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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長阿含經

長阿含經 28. 布咤婆樓經

by 산산바다 2015. 2. 21.

산과바다

 

 

 

 

長阿含經

 

28. 布咤樓經 포타바루경

 

포타바루경(婆樓經) : 부처님께서 사위국 범지숲에 나아가시자 포타바루 바라문은 상생상멸(想生想滅)의 논()을 비롯하여 유상론(有常論)무상론(無常論)유변론(有邊論)무변론(無邊論)명신일이론(命身一異論)과 여래(如來)의 종론(終論)비종론(非終論)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이런 철학문제는 정각(正覺)을 얻는 열반[泥洹]의 법이 아니며 4성제(聖諦)만이 법의(法義)에 맞는 범행(梵行)이요, 정각을 얻고 무위적멸(無爲寂滅)하는 법임을 말씀하셨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爾時世尊淸旦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世尊念言今日乞食於時爲早今我寧可往至布咤婆樓梵志林中觀看須時至當乞食爾時世尊即詣梵志林中時布咤婆樓梵志遙見佛來即起迎言善來沙門瞿曇久不來此今以何緣而能屈顧可前就座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세존께서는 생각하셨다.

'오늘은 걸식하기에 때가 좀 이르다. 나는 차라리 지금 포타바루(婆樓) 범지의 숲에 가서 구경하면서 때를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걸식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는 곧 범지의 숲으로 가셨다. 이 때 포타바루 범지는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맞이하면서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오랫동안 오시지 않더니 오늘은 무슨 인연으로 몸소 찾아 주셨습니까? 자리에 앉으소서.”

 

 

爾時世尊即就其座告布咤婆樓曰汝等集此何所作爲爲何講說

 

그 때 세존께서는 곧 자리에 앉아 포타바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여기 모여 무슨 일을 하였으며, 무엇을 강설했습니까?”

 

 

梵志白佛言世尊昨日多有梵志沙門婆羅門集此婆羅門堂說如是事相違逆論瞿曇或有梵志作是說言人無因無緣而想生無因無緣而想滅想有去來來則想生去則想滅瞿曇或有梵志作是說由命有想生由命有想滅彼想有去來來則想生去則想滅瞿曇或有梵志作是說如先所言無有是處有大鬼神有大威力彼持想去彼持想來彼持想去則想滅彼持想來則想生我因是故生念念沙門瞿曇先知此義必能善知想知滅定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제는 많은 범지와 사문 바라문들이 이 바라문의 강당에 모여 이러한 일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어떤 범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이 생겨나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이 멸한다.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어서, 그것이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구담이시여, 어떤 범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생기고 명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멸한다. 저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으니,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구담이시여, 어떤 범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에서 한 말들은 옳지 않다. 큰 위력을 지닌 큰 귀신이 있다. 그가 생각을 가지고 가고, 그가 생각을 가지고 온다. 그가 생각을 가지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하고, 그가 생각을 가지고 오면 곧 생각은 생긴다.'

저는 이로 인하여 기억이 떠올랐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문 구담은 이전에 이 뜻을 알고 있었다. 그 분이라면 반드시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대해 잘 알 것이다.'”

 

 

爾時世尊告梵志曰彼諸論者皆有過咎言無因無緣而有想生無因無緣而有想滅想有去來來則想生去則想滅或言因命想生因命想滅想有去來來則想生去則想滅或有言無有是處有大鬼神彼持想來彼持想去持來則想生持去則想滅如此言者皆有過咎所以者何梵志有因緣而想生有因緣而想滅

 

그 때 세존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 모든 논자(論者)들은 다 잘못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이 생기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이 멸한다.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어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혹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생기고 명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멸한다.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어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혹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리가 없다. 큰 귀신이 있어 그가 생각을 가지고 오고, 그가 생각을 가지고 간다. 가지고 오면 생각이 생기고, 가지고 가면 생각이 멸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다 잘못이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범지여, 인연(因緣)이 있어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若如來出現於世至眞等正覺十號具足有人於佛法中出家爲道乃至滅五蓋覆蔽心者除去欲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入初禪先滅欲想生喜樂想梵志以此故知有因緣想生有因緣想滅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지진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할 때에, 어떤 사람이 불법을 닦기 위해 출가하여 도를 행하고, 나아가 마음을 덮는 5()까지도 멸하면 탐욕과 같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제거하여,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有覺有觀],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갑니다. 먼저 욕상(欲想)을 멸하고 희상(喜想)과 낙상(樂想)을 일으킵니다. 범지여, 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합니다.

