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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ㅅ-1 사가망처~ )

by 산산바다 2026. 3. 6.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1 사가망처~ )

 

 

1. 사가망처(徙家忘妻)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린다. 精神이 나간 사람처럼 所重한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매우 重要한 일을 놓쳐버리는 것을 比喩

 

* 孔子家語 賢君篇 .

中國 春秋時代 魯나라의 王 哀公 (在位 BC 494BC 468)

'移徙를 할 境遇 아내를 잊어버리는 (徙家忘妻)' 사람도 있다고 한 孔子 (BC 552BC 479)의 말처럼 그만큼 얼빠진 사람이 있는지 孔子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孔子"夏王朝의 마지막 桀王나라 最後紂王 (BC 1154BC 1111)暴惡政治를 한 임금의 典型으로 淫蕩한 짓을 함부로 하고 不道德하였으며 百姓들의 生活國家重大한 일을 돌보지 않고 惡毒行爲를 일삼았다.

百姓들을 抑壓하였으며 賢臣들의 諫言을 듣지 않고 그들을 追放하였다.

暴君이었던 桀王紂王繼續 惡行을 저질러 나라를 치고 나라와 百姓, 自己 自身도 잊어버렸다"라고 對答했다.

 

 

2. 사공명능 주생중달(死孔明能 走生仲達)

죽은 孔明이 산 仲達逃亡하게 했다

 

나라에 諸葛孔明이 있다면, 나라에는 司馬懿가 있었다.

그들은 軍師로서 뛰어난 智略을 지닌들이었다.

司馬懿仲達이다. 司馬懿도 뛰어났지만, 諸葛孔明에게는 相對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늘 戰爭에서 하고 물러나기만 했다. 그렇기에 司馬懿諸葛孔明하여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司馬懿 仲達天文을 아는 이기에, 天氣로서 諸葛孔明이 죽을 걸 알았다.

그래서 孔明이 죽으면 戰爭을 벌일려고 모든 準備를 갖추었다.

天氣孔明이 죽었음을 알아낸 仲達後退의 길에 서있는 攻擊했다.

그런데 仲達軍士攻擊하는 가운데, 저 멀리 나라 陣營에서 孔明四輪車에 앉아 指揮하며 달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氣怯을 한 司馬懿는 앞뒤도 재보지 않고 自身軍士陣營으로 逃走하였다.

 

나라 軍士들은 仲達을 보면서 그만 鎭靜하라고 하고, 仲達自身의 머리가 있는냐고 물어보았다. 나라는 이를 契機安全하게 後退하였고, 日 後 仲達孔明이 죽었고 自身이 본 것은

孔明死前計策으로 만든 木人이라는것은 알고 歎息했다.

以後 蜀에서는 "죽은 孔明이 산 仲達逃亡치게 했다(死孔明能 走生仲達)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由來된 말이 死孔明能 走生仲達이다.

* 三國志 .

 

 

3. 사기종인(舍己從人) 舍己从人

自己를 버리고 남을 따르다. 自身以前 行爲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착한 行實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想考하여 이르되

文明四海에 펴시고 를 이으시다”. 에게 말하였다.

임금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그 임금됨을 어렵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며, 臣下는 그 臣下됨을 어렵게 생각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政事는 잘 다스려지고 百姓들은 崇尙하기에 힘쓸 것입니다.”

 

그러자 임금이 말했다.

그렇소. 眞實로 그렇게 하면 좋은 말이 숨겨질 리가 없고, 어진 이가 草野에 묻혀 지내지 않게 되어 온 나라가 다 平安하게 될 것이오. 여러 사람에게 議論하여 나를 버리고 남을 좇으며, 依支할 곳 없는 이를 虐待하지 않고 困窮한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 일들은 오직 임금된 사람만이 할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오.”

(帝曰, . 允若玆, 嘉言罔攸伏, 野無遺賢, 萬邦咸寧. 稽於衆, 舍己從人, 不虐無告, 不廢困窮, 惟帝時克.)

 

이 이야기는 書經 大禹謨에 나온다. ‘舍己從人孟子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孟子가 말했다. “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 주면 기뻐하였고, 임금은 옳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 偉大임금께서는 더 훌륭하셨으니, 남과 더불어 했다. 自己를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에게서 하여 하기를 즐겼다. 農事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 잡는 일에서부터 帝王이 되기까지 남에게서 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남에게서 하여 하는 것, 이것이 남과 더불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에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는 것보다 더 重要한 일은 없다.”

(孟子曰, 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 禹聞善言則拜. 大舜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 樂取於人以爲善. 自耕稼陶漁以至爲帝, 無非取於人者. 取諸人以爲善, 是與人爲善者也. 故君子莫大乎與人爲善.)

* 孟子 公孫丑上.

