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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漢字成語)**/고사성어(故事成語)

고사성어(故事成語) (ㅅ-5 상하기수~ )

by 산산바다 2026. 3. 6.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5 상하기수~ )

 

 

31. 상하기수(上下其手)

손을 위와 아래로 하다. 손을 위와 아래로 들어 信號를 해 준다는 것으로, 權勢阿附하려거나 私事로운 에 얽매여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잘못을 뒤바뀌게 만드는 것을 比喩

 

BC547, 나라가 나라를 쳤다. 나라에서는 皇頡出戰했다가 나라의 穿封戍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를 본 楚康王同生 公子 圍捕虜를 빼앗아 自己 功으로 삼으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太宰 伯州犁에게 判決을 받기로 했다.

 

伯州犁捕虜에게 물어보자고 말하고는, 捕虜를 세워 놓고 손을 위로 들면서 말했다. “이분은 公子 圍, 우리 大王한 아우님이시오.” 그리고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이 사람은 穿封戌이라 하는데, 우리 方城 郊外縣監이오. 누가 그대를 사로잡았소?”

(乃立囚, 伯州犁上其手, , 夫子爲王子圍, 寡君之貴介弟也. 下其手, , 此子爲穿封戌, 方城外之縣尹也. 誰獲子.)

 

皇詰對答했다. “나는 이 公子를 만나 이기지 못하여 이렇게 된 것입니다.” 穿封戌은 옆에 서 있다가 대로하여 武器를 걸어 놓은 顯盤에서 을 꺼내어 들고 公子 圍를 찔러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公子 圍가 놀라 달아나자 穿封戌繼續해서 그 뒤를 쫓아갔으나 잡지 못했다. 伯州犁가 다시 그들의 뒤를 따라가서 두 사람을 달래어 다시 뜰 안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康王에게 報告하고 그 을 둘로 나누어 두 사람에게 주고 다시 술자리를 마련하여 서로 和解를 하도록 하였다.

 

이 이야기는 左傳 襄公 26에 나오는데, 伯州犁公子 圍를 가리킬 때는 손을 위로 하고 穿封戌을 가리킬 때는 손을 밑으로 하여 信號를 해 준 데서 由來하여, 私事로운 에 얽매여 사람의 잘잘못을 歪曲하여 庇護한다는 뜻의 上下其手라는 말이 나왔다.

 

 

32. 새옹지마(塞翁之馬) 塞翁之马

邊方 늙은이의 말. 이 되고, 가 되는 等 吉兇禍福變化가 잦은 것을 比喩

 

邊方 近處을 잘 치는 한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그의 말이 까닭도 없이 오랑캐 땅으로 逃亡쳐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慰勞하자 老人이 말했다. “이것이 무슨 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몇 달이 지난 , 말이 오랑캐의 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祝賀하였다. 그러자 老人이 말했다. “그것이 무슨 가 될는지 어찌 알겠소?”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말타기를 좋아하던 老人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慰勞했다. 老人이 말했다. “이것이 或是 福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1이 지난 , 오랑캐들이 大巨 要塞에 쳐들어오자 壯丁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갔다. 邊方 近處의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죽었는데, 이 사람은 다리가 病身인 까닭에 父子가 모두 無事할 수 있었다.

(近塞上之人, 有善術者.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弔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居數月, 其馬將胡駿馬而歸. 人皆賀之,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禍乎. 家富良馬, 其子好騎, 墮而折其脾. 人皆弔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引弦而戰. 近塞之人, 死者十九, 此獨以跛之故, 父子相保.)

 

淮南子 人生訓에 나오는데, 이로부터 邊方 老人의 말이란 뜻의 塞翁之馬由來했다. 이 이야기는 다른 板本도 있는데, 內容大同小異하며 末尾에 다음과 같은 內容이 덧붙어 있다.

가 되고 이 되는 , 變化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豫測할 수가 없는 것이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33.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알다. 代名詞, ‘그 어떤 것을 가리킨다.

