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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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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ㅁ-3 맹인보상~ )

by 산산바다 2026. 3. 5.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3 맹인보상~ )

 

 

21.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다. 全體把握하지 못하고 自己가 알고 있는 작은 部分固執하는 것을 比喩

 

옛날 印度의 어떤 眞理해 말하다가 代身을 시켜 코끼리를 한 마리 몰고 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장님 여섯 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各者 코끼리에 해 말해 보도록 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진 사람은 무같이 생겼다고 말했고, 귀를 만진 사람은 키같이 생겼다고 말했으며, 머리를 만진 사람은 돌같이 생겼다고 했고, 코를 만진 사람은 절굿공이같이 생겼다고 했으며, 다리를 만진 사람은 절구같이 생겼다고 했고, 등을 만진 사람은 平床같이 생겼다고 했고, 배를 만진 사람은 장독같이 생겼다고 했으며, 꼬리를 만진 사람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했다.

(其觸牙者卽言象形如蘆菔根, 其觸耳者言象如箕, 其觸頭者言象如石, 其觸鼻者言象如杵, 其觸脚者言象如木臼, 其觸脊者言象如床, 其觸腹者言象如甕, 其觸尾者言象如繩.)

 

은 그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臣下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諸各己 自己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眞理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

 

이 이야기는 涅槃經에 나온다. 寓話眞理를 알기 해서는 바른 눈과 깊은 智惠必要하다는 것을 말하기 한 것으로, 사람은 누구나 自己가 알고 있는 만큼만 理解하고 固執하려 한다는 事實을 깨우쳐 주고 있다.

 

 

22. 맥수지탄(麥秀之嘆)

亡國恨嘆. 世上이 바뀌어 옛 榮華도 허망(歔望)이 사라짐

 

中國 古代史最高暴君傑王紂王을 꼽는다.

傑王夏王朝 最後이고, 紂王殷王朝 最後으로 이들이 저지른 亂暴淫虐酒池肉林에서 極致를 이룬다.

紂王非行忠諫을 서슴치 않은 三人忠臣으로 微子, 箕子, 比干이 있었다.

微子傑王同腹兄으로 絶望하여 他國으로 亡命하였고, 箕子亡命을 하여

自國羞恥가 부끄러워 거짓 狂人이 되었고, 王子 比干諫言타 죽임을 했다.

훗날 周王朝世上에서 微子나라 血統을 잇는 뜻에서 나라의 으로 冊封되었다. 箕子箕子朝鮮으로 冊封되었다.

後 箕子周王朝의 서울로 가던 길에 옛 古都를 지나게 되었다.

일찍이 繁華했던 首都廢墟가 되었고, 荒廢宮殿자리는 農土가 되어 隔世之感을 느꼈다.

亡國에 눈물지며 한 를 남겼다.

 

麥秀漸漸兮~ 보리이삭은 무럭무럭 자라고

禾黍油油兮~ , 기장은 光澤이 난다.

彼狡猾童兮~ 狡猾한 저 사람이

不與我好兮~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스럽구나.

無心歲月앞에 없는 슬픔을 읊은 이 에서 나온 말이다.

* 史記 宋微子世家.

 

 

23.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 (孟母三遷. 三遷之敎)

子息 敎育環境適地를 찾아 살다.

 

孟子는 어려서 父親을 여의고 偏母 膝下에서 成長했다.

처음 生活 場所共同墓地 附近인데 孟子는 또래 아이들과 모여 땅에 엎드려 大聲痛哭을 하거나 祭祀지내는 흉내며 葬禮式 놀이를 하였다.

孟子 어머니(仉氏. 성씨장)가 크게 놀라며 移徙를 갔는데 市場 附近이었다.

孟子는 또 다시 또래들과 市場 商人들의 장사 흉내를 하며 놀았다.

孟母는 이래선 않되겠다며 세 째로 글房 附近으로 移徙를 했다.

에는 글學童들이 글을 익히는 것을 흉내내기 始作했다.

놀면서도 秩序를 지키고 윗 어른을 보면 人事를하고, 房 門틈으로 글을 배우고 익혔다.

