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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여행이 좋아**/국내 여행

홍련암과 청간정을 다녀오고

by 산산바다 2007. 2. 27.
 산과바다



홍련암과 청간정을 다녀오고

 

 

나는-동반하여 추억 만들기... 추억은 영혼의 보석이라 하던가...


 

2007년2월24일-25일

 

일정 : 24일-청주-충주IC중부내륙고속도-영동고속도(점심 대관령휴게소 감자국수)-의상대(홍련암)-속초청초호(시나브로1박)-버스로 대포항(저녁 회+소주+매운탕)

       25일-아침(선지해장국)-청간정-묵호항북쪽 까막바위(점심 회덮밥+곰치국)-영동고속도-               청주

 대관령의 풍차

 

 

 

 사진을 클릭하면 글씨가 크게보임

 

 38선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 항상 마음이 열리는것 같은 시원함이.........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을 들어가서..

  華嚴一乘法界圖

화엄일승법계도1권 1책. 670년 7월 중국 지상사(至相寺)에서 저술한 것이다. 의상의 저서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의상은 그냥 〈법계도〉라고 했으나〈화엄일승법계도장〉〈화엄법계도〉〈일승법계도〉〈법도장 法圖章〉〈법성도 法性圖〉〈해인도 海印圖〉등으로도 불린다.

 


저자는 모든 것에 주인이 따로 있지 않음을 밝히기 위해 일부러 저자명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고 다만 향상대사(香象大師:의상의 스승인 智儼)라고만 밝혔다. 이 때문에 이 책이 법장(法藏) 또는 현수(賢首)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는데, 균여(均如)의〈일승법계원통기〉〈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저자가 의상임이 분명하다.


의상대(義湘臺)-신라 문무왕 16년(676)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만든 정자이다.

 

원래 이곳은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지을 당시 머무르면서 참선하였던 곳으로 옛 부터 의상대라 불렸다고 한다.

 

의상대의 난간을 비스듬하게 세운 것은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6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크기의 의상대는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에 있어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6년(676)에 낙산사<洛山寺>를 창건<創建>한 의상대사<義湘大師>를 기념하기 위하여 의상대사의 좌선처<坐禪處>였던 이곳에 1925년 정자<亭子>를 짓고 의상대<義湘臺>라 명명<命名>한 것이다. 의상대사가 처음 낙산사를 창건할 당시 자주 이곳에 와서 입정<入定>하였으므로 이곳은 옛 부터 의상대라 불리었다고 한다.

 

1936년 폭풍<暴風>으로 도괴<倒壞>되어 1937년 재건<再建 >하였으며 1975년 7월 중건한 이 육각정<六角亭>은 낙산사에서 홍련암<紅蓮庵>의 관음굴<觀音窟>로 가는 길 해안<海岸> 언덕 위에 있어 좋은 전망대가 되고 있다.

 

 

 

 

의상대사를 생각하며 감로수 한구기를 마시며.......... 

 

 홍련암<紅蓮庵>-강원 양양군 강현면 전진1리에 위치함

의상대 좌측 홍련암은 남해 보리암 돌산 향일암 낙가산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도량이다.

의상대에서 200m쯤 북쪽 바닷가로 가면 의상대사가 도를 통했다는 홍련암이 있다. 관음굴이라고도 불리며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625-702)에 의해 창건된 후 몇 차례의 중건이 있었고 조선 고종 6년(1869년)에 중건되었다.

 

 이것은 낙산사에 딸린 암자로 법당마루 밑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게 절벽 위에 세워졌다. 의상대사가 좌선한지 7일째 되는 날 바다 속에서 홍련이 솟아오르고 홍련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대사에게 법열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의 겹처마 팔작(八作)지붕인데 건물의 장변(長邊)이 절벽에 위치하고 있어 함각(合閣)머리가 있는 쪽에 문을 달았다.


속초 청초호 근처에 있는 시나브로에 여장을 풀고.........

 

청초호-강원 속초시 청호동 등 4개동에 인접  

뒤에보이는 산이 설악산 울산바위인가? 

 

청초호 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설경(우수 절기가 지났는데도 설경이구나 그래서 설악인가?)

 

청초호는 소가 누워 있는 모양으로 속초시 한가운데에 넓게 펼쳐져 있으며, 바다와 이어진 하구를 넓혀 속초에서 바다로 나가는 문이 되어있다.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청초호에 한가로이 노닐고있다.

 인근의 영랑호, 강릉의 경포호와 함께 동해안의 대표적인 호수로 꼽히며 강과 바다를 잇는 항구로 이름이 높다.

