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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現代 詩

현대시 감상(4)

by 산산바다 2006. 7. 27.

산과바다 




51. 연가(戀歌)

- 김기림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중앙신문, 1946.4.27)


* 소연(騷然)하다 : 떠들썩하다.

* 뭉둥아리 : 몸뚱어리.

* 달다 : 몸이 화끈해지다.




52. 산․9

- 김광림


한여름에 들린

가야산

독경(讀經)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瑞雪)이 내려

비로소 벙그는

매화 봉오리.


눈 맞는

해인사

열두 암자(庵子)를

오늘은

두루 한겨울

면벽(面壁)한 노승(老僧) 눈매에

미소(微笑)가 돌아.

(시집 학의 추락, 1971)




53.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鄕愁)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 문학, 1968.11)




54.  생(生)의 감각(感覺)

- 김광섭


여명(黎明)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荒野)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 「현대문학」145호(1967년 1월호)




55. 고독

- 김광섭


내 

하나의 生存者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


한 間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氣流의 波動도 있어

바다 깊은 그 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달픈 고기와도 같다.


맑은 性 아름다운 꿈은 잠들다.

그리운 世界의 斷片은 아즐타.

오랜 世紀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神經도 없는 밤

時計야 奇異타.

너마저 자려무나.

(시원 2호, 1935.4) / - 시집 「憧憬」(1938) -




56. 해바라기

- 김광섭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洋洋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白日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圓光에 묻힌 듯 향기에 익어 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驚異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시집 「해바라기」(1957)---




57. 마음

-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문장 5호, 1939.6)




58. 비 개인 여름 아침

- 김광섭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시집 동경(憧憬), 1938)




59.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시집「겨울날」(창작과비평사刊·1975년) / 월간 중앙, 1969.11




60. 동경(憧憬)

- 김광섭


온갖 사화(詞華)*들이

무언(無言)의 고아(孤兒)가 되어

꿈이 되고 슬픔이 되다.


무엇이 나를 불러서

바람에 따라가는 길

별조차 떨어진 밤


무거운 꿈 같은 어둠 속에

하나의 뚜렷한 형상(形象)이

나의 만상(萬象)에 깃들이다.

(조광, 1937.6)


* 사화(詞華): 아름답게 수식한 시문(詩文), 또는 뛰어난 시문.




61. 시인(詩人)

-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 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동아일보, 1969.5.3)




62. 석상(石像)의 노래

- 김관식


노을이 지는 언덕 위에서 그대 가신 곳 머언 나라를 뚫어지도록 바라다보면 해가 저물어 밤은 깊은데 하염없어라 출렁거리는 물결 소리만 귀에 적시어 눈썹 기슭에 번지는 불꽃 피눈물 들어 어룽진* 동정* 그리운 사연 아뢰려하여 벙어리 가슴 쥐어뜯어도 혓바늘일래 말을 잃었다 땅을 구르며 몸부림치며 궁그르다가 다시 일어나 열리지 않는 말문이련가 하늘 우러러 돌이 되었다

(시집 김관식 시선,1957)


* 어룽진 : 얼룩진.

* 동정 : 한복 저고리 깃에 꿰매어 다는 헝겊으로 대개 흰색이다.




63. 동두천(東豆川)․I

- 김명인


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신호등

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

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

역두(驛頭)의 저탄 더미에 떨어져

몸을 버리게 되더라도

배고픈 고향의 잊힌 이름들로 새삼스럽게

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은 것을

발 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덜미에 부딪쳐 와 끼얹는 바람

첩첩 수렁 너머의 세상은 알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으리라

안으로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이제 벗어날 수 없어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떠나야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

(시집 동두천, 1979)




64. 정념의 기

-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 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시집 정념의 기,1960)




65.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시집 겨울 바다, 1967)




66. 전사 2

김남주論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다시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김남주, `전사 2'의 첫 두 연).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압제자의 가슴에 꽂히는/

창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노래' )


?미군이 있으면/

삼팔선이 든든하지요/

삼팔선이 든든하면/

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부자들 배도 터지고요.?

(`삼팔선' 전문)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67. 호롱불

- 김상훈


석유를 가득히 부은 등잔은

밤이 깊도록 홰가 났다

끄을음을 까--맣게 들어마시며

노인들의 이야기는 죽구 싶다는 말뿐이다


쓸만한 젊은 것은 잡혀 가고

기운 센 아이들 노름판으로 가고

애당초 누구를 위한 농사냐고

이박사(李博士)의 이름을 잊으려 애썼다.  


곳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흉한 소문이 대소롭지 않다

이백 석이 넘어 쌓여 있는 곡식이

그들의 아들이 굶어 죽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까닭이다.


암닭이 알을 낳지 않고

술집이 또 하나 늘었고

손주 며느리 낙태를 했다고

등잔에 하소연해보는 집집마다의 늙은이


잠들면 악한 꿈을 꾸겠기에

짚신을 삼아 팔아서라도

부지런히 석유만을 사왔다.

(시집 대열, 1947.5)


* 홰가 나다 : 불이 타오르다.

* 하소 : 하소연의 준말.




68. 아버지의 창 앞에서

- 김상훈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무서운 글자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毒)스런 우로(雨路)에 자라

가난해두 조선(祖先)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글에 일월(日月)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井田法)을 조

술(祖述)하드니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활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이 아침에 새로야 떠나지는 못하려는가 ……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거름에 달려가마

(문학, 1946.11)




69.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집 거대한 뿌리,민음사,1974




70.

-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문학예술, 1957.4)

 

71. 폭포(瀑布)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72.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창작과 비평 가을호, 1968)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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