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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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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ㅈ-1 자가당착~ )

by 산산바다 2026. 3. 7.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1 자가당착~ )

 

 

1. 자가당착(自家撞着)

스스로 부딪치다. 自己가 한 말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言行一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須彌山高不見嶺 : 須彌山은 높아 봉우리도 보이지 않고

大海水深不見底 : 바닷물은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네

硽土揚塵無處尋 : 흙을 뒤집고 먼지를 털어도 찾을 수 없는데

回頭撞著自家底 : 머리 돌려 부딪치니 바로 自身이로다

 

禪林類聚 看經門에 실린 南堂靜.

의 마지막 句節에서 自家撞着이 나왔다. 成語本來 佛家에서 自己 自身 속에 있는 佛性을 깨닫지 못하고 外部虛荒目標를 만들어 헤매는 것을 警戒하는 데 쓰인 말이었으나, 에 뜻이 擴大되어 自己가 한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比喩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2. 자두연기(煮豆燃萁)

煮豆燃萁(자두연기)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태운다는 뜻으로, 같은 뿌리에서 자란 형제(또는 가까운 사이)가 서로 시기·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비유

 

三國 時代英雄 조조(曹操)에게는 아들이 여럿이었지만, 그는 自己 뒤를 이을 子息으로 첫째 비()와 셋째 식()을 꼽고 있었다. 조비(曹丕)性格活達하고 하여 아버지를 따라 戰場을 누빈 反面, 曹植天賦的 資質詩人이었다. 亂世絶對 必要를 갖춘 데다 長男인 탓으로 曹丕客觀的 觀點에서 優位하고 있는 것은 事實이지만, 曹操는 오히려 自己文學的 資質을 빼어 닮은 셋째를 더 사랑했다.

 

그런 까닭으로 曹丕의 마음 속에는 自己도 모르는 사이 아우 曹植警戒心과 미움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런 눈치를 못 챌 리가 없는 曹植曹植대로 마음이 便치 못했다. 이윽고 曹操가 죽은 그 자리는 曹丕에게 돌아감으로써 繼承權 問題一段落되었지만, 曹丕의 가슴 속 앙금까지 解消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우가 勢力形成하지 못하도록 갖은 手段을 다 썼다. 은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曹植에게 이런 엄포를 놓았다.

 

寡人의 앞에서 일곱 걸음을 걷되, 그동안에 를 한 지어 읊도록 하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 을 내릴 것이다.”

 

그것은 單純心術이 아니라 天下第一文才라고 稱讚藉藉한 아우에게 一針하여 猖披를 주려는 術策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曹植은 일곱 걸음을 걸은 목청을 가다듬어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것이 有名七步詩.

 

煮豆燃豆萁 : 삶는 데 콩깍지를 때니

豆在釜中泣 : 콩은 솥 안에서 우는구나.

本是同根生 : 本來 한 뿌리에서 났거늘

相煎何太急 : 서로 지짐이 어찌 이리 급하뇨.

 

自己 利益을 지키기 해서는 피가 같은 父母兄弟 사이에도 싸우는 人間動物性을 잘 表現이다. 듣고 있던 조비(曹丕)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一時的感傷으로 曹丕非情함은 그 로도 함이 없었고, 조식(曹植)繼屬 不憂處地에 있다가 많은 을 마감했다.

 

煮豆燃萁는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는 뜻으로, 兄弟間의 아귀다툼을 恨嘆하는 말이다.

 

 

3. 자포자기(自暴自棄) 自暴自弃

스스로 해치고 스스로 버리다. 絶望에 빠져서 스스로 포기(抛棄)하는 것을 말한다.

 

孟子가 말했다. “스스로 自己를 해치는 사람과는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다. 스스로 自己를 버리는 사람과는 더불어 일할 수 없다. 말로 禮儀非難하는 것을 스스로 自己를 해치는 것(自暴)이라고 하며, 내 몸이 하고 에 따르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를 버리는 것(自棄)이라고 한다. 은 사람의 便安한 집이고, 는 사람의 올바른 길이다. 便安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고 바른 길을 버리고 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 人之安宅也. ,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

* 孟子(맹자) 10. 自暴自棄(자포자기)

孟子 離婁 上에 나오는데, 孟子가 한 말인 自暴自棄해져서 自暴自棄가 되었다.

