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여인행(麗人行) - 두보(杜甫)
미인들을 노래함
三月三日天氣新(삼월삼일천기신) : 삼월 삼짇날 날씨도 맑아
長安水邊多麗人(장안수변다려인) : 장안 물가에는 미인도 많네.
態濃意遠淑且眞(태농의원숙차진) : 자태는 농염하고 뜻은 멀고 마음은 맑고 진실한데
肌理細膩骨肉勻(기리세니골육균) : 피부 결은 섬세하고 기름지며 뼈와 살이 적당하다.
繡羅衣裳照暮春(수나의상조모춘) : 수놓은 비단 옷 저문 봄빛 비치면
蹙金孔雀銀麒麟(축금공작은기린) : 금실로 공작새를, 은실로 기린을 수놓았네.
頭上何所有(두상하소유) : 머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翠微盍葉垂鬢唇(취미합섭수빈진) : 비취색 머리 장식 귀밑까지 드리웠네.
背后何所見(배후하소견) : 등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珠壓腰衱穩稱身(주압요겁온칭신) : 진주 박힌 허리띠에 온몸이 어울린다.
就中雲幕椒房親(취중운막초방친) : 궁중 휘장 안 황후의 친척에 나아가면
賜名大國虢與秦(사명대국괵여진) : 대국 괵부인, 진부인의 명칭 내렸네.
紫駝之峰出翠釜(자타지봉출취부) : 자타지봉 팔진미 요리는 푸른 솥에서 나오고
水精之盤行素鱗(수정지반항소린) : 수정 쟁반에는 흰 물고기 기어 다니네.
犀箸饜飫久未下(서저염어구미하) : 무소 젓가락 음식에 물려 오래도록 내리지 못하고
鸞刀縷切空紛綸(난도누절공분륜) : 부엌칼은 잘게 자르는 데에 공연히 바쁘다.
黃門飛鞚不動塵(황문비공부동진) : 태감은 먼지도 일으키지 않고 황문에서 날듯이 달려가고
御廚絡繹送八珍(어주락역송팔진) : 임금님 주방에선 끝없이 팔진미를 보내오네.
簫鼓哀吟感鬼神(소고애음감귀신) : 퉁소소리, 북소리 애달프게 울리면 귀신도 감동하고
賓從雜沓實要津(빈종잡답실요진) : 손님이 많이 와도 실로 귀한 손님이라
后來鞍馬何逡巡(후내안마하준순) : 황후가 타고 오는 말은 어찌 그리 느릿느릿
當軒下馬入錦茵(당헌하마입금인) : 집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려 비단 요에 든다.
楊花雪落覆白蘋(양화설낙복백빈) : 버들꽃 눈같이 떨어져 흰 부평초에 덮이고
靑鳥飛去銜紅巾(청조비거함홍건) : 소식 전하는 푸른 새, 붉은 수건 물고 날아간다.
炙手可熱勢絶倫(자수가열세절륜) : 자수가열 권세가 대단하니
愼莫近前丞相嗔(신막근전승상진) : 조심하여 가까이 말라, 승상께서 화내실라
3월 3일 맑고 화창한 날, 장안(長安) 곡강(曲江)) 강가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궁녀들이 봄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들의 자태는 농염하고 마음속에 간직한 생각은 고원(高遠)한 듯하며, 성품은 온화하고도 선량해 보인다. 게다가 피부는 곱고 매끄러우며 뼈와 살이 적절하게 균형 잡혀 있다. 그들의 화려한 의상은 저무는 봄 들녘에서 빛을 발하는데, 금실과 은실로 공작과 기린을 함께 수놓은 옷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비취로 된 머리 장식이 귀밑머리 옆까지 내려와 있다. 등 뒤에 보이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진주가 알알이 엮여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허리띠를 누르고 있는데 몸에 한층 잘 어울린다. 구슬발 휘장 안에 있는 귀비(貴妃)의 친척들은 괵국부인(虢國夫人), 진국부인(秦國夫人)에 책봉된 양귀비의 언니들이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낙타의 불룩한 봉(峰)을 잘라 구운 고기로 비취빛 솥에 담겨 있고, 은빛으로 빛나는 생선이 수정으로 된 접시에 줄지어 놓여 있다. 실컷 먹고 배가 부른 탓에 상아 젓가락을 손에 든 채로 한참을 음식에 대지 않는데, 공연히 요리사는 먹지도 않을 음식들을 실처럼 가늘게 써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궐내의 환관들이 말을 타고서 먼지 한 점 날리지 않고 오고 가는데, 대궐의 주방에서는 끊임없이 각종 진귀한 음식들을 보내온다. 옆에서 음악을 연주하여 흥을 돋우는데, 슬퍼하듯 한숨짓듯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 소리는 왕왕 귀신조차 감동시킬 듯하다. 자리를 함께 한 빈객(賓客)과 종신(從臣)들이 참으로 많은데 이들은 모두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들이다.
