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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楞嚴經

능엄경 楞嚴經 卷第三

by 산산바다 2019. 12. 5.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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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頂首楞嚴經 卷第三

 

3권에서는 세간(世間)의 만법(萬法)이 모두 여래장묘진여성(如來藏妙眞如性)이라 하여 마음의 영원불멸성을 깨우치고 있다.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復次阿難 云何六入本如來藏妙眞如性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阿難 假令有入 不動目睛瞪久發勞則於虛空別見狂華兼目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 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 같은 보리(菩提)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因于明暗二種妄塵發見居中吸此色像名見覺性 此見離彼明暗二塵畢竟無軆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이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이라고 하니 그 보는 놈의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阿難當知 是見覺性 非明暗來 非於眼生 非於空出 何以故 若從明來 暗卽隨亡 應不見暗 若從暗來 明卽隨亡 應不見明 若從眼生 必無明暗 如是見精 本無自性 若從空出 有見 成性 卽非虛空 又空 自見 何關汝入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에서 온 것이 아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로부터 왔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일진댄 반드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是故當知眼入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假令有人以兩手指急塞其耳塞久發勞則於頭中 別聽妄聲兼耳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지면 머릿속에서 또 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 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因于動靜二種妄塵發聽居中吸此聲像名聽覺性 此聽離彼動靜二塵畢竟無軆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놈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阿難當知, 是聽覺性非動靜來非於耳生非於空出?何以故 若從動來靜卽隨亡應不聽靜 若從靜來動卽隨亡應不聽動 若從耳生必無動靜 如是聽精本無自性 若於空出有聽成性卽非虛空 又空自聽何關汝入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들어 깨달은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할 것이고, 만약 고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고,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러한 듣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듣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거든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인데 너희 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是故當知耳入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假令有人急搐其鼻搐久發勞則於鼻中嗅有冷觸因觸分別通塞虛實如是乃至諸香臭氣兼鼻與勞同是菩提 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쉬어서 오래 들이쉬고 있으면 피로가 생겨서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 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因于通塞二種妄塵發嗅居中吸此香像名嗅覺性 此嗅離彼通塞二塵畢竟無軆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냄새를 맡는 놈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阿難當知, 是嗅覺性非通塞來非於鼻生非於空出 何以故 若從通來塞卽隨亡 應不嗅塞, 若從塞來通卽隨亡 應不嗅通, 若從鼻生必無通塞 如是嗅精本無自性 若從空出有嗅成性 卽非虛空, 又空自嗅何關汝入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 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트인 데서 왔을 진대 막히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막힘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 데서 왔을진대 트이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트임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일진대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 같이 맡는 정기가 본래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일진댄 냄새를 맡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 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거니 너의 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是故當知鼻入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로 맡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鼻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假令有人以舌舐吻熟舐令勞 其人若病則有苦味 無病之人微有甛觸 由甛與苦顯此舌根不舐之時淡性常在 兼舌與勞, 同是菩提 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기면 그 사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달고 쓴 것으로 인하여 저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 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因于甛苦及淡二種妄塵發嘗居中吸此味象名嘗覺性 此嘗離彼甛苦及淡二塵畢竟無軆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이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맛을 보는 놈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라는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阿難 當知是嘗覺性非甛苦來非淡味來非於舌生非於空出 何以故 若從甛苦來淡卽隨亡云何嘗淡 若從淡來甛苦卽隨亡云何嘗其甛苦 若從舌生必無甛苦及淡如是嘗精本無自性 若從空出有嘗成性卽非虛空 又空自嘗何關汝入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맛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달고 쓴데서 왔을진대 담담하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데서 왔을진대 달거나 쓰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그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 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그 맛 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是故當知舌入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假令有人以一冷手 觸于熱手 若冷勢多熱者從冷 若熱勢多冷者從熱 如是以此合覺之觸顯於離知 涉勢若成因于勞觸 兼身與勞同是菩提?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 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因于離合二種妄塵發感居中吸此觸象 名感覺性 此感離彼離合違順二塵畢竟無軆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는 느끼는 그 자체가 없으리라.

 

 

    阿難當知 是感覺性非離合來非違順來非於身生非於空出 何以故 若從離來合卽隨亡 云何感合, 若從合來, 離卽隨亡 云何感離, 違順二相亦復如是 若從身生必無離合違順, 如是感精, 本無自性 若從空出有感成性 卽非虛空, 又空自感何關汝入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떨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 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是故當知身入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假令有人勞倦則眠睡熟便寤攬法斯憶失憶爲忘是其顚倒生住異滅吸習中歸不相踰越稱意識根 兼意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피로하면 잠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을 보면 기억하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뒤바뀐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뛰어넘지 아니함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因于生滅二種妄塵集知居中吸撮內塵見聞逆流於五根流不及之地名知覺性 此知離彼生滅寤寐二塵畢竟無軆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阿難?當知是知覺性非生滅來非寤寐來非於身生 非於空出 何以故 若從生來滅卽隨亡 令誰知滅,若從滅來, 生卽隨亡 云何知生 寤寐二相亦復如是, 若從意生必無生滅寤寐如是知精, 本無自性若從空出, 有知成性 卽非虛空又空自知何關汝入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생기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깨거나 잠자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생기는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누구로 하여금 없어짐을 알게 하며, 만약 없어지는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깨고 잠자고 하는 두 가지 형상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생각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생기고 없어지고 깨고 잠자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아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각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 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지각하는 것이거니 너의 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是故當知意入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으로 생각하여 인식하는 것[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復次阿難 云何十二處本如來藏妙眞如性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阿難 汝且觀此祗陀樹林及諸泉池 於意云何 此等爲是色生眼見眼生色相

아난아! 네가 다시 기타림 숲과 모든 샘물과 못들을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것들은 물질의 모양이 눈으로 보는 작용을 생기게 한다고 여기느냐 눈이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고 여기느냐?

 

 

    阿難 若復眼根生色相者 見空非色色性應銷 銷則顯發一切都無 色相旣無誰明空質 空亦如是

아난아! 만약 눈이 색질의 모양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색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색질의 성품이 응당 사라질 것이다. 색질의 성품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 색질의 모양이 이미 없어지면 누가 허공의 본질(本質)을 밝히겠느냐? 허공도 역시 그러하니라.

 

 

若復色塵生眼見者觀空非色見卽銷亡 亡則都無誰明空色

만약 물질이 눈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물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눈으로 보는 것이 곧 사라져 버리리니 사라져 없어지면 모두가 없어질 것인데 무엇이 허공인지 물질인지 밝히겠느냐?

