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ㅁ-7 물이유취~ )
46. 물이유취(物以類聚) 物以类聚
事物은 種類대로 모인다. 같거나 비슷한 部類끼리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하늘과 땅의 區別이 定해졌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벌여 있어서 貴한 것과 賤한 것이 各其 자리를 얻게 된다. 움직임과 고요함에 一定함이 있어 强한 것과 柔順한 것이 決定된다. 森羅萬象은 같은 種類끼리 모이고, 萬物은 무리를 지어 나누어지니, 이로부터 吉함과 凶함이 생긴다.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 動靜有常, 剛柔斷矣. 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
* 周易 繫辭上에.
「같은 소리는 서로 應하며, 같은 氣運은 서로 求한다. 물은 濕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을 向한다. 구름은 龍을 좇아 일고, 바람은 호랑이를 좇아 분다. 聖人이 나오면 萬物이 보고, 하늘에 根本을 둔 것은 위와 親하고, 땅에 根本을 둔 것은 아래와 親하니, 이는 各者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
* 周易 文言에.
이 成語는 戰國 時代 齊나라 淳于髡의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淳于髡은 體軀는 矮小했지만 말才주가 좋았다. 그는 本是 奴隸였으나 데릴사위가 되어 丈人의 집에서 살다가 齊나라 威王의 信任을 얻었다. 威王이 죽은 後, 宣王이 卽位하였다. 宣王이 賢士들을 招聘하자 淳于髡은 한꺼番에 7名을 推薦하였다. 宣王이 몹시 놀라 말했다. “千 里에 賢者 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賢者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것처럼 많은 것이고, 百 年에 聖人 한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聖人들이 발꿈치를 맞대고 걸어오는 것처럼 많다고 할 수 있는데, 하루만에 7名을 推薦했으니 너무 많은 게 아니겠소?” 淳于髡이 對答 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새들은 같은 깃털을 가진 것끼리 함께 모이고, 짐승들은 같은 다리를 가진 것끼리 함께 달립니다.
(夫鳥同翼者而聚居, 獸同足者而俱行.)
柴胡나 桔梗 等의 藥材를 求하려고 蓮못으로 갔다면 平生 한 뿌리도 찾지 못하지만, 역서산(睪黍山)이나 양보산(梁父山)에 가서 찾는다면 몇 수레라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事物에는 各其 비슷한 部類가 있으며, 저, 淳于髡도 賢者들의 部類라고 할 수 있습니다.
(夫物各有疇, 今髡賢者之疇也.)
王께서 저에게 人才를 求하는 것은 마치 江에서 물을 긷고 부싯돌로 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簡單한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戰國策 齊策》에 나오는데, 事物에는 各其 비슷한 部類가 있다는 淳于髡의 말에서 ‘物以有聚’가 由來했다. 物各有疇, 物各有類, 方以類聚, 物以群分, 各從其類 等으로도 쓰며, ‘類類相從’이라고도 한다.
47. 미능면속(未能免俗)
속된 習慣을 버리지 못하다. 俗物根性을 비웃는 말이다.
「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晉나라의 원함(阮咸)은 叔父인 원적(阮籍)과 城의 南쪽에 살았고, 다른 阮氏 一家는 北쪽에 살았다. (사람들은 阮咸과 阮籍을 南阮이라 부르고, 北쪽의 阮氏 一家는 北阮이라 불렀다.) 阮氏 사람들은 다 富裕했는데 南阮 사람들은 가난했다. 7月 7日이 되면 겨울옷을 꺼내 햇볕에 말리는 風習이 있었는데, 北阮 사람들은 緋緞으로 만든 華麗한 옷을 내다 말렸다. 阮咸은 장대 위에 굵은 베로 짠 초라한 짧은 바지를 걸어 놓고 햇볕에 말렸다. 이를 異常하게 여긴 사람이 묻자 阮咸이 對答했다. “俗된 習俗을 버리지 못하여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라오.”
