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ㅂ-4 불변숙맥~)
31. 불변숙맥(不辨菽麥) 不辨菽麦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다. 너무 愚鈍해서 常識的인 일조차도 모르는 것을 比喩
春秋時代, 晉나라의 貴族들이 熾熱한 權力 爭奪戰을 벌였다. 當時 晉나라 王 厲公은 胥童을 偏愛하여 國權을 그에게 一任했다. 胥童이 全權을 휘두르자 大臣들의 不滿이 漸漸 커졌고, 結局 欒書, 중항언(中行偃) 等의 大臣들이 胥童을 죽인 다음, 厲公까지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襄公의 曾孫子인 14歲의 周子를 王位에 앉혔는데, 이이가 바로 悼公이다. 欒書 等은 이처럼 周子를 꼭두각시 王으로 세워 놓고 周子가 聰明하고 出衆하다고 稱讚하는 한便, 周子의 兄은 아둔해서 王으로 세울 수가 없었다고 所聞을 내고 다녔다.
「周子에게는 兄이 있었지만 智慧가 없어서 콩과 보리도 分揀하지 못하였으므로 임금으로 세울 수 없었다.
(周子有兄而無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이 이야기는 《左傳 成公 18年》에 나오는데, 周子의 兄이 콩과 보리도 分揀하지 못한다는 말에서 ‘不辨菽麥’이 由來했다. ‘菽麥不辨’이라고도 한다.
32. 불원천리(不遠千里) 不远千里
千 里 길도 멀다 하지 않다. 먼 길을 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은 精誠을 比喩
「孟子가 梁惠王을 찾아뵈었더니 王이 말했다. “先生께서 千 里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亦是 將次 내 나라를 利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孟子가 말했다. “王께서는 어찌 利로움만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仁과 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王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利롭게 할까를 말씀하시면 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내 封邑을 利롭게 할까를 말하며, 선비와 平民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利롭게 할까를 말할 것이니, 위와 아래가 서로 利益을 取하려고 하면 나라는 危殆로워질 것입니다. 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者는 반드시 千乘을 가진 封邑(의 諸侯)이요, 千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者는 반드시 百乘을 가진 封邑(의 大夫)입니다. 萬에서 千을 取하고 千에서 百을 取한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건만, 萬若 義를 뒤로 미루고 利를 앞세우면 모두 빼앗지 않고는 滿足하지 못합니다.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사람이 있지 않았으며, 義로우면서 그 임금을 뒤로 하는 사람은 있지 않았습니다. 王께서는 오직 仁義를 말씀하시면 될 뿐인데, 어찌 꼭 利로움만을 말씀하십니까?”
(孟子見梁惠王.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 萬乘之國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饜.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이 이야기는 《孟子 梁惠王上》에 나온다. ‘不遠千里’는 ‘不遠萬里’라고도 한다.
33. 분서갱유(焚書坑儒)
秦나라 始皇帝가 政府를 비방(誹謗)하는 여론(輿論)을 봉쇄(封鎖)하기 위해 書籍을 불사르고 선비를 생매장(生埋葬)한 일을 말한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발본색원(拔本塞源) 하거나 暴政을 저지름의 比喩
秦의 始皇帝는 天下統一을 이루고 封建制度를 廢止하고 中央集權의 大帝國을 만들고 스스로 皇帝가 되어 帝位를 子孫萬代에 傳하리란 꿈을 품었다.
그의 統治 34年 어느 날 文武百官을 불러 咸陽宮에서 잔치를 벌렸다. 이 자리에서 秦의 制度整備를 놓고 眞摯한 意見을 나눴다.
이때 軍憲制度의 立案者이며 改革論者인 승상(丞相) 이사(李斯)가 말했다.
"옛날엔 天下를 統一한 人物이 없다 보니 조처(到處)에 群雄이 할거(割據)하여 諸侯들 間의 싸움으로 混亂하였는데 오늘날엔 天下가 統一로서 安定되고 法律이나 命令은 모두 權威가 서서 世上이 便安합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一部 學者들은 政府 政策에 對해 朝廷에선 緘口타가 市井에선 誹謗하는가 하면, 나아가 自己 門下에 숱한 徒黨을 거느리고 은근(慇懃)히 勢力을 擴張하는 者도 있습니다.