 

 

是故當知見與色空俱無處所 卽見與色二處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과 물체와 허공이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보는 놈의 처소와 색질의 처소,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汝更聽此祗陀園中食辦擊鼓衆集撞鍾鍾鼓音聲前後相續 於意云何 此等爲是聲來耳邊耳往聲處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 가운데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을 모을 적엔 종을 쳐서 그 북과 종소리가 앞뒤로 서로 연속됨을 들어 보아라.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런 것들은 소리가 귀가에 온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되느냐?

 

 

    阿難 若復此聲來於耳邊如我乞食室羅閥城 在祗陀林則無有我 此聲必來阿難耳處 目連迦葉應不俱聞 何況其中一千二百五十沙門一聞鍾聲 同來食處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귀 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시라벌성에서 걸식을 할 적에 기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귀 가에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그 가운데 千二五十명의 사문들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밥 먹는 곳으로 모두 모이느냐?

 

 

若復汝耳往彼聲邊 如我歸住祗陀林中 在室羅城則無有我 汝聞鼓聲其耳已往擊鼓之處鍾聲齊出應不俱聞 何況其中象馬牛羊種種音聲

만약 네 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왔을 적에는 시라벌성엔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엔 그 귀가 이미 북치는 곳으로 갔으면 종소리가 함께 나더라도 응당 모두 듣지 못할 것이거든 더구나 어떻게 그 가운데 코끼리, , , 염소 등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더냐?

 

 

若無來往亦復無聞

만약 오고 감이 없다한들 역시 들음마저도 없으랴.

 

 

是故當知聞與音聲俱無處所卽聞與聲二處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듣는 것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듣는 곳과 소리 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汝又齅此鑪中旃檀此香若復然之一銖室羅閥城四十里內同時嗅氣 於意云何 此香爲復生 旃檀木生於汝鼻爲生於空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에서 나는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그 향을 만약 한 수()만 태우면 시라벌성 四十리 안에서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것이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그 향기는 전단향 나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허공에서 난다고 생각하느냐?

 

 

    阿難 若復此香生於汝鼻稱鼻所生當從鼻出 鼻非?云何鼻中有旃檀氣 稱汝嗅香當於鼻入 鼻中出香說嗅非義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마땅히 코에서 나와야 할 것인데 코가 전단이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향기가 있다고 하겠느냐?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 속에서 향기가 나온다면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若生於空空性常恒香應常在何藉爐中爇此枯木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항상한 것이므로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향로에다 이 나무를 태워야만 향기가 생긴다더냐?

 

 

若生於木則此香質因爇成煙 若鼻得嗅合蒙煙氣 其煙騰空未及遙遠四十里內云何已嗅

만약 나무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 향기의 본질은 태우므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므로 코가 냄새를 맡을 적에는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 연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기도 전에 四十리 안에서 어떻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냐?

 

 

是故當知香鼻與嗅俱無處所 卽嗅與香二處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냄새 맡는 곳과 향기 나는 곳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汝常二時衆中持鉢其間或遇油餠密飯名爲上味 於意云何 此味爲復生於空中生於舌中爲生食中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씩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가지고서 이따금 유병(油餠)이나 밀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고 하나니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음식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阿難 若復此味生於汝舌在汝口中祗有一舌其舌爾時已成飴味遇黑石蜜應不推移 若不變移不名知味 若變移者舌非多軆云何多味一舌知之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입 속에는 혀가 하나뿐이니 그 혀는 조금 전에 이미 단 맛이 되었으므로 흑석밀(黑石蜜)을 먹게 되더라도 응당 달라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진다면 혀가 여러 개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 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서 알겠느냐?

 

 

若生於食食非有識云何自知 又食自知卽同他食何預於汝名爲知味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맛을 안다고 하느냐?

 

 

若生於空汝噉虛空當作何味 必其虛空若作鹹味旣鹹汝舌亦鹹汝面則此界人同於海魚 旣常受鹹了不識淡 若不識淡亦不覺鹹 必無所知云何名味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보아라. 무슨 맛이더냐? 만약 허공이 짠 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하리니 그렇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아서 늘 짠 것을 받아왔으므로 담담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담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짠 것도 느끼지 못해서 반드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니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是故當知味舌與嘗俱無處所 卽嘗與味二處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 맛보는 것과 맛,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汝常晨朝以手摩頭 於意云何 此摩所知誰爲能觸能爲在手爲復在頭

아난아! 네가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만져서 느끼는 것은 어느 것이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若在於手頭則無知云何成觸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리니 어떻게 감촉을 느낀다 더냐?

 

 

若在於頭手則無用云何名觸

만약 머리에 있을 것 같으면 손은 쓸모가 없으리니 어떻게 접촉한다고 하겠느냐?

 

 

若各各有則汝阿難應有二身 若頭與手一觸所生則手與頭當爲一軆 若一軆者觸則無成 若二觸誰爲在 在能非所在所非能 不應虛空與汝成觸

만약 각각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응당 두 몸둥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한 몸 이라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몸이라면 감촉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손에 있다면 머리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머리에 있다면 손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是故當知覺觸與身俱無處所 卽身與觸二處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가 처소가 없어서 몸과 감촉,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汝常意中 所緣善惡無記三性生成法則 此法爲復卽心所生爲當離心別有方所

아난아! 네가 항상 생각 속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 그리고 무기성(無記性)의 세 가지 성품이 법칙(法則)을 생성(生成)하나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냐?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처소가 있는 것이냐?

 

 

    阿難 若卽心者法則非塵 非心所緣云何成處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은 대상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바가 아니거니 어떻게 처소를 이루겠느냐?

 

 

若離於心別有方所則法自性爲知非知 知則名心異汝非塵同他心量 卽汝卽心云何汝心更二於汝 若非知者此塵旣非色聲香味離合冷煖及虛空相當何爲在 今於色空都無表示不應人間更有空外 心非所緣處從誰立

만약 마음을 떠나서 따로 방소가 있는 것이라면 법칙의 자성이 앎이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앎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이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너와는 상관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상도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은 것이니 너에 의한 것이며, 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네 마음이 네게 있어서 다시 둘이 되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그 대상은 빛, 소리, 향기, 맛과 떠나거나 합해지는 것과 차거나 따뜻한 것과 허공의 모양도 아닐 것이니 어디에 있다고 하겠느냐? 지금 물질과 허공에 모두 표시할 수 없으니 응당 인간이 다시 허공 밖에 있지 아니하니라. 마음이 반연하는 것이 아니면 법의 처소가 어디로부터 이루어지겠느냐?