孟母는 이 곳이야 말로 子息敎育環境最適地음을 다시 깨닫고 孟子敎育시켜 當代最高儒學者로 만들었다.

(昔孟子少時, 父早喪, 母仉氏守節. 居住之所近於墓, 孟子學而喪葬, 躃踊痛哭之事. 母曰, 此非所以居子也. 乃去. 舍市, 近於屠, 孟子爲學買賣屠殺之事. 母又曰, 亦非所以居子也. 繼而遷於學宮之旁. 每月朔望, 官員入文廟, 行禮跪拜, 揖讓進退. 盟子見了, 一一習記. 孟母曰, 此眞可以居子也. 遂居於此)

* 劉向列女傳

 

(孟子~: BC 372~ BC 289 . 山東縣 鄒縣 出生. 이름은 . 子與 또는 子車. 戰國時代 哲人. 大儒. 孔子思想發展시켜 仁義禮智人間本性이며 性善說主創하고 各國 諸侯들에게 王道政治說破했다)

 

 

24. 모순(矛盾) = (自相矛盾)

말이나 行動前後相衝

 

나라 사람이 防牌을 팔았는데

그가 防牌를 자랑할 때는 "房牌는 그 어떤 武器로도 뚫을 수 없다"라고 하고,

을 자랑할 때는 " 은 어떤 物件이라도 다 貫通시킨다"라고 떠들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當身으로 그 防牌를 뚫어보시오?"

라고 하자 無應答이었다.

同時兩立할 수 없음이 矛盾이다. 逸話에서 由來한다.

(楚人有鬻盾與矛者, 譽之曰, 吾盾之堅, 物莫能陷也.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或曰, 以子之矛陷子之盾, 何如. 其人弗能應也.4 夫不可陷之盾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也)

* 韓非子 難一.

 

 

25. 목적(目的)

바라거나 이룩하려고 하는 目標方向

 

物體의 모습에서 象形文이 나왔고, ''은 눈과 눈瞳子의 모습이고, ''은 과녁을 나타낸다. 따라서 目的'눈의 과녁'이고 中央''이라하여 그 곳을 화살로 맞치는 것을 '正鵠을 찌른다'고 하였다.

唐太宗生母 竇氏北周高官 竇毅의 딸이다. 大丈夫 氣質을 타고났다.

581年 隋나라 楊堅北周簒奪하자 北周靜帝彷徨하는 身世가 되었다.

 

는 사나이 大丈夫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恨歎하였다.

父親이 딸의 가 너무 세니 이를 꺾을만한 大丈夫 사위를 맞고 싶었다.

竇毅奇想天外方法으로 自己의 집 담에 孔雀 한 마리를 그려 놓고는 孔雀의 눈을 활로 맞히는 를 사위로 삼는다는 을 내 걸었다.

많은 貴族 子弟들이 挑戰했으나 正確히 맞치는 가 없었다.

消息은 마침내 李淵(뒷날 建國 始祖高祖)의 귀에도 들어갔다.

好奇心自身感發動한 그는 竇毅의 집으로 찾아가 自身挑戰 意思를 밝히고 두 발을 照準해 당겼는데 놀랍게도 孔雀눈에 한 발씩 그야말로 正鵠을 찔렀다.

竇毅約束대로 딸을 주었고 大丈夫 氣質의 그 夫君을 도와 唐 建國에 크게 奇輿하였다.

 

 

26. 무릉도원(武陵桃源)

陶淵明 詩人桃花源記俗世樂園 桃花境篇登場하는 別天地. 사람들이 和睦하고 幸福하게 살 수 있는 理想鄕

 

* 도화원기(桃花源記) - 도연명(陶淵明)

 

中國 東晉 湖南省 武陵의 한 漁夫平素 고기를 잡던 에서 처음 보는 支流發見하고 異常히 여겨 그 支流上流로 배를 몰아갔다.

막다른 곳에 이르자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고, 바위에는 한 사람 通過 程度의 구멍이 나 있었다.