이런 도배(徒輩)들이 있는 限 君主의 絶對的 權力에 損傷은 勿論 終來에는 나라의 禍根이 될 뿐입니다. 여기서 臣이 아뢰옵건데 卽時 四民(士農工商) 必須의 醫藥과 卜術, 農耕에 關한 書籍과 우리 秦나라의 記錄物만 남기고, 如他 書籍은 불사름이 옳을 것입니다. 以後 詩, 書를 論하는 者는 棄市의 刑 (死刑執行 後 屍身을 끌어내어 구경시키는 刑罰)에 處하고, 지난날과 比較하여 現在를 甚히 誹謗하는 者는 그 一族을 死刑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以上의 法令에 違反한 者를 摘發檢擧치 않는 官吏도 같은 刑罰로 다스리고 法令 公布 30日 以後에도 關聯 書籍을 所持한 者는 살가죽에 먹물을 넣어 表示하고 賦役을 시키는 嚴命을 내리시어 施行하시기 바랍니다."
소름끼치는 이사(李斯)의 諫言에 솔깃해진 始皇帝가 그대로 執行하라고 命하였다.
이로 因해 各處에서 다시는 生産할 수 없는 貴重한 文書들을 불태움으로서 (종이가 없어 대나무 조각이나 참나무 판대기에 하나하나 精誠스레 새기거나 붓글씨로 간직해 온 文獻) 容恕받을 수 없는 엄청난 분서(焚西)의 만행(蠻行)을 저지른 것이다.
初期에는 英雄的 活動으로 民心을 얻었으나 歲月이 흐르며 老衰해 가는 自身이 안타까워 不老長生의 神仙藥인 不老草를 求해 오라고 命令하는가 하면, 神仙酒에 빠져서 많은 妖術쟁이 方士들을 周圍에 불러 들였다.
그 中 盧生과 候生이라는 두 사람을 特別히 信賴해서 厚待했다.
그런데 이 둘은 始皇帝를 꾀어 財物을 얻어 異域으로 逃亡 가서는 皇帝의 惡行과 羞恥스러운 內幕을 暴露하였다.
이에 憤慨한 皇帝는 咸陽의 學者들까지 미워하게 되어 정탐(偵探)꾼들을 풀어 朝廷을 非難하는 자를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非難을 일삼던 學者들이 잡혀 오면서 다들 다른 사람에게 轉嫁시키는 바람에 460如名의 學者들이 체포(逮捕)되어 殘忍하게도 한 구덩이에 生埋葬이 되었다.
埋葬된 사람들은 거의 儒敎를 信奉하던 學者들이라 '坑儒'라 했다.
* 史記 儒林列傳엔 ~ 及至秦之季世, 焚詩書, 坑術士(秦의 末年 詩書를 불태우고 術士들을 산 채로 묻어 죽였다)
• 秦始皇이 先代의 典籍을 없애고 書籍을 불사르고 儒學子들을 산 채로 묻어버리자, 天下의 學士들이 모두 難을 避해 흩어져 버렸다.
(及秦始皇滅先代典籍 焚書坑儒 天下學士逃難解散)
* 史記 秦始皇本記에
34. 불혹(不惑)
미혹(迷惑)됨이 없다. 나이 마흔을 말한다.
「孔子가 말했다. “내 나이 열다섯에 學問에 뜻을 두어 서른에 立身했으며, 마흔이 되니 世上일에 迷惑되지 아니하고 쉰에 하늘의 命을 알았다. 예순에 귀가 順해지고 일흔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좇았으되 法度를 넘어서지 않았다.”
(子曰, 吾十有吾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
* 論語 爲政에 論語(논어) 2. 爲政(위정)
不惑이란 迷惑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흔이면 世上의 모든 일에 對하여 是非分辨을 할 수 있고 感情 또한 適切하게 節制할 수 있는 나이이므로 쉽게 迷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孔子의 이 말에서 15歲志學, 30歲 而立, 50歲 知天命, 60歲 耳順, 70歲 從心, 이란 名稱도 나왔다.
