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ㅂ-2 배반낭자~)
11. 배반낭자(杯盤狼藉) 杯盘狼藉
잔과 쟁반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술을 마시며 興겹게 노는 모습이나, 宴會가 끝난 후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光景을 말한다.
齊나라 威王 8年, 楚나라가 齊나라를 侵入했다. 威王은 순우곤(淳于髡)을 趙나라에 使者로 派遣하여 援兵을 要請하였다. 趙나라 王은 精銳 10萬 名과 戰車 千 乘(千臺)을 支援했다. 楚나라는 이 消息을 듣고 그날 밤으로 撤軍했다.
威王은 크게 기뻐하여 後宮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淳于髡을 불러서 술을 내리며 물었다.
“先生은 얼마나 술을 마셔야 醉할 수 있소?”
“臣은 한 말을 마셔도 醉하고 한 섬을 마셔도 醉합니다.”
“한 말을 마시고 醉한다면 어찌 한 섬을 마실 수 있소? 그 理由를 들을 수 있겠소?”
淳于髡이 말했다.
“大王이 계신 앞에서 술을 내려 주신다면 法을 執行하는 官員이 곁에 있고 御史가 뒤에 있어 두려운 나머지 엎드려서 마시게 되니 한 말도 못 마셔서 醉합니다. 萬若 父母님께 貴한 손님이 계셔서 제가 옷깃을 바르게 하고 꿇어앉아 술을 待接하면, 따라 주는 술을 받아 손님의 長壽를 빌며 자주 몸을 일으키므로 두 말을 못 마셔서 곧 醉하게 됩니다. 萬若 사귀던 벗과 오래 만나지 못하다가 갑자기 만나게 되면 즐거워서 지난날의 일을 이야기하고 感懷를 吐露하니 대여섯 말을 마시면 醉합니다. 萬若 마을 모임에서 男女가 섞여 앉아 서로 술을 돌리고, 將棋와 投壺를 벌여서 相對를 求하고, (男女가) 손을 잡아도 罰이 없고, 눈이나 입을 禁하지 않으며, 앞뒤에서는 귀고리와 비녀가 어지러이 떨어지는 境遇라면, 저는 이런 것을 좋아하여 여덟 말 程度를 마실 수 있지만, 2∼3割밖에 醉하지 않습니다.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罷해 술桶을 모으고 자리를 좁혀서 男女가 同席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盞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지고 主人이 저만 머물게 하고 다른 손님들을 배웅합니다. 그리고 엷은 緋緞 속옷의 옷깃이 열리면 隱隱한 香氣가 풍깁니다. 이런 때를 當하면 저의 마음이 가장 기뻐지며, 한 섬은 마실 수 있게 됩니다."
(日暮酒闌, 合尊促坐, 男女同席, 履潟交錯, 杯盤狼藉. 堂上燭滅, 主人留髡而送客, 羅襦襟解, 微聞薌澤, 當此之時, 髡心最歡, 能飮一石.)」
그러므로 술이 極度에 이르면 어지럽게 되고, 즐거움이 極度에 이르면 슬퍼진다고 하는 것인데, 모든 일이 모두 이와 같은 것으로, 極에 이르면 안 되며 極에 이르면 衰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諷諫하자 威王은 밤새워 술 마시는 일을 그만두고 淳于髡을 諸侯의 主客 (外國 使臣을 接待하는 官員의 우두머리)으로 삼았다. 그 後 王室의 酒宴이 있을 때마다 淳于髡이 恒常 王을 모셨다.
《史記 滑稽列傳》에 나온다. ‘狼藉’는 이리들이 깔고 자는 자리를 말한다. 이리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 本能的으로 아래에 깔았던 풀을 흩어 버려 自身들의 痕跡을 없애는데, 이를 狼藉라고 한다. ‘杯盤狼藉’는 蘇軾의 赤壁賦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客이 즐거이 웃으며 盞을 씻어 다시 술을 따랐다. 按酒도 다했고 술盞과 小盤이 어지러이 널려 있으며, 배 안에서 서로 베고 깔고 드러누워(잠이 들어) 東쪽이 이미 밝아 온 것도 알지 못했다.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12. 백년하청(百年河淸)
맑아지지 않는 黃河가 맑아지기를 百年을 두고 기다린다. 卽 헛된 기다림을 이른다.
