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ㅎ- 2 할계언용우도~ )
10.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割鸡焉用牛刀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對策을 쓰거나, 能力이 큰 人物을 작은 일에 쓰는 것을 比喩
「子遊가 魯나라 武城의 邑帝가 되어 武城을 다스릴 때, 스승 孔子에게서 배운 대로 禮樂으로 百姓들을 矯化하는 데 힘을 다했다. 어느 날 孔子가 子遊를 찾아 武城에 갔다. 그때 마을 곳곳에서 樂器를 演奏하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자 孔子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子遊가 對答했다. “以前에 先生님께서 ‘君子가 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小人이 道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孔子가 말했다. “弟子들아, 子遊의 말이 옳다. 내가 앞에 한 말은 弄談으로 한 것일 뿐이다.”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 曰, 割鷄焉用牛刀. 子遊對曰, 昔者, 偃也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子曰, 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戱之耳)」
* 論語 陽貨에 나온다. 論語(논어) 17. 陽貨(양화)
孔子의 말을 禮樂과 같은 큰 道를 조그만 고을을 다스리는 데 使用하는 것을 指摘하는 것으로 誤解한 子遊는, 自己는 先生님께 배운 대로 最善을 다하여 그 고을에 있는 사람들이 同一하게 矯化를 입을 수 있도록 禮樂으로 다스렸다고 말했다. 孔子는 辨明 代身 自己 말이 弄談이었다고 말하고 말았다. 아마 子遊가 孔子의 참뜻을 把握하지 못하고 너무 正色을 했기 때문에 “네가 使用한 禮樂이 아니라, 너를 利用한 이 魯나라를 두고 한 말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웠으리라. 孔子의 말에서 由來하여 ‘ 割鷄焉用牛刀’는 작은 일에 큰 對策을 쓰거나, 能力이 큰 사람을 작은 일에 쓰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牛刀割鷄’로도 쓴다.
子遊는 이름이 言偃으로 江蘇省 常熟 사람이다. 그는 孔子 만년에 孔子의 門下에 들어갔으며, 孔子보다 45歲 아래다. 孔子의 3千 弟子 中 唯一한 南方 사람으로, 72 賢人 中의 한 사람이며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다. 그는 晩年에 故鄕 江南 地域으로 돌아와 儒家思想을 傳播하여 東南 地域의 儒家 文化 開拓에 重要한 役割을 했는데 이를 이르러 ‘道啓東南, 文開吳會’라 한다. ‘儒學의 道를 東南 地域에 열었고, 文化를 吳郡과 會稽에 열었다.’는 뜻이다. 東南 地域은 長江 下流의 江南 地域을 말하고, 五郡은 現在의 江蘇省 地域, 會稽는 現在의 折江省 地域을 말한다. 孔子는 일찍이 “내 門下에 言偃이 있는데, (그로 因해)나의 學問이 南方에 傳播되었다.(吾門有偃, 吾道其南.)”고 말했다. 後人들은 그를 言子라고 稱하며 追仰했다. 그의 故鄕 常熟에는 現在 言子墓, 言子巷, 言子故居, 言子專祠 等의 遺跡이 남아 있다.
‘孔門十哲’은 孔子 門下의 가장 優秀한 弟子 十人을 말한다.
「孔子는 말했다. “德行에는 顔淵 · 閔子騫 · 冉伯牛 · 仲弓, 辯舌에는 宰我와 子貢, 政事는 冉有와 季路, 文學은 子遊와 子夏가 뛰어나다.”
(子曰, 德行,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遊子夏.)」
* 論語 先進에. 論語(논어) 11. 先進(선진)
顔淵은 魯나라 사람으로 子淵이라 稱하며, 이름을 顔回라고도 한다. 閔子騫은 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閔損이다. 冉伯牛는 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冉耕이다. 仲弓은 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冉雍이다. 宰我는 魯나라 사람으로, 子我라고도 하며 이름은 宰予이다. 子貢은 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端木賜이다. 冉有는 魯나라 사람으로 子有라고도 稱하는데, 이름은 冉求이다. 季路는 魯나라 사람으로 子路라고도 稱하며 이름은 仲由이다. 子遊는 吳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言偃이다. 子夏는 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蔔商이다.
11. 합종연횡(合縱連橫) 合纵连横
合縱과 連橫. 合縱은 여섯 나라가 聯合하여 秦나라에 對抗하는 것을 말하고, 連橫은 여섯 나라가 各各 秦나라와 和親하고 섬기는 것을 말한다. 現代에 와서는 複數의 사람이나 團體가 서로 聯帶하는 것을 比喩
春秋時代를 지나 戰國時代에 접어들자 戰國七雄으로 代表되는 齊 · 燕 · 趙 · 韓 · 魏 · 秦 · 楚의 일곱 個 諸侯國으로 戰國이 壓縮되었다. 이 七國이 서로 싸우기도 하고 聯合하기도 하는 等, 複雜多段한 外交 關係를 맺으면서 生存을 爲해 熾熱한 競爭을 벌였는데, 主로 商鞅의 變法을 通해 7個 나라 中에서 가장 富强해진 秦나라와 나머지 六國의 對立 樣狀으로 政國이 펼쳐졌다. 當時 이런 狀況을 바탕으로 두 가지 外交政策이 登場했는데, 바로 合縱策의 連橫策이다.