(阮仲容步兵居道南, 諸阮居道北. 北阮皆富, 南阮貧. 七月七日, 北阮盛曬衣, 皆紗羅錦綺. 仲容以竿掛大布犢鼻褲於中庭. 人或怪之, 答曰, 未能免俗, 聊復爾耳.)」
이 이야기는 《世說新語 任誕》에 나오는데, 이로부터 由來하여 ‘未能免俗’은 俗物根性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비웃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原文의 仲容은 阮咸의 字이고, 步兵은 阮籍을 말한다. 阮籍은 步兵校尉라는 벼슬을 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阮步兵이라 불렀다.(江東步兵) 〈任誕〉은 世俗에 拘碍되지 않고 제멋대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篇이다.
48. 미망인(未亡人)
아직 죽지 않은 사람. 男便을 따라 죽지 않은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楚나라의 令尹 子元이 文夫人(文王의 夫人)을 誘惑하기 爲해 宮室 옆에다 建物을 짓고 萬 춤을 추게 하였다. 그 音樂 소리를 듣고 夫人은 울면서 말했다. “先王께서는 이 춤을 軍隊를 訓鍊하는 데 使用하셨다. 只今 令尹은 怨讐들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고 未亡人의 곁에서 하고 있으니 異常하지 아니한가.” 侍從 하나가 이 事實을 子元에게 알리니 子元이 말했다. “夫人은 怨讎를 잊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잊고 있었구나.” 가을에 子元은 600乘의 戰車를 動員하여 鄭나라를 치고 桔柣의 門에 들어갔다.
(楚令尹子元欲蠱文夫人, 爲館於其宮側, 而振萬焉. 夫人聞之, 泣曰, 先君以是舞也, 習戎備也. 今令尹不尋諸仇讎, 而於未亡人之側, 不亦異乎. 御人以告子元. 子元曰, 婦人不忘襲讎, 我反忘之. 秋, 子元以車六百乘伐鄭, 入於桔柣之門.)」
이 이야기는 《左傳 魯莊公 28年》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文獻上 ‘未亡人’이란 말이 처음으로 登場했다. 桔柣의 門은 鄭나라 郊外에 있는 城門이다. ‘未亡人’은 다음의 典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름, 魯나라의 伯姬가 宋公에게 媤집가는데 季文子가 後行으로 宋나라에 갔다가 任務를 無事히 마치고 돌아왔다. 成公이 慰勞의 宴會를 베푸는 자리에서 季文子가 《詩經》韓奕의 第5章을 引用하여 成公과 宋公을 稱頌한 後 出家한 伯姬의 앞날을 祝福했다. 伯姬의 어머니 穆江이 房에서 나와 再拜하며 말했다. “大夫께선 정말 苦生하셨습니다. 當身은 돌아가신 先王을 잊지 않고 뒤를 이은 現在의 王에게까지 忠誠을 다하고, 未亡人인 나에게까지 베푸셨습니다. 先王의 바람이 있으니 大夫의 수고에 敢히 절합니다.” 그러고는 《詩經》'綠衣'의 마지막 章을 노래하고 들어갔다.
(夏, 季文子如宋致女, 復命, 公享之. 賦韓奕之五章. 穆姜出於房, 再拜, 曰, 大夫勤辱, 不忘先君, 以及嗣君, 施及未亡人, 先君猶有望也. 敢拜大夫之重勤. 又賦綠衣之卒章而入.)」
* 左傳 魯成公 9年에.
「衛나라의 定公이 病이 들자 孔成子 · 寧惠子를 시켜 (妾室인)敬塮의 아들 衎을 太子로 삼게 하였다. 겨울 10月에 衛定公이 죽었다. 夫人 姜氏가 哭을 마치고 쉬면서 보니 太子는 아무런 슬픈 氣色을 보이지 않았다. 夫人은 이를 보고 食飮을 全廢하고 嘆息했다. “저 못난 子息은 틀림없이 나라를 亡치고 말 것인데, 먼저 이 未亡人을 虐待할 것이다. 아, 하늘은 衛나라에 禍를 내렸는가? 내가 鱄, (姜夫人의 아들)에게 社稷을 맡게 하지 못하다니.”