 

 

是故當知法則與心俱無處所 則意與法二處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칙과 마음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마음과 법칙,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復次阿難 云何十八界本如來藏妙眞如性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十八()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 18계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6(六根): 주관의 작용 기관

1. 안계(眼界): 시각 기관,

2. 이계(耳界): 청각 기관,

3. 비계(鼻界): 후각 기관,

4. 설계(舌界): 미각 기관,

5. 신계(身界): 촉각 기관,

6. 의계(意界): 마음(6, 심왕, 심법)의 작용 기관, 즉 의근(意根)

 

6(六境): 객관

1. 색계(色界): 시각 기관의 지각 대상, 색깔이나 형태(모양과 크기)를 가진 물질 일반

2. 성계(聲界): 청각 기관의 지각 대상, 소리

3. 향계(香界): 후각 기관의 지각 대상, 냄새

4. 미계(味界): 미각 기관의 지각 대상,

5. 촉계(觸界): 촉각 기관의 지각 대상, 감촉

6. 법계(法界): 마음작용 및 마음작용의 대상

마음작용으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탐욕 없음 ·성냄지 않음 등이 있으며, 마음작용의 대상에는 특히 무위법(열반 ·진여 ·법성 )이 포함된다. 무위법을 제외하면 마음작용의 대상은 대체로 개념(또는 비물질적 사물)이라 할 수 있다.

 

6(六識): 마음(6, 심왕, 심법), 주관

1. 안식계(眼識界): 색깔과 형태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시각

2. 이식계(耳識界): 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청각

3. 비식계(鼻識界): 냄새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후각

4. 설식계(舌識界): 맛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미각

5. 신식계(身識界): 감촉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촉각

6. 의식계(意識界): 법계(法界, 5식의 대상을 제외한 기타)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제6식 또는 제6 의식

 

 

    阿難 如汝所明眼色爲緣生於眼識 此識爲復因眼所生以眼爲界 因色所生以色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눈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물질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阿難 若因眼生旣無色空無可分別縱有汝識欲將何用 汝見又非靑黃赤白無所表示從何立界

아난아! 만약 눈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이미 빛과 허공이 없으면 분별할 수가 없을 것이니 비록 너의 의식이 있은들 어디에 쓰려하느냐? 네가 보는 것이 또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이 아니라서 표시할 수가 없는데 무엇으로 경계를 성립하려느냐?

 

 

若因色生空無色時汝識應滅云何識知是虛空性 若色變時汝亦識其色相遷變汝識不遷界從何立

만약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허공이 색깔이 없을 적에는 너의 의식도 응당 없어져야 하고 어떻게 그것이 허공의 성품인 줄을 알 것이며, 만약 색깔이 변할 적엔 너도 그 색깔의 모양이 변함을 안다면 너의 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경계가 어디를 좇아 성립되겠느냐?

 

 

從變則變界相自無 不變則恒 旣從色生應不識知虛空所在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곧 변하므로 경계의 모양이 스스로 없을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면 곧 항상 하더라도 이미 빛을 따라 생겼으므로 응당 허공의 소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若兼二種眼色共生合則中離離則兩合軆性雜亂云何成界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과 빛이 함께 생기게 했을진댄 합 하였다면 가운데가 나누어지고 서로 나누어진 것이라면 둘이 합하여진다. 그 체성(體性)이 섞이어 혼란할 것이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是故當知眼色爲緣生眼識界三處都無 則眼與色及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눈으로 보아 아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것이어서, 눈과 빛 그리고 빛의 경계, 이 세 가지가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如汝所明耳聲爲緣生於耳識 此識爲復因耳所生以耳爲界 因聲所生以聲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생긴다.'고 하나 그 의식은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阿難 若因耳生動靜二相旣不現前根不成知 必無所知知尙無成識何形貌 若取耳聞無動靜故聞無所成 云何耳形雜色觸塵名爲識界 則耳識界復從誰立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현상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가 앎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성립됨이 없을 터이니 인식이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약 귀로 듣는 것을 취한다면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듣는 것이 성립될 수 없으리니 어떻게 귀와 형상이 물질과 감촉이 섞인 것을 가지고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귀로 인식하는 경계가 다시 어디를 따라 성립되겠느냐?

 

 

若生於聲識因聲有則不關聞無聞則亡聲相所在 識從聲生許聲因聞而有聲相聞應聞識不聞非界

만약 소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귀가 인식하는 것은 소리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듣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을 것이니 듣는 그 자체가 없다면 소리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저 인식하는 것이 소리를 좇아 생기고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소리의 모양이 생긴다고 인정한다면 들을 적에 응당 그 인식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듣지 못한다면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아니리라.

 

 

聞則同聲 識已被聞誰知聞識 若無知者終如草木

듣는 것은 소리와 같아서 의식이 이미 들음을 당하였거니, 또다시 무엇이 의식을 듣는 것인 줄 알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마침내 풀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다.

 

 

不應聲聞雜成中界 界無中位則內外相復從何成

소리와 듣는 것이 섞이어서 중간의 경계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니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중간 위치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어디로부터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是故當知耳聲爲緣生耳識界三處都無 則耳與聲及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가 인식하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귀와 소리 그리고 소리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如汝所明鼻香爲緣生於鼻識 此識爲復因鼻所生以鼻爲界 因香所生以香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코로 인하여 생긴 것 이므로 코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향기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기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阿難 若因鼻生則汝心中以何爲鼻 爲取肉形雙爪之相 爲取齅知動搖之性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마음속에 그 무엇을 코라고 하겠느냐? 살로 된 한 쌍의 오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 아는 움직이는 성품 이라고 생각하느냐?

 

 

若取肉形肉質乃身身知卽觸名身非鼻名觸卽塵 鼻尙無名云何立界

만약 살로 된 모양이라고 여긴다면 살로 된 바탕은 곧 몸이고 몸이 느끼는 것은 곧 감촉이니 몸이라고 하면 코는 아니고 감촉이라고 하면 이는 곧 감촉의 대상이다. 코도 오히려 이름 할 수 없거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若取齅知又汝心中以何爲知 以肉爲知則肉之知元觸非鼻 以空爲知, 空則自知肉應非覺 如是則應虛空是汝汝身非知 今日阿難應無所在

만약 냄새를 맡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진댄 또 네 마음속에 무엇으로 안다고 생각하느냐? 살이 안다고 한다면 살이 아는 것은 본래가 감촉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안다고 한다면 허공은 스스로 아는 것이라서 살은 응당 깨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네 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以香爲知知自屬香何預於汝 若香臭氣必生汝鼻則彼香臭二種流氣不生伊蘭 及旃檀木 二物不來汝自嗅鼻爲香爲臭

향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는 그 자체가 향기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만약 향기와 구린 냄새가 반드시 네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그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오지 않을 적에 네가 네코를 맡아 보아라. 향기로 우냐 구리냐?