合縱策이라는 六國을 縱으로 聯合시켜 强大한 秦나라와 對決할 수 있는 攻守同盟을 맺는 戰略으로, 六國의 立場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戰略이다. 實際 蘇秦이 六國을 聯合시켜 秦에 對抗했을 때 秦나라는 무려 15年 동안 函谷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連橫策이란 橫으로 聯合한다는 뜻인데, 곧 六國이 橫的으로 各各 秦나라와 同盟을 맺자는 戰略으로, 秦나라의 立場을 바탕으로 하여 나온 戰略이다. 秦나라가 同盟을 맺은 어느 한 나라와 聯合하여 다른 나라를 攻擊하면 여섯 나라의 合縱은 저절로 깨지고 各者 孤立되게 된다. 그러면 그 孤立된 나라들을 하나씩 征伐함으로써 統一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바로 連橫策이다. 實際로 張儀는 連橫策을 實行하여 消秦의 合縱策을 깨뜨리고 秦나라가 戰國時代를 統一하는 데 크게 寄與했다. 連橫策은 ‘連衡策’이라고도 한다.
12. 항룡유회(亢龍有悔)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龍은 반드시 後悔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極히 존귀(尊貴)한 地位에 올라간 者가 操心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敗家亡身하게 됨을 比喩
* 易經 乾掛 史記 范雎蔡澤列傳에
戰國時代 末葉 燕나라의 出身 蔡澤이라는 사람이 出世하기 爲하여 여러나라를 돌면서 遊說를 하였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써 주지 않았다. 그런다가 秦나라에 들어와 所聞을 내어 宰相 범수(范睢)를 만나 宰相의 저리를 내놓고 餘生을 便히 살라고 說得하면서 나온 말이다.
많은 功을 세우고도 非命橫死한 商鞅 (强力한 法을 執行해 秦나라를 强國으러 만듬), 白起 (秦나라의 名將. 많은 領土를 擴張 함), 吳起 (楚나라를 改革하여 强國으로 만듬), 文種(越王 勾踐을 도와 吳王 夫差를 擊破 함) 等 네 사람의 例를 들면서, “論語에도 무릇 해가 中天에 오면 그 다음 내려오기 마련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語曰 日中則移 月滿則虧 말이 있습니다. 事物이 盛하면 衰하게 마련인데 이 天地의 法則을 無視하고 물러날 때를 잘 分別하지 못하면 위의 네사람과 같아집니다.
(物盛則衰 天地之 常數也. 退盈縮 與時變化, 聖人之常道 也)
또한 옛글에 물을 거울로 삼는 者는 自己 얼굴을 볼 뿐이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者는 吉凶의 與否를 헤아린다.
『 鑒於水 者見面之容 ,鑒於人者知吉與凶 』고 했습니다.
또 書經에 成功한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마라(書曰 '成功之下 不可久處)고도 했습니다. 只今 宰相의 자리를 내 놓고 悠悠自適하면 喬松之壽 (長壽를 뜻하는 말)로 喬는 王子喬를, 松은 赤松子로 모두 不老長生의 仙人으로 子孫 代代로 大監의 應侯 (秦昭襄王이 내린 爵號)를 이어 받는 것이 아니 좋겠습니까. 또 易經에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龍은 반드시 後悔할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고,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며,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을 모르는 者를 말하는 것입니다.
(亢龍有悔; 此言上而不能下, 信而不能, 往而不能自返者也)”
이렇게 이야기하고 採澤이 말하자
范睢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좋소. 내가 듣걷대, 하고 싶은 일을 하되 그쳐야 할 때를 알지 못하년 그 하는 바를 잃어버리고, 가지고 있는 것을 滿足하게 여길 줄 모르면 그 가진 바를 잃어버린다고 하였소. 先生께서 多行히 내가 물러나야 할 때를 가르쳐주어 感謝하오. 先生을 上客으로 모시겠으니 우리 집에 留하시오.”
그 後 范睢는 蔡澤을 秦昭王에게 薦擧하고 얼마 後 政丞자리에서 물러났다.
