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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楞嚴經

능엄경 楞嚴經 卷第二

by 산산바다 2019. 12. 5.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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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頂首楞嚴經 卷第

 

2권에서는 깨달음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한다. 물질과 나, 몸과 마음, 본질과 작용 등은 둘이 아니며, 오음(五陰: / / / / )은 모두가 허망하여 자연도 인연도 아님을 설한다.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爾時阿難及諸大衆 聞佛示誨身心泰然 念無始來失却本心 妄認緣塵分別影事 今日開悟如失乳兒忽遇慈母 合掌禮佛 願聞如來, 顯出身心眞妄虛實現前生滅與不生滅二發明性

그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생각하기를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심을 잃어버리고 앞에 나타나는 물질만을 분별하는 그림자 같은 일들을 헛되게 인정해오다가 오늘에야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아서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진실하고 거짓된 것과 허망하고 실한 것을 나타낸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하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時波斯匿王起立白佛 我昔未承諸佛誨勅 見迦旃延毘羅胝子 咸言此身死後斷滅名爲涅槃 我雖値佛今猶狐疑 云何發揮證知此心不生滅地 今此大衆諸有漏者咸皆願聞

그 때에 바사닉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적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 주셔야 이 마음의 나고 멸함이 없는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정기가 새는 자 있어서 그들도 모두 정기가 새는 것을 끊지 못한 자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佛告大王 汝身現在 今復問汝 汝此肉身爲同金剛常住不朽爲復變壞?世尊我今此身終歸變滅 佛言大王 汝未曾滅云何知滅 世尊我此無常變壞之身雖未曾滅 我觀現前念念遷謝新新不住 如火成灰漸漸銷殞 殞亡不息決知此身當從滅盡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몸이 현재 살아 있으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이 육신이 금강(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기느냐?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기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지금 이 육신은 마침내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이 무상하게 변하여 없어지는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오나 제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 재가 되는 것과 같아서 점점 쉬지 않고 늙어져가고 있으므로 결단코 이 몸이 언젠가는 다 없어질 것임을 아나이다."

 

 

佛言如是大王汝今生齡已從衰老顔貌何如童子之時 世尊我昔孩孺膚腠潤澤 年至長成血氣充滿 而今頹齡 迫於衰耄形色枯悴精神昏昧髮白面皺逮將不久如何見比充盛之時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대왕아! 그대의 나이는 지금 이미 늙었는데도 얼굴 모습은 동자 때와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었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먹어 쇠모함이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을 희어지고 얼굴은 쭈그러져서 오래가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佛言大王 汝之形容應不頓朽 王言世尊 變化密移我誠不覺 寒暑遷流漸至於此 何以故 我年二十雖號年少顔貌已老 初十歲時 三十之年又衰二十 于今六十又過于二顧五十時宛然强壯 世尊我見密移 雖此殂落 其間流易且限十年 若復令我微細思惟其變寧唯一紀二紀實爲年變 豈唯年變 亦兼月化 何直月化 兼又日遷 沈思諦觀刹那刹那念念之間不得停住 故知我身終從變滅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리라. "대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해 가므로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합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저의 나이 20세적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10세 때보다 늙었고, 30세에는 또 20세 때보다 늙었으며, 지금 60에 또 둘을 더 하고 보니 50세 때를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훨씬 강장(强壯)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점차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저락함에 있어 그 사이에 세월이 흘러 변함을 10년씩 한정하여 말하였습니다만, 만약 다시 저로 하여금 자세히 생각하게 하오면 그 변해감이 어찌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어찌 해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역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이 생각하면 찰나(刹那)마다 생각마다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佛告大王 汝見變化遷改不停悟知汝滅 亦於滅時汝知身中有不滅耶 波斯匿王 合掌白佛 我實不知 佛言我今示汝不生滅性 大王汝年幾時見恒河水 王言我生三歲慈母携我謁耆婆天經過此流爾時卽知是恒河水 佛言大王 如汝所說二十之時衰於十歲乃至六十歲月日時念念遷變 則汝三歲見此河時至年十三其水 云何 王言如三歲時宛然無異 乃至今年六十二亦無有異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그대가 줄어 없어질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또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속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느냐?" 바사닉왕이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사실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보여 주리라! 대왕아!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황하강 물을 보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제가 난 지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갈 적에 그 강을 건넜는데 그 때에 항하강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 까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적에 보던 그 물과 열세 살 때 보던 그 물이 어떠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세살 때와 같아서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두 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달라짐이 없습니다."

