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ㅁ-3 맹인보상~ )
21.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다. 全體를 把握하지 못하고 自己가 알고 있는 작은 部分만 固執하는 것을 比喩
옛날 印度의 어떤 王이 眞理에 對해 말하다가 代身을 시켜 코끼리를 한 마리 몰고 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장님 여섯 名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各者 코끼리에 對해 말해 보도록 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진 사람은 무같이 생겼다고 말했고, 귀를 만진 사람은 키같이 생겼다고 말했으며, 머리를 만진 사람은 돌같이 생겼다고 했고, 코를 만진 사람은 절굿공이같이 생겼다고 했으며, 다리를 만진 사람은 절구같이 생겼다고 했고, 등을 만진 사람은 平床같이 생겼다고 했고, 배를 만진 사람은 장독같이 생겼다고 했으며, 꼬리를 만진 사람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했다.
(其觸牙者卽言象形如蘆菔根, 其觸耳者言象如箕, 其觸頭者言象如石, 其觸鼻者言象如杵, 其觸脚者言象如木臼, 其觸脊者言象如床, 其觸腹者言象如甕, 其觸尾者言象如繩.)」
王은 그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臣下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諸各己 自己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眞理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
이 이야기는 《涅槃經》에 나온다. 이 寓話는 眞理를 알기 爲해서는 바른 눈과 깊은 智惠가 必要하다는 것을 말하기 爲한 것으로, 사람은 누구나 自己가 알고 있는 만큼만 理解하고 固執하려 한다는 事實을 깨우쳐 주고 있다.
22. 맥수지탄(麥秀之嘆)
亡國의 恨嘆. 世上이 바뀌어 옛 榮華도 허망(歔望)이 사라짐
中國 古代史의 最高의 暴君은 傑王과 紂王을 꼽는다.
傑王은 夏王朝 最後의 王이고, 紂王은 殷王朝 最後의 王으로 이들이 저지른 亂暴淫虐은 酒池肉林에서 極致를 이룬다.
紂王의 非行에 對해 忠諫을 서슴치 않은 三人의 忠臣으로 微子, 箕子, 比干이 있었다.
微子는 傑王의 同腹兄으로 絶望하여 他國으로 亡命하였고, 箕子도 亡命을 하여
自國의 羞恥가 부끄러워 거짓 狂人이 되었고, 王子 比干은 諫言타 죽임을 當했다.
훗날 周王朝의 世上에서 微子는 殷나라 血統을 잇는 뜻에서 宋나라의 王으로 冊封되었다. 箕子도 箕子朝鮮의 王으로 冊封되었다.
그 後 箕子가 周王朝의 서울로 가던 길에 옛 殷의 古都를 지나게 되었다.
일찍이 繁華했던 首都는 廢墟가 되었고, 荒廢한 宮殿자리는 農土가 되어 隔世之感을 느꼈다.
亡國의 恨에 눈물지며 한 篇의 詩를 남겼다.
麥秀漸漸兮~ 보리이삭은 무럭무럭 자라고
禾黍油油兮~ 벼, 기장은 光澤이 난다.
彼狡猾童兮~ 狡猾한 저 사람이
不與我好兮~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恨스럽구나.
無心한 歲月앞에 限없는 슬픔을 읊은 이 詩에서 나온 말이다.
* 史記 宋微子世家에.
23.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 (孟母三遷. 三遷之敎)
子息 敎育環境의 適地를 찾아 살다.
孟子는 어려서 父親을 여의고 偏母 膝下에서 成長했다.
처음 生活 場所는 共同墓地 附近인데 孟子는 또래 아이들과 모여 땅에 엎드려 大聲痛哭을 하거나 祭祀지내는 흉내며 葬禮式 놀이를 하였다.
孟子 어머니(仉氏. 성씨장)가 크게 놀라며 移徙를 갔는데 市場 附近이었다.
孟子는 또 다시 또래들과 市場 商人들의 장사 흉내를 하며 놀았다.
孟母는 이래선 않되겠다며 세 番째로 글房 附近으로 移徙를 했다.
이番에는 글房의 學童들이 글을 익히는 것을 흉내내기 始作했다.
놀면서도 秩序를 지키고 윗 어른을 보면 人事를하고, 글房 門틈으로 글을 배우고 익혔다.
