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ㅅ-4 삼여독서~ )
23. 삼여독서(三餘讀書) 三余读书
冊을 읽기에 좋은 세 가지 餘暇. 餘裕 있는 時間을 잘 活用하여 讀書하는 것을 말한다.
董遇는 後漢 末 사람으로 가난한 生活을 하면서도 工夫에 熱中하여 黃門侍廊 벼슬에 올라 獻帝의 글工夫 相對가 되었다. 한때는 丞相이었던 曹操의 疑心을 받아 寒職으로 쫓겨난 적도 있었지만, 魏나라 明帝 때에는 侍中, 大司農 等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그는 老子와 左傳에 注를 달았는데, 特히 左傳에 對한 그의 註釋은 唐나라 時代까지 幅넓게 읽혔다고 한다. 董遇의 名聲이 높아지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글을 배우겠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마땅히 먼저 百 番을 읽어야 한다. 百 番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董遇를 좇아 배우려는 者가 힘들게 사느라 冊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하자, 董遇는 “세 가지 餘暇만 있으면 冊을 充分히 읽을 수 있다.”고 對答했다. 어떤 사람이 세 가지 여가의 뜻을 묻자 董遇가 對答했다. “겨울은 한 해의 餘暇이고, 밤은 하루의 餘暇이고, 내리는 비는 한때의 餘暇이다.”
(從學者云, 苦渴無日. 遇言, 當以三餘. 或問三餘之意. 遇言, 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也.)」
이 이야기는 《三國志 · 魏書 王肅傳》에 《魏略》을 引用한 裵松之 注에 있다.
24. 삼인성호(三人成虎) = 증삼살인(曾參殺人)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든다. 虛爲라도 여럿이 反復해 옳다고 主張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음을 比喩
* 曾參殺人(증삼살인)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로, 사실이 아닌데도 여러 사람이 반복하면 믿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출전은 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 등으로, 공자 제자 증자(曾子)와 동명이인 사건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 戰國策 魏策 魏二 및 韓非子 內儲說上에.
中國 戰國時代(紀元前 403~221)에 魏나라 大臣 龐蔥이 趙나라 邯鄲에 人質로 가는 太子를 隨行하게 되었다(龐蔥與太子質於邯鄲). 出發하면서 龐蔥은 魏나라 王인 惠王에게 이렇게 말했다(謂魏王曰). “只今 한 사람이 달려와 ‘市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께서는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今一人言市有虎 王信之乎)”
惠王이 말했다(王曰).
“믿지 않는다(否).”
이에 龐蔥이 다시 말했다(龐蔥曰).
“그렇다면 두 사람이 나타나서 함께
‘市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믿으시겠습니까?(二人言市有虎 王信之乎)”
(惠王)이 말했다(王曰).
“寡人은 그것을 疑心할 것이네(寡人疑之矣).”
龐蔥이 다시 말했다(龐蔥曰).
“다시 세 사람이 와서 異口同聲으로
‘市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께서는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三人言市有虎 王信之乎)”
그러자 惠王이 對答했다(王曰).
“그렇다면 寡人은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겠지(寡人信之矣).”
이 말을 들은 龐蔥이 말했다(龐蔥曰).
“市場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가 없음은 世上 사람이 다 아는 事實입니다(夫市之無虎明矣).
그렇지만 繼續해서 세 사람이 한 목소리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호랑이는 나타난 것입니다(然而三人言而成虎).
只今 제가 太子를 모시고 가려는 趙나라 首都 邯鄲은 魏나라 大梁에서 市場과 떨어져 있는 것과 比較도 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입니다(今邯鄲去大梁也遠於市).
게다가 제가 朝廷을 비운 사이 저에 對해 이런저런 말을 할 사람은 셋 程度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而議臣者過於三人矣).
모쪼록 임금께서는 그것을 잘 判斷하시기 바랍니다.(愿王察之矣)”
惠王은 答辯을 하였다(王曰).
寡人은 그 뜻이 무언지를 알았소 (寡人自爲知).
그러나 오랜 時間이 지난 後 太子가 人質에서 풀려나서 龐蔥이 歸國하자 (後太子罷質)
魏王인 惠王은 側近들의 말에 眩惑되어 龐蔥을 만나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結局 龐蔥은 朝廷에 復歸하지 못했다(果不得見).