 

 

佛言汝今自傷髮白面皺 其面必定皺於童年 則汝今時觀此恒河與昔童時觀河之見有童耄不 王言不也世尊 佛言大王 汝面雖皺而此見精性未曾皺 皺者爲變 不皺非變 變者受滅 彼不變者元無生滅 云何於中受汝生死 而猶引彼末伽梨等都言此身死後全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파하나니, 그 얼굴은 반드시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강 물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이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대왕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 보는 정기만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쭈그러진 것이 아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겠지만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의 나고 죽음을 받았는데 오히려 저 말가리(末伽梨)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하는고."

 

 

王聞是言 信知身後捨生趣生 與諸大衆踊躍歡喜得未曾有

대왕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기뻐 날뛰면서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阿難卽從座起 合掌禮佛長脆白佛 世尊若此見聞必不生滅云何世尊名我等輩遺失眞性顚倒行事 願興慈悲洗我塵垢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놈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 주시옵소서."

 

 

卽時如來垂金色臂輪手下指示阿難言 汝今見我母陀羅手爲正爲倒 阿難答言世間衆生以此爲倒而我不知誰正誰倒

그때에 여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시며 아난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나의 모타라(母陀羅)손을 보아라.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상의 중생들은 이것을 거꾸로 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 인지 모르겠습니다."

 

 

佛告阿難 若世間人以此爲倒卽世間人將何爲正阿難答言如來?兜羅綿手上指於空則名爲正 佛卽豎臂告阿難言如此顚倒首尾相換 諸世間人一倍瞻視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 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을 바로라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 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바로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나 더 거꾸로 보는구나."

 

 

則知汝身與諸如來淸淨法身比類發明如來之身名正偏知 汝等之身號性顚倒

"그러나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여래의 청정한 법신과 비슷한 종류로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여래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偏知]'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성품이 뒤바뀜[性顚倒]'이라 부른다.

 

 

隨汝諦觀 汝身佛身稱顚倒者名字何處號爲顚倒 于時阿難與諸大衆瞪瞢瞻佛目睛不瞬不知身心顚倒所在

따라서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어느 곳을 이름 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 때에 아난이 모든 대중들과 더불어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佛興慈悲哀愍阿難及諸大衆 發海潮音偏告同會 諸善男子我常說言色心諸緣及心所使諸所緣法唯心所現 汝身汝心皆是妙明眞精妙心中所現物 云何汝等遺失本妙圓妙明心寶明妙性?認悟中迷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바다 조수와 같은 음성[海潮音]을 내시어 같은 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널리 이르시기를 "선남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물질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끌려 다니는 것과 반연되는 모든 현상들이 오직 마음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은 참되고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물건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본래부터 오묘한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 속에 혼미한 것만을 인정하는구나?

 

 

晦昧爲空空晦暗中結暗爲色 色雜妄想想相爲身 聚緣內搖趣外奔逸 昏擾擾相以爲心性 一迷爲心決定惑爲色身之內 不知色身外洎山河虛空大地咸是妙明眞心中物 譬如澄淸百千大海棄之 唯認一浮漚軆目爲全潮窮盡瀛渤 汝等卽是迷中倍人 如我垂手 等無差別 如來說爲可憐愍者

어두워서 허공이 되어서는 그 허공과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 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百千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인식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라 하며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너희들은 곧 미혹한 속에서도 배나 더 미혹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여래께서 가엾은 사람이라고 말씀하느니라."

 

 

阿難承佛悲救深誨 垂泣叉手而白佛言我雖承佛如是妙音悟妙明心元所圓滿常住心地 而我悟佛現說法音現以緣心允所瞻仰徒獲此心未敢認爲本元心地 願佛哀愍宣示圓音 拔我疑根歸無上道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마음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현재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자리라고 인정하지 못하겠사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어 원만한 법음을 베푸시어 저의 의혹의 뿌리를 뽑아서 위없는 최고의 도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佛告阿難 汝等尙以緣心聽法此法亦緣非得法性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직까지도 반연으로 생긴 마음으로 법을 듣나니 그 법도 역시 반연일 뿐이라서 법성(法性)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當應看月 若復觀指 以爲月體此人豈唯亡失月輪亦亡其指 何以故 以所標指爲明月故 豈唯亡指 亦復不識明之與暗 何以故 卽以指體爲月明性 明暗二性無所了故 汝亦如是

가령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리요? 또한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곧 손가락을 달의 밝은 성품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성품에서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 너 또한 그러하니라.