 

成語는 우리나라의 典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李滉 先生이 말했다. “自身을 버리고서 남을 좇지 못하는 것은 學者의 큰 이라. 天下義理는 끝이 없으니 어찌 自己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리오. 사람의 質問이 있으면 얕고 가까운 말이라도 반드시 마음에 두고서 조금 있다가 이를 對答하고, 묻는 말에 바로 應對하지 말지니라.

”(先生曰, 不能舍己從人, 學者之大病. 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人有質問, 則淺近說, 必留意, 少間而答之, 未嘗應聲而對.) * 退溪集.

 

 

4. 사마난추(駟馬難追)

말이란 한 뱉으면 駟馬가 따라갈 수 없을 程度로 빠른 것이니, 操心을 하라는 뜻이다.

 

類似語

* 駟不及舌~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所聞은 빨리 퍼지니 말을 삼가하라는 뜻.

* 言飛千里~발 없는 말이 千 里 간다는 뜻.

* 耳屬于垣~담에도 귀가 달려 있으니 말을 삼가라는 뜻.

* 牆有耳~에 귀가 있다는 말로, 말을 操心하라는 뜻.

 

* 五燈會 古尊宿語錄

中國 俗談'한 마디의 말이라도 한 입을 떠나면 네 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 (一言旣出, 駟馬難追)라는 말이 있다.

'駟馬'는 말 네 이 끄는 수레로써 엄청나게 빠른 것을 比喩한다.

 

'駟馬難追'는 이런 駟馬가 따라갈 수 없을 程度(難追)로 빠른 것이니, '操心을 하라'는 뜻이다.

駟馬難追五燈會元, 古尊宿語錄, 琵琶記, 醒世恒言, 增廣賢文 等引用되어 널리 膾炙하는 成語이다.

 

韓國 俗談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여, 操心, 操心警戒하고 있다. 잘못 쓴 글은 지우면 그만이지만 말이란 한 내뱉으면 주어 담을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明心寶鑑에도 '입과 혀는 와 근심을 불러들이는 이고, 몸을 치는 도끼와 같다(口舌者禍患之門 滅身之斧也)' 라느니, '입은 사람을 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 될 것이니, 입을 다물고 혀를 감추면, 몸이 便安하고 어디에 있든지 安穩할 것이다.

(口是傷人斧 言是割舌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라 하여, 亦是 늘 말操心을 해야 한다고 强調하고 있다.

는 여기서는 韻字上 本音''로 읽어야 하고, 뜻은 '便安하고 조용하다' '安穩하다'

 

便, 鄧析子典據로 말하는 이도 있는데

(鄧柝子說一言而非駟馬難追一言而急駟馬不能及.)

事實表現이 조금 다르다. 鄧析子에는 '一聲而非駟馬勿追一言而急駟馬不及.'로 되어 있다.

 

 

5. 사단칠정(四端七情)

四端人間本性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卽 先天的 · 道德的 能力을 말하며, 七情人間本性事物하면서 表現되는 人間自然的感情을 말한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실마리라 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로움의 실마리라 하며, 辭讓하는 마음을 의 실마리라 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智慧의 실마리라 한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이 말은 孟子 公孫丑 上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四端由來했다. ‘七情禮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을 일러 사람의 感情이라고 하는가. 기뻐하고(), 여워하며(),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사랑하고(), 미워하며(), 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된다.

(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不學而能.)

* 禮記 禮運.

 

四端· · · 德目關聯倫理的 範疇하고, 七情人間感情總稱하는 人性論範疇한 것으로, 元來는 서로 다른 脈絡에서 使用되던 말이었다. 그러다가 나라 때 性理學이 일어나면서부터, 이 두 槪念各各 人間 心性發現되는 過程에서 道德的 性格을 띠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相反되는 意味를 가지는 것으로 認識되어 對照槪念으로 쓰이게 되었다. , 性理學에서는 하늘의 理致와 사람의 心性一致한다고 하는 天人合一命題 아래 宇宙 自然生成變化說明하기 理論的 바탕으로 理氣論發達시켰고, 다시 이를 根據로 하여 人間 心性發生 過程과 그 作用探究함으로써 人間道德的 實踐哲學的 根據解明하고자 하였는데, 過程에서 四端七情問題自然스럽게 浮刻되었다.

 

四端七情論中國에서는 그다지 比重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朝鮮에서는 四端七情發生 過程二氣論的으로 解明하는 問題重要關心事로 떠올라 大規模 論爭으로 展開되었다. 論爭李滉奇大升 사이에서 처음 發生하였고, 나중에 李珥成渾 사이에서 다시 論議됨으로써 새로운 局面으로 展開되었다. 過程에서 爭點이 되었던 것은 四端하는가 아니면 하는가 하는 問題, 果然 發動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두 가지 問題였다. 16世紀 末發生하였던 이 論爭當代著名性理學者들에 主導되었을 뿐 아니라, 以後 學界 全體問題擴大되어 19世紀 末에서 20世紀 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性理學者가 이 問題를 다루었을 程度朝鮮 儒敎發展 過程에 큰 影響을 미쳤다.

