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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佛敎經典의 이해

불교경전 제7 법화 화엄경전

by 산산바다 2015. 2. 27.

산과바다

 

 

 

Home          불교경전 분류 요약 7

 

7 법화 화엄경전

37. 법화경

38. 대반열반경

39. 십지경론

40. 화엄경

 

 

 

 

37. 법 화 경

 

<사상적 배경>

 법화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다.  알려진대로   부파불교가  난해하고 번쇄한 교리를 수립하고 어려운 실천에 전념하던때 민중들과 그 지도자들 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대승불교이다.

이 대승불교는 한때 한곳에서 급속히 흥기한 것이 아니고 오랜 동안  여기 저기에서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러 가지가 한데 어울려 대승불교를  형성해 갔다.

 이들의 주장은 부파불교에서 잊고 있었던 석가모니. 붓다의 기본입장으로 복귀하려는 면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부파불교의 일부 엘리트 중심의 불교나 전문가 중심의 불교가 아닌 모든 인간, 생명있는 모든  존재에게 널리 개방할 것을 주장했다.

 스스로의 실천에  의해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은  자기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자기만의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곳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란 어려운 일이다. 일반 민중이 구하는 일은, 어려운 교리나  엄격한  실천이 아니다. 여기에 국한하다 보면 일상생활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운동은 이렇게 하여 자기만을 위한 독선에서  벗어나  민중에게 불교를 개방하고, 보다 자유롭게 사상을 해석하면서, 서서히 일반 민중의 구제, 즉 이타행을 강조하게 된다. 대승불교의 개방성은 불교의 궁극목적인 해탈. 열반. 붓다관에 극명하게 표출된다.

 초기불교시대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열반의 개현은,  대승불교로 계승되어 모든 중생의 성불을 주장하게 된다. 이런 주장의 주체는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는 佛敎를 숭배하는 그룹과 보살단들이었다. 법화경 결집을 한 것은 주로 보살단 즉 보디삿드바.가아나(Bo-dhigattva-ga-na)였다.

 이들은 붓다란 현재 석가모니불만이 아니라 과거 미래에도 부처님이 계시고 공간적으로도 사방. 팔방. 시방에도 계시다고 보았다. 이제 부처님은 시간공간을 초월하게 되고, 그리고  성불은 특정계층 인종이 아닌 모든 성별을 초월한 중생에게 개방되었다.  법화경은  이런  경향의  대표적인 경전이라 할수 있다.

 

<번역과 구성>

 법화경의 번역은 한문으로 3세기 중엽이후 6회 하였는데 현재 세본 만이 남아 전한다.  竺法護太康7(286)長安에서 번역한 것이 正法華經 10권이고, 羅什弘始 8(406)長安에서 한것이 유명한 妙法蓮華經 이다. 그후  나라  仁壽元年(601) 闡那 館多. 灸多 공역한  것이 添品妙法蓮華經이다.

 이중에서 羅什역이 가장 널리 읽혀졌는데 이 세 본은 모두 原典 다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티벱역, 위글어역, 西夏어역, 몽고어역, 만주어역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한글역(간경도감)이 있다.   번역이 다수 있다는 것은 이 경이 많은 지역에서 여러 민족이 애호하였음을 입증한다. 19세기 이후 산스크리트 원전의 사본이 네팔과 카슈갈에서 발견되면서   로마자화하여 출판되었는데 그후 불란서의 뷰르누후(1852)가 불어로 번역하고, 케른이(1884) 영어로 번역하면서 日本어역도 20세기에 번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元曉<法華宗要> 이후 이에 대한 연구와  신앙이 고려 天杻宗 개종이후,상당히 유포되었다. 이에 선행하여 중국에서는 라집이후 연구가 상당히  활발하였는데   天杻智凱(538-597) 三大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三大部[法華玄義] [法華文句] [摩可言止觀]을 말하는데 天杻사상을 응축시킨 저술들이다. 특히 이 경은 日本에 준 영향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커서 그 연구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도 日本佛敎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경의 제목인 妙法蓮華經(나집역)[白蓮華에 비유되는 훌륭한敎法]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도의 世親은 이 경은 小乘을 떠나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을  갈무린 법을  증험한다고 말했다. 즉 연화가 오탁한 물속에 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은, 바로  모든 법이 그대로 실상이라는 대승의 법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天杻대사는 이 경의 분류를 전 28품중에 앞에 14품은 迹門이라하고 뒤에 14품은 本門이라하여 두 문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앞의 迹門에서는 佛法에 대하여 말해주고 本門에서는 佛身즉 부처님의 영원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현대 법화경연구학자들에 의하면,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법화경의 구성을 제1, 2, 3류로 나누고 있다. 현대학자의 연구와 天杻해석을 대응시켜 본다면, 현대적  분류인  1류에  해당하는  부분을 소위  원시8(2-9)이라 하는데 이는 천태해석의 述門正宗分에 해당된다.