 

 

臭則非香香應非臭 若香臭二俱能嗅者則汝一人應有兩鼻 對我問道有二阿難誰爲汝軆

구린 냄새는 향기가 아니며 향기는 응당 구리지 않으리니 만약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는 것 이라면 너 한 사람이 응당 두 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도 물을 적에도 두 아난이 있으리니 어느 것이 너의 몸이더냐?

 

 

若鼻是一香臭無二臭旣爲香香復成臭 二性不有界從誰立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구린내 두 가지가 아니라 구린내가 이미 향기가 되며 향기가 다시 구린내가 되어서 두 성분이 있지 아니하리니 경계가 무엇으로 인하여 성립되겠느냐?

 

 

若因香生識因香有 如眼有見不能觀眼 因香有故應不知香 知卽非生 不知非識

만약 향기로 인하여 생긴다면 그 인식은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눈이 다른 것은 볼 수 있으면서도 눈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하리니 안다면 향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이는 코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香非知有香界不成 識不知香因界則非從香建立

향기가 앎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향기의 경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인식하는 것이 향기를 느끼지 못하면 인식하는 경계가 향기로 해서 이루어짐이 아니리라.

 

 

旣無中間不成內外 彼諸齅性畢竟虛妄

이미 중간이 없으면 안팎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저 냄새 맡는 성품이 마침내 허망한 것이다.

 

 

是故當知鼻香爲緣生鼻識界三處都無 則鼻與香及香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코와 향기 그리고 향기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如汝所明舌味爲緣生於舌識 此識爲復因舌所生以舌爲界 因味所生以味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아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니 그 혀의 인식은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맛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阿難 若因舌生則諸世間甘蔗 烏梅 黃連 石鹽 細辛 薑桂 都無有味 汝自嘗舌爲甛爲苦

아난아! 만약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모든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 계피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네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若舌性苦誰來嘗舌 舌不自嘗孰爲知覺 舌性非苦味自不生云何立界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가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이니 무엇이 알아 깨닫겠느냐? 혀의 성품이 쓴 것이 아니라면 맛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경계가 이루어지겠느냐?

 

 

若因味生識自爲味同於舌根應不自嘗云何識知是味非味

만약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인식하는 것이 스스로 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는 곧 혀와 같아서 응당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맛인지 맛이 아닌지를 알겠느냐?

 

 

又一切味非一物生 味旣多生識應多軆 識體若一體必味生 鹹淡甘辛和合俱生諸變異相同爲一味應無分別 分別旣無則不名識云何復名舌味識界 不應虛空生汝心識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여러 가지에서 생기므로 그 인식하는 것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될 것이며, 인식하는 본체가 만약 하나이고 그 본체는 반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의 화합된 것이거나 함께 생기는 것과 여러 가지로 변하여 달라진 것이 함께 동일 맛이 되어서 응당 분별이 없을 것이다. 분별이 이미 없으면 인식한다고 할 수 없거니 어떻게 혀가 맛보아서 인식하는 경계라고 하겠느냐? 허공이 너의 마음에 인식을 생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舌味和合卽於是中元無自性云何界生

혀와 맛이 화합하면 곧 그 가운데는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냐?

 

 

是故當知舌味爲緣生舌識界三處都無 則舌與味及舌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 처소는 모두 없어서 혀와 맛 그리고 혀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如汝所明身觸爲緣生於身識 此識爲復因身所生以身爲界 因觸所生以觸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몸과 접촉이 인연이 되어서 몸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몸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접촉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阿難 若因身生必無合離二覺觀緣身何所識

아난아! 만약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반드시 합해지고 나눠지는 두 가지를 깨닫게[覺觀]할 인연이 없으리니 몸이 무엇을 알겠느냐?

 

 

若因觸生必無汝身誰有非身知合離者

만약 접촉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너의 몸이 없어야 하리니 어찌 몸도 아닌 것이 합하고 나뉘어짐을 알겠느냐?

 

 

    阿難 物觸不知身知有觸 知身卽觸知觸卽身 卽觸非身卽身非觸 身觸二相元無處所 合身卽爲身自軆性 離身卽是虛空等相 內外不成中云何立 中不復立內外性空卽汝識生從誰立界

아난아! 물질이 접촉하여도 알지 못하고 몸이라야 접촉이 있음을 아나니 몸을 안다면 곧 그것은 접촉하는 놈이고 접촉함을 안다면 곧 그것이 몸이니, 그렇다면 곧 접촉하는 놈이라면 몸이 아니고 몸이라면 접촉하는 놈은 아니다. 몸과 접촉하는 놈이 두 가지는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이다. 몸에 합하면 곧 몸 자체의 성품이 되고 몸에서 떠나면 곧 허공과 같은 모양이므로 안과 밖이 이루어지지 않거니 중간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중간이 성립되지 아니하면 안과 밖의 성격이 빌 것인데 너에게 인식하는 것이 생긴다고 한들 어디를 좇아 경계가 성립되겠느냐?

 

 

是故當知身觸爲緣生身識界三處都無 則身與觸及身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과 접촉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서 몸과 인식의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어서 몸과 접촉하는 것 그리고 몸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如汝所明意法爲緣生於意識 此識爲復因意所生以意爲界因法所生以法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아서 '뜻과 법진(法塵)이 인연이 되어서 의식(意識)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뜻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뜻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법진(法塵)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법진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 법진(法塵): 인간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현상으로 육진(六塵)의 하나.

* 육진(六塵): 심성을 더럽히는 육식(六識)의 대상계(對象界)로서 색()()()()()()의 육경(六境)을 말함.

 

 

    阿難 若因意生於汝意中必有所思發明汝意 若無前法意無所生 離緣無形識將何用

아난아! 만약 뜻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의중(意中)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너의 뜻을 나타나게 하리니 만약 앞의 법진(法塵)이 없으면 뜻이 생길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을 여의고서는 형상이 없는 것이거니 의식을 어디다 쓰겠느냐?

