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ㅅ-7 수불석권~ )
51. 수불석권(手不釋卷) 手不释卷
손에서 冊을 놓지 않다. 恒常 손에 冊을 들고 부지런히 工夫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江表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孫權이 呂蒙과 蔣欽에게 말했다. “卿들은 이제 權限을 가지고 國家 大事를 맡게 되었으니 工夫를 해서 知識을 含養해 두는 것이 어떻겠소?” 呂蒙이 대꾸했다. “軍 안에 恒常 일이 많아 冊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내가 卿에게 經學을 工夫하여 博士라도 되라고 하는 줄 아는 貌樣이구려. 다만 지난 일들 (先人들이 남긴 記錄)을 涉獵하라는 것이오. 卿이 할 일이 많다고는 하지만 나보다 많기야 하겠소? 나는 어릴 적에 詩經, 西經, 禮記, 左傳, 國語를 읽었고 周易만을 읽지 못했다오. 業務를 統率한 이래 三史와 모든 兵書를 살펴보았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큰 利益이 되는 것 같소. 두 분 卿들은 性情이 聰明하고 理解力이 있어 工夫하면 반드시 얻게 될 것인데 어찌 하려고 하지 않는 거요?
當場 孫子, 六韜, 左戰, 國語와 三史를 읽어야 할 것이오. 일찍이 孔子께서도 ‘하루 終日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생각만 했는데 얻은 것이 없었다. 차라리 冊을 읽는 便이 낫다.’고 말씀하셨소. 그리고 後漢의 光武帝는 軍務에 바쁜 中에도 손에서 冊을 놓지 않았다고 하고, 孟德(曹操) 亦是 늙어서까지도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스스로 말했소. 卿들은 어찌하여 스스로 努力하지 않는단 말이오.” 呂蒙은 工夫를 하기 始作하여 뜻을 敦篤히 하고 게으르지 않아 두루 본 冊이 옛 儒學者들보다도 많았다.
(江表傳曰, 初, 權謂蒙及蔣欽曰, 卿今竝當塗掌事, 宜學問以自開益. 蒙曰, 在軍中常苦多務, 恐不容復讀書. 權曰, 孤豈欲卿治經爲博士邪. 但當令涉獵見往事耳. 卿言多務孰若孤. 孤少時歷詩, 書, 禮記, 左傳, 國語, 惟不讀易. 至統事以來, 省三史, 諸家兵書, 自以爲大有所益. 如卿二人, 意性朗悟, 學必得之, 寧當不爲乎. 宜急讀孫子, 六韜, 左傳, 國語及三史. 孔子言, 終日不食, 終夜不寢以思, 無益, 不如學也. 光武當兵馬之務, 手不釋卷. 孟德亦自謂老而好學. 卿何獨不自勉勖邪. 蒙始就學, 篤志不倦, 其所覽見, 舊儒不勝.)」
이 이야기는 《三國志 · 吳書 呂蒙傳》의 〈江表傳〉을 引用한 裴松之의 注에 나오는데, 光武帝가 軍務에 바쁜 中에도 손에서 冊을 놓지 않았다는 말에서 ‘手不釋卷’이 由來했다. 〈江表傳〉은 現在 傳해지지 않는데, 《三國志》의 〈裴松之 注〉에 많이 引用되어 있다. 三史는 史記, 漢書, 後漢書를 말한다.(元來는 史記, 漢書, 東觀漢記였으나 後漢書가 나온 後에 바뀌었다.) 여기에 三國志를 더해 前四史라고 한다.
52. 수서양단(首鼠兩端) 首鼠两端
쥐가 머리를 내밀고 兩쪽 끝에서 망설이다. 구멍 속에서 머리를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주저(躊躇)하면서 決斷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붙지 않고 兩다리를 걸치는 것을 比喩
漢나라 5代 皇帝인 文帝의 皇后의 조카인 魏其侯 竇嬰과 6代 景帝의 皇后의 同生인 武安侯 田蚡은 外戚으로서 대단한 勢道를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오랫동안 힘겨루기를 繼續해 왔다. 그러다가 魏其侯의 背景이었던 竇太后, (文帝의 皇后)가 죽고 武安侯의 背景인 王太后가 得勢하자 魏其侯는 勢力을 잃게 되고, 武安侯가 得勢하여 丞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過去에 魏其侯의 身勢를 졌던 사람들까지 모두 武安侯 쪽으로 붙어 魏其侯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狀況에 이르렀다. 그런데 將軍 灌夫만은 옛情을 잊지 않고 끝까지 魏其侯와 가까이했으며, 武安侯에 對해 不平을 하고 다녔다.
