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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한자성어(漢字成語)**/고사성어(故事成語)

고사성어(故事成語) (ㅅ-2 아이비~ )

by 산산바다 2026. 3. 6.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2 아이비~ )

 

 

11. 사이비(似而非) = 사시이비(似是而非)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實際)로는 그렇지 않다. 원어(元語)옳은 것 같은데 틀리다.’라는 뜻의 사시이비(似是而非)’.

 

孟子와 그의 弟子萬章對話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孔子가 말했다.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實際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穀食의 싹을 混亂시킬까 두려워서이고, 妄靈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正義混亂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을 混亂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나라의 淫亂音樂을 미워하는 理由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색을 混亂시킬까 두려워서이고, 鄕原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混亂시킬까 두려워서이다. 君子常道로 돌아갈 뿐이다. 常道가 바로잡히면 庶民들도 또한 感化되어 일어날 것이고, 庶民들이 모두 感化되어서 일어날 것 같으면 邪慝한 것이 없어질 것이다.”

(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口, 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鄕原, 恐其亂德也. 君子反經而已矣. 經正, 則庶民興, 庶民興, 斯無邪慝矣.)

* 孟子(맹자) 37. 吾黨之士狂簡(오당지사광간)

이 이야기는 孟子 盡心 下에 나온다. 鄕原이란 마을에서 마음이 하고 틀림없는 사람으로 行勢하지만 實際로는 世俗迎合하는 僞善者를 말한다.

 

 

12. 사족(蛇足) = 화사첨족(畵蛇添足)

뱀을 그리면서 발까지 그렸다는 故事에서 由來한 말로 쓸데없는 군더더기

 

나라의 懷王6. 나라에서 令尹(官名으로 宰相) 昭陽에게 軍士를 주어 나라를 치게했다.

그는 를 친 後 齊나라를 攻擊하려 했다.

나라엔 마침 나라 使臣陳軫이 와 있었는데. 나라 이 크게 걱정을하며 對備策을 묻자 그는 戰爭事前에 막아주겠다고 다짐한 後 昭陽陣營을 찾아가 談判을 지었다.

"貴國에는 敵軍擊破하고 敵將을 꺾으면 어떤 報恩이 따름니까?"

"令尹입니다"

"그렇습니다. 將軍께선 이미 最高官職令尹이 아니십니까? 擊破하고 敵將을 벤 만도 큰데 어찌 또 까지 치려하시는지를 모르겠습니다. 勝利를 하시면 몰라도, 그렇치 아니하다면 名譽, 목숨까지도 危殆롭고 또한 숱한 非難을 받을 것입니다. 어떻던 國力弱化되면 虎視眈眈 機會를 노리는 나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下人들에게 酒煎子에 술을 내리자, 下人들이 한 사람이 먹기에 이라 누구든 뱀을 먼저 그린 사람이 마시기로 하고선 땅에 뱀을 그렸는데, 가장 먼저 그린 酒煎子을 잡고 보니 남들은 아직도 未完成인지라 自身은 발 까지 보태 그려도 되리라 해서 畵蛇添足을 하고 酒煎子를 다시 잡자 다음 畵蛇完成 시킨 가 이를 빼앗으며, 世上蛇足이 어딨어? 라는 말에 뒤늦은 어리석을 했다' 합니다. 將軍께서는 戰意를 거두시고 恩澤을 내리신다면 외려 稱頌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는 잃을것이 없는 입니다".

이를 받아드린 昭陽軍士를 거두어 떠났다.

'史記' '楚世家' 에 실려있고 蛇足由來라 한다.

(楚有祀者, 賜其舍人卮酒, 舍人相謂曰, 數人飮之不足, 一人飮之有餘, 謂畵地爲蛇, 先成者飮酒, 一人蛇先成, 引酒且飮之, 乃左手持卮, 右手畵蛇曰, 我能爲之足, 未成, 一人之蛇成奪取卮曰, 蛇固無足, 子安能爲之足, 遂飮其酒, 爲蛇足者, 終亡其酒)

 

 

13. 사숙(私淑)

直接 가르침을 받진 않았으나 맘속으로 그를 본받아 배우거나 따름

 

一世代30이라면 5世代150으로 君子小人의 끼친 恩澤5世代면 끝난다고 한다.

孟子(BC372~BC289)孔子(BC551~BC479)보다 107뒤의 사람이나 孔子가 끼친 思慕하여 그의 弟者가 아니였어도 그를 標本으로 삼아 自己人格修養함에 힘썼고 여러사람에 私淑토록 했다.