35. 붕정만리(鵬程萬里)
붕(鵬)새의 날아가는 하늘길이 萬里로 트임. 곧 前途가 매우 양양(揚揚)한 將來
鵬이란 辭典엔 큰 새. 상상 속의 큰 새 이다. 古代 中國人의 素朴한 空想의 所産으로 動物學上 鳥類의 區分은 意味가 없다. 何如間 엄청난 큰 새로 보면 된다.
* 莊子의 開卷 第一章 '逍遙遊篇' 一節
'北海 끝에 鯤이란 이름의 고기가 있다. 크기는 몇 千里인지 모르며, 鯤이 變해 鵬이란 새가 된다. 鵬의 등 허리도 몇 千里인지 모른다. 鵬이 날면 날개는 하늘 全體를 덮는 구름 같고, 바다가 뒤집힐 듯한 大風이 일며 이 바람을 타고 北海끝에서 南海끝까지 난다. 南海는 天池다.
齊諧란 冊에 怪異한 이야기가 記錄되어 있다.
'鵬이 南海로 날아오르자면 바닷물에 날개짓을 三千里,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르길 九萬里, 六個月 동안 계속 날은 다음 비로소 그 날개를 쉰다.'고 한다.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譜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㣕搖而上者九萬里. 去六月息者也)
莊子는 鵬을 빌어 世俗의 常識을 超越하는 無限이 큰 새, 拘束됨이 없는 精神的 自由世界의 偉大함을 示唆한다.
辭典의 鯤은 魚卵인데 이 至微至小한 것을 큰 물고기로 表現하고, 또 새로 變해 鵬이라함은 아주 奇拔한 着想이다.
派生된 熟語로는 '鵬鯤' 또는 '鯤鵬'이라하여 想像을 超越한 至大한 事物을 比喩함이고, '鵬背' '鵬翼'은 巨大한 航空機 等을 形容한다.
'鵬博'(鵬의 날개짓) '鵬飛' '鵬擧'는 크게 奮發해 일을 함이요, '鵬圖' '鵬程'은 普通 사람의 생각을 超越한 遠大한 事業計劃을 意味하기도 한다. '圖南'은 다른 곳으로 가 巨大한 事業을 벌리려는것임.
最後로 莊子는 大鵬을 束縛이 없는 偉大한 存在者와의 對比로써 常識의 世界에서 滿足하고 얕은 智慧를 배우며 스스로 足하다 생각하는 卑小한 凡俗輩의 淺薄함을 斥鞍(작은 물새알)으로써 比喩하여 이렇게 諷刺한다.
'九萬里를 나는 大鵬을 보고 斥鞍은 도리어 비웃으며 "저것봐라 저 鵬이란 녀석은 都大體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우리들은 힘껏 뛰어 올라도 5~6칸이요 내려와서는 쑥이 茂盛한 위를 날을 뿐이지만 그래도 充分히 나는 재미는 있거늘 저者는 어디까지 가야 直星이 풀린다지?" 라 빈정댄다'.
結局 短小한 것은 偉大한 것의 마음이나 行動의 깊이를 알 턱이 없다.
大와 小의 差異點이다.
36. 불수진(拂鬚塵) 拂须尘
수염(鬚髥)의 먼지를 털어 주다. 윗사람이나 權力者에게 阿附하거나 卑屈한 態度를 보이는 것을 比喩
「처음, 丁謂는 寇準의 內閣에 들어가 參政, (從2品)에 올랐는데 寇準을 恭遜하게 섬겼다. 한 番은 內閣에서 會食을 하는데 寇準의 鬚髥에 국물이 묻자 丁謂가 일어나 寇準의 鬚髥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寇準이 웃으며 말했다. “參政이라면 한 나라의 重臣인데도 上官의 鬚髥을 털어 주는구려.” 丁謂는 甚히 부끄러워했다.