 

 

滅有覺內喜一心無覺無觀定生喜樂入第二禪梵志彼初禪想滅二禪想生以是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捨喜修護專念一心自知身樂賢聖所求護念淸淨入三禪梵志彼二禪想滅三禪想生以是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捨苦捨樂先滅憂喜護念淸淨入第四禪梵志彼三禪想滅四禪想生以是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捨一切色想滅恚不念異想入空處梵志一切色想滅空處想生以是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越一切空處入識處梵志彼空處想滅識處想生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越一切識處入不用處梵志彼識處想滅不用處想生以是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捨不用處入有想無想處梵志彼不用處想滅有想無想處想生以是故知有因緣想滅有因緣想生彼捨有想無想處入想知滅定梵志彼有想無想處想滅入想知滅定以是故知有因緣想生有因緣想滅彼得此想已作是念有念爲惡無念爲善彼作是念時彼微妙想不滅更麤想生彼復念言我今寧可不爲念行不起思惟彼不爲念行不起思惟已微妙想滅麤想不生彼不爲念行不起思惟微妙想滅麤想不生時即入想知滅定云何梵志汝從本已來頗曾聞此次第滅想因緣不

 

다음에는 각과 관이 멸하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無覺無觀],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저 초선의 생각은 멸하고, 2선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쁨[]을 버리고 집착 없는 평등한 마음을 닦고 보호하며, 생각을 오로지해 한마음이 되어 몸의 즐거움[身樂]을 스스로 알고, 현성이 구하는 바인 평정[:]기억[]청정(淸淨)이 있는 제 3선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2선의 생각은 멸하고, 3선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괴로움도 버리고 즐거움도 버리는데, 이미 걱정과 기쁨은 멸하였으며, 평정[]기억[]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3선의 생각은 멸하고, 4선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체의 색에 대한 생각[色想]을 버리고, 성내는 마음을 멸하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공처(空處)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일체의 색에 대한 생각은 멸하고 공처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일체의 공처를 초월하면 식처(識處)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저 공처의 생각은 멸하고, 식처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체의 식처를 초월하면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저 식처의 생각은 멸하고, 불용처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용처를 버리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저 불용처(不用處)의 생각은 멸하고 유상무상처의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유상무상처를 버리고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어갑니다. 범지여, 저 유상무상처의 생각은 멸하고 상지멸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생각을 얻은 뒤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억[]이 있는 것은 악이요, 기억이 없는 것은 선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할 때, 그 미묘한 생각은 멸하지 않고 다시 거친 생각이 생깁니다. 그는 또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염행(念行)도 하지 않고, 사유(思惟)도 일으키지 않으리라.'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으면,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았을 때, 그는 곧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어갑니다.

어떻습니까? 범지여, 그대는 태어난 이후로 이렇게 차례로 생각을 멸하는 인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까?”

 

 

梵志白佛言從本已來信自不聞如是次第滅想因緣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태어난 이후로 이와 같이 차례로 생각을 멸하는 인연에 대해 진실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又白佛言我今生念謂此有想此無想或復有想此想已彼作是念有念爲惡無念爲善彼作是念時微妙想不滅麤想更生彼復念言我今寧可不爲念行不起思惟彼不爲念行不起思惟已微妙想滅麤想不生彼不爲念行不起思惟微妙想滅麤想不生時即入想知滅定

 

그는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유상(有想)이다. 이것은 무상(無想)이다. 혹은 다시 유상이다.'