여름, 武安侯가 燕王의 딸을 婦人으로 맞아들이자 太后가 詔書를 내려 宗親들과 滿朝百官이 參席해 祝賀를 하라고 指始했다. 魏其侯는 灌夫에게 가 함께 가려고 했다. 灌夫가 辭讓하며 말했다. “내가 술로 丞相에게 失手를 한 적이 있고 丞相이 只今도 나와 틈이 있습니다.” 魏其侯는 그 일은 이미 다 解決되었다고 말하면서 灌夫를 억지로 데리고 갔다. (當時의 風習에 依하면 宴會 席上에서는 主人과 손님이 番갈아 가며 술을 勸하게 되어 있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어 武安后가 일어나 賓客들에게 술을 勸하자 모두들 避席의 禮를 올렸다. ‘避席’이란 相對方이 술盞을 勸했을 때 自己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술座席에서의 禮의였다. (中國도 北方 異民族들의 生活 風習이었던 寢床과 椅子 生活이 普遍化되었던 宋나라 時代 以前에는 바닥에서 生活을 했었다.) 다음으로 魏其侯가 賓客들에게 술을 勸하자 親한 사람들은 避席을 했지만, 折半 以上이 膝席 (무릎만 暫깐 꿇고 일어나지는 않는 것)을 했다. 이를 본 灌夫는 心氣가 뒤틀렸다.
灌夫는 일어나 武安侯에게 가서 술을 勸했다. 武安侯는 膝席을 하고 말했다. “술盞 가득 채우지 마시오.” 灌夫는 火가 났으나 웃으며 말했다. “將軍은 貴人이시니까 다 마셔야 합니다.” 武安侯는 그 술을 마시지 않았다. 灌夫는 (氣分이 傷했지만 꾹 참고) 臨汝侯 灌賢에게 가서 술을 勸했는데, 灌賢은 程不識과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고, 避席도 하지 않았다. 火를 爆發시킬 곳이 없던 灌夫는 臨汝侯 灌賢에게 辱을 해 댔다. “平素에 程不識이 一錢의 價値도 없다고 誹謗하더니, 오늘 어른이 술을 勸하는데 계집애들처럼 程不識과 귓속말이나 주고받다니!” 그러자 武安侯가 말했다. “程將君(程不識)과 李將軍(李廣)은 모두 東宮과 西宮의 警護將軍인데,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程將軍을 侮辱하면 李將軍의 體面을 세워 주는 게 아니잖소?” 灌夫가 소리쳤다. “오늘 내 머리를 베고 내 가슴을 가른다 해도 關係없다. 李將軍이 무슨 대수(大事)냐.” 宴會에 參席했던 賓客들은 便所에 가는 척하며 모두 자리를 떠 버렸고, 魏其侯도 밖으로 나가 灌夫에게 그만 나오라고 손짓만 할 뿐이었다. 火가 머리끝까지 난 武安侯는 長史를 불러 灌夫를 彈劾하여 死刑에 處할 수 있도록 하라고 指示했다.
灌夫는 獄에 갇혔다. 魏其侯는 灌夫를 살려 보려고 百方으로 努力했으나 方法이 없자 漢武帝에게 上疎를 올려 灌夫를 善處해 줄 것을 懇請했다. 武安侯와 魏其侯의 意見을 다 들은 漢武帝는 重臣들에게 意見을 물었다. “卿들이 判斷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意見이 둘로 나뉘었으나 時間이 지남에 따라 武安侯의 追從者로 알려진 內史 鄭當時조차 曖昧한 態度를 取했다. 그러자 御史大夫 韓安國도 明確한 對答을 避했다. “陛下, 灌夫가 죽을죄까지는 짓지 않았다는 魏其侯의 말도 옳고, 함부로 날뛰면서 紀綱을 害치고 大逆罪를 저질렀다는 丞相의 말도 옳습니다. 聖上께서 決定하시는 것이 可한 줄 아옵니다.” 重臣들의 不分明한 態度에 失望한 武帝가 자리를 뜨자 朝會는 끝났다.
