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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ㅂ-3 백중지간~)

by 산산바다 2026. 3. 6.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3 백중지간~)

 

 

21. 백중지간(伯仲之間) 伯仲之间

첫째 과 둘째 사이. 勢力이 엇비슷해 優劣을 가릴 수 없는 것을 比喩

 

文人들이 서로 輕視한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다. 傅毅班固에게는 百仲之間일 뿐이다.(文人相輕, 自古而然. 傅毅之於班固, 伯仲之間耳.)

 

曹丕典論에 나오는 말로, 後漢文章家 傅毅班固文才가 엇비슷해 優劣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伯仲之間伯仲之勢라고도 한다.

 

傅毅(武仲)後漢 章帝 班固와 함께 蘭臺令史를 지냈다. 蘭臺令史宮中 藏書保管하던 蘭臺管掌하는 官職이다. 班固(孟堅)後漢 初期文學家이자 歷史家漢書를 지었다.

 

古代 中國에서 庶民들이 아들을 낳으면 一般的으로 · · · 順序에 따라 를 붙였다. 를 들면 漢高祖 劉邦劉季, 우리말로 하면 막내넷째程度號稱이다. 劉邦유 둘째라는 뜻의 劉仲이었다.

 

 

22. 병입고황(病入膏肓)

이 고황(膏肓)에까지 들다. 이 깊어져 더 以上 治療不可能한 것을 比喩하는 말이다. ‘心臟 , ‘橫隔膜 위를 말한다.

 

春秋戰國時代 晉나라 景公의 꿈에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땅에 닿도록 늘어뜨린 幽靈이 가슴을 치며 나타나 景公에게

나의 子孫들을 죽인 것은 不義한 짓이므로, 天帝하여 그대에게 을 주도록 許諾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하면서 大門寢室을 부수고 들어왔다. 景公이 무서워 居室하자, 幽靈은 다시 房門을 부수었다. 꿈에서 깨어난 景公이 무당을 불러 물어보니, 그 무당도 景公이 꾼 꿈을 딱 알아맞히며, 햇보리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景公은 그날로 이 들어, 사람을 보내 나라의 名醫를 모셔 오게 했다. 나라의 桓公나라와 좋은 關係維持하기 나라 最高名醫인 완()을 보내 주었다. 그런데 나라에 到着하기 , 景公은 또 以上한 꿈을 꾸었다. 꿈에 이 두 의 더벅머리 少年으로 변하더니 그 하나가 말했다. “그 사람이 용한 醫員이어서 우리들을 하게 할 텐데 어디로 逃亡하지?” 다른 하나가 대꾸했다. “의 위와 의 아래 사이에 가 있으면 우리를 어떻게 하겠어?” 醫員이 와서 景公診脈하고 말했다. “은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의 위와 의 아래 사이에 있어 을 놓아도 이르지 못하고, 을 써도 미치니 못하니 治療할 수가 없습니다.” 景公醫員名醫라고 致賀하며 을 내리고 돌려보냈다.

(公疾病, 求醫於秦, 秦伯使醫緩爲之, 未至, 公夢疾爲二豎子, 曰 彼良醫也. 懼傷我, 焉逃之. 其一曰, 居肓之上, 膏之下, 若我何. 醫至. , 疾不可爲也. 在肓之上, 膏之下, 攻之不可, 達之不及, 藥不至焉, 不可爲也. 公曰, 良醫也. 厚爲之禮而歸之.)

 

6, 景公이 새로 난 보리를 먹고 싶어하여 새 보리로 料理飮食에 올렸다. 景公은 무당을 불러 이를 보여 주고 거짓을 容恕치 않겠다며 무당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막 飮食을 먹으려고 하는데 배가 부풀어 올랐다. 景公便所로 달려갔다가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한편, 이날 새벽 景公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는 한 臣下正午 무렵 景公便所에서 업고 나온 後 殉死했다.

 

이 이야기는 左傳 成公 10에 나온다. 醫員의 말에서 病入膏肓由來했는데, 나쁜 習慣이 몸에 배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도 使用된다.

