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비파행(琵琶行) - 백거이(白居易)
비파행
琵琶行 〈并序〉
元和十年,予左遷九江郡司馬。明年秋,送客湓浦口,聞船中夜彈琵琶者,聼其音錚錚然,有京都聲。問其人,本長安倡女,嘗學琵琶於穆、曹二善才,年長色衰,委身為賈人婦。遂命酒使快彈數曲,曲罷憫黙,自叙少小時歡樂事,今漂淪顦顇,轉徙於江湖間。予出官二年,恬然自安;感斯人言,是夕始覺有遷謫意,因為長句,歌以贈之,凡六百一十六言,命曰《琵琶行》。
元和十年 予左遷九江郡司馬(원화십년 여좌천구강군사마) : 원화 10년(815년)에 나는 구강군(九江郡) 사마로 좌천되었다.
明年秋 送客湓浦口(명년추 송객분포구) : 다음해 가을, 손님을 분포구에서 배웅하는데
聞舟中夜彈琵琶者(문단중야탄비파자) : 어느 배에선지 밤에 비파를 타고 있었다.
聽其音 錚錚然有京都聲 (청기자 쟁쟁연유경도성) : 그 소리를 들어보니 그 소리가 맑디맑아 서울(京都) 가락이었다.
問其人 本長安倡女(문기인 본장안창녀) : 그 사람에 대해 물었더니, 본래 장안(長安) 기생으로
嘗學琵琶于穆 曹二善才(상학비파우목 조이선재) : 일찍이 목(穆)·조(曺) 두 선재에게서 비파를 배웠으며
年長色衰 委身爲賈人婦(년장색쇄 위신위고인부) : 나이 들어 미색이 쇠하자 몸을 의탁하여 상인의 아내로 되었다는 것이었다.
遂命酒 使快彈數曲(수명주, 사쾌탄수곡) : 이리하여 술을 내고 속히 두어 곡을 타도록 했다.
曲罷憫然(곡파민연) : 곡이 끝나자 가련하게도 고개를 떨구고
自叙少小時歡樂事 今漂淪憔悴(자서소소시환락사, 금표륜초췌) : 젊었을 적 즐거웠던 추억들과 지금 실의에 빠진 초췌한 모습으로
轉徙于江湖間(전종우강호간) : 강호에서 옮겨 다니고 있는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었다.
予出官二年 恬然自安(여출궁이년, 염연자안) : 나는 지방 관원으로 쫓겨 나온 2년을 조용하고 편안하게 지내왔었는데
感斯人言 是夕始覺有遷謫意(감사인언, 시석시각유천적의) : 이 여인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 이날 저녁 비로소 귀양살이 맛을 느끼었다.
因爲長句 歌以贈之(인위장구, 가이증지) : 그래서 장구가(長句歌, 七言詩)를 지어 여인에게 선사했다.
凡六百一十二言 命曰 “琵琶行”(범육백일십이언, 명왈 “비파행”) : 모두 612자, 이름 하여 “琵琶行(비파행)”.
琵琶行(비파행)
潯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 심양강 어구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려니
楓葉荻花秋瑟瑟(풍엽적화추슬슬) : 단풍잎 갈대꽃 흔들리는 가을이 쓸쓸하다.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은 배에 오르며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 술잔 마시려니 음악이 없다.
酒不成歡慘將別(주불성환참장별) : 취기가 오르지도 않았는데 슬픈 이별하려니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망강침월) : 이별의 시간 망망한 강에 달빛이 젖어든다.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 문득 강 위로 들리는 비파소리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 주인은 돌아갈 생각 잊고 손은 떠나지 못한다.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 소리를 찾아 비파 타는 사람 누구인지 물어도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 비파소리는 그쳤는데 말을 하려니 말소리 더디다.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요상견) : 배를 옮겨 가까이 다가가 서로 마주 보고
添酒回燈重開宴(첨주회등중개연) : 술을 더하고 등불을 밝혀 다시 술자리를 열었다.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 천만 번을 불러서야 비로소 나왔는데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 여전히 얼굴 반쯤 가린 채로 비파를 끼고 있었다.
轉軸撥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 축을 조이고 현을 퉁겨 두세 번 소리 내고는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 곡조도 타기 전에 정이 먼저 이는구나.
