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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친구와 함께/우리의 만남

마이산 탑사에 가 보다.

by 산산바다 2016. 8. 17.

산과바다



마이산 탑사에 가 보다.

2016. 8. 14. 담음

우리의 만남(박종규 이계도 홍순호 박상기 부부동반) 마이산 탑사와 은수사에 올라보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367에 위치.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탑사가 있다.


마이산 서봉 절벽 아래에 있는 사찰로 태고종단 소속이다. 탑사(塔寺)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에서 유래한다. 1920년경 이갑룡(李甲龍)[1860~1957]이 마이산에 들어와 암자를 짓고 거주하면서 점차적으로 탑사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으며, 그 후 그의 손자인 이왕선(李旺善)이 한국 불교 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고, ‘한국 불교 태고종 탑사로 이름하였다.


마이산 남문주차장에서 1.6km 올라가야 탑사가 나타나는군요.


탑영저수지 넘어로 마이산의 숫마이봉이 보이는군요.







마이산의 입구에 들어서면 다양한 크기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하나하나 쌓여 거대한 돌탑을 이루고 있는 소위 마이산 탑사를 볼 수 있다.


이들 돌탑은 타포니와 함께 마이산의 기이한 경관을 만들어 준다. 높이 15m, 둘레 20m의 거대한 돌탑들은 접착제를 쓴 것 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고 백 여 년의 시간을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배경은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의 노력에 의한 결실이라고 전해지는데, 수행을 위해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련을 하던 중에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석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30리 밖에서 돌을 날라 팔진도법과 음양이치 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을 이용하여 쌓았다. 탑사 덕분에 마이산 탑사를 찾는 많은 불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불교의 연을 잇는 관광사찰로 더욱 발전시켰다.



마이산 서봉 절벽 아래에 있는 사찰로 태고종단 소속이다. 탑사(塔寺)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에서 유래한다.

1920년경 이갑룡(李甲龍)[1860~1957]이 마이산에 들어와 암자를 짓고 거주하면서 점차적으로 탑사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으며, 그 후 그의 손자인 이왕선(李旺善)이 한국 불교 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고, ‘한국 불교 태고종 탑사로 이름하였다.





마이산 능소화가 암벽을 티고 오르며 꽃을 피우는군요.



1920년경 이갑룡(李甲龍)[1860~1957]이 마이산에 들어와 암자를 짓고 거주하면서 점차적으로 탑사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으며, 그 후 그의 손자인 이왕선(李旺善)이 한국 불교 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고, ‘한국 불교 태고종 탑사로 이름하였다.





* 외줄탑-탑사의 대부분을 이루는 탑이다. 단순한 형식이지만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감추고 있다.


* 마이산 천지탑-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 마이산의 타포니-역암에서 자갈을 메우고 있던 진흙이나 모래가 빠져나가면서 생긴 구멍으로, 멀리서 보면 달의 표면을 쳐다보는 것처럼 낯설고 이색적이다.






* 마이산 탑사(16. 3. 25)

* 마이산 은수사 와 탑사(08. 1. 18)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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