 

 

23. 보거상의(輔車相依)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가 서로 依支한다. 서로 도와서 依支하는 깊은 關係

 

中國春秋時代 末葉 紀元前 655年 晉나라 헌공(獻公 晉나라 )나라를 征伐하기 위해 나라 에게 나라 領土를 지나가도록 길을 빌려 줄 것을 要請했다.

나라에서 나라로 가려면 나라를 반드시 通過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에도 나라는 虞公(나라 )에게 膳物을 많이 주고 나라를 懲伐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라를 징벌(懲伐)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예 滅亡시킬 料量으로 나라 에게 眞貴膳物을 많이 보내 付託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나라에는 上大夫 宮之奇라는 賢人이 있어 나라 獻公의 속셈을 看破하고 虞公에게 하여 말했다.

길을 빌려줘서는 안 됩니다. 나라는 서로 依存해야 할 小國입니다. 俗談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하면 나라 亦是 禍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에 길을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

그러나 나라의 賂物을 받고 있는 虞王宮之奇의 말을 따르지 않고, 나라 通過許諾했다.

궁지기(宮之奇)災殃이 몸에 미칠 것을 두려워하며나라는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家族을 이끌고 나라에서 逃亡쳤다.

그 해 8나라는 나라를 攻擊하여 12滅亡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나라도 攻擊하여 滅亡시켜 버렸다.

 

 

24. 보원이덕(報怨以德) 报怨以德

으로써 怨恨을 갚다. 怨恨怨恨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作爲無爲하고, 일이 없음(無事)을 일하며, 맛이 없음(無味)을 맛본다. 큰 것은 작은 것이고, 많은 것은 적은 것이니 怨讐으로 갚는다. 어려운 것을 꾀하려면 쉬운 것부터 하고, 큰 것을 하려면 작은 것부터 한다. 天下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만들어지고, 天下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까닭에 聖人은 끝내 큰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히 큰일을 이룰 수 있다. 무릇 가볍게 承諾하는 일에는 반드시 믿음이 不足하며, 쉬워 보이는 일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어렵게 여기기 때문에 끝내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 老子 63.

 

 

25. 복룡봉추(伏龍鳳雛) 伏龙凤雏

엎드려 있는 과 봉황(鳳凰)의 새끼. 草野에 숨어 있는 훌륭한 人才比喩

 

諸葛亮은 어려서 父母를 여의고 叔父를 따라 荊州襄陽으로 避亂 왔다가, 叔父가 죽자 襄陽西쪽에 있는 隆中定着하여 隱居하면서 讀書歲月을 보냈다. 當時 劉備自身活動할 수 있는 根據地를 얻지 못하고 荊州에 와서 劉表에게 依託하고 있으면서 人才를 찾으러 다니기 始作했다.

 

어느 날 劉備司馬徽에게 時局해 묻자 司馬徽對答했다.

俗世儒生이 어찌 時務를 알겠소. 時務를 아는 것은 俊傑들인데, 이곳에도 伏龍鳳雛가 있습니다.” 伏龍鳳雛가 누구냐고 劉備가 묻자 司馬徽諸葛孔明龐士元이라고 對答해 주었다.

(劉備訪世事於司馬德操. 德操曰, 儒生俗士, 豈識時務. 識時務者在乎俊杰. 此間自有伏龍鳳雛. 備問爲誰, , 諸葛孔明, 龐士元也.)

 

이 이야기는 三國志 · 蜀書 諸葛亮傳裴松之 注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由來하여 伏龍鳳雛草野에 묻혀 알려지지 않은 人才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諸葛亮臥龍先生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臥龍鳳雛라고도 하며, ‘龍駒鳳雛로 쓰기도 한다.