 이 정종분은 方便品이 중심이 되는것으로 천태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품이다. 이 방편품은 諸法이 곧 實相이라고 하는 법화경의 사상적 요체가 되는 품이고  8품중에서 방편품 그다음품은 이 法說을 되풀이하여  낮은 근기를 위해 설한것으로 본다.

 현대학자의  연구에 의한  1류의  청중(對傑衆)은 대개 聲聞 緣覺들이고, 2류와 제3류는 보살중이다. 이 청중들의 근기에 따라 이 내용을 분류한 것은 상당이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켜준다.

 그리고 현대불교학의 분류인 제2류에 해당하는 부분(10-21)天杻해석의  本門 正宗分이 된다. 여기에 如來壽量品이 핵심을 이루는데 천태해석에 의하면 <가까움을 열어 먼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가까움은 석가모니부처님, 먼 것은 영원한 근원의 부처님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대승불교의 佛陀觀을 읽을수 있다.

 

<개략적 내용>

 一乘三乘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기한 초기에는, 대승과 소승이  대립하는 뜻에서 대승이었다. 초기의 대승이란 말은  가치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므로  초기대승불교는  .소승   대립의  대승이다. 그런데 법화경의 근본정신은, 대승에서 다시 一乘을 주장한다.  一乘이란 一佛乘을 뜻하는데 이 一乘이 진실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초기 반야경에는  小乘대신에  아라한법, 벽지불법이라  쓰고  보살법도 병용하고 있다. 따라서 小乘이란 말은 후대에 쓰여진 것을 알수 있다.

법화경에서  一乘을 진실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당시의  불교교단내에는 잘못된 사고때문에  一乘 알지 못하고 三乘  성문. 연각. 보살승이 진실이라고 믿는 부류가 상당이 결정적 세력을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편품에서는 [여러 부처님이 중득하신바 법에는 무량한  방편력으로 중생을 위해 설한다]라고하고, [시방불국토 가운데,오직 一乘法만이 있을뿐 三乘三來도 없다. 있다면 方便說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一佛乘이란 법화경의 가르침이 二乘이나 三乘이 아닌 오직 成佛의 한가지 길만을 가르친다는 의미이다. 天杻불교에서는 이것을 敎一乘이라한다.

 이 가르침은 여러부처님(諸佛), 과거불, 미래불, 현재불, 석가불 등 五佛 모두가 一乘成佛의 같은 도를 가르친다고 天杻불교에서는 말한다. 따라서 혹 다른 성문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라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三乘이란 방편이기 때문에 三乘을 열어 진실의 一乘을 나타낸다는 것은 법화경의 일관된 사상이다.

 경에는 [모든 부처님이 방편력으로 一佛乘에서 三乘 分別하신다]라고 되어있다. 三乘觀有部派교설의 三乘觀을 법화경에서  비판한  것이 된다.

 三乘 뜻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성문승, 연각승(혹은  벽지불승), 보살승을 三乘이라하는데, 우선 성문이란  부처님(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듣고 스스로 깨달음을구하며 수행하는 사람으로, 구체적으로는 불제자들을 일컫는다. 성문이 이상으로 하는 것은, 四聖諦의 교설을  듣고 자기의 번뇌를 모두  단제해 버리고 아라한(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수행이 중요하지 타인을 구제한다는 조건은 없는 것이다.

 연각. 벽지불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은 받지 않고서 홀로 진리인 법을 체득한 사람을 말한다. 역사적 석가모니를 이에 해당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도사상계에서는 홀로 가며,  홀로 머무르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자기의 깨달음에 안주한 사람들이었다. 보살이란  원래는 서원에 의해 성불한 석가모니의 전세의 명칭이다.  그 석가모니의  길을  본받아 자신의 성불을 자각하는 대승수행자들이다. 이 가르침을 보살승이라고 한다. 이들은 석가모니의 전세와 같은 보살행을 닦아서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성불할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성문. 연각 등은 부처님의 본의에 어긋난다고 하고, 성문.연각승은  열등한  가르침이라고 小乘이라고 폄하하고 비판한 것이다. [성문의 성불 못한다는 사상]小乘이라하여 大乘과 준별한 보살들이다. 유마경에서 보여주는 대.소승의 가치적 구별을 말한다.

 

<二乘의 구제>

상술한대로 성문. 연각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은 전통적으로 아라한이라고 한다.  흔히  四向四果에서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을  말하는데, 네번째 단계인 아라한과란 더이상 배울것이 없고, 영원히 열반에  머물러 생.사유전의 삶이 없는 자리를 이른다.