이런 생각을 한 뒤 그가 '기억[]이 있는 것은 악이요, 기억이 없는 것은 선이다'라고 한다고 하면, 그가 이렇게 생각했을 때 미묘한 생각은 멸하지 않고, 거친 생각이 다시 생깁니다. 그러면 그는 또 '나는 이제 차라리 염행(念行)도 하지 않고 사유(思惟)도 일으키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야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았을 때라야 그는 곧 상지멸정에 들게 될 것입니다.”

 

 

佛告梵志言善哉善哉此是賢聖法中次第想滅想定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현성법 중에 차례로 상()을 멸하는 선정입니다.”

 

 

梵志復白佛言此諸想中何者爲無上想

 

범지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생각 가운데 어느 것이 위없는 생각[]입니까?”

 

 

佛告梵志不用處想爲無上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불용처상(不用處想)이 위없는 것입니다.”

 

 

梵志又白佛言諸想中何者爲第一無上想

 

범지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생각 가운데 어느 것이 제일 위없는 생각입니까?”

 

 

佛言諸想諸言無想於其中間能次第得想知滅定者是爲第一無上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들 유상이라 하고 모두들 무상이라 말할 때, 그 중간에서 능히 차례로 상지멸정(想知滅定)을 얻으면 이것이 제일 위없는 생각입니다.”

 

 

梵志又問爲一想爲多想

 

범지는 또 여쭈었다.

그것은 한 생각입니까, 많은 생각입니까?”

 

 

佛言有一想無多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생각만 있고 많은 생각은 없습니다.”

 

 

梵志又問先有想生然後智先有智生然後想爲想智一時俱生耶

 

범지는 또 여쭈었다.

먼저 생각이 생긴 뒤에 지혜가 있습니까, 먼저 지혜가 생긴 뒤에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면 생각과 지혜가 동시에 함께 생깁니까?”

 

 

佛言先有想生然後智由想有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생각이 생긴 뒤에 지혜가 있습니다. 생각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있습니다.”

 

 

梵志又問想即是我耶

 

범지는 또 여쭈었다.

생각은 곧 나[]입니까?”

 

 

佛告梵志汝說何等人是我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떤 사람을 나라고 말합니까?”

 

 

梵志白佛言我不說人是我我自說色身四大六入父母生育乳餔成長衣服莊嚴無常磨滅法我說此人是我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사람이 나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4()6()으로 이루어진 색신(色身)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옷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마멸(磨滅)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을 바로 나라고 말합니다.”

 

 

佛告梵志汝言色身四大六入父母生育乳餔長成衣服莊嚴無常磨滅法說此人是我梵志且置此我但人想生人想滅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46입으로 이루어진 색신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의복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무상하며 마멸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이런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했습니다. 범지여, '이것이 나이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입니다.”

 

 

梵志言我不說人是我我說欲界天是我

 

범지가 아뢰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욕계천(欲界天)이 곧 나라고 말합니다.”

 

 

佛言且置欲界天是我但人想生人想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계천이 곧 나이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입니다.”

 

 

梵志言我不說人是我我自說色界天是我

 

범지가 아뢰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색계천(色界天)이 곧 나라고 말합니다.”

 

 

佛言且置色界天是我但人想生人想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계천이 곧 나이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입니다.”

 

 

梵志言我不說人是我我自說空處識處不用處有想無想處無色天是我

 

범지가 아뢰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 공처(空處)식처(識處)불용처(不用處)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무색천(無色天)이 나라고 말합니다.”

 

 

佛言且置空處識處無所有處有想無想處無色天是我但人想生人想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처식처불용처유상무상처무색천이 바로 나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 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입니다.”

