前無不知見於未來世生於道智過去世事虛妄不實不足喜樂無所利益佛則不記或過去事有實無可喜樂無所利益佛亦不記若過去事有實可樂而無利益佛亦不記若過去事有實可樂有所利益如來盡知然後記之未來現在亦復如是如來於過去未來現在應時語實語義語利語法語律語無有虛也佛於初夜成最正覺及末後夜於其中間有所言說盡皆如實故名如來復次如來所說如事事如所說故名如來以何等義名等正覺佛所知見所滅所覺佛盡覺知故名等正覺

 

또 어떤 외도 범지가 "사문 석자(釋子)에겐 머무르지 않는 법[不住法]이 있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여러분, (사문 석자에겐 머무르지 않는 법이 있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사문 석자의 법은 영원히 머물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문지방은 항상 머물러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문 석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들의 법은 항상 머물러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

 

또 어떤 외도 범지는

"사문 구담은 과거 세상의 일을 다 알지만 미래의 일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이학(異學) 범지는 지혜도 다르고 지혜로 보는 관점도 또한 다르며 그의 말은 허망하다. 여래는 과거 세상의 일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미래 세상에 대해서도 도지(道智)로써 안다.

* 도지(道智, mrgaja)는 깨달음으로 생기는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만일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즐거워할 것이 못되며 이익 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곧 기억하지 않는다.

혹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는 하나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 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기도 하나, 이익 되는 바가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며 또 이익 되는 바도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기억한다.

 

미래와 현재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대하여 제 때에 말하고[時語], 진실하게 말하며[實語], 뜻대로 말하고[義語], 이익 되게 말하고[利語], 법에 맞게 말하고[法語], 계율에 맞게 말하는[律語] 자로서 거짓이 없다.

 

부처가 최정각(最正覺)을 이룬 최초의 밤부터 최후의 밤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 말은 모두 진실한 것[如實]이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 한다.

또한 여래의 말은 사실과 같고 사실이 그의 말과 같으므로 여래라 이름 한다.

어떤 이유로 등정각(等正覺)이라 이름 하는가? 부처로서 알고 보아야 할 것, 멸해야 할 것, 깨달아야 할 것을 부처는 다 깨달아 안다. 그러므로 등정각이라 이름 한다.

 

 

或有外道梵志作如是說世間常存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說言此世無常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有言世間有常無常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有言此世間非有常非無常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有言此世間有邊唯此爲實餘者爲虛妄或復有言世間無邊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有言世間有邊無邊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有言世間非有邊非無邊唯此爲實餘者虛妄或復有言是命是身此實餘虛或復有言非命非身此實餘虛或復有言命異身異此實餘虛或復有言非異命非異身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終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不終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終不終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非終非不終此實餘虛諸有此見名本生本見今爲汝記此世常存乃至如來非終非不終唯此爲實餘者虛妄是爲本見本生爲汝記之

 

또 어떤 외도 범지는 이렇게 말한다.

"세간은 영원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것은 목숨이고 이것은 몸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것은 목숨도 아니요 몸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이 다른 것도 아니요 몸이 다른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기도 하고 마치지 않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소견이 있는데 이것을 본견본생(本見本生)이라 이름 한다. 이제 너를 위하여 기록한다.

 

 

所謂未見未生者我亦記之何者未見未生我所記者色是我從想有終此實餘虛無色是我從想有終亦有色亦無色是我從想有終非有色非無色是我從想有終我有邊我無邊我有邊無邊我非有邊非無邊從想有終我有樂從想有終我無樂從想有終我有苦樂從想有終我無苦樂從想有終一想是我從想有終種種想是我從想有終少想是我從想有終無量想是我從想有終此實餘虛是爲邪見本見本生我之所記

 

이른바 "이 세상은 영원하다. 나아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는 것은 본견본생(本見本生)인데 너를 위해 기록한다. 

이른바 미견미생(未見未生)도 나는 또 기록하리니 어떤 것이 내가 기록하는 미견미생인가?

* 미견미생(未見未生): 2본에는 "말견말생(末見末生)"으로 되어 있다. 앞의 "본견본생(本見本生)"과 대비해 볼 때 "말견말생(末見末生)"이 옳을 듯하다.