 

 

26. 봉시장사(封豕長蛇) 封豕长蛇

큰 돼지와 긴 뱀. 돼지처럼 飮食을 탐내어 먹고 긴 뱀같이 음험(陰險)하다는 뜻으로, 慾心이 많고 殘忍한 사람을 比喩

 

伍子胥나라 平王에게 아버지와 殺害 當하자 나라를 滅亡시켜 復讐하겠다고 盟誓하였다. 伍子胥親舊申包胥私事로운 怨恨 때문에 祖國背叛하여서는 안 된다며, 萬若 伍子胥나라를 滅亡시킨다면 自身이 반드시 나라를 復興시키겠다고 盟誓하였다. 伍子胥나라에 亡命하여 闔閭를 도와 王位에 오르게 한 뒤, 나라를 攻擊하여 首都 ()까지 進擊하였다. 이때 平王은 이미 죽은 뒤였고, 平王의 아들 昭王脫出하여 逃亡했다. 伍子胥昭王을 잡지 못하게 되자, 代身 平王의 무덤을 파헤쳐 屍身300이나 매질을 함으로써 怨恨을 풀었다. 申包胥는 이 消息을 듣고 激憤하여 昭王을 찾아가서 나라를 復興시킬 計劃相議하였으나 힘이 없었다.

 

申包胥나라에 가 (昭王外祖父나라의 哀公에게) 救援兵要請하며 말했다. “나라는 貪慾스러운 큰 돼지와 긴 뱀같이 줄곧 中原諸侯國들을 侵略하여 삼키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侵害를 받은 것은 나라로, 나라의 君主는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풀이 우거진 들판에 있습니다. 使者로 보내어 事情을 알리게 하면서 오랑캐의 慾心이 없어 萬一 (나라가) 貴國과 이웃하게 된다면 國境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나라를 完全平定하지 못한 때를 틈타 께서 自己 몫을 차지하십시오. 萬一 楚나라가 하게 된다면 그 땅은 의 땅입니다. 萬一 王恩德으로 나라가 安定을 찾게 된다면 나라는 代代을 섬길 것입니다.” 나라 哀公은 사람을 보내 緩曲하게 拒絶하면서 말했다. “寡人은 그대의 말에 따르겠소. 于先 暫時 客館에서 쉬도록 하시오. 考慮를 해 본 에 다시 알려 주리다.” 申包胥對答했다. “우리 君主는 풀이 우거진 들판에 있으면서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있는데, 臣下 된 사람이 어찌 便安히 있겠습니까?” 그리고 朝廷의 담에 기대어 하기를 밤낮으로 繼續하며 이레 동안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버텼다. 나라 哀公無衣를 지어 읊자 申包胥는 아홉 이나 절을 한 에야 앉았다. 나라는 出兵하였다.

(申包胥如秦乞師, , 吳爲封豕長蛇, 以薦食上國, 虐始於楚. 寡君失守社稷, 越在草莽, 使下臣告急曰, 夷德無厭, 若鄰於君, 疆場之患也. 逮吳之未定, 君其取分焉. 若楚之遂亡, 君之土也. 若以君靈, 撫之, 世以事君. 秦伯使辭焉, , 寡人聞命矣. 子姑就館, 將圖而告. 對曰, 寡君越在草莽, 未獲所伏, 下臣何敢卽安. 立依於庭牆而哭, 日夜不絶聲, 勺飮不入口, 七日. 秦哀公爲之賦無衣, 九頓首而坐. 秦師乃出.)

 

마침 나라에는 闔閭의 아우가 政變을 일으켜 王位簒奪하는 일이 일어났다. 闔閭나라와 强化를 하고 退軍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左傳 定公 4에 실려 있는데, 申包胥가 말한 封豕長蛇飮食내는 돼지와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 뱀처럼 貪慾스러운 惡人比喩하는 말로 使用된다.

 

封豕封豨라고도 하는 一種의 큰 멧돼지로 桑林에 살았는데, 이빨이 길고 발톱이 銳利하며 힘은 소보다 센 兇測한 짐승이라고 한다. ‘長蛇修蛇라고도 하는 큰 뱀으로 洞庭湖에 살며, 길이가 자나 되고, 등에는 가시 같은 털이 돋았으며, 울음소리는 木鐸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런 怪獸한 이야기들은 淮南子山海經에 나온다.