「武安侯 田蚡이 退闕하는 길에 韓安國을 불러 수레에 오르게 한 다음 火가 나서 責望했다. “그대와 함께 그 대머리 늙은이에게 對應했어야 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左右를 살피는 쥐처럼 망설였소?”
(武安已罷朝, 出止車門, 召韓御史大夫載, 怒曰, 與長孺共一老禿翁, 何爲首鼠兩端.)」
魏其侯의 努力에도 不拘하고 結局 灌夫와 그 一族들은 處刑을 當하고 말았다.
* 史記 魏其武安侯列傳에.
53. 수석침류(潄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 失手를 認定하려 들지 않거나,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比喩
晉나라 初 풍익(馮翊) 太守를 지낸 孫子荊 (孫楚)은 文才도 뛰어났고 臨機應變에 대단히 能한 사람이었다. 그가 活動했던 當時에는 士大夫들 사이에서 俗世의 道德이나 文名을 輕視하고 老莊의 哲理를 重히 여겨 談論하는 이른바 淸談이 流行하던 때였다.
「孫子荊이 어린 時節, 隱居하기로 작정하고 王武子(王濟)에게 枕石漱流(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하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漱石枕流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하다)’라고 잘못 말했다. 그러자 王武子가 말했다. “흐르는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할 수 있는 건가?” 孫子荊이 둘러댔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귀를 씻기 爲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硏磨하기 爲함이라네.”
(孫子荊年少時, 欲隱, 語王武子當枕石漱流, 誤曰漱石枕流. 王曰, 流可枕, 石可漱乎. 孫曰, 所以枕流, 欲洗其耳. 所以漱石, 欲礪其齒.)」
* 世說新語 排調에.
元來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한다는 뜻의 ‘枕石漱流’라고 해야 할 것을 失手하여 ‘漱石枕流’라고 말하고는 잘못을 끝까지 認定하지 않고 臨機應變으로 둘러댔다는 이야기에서 由來하여, ‘漱石枕流’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固執을 부리거나 失敗를 認定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쓰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54. 수어지교(水魚之交) 水鱼之交
물과 고기의 사귐.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暫時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아주 密接한 關係를 比喩
後漢 末葉, 劉備는 關羽, 張飛와 義兄弟를 맺고 漢室의 復興을 爲해 軍士를 일으켰다. 하지만 能力을 發揮할 機會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轉輾하며 歲月을 虛送하다가 마지막에는 荊州刺史 劉表에게 依支하는 身勢가 되었다. 有能한 參謨의 必要性을 切感한 劉備는 여러 사람들을 通해 南陽에 隱居하는 諸葛亮의 存在를 알게 되었고, 關羽 · 張飛와 함께 禮物을 싣고 襄陽에 있는 그의 草家집을 세 番이나 訪門한 끝에 그를 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諸葛亮의 智略에 힘입어 劉備는 蜀漢을 建國하였으며, 曹操, 孫權과 三國鼎立의 形勢를 이룰 수 있었다. 劉備는 諸葛亮을 매우 尊敬하였으며, 諸葛亮 또한 劉備의 두터운 待遇에 忠誠을 다했다. 두 사람의 情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劉備는 모든 일에서 諸葛亮에게 가르침을 받은 다음에 決定을 내렸다.
「그러나 劉備와 決義兄弟를 맺은 關羽와 張飛는 諸葛亮에 對한 劉備의 態度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種種 不平을 했다. 그러자 劉備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諸葛亮을 얻게 된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네. 자네들은 더 以上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게.” 關羽와 張飛는 (不平을)그쳤다.
(關羽張飛等不悅. 先主解之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羽飛乃止.)」
《三國志 · 蜀書 諸葛亮傳》에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水魚之交’ 外에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라는 뜻의 ‘如魚得水’도 나왔다.
55. 수여위오(羞與爲伍)
어떤 사람과 한 무리가 된 것을 羞恥스럽게 여기다. • 羞與噲伍는 同義語다.