蔡澤이 이야기한 周易의 乾卦를 살펴보면, 乾卦에서는 龍이 昇天하는 卦로 范睢는 氣勢, 旺盛한 氣運이 넘치는 男性的 氣運을 表現하고있다. 그래서 이 運勢를 段階別로 龍에 比喩하고 있다.(乾卦와 坤卦만 文言傳이 있고, 文言傳은 擴大 解釋한 것임)
潛龍은 쓰지 말라고 하였다. 여기에 對하여 孔子는 다음과 같이 說明했다.
“潛龍이라 함은 龍德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직 世上에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을 말한다. 世俗에 迎合하여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며, 茗禪을 求하지도 아니한다. 世上에 숨어 살아도 不平하지 아니하고 自己의 올음을 世上이 몰라 주어도 苦悶하지 아니한다. 太平한 世上이 되면 朝廷에 벼슬하여 道를 行하고, 어지러운 世上이 오면 물러나와 道를 固守하여 不變한다. 이것이 潛龍인 것이다.
(乾卦, 初九曰"潛龍勿用", 何謂也? 子曰, "龍德而隱者也. 不易乎世, 不成乎名, 遯世无悶, 不見是而无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
그 다음이 드러난 龍이 밭에 있으니 大人을 보기에 좋다(見龍在田, 利見大人)이라는 見龍이요, 君子는 온終日 쉬지 않고 努力하고 밤에는 反省하여 삼가고 操心하면 危態하나 허물은 없다(君子終日乾乾, 夕若, 无咎.)는 段階요, 或은 뛰어 올랐다간 다시 못 속에 내려 와 잠기나 허물은 없다(或躍在淵, 无咎.)는 다시 힘을 기르는 段階이요, 나는 龍이 하늘에 있으니 大人을 보기에 좋다고 하였다(飛龍在天, 利見大人.) 이것은 本 掛의 極致로서 帝王의 地位에 오르는 것을 意味한다. 훌륭한 德을 갖추었으므로 훌륭한 臣下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輔弼한다.
이런 다음 絶頂까지 올라 간 龍은 後悔함이 있다고 하였다(亢龍有悔)는 亢龍이다. 여기에 대하여 孔子는 말했다.
“너무 絶頂까지 높이 올라 갔기 때문에 存貴하나 地位가 없고, 너무 높아 驕慢하기 때문에 民心을 잃고, 너무 스스로 높아 착한 人事들을 낮은 地位에 두게 되므로 輔弼을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하여도 後悔를 남기는 結果가 되는 것이다.
(子曰, "貴而无位, 高而无民, 賢人在下位而无輔, 是以動而'有悔'也.)”
이 卦의 末未는 다음과 같다.
“亢龍의 亢이란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存在하는 것만을 알고 滅亡하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意味한다. 오직 聖人만이 나아가고 물러가는 일과 存在하고 滅亡하는 일을 안다. 그리하여 그 바른 것을 잃지 않는 者는 오직 聖人뿐인 것이다.
("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其唯聖人乎! 知進退存亡, 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
中國 사람들이 끔직이 섬기는 動物에 '四靈'이란 것이 있다. 龍 · 鳳凰 · 麒麟 · 龜이다.
各其 象徵性을 賦與했는데 龍은 皇帝, 鳳凰은 吉祥의 象徵이다. 麒麟은 子孫과 幸福, 거북은 健康과 長壽의 象徵이다.
四靈 中 으뜸인 龍은 그 생김새가 호랑이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 독수리의 발톱, 사슴뿔의 形狀을 하고 있다.
加工의 動物임에도 中國 사람들이 龍에 對한 期待는 대단하고 그들만큼 龍을 좋아하는 民族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龍을 崇尙하는 까닭은 龍이 지닌 無限한 能力 때문이다.
이놈은 작아지려고 마음 먹으면 번데기만 해지지만 커지려고 하면 天下를 뒤덮을 수 있다. 아래로는 깊은 蓮못에 잠길 수도 있는 反面 위로는 九萬里 蒼天을 솟구칠 수도 있으며 비구름을 마음대로 부린다.
如意珠라도 입에 무는 날이면 온갖 調和를 부린다. 한마디로 無所不能의 存在인 것이다.
中國 첫 皇帝인 黃帝의 象徵인 黃龍, 나이가 8百歲라는 靑龍, 赤龍, 黑龍 等 五色 龍은 天地를 이룩하고 있는 龍들이다.
淮南子에 보면 날개 달린 飛龍이 뭇 날짐승을 낳았고, 네발이 달린 應龍이 뭇짐승을 낳았으며 蛟龍이 뭇 고기를 낳았다 했다.
이처럼 中國의 天地와 모든 生物의 系譜를 더듬어 올라가면 龍으로 歸結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앉는 座床을 龍床이라 하고, 임금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龍架,
임금이 타고 다니는 말을 龍騎, 임금을 象徵하는 깃발을 龍旗, 임금의 얼굴을 龍顔, 임금의 子孫을 龍種이라 함을 미루어 봐도 龍이 最高 統治權者를 象徵함을 알 수 있다.