 

 

6. 사면초가(四面楚歌)

四面敵兵으로 둘러쌓인 境遇無援孤立境遇

 

나라(BC 221~BC 206)末葉 政治腐敗民生苦가 날로 深刻해 지자 뛰어난 人物들이 곳곳에서 出現했다. 有名 人物로는 劉邦, 項羽, 吳廣, 陳勝 等이다.

滅亡 뒤엔 漢王劉邦 (BC247~BC195)楚覇王項羽 (BC232~BC202)勢力만이 가장 컸고 서로 天下 覇權을 노렸기에 끊임없는 楚漢相爭 時代가 열렸다.

進退를 거듭하던 戰爭漢高祖 5에 이르러 劉邦勢力優位하고 項羽 部隊를 해하(垓下)로 몰아 包圍했다.

8年間 70如回 싸움을 치룬 楚覇王 項羽威風無雙한 젊은 將帥였으나 이때만은 劉邦數十萬 大軍에 겹겹이 包圍身世였다.

(韓信30, 劉邦20. 黥布劉賈7, 彭越3萬 等 60萬 大軍 : 項羽10萬 軍士의 싸움)

劉邦敵軍을 얕잡아 强攻策을 쓰는 代身張良陳平計策을 받아들여 心理戰으로 兵士들에게 밤마다 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軍糧米마저 끊긴 가운데 項羽兵士들의 士氣는 끝없이 墜落脫營兵增加하고 戰意喪失해 갔다. 項羽나라 땅이 이리도 빨리 占領되다니 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項王軍壁垓下, 兵少食盡, 漢軍及諸侯兵圍之數量, 夜聞漢軍四面皆楚歌, 項王乃大驚曰, 漢皆已得楚乎, 是何楚人多也)

一世英雄인 그도 戰意가 꺾기어 술로 괴로움을 달랬다. 傾國之色愛妾 虞姬를 옆에두고 義憤卽興詩로 슬피 노래한다.

"力拔山氣蓋世도 끝이 났구나. 駿馬도 멈추었다. 어찌할꼬! 虞 美人이여! ! 虞 美人이여! 이를 어찌한담!"

帳幕은 슬픔에 쌓이고, 愛妾答歌"이미 勝北는 끝나고 四面楚歌이거늘 어찌 苟且히 살길 바라리오. 將軍과 함께하리다"

項羽暫時 생각에 잠겼다. 8軍士를 이끌고 江東에서 西쪽으로 건널때는 士氣衝天하여 곧장 天下를 휘어잡고도 남을만 하였는데 只今 이게 무슨 꼴이람... 悲憤慷慨하며 三枝槍을 비껴들고 800如 軍士指揮해 밤새 激戰을 벌이며 包圍網을 뚫고 으로 逃亡쳤다. 그러나 捲土重來抛棄하고 끝내 和縣 烏江浦에서 自決하고 말았다.

 

 

7. 사문난적(斯文亂賊) 斯文乱贼

儒敎를 어지럽히는 盜賊. 敎理에 어긋나는 言動으로 儒敎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孔子땅에서 危殆로운 處地에 빠졌을 때 말하였다. “文王이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文化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萬一 하늘이 將次 文化를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은 사람이 이 文化參與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文化를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子畏於匡, ,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 論語(논어) 9. 子罕(자한)

이 이야기는 論語 子罕에 나온다. 孔子弟子들과 함께 匡 地域을 지날 때 사람들이 孔子陽虎誤認하고 치려고 했다. 孔子는 이런 危機 속에서도 文王周公이 남긴 學問思想自身이 이어받아 天命自己에게 있으므로 危險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確信했는데, 여기에서 斯文由來했다.

 

亂賊叛亂을 일으키는 臣下父母에게 悖逆子息이란 뜻의 亂臣賊子를 말한다.

 

나라 때 나타난 朱子學, 性理學高麗 末韓半島傳來되어 朝鮮建國理念이 된 , 朱子學朝鮮文化, 思想, 政治 等 社會 全般支配하게 되었다. 當時 明나라 때에 大陸에서는 朱子學의 지나친 哲理主義反對하여 知行合一强調하는 陽明學登場했다. 陽明學朝鮮에 들어와 當時 江華島流配되어 있던 一部 沒落宗親들에게 받아들여져 江華學派形成되었고, 그들의 學風朱子學挑戰하는 새로운 學問으로 浮上하게 된다. 性理學者들은 이런 陽明學者들을 儒學을 어지럽히는 무리들로 規定했는데, 여기에서 斯文亂賊由來했다. 이 말은 中國에서는 使用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使用된다.