鄭나라는 北으로는 晉나라, 南으로는 楚나라로 부터 交代로 攻擊을 받는 弱小國이였으나 그 틈바구니에서도 견디어 나가는 方法을 찾았다.
周 靈王 7年 鄭의 卿인 子國, 子耳가 蔡나라를 侵犯하여 蔡의 公子 燮을 잡았다.
蔡는 楚의 屬國이였던바 그해 겨울 楚의 令尹 子囊이 軍士를 이끌고 鄭을 討伐하러 왔다.
鄭의 六卿 指導者들이 急히 都城에 모여 鳩首會議를 열었다.
意見은 둘로 나뉘었는데 楚에 降伏하자는 和親論者인 子駟. 子國. 子耳와 晉의 救援을 기다리자는 主戰論者인 子展, 子敎, 子孔이 있었다.
降服論을 代表해서 子駟가 말했다.
"周나라 詩에 말하길 黃河가 맑아지길 기다림은 限이 없어 짧은 人生엔 虛荒될 뿐이다. 말만 茂盛하다보면 새가 그물에 걸려듬과 같은 結果를 낳습니다.
(周詩有之曰 待河之淸人壽幾何非云 詢多職競作羅) 晉의 救援을 기다릴 餘有가 없는 火急한 局面이 이와 같으니 이 番은 貢物을 準備하여 楚의 國境에서 그들을 맞아 降伏하고 國民의 苦痛을 緩和시킵시다 "
이에 子展이 말하길
"小國이 大國을 섬김에는 信用을 잃으면 滅亡이다. 그 間 晉과 다섯차례 會合을 通해 盟誓를 해 왔는데 信義를 져버릴 순 없습니다. 晉의 軍은 士氣가 衝天하나 楚軍은 遠征에 지칠 것이므로 조금만 더 버티면 決國 救援軍을 맞을것입니다"
그러나 子駟가 딱 잘라 말했다.
"論爭을 벌려봐야 所用이 없다. 괜히 時間만 浪費하여 晩時之歎이 될 것이다. 내가 責任을 질 터이니 和親토록합시다 "
이렇게 해서 楚와 和平을 맺었다.
13. 백두여신(白頭如新) 白头如新
흰머리가 새것과 같다.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交際하더라도 마음이 안 通하면 새로 사귀기 始作한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前漢 初期 사람 鄒陽은 梁나라에서 抑鬱하게 罪를 뒤집어쓰고 死刑宣告를 받았는데, 獄中에서 梁나라의 王에게 上書를 올렸다.
「忠誠은 報答을 받지 못함이 없고 믿음은 疑心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荊軻는 燕나라 太子 丹의 義俠心을 尊敬했지만 흰 무지개가 太陽을 뚫고 侵犯하자 太子가 (荊軻를)두려워했습니다. ······ 只今 臣은 忠誠을 다하고 精誠을 다해 大王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랐으나 大王의 左右가 밝지 못해 오히려 獄吏에게 審問을 當하고 世上의 疑心을 받게 되어 버렸습니다. ······ 옛날 卞和는 寶玉의 元石을 楚王에게 바쳤지만 楚王은 오히려 卞和를 刖刑에 處했으며 李斯는 忠誠을 다했지만 2世 皇帝 胡亥는 그를 劇刑에 處했습니다. ······ 俗談에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交際하더라도 마음이 안 通하면 새로 사귄 사람과 같고, 첫 만남이 마치 오랜 親舊를 對하는 것과 같기도 하다.’고 했는데, 이는 왜입니까? 바로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差異 때문입니다.
(乃從獄中上書曰, 臣聞忠無不報, 信不見疑. 昔者荊軻慕燕丹之義, 白虹貫日, 太子畏之. ······ 今臣盡忠竭誠, 畢議願知. 左右不明, 卒從吏訊, 爲世所疑. ······ 昔卞和獻寶, 楚王刖之. 李斯竭忠, 胡亥極刑. ······ 諺曰, 有白頭如新, 傾蓋如故. 何則. 知與不知也.)」
梁나라 王은 이 글을 읽고 感動하여 그를 釋放했을 뿐만 아니라, 上客으로 맞이해 厚히 待接했다.
