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ㅁ-5 문일득심~ )
39. 문일득삼(問一得三) 问一得三
하나를 물어 셋을 얻다. 적은 努力으로 많은 利得을 얻은 것을 比喩하는 말이다.
孔子의 아들 孔鯉도 다른 弟子들과 더불어 孔子에게서 배웠다. 一部 弟子들은 스승이 自己들보다는 아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陳亢이 伯魚 (孔鯉)에게 물었다. “그대 亦是 特別한 것을 들었소?(아버지에게서 特別한 敎育을 받은 적이 있소?)” 孔鯉가 對答했다. “없소. 일찍이 혼자 계실 때 내가 庭園을 지나가는데 詩를 배웠냐고 물으셔서 배우지 않았다고 對答했더니 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시기에 물러나와 詩를 배웠다오. 또, 한 番은 혼자 계실 때 내가 庭園을 지나가는데 禮를 배웠냐고 물으셔서 배우지 않았다고 對答했더니 禮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고 하시기에 물러나와 禮를 배웠다오. 이 두 가지를 들었다오.” 陳亢은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했다. “한 가지를 물었는데 세 가지를 얻었구나. 詩를 듣고 禮를 들었으며, 君子는 自己 子息을 멀리한다. (自己 子息만을 特別히 따로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 又獨立, 鯉趨而過庭. 曰學禮乎. 對曰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이 이야기는 《論語 季氏》에 나오는데, 陳亢의 말에서 ‘ 問一得三’이 由來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뜰에서의 가르침’, 즉 家庭敎育을 뜻하는 ‘庭訓’도 由來했다.
40. 문일지십(聞一知十) 闻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아주 聰明한 것을 比喩
「孔子가 子貢에게 물었다. “너와 回 中에서 누가 더 나으냐?” “제가 어찌 敢히 回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回는 하나를 듣고도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겨우 둘 程度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孔子가 말했다. “그렇다. 그만 못하다. 나와 너는 그만 못하다.”
(子謂子貢曰, 女與回也, 孰愈.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賜也, 聞一以知二. 子曰, 弗如也. 吾與女, 弗如也.)」
* 論語 公冶長에. 論語(논어) 5. 公冶長(공야장)
子貢은 孔子의 弟子 中에서 辯舌에 뛰어나 孔子가 여러 나라를 周遊할 때 主로 外交 業務를 맡아 處理했으며, 財産을 모으는 才주가 남달라 孔子의 周遊에 必要한 資金을 大部分 뒷받침한 사람이다. 子貢이 辯舌에 뛰어났다는 것은 다음의 事實을 通해 알 수 있다.
春秋 末期, 齊나라 大夫 田常이 亂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國內 巨族인 高氏, 國氏, 鮑氏, 晏氏의 勢力이 두려웠다. 그래서 計劃을 바꾸어 齊나라의 王 簡公을 부추겨 그들의 兵力을 出動시켜 魯나라를 征伐하도록 했다. 簡公은 巨族들의 軍士를 合쳐 魯나라로 出兵 시켰다. 그러자 魯나라 出身인 孔子는 故國이 亂을 當하는 것을 막으려고 子貢을 齊나라에 보냈다. 子貢은 大夫 田常을 說得하여 危機에 處한 魯나라를 救하고, 齊나라를 뒤흔들었으며, 吳나라를 敗하게 하고, 晉나라를 强하게 만들고, 越나라를 覇者로 만드는 等, 10年 동안 各地를 다니면서 遊說하여 5個 나라의 政勢와 判圖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三十六計의 連環計에 孔子는 이런 子貢을 다음과 같이 評價했다.
「(내 弟子로서) 學業에 힘써 六藝에 精通한 者가 77名이 있는데, 모두가 뛰어난 才能을 지닌 者들이다. ······ 辯舌에는 宰我와 子貢이 뛰어났고 ······ 賜, (子貢)는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돈벌이에만 힘을 기울이는데, 그의 判團은 恒常 正確하다. (孔子曰, 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皆異能之士也. ······ 言語, 宰我, 子貢. ······ 賜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子貢이 辯舌에 能했다고 하는데, 말을 잘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든 것이 많다는 뜻을 內包하고 있다. 子貢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辯舌로써 遊說에 成功할 수 있었던 것은 單純히 말만 잘해서가 아니라 王의 性格과 心理, 그 나라의 狀況과 周邊 政勢, 國家 間의 力學關係를 꿰뚫는 知識과 情報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子貢은 財테크에도 一家見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平素에 物件을 사서 貯藏해 두었다가 時勢가 오르면 내다 팔아서 財産을 모았으며, 일찍이 魯나라와 衛나라의 宰相이 되어 千金을 쌓기도 했다. 買占買惜을 하고, 地位를 利用해 利權에도 적지 않게 介入했다고 解釋될 수 있는 그의 이런 行跡은 判斷이 正確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孔子는 子貢이 平素에 自己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지만 判斷은 正確하다는 評을 한 것이 아닐까?