孟母는 이 곳이야 말로 子息의 敎育環境의 最適地음을 다시 깨닫고 孟子를 敎育시켜 當代의 最高의 儒學者로 만들었다.
(昔孟子少時, 父早喪, 母仉氏守節. 居住之所近於墓, 孟子學而喪葬, 躃踊痛哭之事. 母曰, 此非所以居子也. 乃去. 舍市, 近於屠, 孟子爲學買賣屠殺之事. 母又曰, 亦非所以居子也. 繼而遷於學宮之旁. 每月朔望, 官員入文廟, 行禮跪拜, 揖讓進退. 盟子見了, 一一習記. 孟母曰, 此眞可以居子也. 遂居於此)
* 劉向의 列女傳에
(孟子~: BC 372~ BC 289 . 山東縣 鄒縣 出生. 이름은 軻. 字는 子與 또는 子車. 戰國時代 哲人. 大儒. 孔子의 仁의 思想을 發展시켜 仁義禮智가 人間의 本性이며 性善說을 主創하고 各國 諸侯들에게 王道政治를 說破했다)
24. 모순(矛盾) = (自相矛盾)
말이나 行動의 前後가 相衝
楚나라 사람이 防牌와 槍을 팔았는데
그가 防牌를 자랑할 때는 "이 房牌는 그 어떤 武器로도 뚫을 수 없다"라고 하고,
槍을 자랑할 때는 " 이 槍은 어떤 物件이라도 다 貫通시킨다"라고 떠들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當身의 槍으로 그 防牌를 뚫어보시오?"
라고 하자 無應答이었다.
同時에 兩立할 수 없음이 矛盾이다. 이 逸話에서 由來한다.
(楚人有鬻盾與矛者, 譽之曰, 吾盾之堅, 物莫能陷也.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或曰, 以子之矛陷子之盾, 何如. 其人弗能應也.4 夫不可陷之盾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也)
* 韓非子 難一에.
25. 목적(目的)
바라거나 이룩하려고 하는 目標나 方向
物體의 모습에서 象形文이 나왔고, '目'은 눈과 눈瞳子의 모습이고, '的'은 과녁을 나타낸다. 따라서 目的은 '눈의 과녁'이고 中央을 '鵠'이라하여 그 곳을 화살로 맞치는 것을 '正鵠을 찌른다'고 하였다.
唐太宗의 生母 竇氏는 北周의 高官 竇毅의 딸이다. 그 女는 大丈夫 氣質을 타고났다.
581年 隋나라 楊堅이 北周를 簒奪하자 北周의 靜帝는 彷徨하는 身世가 되었다.
그 女는 사나이 大丈夫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恨歎하였다.
그 女의 父親이 딸의 氣가 너무 세니 이를 꺾을만한 大丈夫 사위를 맞고 싶었다.
竇毅는 奇想天外한 方法으로 自己의 집 담에 孔雀 한 마리를 그려 놓고는 孔雀의 눈을 활로 맞히는 者를 사위로 삼는다는 榜을 내 걸었다.
많은 貴族 子弟들이 挑戰했으나 正確히 맞치는 者가 없었다.
이 消息은 마침내 李淵(뒷날 建國 始祖인 高祖)의 귀에도 들어갔다.
好奇心과 自身感이 發動한 그는 竇毅의 집으로 찾아가 自身의 挑戰 意思를 밝히고 두 발을 照準해 당겼는데 놀랍게도 孔雀의 兩 눈에 한 발씩 그야말로 正鵠을 찔렀다.
竇毅는 約束대로 딸을 주었고 大丈夫 氣質의 그 女는 夫君을 도와 唐 建國에 크게 奇輿하였다.
26. 무릉도원(武陵桃源)
陶淵明 詩人의 桃花源記의 俗世樂園 桃花境篇에 登場하는 別天地. 사람들이 和睦하고 幸福하게 살 수 있는 理想鄕
中國 東晉 湖南省 武陵의 한 漁夫가 平素 고기를 잡던 江에서 처음 보는 支流를 發見하고 異常히 여겨 그 支流의 上流로 배를 몰아갔다.
막다른 곳에 이르자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고, 바위에는 한 사람 通過 程度의 구멍이 나 있었다.
江 기슭에 배를 묶어두고 그곳으로 들어갔더니, 桃花는 滿發하고 넓은 沃土에 田畓은 井然하고 사람들은 비단(緋緞) 웃을 입고 다녔으며 언뜻 보아도 豪華롭고 豊饒한 곳이였다.