(君子之澤, 五世而斬, 小人之澤, 五世而斬, 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

 

 

14. 사회부연(死灰復燃) 死灰复燃

사그라진 재에 다시 불이 붙다. 잃었던 勢力을 다시 찾거나 어려움에 했던 사람이 이를 克復하고 다시 일어남을 比喩

 

나라 文帝의 둘째 아들인 나라 孝王臣下 韓安國을 어겨 監獄에 갇혔는데, 蒙縣獄吏 田甲韓安國侮辱하자 韓安國이 말했다. “다 타 버린 재에서도 다시 불길이 살아나지 않는가?” 그러자 田甲이 말했다. “다시 불이 타오르면 거기에다 오줌을 싸겠다.” 얼마 나라의 內史 자리가 비었다. 나라에서 使者를 보내 韓安國나라의 內史除授하자, 韓安國罪人의 몸에서 2,000俸祿을 받는 高官이 되었다. 田甲은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韓安國이 말했다. “田甲, 돌아와 職責을 지키지 않으면 너의 집안을 滅族해 버리겠다.” 田甲이 웃옷을 벗고 謝罪하자, 韓安國은 웃으면서 오줌을 누어 보라구. 너 같은 것들을 굳이 다스릴 것까지야 있겠느냐.”고 말하고는 田甲厚待해 주었다.

(其後安國坐法抵罪, 蒙獄吏田甲辱安國. 安國曰, 死灰獨不復然乎. 田甲曰, 然卽溺之. 居無何, 梁內史缺, 漢使使者拜安國爲梁內史, 起徒中爲二千石. 田甲亡走. 安國曰, 甲不就官, 我滅而宗. 甲因肉袒謝. 安國笑曰, 可溺矣. 公等足與治乎. 卒善遇之)

 

이 이야기는 史記 韓長孺列傳에 나오는데, 韓安國의 말에서 死灰復燃由來되었다.

 

 

15. 산전수전(山戰水戰) 山战水战

에서 싸우고, 물에서 싸우다. 온갖 苦生試鍊을 겪어 經驗이 많은 것을 比喩

 

무릇 과 싸울 때는 山林에 있든 平地에 있든 반드시 높은 언덕을 차지함으로써 有利地形依支하여야 치기에 有利하고, 을 쳐들어가기에 有利하여 싸워 이길 수가 있다. 兵法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서 싸울 때는 높은 곳에 있는 攻擊하지 말라.”

(凡與敵戰, 或居山林, 或在平陸, 須居高阜, 恃於形勢, 順於擊刺, 便於奔衝, 以戰則勝. 法曰, 山陵之戰, 不仰其高.)

* 劉基百戰奇略 山戰.

 

무릇 과 싸울 때는 언덕 가에 을 치고 은 물 위에 배를 停泊 시키는데, 이를 모두 水戰이라고 한다. 물에 가까운 언덕에서 싸울 때는 반드시 물에서 若干 멀리 떨어져야 하는데, 이는 한便으로는 渡河를 하도록 誘引하는 것이고 한便으로는 疑心을 하지 않도록 하기 함이다. 반드시 과 싸우려 한다면 물 가까이에서 을 맞이하지 말라. 渡河를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萬若 敵과 싸우지 않겠다면 언덕에 依支하여 을 막아 渡河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萬若 敵軍士를 이끌고 渡河하여 攻擊하면 물가에서 折半쯤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攻擊하면 로울 것이다. 兵法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쯤 건넜을 때 攻擊하라.”

(凡與敵戰, 或岸邊爲陣, 或水上泊舟, 皆爲之水戰. 若近水爲戰, 須去水稍遠, 一則誘敵使渡, 一則示敵無疑. 我欲必戰, 勿近水迎敵, 恐其不得渡. 我欲不戰, 則拒水阻之, 使敵不能濟. 若敵率兵渡水來戰, 可於水邊伺其半濟而擊之, 則利. 法曰, 涉水半渡可擊.)

* 劉基 百戰奇略 水戰.

 

元來 山戰水戰은 이처럼 戰術的測面에서 나왔지만, 나중에는 모든 風波를 다 겪거나 經驗豊富한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劉基百戰奇略歷代兵法書參考하여 100가지의 戰爭收錄兵書이다.

