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現代 詩

현대시 감상(2)

by 산산바다 2006. 7. 27.

산과바다



 


73.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시집 거대한 뿌리, 1974)




74.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1949)



75. 병풍(屛風)

- 김수영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

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현대문학 14, 1956.2)




76.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77.사령(死靈)

- 김수영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78.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개벽 25호, 1922. 7)

* 즈려 : 살짝 눌러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평안북도 사투리)




79.

- 김소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 길은

칠팔십리

도라 서서 육십리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히 속이라 잊으렷만

십오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개벽』40호, 1923.10)


* 시메 : 깊은 산골 지방.

* 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또는 죽음을 의미.




80.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

- 김소월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 가나니, 볼 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을 김매이는.     

(시집 진달래꽃, 1925)





산과바다 이계도


'*** 詩 *** > 現代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인의 시  (0) 2006.12.07
현대시 감상(4)  (0) 2006.07.27
현대시 감상(3)  (0) 2006.07.27
현대시 감상(1)  (0) 2006.07.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