王朝의 姓을 바꾸는 易姓 革明을 할 때 龍種 곧 龍의 後孫임을 立證시켜 쿠데타에 對한 百姓의 反感을 收斂하려 했던 事實이 非一非再하다.
高麗 太祖 王建이 龍種임을 自處하고 그 物證으로서 龍鱗, 곧 龍비늘을 高麗 王朝 代代로 繼承해 내렸었다. 이 高麗의 龍비늘에 對한 朝鮮朝 中宗 때의 記錄을 보면, 잘 살펴보니 玳瑁甲을 깎아 龍비늘처럼 만든 것이라 했다. 이 龍비늘은 明宗때 난 慶福宮의 불로 타 없어졌다.
13. 항장검무 의재패공(項莊劍舞 意在沛公)
항장의 검무는 의도가 패공에게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당시 항장의 검무가 패공을 해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最近에 中國 王毅 外交部長이 사드 韓國配置와 關聯하여 項莊劍舞, 意在沛公이라는 成語를 使用하여 話題가 됐다.
그 뜻은 項羽의 叔父인 項莊이 劍을 뽑아 춤을 추는 것은, ...
그 뜻이 沛公 劉邦을 노리는데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말이나 行動은 相對方을 爲하는채 부드럽게하나 속으로는 相對方을 威脅하거나 攻擊하려한다는데 比喩하고 있다.
<史記, 項羽本記>에 나오는 글인데 元文은 今者項莊拔劍舞 其意常在沛公也로 되어 있고 그 由來는
項羽와 劉邦이 鴻門의 宴會에서 만났을 때에, 項羽의 臣下인 范增이 劉邦을 죽이려고 項莊을 시켜 칼춤을 추다가
機會를 보아 劉邦을 찌르도록했다. 그러자 이를 눈치챈 劉備의 臣下인 項伯도 劍을 뽑아 춤을 추면서 劉邦을 감싸 項莊이 劉邦을 攻擊할 수가 없었다. 이 때에 劉邦의 謀士 張良이 樊噲를 만나
事態가 매우 急하다고 하면서 上述한 內容을 告하여 劉邦을 救出하게 된다.
14. 항장무검(項莊舞劍) 项庄舞剑
項莊이 칼춤을 추다. 元語는 ‘項莊舞劍, 意在沛公)’, 卽 ‘項莊이 칼춤을 춘 뜻은 沛公(劉邦)에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하는데 實際 目的은 다른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을 比喩
最初로 天下를 統一한 秦始皇이 죽은 後, 到處에서 秦나라의 暴惡한 政治에 抗拒하는 反亂이 일어났다. 楚나라의 貴族 出身인 項梁(項羽의 叔父)도 反亂을 일으켜 楚나라 懷王의 孫子를 찾아 懷王으로 擁立하고 楚나라를 再建했다. 邊方의 下級 官吏인 亭長에 不過했던 劉邦도 小規模의 反亂을 일으켜 活躍타가 項梁에게 加擔했다. 얼마 後 項梁은 秦나라와 싸우다가 戰死했고, 項羽가 實勢로 浮上했다. 懷王은 秦나라의 首都 咸陽을 中心으로 하는 首都圈 地域인 關中 땅을 먼저 征服하는 사람을 그곳의 王으로 삼겠다고 公約했다. 懷王이 이런 提案을 했을 當時, 아직은 秦나라가 天下의 主人으로서 莫强한 軍士力을 保有하고 있었기 때문에 大部分의 將帥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으나, 項羽가 劉邦과 함께 關中을 攻擊하기를 希望하고 나섰다. 懷王은 “寬厚한 사람을 보내 義로써 秦나라 百姓을 다스려 그들의 協力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將軍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老將들의 意見에 따라 關中을 칠 征西軍의 將軍에 劉邦을 任命했다. 項羽가 巨鹿에서 秦나라 軍隊와 맞서 激戰을 벌이고 있을 때, 劉邦은 征西軍을 이끌고 關中을 向해 出發했다. 劉邦은 여러 城들을 平定하는 한便 百姓들을 鎭撫해 가면서 咸陽까지 進擊했다.