 

 

16. 살신성인(殺身成仁) 杀身成仁

몸을 죽여 을 이루다. 옳은 일을 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孔子가 말했다.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하여 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自身의 목숨을 바쳐 할 뿐이다.”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 論語 衛靈公. 論語(논어) 15. 衛靈公(위령공)

 

志士道德義理에 뜻을 둔 사람을 말하고, ‘仁人은 어진 德性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孔子殺身成仁接近하기 어려운 以上으로 보았던지 衛靈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百姓들의 必要는 물과 불보다 切實하다. 물과 불을 건드리고 죽는 사람은 내가 보았지만, 實踐하면서 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

 

 

17. 삼고초려(三顧草廬) 三顾草庐

草家를 세 번 돌아 보다. 有能人才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努力하는 것을 比喩

 

後漢 末葉, 劉備關羽, 張飛義兄弟를 맺고 漢室復興軍士를 일으켰다. 하지만 能力發揮機會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轉輾하며 歲月虛送하다가 마지막에는 荊州刺史 劉表에게 몸을 맡기는 身世가 되었다. 有能參謀必要性切感劉備는 여러 사람들을 南陽隱居하는 諸葛亮存在를 알게 되었고, 關羽, 張飛와 함께 禮物을 싣고 襄陽에 있는 그의 草家를 세 이나 訪問한 끝에 그를 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이때 諸葛亮27, 劉備47였다.

 

이렇게 劉備諸葛亮을 세 番 訪問한 것을 이르러 三顧草廬’, 三顧茅廬라고 하는데, 實際로 이 말은 諸葛亮이 첫 北伐을 나서기 , 後周 劉禪에게 바친 出師表에서 찾아볼 수 있다.

 

臣下 亮은 말씀드립니다. 先帝創業도 끝나지 않아 中途에 돌아가시고, 只今 天下는 셋으로 나뉘어 益州疲弊하니 이는 眞實存屬하느냐 하느냐의 危機의 때입니다. 그러나 옆에서 모시는 臣下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忠義軍士들이 밖에서 自身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모두 先帝特別待遇追念하여 陛下에게 그에 報答을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陛下스러운 귀를 여시어(臣下들의 忠諫을 받아들이시어) 先帝遺德을 밝히시고 뜻있는 선비들의 氣槪를 펼쳐 주는 것이 眞實로 마땅합니다. 亡靈되이 스스로 변변치 못하다고 여기거나, 符合하지 않은 것을 끌어들이거나 比喩하여 忠諫의 길을 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宮中府中은 모두 한 몸이 되는 것이니 있는 를 올리고, 하며, 한 것은 稱讚하고, 한 것을 버림에 다름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萬若 奸邪한 짓을 하거나 過誤하거나, 忠誠善行을 한 가 있으면 官吏에 부쳐 그 刑罰하여 陛下公平하고 밝은 理致를 밝히는 것이 마땅합니다. 私的인 일에 치우쳐 안과 밖에 을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侍中, 侍郞郭攸之, 費褘, 董允 等, 이들은 모두 善良하고 誠實하고, 뜻과 생각이 忠誠스럽고 純粹합니다. 이런 까닭에 先帝께서 拔擢하시어 陛下에게 남겨 주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宮中의 일은 일의 크고 작음 없이 모두 그들에게 咨問하신 施行하면 반드시 不足補充하고 넓게 더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將軍 向寵性品行實하고 함없으며, 軍事 業務에 밝고 能通하여, 옛날 試驗 삼아 써 보고 先帝께서 能力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모두의 議論指揮官으로 薦擧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軍營의 일은 일의 크고 작음 없이 모두 그에게 咨問하시면 部隊和睦하게 되고 優秀한 사람과 좀 못한 사람이 各各 쓰이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어진 臣下를 가까이하고 小人을 멀리한 것, 이것이 先漢하고 隆盛했던 까닭입니다. 小人을 가까이하고 어진 臣下를 멀리한 것, 이것이 後漢이 기울고 시들었던 까닭입니다. 先帝께서 계실 때, 每番 臣과 더불어 이 일을 하면서 桓帝靈帝歎息하고 痛恨해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侍中, 尙書, 長史, 參軍, 이들은 모두 곧고 眞實된 죽음으로 節操를 지키는 臣下들입니다. 컨대 陛下께서 이들과 하게 하고 이들을 信賴하시면, 나라 王室隆盛함은 날을 세면서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本來 平民으로 몸소 南陽에서 耕作을 하면서 亂世苟且姓名保全하면서 諸侯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顯達하기를 하지 아니하였는데, 先帝께서 을 낮고 하다 여기시지 아니하시고 猥濫되이 스스로 몸을 굽히어 草家집으로 세 찾아오시어 에게 當世의 일을 咨問하셨습니다. 이로 感激하여 드디어 先帝熱心히 뛰어다닐 것을 許諾했던 것입니다.