사람들이 그를 보자 경이(驚異)롭다는 듯 환대(歡待)하며 서로 自己의 집으로 招待하려 했다.
漁夫가 한 집을 訪問하여 융숭(隆崇)한 待接을 받았으나, 이곳은 어디며 이들은 누구인지 스스로 꿈속 같아 궁금증을 물어보고선 그들의 對答에 더욱 놀랐다.
옛날 秦始皇의 暴政에 시달리다 못해 一家族이 避難을 하여 온 곳이라고 했다.
漁夫가 計算 해보니 600年 前의 일이였다.
그들은 如前히 젊고 활달(豁達)하였으며 富裕하고 평화(平和)롭고 幸福해 보였다. 마치 仙境에서 仙人들과 만난 것 같았다.
꿈속 같은 이곳의 하룻밤을 보내고 이튼날 떠나려고하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外部의 첫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많은 金銀寶貨을 膳物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付託을 했다.
이곳을 外部世界에 알리지 말아달라는 當付였다.
漁夫는 그 約束을 지키겠노라 答하고 바위구멍을 지나 배로 돌아왔다.
배에 오르자 慾心이 發動하여 家族들과 다시 찾아오리란 心思로 支流를 따라 下流로 내려가며 곳곳에 나뭇가지를 꺾어 標示를 해 두고 歸家해선, 家族들을 불러 모으고 어제의 일을 이야기 하며 不遠間 함께 찾아가자고 다짐했다.
寶貨로 田畓을 사들이고 집도 새로 짓는 등 큰 富子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現實에 滿足치 못한 漁夫가 家族을 대리고 배를 저어 江으로 나아갔으나, 그가 標示하여 둔 支流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平素 고기잡이하던 江줄기만 펼쳐저 있었다.
(以後 많은 詩人墨客들이 武陵桃源을 노래했다.
우리나라에선 朝鮮時代 有名한 畵家 安堅의 '夢遊桃源圖'가 있고,
詩人 曹植은 詩를 남겼다
「頭流山 兩端水를 녜 듯고 이제 보니
桃花뜬 맑은 물에 山影조차 잠겨 세라
아희야, 武陵이 어디 메뇨? 나난 옌가 하노라」
27. 명경지수(明鏡止水) 明镜止水
맑은 거울과 고여 있는 잔잔한 물.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比喩
申徒嘉는 鄭子産과 함께 伯昏無人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어느 날, 鄭子産이 申徒嘉가 執政인 自身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고 抗意하자 申徒嘉가 말했다.
「“先生의 집안에 참으로 執政이 있는 것이 이와 같구려. 그대는 그대가 執政인 것을 대단히 여겨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라오.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앉지 않고, 티끌이 앉으면 밝지 못하다. 어진 사람과 오래 같이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들었소. 그런데 이제 그대가 크게 醉한 것이 바로 우리 先生의 道인데, 오히려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잘못이 아니겠소?”
(申徒嘉曰, 先生之門, 固有執政焉如此哉. 子而悅子之執政, 而後人者也. 聞之曰, 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則無過. 今子之所取大者先生也. 而猶出言若是, 不亦過乎.)」
이 이야기는 《莊子 德充符》에 나오는데,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앉지 않는다는 말에서 ‘明鏡’이 由來했다. 그리고 같은 冊에 있는 다음의 이야기에서 ‘止水’가 나왔다.
孔子의 弟子인 相季가 刑罰로 다리가 잘린 王駘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을 孔子에게 묻자 孔子가 다음과 같이 對答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自己의 얼굴을 비춰 보지 않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본다. 오직 멈추어 있는 고요한 물만이 (제 모습을 비춰 보려는 사람들을) 멈추게 할 수 있으니, 모두가 멈춘다.
(仲尼曰, 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 能止, 衆止.)”」
王駘의 人品이 고여 있는 물과 같이 잔잔하고 맑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明鏡止水’가 나왔다. 明鏡止水는 元來는 無爲의 境地를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28. 명모호치(明眸皓齒) 明眸皓齿
밝은 눈동자(瞳子)와 흰 이. 美人을 比喩하는 말이다.