이로부터 三人成虎는 아무리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番 反復으로 듣게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가리키는 表現이 되었다.
* 曾參殺人(曾參殺人했다) -戰國策에
孔子의 弟子 가운데 46歲 年下인 曾參(曾子)이란 어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안은 무척 가난해 어머니가 베틀을 돌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曾參의 어머니는 아들을 굳게 믿어 疑心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베를 짜고 있을 때에 이웃 어떤 사람이 와서 아들 曾參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서
"어서 避하십시오" 라고 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어머니는 곧이듣지 않고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습니다.”하며 泰然히 베틀을 돌렸다. 暫時 後 다른 사람이 또 와서 “當身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오.” 라고 했다. 어머니는 亦是 “그럴 리가 없소.” 하며 如前히 베틀을 돌리고 있었다. 세 番째 사람이 달려와서 “曾參이 사람을 죽였답니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卽時 일어나 베틀을 자르고 담을 넘어 逃亡갔다고 한다. 이로부터 曾參殺人은 三人成虎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25. 삼종지도(三從之道) 三从之道
세 가지 따라야 할 道理. 옛날에 女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媤집을 가면 男便을 따르며, 男便이 죽으면 子息을 따르라는 뜻으로 하던 말이다.
「婦人에게는 세 가지 따라야 할 義가 있으며, 自己 마음대로 할 수 있는 道는 없다. 그러므로 媤집가기 前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媤집을 간 後에는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
(婦人有三從之義, 無專用之道. 故未嫁從父, 旣嫁從夫, 夫死從子.)」
* 儀禮 喪服傳에
(三從之德, 三從之禮라고도 한다)
26. 삼척동자(三尺童子)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 철이 없는 어리석은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다.
文治主義를 標榜한 宋나라 때에는 敎育과 商業이 發達하고 學問과 文化가 꽃을 피웠다. 하지만 文人 官僚制로 因한 軍士力의 弱化와 外交上의 失策으로 王朝 내내 危機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異民族인 契丹族의 遼나라, 黨項族 西夏, 女眞族의 金나라, 그리고 蒙古族의 元나라에 차례로 屈辱을 當했다. 結局 以夷制夷의 手法으로 遼나라에 對抗하기 爲하여 金나라와 聯合을 하였으나, 遼나라가 亡한 後 金나라에 시달리다가 結局 降服하여 皇帝는 金나라로 連行되고 北宋은 門을 닫고 말았다.
北宋이 金나라에 滅亡을 當하고, 抗州의 南宋 時代가 막을 올렸지만, 文弱한 南宋의 皇帝와 强化派 大臣들은 如前히 金나라와 强化 交涉을 推進하는 데에만 汲汲했다. 1138年, 金나라가 使者를 派遣하여 南宋이 稱臣하는 條件으로 强和를 要請했다. 秦檜는 이 條件을 받아들일 것을 積極的으로 檢討했다.
撫州軍事判官 胡銓이 反對 上書를 올렸다.
「키가 석 자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그에게 개와 돼지를 가리키며 절을 하도록 시키면 바로 발끈 성을 냅니다. 只今, 醜虜는 개나 돼지입니다.
(夫三尺童子至無知也, 指犬豕而使之拜則然怒. 今醜虜則犬豕也.)」
이 이야기는 呼銓의 上高宗封事에 나온다. ‘醜虜’는 더러운 오랑캐라는 뜻으로 敵軍을 蔑視하여 부르는 號稱이다. 南宋은 後에 새로 일어난 勢力인 蒙古族을 끌어들여 金나라를 滅亡시켰지만, 結局 蒙古族에 國土를 모두 내어 주고 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27. 상가지구(喪家之狗) 丧家之狗
상 가(喪家)집 개. 초라한 모습으로 떠돌아다니며 천대받는 사람을 比喩
孔子는 魯나라 定公 때 大司寇 (法務部長官)가 되었지만 王族 三桓에게 排斥當해 魯나라를 떠났다. 三桓은 當時 魯나라를 左之右之했던 季孫氏, 孟孫氏, 叔孫氏의 세 貴族 家門을 말한다. 以後 孔子는 自身의 理想을 實現시키기 爲해 十數 年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어떤 君主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孔子는 56歲에 鄭나라에 갔는데, 弟子들과 길이 어긋나 東門에서 弟子들이 찾아오기만을 莫然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어떤 鄭나라 사람이 스승을 찾아다니고 있는 子貢에게 自身이 본 孔子의 모습을 말했다. “東門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이마는 堯임금과 같았고 목은 皐陶와 같았으며 어깨는 子産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허리 밑으로는 禹임금보다 세 치나 짧았고, 그 憔悴한 모습은 마치 喪家집 개와 같았습니다.” 子貢은 다른 弟子들과 함께 孔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自身이 들은 이야기를 孔子에게 들려주니 孔子는 웃으면서 嘆息했다. “外貌는 그런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喪갓집 개와 같다는 말은 맞는구나, 맞아.”
