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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詩 공부

서유럽의 시

by 산산바다 2007. 3. 31.

산과바다

 

 

 

                          -서유럽의 시-

 

 

서유럽 시는 그리스로부터 로마에 이르는 고대시와,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유럽 시와는 본래 별개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만 후자는 전자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전자를 계승한다는 특징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어느 경우나 먼저 서사시, 뒤이어 서정시·극시가 성행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먼저 호메로스라는 전설적인 시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2대 서사시 〈일리아스〉·〈오디세이아〉가 있다. 이것들은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방대한 서사시군(群)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BC 8세기경에 창작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장기간에 걸쳐 음유시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왔던 것 같다. 이들 영웅이나 신들의 이야기 외에도 서민의 일상생활에 근거한 헤시오도스(BC 700경)의 〈노동과 나날〉, 신화·전설을 정리한 〈신통기 神統記〉 등이 있다. 서정시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알카이오스(BC 7세기)와 사포에 이어 아나크레온이 등장하는데 모두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독창가(獨唱歌) 형식을 쓰고 있다. 합창가(合唱歌)의 작자로는 시모니데스(BC 6~5세기)·핀다로스(BC 6~5세기) 등이 있는데, 이 합창가는 공식행사나 제사의식 때 불렸다. 후에 이 합창용 서정시로부터 비극이 탄생한 것 같다.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단시의 칼리마코스, 목가의 테오크리토스, 서사시의 아폴로니오스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시의 영향 아래 고대 로마의 라틴시가 시작되었는데, BC 1세기에 먼저 루크레티우스와 카툴루스가, 이어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가 등장한다(→ 라틴 문학). 베르길리우스〈아이네이스 Aeneid〉는 트로이가 멸망된 후 살아 남은 영웅이 각지를 방황한 끝에 이탈리아에 로마 제국을 건국하는 이야기인데, 전승을 그 소재로 하면서도 한 사람의 시인의 구상에 의해 창작된 작품이다. 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e Rrum natura〉(6권)는 운문에 따른 철학적 우주론을 다룬 작품이다. 그밖에 정념(情念)의 시인으로 불리는 〈비가〉의 작자인 오비디우스가 있다. 라틴어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에도 오랫동안 유럽의 공통어였으므로 10세기경까지의 유럽 시는 대부분 라틴어로 씌어졌다. 그 가운데에는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12세기경)와 같은 대작 가요집도 있다.

 

중세에 들어와 그리스도교화하면서 유럽에 정착한 독일계의 여러 민족이 각각의 전승을 바탕으로 신화적·영웅적인 서사시를 탄생시켰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8세기경에 만들어진 영국 최초의 서사시 〈베오울프 Beowulf〉가 있으며, 북유럽의 에다(Edda)와 사가(Saga), 독일의 〈니벨룽겐의 노래 Das Nibelungenlied〉 등의 독일의 성향이 짙은 것과 켈트계의 '아서왕 전설군', 그리스도교의 무훈시(武勳詩)의 성격을 띤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 등이 모두 12~13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서정시로는 12세기경부터 남프랑스에서 활약한 '트루바두르'라 불리던 시인들의 연애시나 이야기 노래가 '종글뢰르'라는 예술가들에 의해 불려졌고, 북프랑스의 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징거 등에게 전해져 귀족계급에 의한 우아한 궁정 서정시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무도가(舞蹈歌)·목가(牧歌) 등의 형태로 생활감정을 자유분방하게 노래한 민중가요의 흐름이 있으며, 이것이 뤼트뵈프(13세기)의 서정시·풍자시 등을 거쳐, 중세 최후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수아 비용(15세기)으로 이어졌다. 거의 같은 시기에 최후의 궁정시인 오를레앙(Charles d'Orléans)은 모두 발라드나 롱도 같은 정형시의 대표작을 남겼다.