 

 

梵志白佛言云何瞿曇我寧可得知人想生人想滅不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제가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佛告梵志汝欲知人想生人想滅者甚難甚難所以者何汝異見異習異忍異受依異法故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을 알고자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그대는 다른 소견[] 과 다른 습관[]과 다른 인()과 다른 수()로 다른 법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梵志白佛言如是瞿曇我異見異習異忍異受依異法故欲知人想生人想滅者甚難甚難所以者何世間有常此實餘虛世間無常此實餘虛世間有常無常此實餘虛世間非有常非無常此實餘虛世間有邊此實餘虛世間無邊此實餘虛世間有邊無邊此實餘虛世間非有邊非無邊此實餘虛是命是身此實餘虛命異身異此實餘虛身命非異非不異此實餘虛無命無身此實餘虛如來終此實餘虛如來不終此實餘虛如來終不終此實餘虛如來非終非不終此實餘虛

 

범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다른 소견과 다른 습관과 다른 인과 다른 수로 다른 법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도 그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이런 견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무상(無常)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영원한 것도 아니요 무상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없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 목숨[]이 곧 몸[]이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몸과 목숨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목숨도 없고 몸도 없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진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지기도 하고,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 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佛告梵志世間有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我所不記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나는 확언하지 않습니다.”

 

 

梵志白佛言瞿曇何故不記世間有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盡不記耶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왜 확언하지 않으십니까?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 확언하지 않으십니까?”

 

 

佛言此不與義合不與法合非梵行非無欲非無爲非寂滅非止息非正覺非沙門非泥洹是故不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법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범행(梵行)이 아니요, 무욕(無欲)이 아니며, 무위(無爲)가 아니요, 적멸(寂滅)이 아니며, 지식(止息)이 아니요, 정각(正覺)이 아니며, 사문이 아니요, 열반[泥洹]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확언하지 않습니다.”

 

 

梵志又問云何爲義合法合云何爲梵行初云何無爲云何無欲云何寂滅云何止息云何正覺云何沙門云何泥洹云何名記

 

범지가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범행의 처음이고 어떤 것이 무위(無爲)이며, 어떤 것이 무욕(無欲)이고 어떤 것이 적멸(寂滅)이며, 어떤 것이 지식(止息)이고 어떤 것이 정각이며, 어떤 것이 사문이고 어떤 것이 열반이며, 어떤 것이 확언(名記)하는 것입니까?”

 

 

佛告梵志我記苦諦苦集苦滅苦出要諦所以者何此是義合法合梵行初首無欲無爲寂滅止息正覺沙門泥洹是故我記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諦]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集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滅諦]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진리[苦出要諦]를 확언합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범행의 시초이고 무욕무위적멸지식정각사문열반이기 때문에 나는 확언(名記)하는 것입니다.”

 

 

爾時世尊爲梵志說法示敎利喜已即從坐而去

 

그 때 세존께서는 범지를 위하여 설법하시고 가르쳐 보여, 이롭고 기쁘게 하셨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佛去未久其後諸餘梵志語布咤婆樓梵志曰汝何故聽瞿曇沙門所說語語印可瞿曇言我及世間有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不與義合故我不記汝何故印可是言我等不可沙門瞿曇如是所說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다른 범지들이 포타바루 범지에게 말했다.

그대는 왜 사문 구담의 말을 듣고, 구담의 말마다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구담이 말하기를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너는 왜 그 말을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우리는 사문 구담의 이러한 말을 옳다고 하지 않는다.”

 

 

布咤婆樓報諸梵志言沙門瞿曇所說世間有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不與義合故我不記我亦不印可此言但彼沙門瞿曇依法住以法而言以法出離我當何由違此智言沙門瞿曇如此微妙法言不可違也

 

포타바루가 모든 범지들에게 대답했다.