 

 

又汝識心與諸思量兼了別性爲同爲異 同意卽意云何所生 異意不同應無所識 若無所識云何意生 若有所識云何意識 唯同與異二性無成界云何立

또 너는 의식하는 마음과 모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과 겸하여 분명하게 분별하는 성품이 같다고 생각하느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뜻과 같으면 그것이 곧 뜻일 터이니 어떻게 생긴 것이며 뜻과 다르면 같지 아니하므로 응당 인식하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만약 인식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뜻이 생긴다고 하겠으며, 만약 인식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의식(意識)이라고 하겠느냐? 같거나 다르거나 한 두 성품이 성립됨이 없으니 경계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若因法生世間諸法, 不離五塵 汝觀色法聲法香法味法觸法相狀分明以對五根非意所攝汝識決定依於法生 汝今諦觀法法何狀若離明暗動靜通塞恬變合離越此諸相終無所得 生則色空諸法等生 滅則色空諸法等滅

만약 법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가지 대상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너는 빛, 소리, 향기, , 접촉을 살펴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상대할지언정 뜻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니 너의 의식이 결정코 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너는 지금 자세히 보아라. '법진'이라는 그 법은 어떤 모양이더냐? 만약 밝고 어둡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 통하고 막혔거니 그대로 있고 변하거나 합하고 떠나거나 함을 벗어나면 이 여러 가지 모양을 뛰어 넘고서는 마침내 얻을 것이 없으리니 생긴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이 생겨날 것이고 없어진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이 없어지느니라.

 

 

所因旣無因生有識作何形相 相狀不有界云何生

인연하는 것이 이미 없거니 인연으로 해서 의식이 생기는 것이 어떤 형상이 되겠느냐? 모양이 없으면 경계가 어떻게 생기겠느냐?

 

 

是故當知意法爲緣生意識界三處都無 則意與法及意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과 법진이 인연이 되어서 뜻이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어서 뜻과 법진 그리고 뜻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白佛言世尊 如來常說和合因緣一切世間種種變化皆因四大和合發明 云何如來因緣自然二俱排檳 我今不知斯義所屬 唯垂哀愍開示衆生中道了義無戱論法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늘 화합과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간에 갖가지 변화가 모두 네 가지 원소의 화합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과 자연 두 가지 다 아니라고 배척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그 뜻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중생들에게 중도의 또렷한 이치를 보이시와 장난 같은 논리에 빠짐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爾時世尊告阿難言汝先厭離聲聞緣覺諸小乘法發心勤求無上菩提 故我今時爲汝開示第一義諦 如何復將世間戱論妄想因緣而自纏繞?汝雖多聞如說藥人眞藥現前不能分別 如來說爲眞可憐愍

그 때에 세존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에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모든 소승법(小乘法)을 싫어해서 발심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실하게 탐구하므로 내가 지금 너에게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세간의 장난 같은 논리인 망상의 인연에 스스로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마치 약을 말하는 사람이 참다운 약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여래가 진실로 너를 가련하다고 하신 것이니라."

 

 

汝今諦聽吾當爲汝分別開示 亦令當來修大乘者通達實相 阿難黙然承佛聖旨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해서 열어 보이며 또한 장래에 대승을 닦을 자들로 하여금 실상을 통달하게 하겠다. 아난이 잠자코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었다.

 

 

    阿難 如汝所言四大和合發明世間種種變化 阿難 若彼大性軆非和合則不能與諸大雜和 猶如虛空不和諸色 若和合者同於變化 始終相成生滅相續 生死死生生生死死如旋火輪未有休息

아난아! 네 말과 같아서 '네 가지 원소[四大]가 화합하여 세간의 갖가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니, 아난아! 만약 저 원소[]의 성품 자체가 화합이 아니라면 모든 원소와 섞일 수 없음이 마치 허공의 모든 물질이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만약 화합할 수 있다면 변화함과 같아서 처음과 끝이 서로 이루어지며 나고 없어짐이 서로 이어져서 났다가는 죽고 죽었다가는 나며 나고 죽고 죽음이 마치 화륜(火輪)이 도는 것과 같아서 쉼이 없으리라.

 

 

    阿難 如水成氷氷還成水

아난아!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汝觀地性麤爲大地細爲微塵 至隣虛塵析彼極微色邊際相七分所成 更析隣虛豈實空性

네가 땅의 성품을 살펴보아라. 큰 것은 큰 땅덩이가 되고 작은 것은 미세한 먼지가 되나니, 인허진(隣虛塵)에 이르러서는 아주 지극히 작은 색변제상(色邊際相 : 지금의 분자)을 일곱 등분으로 쪼개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다시 인허진을 쪼갠다고 한들 어찌 참다운 허공의 성품이야 되겠느냐?

 

 

    阿難 若此隣虛析成虛空當知虛空出生色相

아난아! 만약 저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허공도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汝今問言由和合故出生世間諸變化相 汝且觀此一隣虛塵用幾虛空和合而有 不應隣虛合成隣虛 又隣虛塵析入空者用幾色相合成虛空

네가 지금 '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에 모든 변화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으니 너는 우선 이 하나의 지극히 작은 먼지를 보아라. 몇 개의 허공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냐? 응당 지극히 작은 먼지가 합해져서 지극히 작은 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얼마나 되는 물질이 합해서 허공이 되었겠느냐?

 

 

若色合時合色非空 若空合時合空非色 色猶可析空云何合

만약 물질이 합해졌을 경우 물질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은 아니며 만약 허공이 합해졌을 경우 허공이 합해진 것이지 물질은 아니니, 물질은 오히려 쪼갤 수가 있지만 허공이야 어떻게 합할 수가 있겠느냐?

 

 

汝元不知如來藏中性色眞空性空眞色淸淨本然周徧法界 隨衆生心應所知量循業發現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 都無實義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질이 청정하고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이 우주에 두루 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 정도에 응하여 업보대로 나타나거늘 세간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 인연과 자연의 성품이라고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말이 있을 뿐이지 실제 이치는 전연 없는 것이니라.

 

 

    阿難 火性無我寄於諸緣 汝觀城中未食之家欲炊爨時手執陽燧 日前求火

아난아! 불이라는 원소[火大]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모든 인연에 붙어야만 하나니 너는 이 성 안에 밥을 먹지 아니한 집을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할 적에 손에 양수(陽燧)를 들고 햇볕 앞에서 불을 구하나니

 

 

    阿難 名和合者如我與汝一千二百五十比丘今爲一衆?衆雖爲一詰其根本各各有身皆有所生氏族名字如舍利弗婆羅門種 優樓頻螺迦葉波種 乃至阿難瞿曇種姓 阿難 若此火性因和合有 彼手執鏡於日求火 此火爲從鏡中而出爲從艾出爲於日來 阿難 若日來者自能燒汝手中之艾來處林木皆應受焚 若鏡出者自能於鏡出然于艾 鏡何不鎔 紆汝手執尙無熱相云何融泮 若生於艾何藉日鏡光明相接然後火生

아난아! 화합이라고 이름 한다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들 一千二百 五十비구들과 지금 한 무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니 그 무리는 비록 하나이나 그 근본을 따지면 각각 몸이 다르며 모두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으니 사리불은 바라문 종족이고 우루빈나는 가섭바(迦葉波)종족이고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의 종성인 것과 같으니라. 아난아! 만약 불의 성품이 화합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저 손이 거울을 잡고 햇빛에서 불을 구할 적에 그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이냐 쑥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면 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해에서 나왔다면 자연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울 적에 거쳐 오는 곳의 숲과 나무가 모두 타야 할 것이며, 만약 거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울 수 있는 것인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느냐? 네 손에 들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뜨겁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녹겠느냐? 만약 쑥에서 생긴 것이라면 어째서 해와 거울의 빛이 서로 닿은 다음에야 불이 생기느냐?