기슭에 배를 묶어두고 그곳으로 들어갔더니, 桃花滿發하고 넓은 沃土田畓井然하고 사람들은 비단(緋緞) 웃을 입고 다녔으며 언뜻 보아도 豪華롭고 豊饒한 곳이였다.

사람들이 그를 보자 경이(驚異)롭다는 듯 환대(歡待)하며 서로 自己의 집으로 招待하려 했다.

漁夫가 한 집을 訪問하여 융숭(隆崇)待接을 받았으나, 이곳은 어디며 이들은 누구인지 스스로 꿈속 같아 궁금증을 물어보고선 그들의 對答에 더욱 놀랐다.

옛날 秦始皇暴政에 시달리다 못해 一家族避難을 하여 온 곳이라고 했다.

漁夫計算 해보니 600年 前의 일이였다.

그들은 如前히 젊고 활달(豁達)하였으며 富裕하고 평화(平和)롭고 幸福해 보였다. 마치 仙境에서 仙人들과 만난 것 같았다.

꿈속 같은 이곳의 하룻밤을 보내고 이튼날 떠나려고하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外部의 첫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많은 金銀寶貨膳物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付託을 했다.

이곳을 外部世界에 알리지 말아달라는 當付였다.

漁夫는 그 約束을 지키겠노라 하고 바위구멍을 지나 배로 돌아왔다.

배에 오르자 慾心發動하여 家族들과 다시 찾아오리란 心思支流를 따라 下流로 내려가며 곳곳에 나뭇가지를 꺾어 標示를 해 두고 歸家해선, 家族들을 불러 모으고 어제의 일을 이야기 하며 不遠間 함께 찾아가자고 다짐했다.

寶貨田畓을 사들이고 집도 새로 짓는 등 큰 富子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現實滿足치 못한 漁夫家族을 대리고 배를 저어 으로 나아갔으나, 그가 標示하여 둔 支流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平素 고기잡이하던 줄기만 펼쳐저 있었다.

 

(以後 많은 詩人墨客들이 武陵桃源을 노래했다.

우리나라에선 朝鮮時代 有名畵家 安堅'夢遊桃源圖'가 있고,

 

詩人 曹植를 남겼다

 

頭流山 兩端水를 녜 듯고 이제 보니

桃花뜬 맑은 물에 山影조차 잠겨 세라

아희야, 武陵이 어디 메뇨? 나난 옌가 하노라

 

 

27. 명경지수(明鏡止水) 明镜止水

맑은 거울과 고여 있는 잔잔한 물.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比喩

 

申徒嘉鄭子産과 함께 伯昏無人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어느 날, 鄭子産申徒嘉執政自身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고 抗意하자 申徒嘉가 말했다.

 

先生의 집안에 참으로 執政이 있는 것이 이와 같구려. 그대는 그대가 執政인 것을 대단히 여겨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라오.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앉지 않고, 티끌이 앉으면 밝지 못하다. 어진 사람과 오래 같이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들었소. 그런데 이제 그대가 크게 한 것이 바로 우리 先生인데, 오히려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잘못이 아니겠소?”

(申徒嘉曰, 先生之門, 固有執政焉如此哉. 子而悅子之執政, 而後人者也. 聞之曰, 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則無過. 今子之所取大者先生也. 而猶出言若是, 不亦過乎.)

 

이 이야기는 莊子 德充符에 나오는데,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앉지 않는다는 말에서 明鏡由來했다. 그리고 같은 에 있는 다음의 이야기에서 止水가 나왔다.

 

孔子弟子相季刑罰로 다리가 잘린 王駘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을 孔子에게 묻자 孔子가 다음과 같이 對答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自己의 얼굴을 비춰 보지 않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본다. 오직 멈추어 있는 고요한 물만이 (제 모습을 비춰 보려는 사람들을) 멈추게 할 수 있으니, 모두가 멈춘다.

(仲尼曰, 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 能止, 衆止.)”

王駘人品이 고여 있는 물과 같이 잔잔하고 맑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明鏡止水가 나왔다. 明鏡止水元來無爲境地를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28. 명모호치(明眸皓齒) 明眸皓齿

밝은 눈동자(瞳子)와 흰 이. 美人比喩하는 말이다.