이 이야기는 《史記 魯仲連鄒陽列傳》에 나온다. ‘白頭如新’은 머리가 흴 때까지 오래 사귄 親舊도 마음이 通하지 않으면 새로 사귄 親舊처럼 疎遠하다는 말이고, ‘傾蓋如故’는 수레를 타고 가다 멈추어 수레 덮개를 기울여 가까이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처럼,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랜 親舊를 對하는 것처럼 잘 通하는 것을 말한다. ‘흰 무지개가 太陽을 侵犯하다.’라는 뜻의 ‘白虹貫日’에서 ‘白虹’은 兵器나 軍隊를 뜻하며, ‘해(日)’는 君主를 象徵하는 것으로, 君主가 害를 입는 것을 말한다.
14. 백낙일고(伯樂一顧) 伯乐一顾
백낙(伯樂)이 한 번 돌아 보다. 名馬가 伯樂을 만나 世上에 알려지듯이, 才能 있는 사람이 그 才能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認定을 받는 것을 比喩
「蘇代가 淳于髡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遊說했다. “어떤 사람이 伯樂을 만나 말했습니다. ‘제게 駿馬가 한 匹 있는데 이를 팔려고 市場에 내놓았지만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습니다. 謝禮는 充分히 하겠으니 제 말을 한 番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伯樂이 가서 그 말의 周圍를 돌면서 살피고, 가면서도 되돌아보자 하루아침에 말 값이 열 倍로 치솟았습니다.”
(蘇代說淳于髡謂, 人有告伯樂曰, 臣有駿馬欲賣, 連三旦立於市, 人莫與言. 願子一顧之, 請獻一朝之費. 伯樂乃環而視之, 去而顧之, 一旦而馬價十倍.)」
이 이야기는 《戰國策 燕策》에 나온다. 비슷한 이야기를 《春秋後語》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伯樂이 한 番 돌아보자 말 값이 뛰어올랐다.(伯樂一顧而馬價增.)」
이런 이야기들에서 ‘伯樂一顧’가 出現하고, 著名人事가 價値를 알아봄으로써 그 位相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貴賓이 枉臨하여 榮光스럽게 되는 것을 比喩하는 말인 ‘一顧之榮’도 나왔다.
伯樂은 周나라 사람으로 本名은 孫陽이다. ‘伯樂’이란 傳說에 나오는 天馬를 主管하는 神仙인데, 孫陽이 말에 對해 精通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伯樂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唐나라 때의 文人 韓愈는 世上 사람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雜說〉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恨歎했다.
世上에 伯樂이 있은 後에 千里馬가 있으니, 千里馬는 恒常 있지만 伯樂은 恒常 있는 게 아니구나. 그러므로 비록 名馬가 있으나 다만 奴隸의 손에서 辱을 보다가 馬廐間에서 普通 말들과 함께 죽어 가 千里馬라 稱함을 받지 못한다. 말 中의 千里馬는 한 番에 조(粟)를 한 섬을 먹는다. 하지만 말을 먹이는 者가 그것이 千 里의 能力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먹인다. 이 말이 비록 千 里의 能力이 있지만 배불리 먹지 못하여 힘이 不足하고 才能과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또한 普通 말들과라도 同等해지기를 바라나 이루지를 못하니, 어찌 千 里의 能力을 求할 수 있겠는가. 채찍질을 하되 그 道로써 하지 아니하고, 먹이되 그 먹는 量을 다하여 먹이지 않고, 울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채찍을 잡고 그 앞에 서 말하기를 天下에 말이 없다고 한다. 嗚呼라. 정말 말이 없는 것인가? 정말 말을 알지 못하는구나.
(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而伯樂不常有. 故雖有名馬, 祉辱於奴隸人之手, 騈死於槽櫪之間, 不以千里稱也. 馬之千里者, 一食或盡粟一石. 食馬者, 不知其能千里而食也. 是馬也, 雖有千里之能, 食不飽, 力不足, 才美不外見, 且欲與常馬等不可得, 安求其能千里也. 策之不以其道, 食之不能盡其材, 鳴之不能通其意, 執策而臨之曰, 天下無馬. 嗚呼. 其眞無馬邪. 其眞不知馬也.)