* 司馬遷의 史記 卷 92 淮陰侯列傳에
漢王 5年 正月, 韓信은 漢나라가 天下 統一을 하는데 큰 功을 세워 그 功勞로 楚王이 되었다. 그러나 項羽의 麾下에 있을 때 알게 된 親舊 鍾離昧가 그에게 依託하고 있었다. 劉邦은 鐘離昧가 韓信 밑에서 숨어 지낸다는 것을 알고 그를 逮捕하라는 命令을 내렸다.
漢 高祖가 韓信을 逮捕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鍾離昧는 스스로 목을 찔러서 죽었다. 韓信은 죽은 鍾離昧의 목을 바쳤으나 漢 高祖는 그를 逮捕하였다. 韓信은 嘆息하며 이렇게 말했다.
"果然 옛말대로구나. '꾀 많은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없어지니 좋은 활은 깊이 쳐 박히게 되며, 敵國을 쳐부수고 나니 智慧로운 臣下가 죽게 되는 구나.' 天下가 이미 平定되었으니 내가 삶겨지는 것은 當然하리라.
(狡兎死走狗烹 高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漢 高祖는 韓信의 손발을 묶고 그를 捕縛하였다. 洛陽에 到着하자 高祖는 韓信의 罪를 容恕하고, 그의 地位를 楚王에서 淮陰侯로 낮추었다.
그 後 韓信은 高祖가 自身의 才能을 두려워하여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病을 핑계로 朝廷에 나가지도 않고, 高祖의 巡行에도 따라가지 않았다. 韓信은 漢 高祖를 怨望하며 周勃이나 灌嬰 等과 같은 地位에 處한 것을 羞恥스럽게 생각하였다.
어느 날, 韓信은 將軍 樊噲의 집을 訪問한 적이 있었는데, 樊噲는 무릎을 꿇고 恭遜하게 절을 하며 그를 맞았다. 暫時 머문 後, 韓信이 떠나려 하자 樊噲는 自身을 臣下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大王께서 陋醜한 곳을 찾아 주시다니 臣의 榮光입니다."
그러자 韓信은 門을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結局 樊噲 等과 같은 地位의 사람이 되고 말았구나"
(生乃與噲等爲伍)
56. 수주대토(守株待兎)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고지식<고디식, 고디싁>하고 融通性이 없어 舊習과 前例만 固執하거나, 努力하지 않고 요행(僥幸)만을 期待하는 것을 比喩
「宋나라에 한 農夫가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려오더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農夫는 쟁기를 풀어 놓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다시 얻기를 期待했지만, 토끼는 얻지 못하고 自身은 宋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只今 先王의 政治로써 現在의 人民들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兎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復得, 而身爲宋國笑. 今欲以先王之政, 治當世之民, 皆守株之類也.)」
이 이야기는 《韓非子 五蠹》에 나온다. 韓非는 堯舜의 理想的인 王道 政治를 時代에 뒤떨어진 思想이라고 主張하면서, 그를 反對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韓非가 말한 ‘守株待兎’는 낡은 慣習만을 固執하여 지키고 새로운 時代에 順應하지 못하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五蠹는 다섯 가지 (나라를 좀먹는)좀으로, 學者, 論客, 俠士, 側近, 商工人 等 다섯 部類의 사람들을 말한다.
57.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树欲静而风不止
나무는 조용하고 싶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孝道를 다하지 못한 子息의 슬픔을 比喩
「孔子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孔子가 말했다. “말을 달려 가 보자. 앞에 賢者가 있구나.”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皐魚가 베옷을 입고 낫을 껴안고 길가에서 울고 있었다. 孔子가 수레에서 내려와 그 까닭을 물었다. “喪을 當한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는가?” 皐魚가 對答했다. “저에게는 세 가지 잃은 것이 있습니다. 어려서 工夫를 하여 諸侯에게 遊說하느라고 父母를 뒤로 했습니다. 이것이 잃은 첫 番째 것입니다. 내 뜻을 高尙하게 하느라 임금을 섬기는 일을 等閑視 했습니다. 이것이 잃은 두 番째 것입니다. 親舊와 사이가 두터웠으나 젊어서 멀어졌습니다. 이것이 잃은 것의 세 番째입니다. 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子息이 奉養을 하려 하지만 父母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한 番 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歲月이요, 떠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父母님입니다. 이제 여기서 作別을 할까 합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孔子가 말했다. “弟子들이여, 이 말을 訓戒로 삼아라. 銘心할 만하지 않은가.” 弟子 中에 故鄕으로 돌아가 父母를 奉養한 者가 열에 세 名이나 되었다.