 

明眸皓齒今何在 : 맑은 눈瞳子 흰 이는 只今 어디에 있는가

血汗遊魂歸不得 : 피땀으로 얼룩진 떠도는 靈魂 돌아오지 못하네

淸渭東流劍閣深 : 맑은 渭水쪽으로 흐르고 劍閣은 깊은데

去住彼此無消息 : 그대 가고 나는 머물러 서로 消息조차 없네

人生有情淚霑臆 : 人生살이 이 있으니 눈물은 가슴을 적시고

江草江花豈終極 : 가의 풀과 꽃은 如前히 옛 風光이네

黃昏胡騎塵滿城 : 저물녘 오랑캐 말들 일으키는 먼지 안에 자욱한데

欲往城南望城北 : 城 南쪽을 가려고 쪽을 바라본다

 

* 杜甫 哀江頭이다. 두보의 애강두(哀江頭)

 

나라 玄宗 末年, 玄宗楊貴妃에 빠져 國事를 돌보지 않고 楊國忠에게 政事一任했다. 楊國忠政權壟斷하면서 나라 全體混亂에 빠지게 되었고, 河東 · 范陽 節度使하던

安祿山楊國忠 打倒를 외치며 을 일으켰다. 洛陽叛亂軍에게 陷落되고, 首都 長安마저 陷落 危機하게 되자 72玄宗楊貴妃皇族, 그리고 側近 大臣들을 데리고 避亂길에 올랐다. 武裝千如 名親衛軍이 이들을 護衛했다.

 

다음 날, 長安에서 百數十 里 떨어진 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玄宗 一行隨行하던 親衛軍 將兵들은 굶주리고 疲勞에 지친 나머지 只今까지 참아 왔던 不滿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들은 事態가 이 地境에까지 이른 것은 모두 宰相 楊國忠의 잘못이라고 聲討하며, 楊國忠을 잡아 목을 베고 玄宗居處包圍했다. 그리고 소리 높여 楊貴妃誅罰要求했다. 兵士들의 憤怒에 찬 喊聲天地振動하자 玄宗도 어찌할 道理가 없었다. 玄宗은 눈물을 삼키며 楊貴妃에게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을 것을 命令했다. 玄宗太子 李亨에게 讓位하고 成都避身했다. 太子 李亨靈武에서 玄宗의 뒤를 이어 卽位하니 이이가 바로 肅宗이다.

 

當時 43의 늦은 나이로 冑曹參軍이란 尾官末職에 올라 그럭저럭 安定生活을 꾸려 가던 杜甫長安에서 脫走하여 여기저기 避亂을 다니고 있었는데, 肅宗卽位했다는 消息을 듣고 肅宗拜謁하기 해 달려가다가 途中叛軍捕虜가 되어 長安으로 押送되었다. 하지만 벼슬이 높지 않았고, 남달리 겉늙어 보이는 外貌 때문에 虛弱老人으로 여겨져 杜甫別 苦衷을 겪지 않고 長安에서 比較的 安全하게 머물 수가 있었다.

 

杜甫는 이때 長安東南쪽에 있는 曲江을 찾아가 옛 榮華를 그리며 슬픔에 젖어 '哀江頭' 를 지었다. 이곳은 當時王侯將相들이 자주 찾던 明勝地였고, 玄宗도 여기서 楊貴妃와 즐거운 때를 보낸 적이 있었다. 曲江은 큰 연못으로 曲江池라고도 하는데, 唐玄宗 때에 本格的으로 遊覽地開發되었다. 杜甫가 이 에서 쓴 明眸皓齒楊貴妃美貌表現한 말이다.

 

 

29. 명주암투(明珠暗投)

명주암투(明珠暗投)귀중한 것을 어두운 곳에 던진다.’라는 뜻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중용되지 않거나 귀중한 물건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가는 상황을 비유.