 

敗北하여 軍隊狀況에서 任務를 받고, 危急하고 어려운 가운데 을 받들어 只今까지 21이 지났습니다. 先帝께서는 이 삼가고 愼重함을 아신 까닭에 돌아가심에 에게 大事付託하셨습니다. 을 받은 以來, 이른 아침과 늦은 밤으로 근심하며, 付託하신 것이 效果가 나타나지 않아 先帝의 밝음을 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5를 건너 不毛地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只今 南方이 이미 平定되어 兵甲(軍費) 이미 充分하므로, 三軍을 거느리고 으로 中原平定해야 할 때를 , 魯鈍能力을 다해 奸邪하고 凶惡한 무리들을 물리치고 除去하여 나라 王室復興시키고 옛 首都로 돌아가기를 합니다. 이것이 先帝에게 報答하고 陛下職分忠誠을 하는 바입니다.

 

損益斟酌하고 나아가 忠言을 다하는 것은 攸之, , 任務입니다. 陛下께서 에게 討伐하고 漢室復興시키는 效力(任務) 맡기기를 합니다. 效力이 나지 않으면 를 다스리시어 先帝英靈하소서. 萬若 德曾進시키는 말이 없다면 攸之, , 允 等怠慢이니 그 허물을 밝히시옵소서. 陛下께서도 스스로 꾀하시어 道理를 묻고 꾀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先帝遺詔를 깊이 좇으소서. 은 받은 恩惠感激을 이기지 못하여 只今 멀리 떠남에 있어 를 쓰면서 눈물이 흘러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臣亮言. 先帝創業未半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不懈於內, 忠志之士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宮中府中, 俱爲一体.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奸犯科及爲忠善者, 宜付有司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侍中侍郎郭攸之, 費褘, 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以遺陛下.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擧寵爲督. 愚以爲營中之事, 悉以咨之,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 親賢臣, 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 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侍中, 尙書, 長史, 參軍, 此悉貞良死節之臣. 願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臣本布衣, 躬耕於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爾來二十有一年矣. 先帝知臣勤愼, 故臨崩寄臣以大事也. 受命以來, 夙夜憂嘆, 恐托付不效, 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奬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奸凶, 興復漢室, 還於舊都. 此臣所以報先帝而忠陛下之職分也.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 , 允之任也. 願陛下托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 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若無興德之言, 則責攸之, , 允等之慢, 以彰其咎. 陛下亦宜自謀, 以咨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臨表涕零, 不知所言.)

 

 

18.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三年不飞又不鸣

3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뒷날 雄飛機會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比喩

 

나라 莊王卽位 3이 되도록 을 내리지 않고 밤낮으로 즐기기만 했다. 그러고는 나라 사람들에게 을 내렸다. “寡人에게 하는 死刑할 것이오.”

 

伍擧(죽음을 覺悟하고) 諫言을 하기 해 들어갔다. 莊王은 왼쪽에 鄭姬, 오른쪽에 越女를 품고 과 북() 사이에 앉아 있었다. 伍擧가 말했다. “殿下, 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언덕 위에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3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무슨 새겠습니까?” 莊王對答했다. “3이나 날지 않았으니 날면 將次 하늘까지 차고 오를 것이오. 3이나 울지 않았으니 한 울면 世上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伍擧는 물러가 있으시오. 내 알고 있소.”

 

몇 달이 지났으나 莊王亂行은 더욱 해졌다. 그러자 大夫 蘇從(죽음을 覺悟하고) 直諫했다. 莊王이 말했다. “은 내 을 듣지 못했소?” “죽음으로써 君主를 밝게 하는 것이 하는 바입니다.” 莊王은 그날부터 酒色을 멀리하고 國政全念하여 誅殺數百 名이고 進人(들인)數百 名이었다. 그리고 伍擧蘇從에게 政事를 맡겼다. 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그해에 나라를 滅亡시켰다.

