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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곰나루

강화도 덕진진(德津鎭)

by 산산바다 2010. 2. 1.

산과바다



강화도 덕진진(德津鎭)-사적 제226호

소재지-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2010.1.30.

강화제2대교를 건너오른쪽방향에 위치한 덕진진을 둘러봄

곰나루모임(이계도 신현철 장기영 양문석 김형기 김현민 최한용)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효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1666년(효종(孝宗) 7)에 수군 첨사의 진을 해협 건너인 통진(通津) 소속의 덕포(德浦)로 옮기고, 이곳에는 별장(別將)을 두어 수어하게 하였다.

 


1677년(숙종(肅宗)3)에 강화유수(江華留守) 허질(許秩)의 요청으로 만호(萬戶)로 승격하여, 군선(軍船) 2척과 만호 아래에 군관 26인과 군인 100명, 그리고 돈군(墩軍) 12명을 배속시켰다.

 

1679년 (숙종(肅宗)5)에 만든 손돌목의 용두돈대(龍頭墩臺)와 덕진돈대(德津墩臺)를 거느리고, 1874년에 만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南章砲臺)를 관할하여 강화 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진보(鎭堡)가운데 가장 요충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는 장군 양헌수(梁憲洙)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鎭) 을 통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들어가 뒤쫓아 온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는 킴벌레이 중령이 거느린 450명의 상륙군이 초지진을 유린하고 야영하자, 덕진진의 수비군이 밤중에 기습을 감행하기도 하였으며, 이튿날 미국 극동함대는 이곳으로 공격하여 왔다.

 

남장포대와 덕진포대는 맹렬한 포격을 가하여 함정에 손상을 입히기도 하였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미군이 점령하고 보니 60좌의 대포가 포좌에 그대로 있었고, 하나도 도망하지 않고 수비군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門樓址)만 남게 되었다.

1976년에 성곽과 돈대를 보수하고, 남장포대도 수축하여 당시의 대포를 복원(復元)하여 설치하였다. 

다음 여행지는 전등사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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