 

本文에 나오는 上國春秋時代中原諸侯國들을 말하는 것으로, 中原 地域이 아닌 나라와 나라의 立場에서 相對的으로 부르는 號稱이다. 나라 哀公이 읊은 無衣詩經 秦風, 相對方을 도와 出兵하여 함께 戰爭을 치르겠다는 뜻을 含有하고 있는 이다. (秦庭之哭 同義語)

 

 

27. 부언시용(婦言是用) 妇言是用

婦女子의 말이 옳다고 여겨 쓰다. 女性의 말을 無條件 옳다고 여기고 잘 듣는 것을 말한다.

 

殷 王朝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나라의 마지막 걸왕(桀王)과 더불어 中國 歷史上 兩大 暴軍으로 有名하다. 紂王資質이 뛰어나고 識見이 높았으며, 頭腦明晳하여 남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聰明할 뿐만 아니라 勇力도 뛰어나, 猛獸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程度體力과 힘이 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資質을 쌓는 데 쓰지 않고, 自慢에 빠져 臣下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뛰어난 입담으로 自身非行合理化하거나 덮어 버렸다. 그는 天下自己보다 나은 사람은 存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酒色享樂해서도 아주 豪宕하여 妲己라는 女人에게 푹빠졌다.

 

妲己有蘇氏의 딸로서, 일찍이 紂王有蘇氏討伐했을 때 戰利品으로 獲得美女였다. 紂王妲己를 얻고 아주 기뻐했으며, 妲己의 아름답고 妖艶姿態에 빠져 그 歡心을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다. 紂王妲己하는 대로 宮中音樂을 더욱 官能的이고 奔放音樂으로 바꾸고, 首都 朝歌鹿臺라는 巨大金庫를 만들어 무거운 稅金으로 그 金庫를 채웠으며, 鉅橋라는 穀食 倉庫를 세워 穀食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沙丘離宮擴張하여 그 안에 禽獸 놓아길렀다. 妲己는 이 沙丘離宮히 좋아했다. 紂王은 또한 妲己을 받아들여 술로 채운 못과 고기 按酒를 매단 나무로 이루어진 酒池肉林을 만들어 많은 알몸의 男女들을 데리고 跌宕하게 놀았다.

 

奢侈歡樂에 빠진 生活不平을 하는 百姓들에게는 恐怖政治一環으로 불구덩이 위에 기름을 칠한 구리 기둥을 걸어 놓고 그 위를 걷게 하는 殘忍刑罰炮烙施行하였다. 忠臣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紂王에게 하였지만 大部分 죽임을 했거나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王子 比干하자 紂王聖人心臟에는 일곱 의 구멍이 있다고 하던데 比干도 그러한가 보자.”比干을 죽여 心臟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으며, 箕子에 갇혔다. 紂王은 이 밖에도 姙娠女子의 배를 가르고, 뼈가 시려 을 건너지 못하는 老人의 다리를 자르는 , 暴惡한 짓을 恣行하였다.

 

武王天命을 거스른 紂王에게 天命에 따라 天罰을 내린다는 名分을 가지고 쪽을 進軍繼續하여 郊外牧野에서 을 쳤다. 紂王70兵力動員해서 牧野로 나왔다. 두 나라의 軍隊는 드디어 乾坤一擲大決戰을 벌였다. 하지만 紂王暴政에 시달리던 나라 軍隊大部分 武王討伐鶴首苦待하고 있었으므로 降伏하거나 오히려 武器를 거꾸로 들고 나라 軍隊加擔해 버렸다. 나라 軍隊一敗塗地하고 말았고, 紂王牧野에서 逃亡首都 趙歌에 있는 鹿臺 위로 올라가 불을 지른 , 寶石으로 裝飾한 옷을 입고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로써 殷 王朝初代 湯王부터 紂王에 이르기까지, BC17世紀부터 BC11世紀에 이르는 600歷史를 마감했다. 이 이야기는 史記(殷本紀)(周本紀)에 나온다.

 

當時 武王軍士를 일으키면서 다음과 같이 紂王를 밝혀 말했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암탉은 새벽을 알리지 않으며,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한다고 했다. 只今 商나라의 은 오직 婦女子의 말만 옳다고 여겨서 따르고 있다. 祖上祭祀하여 (祖上에게) 報答하지 않고, 先王이 남기신 同生들을 버려 登用하지 않고 있다.