15. 백면서생(白面書生)
글만 읽고 世上事 經驗이 없는 선비
宋나라 文帝는 北魏를 討伐할 絶好의 機會를 잡고 貴族들의 同議를 求해 軍隊를 일으키려 했다. (當時 貴族들은 冊을 外面해 글을 몰랐다)
이때 校尉 沈慶之가 그 자리에 모인 貴族들을 꾸짖으며 文帝에 아뢰었다.
"밭일은 종에 묻고, 베짜는 일은 下女에게 물어야 하듯(耕當問奴 織當問婢) 敵을 치려면 戰略家와 戰爭에 나갔던 將軍들과 戰略을 세워야 합니다. 白面書生과 일을 圖謀하신다면 어찌 勝利를 保障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白年書生은 얼굴이 蒼白한 젊은이, 젊고 經驗이 없는 書生을 뜻한다.
16. 백룡어복(白龍魚服) 白龙鱼服
흰 龍이 물고기의 옷을 입다. 身分이 높은 사람이 權威를 버리고 民衆들과 어울리는 것을 比喩
「吳나라 王이 百姓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려고 하자 伍子胥가 諫했다.
“안 됩니다. 옛날에 하늘의 흰 龍이 차가운 蓮못으로 내려와 물고기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漁夫 예저(豫且)가 그 눈을 쏘아 맞추자 흰 龍은 하늘 위로 올라가 天帝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天帝가 ‘그 當時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흰 龍이 對答했습니다. ‘차가운 蓮못으로 내려가 물고기로 變해 있었습니다.’ 그러자 天帝가 말했습니다. ‘물고기는 사람들이 쏘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豫且에게 무슨 罪가 있겠는가?’
무릇 흰 龍은 天帝의 貴한 動物이고, 豫且는 宋나라의 微賤한 臣下입니다.
흰 龍이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면 豫且 또한 쏘지 않았을 것입니다. 只今 萬乘의 地位를 버리고 布衣의 선비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하시니, 臣은 豫且의 後患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王은 (술 마시는 일을)그만두었다.
(吳王欲從民飮酒. 伍子胥諫曰, 不可. 昔白龍下淸冷之淵, 化爲魚. 漁者豫且射中其目. 白龍上訴天帝. 天帝曰, 當是之時, 若安置而形. 白龍對曰, 我下淸冷之淵化爲魚. 天帝曰, 魚固人之所射也. 若是, 豫且何罪. 夫白龍, 天帝貴畜也. 豫且, 宋國賤臣也. 白龍不化, 豫且不射. 今棄萬乘之位而從布衣之士飮酒, 臣恐其有豫且之患矣. 王乃止.)」
* 說苑 正諫에.
後漢의 張衡은 이 故事를 引用하여 東京賦에서 「白龍이 물고기의 옷을 입었다가 豫且에게 困辱을 當했다.(白龍魚服, 見困豫且.)」는 말을 썼는데, 여기에서 ‘身分이 높은 貴人이 一般 百姓들의 行色으로 民間으로 出行한다.’는 ‘伯龍魚服’이란 成語가 由來했다.
17. 백미(白眉)
흰 눈썹.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나, 作品의 內容 中에서 가장 뛰어난 部分을 比喩
「蜀나라의 將軍 馬良은 字가 季常으로 襄陽 宜城 사람이다. 그의 집에는 다섯 兄弟가 있었는데 모두 才주가 出衆했다. (兄弟 가운데 馬良의 才주가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洞內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馬氏의 五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은 亦是 흰 눈썹이다.” 馬良은 눈썹에 하얀 털이 있었기 때문에 白眉라고 불렸다.
(馬良字季常, 襄陽宜城人也. 兄弟五人, 竝有才名, 鄕里爲之諺曰, 馬氏五常, 白眉最良. 良眉中有白毛, 故以稱之.)」
이 이야기는 《三國志 · 蜀書 馬良傳》에 나오는데, 가장 뛰어난 馬良이 흰 눈썹을 가졌다는 데서 由來하여 ‘白眉’는 여럿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馬良은 後에 吳나라에 빼앗긴 荊州를 되찾고 關羽의 怨讐를 갚기 爲해 劉備가 燥急한 마음으로 벌인 夷陵 戰鬪에서 戰死했다. 그의 아우인 馬謖은 諸葛亮의 第1次 北伐 때 魏나라와의 싸움에서 失手하여 大勢를 그르친 罪로 斬首刑에 處해졌다.