 

 

汝又諦觀鏡因手執日從天來艾本地生火從何方遊歷於此 日鏡相遠非和非合不應火光無從自有

너는 또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해는 하늘에서 오며 쑥은 땅에서 난 것인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여기에 온 것이냐? 해와 거울이 거리가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불꽃이 나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니라.

 

 

汝猶不知如來藏中性火眞空性空眞火淸淨本然周徧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阿難 當知世人一處執鏡一處火生 遍法界執滿世間起 起遍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 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 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都無實義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불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우주에 골고루 들고 있으면 온 세상에 가득하게 일어날 것이다. 온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생각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혀 없느니라.

 

 

    阿難 水性不定流息無恒 如室羅城迦毘羅仙毘迦羅仙及鉢頭摩訶薩多等諸大幻師求太陰精用和幻藥 是諸師等於白月晝手執方諸承月中水此水爲從珠中而出空中自有爲從月來

아난아! 물의 성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치는 것이 항상 함이 없느니라. 실나벌성에 가비라(迦毘羅)신선과 작가라(斫迦羅)신선과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등의 환술사 들이 달[太陰]의 정기를 구하여 그것으로 환술의 약을 화합할 적에 그 환술사들의 달 밝은 밤중에 손에 방저(方諸)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데 그 물은 구슬 속에서 나온 것이냐? 공중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냐? 아니면 달에서 온 것이냐?

 

 

    阿難 若從月來尙能遠方令珠出水所經林木皆應吐流 流則何待方諸所出不流明水非從月降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에 구슬로 하여금 물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이거니 그렇다면 경과하는 곳의 숲과 나무가 다 물이 흘러야 하리니 물이 흐른다면 어찌하여 방저(方諸)에서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며 흐르지 않는다면 물이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若從珠出則此珠中常應水流何待中霄承白月晝 若從空生空性無邊水當無際從人洎天皆同滔溺 云何復有水陸空行

만약 구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 구슬 속에 항상 물이 흐르리니 어찌하여 밤중에 밝은 달빛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변두리가 없으므로 물도 마땅히 한계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함께 물에 잠길 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의 구별이 있겠느냐?

 

 

汝更諦觀月從天陟 珠因手執承珠水盤本人敷設水從何方流注於此 月珠相遠非和非合不應水精無從自有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은 손에 들려 있고 구슬의 물을 받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은 것이니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흐르느냐? 달과 구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물의 정기가 오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기지는 아니할 것이다.

 

 

汝尙不知如來藏中性水眞空性空眞水淸淨本然周徧法界 隨衆生心應所知量 一處執珠一處水出 遍法界執滿法界生 生滿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 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 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이 청정한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 물이 나오고 온 우주에서 두루 잡으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긴다. 세상에 가득하게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阿難 風性無軆動靜不常 汝常整衣入於大衆僧伽梨角動及傍人則有微風拂彼人面 此風爲從袈裟而出發於虛空生彼人面

아난아! 바람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함이 일정하지 아니하다. 네가 옷깃을 여미고 대중에게 들어갈 적에 가사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미치면 곧 가벼운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치리니 그 바람은 가사에서 나오느냐 허공에서 생겼느냐?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겼느냐?

 

 

    阿難 此風若出於袈裟角汝乃被風其衣飛動應離汝軆 我今說法會中垂衣 汝看我衣風何所在不應衣中有藏風地

아난아! 그 바람이 만약 가사 자락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그 바람으로 인하여 옷자락이 날려서 네 몸에서 벗겨져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설법할 적에 이 모임에서 옷을 늘어뜨렸으니 너는 나의 옷을 보아라. 바람이 어디에 있느냐? 옷 속에 바람을 숨겨 놓을 곳이 있지 않느니라.

 

 

若生虛空汝衣不動何因無拂 空性常住風應常生 若無風時虛空當滅 滅風可見滅空何狀 若有生滅不名虛空 名爲虛空云何風出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옷이 펄럭이지 아니하였을 적에는 어떤 연고로 바람이 스치지 않느냐? 허공의 성품은 항상 있는 것이므로 바람도 마땅히 항상 있어야 할 것이며 바람이 없을 적에는 허공이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허공이 없어지는 것은 어떤 모양일까? 만약 생기거나 없어짐이 있다면 허공이라고 이름 하지 못할 것이고 허공이라고 이름 한다면 어찌하여 바람이 나오겠느냐?

 

 

若風自生被拂之面從彼面生當應拂汝 自汝整衣云何倒拂

만약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마땅히 네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 적에 어찌하여 바람이 거꾸로 부느냐?

 

 

汝審諦觀整衣在汝面屬彼人虛空寂然不參搖動風自何方鼓動來此 風空性隔非和非合不應風性無從自有

너는 자세히 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너에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 속해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요동하지 않는데 바람은 어느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것이냐? 바람과 허공은 성품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화합이 아니니 바람이 어디서부터 온 데가 없는데 저절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니라.

 

 

汝完不知如來藏中性風眞空性空眞風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阿難 如汝一人微動衣服有微風出 遍法界拂滿法界生生遍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 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 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바람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바람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해서 중생들의 마음으로부터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아난아! 만일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럭이면 가벼운 바람이 나오고 우주에 골고루 펄럭거리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기나니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거늘 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阿難 見覺無知因色空有 如汝今者在祗陀林朝明夕昏 設居中霄白月則光黑月便暗 則明暗等因見分析 此見爲復與明暗相幷太虛空爲同一軆 爲非一軆 或同非同或異非異

아난아! 보고 깨닫는 것이 앎이 없어서 물질과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적에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운데 그 밝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것으로 인하여 분석하나니,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형상과 아울러 큰 허공과 똑같이 한 덩어리이냐 한 덩어리가 아니냐?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阿難 此見若與明暗及太虛空元一軆者 則明與暗二軆相亡 暗時無明明時無暗

아난아! 그 보는 것이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큰 허공으로 더불어 본래 한 덩어리라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없어서 어두울 적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적엔 어두움이 없어지리라.

