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ㅅ-1 사가망처~ )
1. 사가망처(徙家忘妻)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린다. 精神이 나간 사람처럼 所重한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卽 매우 重要한 일을 놓쳐버리는 것을 比喩
* 孔子家語 賢君篇 에.
中國 春秋時代 魯나라의 王 哀公 (在位 BC 494∼BC 468)은
'移徙를 할 境遇 아내를 잊어버리는 (徙家忘妻)' 사람도 있다고 한 孔子 (BC 552∼BC 479)의 말처럼 그만큼 얼빠진 사람이 있는지 孔子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孔子는 "夏王朝의 마지막 王인 桀王과 殷나라 最後의 王인 紂王 (BC 1154∼BC 1111)은 暴惡한 政治를 한 임금의 典型으로 淫蕩한 짓을 함부로 하고 不道德하였으며 百姓들의 生活과 國家의 重大한 일을 돌보지 않고 惡毒한 行爲를 일삼았다.
百姓들을 抑壓하였으며 賢臣들의 諫言을 듣지 않고 그들을 追放하였다.
暴君이었던 桀王과 紂王은 繼續 惡行을 저질러 나라를 亡치고 나라와 百姓, 自己 自身도 잊어버렸다"라고 對答했다.
2. 사공명능 주생중달(死孔明能 走生仲達)
죽은 孔明이 산 仲達을 逃亡하게 했다
蜀나라에 諸葛孔明이 있다면, 魏나라에는 司馬懿가 있었다.
그들은 軍師로서 뛰어난 智略을 지닌者들이었다.
司馬懿의 字가 仲達이다. 司馬懿도 뛰어났지만, 諸葛孔明에게는 相對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늘 戰爭에서 敗하고 물러나기만 했다. 그렇기에 司馬懿는 諸葛孔明에 對하여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司馬懿 仲達도 天文을 아는 者 이기에, 天氣로서 諸葛孔明이 죽을 걸 알았다.
그래서 孔明이 죽으면 戰爭을 벌일려고 모든 準備를 갖추었다.
天氣로 孔明이 죽었음을 알아낸 仲達이 後退의 길에 서있는 蜀을 攻擊했다.
그런데 仲達의 軍士가 攻擊하는 가운데, 저 멀리 蜀나라 陣營에서 孔明이 四輪車에 앉아 指揮하며 달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氣怯을 한 司馬懿는 앞뒤도 재보지 않고 自身의 軍士陣營으로 逃走하였다.
魏 나라 軍士들은 仲達을 보면서 그만 鎭靜하라고 하고, 仲達은 自身의 머리가 있는냐고 물어보았다. 蜀 나라는 이를 契機로 安全하게 後退하였고, 몇日 後 仲達은 孔明이 죽었고 自身이 본 것은
孔明이 死前에 計策으로 만든 木人이라는것은 알고 歎息했다.
以後 蜀에서는 "죽은 孔明이 산 仲達을 逃亡치게 했다(死孔明能 走生仲達)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由來된 말이 死孔明能 走生仲達이다.
* 三國志 에.
3. 사기종인(舍己從人) 舍己从人
自己를 버리고 남을 따르다. 自身의 以前 行爲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착한 行實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禹의 德을 想考하여 이르되
“文明을 四海에 펴시고 帝를 이으시다”. 禹가 舜에게 말하였다.
“임금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그 임금됨을 어렵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며, 臣下된 者는 그 臣下됨을 어렵게 생각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政事는 잘 다스려지고 百姓들은 德을 崇尙하기에 힘쓸 것입니다.”
「그러자 舜임금이 말했다.
“그렇소. 眞實로 그렇게 하면 좋은 말이 숨겨질 리가 없고, 어진 이가 草野에 묻혀 지내지 않게 되어 온 나라가 다 平安하게 될 것이오. 여러 사람에게 議論하여 나를 버리고 남을 좇으며, 依支할 곳 없는 이를 虐待하지 않고 困窮한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 일들은 오직 임금된 사람만이 할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오.”