 

 

若以分別我說法音爲汝心者 此心自應離分別音有分別性 譬如有客寄宿旅亭暫止便去終不常住 而掌亭人都無所去名爲亭主 此亦如是 若眞汝心則無所去 云何離聲無分別性

만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정(旅亭)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버리면 이는 마침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여정을 맡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므로 여정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요?

 

 

斯則豈唯聲分別心 分別我容離諸色相無分別性 如是乃至分別都無非色非空拘舍離等昧爲冥諦

이것이 어찌 소리로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물질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분별함이 전연 없는 데에까지 이르러서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므로 구사리(拘舍離) 등이 이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 하느니라.

 

 

離諸法緣無分別性 則汝心性各有所還云何爲主

법의 반연을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阿難白佛若我心性各有所還 則如來說妙明元心云何無還 惟垂哀愍爲我宣說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만약 저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佛告阿難 且汝見我見精明元 此見雖非妙精明心 如第二月非是月影 汝應諦聽 今當示汝無所還地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또 네가 나를 보는 그 정기의 밝은 근원은 이 보는 놈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 의 달인지라 달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阿難此大講堂洞開東方日輪升天則有光耀 中夜黑月雲霧晦暝則復昏暗 戶牖之隙則復見通 牆宇之間則復觀壅 分別之處則復見緣 頑虛之中徧是空性 鬱孛之象則紆昏塵 澄霽斂氛 又觀淸淨 阿難汝咸看此諸變化相 吾今各還本所因處 云何本因 阿難此諸變化明還日輪 何以故 無日不明明因屬日是故還日 暗還黑月 通還戶牖 塞還牆宇 緣還分別頑虛還空 鬱孛還塵 淸淨還霽 則諸世間一切所有不出斯類 汝見八種見精明性當欲誰還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틔여서 둥근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도 없는 한 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저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틈으로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 사이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 반연함을 보고 완벽한 허공 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라고 맑게 개여 우내가 걷히면 또 다시 맑음을 보게 되느니라. 아난아! 네가 이 여러 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살펴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아가나니,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것의 근본을 해에 속한다. 그러므로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반연은 분별로 돌아가고 완벽한 허공은 허공으로 돌아가며,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고 맑음은 개인데로 돌아가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느니라. 그런데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은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何以故 若還於明則不明時無復見暗 雖明暗等種種差別見無差別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음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차별한다 하더라도 보는 것은 차별이 없느니라.

 

 

諸可還者自然非汝 不汝還者非汝而誰

모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자연 네가 아니거니와 네게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느냐?

 

 

則知汝心本妙明淨汝自迷悶 喪本受輪於生死中常被漂溺 是故如來名可憐愍

그러니 깨달을 지어다.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기 때문에 여래가 가련하다고 한 것이다."

 

 

阿難白佛言我雖識此見性無還 云何得知是我眞性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겠습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성품이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佛告阿難 吾今問汝 今汝未得無漏淸淨 承佛神力見彼初禪得無障礙 而阿那律 見閻浮提如觀掌中菴摩羅果 諸菩薩等見百千界十方如來窮盡微塵淸淨國土無所不矚 衆生洞視不過分寸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노니, 지금 네가 정기가 새는 것이 없어진 청정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초선천(初禪天)을 보는데 장애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閻孚提)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百千의 세계를 보며, 시방의 여래는 티끌처럼 많은 청정한 국토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중생들이 보는 것은 푼촌(分寸)에 지나지 않느니라.

 

 

阿難且吾與汝觀四天王所居宮殿 中間遍覽水陸空行 雖有昏明種種形像 無非前塵分別留㝵汝應於此分別自他 今吾將汝擇於見中誰是我體誰爲物像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볼 적에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보겠는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두가 앞에 나타난 물질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나와 남을 분별하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물체인지를 가려 주리라.

 

 

阿難極汝見源從日月宮是物非汝 至七金山周遍諦觀雖種種光亦物非汝 漸漸更觀雲騰鳥飛風動塵起樹木山川草芥人畜咸物非汝

아난아! 네가 보는 것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역시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에 점점 다시 관찰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물상이지 너는 아니니라.

