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ㄷ-5 두주불사~ )
39. 두주불사(斗酒不辭)
말술도 辭讓하지 아니한다. 곧 酒量이 매우 크다.
『史記』에
[劉邦이 秦나라 首都 咸陽을 陷落시키고 秦나라 王 자영(子嬰)으로부터 降伏을 받았다는 事實을 알게 된 項羽는 忿怒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劉邦을 칠 覺悟를 다졌다. 劉邦 또한 項羽가 이를 갈고 있다는 걸 알고 項羽의 陣中에 나아가 解明했다. 이를 歷史冊에서는 鴻門之會이라고 한다.
劉邦의 辨明에 項羽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項羽의 謀臣 범증(范增)은 이를 好機로 項羽의 四寸同生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여 劉邦의 목숨을 노렸다. 劉邦이 危急한 處地에 있는 걸 알게 된 心腹 번쾌(樊噲)가 防牌와 칼을 들고 宴會場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衛兵이 가로 막았다. 一個 衛兵이 어찌 樊噲를 막을 수 있으랴.
衛兵을 쓰러뜨린 樊噲가 宴會場에 뛰어들어 項羽를 쏘아보았다. 項羽는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만지며 소리쳤다. "누군가" "沛公 劉邦의 隨行部下 樊噲입니다." 劉邦의 側近 張良이 對答해 주었다. "壯士로군. 이 者에게 술을 주도록 하라"
한 말들이 술盞이 그에게 주어졌다. 樊噲는 선 채로 단숨에 들이켰다. "이 者에게 生돼지 다리를 하나 갖다 주어라" 樊噲는 防牌에다 生돼지고기를 놓고 썰어 먹었다. 이를 본 天下의 項羽도 肝膽이 서늘해졌다. "宏壯한 壯士로군. 한 盞 더 하겠나" "죽음도 辭讓하지 않는 제가 어찌 술 몇 말을 辭讓하겠습니까(斗酒不辭)" 項羽는 더 以上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樊噲는 劉邦을 救해낼 수 있었다.
40. 두찬(杜撰)
두묵(杜默)의 作品. 오류(誤謬)가 많거나 전거(典據)가 분명치 않은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杜默이 詩를 짓는데 格律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 때문에 일이 格에 맞지 않는 것을 杜撰이라 했다.
(杜默爲詩, 多不合律. 故言事不合格者爲杜撰.)」
* 宋나라 王楙의 野客叢書에.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歐陽修와 함께 始作 活動을 했던 宋나라 때 詩人 杜默의 詩는 格律에 잘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文章의 格式이 잘 맞지 않는 境遇를 가리켜 ‘杜撰’, 即 ‘杜默의 作品’이라 하게 되었다. 그런데 王楙는 ‘杜’에 對해서 다음과 같이 敷衍說明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世俗을 살펴보니 杜田, 杜園과 같은 말이 있는데, 杜라는 것은 엉터리를 말하는 것이다.
(然僕又觀俗, 有杜田杜園之說, 杜之云者, 猶言假耳.)」
杜田이란 좋지 않은 밭, 杜園이란 볼품없는 庭園을 말한다. 이처럼 杜는 좋지 못한 것을 指稱할 때 붙는 接頭詞의 機能을 가지고 있다. 例를 들면, 自己 집에서 빚은 맛없는 술을 杜酒라고 한다. 이를 보면 王楙 自身도 杜撰이란 말의 正確한 出典을 確信할 수 없었던 것으로 追測된다.
明나라 풍몽룡(馮夢龍)의 《古今譚槪》와 淸나라 褚人獲의 《堅瓠集》에서도 ‘杜撰’의 內歷을 說明하고 있다.