(莊王卽位三年, 不出號令, 日夜爲樂, 令國中曰, 有敢諫者死無赦. 伍擧入諫, 莊王左抱鄭姬, 右抱越女, 坐鐘鼓之間. 伍擧曰, 願有進隱. , 有鳥在於阜, 三年不蜚不鳴, 是何鳥也. 莊王曰, 三年不蜚, 蜚將衝天. 三年不鳴, 鳴將驚人. 擧退矣. 吾知之矣. 居數月, 淫益甚. 大夫蘇從乃入諫. 王曰, 若不聞令乎. 對曰, 殺身以明君, 臣之願也. 於是罷淫樂, 聽政, 所誅者數百人, 所進者數百人, 任伍擧蘇從以政. 國人大悅. 是歲滅庸.)

 

이 이야기는 史記 楚世家呂氏春秋 審應覽에 나오는데, 伍擧莊王에게 한 말에서 三年不飛又不鳴由來했다. 莊王3동안 淫樂에 빠져 酒色을 가까이했던 것은 忠臣姦臣選別하기 事前 工作이었던 것이다.

 

이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史記 滑稽列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楚莊王보다 250年 後의 사람인 齊威王 淳于髡威王에게 한 말로 記錄되어 있다.(一鳴驚人)

 

 

19. 삼방순욱(三房荀彧)

순욱(荀彧)을 세번 방문하다. 인재를 얻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다.

 

중국의 민간 전설이나 야사에서 유래했다. 진궁, 하후돈 등 부하들이 순욱을 천거 하자 직접 3번 방문하여 그를 얻었다는 이야기와 조조가 소문을 듣고 직접 얻었다는 이야기 등으로 전해진다.

 

曹操懇切賢士를 찾는다고 하자, 泰山老僧이 그에게 緋緞 주머니를 하나 주면서 말했다.누구든 當身指目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 當身은 이 緋緞 주머니를 열어본 뒤 그를 찾아가십시오.

曹操許昌到着하자, 同生 曹仁每日 兵士를 거느리고 나가서 盜賊질을 하며 百姓들을 괴롭혔다. 사흘이 지나자, 四大門에는 大門마다 榜文이 나붙었는데, 內容은 이러했다.

 

曹操到許昌, 百姓遭了殃

(曹操許昌에 이르렀으니, 百姓들은 災殃을 만났구나)

그 아래에는 許昌 荀彧이라는 이름이 남겨져 있었다. 曹操는 이 事實을 알고 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그는 처음에 곧바로 荀彧을 붙잡아오려 했으나, 갑자기 老僧의 말이 생각나서 緋緞 주머니를 열어 보니, 안에는 한 文章이 적혀 있었다.

 

許昌荀彧, 才過子房

(許昌에 살고 있는 荀彧, 주가 張子房凌可하네)

曹操는 크게 기뻐하며 曹仁에게 그를 해 오라고 했다. 元來 荀彧曹操주 있는 사람이라는 所聞을 듣고 依託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먼저 넌지시 榜文을 한 써 붙여 그를 試驗해 본 것이었다.

 

荀彧曹仁自身을 데리러 온 것을 알고 일부러 을 열지 않았다. 曹仁이 돌아가 報告하자, 曹操는 반드시 히 나서야 한다는 事實을 깨달았다. 그는 동짓달 내린 큰 눈을 무릅쓰고 聚奎街에 있는 荀彧邸宅으로 찾아갔으나, 大門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수염(鬚髥)에 얼음이 얼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다음 날 또 갔으나, 執事主人許田으로 사냥을 갔다고 했다. 째는 荀彧祖上에서 伐草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를 갖추어 찾아갔다.

墓地到着하자, 스물 몇 살쯤 되어 보이는 한 靑年이 한창 孫子兵法熱心히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曹操가 그 옆으로 가서 섰지만, 荀彧은 고개도 한 들지 않았다. 갑자기 한 차례 바람이 불더니, 荀彧의 손에 있던 이 바람에 날려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曹操히 몸을 굽혀 주워 올린 뒤, 恭遜하게 바치며 말했다.

"荀公, 曹操問安 여쭙니다."

荀彧이 말했다.

"저는 普通 百姓인데, 先生께서 어찌 問安을 여쭙니까?"

曹操가 다시 말했다.

"荀公子房주와 子牙智謀를 갖추고 있으니, 제가 함께 大事圖謀하려고 모시러 왔습니다."

"當身은 제가 當身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曹操가 웃음을 띄며 말했다.

"하는 데에 一理가 있다면 많이 할수록 좋지요."

荀彧辭讓을 하며 발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고 하자, 曹操는 곧장 앞으로 가서 荀彧을 부축해 말에 오르게 했다. 이때부터 荀彧曹操謀士가 되어 많은 策略들을 내 놓았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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