 

 

阿難是諸遠近所有物性雖復差殊同汝見精淸淨所矚 則諸物類自有差別見性無殊 此精妙明誠汝見性

아난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똑같이 너의 청정하게 보는 정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물상은 자연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으니,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음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若見是物則汝亦可見吾之見

만약 보는 그 자체가 물상이라면 네가 또한 나의 보는 성품을 보아야 하리라.

 

 

若同見者名爲見吾 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

만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내가 보는 성품을 본다고 할진대 내가 보지 못할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는 보지 못하느냐?

 

 

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

만약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질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又則汝今見物之時 汝旣見物物亦見汝 體性紛雜則汝與我幷諸世間不成安立

또한 네가 지금 물질을 볼 적에 네가 이미 물질을 보았거든 물질도 너를 보아서 실체와 그 성품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이 편안하게 정립되지 못할 것이다.

 

 

阿難若汝見時是汝非我見性周遍非汝而誰 云何自疑汝之眞性性汝不眞取我求實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에, 이것이 네가 보는 것이지 내가 아닐진대 보는 성품이 골고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성품이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성품인 양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진실을 구하려고 하느냐?"

 

 

阿難白佛言世尊 若此見性必我非餘 我與如來觀四天王勝藏寶殿及日月宮此見周圓徧娑婆國 退歸精舍祗見伽藍 淸心戶堂但瞻簷廡 世尊 此見如是其體本來 周遍一界 今在室中唯滿一室爲復此見縮大爲小 爲當牆宇夾令斷絶 我今不知斯義所在 願垂弘慈爲我敷演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반드시 나의 지님이 아닐진대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수승하고 장엄한 보배의 궁전과 일월궁(日月宮)을 볼 적에는 그 보는 것이 두루 원만해서 사바국(娑婆國)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伽藍)만 보이고 청심호당(淸心戶堂)에서는 다만 처마만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보는 것이 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졌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는 그 보는 것이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주소서."

 

 

佛告阿難一切世間大小內外諸所事業各屬前塵不應說言見有舒縮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일체의 세상과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업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것이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느니라.

 

 

譬如方器中見方空 吾復問汝 此方器中所見方空爲復定方爲不定方 若定方者別安圓器空應不圓 若不定者在方器中應無方空 汝言不知斯義所在 義性如是 云何爲在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이는 모난 하늘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이 둥근 그릇 속에서도 그 하늘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 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阿難若復欲令入無方圓 但除器方空體無方 不應說言更除虛空方相所在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지언정 하늘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허공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若如汝問入室之時縮見令小 仰觀日時汝豈挽見齊於日面 若築墻宇能夾見斷 穿爲小竇寧無續迹 是義不然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찌 보는 것을 늘려서 해에 닿게 한 것이겠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것이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어찌 이은 흔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게 아니니라.

 

 

一切衆生從無始來迷己爲物失於本心爲物所轉 故於是中觀大觀小 若能轉物則同如來卽心圓明不動道場 於一毛端遍能含受十方國土

일체의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로 생각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서 곧 마음이 원만 하게 밝아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개의 털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阿難白佛言世尊若此見精必我妙性 今此妙性現在我前見必我眞 我今身心復是何物 而今身心分別有實 彼見無別分析我身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정기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성품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성품이 현재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것이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함이 실제가 있거니와 저 보는 것은 분별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뉘어져 있습니다.

 

 

若實我心令我今見 見性實我而身非我 何殊如來先所難言物能見我 惟垂大慈開發未悟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성품은 진정한 나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여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물질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주소서."

 

 

佛告阿難今汝所言見在汝前是義非實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지금 네가 말한 '보는 것이 내 앞에 있습니다.' 라고 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느니라.

 

 

若實汝前汝實見者則此見精旣有方所非無指示 且今與汝坐祗陀林遍觀林渠及與殿堂, 上至日月前對恒河? 汝今於我獅子座前擧手指陳是種種相 陰者是林 明者是日 礙者是壁 通者是空 如是乃至草樹纖毫大小雖殊?但諸有形無不指陳 若必其見現在汝前 汝應以手確實指陳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정기가 이미 장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祗陀林)에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전당(殿堂)을 두루 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고 앞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니, 이렇게 형상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 만일 그 보는 것이 반드시 현재 네 앞에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何者是見 阿難當知 若空是見旣已成見何者是空 若物是見旣已成見何者是物 汝可微細披剝萬像析出精明淨妙見元指陳示我同彼諸物分明無惑

어느 것이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허공이며, 만약 물체가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물체이겠느냐? 너는 미세하게 온갖 물상을 구분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게 보는 근원을 가려내어 나에게 지적하여 보여주되 저 물질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여 보아라."