 

 

若與暗一明則當亡 必一於明暗時當滅 滅則云何見明見暗 若明暗殊見無生滅一云何成

만약 어둠과 한 덩어리라면 밝을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밝음과 한 덩어리라면 어두울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면 어떻게 밝음과 어두움을 보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두움은 다르다고 할지언정 보는 놈은 생기고 없어짐이 없을 것인데 한 덩어리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若此見精與明與暗非一軆者 汝離明暗及太虛空分析見元作何形相 離明離暗及離虛空是見元同龜毛兎角 明暗虛空三事俱異從何立見

만약 이와 같이 보는 정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한 덩어리가 아니라면 너는 밝음과 어둠 그리고 큰 허공을 여의고서 보는 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어떤 모양이겠느냐? 밝음을 여의고 어두움을 여의며 그리고 허공을 여의면 보는 놈은 본래 거북의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을 것이니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허공, 이 세 가지가 다 다르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는 놈이 성립되겠느냐?

 

 

明暗相背云何或同 離三元無云何或異 分空分見本無邊畔云何非同 見暗見明性非遷改云何非異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배치되는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으며 세 가지를 다 여의면 본래 없는데 원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하겠으며, 허공을 보는 놈을 나눈다면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으며, 어두움도 보고 밝음도 보아서 보는 성품이 변하여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汝更細密諦審諦觀明從太陽暗隨黑月通屬虛空壅歸大地如是見精因何所出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펴보아라. 밝음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大地)로 돌아간다. 이와 같아서 보는 정기는 어디로 인하여 생기느냐?

 

 

見覺空頑非和非合不應見精無從自出

보는 것은 깨달음이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어서 화합이 아니니 보는 정기가 어디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라.

 

 

妙見聞知性圓周遍本不動搖 當知無邊不動虛空幷其動搖地水火風均名六大 性眞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

오묘하게 보고 듣고 아는 것이 그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 하여 본래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변두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허공과 동요하는 흙, , , 바람을 아울러 여섯 가지 원소라고 이름 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느니라.

 

 

    阿難 汝性沉淪不悟汝之見聞覺知本如來藏 汝當觀此見聞覺知爲生爲滅爲同爲異 爲非生滅爲非同異

아난아! 너의 성품이 잠겨 빠져서 네가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생기더냐? 없어지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음도 다름도 아니냐?

 

 

汝全不知如來藏中性見眞空性空眞見 淸淨本然周遍法界 隨衆生心應所知量 如一見根見周法界 聽嗅嘗觸及與覺知妙德瑩然周遍法界 圓滿十方 寧有方所循業發現 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 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봄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이는 마치 하나의 보는 놈이 우주를 두루 보는 것처럼 듣는 놈, 냄새 맡는 놈, 맛보는 놈, 접촉하는 놈, 그리고 깨달아 아는 놈이 오묘한 덕이 밝아서 우주에 두루 하고 시방에 원만하거니 어찌 장소가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의 의미는 전혀 없느니라.

 

 

    阿難 識性無源因於六種根塵妄出

아난아! 의식의 성품은 근원이 없어서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기 나니라.

 

 

汝今遍觀此會聖衆用目循歷 其目周視但如明鏡無別分析 汝識於中次第標指此是文殊此富樓那此目犍連此須菩提此舍利弗

네가 지금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들을 두루 살필 적에 눈으로써 차례로 둘러보는데 그 눈이 둘러보는 것은 다만 맑은 거울과 같아서 별달리 분석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식은 속에서 차례로 지목하기를 이는 문수이고 부루나이며, 이는 목건련이고 수보리이며, 이는 사리불이라고 할 것이니라.

 

 

此識了知爲生於見爲生於相爲生虛空爲無所因突然而出

그렇게 아는 의식이 보는 놈에서 생기는 것이냐? 대상에서 생기는 것이냐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냐? 까닭 없이 돌연히 나오는 것이냐?

 

 

    阿難 若汝識性生於見中如無明暗及與色空四種必無元無汝見見性尙無從何發識

아난아! 만약 너의 의식의 성품이 보는 가운데에서 생긴다면 밝고 어두운 것과 물질과 허공은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따라서 너의 보는 것도 없어지리니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거니 무엇으로부터 의식이 발생하느냐?

 

 

若汝識生於相中不從見生旣不見明亦不見暗明暗不矚卽無空色彼相尙無識從何發

만약 너의 의식하는 성품이 대상 속에서 생기고 보는 것을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며 어둠도 보지 못해서 밝고 어두움을 보지 못하면 곧 허공과 물질이 없으리니 그 대상도 오히려 없거니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하겠느냐?

 

 

若生於空非相非見非見無辨自不能知明暗色空非相滅緣見聞覺知無處安立 處此二非空則同無有非同物 縱發汝識欲何分別

만약 허공에서 생겼다면 대상도 아니고 보는 놈도 아닐지니 보는 놈이 아니라면 분별함이 없어서 자연 밝음도 어두움도 허공도 물질도 알지 못할 것이며, 대상이 아니라면 인연이 없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편안하게 성립할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닌 데에 있다고 한다면 허공은 없는 것과 같을 것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의 형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비록 너의 의식이 발생한다한들 무엇을 분별하겠느냐?

 

 

若無所因突然而出何不日中別識明月

만약 원인도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은 달을 인식하지 못하느냐?

 

 

汝更細密詳審詳觀見託汝睛相推前境可狀成有不像成無如是識緣因何所出 識動見澄非和非合 聽嗅觀知亦復如是不應識緣無從自出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놈은 네 눈에 의지하였고 대상은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미루어 말하는 것이니, 형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 되나니 이와 같은 의식의 인연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의식은 움직이고 보는 놈은 맑아서 화()도 아니고 합()도 아니며 듣고 냄새 맡고 깨닫고 아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의식의 인연이 좇아서 온 데가 없이 스스로 생기지는 아니하니라.

 

 

若此識心本無所從 當知了別見聞覺知圓滿湛然性非從所 兼彼虛空地水火風均名七大 性眞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

만약 이 의식하는 마음이 본래 좇아온 데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확실하게 분별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원만하고 고요하고 맑아서 그 성품이 좇아온 데가 없는 것이니, 저 허공과 흙, , , 바람을 겸하여 균등하게 일곱 가지 원소라고 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거나 없어짐이 없느니라.

 

 

    阿難 汝心麤浮不悟見聞發明了知本如來藏 汝應觀此六處識心爲同爲異爲空爲有爲非同異爲非空有

아난아! 네 마음이 거칠고 허망해서 보고 듣고 밝음을 발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여섯 가지 처소에서 의식하는 마음을 관찰하여 보아라. 같으냐? 다르냐? 빈 것이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더냐? 빈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더냐?