絃絃掩抑聲聲思(현현엄억성성사) : 줄을 누르고 퉁길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 평생 이루지 못한 정을 하소연하는 듯.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 고개 숙이고 손끝을 따라 이어지는 연주
說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 가슴 속에 서린 끝없는 사연을 털어놓은 듯.
輕攏慢撚撥復挑(경롱만연발부도) : 가볍게 누르고 살짝 비틀었다 다시 퉁긴다.
初爲霓裳後六絃(초위예상후육현) : 먼저 예상곡을 연주하고 뒤에 육요를 연주한다.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 큰 줄에서는 소나기처럼 세찬 소리 나고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 작은 줄에서는 절절한 속삭임 같다.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 세차기도 하고 절절하기도 한 온갖 소리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 크고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
閑關鶯語花底滑(한관앵어화저활) : 한가한 대문 안 꾀꼬리 소리 꽃가지 아래 매끄럽고
幽咽泉流水下灘(유열천류수하탄) : 흐느끼듯 흐르는 샘물이 여울로 떨어진다.
水泉冷澁絃凝絶(수성냉삽현응절) : 물줄기 얼어붙듯이 현이 얼어붙으며 소리는 끊어지고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 얼어붙은 듯 끊어진 소리, 점점 사라진다.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 따로 그윽한 슬픔, 남모르는 한이 되살아나는 듯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 이러한 때는 비파소리 울릴 때보다 더 좋았다.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 은병이 깨어져 물줄기가 치솟듯
鐵騎突出刀鎗鳴(철기돌출도쟁명) : 철마가 뛰어오르고 칼과 창이 부딪치듯.
曲終收撥當心畫(곡종수발당심화) : 곡이 끝나자 채를 뽑아 비파 중심을 획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열백) : 비단이 찢어지듯 네 현에서 한꺼번에 소리를 낸다.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 동쪽 배 서쪽 배 사람들 모두 할 말을 잊고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 강 가운데서 밝은 가을 달만 바라 볼 뿐이다.
沈吟收撥揷絃中(침음수발삽현중) : 침울하게 채를 거두어 줄에 꽂고
整頓衣裳起劍容(정돈의상기검용) : 옷 차람을 정돈하고 일어나 얼굴을 가다듬었다.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장안 여자로
家在蝦蟇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 하마릉 아래에 살았었는데
十三學得琵琶成(십삼학득비파성) : 열세 살에 비파를 익혔고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 저의 이름은 교방의 제1부에 속해 있었습니다.
曲罷常敎善才服(곡파상교선재복) : 한 곡조 타면 스승들도 탄복하고
粧成每被秋娘妬(장성매피추낭투) : 몸치장하면 기녀들의 질투도 받았습니다.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 오릉의 청년들이 다투어 찾아왔고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붉은 비단 셀 수 없이 받았습니다.
鈿頭銀蓖擊節粹(전두은비격절수) : 자개 박은 은비녀 장단 맞추다 다 부러지고
血色羅裙飜酒汚(혈색나군번주오) : 붉은 색 비단 치마 술에 얼룩졌습니다.
今年觀笑復明年(금년관소부명년) : 올해도 기뻐서 웃고 이듬해도 기뻐 웃으며
秋月春風等閒度(추월춘풍등한도) : 가을 달 봄바람 한가롭게 보냈습니다.
弟走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 남동생 싸움터로 가고 양모도 죽고 나니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 저녁 가고 아침 오면 얼굴빛도 시들어 갔소.
門前冷落鞍馬稀(문전냉락안마희) : 대문 앞은 말 타고 찾아오는 이 없어 쓸쓸해지고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 늙은 이 몸 장사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 장사치는 잇속에만 밝고 이별은 가볍게 여기는지라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 지난달 부량으로 차(茶)를 사러 떠났습니다.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 강나루 오가며 빈 배만 지키는데
遶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 뱃전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가워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 깊은 밤에 홀연히 어린 시절을 꿈에서 보니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난간) : 꿈속에서도 서러워 화장한 얼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我聞琵琶已歎息(아문비파이탄식) : 이미 비파소리에 탄식하는데
又聞此語重喞喞(우문차어중즐즐) : 다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거듭거듭 탄식이 나온다.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륜락인) : 그대와 나 같은 하늘 아래 떠도는 몸으로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 이렇게 서로 만나는데 어찌 본디 아는 사이어야 하는가.