 

 

阿難白佛言我今於此重閣講堂遠洎恒河上觀日月擧手所指縱目所觀指皆是物無是見者 世尊 如佛所說況我有漏初學聲聞乃至菩薩亦不能於萬物像前剖出精見離一切物別有自性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황하강에 까지 이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 있어서 가리키는 것은 모두가 물질이라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정기가 새는 것을 끊어버리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聲聞)이거니와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자성이 있음이 알게 될 것입니다.

 

 

佛言如是如是 佛復告阿難 如汝所言 無有精見離一切物別有精見 則汝所指是物之中無是見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정밀하게 보는 놈을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물상 속에는 보는 것이 없겠구나.

 

 

今復告汝 汝與如來坐祗陀林更觀林苑乃至日月種種像殊必無見精受汝所指 汝又發明此諸物中何者非見 阿難答言我實?見此祗陀林 不知是中何者非見 何以故若樹非見云何見樹若樹卽見復云何樹 如是乃至若空非見云何見空 若空卽見 復云何空 我又思惟是萬像中微細發明無非見者 佛言如是如是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네가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다시 숲과 동산, 그리고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보아라. 갖가지 물상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보는 정기가 네가 가리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상 중에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또 생각하니 이 온갖 물상 중에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러하니라."

 

 

於是大衆非無學者聞佛此言茫然不知是義始終一時惶悚失其所守

그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아니한 자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자옵고 멍청하게 이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며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직하고 있던 것을 잃은 듯하였다.

 

 

如來知其魂慮變慴 心生憐愍 安慰阿難及諸大衆 諸善男子 無上法王 是眞實語如所如說不誑不妄 非末伽梨四種不死矯亂論議 汝諦思惟無忝哀慕

여래께서 그들의 정신이 변하여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모든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의와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是時 文殊師利法王子菩薩 愍諸四衆在大衆中卽從座起頂禮佛足合掌恭敬而白佛言世尊此諸大衆不悟如來發明二種精見空色 是非是義

그때에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사 대중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것인지 이것이 아닌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世尊 若此前緣空色等像若是見者應有所指 若非見者應無所矚 而今不知是義所歸 故有驚怖非是疇昔善根輕尠 惟願如來大慈發明此諸物象與此見精元是何物於其中間無是非是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허공과 물질의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응당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볼 것도 없어야 할 터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이것이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정기가 본래 무엇이기에 그 중간에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佛告文殊及諸大衆 十方如來 及大菩薩於其自住三摩地中見與見緣幷所想相 如虛空花本無所有 此見及緣元是菩提妙淨明軆 云何於中有是非是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것과 그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느냐?

 

 

文殊 吾今問汝 如汝文殊 更有文殊是文殊者 爲無文殊 如是世尊 我眞文殊 無是文殊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아서 또 다른 문수가 문수이냐? 문수가 아니냐?"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그러한 또 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何以故 若有是者則二文殊 然我今日非無文殊 於中實無是非二相

왜 그런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두 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佛言此見妙明與諸空色亦復如是 本是妙明無上菩提淨圓眞心 妄爲空色 及與聞見 如第二月誰爲是月又誰非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역시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이거늘 이것이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것이라 여겨서 마치 제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文殊 但一月眞 中間自無是月非月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是以汝今觀見與塵種種發明名爲妄想 不能於中出是非是 由是眞精妙覺明性 故能令汝出指非指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혀냄을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阿難白佛言世尊 誠如法王所說覺緣遍十方界湛然常住性非生滅 與先梵志娑毘迦羅所談冥諦及投灰等諸外道種說有眞我遍滿十方有何差別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아닐진대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世尊亦曾於楞伽山爲大慧等敷演斯義 彼外道等常說自然我說因緣非彼境界