(孔子行, 聞哭聲甚悲. 孔子曰, 驅驅, 前有賢者. 至, 則皐魚也. 被褐擁镰, 哭於道傍. 孔子辟車與言曰, 子非有喪, 何哭之悲也. 皐魚曰, 吾失之三矣. 少而學, 遊諸侯, 以後吾親, 失之一也. 高尙吾志, 閑吾事君, 失之二也. 與友厚而少絶之, 失之三也.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 往而不可追者, 年也. 去而不可得見者, 親也. 吾請從此辭矣. 立槁而死. 孔子曰, 弟子誡之, 足以識矣. 於是門人辭歸而養親者十有三人.)」
이 이야기는 《韓詩外傳》에 나온다. 같은 內容의 이야기가 《孔子家語 致思》에도 나오는데, 記錄에 多小의 差異가 있다. 《孔子家語》에서는 ‘孔子가 齊나라로 갈 때’로 되어 있으며, ‘皐魚’가 아닌 ‘丘吾子’로 되어 있고, 丘吾子가 죽은 方法도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으로 記錄되어 있다. ‘樹欲靜而風不止’는 風樹之嘆, 風木之悲라고도 한다.
58. 숙흥야매(夙興夜寐) 夙兴夜寐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다. 責任을 다하기 爲해 애쓰고 努力하는 모습을 比喩
* 詩經· 衛風 氓에. 58 氓(맹)-詩經衛風(시경위풍)
男便에게 버림받은 女人의 슬픔을 노래한 作品이다.
三歲爲婦 : 三 年 동안 남의 아내 되어
靡室勞矣 : 房에서 苦生했네.
夙興夜寐 :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자며
靡有朝矣 : 아침이 있는 줄 알지 못했네.
言旣遂矣 : 婚姻 言約이 이루어지자
至於暴矣 : 男便은 亂暴하게 나왔지.
兄弟不知 : 兄弟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咥其笑矣 : 허허 웃기만 하네.
靜言思之 : 조용히 돌이켜 생각하니
躬自悼矣 : 나만 가여워지는구나.
* 詩經· 小雅 小宛》에
題彼脊令 : 날아가는 할미새 보니
載飛載鳴 : 날면서 지저귀네
我日斯邁 : 나는 每日 꾸준히 나아가는데
而月斯征 : 달도 따라 나아가는구나
夙興夜寐 :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잠자며
無忝爾所生 : 낳아 주신 어버이 辱되지 않게 해야지
世態를 탓하면서도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그린 노래이다. 두 便의 詩에서 ‘夙興夜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59. 순망치한(脣亡齒寒) 唇亡齿寒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서로 密接한 關係에 있는 것을 比喩
「晉獻公이 再次 虞나라에게서 길을 빌려 虢나라를 치려고 하자 宮之奇가 諫했다. “虢나라는 虞나라의 保護壁입니다. 虢나라가 亡하면 虞나라도 虢나라를 따르게 됩니다. 晉나라의 野心을 助長하면 안 되며, 外敵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한 番 길을 빌려 준 것도 甚한데 또 빌려 주다니요. 俗談에 ‘광대뼈와 잇몸은 서로 依支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했는데, 바로 虢과 虞의 關係를 말한 것입니다.” ······ 虞公은 宮之奇의 諫言을 듣지 않고 晉나라 使者의 (길을 빌려 달라는)要求를 들어주었다. 宮之奇는 家族들을 거느리고 虞나라를 떠나면서 말했다. “虞나라는 이제 年末의 祭祀를 지낼 수 없게 되겠구나. 이番에 虞나라가 滅亡하면 晉나라는 다시는 兵士들을 보낼 必要가 없게 될 것이다.” 겨울철인 12月 丙子日, 晉나라는 虢나라를 滅亡시켰다. 虢公은 京師 (天子의 首都)로 避身했다. 晉나라는 돌아오는 途中에 虞나라에 駐屯했다가 機會를 타서 虞나라를 襲擊하여 滅亡시키고 말았다. 晉나라 軍隊는 虞公과 大夫 井伯을 사로잡고 그들을 晉獻公의 딸 秦穆姬가 媤집가는 데 奴婢로 삼았다. 하지만 虞나라의 祭祀는 廢하지 않았고, 虞나라의 貢物은 周나라 王室로 돌렸다.