41. 문전성시(門前成市)
문 앞이 시장을 이룬다. 는 의미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붐비는 상태를 말한다.
前漢 末, 11代 皇帝인 哀帝 (B.C 6-7) 때의 일이다. 哀帝가 卽位하자 朝廷의 實權은 大司馬 (오늘날의 國方長官) 王莽 (훗날 前漢을 滅하고 新나라를 세움)을 包含한 王氏 一族으로부터 亦是 외척(外戚)인 傅氏 哀帝의 할머니쪽 家門., 丁氏 哀帝의 어머니쪽 家門. 두 家門으로 넘어갔다.그리고 當時 20歲인 哀帝는 董賢이라는 美童과 同性戀愛에 빠져 國政을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重臣들이 諫했으나, 馬耳東風이었다. 그 中 尙書僕射(只今의 長官에 該當) 鄭崇은 거듭 諫하다가 哀帝에게 미움만 사고 말았다. 그 무렵, 趙昌이라는 尙書令이 있었는데 그는 典型的인 阿諂輩로 王室과 人戚間인 鄭崇을 猜忌하여 謀陷할 機會만 노리고 있었다. 어느날 趙昌은 哀帝에게 이렇게 告했다. “陛下, 아뢰옵기 惶恐하오나 鄭崇의 집 門 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습니다.(門前成市) 이는 尋常치 않은 일이오니 嚴重히 問招하시옵소서.” 哀帝는 그 卽時 鄭崇을 불러 물었다. “듣자니, 그대의 ‘門前은 저자와 같다(君門如市)고 하던데 그게 事實이오?” “예, 陛下. ‘臣의 門前은 저자와 같사오나 (臣門如市) 臣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옵니다. 惶恐하오나 한 番 더 調査해 주시옵소서.”그러나 哀帝는 鄭崇의 訴請을 默殺한 채 獄에 가뒀다. 그러자 司隸인 孫寶가 上疏하여 趙昌의 讒言을 攻駁하고 庶人으로 내쳤다. 그리고 鄭崇은 그 後 獄에서 죽고 말았다.
42. 문전작라(門前雀羅)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친다. 는 말로, 한때는 붐볐던 곳이 권세·인기·재물의 감소로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한산해진 상황을 뜻한다. 출전은 《사기》 급정열전(汲鄭列傳)으로, 권세가 있으면 빈객이 늘지만 세력이 약해지면 곧바로 줄어드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史記 汲鄭列傳에는 漢나라 때의 賢臣인 급암(汲黯)과 鄭當時의 逸話가 실려 있는데, 司馬遷은 이 篇의 末尾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두었다.
汲黯이나 鄭當時 같은 어진 이들도 勢力이 있으면 賓客이 10倍로 늘어나고, 勢力이 없어 지면 賓客들은 흩어져 같다. 그러니 普通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규(下邽) 사람 翟公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
翟公이 처음 廷尉라는 官職에 오르자 賓客들이 그의 집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가 官職에서 물러나자 찾아 오는 賓客들이 없어 大門에다 참새 잡는 그물을 쳐도 될 地境이 되었다(門外可設雀羅). 後에 翟公이 다시 官職에 오르게 되자 賓客들이 또다시 밀려 들었다.
門前雀羅 란 門 앞의 참새 그물 이라는 뜻으로 門可雀羅 라고도 한다. 이는 門밖에 새그물을 쳐도 될 만큼 찾아 오던 이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比喩한 말이다. 富와 權勢를 누리며 門前成市를 바라보다가 沒落한 權力家들에게는 훨씬 더 큰 참새 그물이 必要할 것이다.
43. 물의(物議) 物议
사물을 議論하다. 의논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뭇사람들의 平判이나 뒷소문 혹은 非難을 이르는 말이다.
南朝時代 齊나라와 梁나라에서 벼슬을 했던 謝幾卿은 詩人 謝靈運의 曾孫子로 性格이 大凡하고 술을 좋아했는데, 官爵에 別로 뜻을 두지 않고 自由奔放하게 살았다. 그는 無分別하고 放蕩하게 行動하여 梁武帝의 미움을 사 結局은 官職에서 罷免되었다. 罷免된 後에도 그와 交際하기를 좋아하는 官吏들이 술을 들고 찾아와 그의 집은 恒常 떠들썩했다. 마침 左丞 庾仲容도 罷職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두 사람은 意氣投合하여 氣分대로 自由奔放하게 行動했으며, 때로는 덮개가 없는 수레를 타고 郊外 들판을 노닐면서 世上의 物議에 전혀 開議치 않았다. (二人意相得, 竝肆情誕縱或乘露車, 歷遊郊野, 不屑物議.)