이러는 사이 秦나라 內部에서는 權力을 掌握한 宦官 趙高가 스스로 皇帝가 되기 爲해 二世皇帝를 逼迫하여 自殺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따르려 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얼마 前 自己의 計略으로 因해 自殺한, 秦始皇의 큰아들인 扶蘇의 아들 子嬰을 擁立했다. 皇帝라 稱하지 않고 스스로 秦王을 稱한 子嬰은 計略을 써 趙高를 殺害하고, 그의 목을 梟首했으며, 그의 三族을 滅해 버렸다. 그러고는 마침 咸陽을 向해 進擊해 오는 劉邦에게 나라를 들어 降服하고 말았다. 劉邦은 子嬰의 降服을 받아들이고 咸陽에 入城했다. 劉邦은 宮中에 쌓여 있는 엄청난 財物과 後宮을 가득 채운 美女들에 對한 誘惑을 떨치기 어려웠지만 더 먼 未來를 爲해 손 하나 대지 않았고, 咸陽에서 軍士를 물려 覇上에 駐屯했다. 그리고 民心을 얻는 데만 힘을 기울였다. 그 代表的인 것이 秦나라의 煩多하고 無慈悲한 法을 모두 廢하고 約法三章을 發表하여 民心을 收拾한 것이다. 約法三章이란 사람을 殺害한 者는 死刑에 處하고, 사람을 傷하거나 남의 物件을 훔친 者는 그에 對한 죗값을 받는다는 極히 簡略한 法令이다.
한便, 巨鹿의 戰鬪에서 秦나라 將軍 章邯의 降服으로 勝利한 項羽는 서둘러 關中으로 向했다. 그런데 項羽가 關中에 到着했을 때에는 이미 劉邦이 秦王 子嬰으로부터 降服을 받고, 咸陽에 入城하여 터를 잡고 民心까지 다스려 놓은 狀態였다. 函谷關에서 劉邦에게 沮止를 當하자 項羽의 憤怒는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項羽는 英布(黥布)를 시켜 函谷關을 攻略하고, 鴻雁川에 陣營을 構築했다. 狀況이 이렇게 되자 劉邦의 左司馬 曹無傷이 劉邦을 背信하고 項羽에게 사람을 보내, 劉邦아 咸陽 宮殿의 金銀寶貨와 美女들을 自己 所有로 만들고 關中의 王으로 封함을 받으려 한다고 告者질했다. 이 말을 들은 項羽는 크게 怒하여 劉邦의 軍士를 屠戮하기로 決心했다. 劉邦을 제대로 본 范增도 劉邦이 天子의 氣運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機會에 處置해야 한다며 項羽를 부추겼다.
그날 밤, 項羽의 叔父 項伯은 일찍이 亡命 生活을 하면서 身世를 진 張良이 걱정되어 劉邦의 本陣에 찾아가 張良을 만나 現在 펼쳐지고 있는 危急한 狀況을 알려 주었다. 劉邦은 項伯을 極盡히 待接했고, 及其也 劉邦은 사람은 口頭로 査頓 關係를 맺게 된다. 劉邦은 自己가 먼저 咸陽을 接受하고 宮殿의 寶物 倉庫를 封한 것은 項羽에게 바치기 爲함이었고, 函谷關을 封鎖한 것은 다른 盜賊들의 侵入을 막기 爲한 것이었다고 辨明을 늘어놓으면서, 項羽에게 잘 말해 달라고 懇曲히 付託했다. 項伯은 欣快히 許諾하고 內日 아침 劉邦도 親히 項羽를 찾아가 謝罪를 할 것을 勸했다. 項伯은 돌아가 劉邦을 爲해 辨明해 주었고, 項羽는 火가 많이 누그러졌다.
當時 項羽의 軍隊는 精兵 40萬으로, 10萬을 거느린 劉邦은 相對가 될 수가 없었다. 劉邦은 元來 項羽의 咸陽 入城을 沮止하고 關中 땅의 王이 될 생각이었지만, 勢 不利를 實感하고 어쩔 수 없이 項羽에게 咸陽 入城을 請했다. 劉邦은 于先 살아남는 것이 重要하다고 생각하고, 直接 項羽의 陣營을 찾아가 自臣을 臣이라 稱하며 項羽에게 咸陽을 바쳤다. 어젯밤 項伯으로부터 仔細한 說明을 들었던 項羽는, 劉邦이 이처럼 몸을 굽히자 마음이 녹아내렸다. 氣分이 좋아진 項羽는 劉邦을 머물게 하고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바로 有名한 鴻門宴, 卽 鴻門의 잔치이다.
잔치 자리에서 項羽의 謀士 范增이 여러 차례 劉邦을 죽이라고 信號를 보냈지만 項羽는 이를 默殺했다. 范增이 信號를 보낸 方法은 玦을 드는 것이었다. 玦은 한쪽이 터진 圓形의 佩玉으로 決, 卽 決行을 하라는 뜻을 內包하고 있다. 첫 番째 方法이 失敗로 돌아가자 范增은 項羽의 四寸인 項莊에게 劍舞를 추게 하면서 劉邦을 殺害하도록 했지만, 이番에는 같은 便인 項伯이 나서서 함께 劍舞를 추면서 劉邦을 保護했다. 이 部分을 《史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沛公(劉邦)은 다음 날 아침 一百如 騎를 거느리고 項王(項羽)을 만나러 가서 鴻門에 이르러 謝過를 했다. “臣과 將軍이 죽을 힘을 다해 秦나라를 攻略하여, 將軍은 黃河의 北쪽에서 싸우고 臣은 黃河의 南쪽에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내 뜻과는 달리 먼저 關中에 들어와 秦나라를 무너뜨리고 여기에서 다시 將軍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제 小人輩의 말로 因해 將軍과 臣 사이에 틈이 生기고 말았습니다.” 項王이 말했다. “그것은 沛公의 左司馬 曹無傷이 한 말이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했겠소.” 項王은 그날로 沛公을 머무르게 하고 더불어 마시자고 했다.