 

孔子가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이 最上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며, 막힘이 있어 배우는 것은 그 다음이다. 막힘이 있어도 배우지 아니하는 것은 最下이다.”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이 이야기는 論語 季氏에 나오는데, 孔子의 말에서 生而知之에도 배워서 안다는 뜻의 學而知之, 막힌 다음에야 비로소 배운다는 뜻의 困而學之等成語由來했다. ‘生而知之韓愈師說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옛날의 工夫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라는 사람은 이로써 해 주고, 學業傳授해 주며, 疑惑을 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없으니 누가 疑惑이 없을 수 있겠는가? 疑惑이 있으면서도 스승을 좇지 아니하면 그 疑惑됨이 끝내 풀리지 않는다. 내 앞에 태어나서 를 들음이 眞實로 나보다 먼저이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내 뒤에 태어났어도 를 들음이 亦是 나보다 먼저이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나는 를 스승으로 삼으니 어찌 그 나이의 나보다 先後에 태어남을 알아야 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함도 없고, 함도 없으며, 나이 많음도 없고 나이 적음도 없으며, 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嗚呼! 師道해지지 않음이 오래되었으니, 사람의 疑惑이 없고자 함이 어렵구나. 聖人은 그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이 멀었지만(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오히려 또한 스승을 좇아 물었다. 只今의 많은 사람들은 聖人보다 못함이 亦是 멀지만(聖人보다 훨씬 못하지만)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런 까닭에 聖人은 더욱 聖人이 되고, 어리석은 는 더욱 어리석게 된다. 聖人聖人이 되는 까닭, 어리석은 가 어리석은 가 되는 까닭이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가!

 

自己 子息을 사랑하면 스승을 選擇하여 子息을 가르치지만, 自己 몸에 해서는 스승을 모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니 疑問이로다. 저 아이의 스승은 그에게 글을 傳授하고 글 句節解讀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 내가 말한 바 그 傳授하고 그 疑惑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다. 文章 解讀을 못하거나 疑惑을 풀지 못하면 은 스승을 좇기도 하고 은 그러지 않기도 하는데, 이는 작은 것을 배우고 큰 것을 버리는 것으로 나는 아직 그런 사람들의 밝음을(賢明함을) 보지 못했다.

 

무당이나 醫師, 藥師, 온갖 工業從事하는 사람들은 서로 스승 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士大夫 族屬들은 스승이라 말하고 弟子라 말하는 사람을(서로 스승이니 弟子니 하면) 모여서 비웃는다. 그들에게 (그 까닭을) 물으면 저 사람과 저 사람은 나이가 서로 같다. 가 서로 비슷하다.”고 한다. 地位가 낮으면 부끄럽고, 官職이 높으면 가까이 다가가 阿諂한다고 여긴다.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 階級이 낮으면 배우는 내가 부끄럽고, 官職이 높으면 가까이하고 阿諂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嗚呼! 師道가 다시 回復되지 못할 것을 알 수 있겠구나. 무당이나 醫師, 藥師, 온갖 工業從事하는 사람들을 君子蔑視하지만, 只今 智慧는 오히려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傀異하도다.

 

聖人一定한 스승이 없다. 孔子郯子, 萇弘, 師襄, 老聃에게 배웠다. 郯子의 무리들은 그 賢明함이 孔子에 미치지 못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사람이 길을 가면 ()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이런 까닭에 弟子가 스승과 같지 않을 必要가 없고(스승보다 못해야 할 必要가 없고), 스승이 반드시 弟子보다 賢明해야 할 必要가 없는 것이다. 를 들음에는 先後가 있고, 技術學業에는 傳攻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 李氏의 아들 은 나이가 17인데 古文을 좋아하여 六藝經典을 모두 다 工夫했으며, 世態拘碍받지 않고 나에게 배웠다. 나는 그가 히 옛 하는 것을 嘉尙히 여겨 師說을 지어 그에게 준다.