(初, 丁謂出準門至參政, 事準甚謹. 嘗會食中書, 羹汚準鬚, 謂起徐拂之. 準笑曰, 參政國之大臣, 乃爲官長拂鬚耶. 謂甚愧之.)」
이 이야기는 《宋史 寇準傳》에 나온다. 寇準은 宋나라 眞宗 때의 宰相으로, 正義롭고 剛直하며 淸廉潔白한 官吏였다. 그는 有能한 젊은이들을 果敢히 拔擢하였는데, 參政에 오른 丁謂도 그런 젊은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丁謂는 有能한 人才였지만 윗사람에게 卑屈할 程度로 阿附하여 周圍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拂鬚塵’은 ‘拂鬚’라고도 한다.
37. 불인지심(不忍之心)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남의 不幸을 모르는 척하고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孟子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先王에게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政治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政治를 行하면 天下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 可運之掌上.)」
孟子는 이어 사람은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의 四端을 가지고 있으며, 萬若 이런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孟子 公孫丑 上》에 나오는데, 이는 孟子가 齊나라에 머물렀을 때 酷毒한 政治를 펼치는 君主들에게 각성(覺醒)을 促求하면서 한 말이다.
38. 불초(不肖)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매우 어리석다는 뜻으로, 子息이 父母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쓰인다.
「丹朱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고(못났고), 舜의 아들 亦是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못났다). 舜이 堯를 도운 것과 禹가 舜을 도운 것은 그 햇수가 길어서 百姓들이 오랫동안 그 恩澤을 입었다. 啓는 賢明했기 때문에 禹의 道를 繼承할 수 있었다. 益이 禹를 도운 것은 그 햇수가 짧아 百姓들에게 恩惠를 베풀어 준 것도 오래되지 아니했다. 舜, 禹, 益이 도운 햇수의 길고 짧음과 그 아들이 잘나고 못난 것은 모두가 하늘의 뜻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되는 것은 天이요, 부르지 않았는데 다가오는 것은 命이다.
(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啓賢, 能敬承繼禹之道. 益之相禹也, 歷年少, 施澤於民未久. 舜禹益相去久遠, 其子之賢不肖, 皆天也, 非人之所能爲也. 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
이 이야기는 《孟子 萬章 上》에 나오는데, 여기서 ‘不肖’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쓰였다.
「肖는 骨肉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 先代와 같지 않으므로 不肖라고 하는 것이다.(肖, 骨肉相似也. 不似其先, 故曰不肖也.)」
이 이야기는 《說文》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由來하여 不肖는 ‘不孝子’라는 意味로도 쓰이게 되었다. 不肖는 또한 ‘못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道가 밝혀지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질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고, 모자라는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
(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過之, 不肖者不及也.)」
이 이야기는 《中庸》에 나오는데, 여기서 ‘不肖’는 ‘못나다, 모자라다’라는 意味로 쓰이고 있다.
39. 불치하문(不恥下問) 不耻下问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손아랫사람이나 地位나 學識이 自己만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子貢이 물었다. “孔文子는 어떻게 諡號를 文이라고 했습니까?” 孔子가 對答했다. “그는 일을 敏捷하게 處理하고 工夫하기를 좋아했으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文이라고 한 것이다.”
* 論語 公冶長에. 論語(논어) 5. 公冶長(공야장)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衛나라의 大夫 孔圉가 죽자 衛나라 君主가 그에게 文이라는 諡號를 下賜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孔文子라고 불렀다. 孔子의 弟子 子貢은 孔圉의 平素 行實이 그렇게 높은 評價를 받기에 不足했다고 생각했다. 孔圉는 太叔疾을 부추겨 本妻를 쫓아내고 自己 딸을 아내로 삼도록 했다. 그런데 太叔疾이 自己 첫 番째 婦人의 女同生과 姦通을 하자 孔文子는 太叔疾을 죽이려고 孔子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孔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수레를 타고 떠나 버렸다. 太叔疾이 宋나라로 달아나자 孔文子는 自己 딸 孔姞을 데려와서 太叔疾의 同生 遺에게 아내로 맞도록 했다. 이런 사람의 好學 精神을 배우고 繼承하도록 하기 爲하여 文이라는 諡號를 下賜했다는 것을 理解할 수 없었던 子貢은 그 理由를 孔子에게 물은 것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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