(帝曰, 兪. 允若玆, 嘉言罔攸伏, 野無遺賢, 萬邦咸寧. 稽於衆, 舍己從人, 不虐無告, 不廢困窮, 惟帝時克.)」
이 이야기는 《書經 大禹謨》에 나온다. ‘舍己從人’은 孟子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孟子가 말했다. “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 주면 기뻐하였고, 禹임금은 옳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 偉大한 舜임금께서는 더 훌륭하셨으니, 남과 더불어 善을 行했다. 自己를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에게서 取하여 善을 行하기를 즐겼다. 農事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 잡는 일에서부터 帝王이 되기까지 남에게서 取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남에게서 取하여 善을 行하는 것, 이것이 남과 더불어 善을 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에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善을 行하는 것보다 더 重要한 일은 없다.”
(孟子曰, 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 禹聞善言則拜. 大舜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 樂取於人以爲善. 自耕稼陶漁以至爲帝, 無非取於人者. 取諸人以爲善, 是與人爲善者也. 故君子莫大乎與人爲善.)」
* 孟子 公孫丑上에.
이 成語는 우리나라의 典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李滉 先生이 말했다. “能히 自身을 버리고서 남을 좇지 못하는 것은 學者의 큰 病이라. 天下의 義理는 끝이 없으니 어찌 可히 自己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리오. 사람의 質問이 있으면 얕고 가까운 말이라도 반드시 마음에 두고서 조금 있다가 이를 對答하고, 묻는 말에 바로 應對하지 말지니라.
”(先生曰, 不能舍己從人, 學者之大病. 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人有質問, 則淺近說, 必留意, 少間而答之, 未嘗應聲而對.) * 退溪集에.
4. 사마난추(駟馬難追)
말이란 한 番 뱉으면 駟馬가 따라갈 수 없을 程度로 빠른 것이니, 입操心을 하라는 뜻이다.
【類似語】
* 駟不及舌~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所聞은 빨리 퍼지니 말을 삼가하라는 뜻.
* 言飛千里~발 없는 말이 千 里 간다는 뜻.
* 耳屬于垣~담에도 귀가 달려 있으니 말을 삼가라는 뜻.
* 牆有耳~담墻에 귀가 있다는 말로, 말을 操心하라는 뜻.
* 五燈會 古尊宿語錄에
中國 俗談에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한 番 입을 떠나면 네 匹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 (一言旣出, 駟馬難追)라는 말이 있다.
'駟馬'는 말 네 匹이 끄는 수레로써 엄청나게 빠른 것을 比喩한다.
'駟馬難追'는 이런 駟馬가 따라갈 수 없을 程度(難追)로 빠른 것이니, '입操心을 하라'는 뜻이다.
駟馬難追는 五燈會元, 古尊宿語錄, 琵琶記, 醒世恒言, 增廣賢文 等에 引用되어 널리 膾炙하는 成語이다.
韓國 俗談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여, 말操心, 입操心을 警戒하고 있다. 잘못 쓴 글은 지우면 그만이지만 말이란 한 番 내뱉으면 주어 담을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明心寶鑑에도 '입과 혀는 禍와 근심을 불러들이는 門이고, 몸을 亡치는 도끼와 같다(口舌者禍患之門 滅身之斧也)' 라느니, '입은 사람을 傷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 될 것이니, 입을 다물고 혀를 감추면, 몸이 便安하고 어디에 있든지 安穩할 것이다.
(口是傷人斧 言是割舌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라 하여, 亦是 늘 말操心을 해야 한다고 强調하고 있다.
※牢는 여기서는 韻字上 本音인 '로'로 읽어야 하고, 뜻은 '便安하고 조용하다' '安穩하다'
한 便, 鄧析子를 典據로 말하는 이도 있는데
(鄧柝子說:一言而非,駟馬難追;一言而急,駟馬不能及.)
事實은 表現이 조금 다르다. 鄧析子에는 '一聲而非,駟馬勿追。一言而急,駟馬不及.'로 되어 있다.
5. 사단칠정(四端七情)
四端은 人間의 本性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卽 先天的 · 道德的 能力을 말하며, 七情은 人間의 本性이 事物을 接하면서 表現되는 人間의 自然的인 感情을 말한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실마리라 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義로움의 실마리라 하며, 辭讓하는 마음을 禮의 실마리라 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智慧의 실마리라 한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이 말은 《孟子 公孫丑 上》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四端’이 由來했다. ‘七情’은 《禮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을 일러 사람의 感情이라고 하는가. 기뻐하고(喜), 怒여워하며(怒), 슬퍼하고(哀), 두려워하며(懼), 사랑하고(愛), 미워하며(惡), 하고자 하는 마음(欲)을 말한다. 이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된다.