 

 

汝會不知如來藏中性識眞空性空眞識妙覺湛然周遍法界 含吐十方寧有方所循業發現 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일찍이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의식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의식은 오묘한 깨달음이 맑고 고요하여 우주에 두루 해서 시방세계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느니라.

 

 

    阿難, 空性無形, 因色顯發 如室羅城去河遙處, 諸刹帝利種, 及婆羅門, 毘舍, 首陀, 兼頗羅墮, 旃陀羅等, 新立安居, 鑿井求水, 出土一尺, 於中 則有一尺虛空, 如是乃至出土一丈, 中間還得一丈虛空, 虛空深淺, 隨出多少此空爲當因土所出?因鑿所有, 無因自生

아난아! 허공의 성품은 형상이 없으므로 색깔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이는 마치 시라벌성처럼 강이 먼 곳에 모든 찰제리 종족과 그리고 바라문과 비사와 수타와 또는 바라타와 전다라 등이 편안히 살 곳을 새로 세우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적에 흙을 한 자[]쯤 파내면 그 속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와 같이 흙을 한 길[]쯤 파내면 그 속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게 되어 허공의 얕고 깊음이 흙을 많이 파내고 적게 파내는 것에 따라 생기나니 허공은 흙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는 도구로 인하여 생기느냐?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느냐?

 

 

    阿難, 若復此空, 無因自生?未鑿土前, 何不無礙 唯見大地, 逈無通達 若因土出 則土出時, 應見空入 若生先出, 空無入者, 云何虛空, 因土而出 若無出入, 則應空土, 元無異因, 無異則同 則土出時, 空何不出

아난아! 만약 또 허공이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내기 전에는 어찌하여 걸림이 없지 아니해서 오직 아득한 대지(大地)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더냐? 만약 흙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낼 적에 응당 허공이 줄어 들어감을 보아야 할 것인데 만약 흙이 먼저 나오는데도 허공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겠느냐? 만약 나오거나 줄어들어감이 없다면 허공과 흙이 본래 다른 원인이 없을 것이니 다른 원인이 없으면 같은 것이거늘 그렇다면 흙이 나올 적에 허공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若因鑿出, 隨鑿出空 應非出土, 不因鑿出, 鑿自出土 云何見空

만약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긴다면 마땅히 파내는 데에 따라 허공이 생기는 것이므로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며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파냄으로 해서 흙이 나오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느냐?

 

 

汝更細密, 諦審諦觀 鑿從人手, 隨方運轉 土因地移 如是虛空, 因何所出, 鑿空虛實不相爲用, 非和非合 不應虛空, 無從自出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파내는 도구는 사람의 손으로부터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니 이와 같이 허공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서 허공이 되게 함은 허()와 실()이 서로 작용하지 못해서 화합함이 아니니 응당 허공도 어느 곳으로부터 온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若此虛空, 性圓周遍 本不搖動, 當知現前, 地水火風, 見識及空, 均名七大 性眞圓融, 皆如來藏 本無生滅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 하여 본래 요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앞에서 밝힌 흙, , , 바람과 보는 것, 의식, 그리고 허공과 함께 균등하게 일곱 가지 원소[七大]라고 하니 그 성품은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나고 없어짐이 없느니라.

 

 

    阿難 汝心昏迷, 不悟四大, 元如來藏 當觀虛空 爲出爲入, 爲非出入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해서 네 가지 원소가 본래 여래장임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허공을 살펴보아라. 나오느냐? 들어가느냐?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汝元不知 如來藏中, 性空眞覺性覺眞空, 淸淨本然 周徧法界 隨衆生心 應所知量 阿難 如一井空, 空生一井 十方虛空, 亦復如是 圓滿十方, 寧有方所, 循業發現 世間無知, 惑爲因緣, 及自然性 皆是識心, 分別計度 但有言設, 都無實義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깨달음과 성품이 깨달음인 참다운 허공은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하나의 우물을 파서 공간이 생기면 허공이 한 우물만치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시방의 허공도 그와 같이 시방에 원만한 것이거니 어찌 방향과 장소가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인양 의혹하나니 이는 모두가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기 때문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니라.

 

 

    爾時阿難及諸大衆蒙佛如來微妙開示身心蕩然得無罣碍 是諸大衆各各自知心徧十方 見十方空如觀手中所持葉物 一切世間諸所有物皆卽菩提妙明元心 心精遍圓含裏十方 反觀父母所生之身猶彼十方虛空之中吹一微塵若存若亡 如湛巨海流一浮漚起滅無從 了然自知獲本妙心常住不滅 禮佛合掌得未曾有 於如來前說偈讚佛

그때에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오묘한 가르치심을 받고서 몸과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걸림이 없어지고 모든 대중들이 각각 스스로 마음이 시방에 가득함을 깨달아서 시방의 허공 보기를 마치 손에 가지고 있는 나뭇잎을 보듯 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들이 모두 보리의 오묘하고 밝은 원래의 마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의 정기가 두루 하고 원만해서 시방을 둘러싸고 있어 부모가 낳아준 몸을 돌이켜 보되 이는 마치 저 시방의 허공 속에 나부끼는 한 작은 먼지가 있는 듯, 없는 듯, 한 것과 같고, 마치 큰 바다에 떠가는 한조각 물거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좇아온 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 분명히 스스로 깨달아서 본래 오묘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여 일찍이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고서는 여래의 앞에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偈讚發願

 

妙湛總持不動尊 首楞嚴王世希有

미묘하고 청정한 덕을 모두 지니신 흔들림이 없으신

세존께서는 수능엄왕으로서 세상에 드문 존재이십니다.

 

 

銷我億劫顚倒想 不歷僧祗獲法身

저의 억겁 동안 뒤바뀌었던 허망한 생각을 없애 주셔서

아 승 지 겁을 거치지 않고서도 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願今得果成寶王 還度如是恒沙衆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

伏請世尊爲證明 五濁惡世誓先入

如一衆生未成佛 終不於此取泥揑

지금 저희들도 성과(聖果)를 얻어 보왕(寶王)이 되어서 이렇게 항하사 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티끌 같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 것이오니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증명하여 주소서. 맹세코 오탁(五濁)의 악세에 먼저 들어가서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겠습니다.

 

 

大雄大力大慈悲 希更審除微細惑

令我早登無上覺 於十方界坐道場

큰 자비와 큰 힘을 지니신 거룩하신 분이시여 다시금 저희들의 미세한 의혹을 없애게 하사 저로 하여금 하루 바삐 위없는 깨달음에 올라 시방 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여 주소서.

 

 

舜若多性可銷亡 爍迦羅心無動轉

허공[舜若多]의 성품은 없앨 수 있을지언정 굳고 굳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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