(孔子適鄭, 與弟子相失, 孔子獨立郭東門. 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 其顙似堯, 其項類皐陶, 其肩類子産. 然自要以下不及禹三寸, 累累若喪家之狗. 子貢以實告孔子. 孔子欣然笑曰, 形狀, 末也. 而謂似喪家之狗, 然哉, 然哉.)」
이 이야기는 《史記 孔子世家》와 《孔子家語》에 나온다. 皐陶는 堯舜 때의 臣下로 法理에 밝아 法을 만들고 刑罰制度를 制定한 사람이며, 子産은 春秋時代 鄭나라 大夫였다. 喪갓집 개는 主人이 죽어 누구도 돌봐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굶주려 瘦瘠해지고, 남의 눈치를 보며 避해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오랫동안 떠돌아다닌 데다 政治的으로 失意에 빠진 孔子의 凄凉한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喪갓집 개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28. 상궁지조(傷弓之鳥) 伤弓之鸟
활에 다친 새. 어떤 일로 크게 놀라 그 뒤로는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고 警戒하는 것을 比喩
戰國時代 末葉 楚 · 趙 · 燕 · 齊 · 韓 · 魏 等 六國이 合縱의 盟約을 맺고 秦나라와 對峙했다. 이 時期 趙나라 王이 魏加를 楚나라에 보내 楚나라 丞相 春申君과 軍士同盟 問題를 協議하게 했다. 春申君을 만난 魏加가 물었다. “맡길 만한 將軍이 있습니까?” “있고말고요. 우리는 臨武君을 將軍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魏加가 말했다. “臣이 어릴 때부터 활쏘기를 좋아했는데, 활쏘기를 比喩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옛날에 更羸이 魏王과 京臺 아래에서 對話를 나누다가 새가 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大王, 저는 빈 활을 쏘아 새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暫時 後 기러기가 東쪽에서 날아왔습니다. 更羸이 빈 활의 시위를 당기자 기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魏王이 놀라 그 까닭을 묻자 更羸이 對答했습니다. ‘이 기러기는 傷處 입고 외로운 놈입니다.’ ‘先生은 어떻게 알았소?’ ‘나는 速度가 느리고 울음소리가 凄凉했습니다. 천천히 나는 것은 다쳤기 때문이고, 울음이 슬픈 것은 무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傷處가 아직 아물지 않고 놀란 마음도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위 소리만 듣고도 높이 날려고 하다가 (傷處가 도져)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臨武君은 일찍이 秦나라와 싸워서 졌으므로 秦나라를 막는 將軍이 될 수 없습니다.”
(魏加曰, 臣少之時好射, 臣願以射譬之, 可乎. 春申君曰, 可. 加曰, 異日者, 更羸與魏王處京臺之下, 仰見飛鳥, 更羸謂魏王曰, 臣爲王引弓虛發而下鳥. 魏王曰, 然則射可至此乎. 更羸曰, 可. 有閒, 鴈從東方來, 更羸以虛發而下之. 魏王曰, 然則射可至此乎. 更羸曰, 此孽也. 王曰, 先生何以知之. 對曰, 其飛徐而鳴悲. 飛徐者, 故瘡痛也. 鳴悲者, 久失群也. 故瘡未息而驚心未至也, 聞弦音引而高飛, 故瘡隕也. 今臨武君嘗爲秦孽, 不可爲拒秦之將也.)」
이 이야기는 《戰國策 楚策》에 나오는데, 魏加가 春申君에게 해 준, 다치고 무리를 잃은 기러기가 빈 활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에서 由來했다. 驚弓之鳥라고도 한다.