(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不學而能.)」
* 禮記 禮運에.
四端은 仁 · 義 · 禮 · 智의 德目과 關聯된 倫理的 範疇에 屬하고, 七情은 人間의 感情을 總稱하는 人性論의 範疇에 屬한 것으로, 元來는 서로 다른 脈絡에서 使用되던 말이었다. 그러다가 宋나라 때 性理學이 일어나면서부터, 이 두 槪念은 各各 人間 心性이 發現되는 過程에서 道德的 性格을 띠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相反되는 意味를 가지는 것으로 認識되어 對照의 槪念으로 쓰이게 되었다. 곧, 性理學에서는 하늘의 理致와 사람의 心性이 一致한다고 하는 天人合一의 命題 아래 宇宙 自然의 生成과 變化를 說明하기 爲한 理論的 바탕으로 理氣論을 發達시켰고, 다시 이를 根據로 하여 人間 心性의 發生 過程과 그 作用을 探究함으로써 人間의 道德的 實踐의 哲學的 根據를 解明하고자 하였는데, 이 過程에서 四端七情의 問題가 自然스럽게 浮刻되었다.
四端七情論은 中國에서는 그다지 比重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朝鮮에서는 四端과 七情의 發生 過程을 二氣論的으로 解明하는 問題가 重要한 關心事로 떠올라 大規模 論爭으로 展開되었다. 이 論爭은 李滉과 奇大升 사이에서 처음 發生하였고, 나중에 李珥와 成渾 사이에서 다시 論議됨으로써 새로운 局面으로 展開되었다. 이 過程에서 主된 爭點이 되었던 것은 四端이 理에 屬하는가 아니면 氣에 屬하는가 하는 問題와, 理가 果然 發動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두 가지 問題였다. 16世紀 末에 發生하였던 이 論爭은 當代의 著名한 性理學者들에 依해 主導되었을 뿐 아니라, 以後 學界 全體의 問題로 擴大되어 19世紀 末에서 20世紀 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性理學者가 이 問題를 다루었을 程度로 朝鮮 儒敎의 發展 過程에 큰 影響을 미쳤다.
6. 사면초가(四面楚歌)
四面이 敵兵으로 둘러쌓인 境遇나 無援孤立된 境遇
秦나라(BC 221~BC 206)末葉 政治가 腐敗해 民生苦가 날로 深刻해 지자 뛰어난 人物들이 곳곳에서 出現했다. 有名 人物로는 劉邦, 項羽, 吳廣, 陳勝 等이다.
秦의 滅亡 뒤엔 漢王인 劉邦 (BC247~BC195)과 楚覇王인 項羽 (BC232~BC202)의 勢力만이 가장 컸고 서로 天下 覇權을 노렸기에 끊임없는 楚漢相爭 時代가 열렸다.
進退를 거듭하던 戰爭은 漢高祖 5年에 이르러 劉邦의 勢力이 優位를 占하고 項羽 部隊를 해하(垓下)로 몰아 包圍했다.
8年間 70如回 싸움을 치룬 楚覇王 項羽는 威風이 無雙한 젊은 將帥였으나 이때만은 劉邦의 數十萬 大軍에 겹겹이 包圍된 身世였다.
(韓信30萬, 劉邦20萬. 黥布와 劉賈의 7萬, 彭越의 3萬 等 60萬 大軍 : 項羽의 10萬 軍士의 싸움)
劉邦은 敵軍을 얕잡아 强攻策을 쓰는 代身에 張良과 陳平의 計策을 받아들여 心理戰으로 兵士들에게 밤마다 楚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軍糧米마저 끊긴 가운데 項羽의 兵士들의 士氣는 끝없이 墜落해 脫營兵이 增加하고 戰意를 喪失해 갔다. 項羽도 楚나라 땅이 이리도 빨리 占領되다니 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項王軍壁垓下, 兵少食盡, 漢軍及諸侯兵圍之數量, 夜聞漢軍四面皆楚歌, 項王乃大驚曰, 漢皆已得楚乎, 是何楚人多也)
一世英雄인 그도 戰意가 꺾기어 술로 괴로움을 달랬다. 傾國之色의 愛妾 虞姬를 옆에두고 義憤을 卽興詩로 슬피 노래한다.