項王과 項伯이 東쪽으로 앉고, 亞父가 南쪽으로 앉았다. 亞父는 范增이다. 沛公이 北쪽으로 앉고 張良은 西쪽에서 劉邦을 모셨다. 范增이 여러 차례 項王에게 눈짓을 하며 차고 있던 玉을 들어 세 차례나 信號를 보냈지만 項王은 默默히 있으면서 應하지 않았다. 范增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 項莊을 불러 말했다. “君王의 사람됨이 차마 하지 못하는 性格이다. 네가 들어가 앞에 나아가 (沛公에게)長壽를 祈願해 주고, 祈願이 끝나면 劍舞를 추겠다고 請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沛公을 (칼로)쳐서 죽여라. 그러지 않으면 너나 우리가 모두 捕虜가 되고 말 것이다.” 項莊이 들어가 長壽를 祈願한 後 말했다. “君王과 沛公께서 술을 드시는데 群衆에는 즐길 거리가 없으므로 劍舞를 출까 합니다.” 項王이 許諾했다. 項莊이 칼을 빼어 들고 춤을 추기 始作했다. 그러자 項伯도 칼을 뽑아 들고 춤을 추면서 自己 몸으로 沛公을 掩護했다. 項莊은 끝내 칠 수가 없었다. 그러자 張良이 軍門으로 가 樊噲를 찾았다. 樊噲가 물었다. “오늘 行事는 어떻습니까?” 張良이 말했다. “일이 急하게 되었소. 只今 項莊이 칼을 뽑아 들고 劍舞를 추고 있는데 그 뜻이 沛公에게 있소.” 樊噲가 말했다. 정말 多急한 狀況이군요. 제가 들어가 運命을 함께해야겠소. 樊噲는 卽時 칼을 차고 防牌를 들고 軍陣의 門으로 들어갔다. 지키고 있는 護衛兵들이 槍을 엇갈리게 들고 막으며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樊噲가 그들의 防牌를 비껴 치자 護衛兵들이 땅에 엎어졌다. 樊噲는 안으로 들어가 帳幕을 들추고 西쪽을 向해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項羽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위로 솟고 두 눈은 부릅떠 찢어질 것만 같았다.
(沛公旦日從百餘騎來見項王, 至鴻門, 謝曰, 臣與將軍戮力而攻秦, 將軍戰河北, 臣戰河南, 然不自意能先入關破秦, 得復見將軍於此. 今者有小人之言, 令將軍於臣有郤. 項王曰, 此沛公左司馬曹無傷言之. 不然, 籍何以至此. 項王卽日因留沛公與飮. 項王, 項伯東向坐, 亞父南向坐. 亞父者, 范增也. 沛公北向坐, 張良西向侍. 范增數目項王, 擧所佩玉玦以示之者三, 項王默然不應. 范增起, 出, 招項莊, 謂曰, 君王爲人不忍. 若入前爲壽, 壽畢, 請以劍舞, 因擊沛公於坐, 殺之. 不者, 若屬皆且爲所虜. 莊則入爲壽. 壽畢, 曰, 君王與沛公飮, 軍中無以爲樂, 請以劍舞. 項王曰, 諾. 項莊拔劍起舞, 項伯亦拔劍起舞, 常以身翼蔽沛公, 莊不得擊. 於是張良至軍門見樊噲, 樊噲曰, 今日之事何如. 良曰, 甚急. 今者項莊拔劍舞, 其意常在沛公也. 噲曰, 此迫矣, 臣請入, 與之同命. 噲卽帶劍擁盾入軍門. 交戟之衛士欲止不內, 樊噲側其盾以撞, 衛士仆地, 噲遂入, 披惟西向立, 嗔目視項王, 頭髮上指, 目眦盡裂.)」
樊噲는 鐵桶같이 劉邦을 護衛하였고, 范增은 劉邦을 끝내 죽이지 못했다.
劉邦은 잔치 中間에 便所에 가는 척하고 나와 自身의 陣營으로 逃亡했다. 남아 있던 張良이 項羽에게 白璧玉 한 雙을 바치고 劉邦을 爲해 잘 辨明해 주었다. 范增에게는 玉斗를 바쳤다. 范增은 玉斗를 받아 땅에 내던지고 칼을 뽑아 玉斗를 내리쳐 깨뜨리며 長嘆息을 했다. “아, 더벅머리 아이놈과는 일을 꾀할 수가 없구나. 앞으로 項王의 天下를 빼앗을 者는 바로 沛公이겠구나! 우리는 이제 捕虜가 되고 말 것이야.”