 

 

4. 장경오훼(長頸烏喙) 长颈乌喙

긴 목에 까마귀 부리. 긴 목에 까마귀 부리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리지 못할 觀相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吳王 闔閭越王 勾踐과 싸우다 죽자 그의 아들 夫差復讐의 칼을 갈았다. 이를 알게 된 勾踐이 먼저 夫差攻擊하였으나, 도리어 大敗하고 사로잡혔다. 勾踐夫差奴隸가 되어 夫差를 섬기다 釋放되어 돌아온 에 쓸개를 맛보면서 亦是 復讐의 칼날을 갈았다. 十如 年이 지난 , 勾踐은 마침내 나라를 쳐서 滅亡시켰다.

 

나라가 나라를 滅亡시키는 데 가장 큰 貢獻을 한 사람은 범려(范蠡)였다. 范蠡20如 年 동안 句踐補弼하면서 그를 覇者로 만들었다. 功勞范蠡上將軍이 되었지만, 勾踐이 어려움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人物이 못 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勾踐에게 作別하고 나라를 떠나 나라로 갔다.

 

나라에서 그는 自身切親했던 나라의 大夫 種에게 便紙를 썼다. ‘하늘에 새가 다하면 좋은 활도 倉庫에 넣어 두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으며, 敵國하면 謀士가 죽는 이오. 게다가 越王 勾踐은 목이 길고 입은 새 부리처럼 생겼는데, 이런 人物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소.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便紙를 본 後 病하고 朝會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反亂을 일으키려 한다고 讒訴했다. 越王에게 칼을 주며 말했다. “그대가 寡人에게 나라를 치는 일곱 가지 術策을 가르쳐 주어 寡人이 그에 셋을 써 나라를 滅亡시켰다. 나머지 네 가지가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나를 先王을 따라 試驗해 보라.” 自殺했다.

(范蠡遂去, 自齊遺大夫種書曰, 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 種見書, 稱病不朝. 人或讒種且作亂, 越王乃賜種劍曰, 子敎寡人伐吳七術, 寡人用其三而敗吳, 其四在子, 子爲我從先王試之. 種遂自殺.)

 

史記 越世家에 나온다. 越王 勾踐이 긴 목에 새 부리처럼 뾰족한 입으로,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고 한 范蠡의 말에서 由來했다.

 

中國에서는 原文에 나온대로 長頸鳥喙를 쓴다. ‘長頸鳥喙라는 말은 나라의 詩人 孫因越問 · 句踐의 다음 句節에서 찾아볼 수 있다. (前略) 이 말했다오. 奇異하도다. 저는 긴 목에 까마귀 부리처럼 뾰족한 입을 가졌구나. 萬若 그와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어째서 鸱夷는 멀리 했을꼬?

(客曰 異哉兮彼長頸而烏喙, 其如可與其樂兮, 何鴟夷之遠避)

鴟夷范蠡를 말한다. 그는 로 가서 이름을 鴟夷子皮로 바꾸었다.

 

 

5. 재점팔두(才占八斗)

才能<한 섬 가운데> 여덟 말을 차지한다. 學問이 높고 글재주가 아주 뛰어난 것을 比喩

 

曹植子建으로, 魏武帝 曹操三男이며 魏文帝 曹丕同生이다. 曹植은 어려서부터 聰明하고 文才가 뛰어나 아버지 曹操의 사랑을 받았다. 曹操는 한때 曹植後嗣로 삼을 생각까지 했었다. 그 때문에 曹植曹丕嫉猜彈壓으로 生活不安定해지고 生命威脅까지 받는 處地가 되었다. 더욱이, 조카인 曹睿卽位에는 더욱 打擊을 받게 되었다. 大體로 이 時期에 나온 그의 作品支配 階層 사이의 暗鬪葛藤, 그리고 民衆哀歡과 그에 同情을 그린 것들이 많다. 只今까지 해 내려오는 그의 作品은 많지는 않지만 代代로 다른 作家들로부터 높은 評價를 받아 왔다. 南朝時代 宋나라의 詩人 謝靈運曹植하여 이렇게 評價했다.

 

天下의 글주를 모두 한 섬이라 한다면 曹子建 혼자서 여덟 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을 차지하고, 예로부터 只今까지의 사람들이 모두 한 말을 가지고 쓰고 있다.

(天下才共一石, 曹子建獨得八斗, 我得一斗, 自古及今共用一斗.)

* 釋常談.

 

謝靈運의 말에서 才占八斗라는 말이 나왔는데, 八斗之才라고도 한다.

 

 

6. 전국옥새(傳國玉璽) 传国玉玺

나라에서 나라로 으로 만든 圖章<옥새(玉璽)>. 國家象徵하는 국새(國璽)를 말한다.