29. 상사병(相思病)
서로 생각하는 病. 男女 間에 못 잊어 그리워한 나머지 생기는 病을 말한다.
春秋時代 宋나라 康王이 絶世美人인 韓憑의 夫人 何氏를 빼앗았다. 韓憑이 이를 怨望하자 그를 가두고 城旦의 刑罸에 處했다. 韓憑의 아내는 男便을 못 잊어 다음과 같은 便紙를 보냈다. “비가 많이 내려 江은 넓어지고 물은 깊어졌는데, 해가 뜨면 마음을 먹을 것입니다.
(其雨淫淫, 河大水深, 日出當心.)”
그런데 이 便紙는 傳達되지 못하고 王의 손에 들어갔다. 王이 左右에 便紙의 뜻을 묻자, 蘇賀가 對答했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말은 근심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고, 江이 넓어지고 물이 깊어졌다는 말은 서로 來往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며, 해가 뜨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은 죽을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其雨淫淫, 言愁且思也. 河大水深, 不得往來也, 日出當心, 心有死志也.)”
얼마 後 韓憑이 自殺했다. 何氏는 隱密히 自己 옷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고서, 王과 함께 樓臺에 올랐을 때 아래로 몸을 던졌다. 左右에서 急히 붙잡았으나 옷자락만 끊어지고 사람은 아래로 떨어졌다. 띠에는 다음과 같은 遺言이 적혀 있었다. ‘王은 사는 것을 幸福으로 여기지만 妾은 죽는 것을 幸福으로 여깁니다. 屍身을 (韓憑과)合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火가 난 王은 사람을 시켜 무덤을 서로 바라보도록 만들게 하고 말했다. “너희 夫婦의 사랑이 끝이 없다면 무덤을 하나로 合쳐 보아라. 그것까지는 내가 막지 않겠다.”
「그날 밤 두 그루의 개梧桐나무가 各各의 무덤 끝에 나더니, 열흘도 안 되어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몸體가 구부러져 서로에게 다가가고 아래로는 뿌리가 서로 맞닿았다. 그리고 나무 위에는 한 雙의 鴛鴦새가 앉아 하루 終日 떠나지 않고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宋나라 사람들이 다 슬퍼하며 그 나무를 相思樹라고 이름 지었다. ‘相思’라는 말은 여기에서 由來하였다. 南人들은 이 새가 바로 韓憑 夫婦의 넋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수양(睢陽)에는 韓憑城이 있고, 그 노래도 如前히 存在하고 있다.
(宿昔之間, 便有大梓木, 生於二冢之端, 旬日而大盈抱, 屈体相就, 根交於下, 枝錯於上. 又有鴛鴦, 雌雄各一, 恒栖樹上, 晨夕不去, 交頸悲鳴, 音聲感人. 宋人哀之, 遂號其木曰相思樹. 相思之名, 起於此也. 南人謂, 此禽卽韓憑夫婦之精魂. 今睢陽有韓憑城, 其歌謠至今猶存.)」
* 東晉의 干寶가 지은 搜神記에.
‘想思樹’는 紅豆樹라고도 한다. 이 나무의 열매인 紅豆는 相思子라고도 하며, 中國의 古代 文學作品에서 男女가 서로 그리워하거나 親舊 間에 보고 싶어하는 情을 表現하는 데 많이 쓰였다. 이의 代表的인 作品으로는 唐나라 王維의 詩 相思를 들 수 있다.
紅豆生南國 : 紅豆는 南쪽 나라에서 자라는데
春來發幾枝 : 봄이 오니 가지들이 새로 돋았네.
願君多采擷 : 그대 이 열매를 많이 따 가져가시게
此物最相思 : 이것이 그리움을 가장 돋우는 物件이라오.