「《道藏》 5千如 券은 《道德經》 두 券만 眞本이고, 나머지는 모두 唐末 五代 때 蜀의 道士 杜光庭이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後부터 다른 사람의 作品을 本뜬 僞作을 杜撰이라 부르게 되었다.」
杜光庭은 儒家와 道家에 正統했다. 四川에서 道士 노릇을 할 때 道敎를 널리 알리기 爲해 靈異記, 神仙感遇記, 墉城集仙記, 道德眞經廣聖義, 道門科範大全集, 廣成集 等 여러 券의 冊을 펴냈는데, 怪異한 이야기를 많이 引用하였으며, 佛經의 編纂 方法을 利用하여 道敎의 理論 體系를 完成시켰다. 道敎의 經典을 包含한 道敎와 關聯된 모든 書籍의 執大成인 《道藏》 5千如 券 가운데 《道德經》 두 券만이 眞本이고, 나머지는 모두 杜光庭이 編纂한 것이었다. 그중에 《老子化胡經》이란 冊이 있는데, 이 冊에는 老子가 五色의 神牛를 타고 函谷關에서 西域을 건너 唐나라의 僧侶 玄奘보다 千 年 前에 印度에 가 釋迦牟尼의 몸을 빌려 誕生했다는 內容이 들어 있다. 그 後로 사람들은 杜光庭의 冊처럼 根據도 없는 이야기를 멋대로 쓰는 것을 일러 ‘杜撰’이라 하게 되었다.
以上의 典籍에서 說明한 것처럼 格에 맞지 않거나 誤謬가 많거나 남의 著作을 베낀 것을 ‘杜撰’이라고 하는데, 이 中 어떤 것이 그 典據인지는 確實하지 않다.
41. 득롱망촉(得隴望蜀) 得陇望蜀
롱(隴)을 얻고 촉(蜀)을 바란다. 慾心이 끝이 없는 것을 比喩
漢나라 末年, 王莽이 帝位를 無血 簒奪하고 新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王莽의 無理한 改革政策으로 因해 政局은 混亂에 빠지게 되고, 各處에서 叛亂이 일어났다. 南陽 出身 豪族으로 한 王朝의 핏줄인 劉縯과 劉秀 兄弟들도 한 王朝의 復興을 내걸고 軍士를 일으켜 劉玄을 皇帝로 세워 更始帝라 稱했다. 이들은 農民들의 叛亂을 利用하여 昆陽 一帶에서 王莽軍을 擊滅하고 한나라를 復興시켰다. 後에 劉秀는 自立하여 河北의 反亂軍들을 平定하고 帝位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後漢의 創業者 光武帝이다.
當時에 큰 勢力으로는 光武帝 劉秀 外에도 隴西의 외효(隗囂), 蜀의 公孫述이 있었다. 隴의 隗囂는 光武帝 劉秀와 蜀의 公孫述을 놓고 가늠을 하다가 큰아들 隗純을 人質로 보내고 光武帝에게 歸服했으나, 얼마 後에 背叛하고 蜀의 公孫述에게 歸服하여 그의 臣下가 되었다. 光武帝는 隗囂와 公孫述을 討伐하기로 決定하고, 먼저 岑彭을 보내 隴을 攻略하게 했다. 隗囂는 西城, 益州 (四川省)으로 逃亡쳐 病死했고, 그의 아들 隗純이 降伏함으로써 隴 地方은 平定되었다. 隴이 平定되기 前, 光武帝는 隴을 攻略하고 있는 岑彭에게 隴을 攻略한 다음 卽時 蜀으로 들어가라고 指示하는 書信을 보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內容도 들어 있다.
「두 城이 陷落되거든 곧 軍士를 거느리고 南쪽으로 蜀나라 오랑캐를 쳐라. 사람들은 滿足할 줄 모르는 것을 미워한다지만 이제 隴을 얻게 되니 蜀을 바라게 되는구나. 每番 軍士를 出動시킬 때마다 머리가 희어진다.