(泣斬馬謖)
馬氏 兄弟들은 字에 모두 常 字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洞內 사람들은 이 다섯 兄弟를 五常이라 부르며 稱頌했다. 첫째(伯)는 馬玄으로 字가 孟常, 둘째(仲)는 馬康으로 字가 仲常, 셋째(叔)는 馬津으로 字가 叔常, 넷째(季)는 馬良으로 字가 季常, 다섯째(幼)는 馬謖으로 字가 幼常 이었다. 古代의 平民들은 普遍的으로 ‘첫째, 둘째, 셋째, 넷째’ 等의 順序를 나타내는 글字인 ‘伯仲叔季’의 順序대로 이름이나 字를 지었다. 例를 들어 漢高祖 劉邦의 本名은 ‘季’로, 말하자면 劉氏 집의 넷째, 或은 막내라는 號稱인 ‘劉 넷째(或은 막내)’가 이름이 된 것이고, 管仲은 官氏 집의 둘째라는 號稱인 ‘官 둘째’를 이름으로 쓴 것이다.
18. 백아절현(伯牙絶絃) 伯牙绝弦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다. 自己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잃은 것을 比喩
「伯牙는 거문고를 잘 演奏했고 鍾子期는(伯牙의 演奏를) 그 깊이를 누구보다도 뛰어난 鑑賞과 評價를 했다. 伯牙의 彈奏의 뜻이 높은 山에 있으면 鍾子期는 “훌륭하다. 우뚝 솟은 그 느낌이 泰山 같구나.”라고 했고,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鍾子期는 “멋있다.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黃河로다”라고 했다. 伯牙가 뜻하는 바를 鍾子期는 다 알아맞혔다. 鍾子期가 病死하자 伯牙는 더 以上 世上에 自己를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음을 嘆하며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고 終身토록 演奏하지 않았다.
(伯牙善鼓琴, 鍾子期善聽. 伯牙鼓琴, 志在高山, 鍾子期曰, 善哉. 峨峨兮若泰山. 志在流水. 鍾子期曰, 善哉. 洋洋兮若江河. 伯牙所念, 鍾子期必得之. 子期死, 伯牙謂世再無知音, 乃破琴絶絃, 終身不復鼓.)」
이 이야기는 《列子 湯問》에 나오는데, 鍾子期가 죽은 後 伯牙가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데서 ‘伯牙絶絃’이 由來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莫逆한 親舊’를 뜻하는 ‘知音’도 由來했다.
伯牙와 鍾子期의 이야기는 《呂氏春秋 本味》에도 나온다.
「伯牙가 거문고를 타면 鍾子期는 그것을 들었다. 거문고를 타는데 뜻이 높은 山에 있으면 鍾子期는 “훌륭하도다, 거문고 演奏는. 우뚝 솟은 것이 泰山과 같구나.”라고 말했다. 暫時 後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鍾子期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하도다, 거문고 演奏는. 넘칠 듯이 흘러가는 것이 물과 같구나.” 鍾子期가 죽자 伯牙는 거문고를 던져 버리고 줄을 끊고 終身토록 다시 거문고를 演奏하지 않았다. 世上에 거문고 演奏를 들려줄 사람이 다시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伯牙鼓琴, 鍾子期聽之, 方鼓琴而志在泰山. 鍾子期曰, 善哉乎鼓琴, 巍巍乎若泰山. 少時而志在流水, 鍾子期曰, 善哉鼓琴, 洋洋乎若流水. 鍾子期死, 伯牙摔琴絶絃, 終身不復鼓琴, 以爲世無足復爲鼓琴者.)」
《荀子》‘勸學篇’에,『옛날에 瓠巴가 琵琶를 타면 물 속에 있던 물고기가 나와 들었고, 伯牙가 거문고를 타면 여섯 匹의 말 (天子가 타는 수레를 끄는 말을 가리킴)이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쳐다 보았다. 그러므로 소리는 작더라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行動은 숨기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玉이 山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潤澤하고, 蓮못에 珍珠가 생기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善을 行하고 惡을 쌓지 않는다면 어찌 名聲이 들리지 않겠는가?』그 後부터 親한 벗이 죽었을 때 伯牙絶鉉이라고 表現하기도 했다.