明眸皓齒今何在 : 맑은 눈瞳子 흰 이는 只今 어디에 있는가
血汗遊魂歸不得 : 피땀으로 얼룩진 떠도는 靈魂 돌아오지 못하네
淸渭東流劍閣深 : 맑은 渭水는 東쪽으로 흐르고 劍閣은 깊은데
去住彼此無消息 : 그대 가고 나는 머물러 서로 消息조차 없네
人生有情淚霑臆 : 人生살이 情이 있으니 눈물은 가슴을 적시고
江草江花豈終極 : 江가의 풀과 꽃은 如前히 옛 風光이네
黃昏胡騎塵滿城 : 저물녘 오랑캐 말들 일으키는 먼지 城안에 자욱한데
欲往城南望城北 : 城 南쪽을 가려고 城의 北쪽을 바라본다
* 杜甫 哀江頭란 詩이다. 두보의 애강두(哀江頭)
唐나라 玄宗 末年, 玄宗은 楊貴妃에 빠져 國事를 돌보지 않고 楊國忠에게 政事를 一任했다. 楊國忠이 政權을 壟斷하면서 나라 全體는 混亂에 빠지게 되었고, 河東 · 范陽 節度使를 兼하던
安祿山이 楊國忠 打倒를 외치며 亂을 일으켰다. 洛陽이 叛亂軍에게 陷落되고, 首都 長安마저 陷落 危機에 處하게 되자 72歲의 玄宗은 楊貴妃와 皇族, 그리고 側近 大臣들을 데리고 避亂길에 올랐다. 武裝한 千如 名의 親衛軍이 이들을 護衛했다.
다음 날, 長安에서 百數十 里 떨어진 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玄宗 一行을 隨行하던 親衛軍 將兵들은 굶주리고 疲勞에 지친 나머지 只今까지 참아 왔던 不滿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들은 事態가 이 地境에까지 이른 것은 모두 宰相 楊國忠의 잘못이라고 聲討하며, 楊國忠을 잡아 목을 베고 玄宗의 居處를 包圍했다. 그리고 소리 높여 楊貴妃의 誅罰을 要求했다. 兵士들의 憤怒에 찬 喊聲이 天地를 振動하자 玄宗도 어찌할 道理가 없었다. 玄宗은 눈물을 삼키며 楊貴妃에게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을 것을 命令했다. 玄宗은 太子 李亨에게 讓位하고 成都로 避身했다. 太子 李亨이 靈武에서 玄宗의 뒤를 이어 卽位하니 이이가 바로 肅宗이다.
當時 43歲의 늦은 나이로 冑曹參軍이란 尾官末職에 올라 그럭저럭 安定된 生活을 꾸려 가던 杜甫는 亂을 避해 長安에서 脫走하여 여기저기 避亂을 다니고 있었는데, 肅宗이 卽位했다는 消息을 듣고 肅宗을 拜謁하기 爲해 달려가다가 途中에 叛軍의 捕虜가 되어 長安으로 押送되었다. 하지만 벼슬이 높지 않았고, 남달리 겉늙어 보이는 外貌 때문에 虛弱한 老人으로 여겨져 杜甫는 別 苦衷을 겪지 않고 長安에서 比較的 安全하게 머물 수가 있었다.
杜甫는 이때 長安의 東南쪽에 있는 曲江을 찾아가 옛 榮華를 그리며 슬픔에 젖어 '哀江頭' 를 지었다. 이곳은 當時의 王侯將相들이 자주 찾던 明勝地였고, 玄宗도 여기서 楊貴妃와 즐거운 때를 보낸 적이 있었다. 曲江은 큰 연못으로 曲江池라고도 하는데, 唐玄宗 때에 本格的으로 遊覽地로 開發되었다. 杜甫가 이 詩에서 쓴 ‘明眸皓齒’는 楊貴妃의 美貌를 表現한 말이다.
29. 명주암투(明珠暗投)
명주암투(明珠暗投)는 ‘귀중한 것을 어두운 곳에 던진다.’라는 뜻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중용되지 않거나 귀중한 물건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가는 상황을 비유.
前漢의 景帝한테는 孝王이라고 하는 배다른 아우가 있었는데, 野心과 慾望의 化身 같은 人物이었다. 그는 太后의 사랑을 獨차지하고 있음을 奇貨로 露骨的으로 景帝의 後繼를 慾心 내었다. 景帝한테는 保衛를 물려 줄만한 아들이 없어 아직 太子를 冊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兄이 죽고 나면 여러 皇族들 中에서도 自己가 承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太后에게 影響力을 行使 하도록 졸랐다.