劉邦이 自己 陣營으로 되돌아와 한 첫 番째 일은 曹無傷을 處刑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史記 項羽本紀》에 나오는데, 鴻門宴의 場面에서 ‘ 項莊舞劍, 意在沛公’, 卽 ‘項莊이 칼춤을 춘 뜻은 沛公에게 있었다.’는 말이 나왔고, 다시 여기에서 成語 ‘項莊舞劍’이 나왔다. 范增의 말을 듣지 않고 劉邦을 죽이지 않은 項羽는 結局 劉邦에게 天下를 빼앗겼으며, 自殺로 一生을 마감하고 말았다.
15. 해로동혈(偕老同穴)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 生死를 같이하는 夫婦의 사랑의 盟誓를 比喩
‘偕老同穴’은 《詩經》에서 由來한 말로 ‘偕老’는 패풍(邶風)의 擊鼓, 鄘風의 君子偕老, 衛風의 氓에 나오고, ‘同穴’은 王風의 大車에 나온다. 31 擊鼓(격고)-詩經邶風(시경패풍)
擊鼓其鏜 : 둥둥둥 북소리 울리면
踊躍用兵 : 오늘도 뛰며 槍칼 익히기 訓鍊
土國城漕 : 남들은 흙일과 城 쌓는 일인데
我獨南行 : 나 싸우러 南으로 가야 하네
從孫子仲 : 孫子仲 將軍을 따라
平陳與宋 : 陳나라와 宋나라로 가네
不我以歸 : 돌아갈 期約 없기에
憂心有忡 : 근심스런 마음 그지없네
爰居爰處 : 아, 이곳에 머무는 몸은
爰喪其馬 : 말(馬)마저 잃었으니 沓沓한 마음
於以求之 : 어디 가 찾으랴 눈을 두리번거리며
於林之下 : 숲 아래를 헤매네
死生契闊 : 죽거나 살거나 함께 苦生하자던
與子成說 : 그대와 굳고 굳은 言約이었네
執子之手 : 그대의 고운 손을 힘주어 잡고서
與子偕老 : 그대와 함께 늙어 가자고
于嗟闊兮 : 아아, 千 里나 멀리 떨어져 있어
不我活兮 : 다시 만나 살 일은 아마 없으리
于嗟洵兮 : 아아, 아득히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어
不我信兮 : 우리 言約을 이룰 날은 아마 없으리
위의 詩는 〈擊鼓〉로, 戰爭에 나간 軍人이 故鄕에 돌아갈 期約도 없는 마당에 말까지 죽고 없어지자 故鄕에 있는 戀人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이다. 이 시에서 ‘偕老’가 由來했다.
〈君子偕老〉는 男便과 偕老하지 못하는 淫亂한 夫人을 諷刺한 노래로 여기에서는 ‘郎君과 偕老해야지.’라는 뜻의 ‘君子偕老’가 나온다.
〈氓〉은 男便에게 버림받은 女人의 하소연을 담고 있다. 이 詩는 모두 6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만남에서부터 結婚하여 버림받기까지의 狀況을 後悔 섞인 心情으로 描寫하고 있다. 그女는 젊었을 때 아주 아름다웠는데, 遇然히 한 男子의 눈에 들었다. 男子는 실을 사러 왔다는 구실로 그女에게 接近해 永遠히 사랑하겠다는 盟誓를 하며 請婚하였다. 女人은 그 男子의 말을 믿고 가을에 結婚하겠다는 約束을 하였다. 가을이 되자, 女子는 自己 財物을 모두 가지고 男子에게 가 夫婦가 되었다. 結婚 後 女子는 男子의 집안 環境을 相關하지 않고 男便만을 사랑하며 熱心히 살았다. 그러나 몇 年 後 그女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자 男便은 그女를 버리려고 하였다. 女子는 마음의 苦痛을 더 참을 수가 없어 自身의 處地를 하소연하듯이 노래로 읊었는데, 그게 바로 〈氓〉이다. 이 詩가 쓰인 時代에는 淫亂한 風潮가 蔓延하여 男女가 分別없이 誘惑하여 살다가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 詩는 이런 風潮를 諷刺한 것이다. ‘氓’은 ‘어떤 男子’ 或은 ‘한 사나이’라는 뜻이다. 다음은 이 詩의 여섯 章 中 마지막 章인데, 여기에서도 ‘偕老’를 찾아볼 수 있다.