(古之學者必有師.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爲惑也, 終不解矣. 生乎吾前, 其聞道也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是故無貴無賤, 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衆人, 其下聖人也亦遠矣, 而耻學於師. 是故聖益聖, 愚益愚. 聖人之所以爲聖, 愚人之所以爲愚, 其皆出於此乎. 愛其子, 擇師而敎之, 於其身也, 則耻師焉, 惑矣.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巫醫樂師百工之人, 不耻相師. 士大夫之族, 曰師曰弟子云者, 則群聚而笑之. 問之, 則曰, 彼與彼年相若也, 道相似也. 位卑則足羞, 官盛則近諛. 嗚呼. 師道之不復可知矣. 巫醫樂師百工之人, 君子不齒, 今其智乃反不能及, 其可怪也歟. 聖人無常師. 孔子師郯子萇弘師襄老聃. 郯子之徒, 其賢不及孔子. 孔子曰, 三人行, 則必有我師. 是故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聞道有先後, 術業有專攻, 如是而已. 李氏子蟠, 年十七, 好古文, 六藝經傳, 皆通習之, 不拘於時, 學於余. 余嘉其能行古道, 作師說以貽之.)

 

 

34. 서리지탄(黍離之嘆) 黍离之叹

茂盛한 기장에 대한 嘆息. 나라가 하고 난 뒤 옛 宮殿 터에 茂盛하게 자란 기장을 보고 하는 嘆息. , 世上의 영고성쇠(榮枯盛衰)富貴榮華無雙한 것을 嘆息하는 것을 말한다.

 

* 詩經 · 王風 서리(黍離). 65. 黍離(서리)-詩經王風(시경왕풍)

기장은 우겨졌는데

彼黍離離 : 저 기장 이삭이 茂盛하고

彼稷之苗 : 저 피에 싹이 났다.

行邁靡靡 : 길 가는데 더디고 느리며

中心搖搖 : 마음속은 흔들린다.

知我者 : 나를 아는 사람은

謂我心憂 : 마음속에 근심이 있다고 말하고

不知我者 :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謂我何求 : 무엇을 찾는지 묻는다.

悠悠蒼天 : 아득한 저 푸른 하늘이여

此何人哉 : 누가 이렇게 하였는가?

 

朱子는 이 해 다음과 같이 說明했다.

나라가 首都를 옮기고 나서 大夫들이 賦役을 나갔다가 옛 都邑에 이르러 보니 宗廟宮闕은 없어지고 그곳에 기장이 茂盛하게 자라 있었다. 이를 보며 나라 王室權威가 땅에 떨어진 것을 슬피 여기면서 떠나지 못하고 恨嘆하였다.

黍離之嘆黍離之悲라고도 한다.

 

 

35. 서제막급(噬臍莫及) 噬脐莫及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 番 機會를 잃으면 아무리 後悔해도 所用 없다는 것을 比喩

 

나라 文王나라를 討伐하러 갈 때 나라를 지났다. 나라 祈侯는 조카가 왔다면서 楚文王을 맞이하고 宴會를 베풀어 接待했다. 雛甥, 聃甥, 養甥楚文王을 죽이라고 要請하였으나 鄧侯許諾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말했다. “나라를 滅亡시킬 사람은 이 사람일 것입니다. 萬若 일찍 圖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께서는 크게 後悔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때에 圖謀하십시오. 圖謀하려면 只今이 바로 그때입니다.” 鄧侯가 말했다. “(내가 楚文王을 죽인다면) 사람들은 내가 먹다 남긴 飮食도 먹지 않을 것이다.” 세 사람이 말했다. “萬若 저희 세 臣下의 말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나라가 하여 社稷祭祀를 받지 못할 것인데, 께서 무슨 남길 飮食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鄧侯는 듣지 않았다. 나라를 討伐하고 돌아오던 해에 楚文王나라를 쳤고, 16나라는 다시 나라를 쳐 滅亡시켰다.

(楚文王伐申, 過鄧. 鄧祈侯曰, 吾甥也, 止而享之. 鵻甥聃甥養甥請殺楚子, 鄧侯弗許. 三甥曰, 亡鄧國者, 必此人也. 若不早圖, 後君噬臍. 其及圖之乎. 圖之, 此爲時矣. 鄧侯曰, 人將不食吾餘. 對曰, 若不從三臣, 抑社稷實不血食, 而君焉取餘. 弗從. 還年, 楚子伐鄧, 十六年, 楚復伐鄧, 滅之.)