我從去年辭帝京(아종거년사제경) : 이 몸은 지난해 장안을 떠나
謫居臥病瀋陽城(적거와병심양성) : 심양으로 귀양와 병들어 누웠다네.
瀋陽地僻無音樂(심양지벽무음악) : 심양은 외진 땅이라
終歲不聞絲竹聲(종세불문사죽성) : 일 년이 다 가도록 음악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오.
住近湓江地低濕(주근분강지저습) : 사는 곳이 가까운 분강 땅이라, 땅이 낮고 습하여
黃蘆苦竹遶宅生(황로고죽요택생) : 누런 갈대와 마른 대나무만이 집 둘레에 우거져다오.
其間旦暮聞何物(기간단모문하물) : 여기서 아침저녁 무엇을 듣겠는가.
杜鵑啼血猿哀鳴(두견제혈원애명) : 피 토하는 두견새와 애절한 원숭이 울음소리뿐.
春江花朝秋月夜(춘강화조추월야) : 강가의 꽃이 피는 봄날 아침, 달뜨는 가을밤
往往取酒還獨傾(왕왕취주환독경) : 때때로 술 가져와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豈無山歌與村笛(기무산가여촌적) : 어찌 산촌에 노랫소리 피리소리 없으련만
嘔啞嘲哳難爲聽(구아조찰난위청) : 벙어리 말 배우고 새 웃음 짓듯 알아듣기 어려워라.
今夜聞君琵琶語(금야문군비파어) : 오늘 밤 그대의 비파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여청선악이잠명) : 신선의 음악 듣는 듯 귀가 밝아진다.
莫辭更坐彈一曲(막사갱좌탄일곡) :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조 타주시면
爲君飜作琵琶行(위군번작비파행) : 난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다.
感我此言良久立(감아차언양구립) : 내 말에 감격하여 한참 서 있더니
却坐促絃絃轉急(각좌촉현현전급) : 다시 앉아 현을 고르고 급히 비파를 탄다.
凄凄不似向前聲(처처불사향전성) : 전보다 더 처연해진 소리에
滿座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 좌중 사람들이 듣고서 모두가 눈을 가리고 운다.
座中泣下誰最多(좌중읍하수최다) : 그중에 누가 자장 많이 눈물 흘렸던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 푸른 적삼 눈물에 다 젖은 강주 사마였더라.
비파행(琵琶行)은 중국 중당(中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다. 816년 작. ‘비파인(琵琶引)’이라고도 한다.
당시 백거이는 신악부(新樂府)를 비롯한 일련의 사회비판의 시 때문에 중앙에서 쫓겨나, 천애(天涯 : 하늘 끝)라고 하던 주장 [江]에 좌천되어 있었다. 그 때는 그의 인생과 문학의 위기이기도 했는데, 어느 가을 날 저녁 우연히 들려오는 비파 소리에 느낀 바 있어 자신의 내면을 대상으로 단숨에 이 시를 지어냈다.
제 1장에서는 비파의 음색에 매혹되어 끊임없이 떠오르는 환상을 “間關鶯語花底滑, 幽咽泉流氷下難”과 같이, 때로는 화사하게 때로는 울적하게 펼쳐 나간다. 그것은 바로 음악을 언어로 옮기는 독창적인 형상이 되기도 한다.
제 2장에서는 한때 화려한 서울(장안)에서 미모와 슬기로 뭇사람의 이목을 끌었던 몸이 지금은 상인의 아내가 되어, 강상(江上)의 배에서 외로이 남편을 기다린다는, 비파를 탄주하는 여인의 술회에 문화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변경의 땅에서 잿빛의 나날을 보내는 자신의 처지가 생각되어 누를 길 없는 한탄을 슬픈 억양으로 노래하였다.
이 시는 칠언(七言)의 유려한 울림을 거침없이 88행에 실었으며, 문자로 음악을 시각화(視覺化)하면서, 변전하는 운명에의 통곡을 표상하고 인간의 비애를 빼어나게 결정시켰다. 그 후에 이 시는 음악을 문자로 정착시키는 수법의 지침이 되었고, 또 음악 연주자와 시인의 인간관계적 구성을 거쳐 소설과 희곡에 오래도록 제재(題材)를 제공하였다. 서유럽에서는 장한가(長恨歌) Everlasting Remorse)》에 대응하는 ‘류트송(Lute Song)’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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