及爾偕老 : 當身과 함께 偕老하고 싶었는데
老使我怨 : 늙음이 怨望스러워
淇則有岸 : 淇水에는 기슭이 있고
濕則有泮 : 진펄에는 언덕이 있어
總角之宴 : 댕기머리 땋은 處女 때는
言笑晏晏 : 웃으며 도란도란 말하였건만
信誓旦旦 : 굳게 다짐했던 當身의 盟誓
不思其反 : 이렇게 變하리라 생각도 못 했지
反是不思 : 이렇게 바뀔 줄 몰랐는데
亦已焉哉 : 이젠 모두 끝이 났구나
‘同穴’은 다음의 〈大車〉에서 찾아볼 수 있다.
大車檻檻 : 큰 수레 덜커덩덜커덩 가는데
毳衣如菼 : 부드러운 파란 털옷 입은 이 타고 있네
豈不爾思 : 어찌 그대 생각 않으랴
畏子不敢 : 그대 두려워 敢히 가지 못하지
大車哼哼 : 큰 수레 덜커덩덜커덩 가는데
毳衣如璊 : 부드러운 붉은 털옷 입은 이 타고 있네
豈不爾思 : 어찌 그대 생각 않으랴
畏子不奔 : 그대 두려워 敢히 달아나지 못하지
穀則異室 : 살아서는 한집에 못 살아도
死則同穴 : 죽어서는 같은 구덩이에 묻히리라
謂予不信 : 내 말이 미덥지 않으면
有如曒日 : 밝은 해를 두고 盟誓하리라
楚나라 王이 息나라를 占領하고 息나라 王의 夫人을 빼앗아 버렸다. 夫人은 어느 날 楚나라 王이 外出한 틈을 타서 監獄에 있는 男便에게 찾아가 節槪를 꺾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는 自殺해 버렸다. 男便도 아내의 뒤를 따라 自決하고 말았다. 이런 슬픈 傳說을 노래한 것이 바로 〈大車〉인데, 여기에서 ‘同穴’이 나왔다.
이처럼 ‘偕老同穴’은 ‘偕老’와 ‘同穴’이 合해져서 이루어진 成語로, 生死를 함께하는 夫婦의 사랑을 比喩하는 말로 쓰인다.
16. 행시주육(行尸走肉)
걸어가는 송장과 달리는 고깃덩이 → 배운 것이 없어서 쓸모가 없는 사람
【類義語】
• 酒囊飯袋 ~ 술 주머니와 밥자루라는 뜻으로, 먹기만 하고 虛送歲月하는 쓸모없는 사람
• 飯坑酒囊 : 밥 구덩이와 술 자루
* 王嘉 拾遺記에.
東漢 新繁(只今의 四川省 成都市 一帶)에 任末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家勢가 貧困하였지만, 어려서부터 배움에 힘을 썼다. 任末은 正式으로 스승을 모시고 배운 적은 없었지만, 훗날 大學者가 되었는데 完全히 스스로 工夫하여 이룬 것이었다.
그는 14歲 때부터 恒常 冊 箱子를 등에 지고 다니며, 山을 넘어 먼 곳까지 가르침을 받으러 다녔다. 그는 自身을 激勵하며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人才가 되려면 工夫를 해야 한다. 늙도록 배워야 一生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그는 숲속의 한 오두막집에서 工夫를 하고 있었다. 붓이 없었으므로 가시나무가지를 꺾어 날카로운 쪽을 붓으로 삼았으며, 먹이 없었으므로 樹液에다 재를 섞어 墨으로 삼아 어렵게 글씨工夫를 하였다.
깊은 밤에는 燈불이 없어서 달빛에 冊을 읽었으며, 달이 없는 날에는 바짝 마른 쑥에 불을 붙여 工夫를 하였다. 冊을 읽다가 깨우친 바가 있으면 입고 있는 옷에다 記錄해 두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다시 한 해가 지나도록, 그는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工夫에 熱中하여, 結局 많은 사람들의 尊敬을 받는 學者가 되었으며, 많은 弟子들도 거느리게 되었다.
그는 臨終 前에 弟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訓戒하였다.
“무릇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 한다면, 그가 죽더라도 살아있는 것과 같으며, 萬一 배우지 않는다면 비록 살아 있더라도 걸어 다니는 송장이요, 뛰어 다니는 고깃덩이 라고 말했다.
(夫人好學 雖死若存 不學者雖存 謂之行屍走肉耳)
산과바다 이계도
'**한자성어(漢字成語)** > 고사성어(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사성어(故事成語) (ㅎ- 4 홍일점~ ) (2) | 2026.03.08 |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ㅎ- 3 해의주식~ ) (0) | 2026.03.08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ㅎ- 1 하로동선~ ) (0) | 2026.03.08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ㅍ- 2 평지풍파~ ) (1) | 2026.03.07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ㅍ- 1 파경~ ) (0) | 2026.03.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