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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涅槃頌

서옹상순(西翁尙純) 열반송(涅槃頌)

by 산산바다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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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상순(西翁尙純)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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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옹상순(西翁尙純)선사 (1912~2003) 열반송(涅槃頌)

 

 

雲門日永無人至 : 구름 낀 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

猶有殘春半落花 :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一飛白鶴千年寂 : 한 번 백학이 나니 천 년이 고요하고

細細松風送紫霞 : 부드러운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내나니

 

 

* 서옹상순(西翁尙純 : 1912 2003)

19121010일 충남 논산군 연산면 송정리 495번지에서

부친 이범제와 모친 김지정의 외동 아들로 출생, 속명은 상순, 송성은 이씨이다.

 

19187세 때 갑자기 부친을 여의였다.

1921(10) 논산 연산보통학교에서 서울 죽첨보통학교(현 금화학교)로 전학하였다.

1928(17)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32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인생 문제와 우주의 진리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으며 일제하의 굴욕과 울분으로 국가와 사회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불교서적을 탐독하며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각황사(현 조계사)의 중앙포교사로 있던 대은 스님의 소개로 만암 스님을 친견하였다.

 

1932(21)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만암 스님 문하 백양사로 출가하였다.

193524세 때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하고 백양사 강원 영어 외전 강사를 지냈다.

1937(26) 뜻한 바가 있어 오대산 청량선원 방한암 스님 문하에서 2년간 참선공부하였다.

1939(28) 일본 경도 임제대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선 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히사마쓰 신이치(久松眞一) 박사와 선적 교분을 돈독히 가졌다.

1941(30) 임제대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졸업논문<진실자기>에서 일본 불교학자 니시타 기타로와 다나메 하지메의 선에 대한 학설의 오류를 지적하여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41년 일본 임제종 총본산인 묘심사(妙心寺)선원에서 수선 3안거 성취하였다.

196251세 때 동국대학교 대학선원장 겸 조실로 취임하였으며,

1964년 천축산 무문관 초대 조실을 지낸 후 동화사, 백양사, 봉암사, 대흥사 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4(63) 대한불교조계종 제5대 종정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어록의 왕이라고 불리는 <임제록>을 제창한 <임제록연의(臨濟錄演義)>를 발간하였다.

1981년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로 있을 무렵 다음의 오도송을 읊었다.

1998년과 2000년에 서옹 사제의 주재 하에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한국의 가부장적 선 전통을 재확인하기 위한 제1, 2회 공개선 대회가 열렸다. 열린선회(무차선회)는 승려나 서민, 남녀노소, 귀족이나 비천한 모든 사람이 법을 듣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모임이다.

마스터와의 대화. 이로써 서옹 사부는 백 년 넘게 중단된 수행을 되살렸다.

 

상왕은 위엄을 떨치며 소리치고

사자는 울부짖으니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서

사와 정을 분별하도다.

맑은 바람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는데

백악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도다.

 

1996(85)에는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에 추대 되었으며 그 해 92일 상도동 백운암에서 20여 명이 모여 참사람 결사문을 채택했다.

 

20031212, 임제선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서옹스님은 백양사 스님과 스님들을 모아 이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좌탈임망(앉아 있는 자세로 죽다)의 자세를 마남사부와 동일하게 하여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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