 

 

8. 사분오열(四分五裂)

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찢어지다. 意見이나 地域이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갈라지거나 勢力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弱化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戰國時代 中期, 나라의 勢力漸次로 커지면서 나머지 여섯 나라를 壓迫하기 始作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꼈던 나머지 여섯 나라는 나라에 對抗하기 相互 間外交的同盟 關係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主導한 것이 바로 合從策主張했던 蘇秦이었다. 蘇秦六國을 돌면서 遊說를 하고 다녔는데, 中 魏나라의 哀王에게는 다음과 같은 理由를 들어 合縱主張하였다.

 

나라는 그다지 넓지도 않고, 兵士30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地勢便便하여 四方에서 諸侯들이 쳐들어오면 이를 막을 만한 이나 要塞도 없는, 그야말로 戰爭터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쪽에는 나라, 쪽에는 나라, 쪽에는 나라, 西쪽에는 나라가 있어 虎視眈眈 魏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쪽으로 나라와 聯合하고 나라와는 聯合하지 않으면 나라가 쪽을 치고, 쪽으로 나라와 聯合하고 나라와는 聯合하지 않으면 나라가 쪽을 치며, 나라와 聯合하지 않으면 나라가 西쪽을 치고, 나라와 하지 않으면 나라가 쪽을 攻擊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四分五裂라고 하는 것입니다.

(魏南與楚而不與齊, 齊攻其東. 東與齊而不與趙, 則趙攻其北. 不合於韓, 是韓攻其西. 不親於楚, 則楚攻其南.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戰國策 魏策에 나온다. 戰國策前漢 時代 劉向編纂한 것으로, 나라의 元王부터 나라의 始皇帝에 이르기까지 여러 人事들의 策謀辨論國家別로 모은 이다.

蘇秦은 여섯 나라를 돌면서 各國狀況들의 性格完全把握한 것을 바탕으로 論理的으로 遊說進行하여 結局 六國合縱으로 하나로 묶는 데 成功했다. 蘇秦合縱策으로 六國聯合하게 되자 나라는 무려 15동안 函谷關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四分五裂春秋時代使用했던 軍士戰術 中의 하나로, 여러 記錄에 나온다.

* 六韜 奇兵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찢긴 것은 을 치고 네모를 부수었기 때문이다. (四分五裂者, 所以擊圓破方也)

* 史記 張儀列傳天下四分五裂되었다. (天下四分五裂)

* 三國志 · 魏志 司馬朗傳四分五裂이 되어 戰爭을 하는 땅이 되었다. (乃四分五裂, 戰爭之地)

* 北史 周法尙傳마침내 防備가 없어지니 四分五裂되었다. (卒有不虞, 四分五裂)

 

 

9. 사불급설(駟不及舌) 驷不及舌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말할 때는 愼重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比喩

 

나라 大夫 棘子成이 말했다. “君子質樸하기만 하면 된다. 文彩가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子貢이 말했다. “안타깝도다. 그대가 이런 으로 君子를 말하는 것이 퍼져 나가면 네 마리 말이 모는 수레로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오. 文彩(敎養)가 바로 質朴(根本) 함이고 質朴함이 바로 文彩라고 말하는 것은, 털을 다 뽑아 버린 호랑이나 범의 가죽이 털을 다 뽑아 버린 개나 의 가죽과 같다는 것이오.”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이 이야기는 論語 顔淵에 나온다. 말은 한 하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므로 말을 할 때에는 愼重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駟不及舌駟馬難追라고도 하는데, 이는 元來 한마디의 말이라도 한 입을 떠나면 네 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一言旣出, 駟馬難追.)’는 말에서 나왔다.

 

 

10. 사불범정(邪不犯正)

바르지 못하고 妖邪스러운 것은 바른 것을 하지 못함. , 正義는 반드시 이긴다는 뜻

 

나라 때의 隋唐嘉話劉餗이라는 사람이 編纂一種逸話集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由來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라 貞觀 (唐 太宗年號) 年間西域에서 어떤 중이 왔는데, 呪術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太宗이 날랜 騎兵 가운데서 建壯하고 勇敢를 뽑아서 試驗해 보게 하였는 바, 말과 같이 죽기도 하고, 말대로 살아나기도 하였다.

 

太宗太常卿 傅奕에게 이런 事情을 말하자, 傅奕이 말하였다.

"이는 邪異術法입니다. 이 듣건대 邪惡한 것은 올바른 것을 侵犯할 수 없다고 하오니, 에게 呪術을 걸게 하오면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에 太宗이 중을 불러 傅奕에게 呪術을 걸게 하였는데, 傅奕은 그것을 하고도 처음부터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아주 짧은 時間이 흐르고, 그 중이 갑자기 스스로 넘어졌는데, 마치 무엇에 얻어맞은 것 같았으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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