 

前漢景帝한테는 孝王이라고 하는 배다른 아우가 있었는데, 野心慾望化身 같은 人物이었다. 그는 太后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음을 奇貨露骨的으로 景帝後繼慾心 내었다. 景帝한테는 保衛를 물려 줄만한 아들이 없어 아직 太子冊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죽고 나면 여러 皇族에서도 自己承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太后에게 影響力行使 하도록 졸랐다.

그야 을 젖히고 누구로 하여금 代統을 잇게 하겠소.” 太后當然하다는 듯이 말했다. 또한 太后孝王의 앞길을 터 주기 遠謀深慮孝王大闕에 들어올 때마다 莫大金品을 주어, 그것을 資金으로 有名 人事들과 積極 사귀게 하는 여러 가지로 持援을 아끼지 않았다. 孝王自己 領地河南省으로 돌아가 宮闕增改築하고 鄒陽과 같은 名事들을 招請하여 盛大宴會를 여는 나름대로 基盤을 닦아 나갔다. 그러나 그가 名事들을 優待하는 것은 世上評判을 얻기 方便일 뿐이었고, 內心으로는 輕蔑하였다. 그들에게 큰 期待를 걸기보다는 羊勝 같은 策士緊密謀議하여 大闕諜者侵透시키는 等 中央情報 廉探에 더 血眼이 되어 있었다.

저래서는 될 일도 안 될텐데.’

 

念慮스러워진 鄒陽孝王에게 鎭重해야 한다고 機會 있을 때마다 忠告했으나, 孝王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反復되다 보니 鄒陽孝王의 눈밖에 나버렸고,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羊勝誣告에 걸려 投獄되고 말았다. 에 갇힌 鄒陽自己潔白主張하는 長文의 글을 올렸는데, 그 글 속에서 어둠 속에 던져진 밝은 구슬’ (明珠暗投)같은 自己 處地막히게 表現했다. 그 글을 보고 孝王도 느끼는 바가 있어서 鄒陽釋放했다. 便, 朝廷事情孝王이 바라는 바와 혀 다른 方向으로 흘러갔다. 爰盎 같은 有力重臣들의 積極的介入으로 다른 사람이 太子冊封되고 만 것이다.

이놈들이 나를 따돌렸겠다. 어디 두고 보자!”

 

孝王憤怒에 떨며 復讎를 꾀했다. 爰盎暗殺하여 을 풀려고 여러 刺客都城으로 올려 보낸 것이다. 刺客은 따로따로 出發했는데, 의 하나는 그나마 事理分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爰盎人格稱讚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그를 찾아가 實吐해버렸다.

相公하려는 들이 있으니 부디 몸操心하십시오.”

爰盎은 깜짝 놀라 나름대로 그에 對備를 했으나, 끝내 魔手하지 못하고 다른 刺客에게 被殺되고 말았다. 그런데 爰盎의 죽음은 죽음 그 自體로 끝나지 않았다. 消息于先 景帝에게 衝激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畢竟 孝王이 꾸민 兇計가 틀림없다!”

激怒景帝査問使派遣孝王嚴重追窮하고, 主謀者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要求했다. 그처럼 일이 커지자 孝王難堪했다. 羊勝宮闕 속에 깊이 감추고 어떻게든 辨明해서 넘어가려고 했으나 皇帝憤怒를 가라앉힐 方法이 없자, 하는 수 없이 羊勝自決하도록 하여 그 屍體査問使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査問使는 그 程度滿足하지 않고 더욱 分明事件 解明要求했다.

 

내가 鄒陽苦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오늘 이 逼迫하는구나!’

몹시 後悔孝王鄒陽을 불러 上客으로 待接하고, 難堪處地謀免할 수 있도록 智慧를 달라고 哀願했다.

主君께서 叮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늙은이가 都城에 한 올라갔다 와야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해 주시면 그 恩惠白骨難忘이오.”

上京鄒陽朝廷有力大臣들을 만나 孝王辯護하고, 景帝寵愛하는 王美人을 구워삶았으며, 太后를 찾아가 孝王積極 影響力行使해 달라고 要請했다. 鄒陽의 그런 全方位 努力結實을 맺어, 마침내 景帝孝王한 노여움을 풀고 査問使召還해 올림으로써 事件一段落지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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