르네상스를 가장 먼저 꽃피운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14세기에 단테가 〈신곡〉·〈신생 Vita Nuova〉(1923경)을, 페트라르카가 소네트 형식으로 감미로운 서정시를 썼고, 16세기에는 다른 유럽 제국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프랑스에서는 말로가 페트라르카의 시들을 번역했는데, 이 새로운 서정시를 바탕으로 한 세브 등의 리옹파, 롱사르 등의 플레야드파가 활약했으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바로크 시(vers baroque)가 마침내 말레르브에 의해 엄격한 시법으로 정돈되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셰익스피어가 여러 운문극 외에도 이른바 셰익스피어풍 소네트를 정착시켰고, 한편으로는 존 던 등의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출현했다. 스페인에서는 공고라의 서정시, 포르투갈에서는 카몽스의 소네트와 서사시가 나왔고, 이탈리아에서도 타소와 아리오스토의 서사시가 뒤를 이었다. 독일에서는 16세기에 번영한 시민문화로부터 마이스터징거라 불리는 시인들이 등장했으며, 그 대표격인 한스 작스는 수많은 가곡과 사육제극을 만들었다. 종교전쟁의 와중에 프랑수아 도비녜는 격렬한 〈비가 Les Tragiques〉(1616)를 썼으며, 영국의 밀턴은 청교도적 입장에서 〈실락원〉을 썼다.

17세기말경부터 프랑스는 고전주의 시대로 접어들어 코르네유·라신 등의 극시를 탄생시켰는데, 그밖에 자유시형에 의한 라 퐁텐의 〈우화시 Les Fables〉(1668, 1678, 1694)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형식만을 중시한 작품들이 증가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들어와 독일의 클롭슈토크가 다감한 정념을 종교적으로 노래했고, 이어 괴테·실러가 주정적인 개성을 표방한 낭만주의적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동시에 이 낭만주의는 민간전승이나 민요에서 소재나 표현형태를 빌려옴으로써 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했는데, 이것은 인습화된 질서에 대한 반항과 언어표현에 대한, 더 나아가서는 문화 그 자체에 대한 커다란 낙관을 저변에 감추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농촌시인 로버트 번스, 신비적인 환상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등이 영국에 등장한 것도 이 경향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이에 박차를 가해 19세기 전반의 유럽은 바로 낭만주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독일 낭만파에서는 노발리스·횔덜린·하이네 등이,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콜리지에 이어 바이런·셸리·키츠 등이 새로운 시풍을 개척했다. 신흥국가인 미국에서는 롱펠로·포 등이 등장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는 독일·영국의 영향으로부터 시작하여 라마르틴·위고·비니·뮈세 등이 개화시켜 네르발에게로 이어졌다. 러시아에서는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활동했다.

19세기 후반의 시는 영국에서는 테니슨과 브라우닝을, 미국에서는 휘트먼을 배출시켰는데, 이때의 사조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고답파(高踏派)에서 상징주의로 이어진다. 먼저 보들레르〈악의 꽃 Les Fleurs du mal〉(1857)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정신을 노래하는 데에 성공하여 근대시의 출발점을 장식했고, 베를렌이 언어의 음악미를 해방시켰으며, 말라르메는 마침내 언어 그 자체를 가지고 완전한 소우주를 담는 상징시를 만들어냈다. 랭보는 같은 이념을 오히려 다이내믹한 의지의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써 현대시의 통로를 열어주었다.

이 상징주의로 인해 대두된 새로운 언어관이 20세기 시의 모든 국면에 잠재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직접적인 계승자가 된 발레리·클로델 같은 시인들뿐만 아니라 '새 정신'을 주창한 아폴리네르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에서까지 그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아일랜드에서는 예이츠, 독일에서는 게오르게, 릴케, 이탈리아에서는 웅가레티 등이 상징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또 라포르그를 거쳐 T.S. 엘리엇에게 전해진 시의 흐름은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황무지 The Waste Land〉(1922)를 낳게 했다. 이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걸쳐 다종다양한 시도가 여러 시인들에 의해 이루어져 현대시는 매우 다면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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