(古人有言曰, 牡鷄無晨, 牡鷄之晨, 惟家之索. 今商王受, 惟婦言是用. 昏棄闕肆祀, 弗答, 昏棄闕遺王父母弟, 不迪.)”

* 書經(서경) 第四 牧誓(목서) 1~3

이 이야기는 書經 · 周書 목서(牧誓)에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암탉과 婦女子는 바로 달기(妲己)를 가리킨다.

 

 

28. 부족치치아간(不足置齒牙間)

이빨 사이에 둘 것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말할 만한 가치가 없거나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라 始皇의 아들 胡亥2世 皇帝保衛에 오른 뒤 政事는 돌보지 않고 享樂放蕩에 빠져 있었으며, 옳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官吏들은 腐敗해지고, 社會極度混亂해졌으며, 百姓들은 搾取勞役에 시달려 죽을 地境이 되었다. 이때 陳勝이란 機會를 틈타 山東地方에서 農民들을 扇動叛亂을 일으키는 바람에 現地使者都城에 올라와 胡亥한테 報告했다.

農民들이 叛亂을 일으켜 나라를 뒤흔들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뭐라고? 네 이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天子의 앞에서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다니, 저놈을 當場 下獄하라!”

胡亥怒發大發하며 소리쳤다. 뒤이어 두 使者到着했는데, 그는 앞사람이 한 일을 알고는 이렇게 아뢰었다.

하찮은 盜賊떼가 騷動을 일으켰지만, 鎭壓될 것입니다. 陛下께서는 조금도 念慮하실 必要가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

胡亥洽足해서 두 使者에게는 을 내렸다. 그러나 事態漸漸 惡化되어 갔다. 時間이 지날수록 叛亂軍數效가 늘어나면서 勢力이 더욱 强大해졌고, 及其也 官軍들까지 合勢하기 始作했다. 그제야 뭔가 尋常찮다고 느낀 胡亥는 뒤늦게 重臣 會議召集하고 對策을 물었다. 임금이 비로소 事態를 똑바로 바라보기 始作했다고 여긴 重臣들은 躊躇하지 않고 아뢰었다.

臣下微賤百姓이나 叛逆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그들은 叛逆의 마음을 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한 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陛下. 軍隊派遣하여 鎭壓하도록 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胡亥顔色하게 했다. 自己 앞에서 叛逆이라는 말을 히 꺼내는 自體容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입에서 불號令이 떨어지려는 刹那, 叔孫通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다.

陛下, 여러 大臣들의 말은 틀렸습니다. 只今 天下統一되어 한 집을 이루고 있고, 各 郡을 허물었으며, 武器는 다시 使用하지 못하도록 녹여서 農器具를 만들었습니다. 令名하신 陛下께서 이처럼 健在하시고, 서릿발 같은 法令儼然히 살아 있으며, 百姓들은 各者 生業從使하며 넉넉한 生活을 누리면서 陛下恩德稱頌하고 있는데, 어느 어리석은 無嚴하게 叛亂을 꾀하겠습니까? 只今 若干騷亂을 일으키고 있는 盜賊들은 穀食을 훔치는 쥐새끼나 物件을 훔치는 개에 不過합니다. ‘이빨 사이에 둘 價値도 없는것들이지요. 只今 現地 官員들이 잡아다 하게 를 다스리고 있으니 조금도 念慮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듣고서야 顔色이 돌아온 胡亥御使로 하여금 叛逆을 말한 臣下들을 問招해 다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叔孫通에게 좋은 옷 한 벌과 緋緞 20下賜하고 博士任命했다. 叔孫通御殿을 물러나오자, 待期하고 있던 다른 大臣들이 險惡한 얼굴로 둘러쌌다.

아니, 事情을 뻔히 알면서 陛下 앞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阿諂을 늘어놓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大臣들이 異口同聲으로 꾸짖자, 叔孫通泰然히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여러분들이 只今 이렇게 한 몸으로 서 있을 수 있겠소? 아무튼 나는 더 以上 입 벌리고 있는 호랑이 앞에서 떨고 있고 싶지 않소이다.”