“그야 王을 젖히고 누구로 하여금 代統을 잇게 하겠소.” 太后는 當然하다는 듯이 말했다. 또한 太后는 孝王의 앞길을 터 주기 爲한 遠謀深慮로 孝王이 大闕에 들어올 때마다 莫大한 金品을 주어, 그것을 資金으로 有名 人事들과 積極 사귀게 하는 等 여러 가지로 持援을 아끼지 않았다. 孝王은 自己 領地인 河南省으로 돌아가 宮闕을 增改築하고 鄒陽과 같은 名事들을 招請하여 盛大한 宴會를 여는 等 나름대로 基盤을 닦아 나갔다. 그러나 그가 名事들을 優待하는 것은 世上의 評判을 얻기 爲한 方便일 뿐이었고, 內心으로는 輕蔑하였다. 그들에게 큰 期待를 걸기보다는 羊勝 같은 策士와 緊密히 謀議하여 大闕에 諜者를 侵透시키는 等 中央의 情報 廉探에 더 血眼이 되어 있었다.
‘저래서는 될 일도 안 될텐데.’
念慮스러워진 鄒陽은 孝王에게 鎭重해야 한다고 機會 있을 때마다 忠告했으나, 孝王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反復되다 보니 鄒陽은 孝王의 눈밖에 나버렸고,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羊勝의 誣告에 걸려 投獄되고 말았다. 獄에 갇힌 鄒陽은 自己의 潔白을 主張하는 長文의 글을 올렸는데, 그 글 속에서 ‘어둠 속에 던져진 밝은 구슬’ (明珠暗投)같은 自己 處地를 氣막히게 表現했다. 그 글을 보고 孝王도 느끼는 바가 있어서 鄒陽을 釋放했다. 한便, 朝廷의 事情은 孝王이 바라는 바와 全혀 다른 方向으로 흘러갔다. 爰盎 같은 有力한 重臣들의 積極的인 介入으로 다른 사람이 太子로 冊封되고 만 것이다.
“이놈들이 나를 따돌렸겠다. 어디 두고 보자!”
孝王은 憤怒에 떨며 復讎를 꾀했다. 爰盎을 暗殺하여 憤을 풀려고 여러 名의 刺客을 都城으로 올려 보낸 것이다. 刺客은 따로따로 出發했는데, 그 中의 하나는 그나마 事理分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爰盎의 人格을 稱讚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그를 찾아가 實吐해버렸다.
“相公을 害하려는 者들이 있으니 부디 몸操心하십시오.”
爰盎은 깜짝 놀라 나름대로 그에 對한 對備를 했으나, 끝내 魔手를 避하지 못하고 다른 刺客에게 被殺되고 말았다. 그런데 爰盎의 죽음은 죽음 그 自體로 끝나지 않았다. 이 消息은 于先 景帝에게 衝激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畢竟 孝王이 꾸민 兇計가 틀림없다!”
激怒한 景帝는 査問使를 派遣해 孝王을 嚴重히 追窮하고, 主謀者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要求했다. 그처럼 일이 커지자 孝王은 實로 難堪했다. 羊勝을 宮闕 속에 깊이 감추고 어떻게든 辨明해서 넘어가려고 했으나 皇帝의 憤怒를 가라앉힐 方法이 없자, 하는 수 없이 羊勝을 自決하도록 하여 그 屍體를 査問使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査問使는 그 程度로 滿足하지 않고 더욱 分明한 事件 解明을 要求했다.
‘내가 鄒陽의 苦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오늘 이 逼迫을 當하는구나!’
몹시 後悔한 孝王은 鄒陽을 불러 上客으로 待接하고, 이 難堪한 處地를 謀免할 수 있도록 智慧를 달라고 哀願했다.
“主君께서 叮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늙은이가 都城에 한 番 올라갔다 와야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해 주시면 그 恩惠는 實로 白骨難忘이오.”
上京한 鄒陽은 朝廷의 有力한 大臣들을 만나 孝王을 辯護하고, 景帝가 寵愛하는 王美人을 구워삶았으며, 太后를 찾아가 孝王을 爲해 積極 影響力을 行使해 달라고 要請했다. 鄒陽의 그런 全方位 努力이 結實을 맺어, 마침내 景帝는 孝王에 對한 노여움을 풀고 査問使를 召還해 올림으로써 事件을 一段落지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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