 그러므로 이 二乘은 보살행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과를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성불이 不可能하다고 주장하는 부류이므로 소승인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佛果를 얻어 成佛하려고 노력함으로 大乘이다.

법화경에서는 불교사에서  보는 이 두 체계 小乘. 大乘 모두를 긍정하고 있다.

 다른  대승불교 특히 유마경 같은 경에서는 보살승. 불승만을  강조하고 성문. 연각을 폄하하는 것이 특색인데 비해 법화경은 성문. 연각의 二乘들이 모두 구제의 대상이 된다. 二乘을 구제하는 일 즉 授記作佛이라고 하는데 성불의 기별을 주어 궁극에는 二乘이 모두 성불하도록 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것이 이 경이다.

다른 경전과는 달리 부파(소승)불교를 捨棄하는 것이 아니라 부파의 교리도 포용하고 있는 것이 二乘의 수기작불사상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佛法普遍性平等性一佛乘, 一乘妙法이라고  하였다.  一乘이란 超大乘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方便眞實>

 불교에서 方便이란 사상은 아주 중요하다. 방편의 의미는, 중생이  부처 즉 깨달음을 향해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처님이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의 경지로 끌어들이는 길도 방편이다.  후자는  대승불교의 입장이고 전자는 초기불교의 의미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가르침도 방편이다. 가르침은 그대로 깨달음은 아니지만 깨달음에도 인도해 준다.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하나   一乘이지만, 배워야 할 사람의 능력, 소질, 성격은 허다하다. 그 많은 근기에 상응하여 가르치는 방법도 하나일 수 없다.

 그래서 경에서 "내가 성불한 이래 가지가지 인연. 가지가지 비유로 널리 가르치니 방편이 수없이 많다"고 하였다.  그 목적은  "중생을  인도하여 여러곳의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한다. 그러므로 방편이란 수단으로서 진실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것임을 알수 있다. 따라서 불교는 모두 방편이 된다. 따라서 三乘의 불교는 모두 부처님의 방편력에  의해 설해진 법이다. 그런데 이세가지 다른 에서 각각 안주한다면 부처님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그 궁극목적을 밝히고 三乘의 과득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三乘의 과득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이상 아라한 벽지불도 모두 佛道를 구하려고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불도를  구하는 이는 누구나 보살임을 자각하여 전진해 가야 한다. 혹시  불제자 성문의 입장에서 그것이 궁극목적이라 생각하였더라도 부처님의 마음에서  보면, 그 아라한이란 성불로 가는 과도단계이므로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진실인  佛乘를 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중생의 근기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심에서 부처님이 수단으로 이끈다는 것이 方便사상이다. 方便은 법사품에서는 [방편문을 여는것이 진실상을 시현한다]고 하였다.

 방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것이 방편임을 알지 못하는 동안에는 아직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본다. 따라서 방편이 방편임을 알았을 때  비로소 진실이 나타나 밝혀진다.  이 방편과 진실의 양자사이에는  앞뒤가 있지 않다. 三乘方便이라고 감득했을때 一乘이 진실임을 터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영원한 생명>

 전술한대로 법화경의  후반 14품을 본문이라하고 그  본론에  해당하는 품이 여래수량품이라고 하였다. 여래수량품은 久遠 석가모니부처님을 명확히 밝히는 경전으로 유명하다. 석가모니불은 영원한 과거에 성불하고 몇번이나 이 세상에 출현하여 이 법화경을 말씀한다는것이 이품의 주제다.

그 성불의 시간은 5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겁에 비유되는  무한한  과거에 성불하였는데, 시간적으로 무량함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래가 성불한 수명은 숫자로 비유할 때 무한, 久遠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법화경을 설하시는 지금의 석가모니는  80년의 생애를 우리에게 보였지만 그것은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낸 것이며  실제로는 영원한 本佛 즉 근원불이라는 것이다.

 이세상에 육신을 보인것은 모든 중생에게 佛知見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경에서 말한다. 결국 이 세상에 육신을  나타내신 것이 방편이라면 적멸을 보인 것도 방편이라고 하겠다. 부처님이 영원이 이 세상에 머무르실때 그 모습을 보고서 집착심 많은 범부중생들은 박덕한 생각으로 五欲에 탐착하고 정진할 뜻을 내지 않게 됨을  우려하여 스스로 부처님은 입멸을 선택하였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이 품에서 의사 父子의 비유는  이를 설명해 준다.  부처님  自我게라고 하는 게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열반을 보일지 언정 실제로는 멸도한것이 아니며, 항상 머물러   법을 설하노라" 그런데 중생이 전도된 생각 때문에 가까이 있는데도 나를 보지 못한다고 계속하고 있다.