그리고는 當場 짐을 싸들고 薛地方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29. 부형청죄(負荊請罪) 负荆请罪

가시나무를 지고 을 주기를 하다. 自身의 잘못을 謝過하면서 處罰要求하는 것을 比喩

 

戰國時代, 나라 惠文王 때에는 藺相如將軍 廉頗가 있어 强國나라도 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藺相如元來 宦者令 繆賢舍人不過했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의 和氏璧 問題解決함으로써 一躍 上大夫에 올랐다.

 

그로부터 3年 後, 秦王趙王에게 澠池에서 會同要請했다. 趙王나라가 두려워 會同하고 싶지 않았으나 廉頗藺相如勸告하였다. 藺相如隨行했고, 廉頗國境까지 餞送했다. 廉頗下直하며 말했다. “께서 無事히 다녀오시기를 빕니다. 거리를 計算해 볼 때 會合을 마치고 돌아오시기까지 30을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30이 지나도록 돌아오시지 않으면 太子王位에 세워 나라의 野望을 끊어 버리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은 이를 許諾하고, 마침내 秦王澠池에서 만났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秦王이 말했다.

寡人趙王께서 音樂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彈奏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趙王演奏하자 나라의 御史가 앞으로 나와 某年 某月 某日 秦王趙王과 만나 술을 마시며 趙王에게 을 타게 했다.’記錄했다. 藺相如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趙王께서도 秦王께서 나라 音樂하다고 들었습니다. 컨대 盆缻演奏하여 서로가 즐기도록 해 주십시오.” 秦王여워하며 許諾하지 않았다. 藺相如盆缻를 받쳐 들고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秦王에게 했다. 秦王를 두들기려 하지 않았다. “大王의 거리는 다섯 걸음도 안 됩니다. 제 목의 피로써 大王을 적실 수도 있습니다.” 藺相如脅迫左右의 사람들이 藺相如를 칼로 치려고 했다가 藺相如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자 모두 뒤로 물러났다. 秦王은 마지못해 를 한 차례 두들겼다. 藺相如나라의 御史를 불러 某年 某月 某日 秦王趙王를 쳤다.’고 적게 했다. 暫時 後 秦나라 臣下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나라가 열다섯 을 바쳐 秦王祝福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藺相如도 맞받아쳤다. “나라의 咸陽을 들어 趙王祝福해 주셨으면 하오.” 秦王酒席할 때까지 나라를 누를 수가 없었다. 나라 亦是 軍隊配置하여 나라에 對備했으므로 나라도 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藺相如는 이 功勞上卿任命되었다.

 

澠池會同 後 藺相如廉頗의 윗자리에 오르자 廉頗는 매우 不快했다. “나는 나라의 將軍으로 戰爭에 큰 이 있었다. 그런데 藺相如는 겨우 입과 혀를 수고롭게 했을 뿐인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다. 게다가 相如本來 賤出身이다. 부끄러워 도저히 그의 밑에 있을 수 없다.” 廉頗公公然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녔다. “藺相如를 만나면 期必侮辱을 주고 말겠다.” 이 말을 해 들은 藺相如廉頗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藺相如朝會 때마다 하고 나가지 않았다. 廉頗地位 다툼을 하지 않기 해서였다. 藺相如外出을 했을 때 멀리 廉頗가 오는 것이 보이면 수레를 끌고 해 숨어 버리곤 했다.