세존께서도 일찍이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我今觀此覺性自然非生非滅遠離一切虛妄顚倒似非因緣如彼自然 云何開示令我等輩, 不入群邪獲眞實心妙覺明性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댄 깨닫는 성품이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허망하게 뒤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셔야만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佛告阿難 我今如是開示方便眞實告汝 汝猶未悟惑爲自然 阿難 若必自然自須甄明有自然軆 汝且觀此妙明見中以何爲自 此見爲復以明爲自以暗爲自以空爲自以塞爲自 阿難 若明爲自應不見暗 若復以空爲自軆者應不見塞 如是乃至諸暗等相以爲自者則於明時見性斷滅云何見明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자연이라고 기필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본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자()라고 하겠느냐? 이 보는 놈은 밝음을 자()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라고 한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응당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으로 자연이라 생각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阿難白佛言 必此妙見性非自然 我今發明是因緣生 心猶未明諮詢如來 是義云何合因緣性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지금 이것은 인연의 성품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여래께 여쭙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佛言 汝言因緣 吾今問汝 汝今因見見性現前 此見爲復因明有見因暗有見因空有見因塞有見 阿難 若因明有應不見暗 如因暗有應不見明 如是乃至因空因塞同於明暗 復次阿難 此見又復緣明有見緣暗有見緣空有見緣塞有見 若緣空有應不見塞 若緣塞有應不見空 如是乃至緣明緣暗 同於空塞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놈은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허공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밝음이나 어두움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으로 인해서와 어두움으로 인해서도 허공이나 막힘과 같으니라.

 

 

當知如是精覺妙明非因非緣亦非自然非不自然無非不非無是非是離一切相卽一切法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이 인()도 아니며 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느니라.

 

 

汝今云何於中措心 以諸世間戱論名相而得分別 如以手掌撮摩虛空祗益自勞 虛空云何隨汝執捉

네가 지금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 길래 모든 세간에서 장난삼아 논란하는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야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阿難白佛言世尊必妙覺性非因非緣 世尊云何常與比丘 宣說見性具四種緣 所謂因空因明因心因眼是義云何 佛言阿難 我說世間諸因緣相非第一義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도 아니고 연()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 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 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함 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라.

 

 

阿難 吾復問汝 諸世間人說我能見 云何名見 云何不見 阿難白佛言世人因於日月燈光見種種相名之爲見 若復無此三種光明則不能見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阿難若無明時名不見者應不見暗 若必見暗此但無明云何無見

"아난아! 만약 밝음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움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떻게 봄이 없다고 하겠느냐?

 

 

阿難 若在暗時不見明故名爲不見 今在明時不見暗相還名不見 如是二相俱名不見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또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若復二相自相凌奪非汝見性於中暫無 如是則知二俱名見云何不見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是故阿難 汝今當知見明之時見非是明 見暗之時見非是暗 見空之時見非是空 見塞之時見非是塞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음이 아니며, 어두움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움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四義成就 汝復應知 見見之時見非是見

네 가지 이치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을 볼 적에 보는 놈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見性微妙, 猶且離見見不能及云何復說因緣自然及和合相 汝等聲聞狹劣無識不能通達淸淨實相 吾今誨汝 當善思惟 無得疲怠妙菩提路

보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 보는 것으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희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阿難白佛言世尊 惟佛如來爲我等輩宣說因緣及與自然諸和合相與不和合心猶未開 而今更聞見見非見重增迷愍 伏願弘慈施大慧目開示我等覺心明淨 作是語已悲淚頂禮承受聖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된 현상과 어울려 조화되지 못함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는 놈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소서."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였다.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大衆 將欲敷演大總特門及諸三昧 妙修行路 告阿難言 汝雖强記但益多聞於奢摩他微密觀照心猶未了 汝今諦聽 吾當爲汝分別開示 亦令將來諸有漏者獲菩提果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사 큰 총지문(總持門)과 모든 삼매의 오묘한 수행 방법[]을 다시 말씀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힘썼고 사마타의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봄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나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자들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阿難 一切衆生輪廻世間由二顚倒分別見妄當處發生當業流轉 云何二見一者衆生別業妄見 二者衆生同分妄見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분별하여 보는 것이 허망하여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 가지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별업(別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니라.

 

 

云何名爲別業妄見 阿難如世間人目有赤眚夜見燈光別有圓影五色重疊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 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보이느니라.

 

 

於意云何 此夜燈明所現圓影爲是燈色爲當見色 阿難 此若燈色則非眚人何不同見而此圓影 唯眚是觀 若是見色見已成色則彼眚人見圓影者名爲何等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거니 저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復次阿難 若此圓影離燈別有則合傍觀屛帳几筵有圓影出 離見別有應非眼云何眚人目見圓影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도 또 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떠나서도 또 다른 것이 있다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是故應知色實在燈見病爲影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것의 병으로 인하여 그림자가 되었느니라.