 

BC221, 그동안 對峙했던 여섯 나라를 完全하고 全 中國統一하여 歷史上 中央執權的 封建國家秦 王朝를 세운 秦王 嬴政은 스스로 始皇帝하여 歷代 王들과 差別化를 꾀했다.

 

秦始皇王權强化하고 統一 王朝를 이룩하기 强力中央執權制(郡縣制)實施하고, 文字 · 貨幣 · 度量衡 等統一했으며, 皇室 專用語制定했다. 皇室 專用語 中가 있는데, 이는 元來 圖章意味하는 글였으나 秦始皇皇帝圖章해서만 이 用語使用하도록 했다. 그리고 李斯에게 하여 傳說的寶物和氏之璧으로 하늘에서 을 받았으니 오래토록 가고 永遠昌盛하라.’라는 뜻을 가진 受命於天旣壽永昌이라고 새긴 玉璽를 만들게 했다.

 

玉璽始皇帝孫子子嬰劉邦에게 나라를 들어 降服하면서 함께 바쳤으며, 劉邦中國統一한 뒤 나라 皇帝에게 代代해졌는데, 이때부터 傳國玉璽라는 名稱使用하게 되었다. 前漢皇爲簒奪하고 나라를 세운 王莽暫時 玉璽를 빼앗았으나, 後漢을 세운 光武帝가 되찾았다. 玉璽後漢 末年混亂期遺失되었다가 孫堅袁術을 거쳐 曹操의 손에 들어갔다. 以後 魏晉南北朝를 거쳐 나라와 나라, 그리고 五代十國 時代後梁後唐까지 해지다가 後唐의 마지막 皇帝廢帝 李從珂焚身할 때 사라진 것으로 해지고 있다. 몇 차례에 걸쳐 傳國玉璽를 찾았다는 消息해졌지만, 모두 짜가 아닌 것으로 判明되었다.

 

和氏璧出沒에도 傳說的인 이야기가 뒤따랐듯이 和氏璧으로 만든 이 傳國玉璽에도 神秘를 더해 주는 傳說이 붙어 있다. 始皇帝가 배를 타고 洞庭湖 어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風浪이 일어 배가 뒤집힐 뻔하였다. 始皇帝遑急玉璽湖水에 던지고 神靈께 빌자 물결이 潛潛해졌다. 8, 始皇帝使臣華陰 (陝西省 華陰市 東南) 地方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밤에 어떤 사람이 忽然히 나타나 使臣의 길을 가로막고, 龍王이 돌아가셨기에 돌려준다며 玉璽를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7. 전도유랑(前度劉郎) 前度刘郎

지난번의 劉郎. 한 번 떠났다가 다시 찾아온 사람을 比喩

 

中唐때의 詩人 劉禹錫王叔文 柳宗元 等과 더불어 政治 改革을 꾀하다가 失敗하여 郎州司馬左遷되어 10가까이 지내다가 다시 長安으로 불려 왔다. 劉禹錫은 복사꽃으로 有名玄都觀이라는 道觀을 찾아갔다가 感懷가 일어 遊玄都觀 이라는 를 지었다.

 

紫陌紅塵拂面來 : 繁華한 거리 뿌연 먼지 얼굴을 스치는데

無人不道看花回 : 사람마다 꽃구경하고 돌아온다 말하네.

玄都觀裏桃千樹 : 玄都觀에 심은 그루 복숭아나무는

盡是劉郎去後栽 : 모두 劉郞이 떠난 뒤에 심어진 것이라네.

 

그런데 이 當時 執權者들을 隱然中誹謗했다는 혐의(嫌疑)를 받게 되었다. 劉禹錫이 이 에서 言及한 복숭아나무가 바로 새로 발탁(拔擢)高官大爵들을 풍자(諷刺)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劉禹錫은 다시 播州刺史左遷되었다. 當時 劉禹錫老母80如 歲였다. 播州(貴州省 遵義縣)는 멀리 떨어진 편벽(偏僻)한 고장이었으므로, 老母를 모시고 있는 劉禹錫은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도, 모시고 갈 수도 없는 困難狀況하게 되었다. 當時 柳宗元柳州刺史發令이 났는데, 劉禹錫의 이런 딱한 事情을 알았기에 親舊를 돕기로 決心하고 發令地를 서로 바꾸어 달라고 上疎文을 올렸다. 柳宗元親舊 爲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을 感動시켰다. 裴度皇帝에게 奏請하자, 憲宗劉禹錫連州 (廣東省 連縣)刺史로 보냈다. 後 劉禹錫14동안 여러 地方轉轉했다. 그러다가 裴度宰相이 되자 裴度劉禹錫長安으로 불러들였다. 劉禹錫長安으로 돌아왔을 때는 늦은 봄이었다. 그는 복숭아나무를 보기 玄都觀을 다시 찾았는데, 茂盛하였던 복숭아나무는 모두 없어지고 菜蔬 꽃만 茂盛히 피어 있는 것을 보고 感懷에 젖어 再遊玄都觀이라는 를 지었다.