(勅彭書曰, 兩城若下, 便可將兵南擊蜀虜. 人苦不知足, 旣平隴, 復望蜀. 每一發兵, 頭鬚爲白.)」
隴을 平定한 光武帝 劉秀는 大司馬 吳漢을 將帥로 삼아, 앞서 隴을 平定했던 岑彭의 部隊와 合流하여 蜀의 公孫術을 討伐하도록 했다. 岑彭은 公孫述이 보낸 刺客에게 暗殺을 當하고 말았지만, 吳漢이 進擊해 들어가 岑彭의 部隊와 合流하여 城都를 陷落시키고 公孫述을 誅殺했다. 이로써 天下는 모두 平定되었다. 光武帝는 洛陽을 首都로 定하고, 高祖의 祠堂을 세워 自身의 後漢 創業이 한 王朝의 復興이라는 事實을 闡明했다. 洛陽이 前漢의 首都 長安보다 東쪽에 位置하기 때문에 後漢을 東漢, 前漢을 西漢이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後漢書 岑彭傳》에 나오는데, 光武帝가 岑彭에게 내린 命令에서 ‘得隴望蜀’이 由來하여 慾心이 끝이 없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42. 득어망전(得魚忘筌) 得鱼忘筌
물고기를 잡고 나면 筒발을 잊어버린다.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目的을 達成하기 위해서 썼던 手段을 잊어버리는 것을 比喩
「筒발은 물고기를 잡는 데 必要한 것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곧 筒발을 잊어버린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爲한 것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어버린다. 말이란 생각을 傳하기 爲한 것인데 생각을 傳하고 나면 곧 말을 잊어버린다. 내가 어찌 이렇게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 莊子 外物에.
忘筌, 忘蹄, 忘言은 모두 是非와 善惡을 超越한 絶對 境地를 말한다. 이와 같이, ‘得魚忘筌’은 뜻한 바를 이룬 後에는 그 手段이나 科程에 對하여는 愛着을 갖지 말라는 意味인데, 背恩忘德 하다는 뜻으로도 使用되고 있다. ‘蹄’는 토끼를 잡는 올가미를 말한다
43.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낮은 곳으로부터 해야 한다. <自는 ‘∼로부터’라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順序가 있음을 比喩
「君子의 道란 이를테면 먼 곳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始作해야 하는 것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데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始作해야 하는 것과 같다. 《詩經》에 ‘妻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 하고, 兄弟는 뜻이 맞아 和合하며 즐겁구나. 너의 집안 和睦케 하며, 너의 妻子 즐거우리라.’라는 말이 있다. 孔子는 (이 詩를 읽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父母는 참 便安하시겠다.”
(君子之道, 辟如行遠, 必自邇, 辟如登高, 必自卑.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眈. 宣爾室家, 樂爾妻帑. 子曰, 父母其順矣乎.)」
이 이야기는 《中庸》에 나온다. ‘登高自卑’는 먼 곳을 갈 때는 가까운 곳부터 간다는 뜻의 ‘行遠自邇’라고도 한다. * 中庸(중용) 제15~16장
44. 등용문(登龍門)
出世하여 榮達하게 되는 길
後漢 桓帝 때 발호장군(跋扈將軍)이란 異名을 가진 橫暴한 外戚 梁冀가 除去되고 代身 禪超 等 所爲 五邪의 宦官이 暴虐을 恣行하기 始作했을때, 一部 正義派 官僚들은 이에 對해 果敢한 鬪爭을 展開해서 所爲 當錮의 禍 (外戚과 宦官의 싸움) 라는 大規模的인 彈壓을 불러 왔는데 이 抗爭의 中心이 되고 正義派 官僚 中의 領袖로 指目된 人物이 李膺이란 者다. 그를 元禮라고도 불렀는데 度邊將軍 等 軍職을 지내며 名譽를 쌓았고 한 때는 宦官의 미움을 사 一時 投獄되기도 했다.
宮廷은 宦官의 跋扈로 紀綱은 매우 紊亂하였으나 李膺만은 옳바른 官吏의 길을 걸어 太學의 靑年學生들이 볼때는 公職者로서의 龜鑑이 되었고 '天下의 模範은 李元禮'라 일컬었으며 新進官僚들은 그의 推薦을 받는 것을 대단한 名譽로 삼아 이 推薦 自體를 곧 登龍門이라 했다.
(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 ~선비로서 그의 認定을 받는 사람은 龍門에 올랐다고 했다)
* 龍門이란 黃河江 上流에 山西省과 陝西省의 境界에 있는 峽谷으로 一名 河津이라 했다. 一名 龍門이라 함에는 물살이 빠른 瀑布가 있어 어떠한 고기도 오를 수가 없었는데, 江과 바다의 큰 고기들이 龍門 아래에 수없이 모여드나 오르지 못하고, 萬若 여기를 오르면 곧바로 龍이 된다.
(黃河上流河津 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함에 있다.