 


주변에는 "99강원 국제관광엑스포"를 상징하는 73.4m 의 전망대와 아이맥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주제관 등이 있으며,  해상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대포항에 와서 저녁식사를함.  항상 여행온사람으로 붐빈다.

  

 어시장에도 구경하고...

 

 대포항 항구도 둘러보고...

 

날이 어두어져서 ...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식사(광어회+소주+매운탕) 숙소로 돌아옴 

 

청간정(淸澗亭)-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소재(강원 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청간정 가는길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5월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大統領)이 친필로 쓴 것이다.

 

 청간정에서 바라본 설악산

창건년대(創建年代)나 창건자(創建者)는 알 수 없으며 조선(朝鮮) 중종(中宗) 15년(1520) 군수(郡守) 최청(崔淸)을 비롯한 역대 군수가 중수(重修)하였다 한다.

 

사방을 둘러보니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 물결 갈매기 와 설악산 시상이 절로 떠오는것 같음.

 

주위가 모두 석봉(石峯)으로 되어 층층이 대(臺)를 이루고 높이도 수십 길에 달하는 곳에 위치하여 동해(東海)의 파도가 암석에 부딪쳐 흰 거품을 남기며 부서져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壯觀)이다.

 


청간정에서 바라본 설악은 한참 겨울이네요(2.25.) 송강은 5월에도 웬 눈이 가득하다고 했는데....

특히 해와 달이 솟을 때의 정경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서 희귀한 경치라고 할 만하다.고종(高宗) 21년(1884)에 타버린 것은 1928년 면장 김용집(金容集)의 발의(發議)로 지금의 정자(亭子)를 재건(再建)하였다.

 

청간정을 내려오는데 산토끼(재토끼)가 보여서 도망 가기전에 얼른 한장.. 

 

까막바위 -묵호항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곳에  유난히 검은색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바위하나가 있다. 이 바위는 생김새보다도 더 뜻 깊은 전설이 있다.


서울 남대문의 正東方은 이곳 까막바위 이라나?

 

조선조 중엽에 인품이 온후하고 덕망 있는 의로운 호장(戶長)이 살고 있었다.

이때 해마다 생활이 어려워서 춘궁기가 되면 굶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곳 호장은 자기의 재산을 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루 먹여주고 지나는 걸인까지도 후하게 대접을 해주었기에 인근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데 동해안에는 왜구가 침략하여 재물을 빼앗고 백성을 학살하는 등 폐해가 심했다.

 

이에 호장은 앞장서 왜적의 만행을 제지하며 꾸짖었지만 듣지 않으니 백성들을 지휘하여 대항하였으니 흉악한 왜적들을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왜구들은 약탈한 재물과 호장을 싣고 떠나려 하자 마을 전 주민들이 삽, 곡괭이, 괭이, 막대기 등을 들고 그 어진 호장을 못 데려간다고 싸웠으나 무참히 죽어 갔다.


이를 지켜보며 분노에 떨던 호장은 왜장에게 크게 노하여 하는 말이, "비록 내가 너희들에게 육신은 죽어도 너희들을 다시는 이곳에 침범치 못하게 하리라 !"  라고 크게 꾸짖으며 물속에 뛰어들어 죽으니 맑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천둥 번개가 치고 파도가 밀어 닥쳐 호장이 탄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이 때 남은 왜구의 배 한척은 달아나던 중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배를 내리쳐 배는 산산조각 나고 왜구는 모두 죽었다. 다음순간 하늘이 맑게 개고 파도가 잔잔해지자 까마귀 떼가 몰려들어 왜구들의 시체를 뜯어 먹었다. 그런데 이 문어는 그 어진 호장이 죽어 변신한 혼 이라고 말하며 그로부터 이 마을에 왜구의 침입이 끊기고 이 까막바위 밑에 큰 굴이 두개 있는데 여기에 그 호장의 영혼이 살면서 근처 마을을 지켜준다고 전한다.

 

어느 날 마을 어부가 까막바위 밑에 있는 굴속에 들어갔더니 큰 문어가 있어 잡으려 하자 어디서 왔는지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날아와 마구 울어대기에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죄지은 사람이 까막바위 밑을 지나면 문어에게 잡혀 죽었다고 전해지며, 이곳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매년 풍어제를 지내며 지금도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으며 옆에 문어상을 세워 그 전설을 전한다.

 

 

1박 2일간 동반하여 추억 만들기를 하고 청주로 귀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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