(衛侯有疾, 使孔成子寧惠子立敬塮之子衎以爲大子. 冬十月, 衛定公卒. 夫人姜氏旣哭而息, 見大子之不哀也, 不內酌飮, 歎曰, 是夫也, 將不唯衛國之敗, 其必始於未亡人. 烏呼. 天禍衛國也夫. 吾不獲鱄也使主社稷.)」
* 左傳 魯成公 14年에.
以上의 例에서 본 바와 같이 ‘未亡人’은 元來 ‘男便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男便과 死別한 女子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歲月이 흘러 남을 稱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49. 미봉책(彌縫策) 弥缝策
臨時로 꿰매는 計策. 눈가림만 하는 一時的인 計策을 말한다.
周나라 桓王은 鄭나라 莊公이 天子의 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宋나라를 쳤다는 消息을 듣고 憤怒하여 莊公의 政治上의 實權을 剝奪했다. 莊公은 이 措置에 憤慨해 朝見(조현)을 5年이나 中斷했다. 國稅가 弱化되어 名目上의 天子國으로 轉落한 周나라의 權威를 今番 機會에 回復시키기 爲해 周桓王은 鄭나라를 치기로 하고 諸侯들에게 參戰을 命했다. 鄭莊公 亦是 防禦 態勢로 나왔다. 王命을 받고 虢, 蔡, 衛, 陳의 軍士가 모였다. 周桓王이 總司令官이 되어 鄭나라를 懲伐하러 나섰다. 이렇게 天子가 直接 軍士를 거느리고 나간 일은 春秋時代 240如 年 歷史에 前無後無한 일이었다.
兩軍은 鄭나라의 繡葛에서 對峙했다. 鄭나라의 公子 元이 鄭莊公에게 進言했다. “只今 左軍에 屬해 있는 陳나라 軍隊는 國內 政勢가 어지럽기 때문에 戰意가 없습니다. 먼저 陳나라 軍隊부터 攻擊하면 반드시 敗走할 것입니다. 그러면 桓王이 指揮하는 中軍은 混亂에 빠질 것이며, 虢公이 이끄는 蔡나라와 衛나라의 右軍도 支撐하지 못하고 退却할 것입니다. 이때 中軍을 치면 틀림없이 이길 수 있습니다.” 莊公은 元의 進言에 따라 圓型의 陣을 짜고 戰車를 앞머리에 세웠으며, 步兵을 後陣으로 하여 戰車와 戰車 사이를 彌縫했다.(爲魚麗之陳. 先偏後伍, 伍承彌縫.)
이 戰略은 適中하여 桓王의 聯合軍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桓王은 鄭나라 祝聃이 쏜 화살에 어깨를 맞고 負傷을 當했다. 桓王은 軍士를 收拾하여 鄭나라에 對抗했다. 祝聃이 桓王을 치겠다고 나서자 莊公이 挽留했다. “君子는 사람을 傷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天子를 凌蔑해서야 되겠는가? 國家 社稷을 지키려는 우리의 目的이 이루어졌으니 됐다.” 莊公은 祭足에게 膳物을 주어 周桓王에게 가서 慰勞하게 한 뒤 軍隊를 撤收시켰다.
이 이야기는 《左傳 桓公 5年》에 나온다. ‘彌縫’이란 元來 軍隊를 配置할 때 戰車 部隊 사이의 間隔을 步兵으로 메운다는 뜻이었는데, 後에는 대충(大總) 눈가림을 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50. 미생지신(尾生之信)
尾生의 信義. 信義가 두터운 것을 가리키거나, 愚直하여 融通性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尾生之信’은 各各 相反된 뜻을 보여 주는 두 個의 出典이 있다.