 

이 이야기는 左傳 莊公 6에 나온다. ‘噬臍莫及은 사슴이 스스로 제 배꼽을 물어뜯으려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는 말인데, 麝香노루가 붙잡히는 것은 그 배꼽 내 때문이라 생각해 배꼽을 물어뜯었다는 데서 由來했다고 한다.

 

 

36. 석권(席卷)

자리를 말다. 멍석을 말듯이 領土하거나 무서운 氣勢勢力을 펼치는 것을 比喩하는 말이며, 오늘날에는 어떤 分野自己 손아귀에 넣는 것을 말한다.

 

劉邦으로부터 關中接收함으로써 天下爭覇하게 된 項羽BC206年 西楚建國하고, 스스로 楚覇王이라 했다. 이로써 나라는 秦始皇天下統一한 지 16만에 完全히 막을 내렸고, 天下項羽의 손아귀로 떨어진 듯 보였다.

 

楚覇王 項羽謀士 范增計策에 따라 楚懷王義帝擁立하고 18諸侯王했다. 그리고 危險人物劉邦中原에서 永遠히 쫓아내기 漢王으로 하고 巴蜀 땅으로 보냈다. 이때 魏豹魏王해졌다. 그러나 劉邦陳倉을 건너 進擊해 오자 魏豹劉邦 便에 붙어 項羽首都彭城陷落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다가 劉邦項羽에게 彭城을 빼앗기고 守勢에 몰리자 劉邦背叛하고 項羽 便에 붙었다. 機會를 보아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는 魏豹奸邪스러운 態度憤慨劉邦韓信에게 魏豹討伐하게 하였다. 韓信에게 生捕魏豹劉邦命令해 죽음을 하고 말았다.

 

彭越나라 末期 마을 靑年들을 이끌고 蜂起했는데, 劉邦을 도와 楚覇王 項羽와 맞섰다. 彭越로 치고 빠지는 遊擊作戰으로 項羽軍隊를 끊임없이 괴롭혔는데, 이로 項羽는 큰 打擊을 입었다. 劉邦滎陽에서 項羽에게 大敗하고 겨우 목숨을 건진 다시 일어나 項羽對等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로부터 힘의 均衡劉邦 쪽으로 기운 것은 純全彭越 德分이었다. 劉邦項羽最後戰鬪垓下의 싸움에서 彭越自身에게 나라 땅을 주겠다는 劉邦約束을 믿고 麾下軍士를 모두 이끌고 參戰하여 나라를 깨뜨리는 데 一益擔當했다.

 

BC202(漢王 5) 項羽滅亡한 다음 劉邦約束대로 彭越梁王했다. 梁王 彭越漢高祖 劉邦에게 臣下로서의 忠誠을 다하며, 5年間平和로운 歲月을 보냈다. 그런데 彭越혀 생각하지 않았던 部分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漢王 11(BC196) 가을, 陳豨에서 叛逆을 일으켰다. 漢高祖 劉邦親征에 나서 邯鄲으로 가, 梁王 彭越에게서 軍士徵拔했다.

 

梁王 彭越하고 部下 將軍에게 軍士를 주어 邯鄲派遣했다. 漢高祖 劉邦大怒하여 사람을 보내 梁王問責했다. 梁王이 두려워하여 몸소 나가 皇帝에게 謝過를 하려고 하자, 將軍 扈輒이 말렸다. “처음부터 가지 않고 問責을 받은 다음에 가시려고 하나, 只今 가시면 捕虜가 될 것입니다. 軍士를 움직여 叛逆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梁王 彭越太僕梁王에게 를 짓고 나라로 逃亡하여 梁王扈輒謀叛을 꾀한다고 해바쳤다. 漢高祖 劉邦不時梁王을 쳤다. 劉邦攻擊豫測하지 못했던 梁王捕虜로 잡혀 洛陽監禁되었다. 問招結果, 謀叛한 자취가 分明했다. 에 따라 處理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劉邦梁王容恕하고 廢庶人, 驛馬靑衣로 보내어 그곳에 있도록 했다.