 

百畝庭中半是苔 : 玄都觀 넓은 뜰엔 이끼가 殆半

桃花淨盡菜花開 : 桃花는 사라지고 菜蔬 꽃만 피었구나.

種桃道士歸何處 : 복숭아 심던 道士는 어디로 갔는가!

前度劉郎今又來 : 지난번의 劉郞只今 또 왔는데.

 

劉郞劉禹錫 自身指稱한 말이다. 여기서 由來하여 前度劉郎은 한 떠났다가 다시 찾아온 사람을 比喩하거나, 에 왔던 곳을 오랜만에 다시 찾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8. 전전긍긍(戰戰兢兢) 战战兢兢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떠는 貌樣. 을 먹고 벌벌 떨거나 쩔쩔맨다는 뜻으로, 危機를 맞이하여 절박해진 心情比喩

 

不敢暴虎 : 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不敢憑河 : 히 걸어서 黃河도 못 건너네.

人知其一 :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지만

莫知其他 : 그 밖의 것들은 알지 못한다네.

戰戰兢兢 : 두려워서 벌벌 떨며 操心하기를

如臨深淵 : 깊은 못에 한 것같이 하고

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해야 하네.

 

* 詩經 · 小雅 小旻. 201. 小旻(소민)-시경 소아(詩經 小雅)

이는 나라 末期惡政慨歎西周暴君 幽王諷刺作品이라고 하는데, 그 뚜렷한 根據는 없다. ‘戰戰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떠는 貌樣이고, ‘兢兢은 몸을 움츠리고 操心하는 貌樣을 말한다.

 

 

9. 전전반측(輾轉反側) 辗转反侧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밤새도록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比諭

 

關關雎鳩 : 꾸욱 꾸욱 우는 물수리

在河之洲 : 黃河의 모래톱에 있듯이

窈窕淑女 : 얌전하고 고운 아가씨

君子好逑 : 사나이의 좋은 짝

參差荇菜 : 올망졸망 조아기(노랑머리연꽃)

左右流之 : 이리저리 찾듯이

窈窕淑女 : 얌전하고 고운 아가씨

寤寐求之 : 자나 깨나 하지요

求之不得 : 해도 못 얻으니

寤寐思服 : 자나 깨나 생각하네

悠哉悠哉 : 그리워 그리워

輾轉反側 : 엎치락뒤치락

 

* 詩經 · 國風 · 周南 關雎. 01 關雎(관저)-詩經(시경)

輾轉反側原來 아리따운 아가씨를 그리며 잠 못 이루는 것을 表現한 말이었으나, 에는 근심 걱정을 하면서 몸을 뒤척이고 잠을 못 이룬다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關雎나라 文王과 그의 아내 太姒(태사)稱頌한 것이라고도 하고, 어여쁜 處女를 짝사랑하는 노래라고도 하며, 臣下文王太姒結婚祝賀하는 노래라고도 하고, 太姒文王美女했으나 뜻과 같지 않아 근심하는 노래라 보는 見解도 있다.

 

 

10. 전철(前轍)

大文豪 '三蘇', 蘇洵, 蘇軾(東坡), 蘇轍 '三父子'를 말한다.

 

蘇洵의 아들 이름 에 수레와 關聯을 썼다.

''은 수레 앞에 가로로 걸치는 나무를 뜻하며 이 나무는 있어도, 없어도 될 것 같아 보이나 없어선 안되는 道具이다. 티내지 않고 반드시 必要한 사람이 되라는 意味를 담고 있고, 蘇軾도 그렇게 살았다.

 

''은 수레의 바퀴자국을 뜻하며 禍福左右하는 機能을 가지고 있다.

前轍은 앞 수레가 남긴 바퀴자국으로 이며, '前轍을 밟지말라'는 말로 引用되는데, 이는 앞의 잘못 난 자국을 따라 구르면 自招하니 하란 意味.

사람들도 이러한 잘못 된 前轍을 밟아, 汚名을 뒤집어 쓰고 人生境遇許多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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