 법화경의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8성도의 모습의 그 석가모니불을 통하여, 생멸을 넘어선 영원한 부처님, 다시 말하면 모든 부처님을 통합하는 원리로서의 근원불을 현출시킨 것이다.

 

<종교적 신행>

 법화경의  영원한 부처님은, 사리를 봉안한 불탑인 스투파신앙과 법신사리로 법화경을 봉안하는 차이티아 칠보탑신앙의  일상적 신행으로 구체화된다. 부처님 탑에서 경전을 지니는 신앙으로  변천된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을 받아지니고 환희하며 다른 이에게 가르쳐주고,육바라밀을 실천하며 믿음을 심화시키는것이 법화경의 신행생활이라 하겠다.

 

 

38. 대반열반경 (大般涅槃經)

 

40. K-105(9-1). T-374(12-365). 북량(?) 시대(A.D. 414421) 번역. [] 담무참(曇無讖). [] Mah parinirv a-s tra. [] phags-pa yo s-su-mya- an-las- das-pa chen-po i mdo. [] 열반경(涅槃經). [] 대본열반경(大本涅槃經), 북본열반경(北本涅槃經).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K-1403).

부처님의 열반에 대해서 기록하고 여래의 법신은 상주 불변하는 것이며, 일체 모든 중생이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대승 사상의 정수가 들어 있는 경으로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 중의 하나이다. 특히 대승 5대 부문로 꼽히는 화엄부, 방등부, 반야부, 법화부, 열반부 중에서 열반부를 대표하는 경전이 바로 북본열반경이다.

전체 구성은 13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수명품(壽命品)에서는 먼저 경이 설해지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215일 부처님이 구시나국(拘尸那國)의 아리라발제하(阿利羅跋提河) 가까이에 있는 사라 쌍수 사이에서 반열반에 들던 때였다. 부처님은 수많은 대중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즉 순다(純陀)가 바치는 마지막 공양을 받으면서 보시의 과보를 설명하고, 해탈(解脫)과 법신(法身), 반야(般若) 등의 3()을 비롯하여 상() (樂) () ()4, 여래의 상주(常住), 불성(佛性) 등에 대해서 설법한다.

2 금강신품(金剛身品)에서는 여래의 몸은 금강처럼 견고하다는 것을 비롯하여 여래의 법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래의 법신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 불가괴신(不可壞身)이며, 금강신(金剛身)이다. 부처님이 이러한 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무한한 공덕을 쌓은 결과라는 것을 전생 인연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3 명자공덕품(名字功德品)에서는 경 제목의 뜻을 밝히고 이 경을 읽는 공덕이 어떠한지 말한다. 즉 대반열반경이라 한 까닭은 마치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온갖 번뇌를 다 떨치고 마침내 자신의 몸마저도 버린 뒤에야 큰 바다와도 같은 열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 경을 믿고 배운다면 8() 즉 여덟 가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즉 상(), (), (), 청량(?), 불로(不老), 불사(不死), 무구(無垢), 쾌락(快樂) 등이 그 여덟이다.

4 여래성품(如來性品)에서는 여래성, 즉 불성(佛性)에 대해서 말하고, 열반과 4성제(聖諦) 4전도(顚倒)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5 일체대중소문품(一切大衆所問品)에서는 부처님이 대중을 위해서 설법한 내용들은 특정한 경우에 방편으로 말했던 예가 있었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한다. 예컨대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사랑한다고 했던 것은 부처님이 왕사성에 머물 때 사슴 고기를 권하던 사냥꾼들에게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라 한다. 따라서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보살들에게 이 말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호법(護法)의 과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말하고 이 경의 공덕이 크다는 것을 언급한다.

6 현병품(現病品)에서는 부처님이 병에 걸려 앓게 된 것은 단지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서 신통력으로 온몸에서 연꽃이 나오게 한 뒤 그 빛으로 지옥까지 밝혀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었다. 이처럼 여래란 본래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는 법신임을 설명하고 있다.

7 성행품(聖行品)에서는 불도를 닦는 보살의 행위가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지 설명하며, 부처님의 전법륜(轉法輪)의 의의를 밝히고 과거세(過去世)의 수행에 대해서도 말한다.

8 범행품(梵行品)에서는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에 대해 설명한다. 12부 경전을 읽어야 하며, 불교 교리를 잘 익히고, 때에 따라 적절한 언행을 해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를 거론한다. 그 밖에도 4무량(無量), 4무애(), 6염처(念處)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9 영아행품(孀兒行品)에서는 5종 행() 중에서 영아행에 대해서 설명한다. 보살이란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듯이, 모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히 대해야 한다는 것 등, 어린 아이를 비유하여 보살의 수행을 말하고 있다.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에서는 부처님이 고귀덕왕 보살을 상대로 대열반경을 배워 익히면 얻게 되는 열 가지 공덕을 말한다.