 

 

影見俱眚見眚非病 終不應言是燈是見 於是中有非燈非見 如第二月?非影 何以故 第二之觀捏所成故 諸有智者不應說言此捏根元是形非形離見非見此亦如是?所成今欲名誰是燈是見 何況分別非燈非見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가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 보는 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할 것이 못되며, 또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의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제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느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지금 무엇을 이름 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云何名爲同分妄見 阿難 此閻浮提除大海水中間平陸有三千洲正中大洲東西括量大國凡有二千三百 其餘小洲在諸海中其間或有三兩百國 或一或二至于三十四十五十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육지에 三千개의 섬이 있으니 한 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二千三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서 三十, 四十, 五十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阿難 若復此中有一小洲祗有兩國 唯一國人同感惡緣則彼小洲當土衆生觀諸一切不祥境界或見二日或見兩月 其中乃至暈適 珮玦 彗勃飛流 負珥虹蜺 種種惡相但此國見彼國衆生本所不見亦復不聞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 패성, 흐르는 별똥[飛流],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지언정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본래 보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느니라.

 

 

阿難 吾今爲汝 以此二事進退合明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阿難 如彼衆生 別業妄見矚燈光中所現圓影雖現似境終彼見者目眚所成 眚卽見勞非色所造 然見眚者終無見咎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지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마침내 보는 잘못은 없느니라.

 

 

例汝今日以目觀見山河國土 及諸衆生皆是無始見病所成 見與見緣似現前境 元我覺明見所緣眚 覺見卽眚 本覺明心覺緣非眚

예컨댄 네가 오늘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병들므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놈과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앞의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체를 보는 눈병이다. 그러니 깨닫고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리라.

 

 

覺所覺眚性覺明元 卽非眚中此實見見云何復名覺聞知見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실 보는 놈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是故汝今見我及汝幷諸世間十類衆生皆卽見眚 非見眚者彼見精眞性非眚者故不名見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상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놈의 눈병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놈이 정밀하고 참된 이유는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놈이라고 이름 하지 않는 것이다.

 

 

阿難 如彼衆生同分妄見例彼妄見別業一人 一病目人同彼一國 彼見圓影眚妄所生 此衆同分所見不祥同見業中瘴惡所起 俱是無始見妄所生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허망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例閻浮提三千洲中兼四大海娑婆世界幷洎十方諸有漏國及諸衆生 同是覺明無漏妙心見聞覺知虛妄病緣和合妄生和合妄死

염부제(閻浮提) 三千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모든 나라들[有漏國]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깨닫고 분별하는 새는 것이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여 허망한 병으로 인하여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느니라.

 

 

若能遠離諸和合緣及不和合則復滅除諸生死因 圓滿菩提不生滅性 淸淨本心本覺常住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여러 가지 나고 죽는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원만한 보리의 나고 죽지 아니하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阿難 汝雖先悟本覺妙明性非因緣非自然性 而猶未明如是覺元非和合生及不和合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 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阿難 吾今復以前塵問汝 汝今猶以一切世間妄想和合諸因緣性而自疑惑證菩提心和合起者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혹하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則汝今者妙淨見精 爲與明和爲與暗和爲與通和爲與塞和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조화된 것이냐, 어두운 것과 조화된 것이냐, 통한 것과 조화된 것이냐, 막힌 것과 조화된 것이냐?

 

 

若明和者且汝觀明當明現前何處雜見見相可辨雜何形像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若非見者云何見明 若卽見者云何見見

만약 보는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놈이라면 어떻게 보는 놈을 본다고 하겠느냐?

 

 

必見圓滿何處和明 若明圓滿不合見和

반드시 보는 놈이 원만하다면 어느 곳에서 밝음과 조화할 것이며, 만약 밝음이 원만하다면 보는 자체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見必異明 雜則失彼性明名字 雜失明性和明非義

보는 놈은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이었다면 저 성품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復次阿難 又汝今者妙淨見精爲與明合爲與暗合爲與通合爲與塞合

또 다시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若明合者至於暗時明相已滅此見卽不與諸暗合云何見暗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맑은 모양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저 보는 놈이 어두움과는 어울리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若見暗時不與暗合與明合者應非見明 旣不見明云何明合 了明非暗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彼暗與通及與群塞亦復如是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阿難白佛言世尊 如我思惟此妙覺元與諸緣塵及心念慮非和合耶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佛言汝今又言覺非和合 吾復問汝 此妙見精非和合者爲非明和爲非暗和爲非通和爲非塞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若非明和則見與明必有邊畔?汝且諦觀何處是明何處是見在見在明自何爲畔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놈과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놈이냐? 보는 놈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느냐?