"力拔山氣蓋世도 끝이 났구나. 駿馬도 멈추었다. 어찌할꼬! 虞 美人이여! 아! 虞 美人이여! 이를 어찌한담!"
帳幕은 슬픔에 쌓이고, 愛妾도 答歌로 "이미 勝北는 끝나고 四面엔 楚歌이거늘 어찌 苟且히 살길 바라리오. 將軍과 함께하리다"
項羽는 暫時 생각에 잠겼다. 8千의 軍士를 이끌고 江東에서 西쪽으로 건널때는 士氣도 衝天하여 곧장 天下를 휘어잡고도 남을만 하였는데 只今 이게 무슨 꼴이람... 悲憤慷慨하며 三枝槍을 비껴들고 800如 軍士를 指揮해 밤새 激戰을 벌이며 包圍網을 뚫고 南으로 逃亡쳤다. 그러나 捲土重來를 抛棄하고 끝내 和縣 烏江浦에서 自決하고 말았다.
7. 사문난적(斯文亂賊) 斯文乱贼
儒敎를 어지럽히는 盜賊. 敎理에 어긋나는 言動으로 儒敎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孔子가 匡땅에서 危殆로운 處地에 빠졌을 때 말하였다. “文王이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文化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萬一 하늘이 將次 이 文化를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은 사람이 이 文化에 參與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文化를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匡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이 이야기는 《論語 子罕》에 나온다. 孔子가 弟子들과 함께 匡 地域을 지날 때 사람들이 孔子를 陽虎로 誤認하고 害치려고 했다. 孔子는 이런 危機 속에서도 文王과 周公이 남긴 學問과 思想을 自身이 이어받아 天命이 自己에게 있으므로 決코 危險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確信했는데, 여기에서 ‘斯文’이 由來했다.
‘亂賊’은 叛亂을 일으키는 臣下와 父母에게 悖逆한 子息이란 뜻의 ‘亂臣賊子’를 말한다.
宋나라 때 나타난 朱子學, 性理學이 高麗 末에 韓半島에 傳來되어 朝鮮의 建國理念이 된 後, 朱子學은 朝鮮의 文化, 思想, 政治 等 社會 全般을 支配하게 되었다. 當時 明나라 때에 大陸에서는 朱子學의 지나친 哲理主義에 反對하여 知行合一을 强調하는 陽明學이 登場했다. 이 陽明學이 朝鮮에 들어와 當時 江華島에 流配되어 있던 一部 沒落한 宗親들에게 받아들여져 江華學派가 形成되었고, 그들의 學風은 朱子學에 挑戰하는 새로운 學問으로 浮上하게 된다. 性理學者들은 이런 陽明學者들을 儒學을 어지럽히는 무리들로 規定했는데, 여기에서 ‘斯文亂賊’이 由來했다. 이 말은 中國에서는 使用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使用된다.
8. 사분오열(四分五裂)
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찢어지다. 意見이나 地域이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갈라지거나 勢力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弱化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戰國時代 中期, 秦나라의 勢力이 漸次로 커지면서 나머지 여섯 나라를 壓迫하기 始作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꼈던 나머지 여섯 나라는 秦나라에 對抗하기 爲해 相互 間에 外交的인 同盟 關係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主導한 것이 바로 合從策을 主張했던 蘇秦이었다. 蘇秦은 六國을 돌면서 遊說를 하고 다녔는데, 그 中 魏나라의 哀王에게는 다음과 같은 理由를 들어 合縱을 主張하였다.