11 사자후보살품(師子吼菩薩品)에서는 부처님이 사자후 보살을 상대로 불성(佛性), 중도(中道), 계박(繫縛), 수도(修道)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12 가섭보살품(迦葉菩薩品)에서는 부처님이 가섭 보살을 상대로 열반 불성의 뜻을 비롯하여 자비와 지혜, 구제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문답함으로써 가르치고 있다.

13 교진여품( 陳如品)에서는 부처님이 무상(無常), (), 무아(無我) 등을 비롯하여 열반 적정에 대한 설법을 함으로써 수많은 외도들이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으며,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대승이든 소승이든 현존하는 여러 열반경류 중에서 분량이 가장 많고 내용상으로도 가장 완비된 것으로 평가받는 열반경이 바로 본 경, 40권 본 대반열반경이다.

 

 

39. 십지경론 (十地經論)

 

12. K-550(15-1). T-1522(26-123). 원위(元魏) 시대(A.D. 508511) 번역. [] 보리류지(菩提流支). [] 천친(天親). [] Da abh mi-vy khy na. [] phags-pa sa bcu-pa i rnam-par b ad-pa. [] 십지론(十地論), 지론(地論).

대방광불화엄경 가운데 십지품(十地品)만을 따로 번역한 십주경(十住經, K-98)을 해석한 것이다. 십주경의 이역본으로는 점비일체지덕경(漸備一切智德經, K-89)과 불설십지경(佛說十地經, K-1388) 등이 있다. 보살의 수행 단계에 따라 구분하는 10()를 흔히 10()라고도 한다. 본 논서에서는 10지의 각 단계를 중심으로 하여 보살이 닦아야 할 갖가지 수행 방편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 환희지(歡喜地)에서는 보살이 처음으로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기쁨을 느끼는 제1 단계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해석한다. 즉 서분(序分), 삼매분(三昧分), 가분(加分), 기분(起分), 본분(本分), 청분(請分), 설분(說分), 교량승분(校量勝分) 등이다. 보살이 환희지에서 느끼는 기쁨이란 곧 부처님을 믿고 공경할 때 생겨나는 마음이며, 모든 번뇌를 떨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2 이구지(離垢地)에서는 더러운 때와 같은 번뇌를 떨치고 깨끗하게 되는 제2 단계를 발기정(發起淨)과 자체정(自體淨),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보살은 계율을 지키고 10선행(善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3 명지(明地)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효과가 밝게 드러나는 제3 단계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기염행분(起厭行分), 염행분(厭行分), 염분(厭分), 염과분(厭果分) 등이다.

4 염지(焰地)에서는 모든 번뇌를 불길로 태워 버리는 제4 단계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청정대치수행증장인분(淸淨對治修行增長因分), 청정분(淸淨分), 대치수행증장분(對治修行增長分), 피과분(彼果分) 등이다.

5 난승지(難勝地)에서는 어려운 고비를 이겨 내는 경지, 즉 제5 단계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보살의 교만을 없애는 것, 둘째 끊임없이 불도를 닦는 것, 셋째 불도를 닦아서 얻는 결과에 대한 것 등이다.

6 현전지(現前地)에서는 지혜가 드러나는 경지인 제6 단계에 대해서 논한다. 보살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 곧 부처의 지혜를 얻는 길이라 한다.

7 원행지(遠行地)에서는 인간 세상을 멀리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제 7단계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8 부동지(不動地)에서는 마음의 동요가 없는 제8 단계를 일곱 가지로 분석한다.

9 선혜지(善慧地)에서는 부처의 지혜와 거의 같은 경지의 지혜를 얻는 제9 단계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0 법운지(法雲地)에서는 부처님의 법은 마치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의 원천인 구름과도 같다는 제10 단계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위와 같은 10지의 각 단계는 보살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방편적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누구든지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불법을 믿고 따라야 하며 흔들림 없이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이 점은 본 경전 곳곳에서 강조하는 것으로서 모든 단계에 필수적이며 보살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점이다.

 

 

40. 화 엄 경

 

서력기원을  전후로 해서 利他의 이상을 드높여 일어나기 시작한 대승불교는 그 운동을 추진하면서 여러 경전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화엄경>이라고 하는 방대한 경전의 성립을 보게 되었으며 그와 관계있는 여러경전들이 한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이 그룹에 속하는  여러  경전을 총칭하여  [華嚴經類]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엄경] [화엄경류]를 일괄해서 [華嚴經典]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면  화엄경전은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가? 화엄경전에 관심을 갖는것은 그것이 바로 화엄사상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동양문화의 精華라고도 하는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면서도 여러 부분이 폭넓게 많은 지역에서 회자되고 있는 경전이다. 특히 문학과 예술분야에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상세히 말하자면 <大方光佛華嚴經>이라고  불리우고,  산스크리트어로는 Buddha-avatamsak-nama-man-avaipulya-su-tra, 붓다의 장엄이라고 말하는 광대한 경전이라 한다.  현재 전하는 <화엄경>으로는 다음의   가지가 있다.