(晉侯復假道於虞以伐虢. 宮之奇諫曰, 虢, 虞之表也. 虢亡, 虞必從之. 晉不可啓, 寇不可玩. 一之謂甚, 其可再乎. 諺所謂輔車相依, 脣亡齒寒者, 其虞虢之謂也. ······ 弗聽, 許晉使. 宮之奇以其族行, 曰, 虞不솥矣. 在此行也, 晉不更擧矣. 冬十二月丙子朔, 晉滅虢. 虢公丑奔京師. 還師, 館於虞, 遂襲虞, 滅之. 執虞公及其大夫井伯, 以媵秦穆姬. 而修虞祀, 且歸其職貢於王.)」
이 이야기는 《左傳 僖公 5年》에 나오는데, 宮之奇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한 말에서 ‘脣亡齒寒’이 由來했다. 本文의 輔車相依의 輔는 수레의 덧방나무라는 뜻 外에도 광대뼈라는 뜻이 있고, 車는 수레바퀴라는 뜻 外에 잇몸이라는 뜻이 있다.
60. 승풍파낭(乘風破浪) 乘风破浪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쳐 나가다. 遠大한 抱負를 比喩하는 말이다.
南北朝時代 宋나라의 豫州刺史와 雍州刺史를 歷任한 宗慤은 어려서부터 武藝가 出衆하고 勇敢했다. 그의 叔父 宗炳은 高尙한 선비였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 宗慤이 어렸을 때 그의 叔父 宗炳이 宗慤에게 將次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宗慤은 “거센 바람을 타고 萬 里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對答했다. 그러자 叔父가 말했다. “너는 富貴하게 되지 못하겠구나. 우리 집안의 門風을 무너뜨리다니.” 兄 宗泌이 婚禮를 치렀는데 집에 들어오는 첫날 밤에 强盜가 들이닥쳤다. 當時 宗慤은 열네 살이었는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勇敢하게 强盜들과 맞서 싸웠다, 强盜 十如 名은 모두 흩어져 집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慤年少時, 炳問其志. 慤曰, 願乘長風破萬里浪. 炳曰, 汝不富貴, 卽破我家矣. 兄泌娶妻, 始入門, 夜被劫. 慤年十四, 挺身拒賊, 賊十餘人皆披散, 不得入室.)」
後에 宗慤은 林邑(베트남)을 征伐하기 위한 遠征 길에 副官으로 隨行하였다. 林邑의 王이 코끼리 떼를 앞세워 攻擊하자 宋나라 軍隊는 困境에 處하게 되었다. 이때 宗慤이 妙策을 내어 兵士들을 獅子처럼 꾸며 코끼리 떼 앞에서 춤을 추게 하였다. 그러자 코끼리 떼는 놀라 달아났고 宋나라 軍隊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林邑을 攻略했다. 이처럼 宗慤은 智와 勇을 兼備한 人物이었다.
이 이야기는 《宋書 宗慤傳》과 《南史 宗慤傳》에 나온다. 宗慤의 말에서 由來하여 ‘乘風破浪’은 遠大한 抱負를 比喩하거나, 뜻한 바를 이루기 爲하여 온갖 難關을 克服하고 나아가는 것을 比喩하게 되었다. ‘長風破浪’이라고도 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한자성어(漢字成語)** > 고사성어(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사성어(故事成語) (ㅇ-1 아도물~ ) (0) | 2026.03.07 |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ㅅ-8 시도지교~ ) (2) | 2026.03.06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ㅅ-6 선종외시~ ) (0) | 2026.03.06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ㅅ-5 상하기수~ ) (0) | 2026.03.06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ㅅ-4 삼여독서~ ) (0) | 2026.03.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