19. 백안시(白眼視) 白眼视
눈을 하얗게 뜨고 바라보다. 사람을 흘겨보거나 冷情한 눈길로 對하며 無視하는 것을 말한다.
阮籍은 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老莊 思想에 心醉하여 한 世上을 보낸 사람이다. 그도 元來는 官職에 나아갔었으나 司馬懿가 政變을 일으켜 政權을 잡자 벼슬을 그만두고 山野에 묻혀 살았다.
「阮籍은 禮敎에 얽매이지 않았고, (눈瞳子를 굴려) 흰자위를 드러나게 하거나 好意의 눈빛을 보이게 할 수 있었다. 世俗의 禮儀範節에 얽매인 선비를 보면 흰자위를 드러내 흘겨보며 對했다. 어느 날 嵇喜가 찾아오자 阮籍은 눈의 흰자위를 드러냈다. 嵇喜는 氣分이 傷해 돌아가고 말았다. 嵇喜의 同生 嵇康이 이 消息을 듣고 술을 들고 거문고를 끼고 찾아왔다. 阮籍은 크게 기뻐하며 검은 눈瞳子(好意의 눈빛)로 對했다. 이로부터 禮法을 重視하는 선비들은 그를 怨讐 對하듯이 미워했다.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由是禮法之士疾之若讐.)」
이 이야기는 《晉書 阮籍傳》에 나오는데, 阮籍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흰자위를 드러내었다는 말에서 ‘白眼’이 由來했다. 白眼은 흰자위를 드러내고 흘겨보는 것을 말하고, 靑眼은 검은 눈동자를 가운데로 오게 하여 正常的으로 눈을 뜨고 보는 것으로 好意의 눈빛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20. 백절불요(百折不撓)
百 번 꺾여도 휘어지지 않는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강인(强靭)한 精神力과 꿋꿋한 姿勢를 比喩
後漢 때 사람 喬玄은 淸廉하고 剛直했으며, 恒常 그릇된 일들과 맞서 싸웠다. 젊은 時節 縣에서 勤務할 때 外戚 梁冀의 庇護를 받던 陳王의 相國 羊昌의 罪를 摘發한 적이 있으며, 漢陽 太守로 있을 때는 上邽 縣令 皇甫禎이 橫領罪를 犯하자 卽刻 死刑에 處한 일도 있었다. 喬玄은 靈帝 때 上書令이 되었는데, 太中大夫 蓋升이 皇帝와 가깝다는 것을 믿고 百姓들을 搾取한 事實을 摘發하여 處罰하도록 上疏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病을 핑계로 辭職하였다. 그 後 靈帝가 太尉 벼슬을 내렸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루는 喬玄의 열 살 난 아들이 强盜들에게 붙잡혀 가는 일이 일어났다. 陽球라는 將帥가 卽時 官兵을 데리고 救出하러 갔지만, 喬玄의 아들이 다칠까 봐 强盜들을 包圍하고만 있을 뿐, 더 以上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喬玄이 火를 내면서 소리쳤다. “强盜는 法을 無視하고 날뛰는 무리들인데 어찌 내 아들 때문에 그들을 놓아준다는 말인가.” 그러고는 兵士들을 다그쳐 强盜들을 잡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强盜들에게 殺害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喬玄을 높이 評價했다.
喬玄에 對한 이야기는 《後漢書 喬玄傳》에 나온다. 喬玄은 죽으면서 남긴 遺産이 全혀 없었으며, 葬禮도 極히 簡素하게 치러졌다. 曹操도 喬玄의 무덤을 찾아가 祭祀를 지내 주었으며, 蔡邕은 喬玄을 爲하여 太尉喬玄碑라는 碑文을 지어 「그 性格은 嚴格했으며, 華麗함을 미워하고 素朴함을 崇尙했다. 百 番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큰 節槪에 臨하여서는 빼앗을 수 없는 風度를 지녔다.
(其性莊, 疾華尙朴. 有百折不撓, 臨大節而不可奪之風.)」고 稱頌하였는데, 바로 蔡邕이 쓴 碑文에서 ‘百折不撓’가 由來했다. 비슷한 말로는 百折不屈, 百折不回, 不撓不屈, 威武不屈 等이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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