 

 1, 東晋의 붇다바트라(Budd-habhadra, 佛大馬跋陀羅, 359-429)가 번역한 60권본, (번역  당시는  50권이었으나  교정을   다시   해서   60권본이 되었다.)

 2, 의 식차난다(Siksan-anda, 實叉難陀, 625-710) 번역한  80권본. 전자를 60화엄, 진역경, 구역화엄경이라 하고 후자는 80화엄,  당화엄경, 신역화엄경이라 칭한다.

 3. 푸라주우나(Prajna,般若)가 번역한 40권본, 40화엄, 정원경, 행원품이라 불리우고 신구역 60권본, 80권본의 제일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에 해당되는 내용의 번역이다.

 4. 지나미트라(Jinaitra)등역 Sans-rgyas phal-po che  shes-bya-basin-tu rgyas-pa chen-pohi mdo(불화엄이라 이름하는 대방광경45, 9세기말경 번역, 약칭 장역화엄경)이 중에서  3의 정원경은 다른  3종의  화엄경의 제일 마지막 부분, 즉 제1,2,[입법계품], 4, "華莊嚴品"이 현저하게 증정되었다. 전체가 "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라는 하나의  품으로 성립되었기에 성격이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이른바 화엄경으로서는 제1, 260권본과 80권본과 티베트 역이 전해온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엄경> 산스크리트어본은 완전하게 전해오지 않는다. 산스크리트본이 완전하게 전해오지는 않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 1,2,4의 각 <화엄경>[십지품] [입법계품](혹은 [경장엄품])에 해당되는 부분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본 <화엄경>이 존재했다는 것은 당나라 초기의 지엄이 <대자은사화엄범본>을 확인하고 그 범본을 조사했던 사실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그러면 대본<화엄경>은 대략 어떤 내용인가? 그 전체의 골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현존하는 위의 세 본과 위에서 말한 바 지엄이 보았다는 <대자은사화엄범본>등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여러 본을 대략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볼 수 있다.

 첫째로  전체의 구성이 이 네 개의 본 사이에도 확실히 서로 다르다. 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품의 내용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여래화엄품], [보현소설품]의 두 품은 [티베트화엄]에만 있으면

[십정품][80화엄][티베트화엄]에는 있으나 다른 본에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품들이 일대일의 대응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60화엄] 중심으로 말하면 그 [노사나불품][80화엄]에서는 [여래현상품]에서  [비로자나품]까지의 다섯 품으로,  [티베트화엄][자은화엄]에서는 [여래품]에서 [비로자나품]까지의  아홉 품으로 분절. 증정되고 있다.

그리고 [80화엄]의 경우[화장세계품][티베트화엄][자은화엄]에서는 [연화장장엄세계해청정공력해조명품]에서 [세계성안주설품]까지의 다섯 품에 해당한다. [60화엄],[80화엄],[티베트화엄]의 제일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계장엄품])[자은화엄]에서는 [선재이탑장품],[미륵이탑명선재소문품], [설여래공덕부사의경계상경계입품]등의 세 품으로 분절되고 있다.

 이상 몇 가지를 살펴 보았으나 여러 본의 구성과 성립연대, 내용의 증광 발전과정을 비교검토하기에는 신문원고라는 제약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80화엄] [티베트화엄]만을  골라   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80화엄][화장세계품][티베트화엄]중 그에 대응하는 다섯 품을 비교해보면 후자는 다섯 품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증보의 흔적이 전혀없고 오히려 說相에 있어서는 [80화엄]보다도 고형을 갖추고 있다. 이런 경우를  살펴보면  [80화엄]계통의   <화엄경>  [티베트화엄]  계통의 <화엄경>은 서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자는 원본의 내용적 개정에 중점을 두고 있고 후자는  여러  품들을  새롭게  설정.  도입함에 따라  원본의 전체적인 구상을 확대하려고 한 듯하다.  그러나  [십정품]을 공통으로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두 계통은 개변의 과정에  있어서 한 때 교섭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엄경>에 있어서 교주인 비로자나불은 직접  설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설의 무대에는 언제나 등장해서 그 중심에 자리한다.  그러나  무대가, 즉 회좌가 지상에서 천상으로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잇달아  바뀌어진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80화엄]79회이고 타화천궁을 회좌로 한 것은 [십지품]뿐이다. [신정품]에서 [여래출현품]까지는 중회보광법당, [이세간품] 삼중회보 법당의  설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60화엄][자은화엄]이 발전사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대한 [화엄경]은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력 기원전후부터 1.2세기에 걸쳐 조금씩 정리되어  종합된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의 내용은 붓다의 깨치신 경지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리불이나 목건련 같이 훌륭한 제자들까지도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붓다의 설법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경전의 내용은 복잡하고 광대해서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정독하는 동안에 무변대해와도 같은 붓다의 경지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화엄경]의 근본적인 특징은 사사무애와 법계연기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즉 궁극의  진리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일체사상이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성립되었으면서도  서로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살도의 실천을 설하고 있다. 보살도의 실천에는 자리와 이타의 두 길이 있다고 하나 보살도에 있어서는 타인을 구제하는 것이  자리이기  때문에 自利卽利他인 것이다.