 

梁王西에까지 갔을 때, 마침 長安에서 洛陽으로 가던 呂后 (漢高祖 劉邦皇后)를 만나게 되었다. 梁王은 울면서 自身가 없음을 呼訴하고, 故鄕 昌邑에서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呂后는 그렇게 해 주겠다며 그를 데리고 洛陽으로 돌아가 漢高祖 劉邦에게 말했다. “梁王壯士인데, 이제 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일을 만들어서 두고두고 를 남기는 일입니다.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다시 데려왔습니다.” 마침내 彭越과 그의 三族滅門를 입게 되었다. 彭越屍體는 소금에 절여졌고, 갈기갈기 찢겨 그릇에 담겨 諸侯들에게 보내졌다.

 

司馬遷魏豹彭越 이 두 사람을 하나의 記錄했는데, 이들에 해서 太史公曰에서 다음과 같이 했다.

 

太史公은 말한다. 魏豹彭越身分卑賤한 집안 出身이었지만 千 里의 땅을 말아 차지하고 쪽을 바라보며 했다(노릇을 했다). 이들은 피를 밟고 勝氣를 타서 나날이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러나 叛逆할 마음을 품었다가 失敗하자 죽지 않고 붙들려서 刑罰을 받았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中間 程度 되는 才能을 가진 도 이러한 行爲를 부끄럽게 여기거늘, 하물며 노릇을 하던 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기에는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다. 智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들이지만, 오직 自己 몸을 保存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이 蒸發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때를 만나 자신들의 뜻을 펼쳐 보려고 했기 때문에 갇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太史公曰, 魏豹彭越雖故賤, 然已席卷千里, 南面稱孤. 喋血乘勝日有聞矣. 懷畔逆之意, 及敗, 不死而虜囚, 身被刑戮, 何哉. 中材已上且羞其行, 況王者乎. 彼無異故. 智略絶人, 獨患無身耳. 得攝尺寸之柄, 其雲蒸龍變, 欲有所會其度, 以故幽囚而不辭云.)

 

이 이야기는 史記 魏豹彭越列傳에 나오는데, 司馬遷의 이들에 에서 席卷이란 말이 由來했다

 

 

37. 선견지명(先見之明)

앞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眼目이라는 뜻으로, 將來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 에 미리 앞을 내다보고 아는 智慧나 슬기로움을 말한다.

 

中國 漢나라의 歷史書 中 後漢歷史를 담은 後漢書에 나와 있는 故事成語로서 그 由來는 다음과 같다.

나라의 將帥霍去病쪽의 匈奴侵攻했을 때, 김일제(金日磾)라는 匈奴族 王王子가 있었는데, 그는 投降拒否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殺害當自身의 아버지와 달리 14의 나이에 싸워봤자 개죽음을 戰爭이란걸 깨달은 金日磾降伏하여 漢武帝宮闕에서 말을 돌보며 살게 되었다.

보는 사람의 觀點에 따라서는 卑屈王子였을 지 모르지만, 싸워봤자 개죽음을 할 것을 뻔히 알면서 無謀하게 抗戰하다가 自己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部下조차 떼죽음을 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임을 어린 나이임에도 깨달았던 것이다. 當時 匈奴族匈奴族勇猛함을 强調하며 無謀戰爭敢行했으나 結局全滅當하고 말았던 것을 어린 王子는 알았던 것이다.

그러했기에 王子 金日磾,14살이란 나이에 싸워봤자 개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後日圖謀하고자 그대로 投降하였다. 王子 한 사람의 投降으로 그를 따르던 수많은 部下들까지 떼죽음을 하지 않고 모두 목숨을 保全할 수 있었다. 敗北할 것이 뻔한 戰爭事前하여 自身 뿐만 아니라 自身을 따르던 모든 部下들의 목숨까지 事前에 지켜낸 것은 眞正先見之明의 본보기이다.

三國志에서 先見之明1人者選定한다면 觀點에 따라 다르겠지만 '三國志演義' 中心으로 본다면 旦然 諸葛亮이 아닐까? 1次 北伐戰街亭 戰鬪에서 泣斬馬謖先鋒將 選拔 失敗唯一이라지만 그의 智略, 最高 司令官으로서의 統率力, 天文地理通達面貌, 法家基盤으로한 뛰어난 政治家, 自身이 죽은 以後의 일까지 豫見하는 豫知에 가까운 人物境地에 이를 만큼이다.