 

藺相如舍人들이 不平을 쏟아 놓았다. “저희가 親知를 떠나 當身을 모시는 것은 當身의 높은 義氣欽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當身廉頗同列에 있으면서 廉頗가 나쁜 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그가 두려워 피해 숨으시며 히 두려워하십니다. 이는 平凡한 사람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이거늘, 하물며 將軍이나 宰相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저희는 不肖하여 떠나갈까 합니다.” 藺相如가 이들을 挽留하며 물었다. “그대들이 볼 때 廉將軍秦王 中 누가 더 무서운 사람인가?” “秦王만 못하지요.” “그런 秦王威嚴相對하여 나는 宮廷에서 그를 꾸짖고 그 臣下들을 되게 했다. 내 비록 魯鈍하나 어찌 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나라가 히 우리 나라를 攻擊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只今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게 되면 形勢로 보아 둘 다 無事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國家한 것을 앞세우고 私事로운 怨恨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해 들은 廉頗는 웃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藺相如의 집 앞에 이르러 謝罪했다. “卑賤한 사람이 將軍께서 이토록 寬大한 줄을 알지 못했소.” 두 사람은 마침내 和解를 하고 刎頸之交를 맺었다.

(廉頗聞之, 肉袒負荊, 因賓客至藺相如門謝罪. , 鄙賤之人, 不知將軍寬之至此也. 卒相與驩, 爲刎頸之交.)

 

이 이야기는 史記 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데, 廉頗가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藺相如를 찾아갔다는 말에서 負荊請罪由來했다. ‘肉袒負荊이라고도 한다.

 

藺相如가 이처럼 澠池會同에서 始終一貫 秦王壓倒할 수 있었던 것은, 勿論 基本的으로는 藺相如能力이 뛰어난 德分이기도 했지만, 팽팽하게 形成各國 間對決 構圖를 잘 利用했기 때문이었다. 當時 秦나라는 나라를 칠 計劃으로 主力部隊를 이미 國境으로 移動시킨 狀況이었다. 나라가 安心하고 나라를 치기 해서는 나라를 묶어 둘 必要가 있었기 때문에 秦王一旦 趙나라의 氣勢를 꺾어 놓으려고 會同要請했던 것이고, 秦王의 생각과 計劃을 꿰뚫고 있던 藺相如는 이런 狀況最大利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나라 이 탄 絃樂器이고, 나라의 樂器盆缻打樂器 축에 들지도 못하는 打樂器이다. 나라는 戎狄國境을 마주하고 있는 西쪽의 偏僻地域으로 아직은 文化發達하지 않았으며, 音樂水準하기에는 아직 距離가 있었다. 藺相如文化的 自尊心을 건드려 相對方壓倒한 것이다. 나라의 水準 낮은 音樂해서는 秦始皇天下統一하는 데 큰 을 세운 李斯諫逐客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大抵 甕器를 치고 장군()을 두드리며, 을 타고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우우 하고 노래하며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眞正나라의 소리(音樂)입니다.

(夫擊瓮叩缶, 彈箏搏髀而歌呼嗚嗚快耳者, 眞秦之聲也.)

 

여기서 말하는 장군이 바로 盆缻, ‘()’라고도 한다.

不足置齒牙間은 이빨 사이에 두기에 充分하지 못하다는 말로 다시 말해 입에 올릴 價値도 없다는 뜻이다.

 

 

30. 부화뇌동(附和雷同)

우렛소리에 맞춰 함께하다. 自身의 뚜렷한 所信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너의 容貌를 바르게 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반드시 恭遜히 하라. 다른 사람의 主張하여 自己主張인 것처럼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自己의 생각 없이 無條件 따라 하지 말라. 반드시 옛것을 받고 先王의 일을 본받아라. (正爾容, 聽必恭. 毋勦說, 毋雷同. 必則古昔, 稱先王.)

 

이 이야기는 禮記 曲禮에 나오는데, ‘雷同鄭玄하면 다음과 같다.

 

우레가 울리면 萬物同時에 이에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의 말은 마땅히 自己에게서 나와야지 그렇게(우레에 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雷之發聲, 物無不同時應者. 人之言當各由己, 不當然也.)

 

附和雷同元來 雷同이었는데, 附和라는 말이 添加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을 論語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孔子가 말했다. “君子和合하지만 附和雷同하지 않고, 小人附和雷同 하지만 和合하지 않는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論語 子路. 論語(논어) 13. 子路(자로)

 

君子崇尙하고 남을 自己 自身처럼 생각하여 和合하지만, 小人利益을 따져 利害關係가 맞는 사람끼리 行同하므로 사람들과 和合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雷同附和’, ‘附付雷同이라고도 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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