  우리와  인연이  깊은 [60화엄]7834([80화엄] 7 939)으로 성립되어 있다. 79회란 설법의 장소와 그  회좌의  수이다. 34품이란  34장이란  뜻이다.  1의 적멸도량회와  2보광회는  지상의 회좌이고, 3도리천궁회와 제4야마천궁회, 5도솔천궁회, 6타화자제천궁회는 모두 천상의회자이다. 설법이 진행됨에 따라서 회좌의 장소도  점차 천상으로 올라간다. 7은 다시 지상의 보광법당회이며  마지막의  8도 지상의 서다림회, 즉 기원정사에 있어서의 회좌이고 여기에서 [입법계품]을 설하게 된다. <화엄경>의 여러가지 특징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으나 지명이나 등장인물의 지위나 직업, 언어적 특징 등을 통해서 경전의 성립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지위,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는가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입법계품]을 읽은 경험이 있다면 잘 알 수 있는바와 같이 [화엄경] 전체를 통해서  비로자나불  자신의 설법은 아니다. 주로 보살들에 의해서  설해진다.  더욱이  [입법계품]은 사리불 등 聲聞의 대제자들의 경지를 훨씬 넘어선 내용이다. 그러므로 귀가있으나 귀머거리 같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화엄경은 매우  엘리트적인 경전으로  . 보살  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음직하다. 그러나 화엄경은 그와 같은 부처의  세계가  일체  중생에게 개방되었음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특히 [40화엄]의 선지식(Kalyanamitra)들의 묘사는  주목된다.  주인공 선재동자가 차례로 방문하게 되는 상대방 선지식들의 지위나 신분,  또는 직업을 보면  보살. 비구. 장자. 여성  재속신자. 선인. 바라문. 처녀. 소년. 자산가. 국왕. 편력행자. 어부. 비구니. 경건한 여성. 보살.  아들. 밤의여신. 룸비니원의 여신. 석가족의 딸. 여신. 신의 딸. 소년 선생. 장자의 소년. 소년소녀 등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선지식들  전체는 모든 지위. 계층. 신분. 직업이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차별이 없다.  단순히  대승적  평등의 이상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사상표현에 있어서 [40화엄] 있어서의 종교운동 자체가 사회의  계급과  신분과 직업을 뛰어넘어 널리 지원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러한 개괄  이상의 또 다른 문제도 내포되어 있다.  53인의 선지식 가운데에는 장자와 자산가가 7명이고 여성이 8(신까지 포함하면20)에 이른다. 그리고 보살이  4, 비구가  5명 등장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본다. 당시 대승운동의 주역의 지지기반이 장자. 자산가. 여성등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의 하나는 트라비타(dramida) 사람인 매가(Megha)漁師 비이라(Vaira) 각각 다섯번째와  스물 두번째의  선지식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트라비타는 아리아민족에 의해서 그  태반이  정복된 인도 선주민들로서, 일반적으로 보면 隸民으로 늘사회의 최하층에 속한다.

어사도 타사(da~sa)에 속해서 아리아 민족에 대한 선주민의 적대자, 피정복민을 의미한다고 알려진 바와 같이 예민 계층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위의 두 계층은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의미내용을 가진 최하층의 사회적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40화엄] 편집자들이 그들을 선지식으로서 등장시킨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의 하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상적으로 집약되어 가는 종교운동이 그들 예민계층에서도 무엇인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저항이나 반대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도사회가 가진 전통의  카스트적인 인식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타의 이상을  높이  들고 대승운동을 전개하던 사람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으로 카스트사회의 인식의 벽을 헐고 예민계층을 종교적 . 정신적으로 해방시키려는  목적도 없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언어학적으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40화엄]과 그에 대응하는 [화엄경] [입법계품] 시루파-비쥬니야(Silpabhijna, 善知衆藝童子)가 설하는 42字門 가운데 ysa(.也娑)가 있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 字音은 인도고유의 것이 아니고  -(于門)에서 기원한 것으로, 인도에서는 기원전후에 서북인도의 서역기원의 왕조에  속하는  여러 나라의  비문이나 화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점도 다시 [입법계품], 나아가서 [화엄경]  전체의 성립을 생각하는데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음직하다.