30.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다. 世上이 몰라볼 程度로 바뀐 것을 比喩
漢나라 桓帝 때, 字를 方平이라 하는 神仙 王遠이 蔡經의 집에 降臨했다. ······ (方平은) 蔡經의 父母, 兄弟와 서로 人事한 後, 오랫동안 홀로 앉아 있다가 사람을 시켜 麻姑를 오게 했다. 얼마 後에 麻姑가 오자 蔡經의 全 家族이 그女를 맞이했다. 麻姑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나이는 18, 19歲 程度였고 머리에 쪽을 쪘는데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옷에는 彩色의 무늬가 있었는데 緋緞은 아니었지만 光彩가 눈부셨으며, 그女의 形態를 形容하기가 어려웠다. 麻姑는 들어와 王方平에게 절을 했고, 王方平은 일어나 그女를 맞이했다. 자리에 앉은 다음 麻姑는 지니고 온 飮食物을 가져오게 했는데, 金 錚盤에 玉으로 만든 盞이었고, 飮食은 모두 果實 種類로 그 香氣가 室內에 가득 퍼졌다. 그 女는 고기 말린 것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면서 麒麟의 脯라고 했는데, 마치 側柏나무 열매 같았다.
「麻姑가 말했다. “제가 神仙님을 모신 이래로 東海가 세 番이나 뽕나무 밭으로 變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番에 蓬萊에 갔더니 바다가 以前의 半 程度로 얕아져 있었습니다. 다시 陸地가 되려는 것일까요?” 王方平이 말했다. “東海는 다시 흙먼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聖人들이 말씀하셨소.”
(麻姑謂王方平曰, 自接待以來, 見東海三變爲桑田. 向到蓬萊, 水乃淺於往者略半也. 豈復爲陵乎. 王方平曰, 聖人皆言, 東海行復揚塵耳.)」
이 이야기는 葛洪의 《神仙傳》에 나오는데, 東海가 여러 번 뽕나무밭으로 변했다는 麻姑의 말에서 ‘桑田碧海’가 由來했다.
‘桑田碧海’는 유희이(劉希夷), 一名 유정지(劉庭芝)의 詩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 老人을 代身하여 白髮을 슬퍼하는 노래)에도 나온다.
洛陽城東桃李花 : 洛陽城 東쪽에 핀 복사꽃 오얏꽃
飛來飛去落誰家 : 바람에 흩날려 뉘 집에 떨어지는가!
洛陽女兒惜顔色 : 洛陽의 女子들 고운 얼굴 아까운지
行逢落花長歎息 : 만나는 女子마다 長嘆息을 하누나.
今年落花顔色改 : 올해 꽃이 지면 얼굴빛 바뀌리니
明年花開復誰在 : 明年에 꽃이 피면 누가 또 남아 있으려나
已見松栢摧爲薪 : 松栢 꺾여 땔나무 되는 것 보았고
更聞桑田變成海 : 뽕나무 밭이 變해 푸른 바다 된다고 들었네
古人無復洛城東 : 옛사람 자취 洛陽 東쪽에 없는데
今人還對落花風 : 사람들은 如前히 꽃잎 떨어뜨리는 바람을 맞네
年年歲歲花相似 : 해마다 피는 꽃 다를 게 없건만
歲歲年年人不同 :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가 않네
寄言全盛紅顔子 : 잘나가는 젊은이들 付託 하나 하세
應憐半死白頭翁 : 黃昏의 흰머리 늙은이 가엽게 여기시게
此翁白頭眞可憐 : 늙은이의 센머리 可憐하지만
伊昔紅顔美少年 : 이래 봬도 옛날엔 紅顔의 美少年
公子王孫芳樹下 : 香氣로운 나무 아래 貴公子들은
淸歌妙舞落花前 : 떨어지는 꽃 아래 노래하고 춤추네
光祿池臺開錦繡 : 光祿大夫의 樓臺엔 繡놓은 緋緞 걸고
將軍樓閣畵神仙 : 將軍의 樓閣엔 神仙 그림 걸렸네
一朝臥病無相識 : 하루아침 病들면 알 길 없고
三春行樂在誰邊 : 九十春光 즐거움은 누구 옆에 있는가
宛轉蛾眉能幾時 : 고운 얼굴 몇 날이나 되겠는가
須臾鶴髮亂如絲 : 瞬息間에 흰머리 흐트러진 실이 된다네
但看古來歌舞地 : 예부터 춤추고 노래하던 땅에
惟有黃昏鳥雀悲 : 저녁 되자 새들만 서럽게 우네
‘桑田碧海’는 滄海桑田, 滄桑之變, 桑滄之變이라고도 하며, 丘陵이 溪谷으로 變했다는 뜻의 ‘陵谷之變’, 높은 언덕이 깊은 골짜기로 變했다는 뜻의 ‘高岸深谷’ 等으로도 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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