 

 

38. 선공후사(先公後私)

사사로운 일이나 이익보다 공익·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적인 일은 뒤로 미룬다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戰國時代 末期 趙 나라 惠文王 時節 인상여(藺相如)라는 忠臣이 있었다.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後悔하지 않을 程度의 가까운 親舊意味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 故事主人公으로 인상여(藺相如)信任을 얻기 까지는 한 大臣食客에 지나지 않았다. 强國 秦 나라가 을 내는 和氏之璧을 온전(穩全)히 지킨데다 민지(澠池)라는 곳에서 진()과 조() 會同이 있었을 때 羞恥를 당할 뻔한 惠文王을 지켜낸 上卿이란 地位를 얻게 되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라를 위해 피땀을 흘린 名將 염파(廉頗)는 세 치 혀로 벼락 出世藺相如가 아니꼬웠다. 그래서 염파(廉頗)는 만나면 치욕(恥辱)을 안겨 주리라 公言했고 이를 해들은 藺相如廉頗해 다녔다. 그는 側近들이 不平을 늘어놓자 말했다. "내가 秦王도 맞섰는데 廉 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 두 사람이 있어 이 넘보지 못한다. 나라의 危急함을 먼저 생각하고 私事로운 怨望을 뒤로하기(以先國家之急而 後私讎也)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염파(廉頗)는 부끄러워 하며 깊이 謝罪했고 깊은 友情後世까지 기리게 됐다.

 

 

39. 선사좌우(善事左右)

() 左右에 있는 를 잘 섬기다. 스스로 實力을 키우거나 能力發揮할 생각은 하지 않고 權力이나 힘 있는 側近에게 阿附를 하거나 뇌물(賂物)을 써 利益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比喩하는 말이다.

 

나라 卽墨大夫를 불러 말했다. “그대가 卽墨에 거한 날부터 誹謗하는 말이 每日 들렸소. 그러나 내가 사람을 시켜 卽墨을 살펴보게 했더니 밭과 들은 開墾되어 넓어졌고, 百姓들도 살림이 넉넉해졌으며, 邊境 또한 조용해졌소. 이는 그대가 나의 左右를 섬겨 도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를 萬戶했다. 그러고는 大夫를 불러 말했다. “그대가 를 지키기 始作한 날로부터 稱讚하는 말이 每日 들렸소. 내가 사람을 시켜 를 살펴보게 했더니 밭과 들은 開墾되지 않고, 百姓들은 가난하고 굶주렸소. 지난날 나라가 견()侵攻했을 때 그대는 하지도 않았소. 나라가 薛陵을 빼앗았는데 그대는 알지도 못했소. 이는 그대가 禮物로 나의 左右를 섬겨 稱讚했기 때문이오.” 이날 大夫側近 中에 그를 稱讚했던 들을 모두 삶아 죽였다. 그러자 臣下들이 히 두려워했으며, 히 꾸미거나 속이지 않고 힘써 뜻을 다했으며, 나라는 크게 다스려져 天下强國이 되었다.

(齊威王召卽墨大夫, 語之曰, 自子之居卽墨也, 毁言日至. 然吾使人視卽墨, 田野辟, 人民給, 官無事, 東方以寧. 是子不事吾左右以求助也. 封之萬家. 召阿大夫, 語之曰, 自子守阿, 譽言日至. 吾使人視阿, 田野不辟, 人民貧餒. 昔日趙攻鄄, 子不救. 衛取薛陵, 子不知. 是子厚幣事吾左右以求譽也. 是日, 烹阿大夫及左右嘗譽者. 於是群臣聳懼, 莫敢飾詐, 務盡其情, 齊國大治, 强於天下.)

 

이 이야기는 資治通鑑에 나오는데, 大夫正常的으로 任務遂行하지 않고 側近들에게 賂物을 바쳐 稱讚을 구한 데서 善事左右由來했다.

 

 

40.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

中國 元나라 때 있었던 實話, 바로 人間이 취해야 할 愼其獨意味이다.