  그러나 화엄경전의 성립과 유포에 관한 여러 문제들은 현재의 단계로서는  명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면 이러한 화엄경전이 우리 나라에 받아들여져서 어떻게  이해되고  소화되었던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자장을 보면 그의 행장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 선덕여왕 때(623-646)활약한 것으로 보아서 원효나 의상보다는 선배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자장관계의 근소한 전기를 보면 知識樹의 고사가 나온다. 즉 자장은 자기 자신이 출생했던 里第를 개조해서 元寧寺라 했고 그절의 낙성식 때 화엄만계를 하여 화엄의 교의를 천명했다고 한다. 자장이 특히 지식수를 심어 화엄만계를 강한 뜻은[40화엄], [입법계품]의 초점이라고 볼 수 있는 소년 구도자 선재가  53선지식을 차례로 찾아뵙는 동안 인간인 박지범부이면서도 능히 불과를 성취해서 일만팔천대중의 대표자로 미륵누각에 친히 물어 자신의 삼세인과와 제불의 삼세인과를  동시에 깨쳤다는 내용을 교시한 것으로서 매우 흥미롭다고 하겠다. 이로 미루어 보면 자장의 사상, 그리고 산라인의 사유의 심층에 화엄사상이 깊이 침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라인들은 불교를 받아들여 수용할 때 타국으로부터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신라국이 과거로부터  불교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사유하고 그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라국을 과거불의 주처였다고 하며 [가섭의 연좌석]이 있었다고 하여 그를 주체적으로 제시한 예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그저 황당무계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해버리기에 앞서, 전하여 온 엄연한  신앙의 사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유방법은 신라이후에도 간헐적으로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저변에 잠재되어 전해오기 때문이다.

 신라가 과거불의 연고지 였다고 믿어오던 사람들에게는 불교가 외래종교였다고 하는 이미지는 긍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화엄경>과 금강산관계도 화엄사상의 수용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하겠다. 금강산을 화엄도량으로 보아온 것은 사실이다.  금강산의  최고봉을  비로봉으로 애칭하고 [80화엄경] 보살처품의 내용을 옮겨 法起보살의 주처로 상정하고 불교의 의식가운데 향수해례에서는  [나무금산  법기회회  제불제보살]로 예불을 드리고 있음을 보게된다. 끝으로 화엄교학을 받아들인 의상. 원효. 설잠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의상이 당나라 지엄문하에서 30210자의 법성게를 탄생시킨 것은 실로 三觀의 깊은 뜻을 포괄하고 十玄蝕美 망라한  화엄의  宗要[화엄30]이고 사사로운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의상이  스스로 이것을 [圓敎宗要]라고 부를 것은 이 때문이다.

 화엄제2조인 지엄이 의상으로 하여금"화엄30"을 만들게 하고, 이를 해설하게 한 것은 일종의 사상적 지주로서의 후계자로 지정한 것을 의미한다.

 원효가 소를 짓고 서를 붙인 <화엄경>은 다름아닌 60권본이다. 이른바 [晋譯 華嚴經疏序]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화엄경>은 성문 연각의 이승은 自利만을 추구하는데  비해  보살은 利他를 근본으로 하는 이엽형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살과 三世여러 부처님만이 화엄의 진리의 동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마치 봉황이 푸른 구름을 타고 올라 산악의 낮음을 바라봄과 같고 河伯이 한바다에 이르러 시냇물이 좁았음을 겸연쩍어함과 같으니 불도를 배우는자는 이 경전의 너른문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배운것이 트인 공부가 아니었음을 알리라. 말하면서도 원효는 다시 말한다.

그렇지만 날개짧은 작은 새는 山林에서 크고  있고,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는 여울에 살면서도 본성이 편안한 법이니 현근한 방편의 가르침도 버릴 수 없다"라고 한다.

 다음 설잠(매월당)[80화엄]을 연했다. 설잠이 말하기를 "세존의 7에 나는 여기 단지 1뿐이요, 세존의 9회에 나는 단지 1회뿐이요, 세존의 경을 설한 것이 80권임에 나는 단지 1구뿐이라" 설잠이 말한 禪的인 내용은 법계 또는 법성의 장이 바로 중생의 신심본채요, 자기 열착이라고하는 확언은 性起  , 불경계에서 오는 것이고, 연기차원의 궁리에 의하여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當體全彰의 소식이라고 보아진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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