 

 

阿難 若明際中必無見者則不相及自不知其明相所在畔云何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놈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又妙見精非和合者爲非明合爲非暗合爲非通合爲非塞合

또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若非明合卽見與明性相乖角 如耳與眼了不相觸 見且不知明相所在云何甄明合非合理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놈과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彼暗與通及諸群塞力復如是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阿難 汝猶未明一切浮塵諸幻化相當處出生隨處滅盡 幻妄稱相其性眞爲妙覺明軆 如是乃至五陰六入從十二處至十八界因緣和合虛妄有生因緣別離虛妄爲滅 殊不能知生滅去來本如來藏 常住妙明不動周圓妙眞如性 性眞常中求於去來迷悟生死了無所得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부질없는 물질인 모든 허깨비 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져서 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하는 것이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오묘하고 참다웁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느니라.

 

 

阿難 云何五陰本如來藏妙眞如性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阿難 譬如有人以淸淨眼觀晴明空唯一晴空逈無所有 其人無故不動目晴瞪以發勞則於虛空別見狂華復有一切狂亂非相 當知色陰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적엔 오직 하나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곧 허공에서 또 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하니라.

 

 

阿難 是諸狂華非從空來非從目出 如是阿難 若空來者旣從空來還從空入 若有出入卽非虛空 空若非空自不容其華相起滅 如阿難軆不容阿難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若目出者旣從目出還從目入 卽此華性從目出故當合有見 若有見者 去旣華空旋合見眼 若無見者出旣蘙空旋當蘙眼 又見華時目應無蘙 云何晴空號淸明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헛보이는 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인데, 만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꽃을 볼 적에 눈이 응당 가리움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이라야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是故當知色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譬如有人手足宴安百骸調適忽如忘生性無違順 其人無故以兩手掌於空相摩於兩手中妄生澀滑冷熱諸相 當知受陰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끄럽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 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수음(受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阿難 是諸幻觸不從空來不從掌出 如是阿難 若空來者旣能觸掌何不觸身 不應虛空選擇來觸 若從掌出應不待合

아난아! 이 여러 가지 허깨비 같은 허망한 접촉이 허공에서 부터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접촉 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응당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又掌出故合則掌知離則觸入臂腕骨髓應亦覺知入時蹤跡 必有覺心知出知入 自有一物身中往來 何待合知要名爲觸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응당 들어갈 때의 자취를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是故當知受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수음(受陰=五蘊)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譬如有人談說酢梅口中水出 思踏懸崖足心酸澀 當知想陰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想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阿難 如是酢說不從梅生非從口入 如是阿難 若梅生者梅合自談何待人說 若從口入自合口聞何須待耳 若耳獨聞此水何不耳中而出

아난아! 이러한 신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이어 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想踏懸崖與說相類

높은 언덕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매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서로 비슷하다.

 

 

是故當知想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譬如瀑流波浪相續前際後際不相踰越 當知行陰亦復如是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阿難 如是流性不因空生不因水有亦非水性非離空水 如是阿難 若因空生則諸十方無盡虛空成無盡流世界自然俱受淪溺 若因水有則此瀑流性應非水能有所有之相今應現在 若卽水性則澄淸時應非水軆 若離空水空非有外水外無流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 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지금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이라면 맑은 때에는 응당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是故當知行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阿難 譬如有人取頻伽甁塞其兩孔滿中擎空千里遠行用餉他國 當知識陰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득히 채워가지고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 식음(識陰)은 식온(識蘊)이라고도 함. 가려내어 앎이니, 눈으로 빛을 보며,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며, 몸에 대며, 생각()에 법을 욕심내어 집착함으로써 끝없이 가리어 앎이 식음임

 

 

阿難 如是虛空非彼方來非此方入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니라.

 

 

如是阿難若彼方來則本甁中旣貯空去於本應少虛空 若此方入開孔倒甁應見空出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是故當知識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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