“魏나라는 그다지 넓지도 않고, 兵士도 30萬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地勢도 便便하여 四方에서 諸侯들이 쳐들어오면 이를 막을 만한 山이나 要塞도 없는, 그야말로 戰爭터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東쪽에는 齊나라, 南쪽에는 楚나라, 北쪽에는 趙나라, 西쪽에는 韓나라가 있어 虎視眈眈 魏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魏나라가 南쪽으로 楚나라와 聯合하고 齊나라와는 聯合하지 않으면 齊나라가 東쪽을 치고, 東쪽으로 齊나라와 聯合하고 趙나라와는 聯合하지 않으면 趙나라가 北쪽을 치며, 韓나라와 聯合하지 않으면 韓나라가 西쪽을 치고, 楚나라와 親하지 않으면 楚나라가 南쪽을 攻擊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四分五裂의 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魏南與楚而不與齊, 齊攻其東. 東與齊而不與趙, 則趙攻其北. 不合於韓, 是韓攻其西. 不親於楚, 則楚攻其南.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戰國策 魏策》에 나온다. 《戰國策》은 前漢 時代 劉向이 編纂한 것으로, 周나라의 元王부터 秦나라의 始皇帝에 이르기까지 여러 人事들의 策謀와 辨論을 國家別로 모은 冊이다.
蘇秦은 여섯 나라를 돌면서 各國이 處한 狀況과 王들의 性格을 完全히 把握한 것을 바탕으로 論理的으로 遊說를 進行하여 結局 六國을 合縱으로 하나로 묶는 데 成功했다. 蘇秦의 合縱策으로 六國이 聯合하게 되자 秦나라는 무려 15年 동안 函谷關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四分五裂’은 春秋時代에 使用했던 軍士戰術 中의 하나로, 여러 記錄에 나온다.
* 六韜 奇兵에 → 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찢긴 것은 圓을 치고 네모를 부수었기 때문이다. (四分五裂者, 所以擊圓破方也)
* 史記 張儀列傳에 → 天下가 四分五裂되었다. (天下四分五裂)
* 三國志 · 魏志 司馬朗傳에 → 四分五裂이 되어 戰爭을 하는 땅이 되었다. (乃四分五裂, 戰爭之地)
* 北史 周法尙傳에 → 마침내 防備가 없어지니 四分五裂되었다. (卒有不虞, 四分五裂)
9. 사불급설(駟不及舌) 驷不及舌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말할 때는 愼重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比喩
「衛나라 大夫 棘子成이 말했다. “君子는 質樸하기만 하면 된다. 文彩가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子貢이 말했다. “안타깝도다. 그대가 이런 式으로 君子를 말하는 것이 퍼져 나가면 네 마리 말이 모는 수레로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오. 文彩(敎養)가 바로 質朴(根本) 함이고 質朴함이 바로 文彩라고 말하는 것은, 털을 다 뽑아 버린 호랑이나 豹범의 가죽이 털을 다 뽑아 버린 개나 羊의 가죽과 같다는 것이오.”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이 이야기는 《論語 顔淵》에 나온다. 말은 한 番 하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므로 말을 할 때에는 愼重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駟不及舌’은 ‘駟馬難追’라고도 하는데, 이는 元來 ‘한마디의 말이라도 한 番 입을 떠나면 네 匹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一言旣出, 駟馬難追.)’는 말에서 나왔다.
10. 사불범정(邪不犯正)
바르지 못하고 妖邪스러운 것은 바른 것을 犯하지 못함. 곧, 正義는 반드시 이긴다는 뜻
唐나라 때의 隋唐嘉話는 劉餗이라는 사람이 編纂한 一種의 逸話集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由來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唐나라 貞觀 (唐 太宗의 年號) 年間에 西域에서 어떤 중이 왔는데, 呪術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太宗이 날랜 騎兵 가운데서 建壯하고 勇敢한 者를 뽑아서 試驗해 보게 하였는 바, 말과 같이 죽기도 하고, 말대로 살아나기도 하였다.
太宗이 太常卿 傅奕에게 이런 事情을 말하자, 傅奕이 말하였다.
"이는 邪異한 術法입니다. 臣이 듣건대 邪惡한 것은 올바른 것을 侵犯할 수 없다고 하오니, 臣에게 呪術을 걸게 하오면 決코 通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에 太宗이 중을 불러 傅奕에게 呪術을 걸게 하였는데, 傅奕은 그것을 對하고도 처음부터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아주 짧은 時間이 흐르고, 그 중이 갑자기 스스로 넘어졌는데, 마치 무엇에 얻어맞은 것 같았으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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