따라서 龍門으로 오름은 대단한 難關을 뚫고 躍進의 機會를 得함이다.
中國에선 進士 試驗 通過를 立身出世의 첫 걸음으로 보아 登龍門이라 한다.
* 後漢書 李膺傳에.
45.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다, 글 읽기 좋음
唐宋八大家라고 하면 唐나라에선 두 사람뿐이고 나머지는 宋나라 사람이다. 唐의 文章家 두 사람 중 韓愈의 詩句에서 이 成語가 나온다. 그는 친구 사이인 또 한 사람 柳宗元과 함께 從來의 形式的이고 修辭的인 병문(騈文)(騈은 쌍말 변)에 反對하고, 素朴하되 自由로우며 聖人의 道를 담은 古文을 써야 한다고 主唱하여 中國 散文文體의 標準으로 남게 됐다. 柳宗元은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가득 책이 찬다는 汗牛充棟이란 말을 使用하여 둘 다 讀書 關聯 成語를 남긴 것도 特異하다.
韓愈에게는 아들 昶이 있었다. 讀書를 勸奬하기 爲해 ‘符讀書城南’이란 詩를 썼다. 符는 아들의 어릴 때 이름이고 城南은 別莊이 있던 곳이다. 처음과 뒷부분을 引用해보면.
‘木之就規矩 在梓匠輪輿 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 나무가 둥글고 모나게 깎임은 家具나 수레 만드는 木手에 달렸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들어있는 詩와 글들에 달려 있단다).’ 좋은 말이 이어지지만 끝部分은 ‘時秋積雨霽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 簡編可卷舒 / 철은 가을이라 장마 가시고, 선선한 바람 들판에 불어 오는데, 燈불 漸漸 가까이 할 만 하니, 冊 한 券 펼침이 어떻겠느뇨).’
規矩 (콤파스와 자) 梓匠輪輿는 分野別 木手를 말한다.
46. 득의망형(得意忘形)
뜻을 얻어 自身의 形體마저 잊어 버리다. 뜻을 이루어서 매우 기쁜 나머지 自己 自身을 잊는 것을 말한다. 或은 뜻을 이루어 우쭐거리는 것을 比喩하기도 한다.
三國時代 魏나라 思想家이자 詩人이며 竹林七賢 中의 한 사람인 阮籍 (210∼263年)은 晉 王朝에 대한 不滿이 아주 많았는데, 말로는 表現하지 못하고 가까운 벗인 竹林七賢과 함께 술을 마시며 詩를 짓고 거문고를 타면서 마음을 달랬다. 阮籍의 奇異한 삶에 對해서는 다음과 같이 記錄되어 있다.
「 阮籍은 容貌가 아주 俊秀하고 平凡하지 않게 생겼으며, 뜻이 크고 氣質이 奔放했다. 傲慢하고 自由自在하며 放縱하고 얽매이지 않았으며, 기쁘거나 怒한 感情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或은 門을 걸어 잠그고 冊을 읽으며 數個月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고, 或은 山에 오르거나 물가에 나가 여러 날을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많은 書籍을 두루 읽었는데, 특히 老子와 莊子를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고 휘파람을 잘 불었고 거문고를 잘 演奏하였으며, 뜻을 얻어 기쁜 境遇에는 自身의 形體도 잊어버렸다. 當時의 사람들은 그를 일러 미쳤다고 했으나, 오직 집안의 兄인 文業만은 恒常 그에게 歎服했으며, 自身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그를 奇異한 사람이라 稱했다.
(籍容貌瑰杰, 志氣宏放. 傲然獨得, 任性不羈, 而喜怒不形於色. 或閉戶視書, 累月不出. 或登臨山水, 經日忘歸. 博覽群籍, 尤好莊老. 嗜酒能嘯善彈琴. 當其得意, 忽忘形骸. 時人多謂之痴, 惟族兄文業每嘆服之, 以爲勝己. 由是咸共稱異.)」
이 이야기는 《晉書 阮籍傳)》에 나온다. ‘得意忘形’은 本來 지나치게 기뻐한 나머지 正常的인 狀態를 벗어난다는 말이었지만, 只今은 得意忘形하는 態度를 比喩하는 말로도 使用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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