 

"()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색이 없는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또 색이 있기도 하고 또 색이 없기도 한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끝이 있다, 나는 끝이 없다, 나는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있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없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한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갖가지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적은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무량한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이것이 삿된 소견의 본견본생(本見本生)으로써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

* 본견본생(本見本生): 맥락으로 보아 원문의 "본견본생(本見本生)""말견말생(末見末生)"으로 해야 옳다.

 

 

或有沙門婆羅門有如是論有如是見此世常存此實餘虛乃至無量想是我此實餘虛彼沙門婆羅門復作如是說如是見此實餘者虛妄當報彼言汝實作此論云何此世常存此實餘虛耶如此語者佛所不許所以者何此諸見中各有結使我以理推諸沙門婆羅門中無與我等者況欲出過此諸邪見但有言耳不中共論乃至無量想是我亦復如是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나아가 무량한 생각[]이 곧 나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또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너는 참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은 영원하며 그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가? 그러한 말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런 모든 소견 가운데에는 모두 번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치로써 미루어 볼 때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는 나와 짝할 이가 없다. 하물며 나를 뛰어 넘으려고 하는 자이겠는가?"

 

이 모든 삿된 소견은 한낱 말만 있을 뿐 함께 의논하기에는 적당치 않다. 나아가 "무량한 생각이 나[]이다"라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或有沙門婆羅門作是說此世間自造復有沙門婆羅門言此世間他造或復有言自造他造或復有言非自造非他造忽然而有彼沙門婆羅門言世間自造者是沙門婆羅門皆因觸因緣若離觸因而能說者無有是處所以者何由六入身故生觸由觸故生受由受故生愛由愛故生取由取故生有由有故生生由生故有老苦惱大患陰集若無六入則無觸無觸則無受無受則無愛無愛則無取無取則無有無有則無生無生則無老苦惱大患陰集又言此世間他造又言此世間自造他造又言此世間非自造非他造忽然而有亦復如是因觸而有無觸則無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런 말을 한다.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 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혹은 또 말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것이다."

 

저 사문 바라문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촉()의 인연을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만일 촉의 인연을 떠나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 하면 6()을 말미암기 때문에 촉이 생기고, 촉을 말미암기 때문에 수()가 생기고, 수를 말미암기 때문에 애()가 생기고, 애를 말미암기 때문에 취()가 생기고, 취를 말미암기 때문에 유()가 생기고, 유를 말미암기 때문에 생()이 생기고, 생을 말미암기 때문에 노()()()()()()의 걱정[] 덩어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6입이 없으면 촉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가 없고, 유가 없으면 생이 없고, 생이 없으면 노뇌의 큰 걱정덩어리 음집(陰集)이 없을 것이다.

 

"이 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 촉을 말미암아 있는 것으로서 촉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佛告諸比丘若欲滅此諸邪惡見者於四念處當修三行云何比丘滅此諸惡於四念處當修三行比丘謂內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內外身身觀憶念不忘除世貪憂法觀亦復如是是爲滅眾惡法於四念處三種修行有八解脫云何爲八色觀色初解脫內無色想外觀色二解脫淨解脫三解脫度色想滅有對想住空處四解脫捨空處住識處五解脫捨識處住不用處六解脫捨不用處住有想無想處七解脫滅盡定八解脫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러한 모든 삿되고 나쁜 소견을 없애려 하거든 4념처(念處)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아라.

어떤 것이 비구가 모든 악을 없애려고 4념처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는 것인가?

 

비구들아,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 는 것이요.

 

 

또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며,

 

 

또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을 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모든 악법을 멸하기 위해 4념처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는 것이다.

 

8해탈(解脫)이 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을 색으로 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속에 색()에 대한 생각(색욕(色欲)을 탐하는 생각)을 가지고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해탈은 세 번째 해탈이요,

색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상대할 만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며,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머무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버리고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은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멸진정(滅盡定)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爾時阿難在世尊後執扇扇佛即偏露右肩右膝著地叉手白佛言甚奇世尊此法淸淨微妙第一當云何名云何奉持

 

그 때 아난이 세존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곧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며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청정하고 미묘하기 제일입니다. 마땅히 뭐라 이름하고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佛告阿難此經名爲淸淨汝當淸淨持之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을 청정(淸淨)이라 이름 하나니, 너는 마땅히 청정하게 이것을 지녀야 한다.”

 

 

 

爾時阿難聞佛所說歡喜奉行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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