 

어떤 마을에 한 漁夫가 살았는데, 그는 너무나도 착하고 어질어서 없이도 살 수 있는 程度였다.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信望이 두터웠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고을에 새로운 님이 赴任했다. 그는 嫉妬心이 많고 暴惡性格所有者였다.

 

그는 고을에 한 착한 漁夫德望이 높고 고을사람들의 信任을 얻고 있다는 事實을 알고, 어떻게 하면 漁夫除去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妙案을 하나 짜 내게 되었다.

漁夫의 집 앞에 몰래 物件을 가져다 놓고 漁夫物件을 가져가면 陋名을 씌워 죽일 計劃을 이었다.

째로 님은 漁夫의 집 앞에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그 漁夫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쌀가마니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두 째로 最高級 緋緞漁夫의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結果는 마찬가지였다. 몸이 달대로 달은 님은 最後手段으로 커다란 송아지 한 마리를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그 마저도 하지 않았다. 漁夫는 끝내 손끝 하나 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行動님은 이렇게 말 하였다. “善漁夫非取!, 착한 漁夫物件하지 않는구나!” 크게 感銘을 받은 님은 그 漁夫自身의 옆에 登用하여 厚德함과 淸廉함으로 고을을 다스렸다고 한다. 故事成語當時 中國 全域에 퍼졌고, 실크로드를 타고 書域까지 해졌으며, 英國美國 까에도 해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있을 때일수록 삼가고 操心하라는 愼其獨의 가르침이다.

이 말은 中庸天命 第2, 大學傳 第6에 나온다. 앞의 에는 故君子愼其獨也.”로 나오고, 뒤의 에는 故君子必愼其獨也.”推加되어 있다. 에 쓰인 글이 新奇程度로 같은 理由는 두 著者가 다 孔子弟子 子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愼獨'原文'愼其獨'이다. 가운데의 ''는 앞글에서는 ''를 가리키고, 뒷글에서는 '明德'을 가리키는 代名詞이다. '''明德'事實上 같은 뜻이다. , ‘君子愼其獨이란 '君子또는 明德하여 愼重히 하라'는 뜻이며, 儒家의 가장 重要修養 方法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茶山 丁若鏞 (1762~1836), 卽 上帝鬼神形像도 소리도 없는 存在이나 또한 降臨하여 恒常 人間들을 낱낱이 굽어보고 있으니, 바로 이러한 事實을 알아 어두운 이나 혼자 있을 때에도 戒慎恐懼하는 것이 바로 愼獨인 것이다.”라고 하늘과 ·鬼神關聯하여 愼獨說明하고 있다.

 

이러한 愼獨槪念하여 中國郭沂 敎授는 다음 세 가지로 說明하고 있다.

첫째, 戒慎恐懼 하야야 하는가?

戒愼恐懼는 늘 警戒하고 삼가하며 두려워하는 態度를 말한다. 儒家에서는 모든 것을 自身 속에서 찾기 때문에 自我修養自我實現强調한다. 君子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關係없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함없이 誠心으로 생각하고 行動한다. 그래서 君子戒愼恐懼必要性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凡夫에게 必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費而隱特性을 지니고 있다.

이는 君子廣大하면서도 隱密하고 微細하다.’는 뜻입니다. 君子하는 中庸는 남의 눈에 안 띄지만 없이 넓고 커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 內容隱微하여 눈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聖人도 모르는 部分이 있고, 實行하지 못하는 部分이 있다. 오히려 君子는 모르거나 實行하지 못하는 部分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君子는 모르는 하여도 謙虛하게 戒愼恐懼해야 한다는 意味이다.

셋째, ‘혼자, 홀로라는 뜻이 아니다.

독은 오로지. 오직이라는 副詞의 뜻이라고 한다. 隱微한 것이기 때문에 小人은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으며, 오직 君子만이 알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君子慎其獨也오직 君子만이 또는 明德하여 敬畏의 마음을 지닐 수 있다.

나라의 착한 漁夫처럼 善漁夫非取하고, 愼其獨해야 한 平生 두 다리 쭉 뻗고 자며 圓滿一生을 마치지 않을까.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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