가장 나중에 안장 얹은 한 필의 말이 다가오는데, 달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느리고 거만하다. 수레 휘장 앞에 이르자 그는 말에서 내려 곧장 비단 깔개가 깔려 있는 수레 안으로 들어간다. 버들개지가 눈처럼 흩날려 마름 위를 덮고, 서왕모(西王母)의 사자(使者)인 청조(靑鳥)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붉은 수건을 머금고 머리 위를 난다. 이 남자는 당대의 세력가로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으니, 그녀들에게 가까이 가서 그가 분노를 발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는 시작(詩作)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과거에는 수차례 불합격했습니다. 그는 스물네 살 때 첫 과거시험을 보고 낙방했습니다. 그때는 당나라 종실(宗室)로 간신 이임보(李林甫 ?-752)가 정권을 전횡하고 있을 때라 공정하게 선발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임보는 현종玄宗(재위 712~756) 때인 734년(開元 22년)부터 752년(天寶 11년)까지 재상(宰相)을 지내며 커다란 권세(權勢)를 행사했습니다. 그는 재상으로 있으면서 법전(法典)을 정비하여 <당률소의唐律疏議>를 편찬하는 등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황제의 신임을 배경으로 전권(專權)을 휘두르며 조정의 기강을 크게 문란하게 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당나라의 쇠퇴를 가져온 인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감언으로 황제의 비위를 맞추면서 신료나 백성들의 충언이나 간언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언로言路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반대하는 대신들을 모함하여 죽이거나 내쫓았으며, 조정의 인사(人事)를 좌지우지하며 유능한 인재들은 배척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만 발탁하여 등용했습니다.
두보는 약 30세가 되던 741년에 양씨와 결혼한 후 단 한 번도 첩을 두지 않았습니다. 부인 양씨는 현모양처로 두보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지극히 궁핍한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두보의 곁을 지켰으며, 두보는 그런 아내를 염려하고 그리워하는 시를 짓곤 했습니다.
두보가 살던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은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두보도 더 이상 가난을 못 이겨 미관말직이라도 얻을 양으로 34살이던 746년에 수도 장안長安(산시陝西성 시안西安)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장안은 재상 이임보의 횡포와 양귀비(楊貴妃)의 일족들이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며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보는 출사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졌습니다. 그는 스스로 노자의 후손이라고 칭하는 당나라 황실에 잘 보이고자 도교를 칭송하는 <삼대례부三大禮賦>를 지어 현종에게 올려 벼슬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벼슬길에 올라 경세제민(經世濟民)(세사世事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求함)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두보는 결국 임용되지 못했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두보는 장안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어려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 집권자들이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반면 백성들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장안 시절 두보는 분명 불행한 생활을 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은 그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정부와 관료를 비판하고 현실의 참담함을 표현한 명작들이 창작되었습니다. <여인행麗人行>에서는 양귀비의 사치와 향락을 통해 절대 권력자의 방종을 고발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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