「蘇秦이 燕王에게 말했다. “王께서 저를 믿지 않는 것은 必時 누군가 中傷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曾參 같은 孝道도 없고, 伯夷 같은 淸廉도 없고, 尾生 같은 信義도 없습니다. 그러니 王께선 曾參 같은 孝道와, 伯夷 같은 淸廉과 尾生 같은 信義가 있는 사람을 얻어 王을 섬기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孝道가 曾參 같으면 하룻밤도 父母를 떠나 밖에서 자지 않을 텐데, 王께서 어떻게 그를 걸어서 千 里 길을 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伯夷는 武王의 臣下가 되는 것이 싫어 首陽山에서 굶어 죽고 말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千 里 길 齊나라로 달려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信義가 尾生 같다면 尾生은 어떤 女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를 約束했으나 女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었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은 채 죽었는데, 이런 사람에게 千 里를 달려가 齊나라의 强한 軍士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齊之彊兵哉.)
저를 不孝하고, 淸廉하지 못하고, 信義가 없다고 中傷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父母를 버리고 여기까지 와서 弱한 燕나라를 도와 齊나라를 달래어 빼앗긴 城을 다시 바치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史記 蘇秦列傳》에 나오는 것으로, 蘇秦이 燕나라 昭王을 說得하는 內容이다. 蘇秦은 여기에서 尾生을 ‘信義 있는 사람의 本보기’로 들고 있다.
「世上에서 賢士라고 말하는 伯夷와 叔齊는 孤竹國의 임금을 그만두고 首陽山에서 굶어 죽어 그 뼈도 묻히지 못했고, 鮑焦, (周나라의 隱子)는 미친 척하며 世上을 誹謗하다가 나무를 안은 채 죽었으며, 申徒狄은 임금의 잘못을 諫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돌을 지고 스스로 江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밥이 되었고, 介子推는 忠誠이 至極해서 그 다리 살을 베어 晉文公을 먹였지만, 後에 文公이 그를 背信하자 火가 나 山에 들어가 나무를 안은 채 불에 타 죽었으며, 尾生은 어떤 女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를 約束했으나 女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었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은 채 죽었다.
(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
이 여섯 사람은 책형(磔刑)을 받은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와 같으며, 그 이름을 求하는 꼴은 쪽박을 들고 밥을 빌어먹는 거지와 다름없다. 이들 모두 이름에 拘束되어 죽음을 가벼이 여긴 사람으로서, 本性을 생각하고 목숨을 지키지 못했다. ······ 尾生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信義에 얽매인 데서 오는 悲劇이라 할 수 있다. (尾生溺死, 信之患也.)」
이 이야기는 《莊子 盜跖》에 나오는데, 여기서 ‘尾生之信’은 ‘融通性이 없는 愚直한 사람’을 말한다.
이 外에도 《戰國策 燕策》에서는 “尾生과 같은 信義는 但只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不過할 따름이다.”라고 하고, 《淮南子 說林訓》에서는 “尾生의 信義는 차라리 相對方을 속여 瞬間의 危險을 避하고 後日을 期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尾生’의 이야기는 《莊子》, 《戰國策》, 《史記》, 《淮南子》 等 여러 典籍에서 보이는데, 모두 尾生이 다리 밑에서 女子를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만 引用하고 있을 뿐, 尾生에 對한 仔細한 內容이 실려 있지 않아 尾生의 身上이나 이 故事의 正確한 出典은 알 수가 없다. 申徒狄 (申屠狄 으로도 씀)은 商, 殷나라 때의 賢者로, 商나라의 湯이 夏나라를 滅한 뒤 自身이 새로운 王이 되려 하자 이를 諫했지만 듣지 않자 江물에 뛰어들어 子盡했다고 한다.
(湯이 王位를 申徒狄에게 讓位하려 하자 申徒狄이 이를 拒絶하고 물에 뛰어들었다는 說도 있다.)
(‘磔刑’은 罪人을 기둥에 묶고 四枝부터 始作하여 한칼 한칼 도려내는 刑罰을 말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한자성어(漢字成語)** > 고사성어(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사성어(故事成語) (ㅂ-2 배반낭자~) (0) | 2026.03.06 |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ㅂ-1 박학상설~) (0) | 2026.03.06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ㅁ-6 물극필반) (0) | 2026.03.05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ㅁ-5 문일득심~ ) (0) | 2026.03.05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ㅁ-4 모수자천~ ) (0) | 2026.03.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