이 이야기는 《梁書 謝幾卿傳》에 나온다. ‘物議’는 主로 否定的인 意味로 쓰인다.
44. 문정경중(問鼎輕重)
솥의 무게를 묻는다. 는 뜻으로, 원래는 황제의 지위를 엿보려는 속셈에서 비롯된 말이다. 현재는 타인의 실력·내막을 떠보거나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春秋 時代 楚나라는 여러 諸侯國들 中에서 勢力이 첫손가락에 꼽혔다. 그 楚나라의 莊王은 勇猛하고 積極的인 人物로서 모든 帝侯國뿐 아니라 象徵的 宗主國인 周나라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形便이었는데, 어느 해 莊王은 領土를 擴張하기 爲해 北쪽 오랑캐 戎族을 征伐하고는 일부러 迂廻하여 周나라 都城 밖에 이르러 閱兵式을 開催하며 勢力을 誇示했다. 周나라의 天子 定王과 그 臣下들은 坐不安席이었다. 萬若 莊王이 나쁜 마음만 먹는다면 손짓 한 番으로 都城은 破壞되고 宗主國의 社稷은 무너질 것이 틀림없었다. 定王은 論亂 中에도 大臣 王孫滿을 보내어 莊王을 慰勞했다. 人事말을 주고받은 後 莊王이 말머리를 돌렸다.
“寡人이 前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只今 이곳 九重宮闕 깊숙한 곳에 九鼎이 安置되어 있는 줄 알고 있소이다. 大體 그 크기나 무게가 어느 程度요?”
九鼎이란 本來 夏나라 禹王이 아홉 州의 구리를 모아다 만들었다고 하는 아홉 個의 三발이 솥으로서, 國家의 象徵物로 代代로 傳해져 내려온다고 알려진 寶物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王만이 天下의 主人될 資格이 있는 것으로 認識되었다. 莊王이 帝位를 노1@리고 있음을 看破한 王孫圉만은 天然스럽게 對答했다.
“事實은 저도 確實히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것이 王權의 象徵이라고 하지만, 나라를 얻고 다스림이야 德行의 結果이지 그런 物件하고 무슨 相關이 있겠습니까?”
“그런 式으로 얼버무리려고 하지 마오. 率直히 말해서 寡人이 마음만 먹는다면 새로운 九鼎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오.”
“아니, 殿下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옛날 舜임금과 禹임금이 興盛할 때는 모든 周邊國들이 朝貢을 갖다 바쳤고, 아홉 州의 諸侯들이 구리를 獻納하여 九鼎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寶物은 거죽에 怪狀한 그림이 새겨져 있고, 世上 形便에 따라 두려운 造化를 부린다고 합니다. 善한 임금이 옳고 바른 政治를 하면 社稷을 鞏固히 받쳐 주지만, 野辱을 부리고 德行을 멀리하면 나라를 亡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허허, 설마……”
莊王이 코웃음치자, 王孫圉만은 正色으로 말했다.
“九鼎의 造化에 對해서 그렇게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世上에 仁義와 德이 行해지면 九鼎은 작아지지만 무거워서 옮기기가 어렵고, 世上이 어지러워 奸邪한 무리가 들끓으면 九鼎은 거추장스러울 만큼 부피가 커지지만 무게는 反對로 아주 가벼워져서 別로 어렵잖게 옮길 수 있습니다. 夏나라 傑임금이 昏微해져 九鼎을 殷나라로 옮겨갈 때도 그랬고, 우리 周나라 成임금께서 九鼎을 겹욕(郟鄏)에 安置하실 때도 그랬지요. 郏鄏에 安置할 때 卜占을 친 結果 代代로 30代에 걸쳐 700年 동안 나라가 持續될 수 있을 것이라는 卦가 나왔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周王室의 힘이 비록 弱해지긴 했으나 아직도 하늘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즉 殿下께서는 ‘九鼎이 큰지 작은지, 무거운지 가벼운지에 對해서 關心을 가지실’ 必要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點 銘心하십시오.”
婉曲하면서도 冷嚴한 警告였다. 莊王은 心思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 火를 낼 수도 罪를 물을 수도 없었다. 王孫圉의 말이 論理的 正當性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莊王은 軍陣을 自己 나라로 돌렸다.
問鼎輕重 은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뜻으로, 皇帝 자리를 노리는 것을 말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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