사문 구담은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이 말을 옳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 사문 구담이, 법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법으로써 말하며 법으로써 출리(出離)하시니 내가 무슨 수로 이 지혜로운 말을 거역하겠는가? 사문 구담의 이렇게 미묘한 법의 말씀은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

 

 

布咤婆樓梵志又於異時共象首舍利弗詣世尊所問訊已一面坐象首舍利弗禮佛而坐梵志白佛言佛先在我所時去未久其後諸餘梵志語我言汝何故聽沙門瞿曇所說語語印可瞿曇言世間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不合義故不記汝何故印可是言我等不可沙門瞿曇如是所說我報彼言沙門瞿曇所說世間有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不與義合故我不記我亦不印可此言但彼沙門瞿曇依法住法以法而言以法出離我等何由違此智言沙門瞿曇微妙法言不可違也

 

그 후 포타바루 범지는 또 다른 때에 상수사리불(象首舍利弗)과 함께 세존께 나아가 인사를 드린 뒤 한쪽에 앉았다. 상수사리불도 부처님께 예배하고 앉았다.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지난번 저의 숲에 계시다가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여러 다른 범지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왜 사문 구담의 말을 듣고 말마다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구담이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때 너는 왜 이 말을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우리는 사문 구담의 이런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사문 구담은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확언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또한 이 말을 옳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 사문 구담이, 법에 의지하여 법에 머무르고 법으로써 말하며 법으로써 출리(出離)하시니 내가 무슨 수로 이 지혜로운 말을 어기겠는가? 사문 구담의 이렇게 미묘한 법의 말씀은 어길 수가 없다.'”

 

 

佛告梵志曰諸梵志言汝何故聽沙門瞿曇所說語語印可此言有咎所以者何我所說法有決定記不決定記云何名不決定記世間有常乃至如來非終非不終我亦說此言而不決定記所以然者此不與義合不與法合梵行初非無欲非無爲非寂滅非止息非正覺非沙門非泥洹是故梵志我雖說此言而不決定記云何名爲決定記我記苦諦苦集苦滅苦出要諦所以者何此與法合義合是梵行初首無定無記梵志或有沙門婆羅門於一處世間無欲無爲寂滅止息正覺沙門泥洹是故我說決定記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범지들이 '너는 왜 사문 구담의 말을 듣고 그것을 옳다고 인정했는가'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에는 잘못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내가 말하는 법에는 결정기(決定記)와 불결정기(不決定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불결정기라고 하는가?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는 말들입니다.'

나도 또한 이런 말을 설하나 확정지어 말하지는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법에도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의 처음도 아니요 무욕도 아니며, 무위도 아니요 적멸도 아니며, 지식도 아니요 정각도 아니며, 사문도 아니요 열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지여, 나도 비록 이런 말은 하지만 확정지어 말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을 결정기라 하는가? 나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諦]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集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滅諦]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진리[苦出要諦]를 확언합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법에도 맞고 이치에도 맞으며, 그것은 범행의 처음이고 무욕무위적멸지식정각사문열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설하고 확정지어 말합니다.

* 그것은 범행의 처음이고 : 이 다음에 무정무기범지혹유사문바라문어일체세간(無定無記梵志或有沙門婆羅門於一切處世間)” 18자가 있다. 그러나 의미가 적절하지 않으므로 송3본에 의거하여 이 18자를 삭제하고 번역하였다.

 

 

梵志或有沙門婆羅門於一處世間一向說樂我語彼言汝等審說一處世間一向樂耶彼報我言如是我又語彼言汝知見一處世間一向樂耶彼答我言不知不見我復語彼言一處世間諸天一向樂汝曾見不彼報我言不知不見又問彼言彼一處世間諸天汝頗共坐起言語精進修定不耶答我言我又問彼言彼一處世間諸天一向樂者頗曾來語汝言汝所行質直當生彼一向樂天我以所行質直故得生彼共受樂耶彼答我言不也我又問彼言汝能於己身起心化作他四大身身體具足諸根無闕不彼答我言不能云何梵志彼沙門婆羅門所言爲是誠實爲應法不

 

범지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일처세간(一處世間)에 대하여 '한결같이 즐겁다'고 말합니다.

* 一處世間: ekanta)는 극락정토, 혹은 사후의 세계를 말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분명히 일처세간은 한결같이 즐겁다고 말하였는가?'

그는 내게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처세간의 한결같은 즐거움을 보아서 아는가?'

그는 내게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일처세간 모든 하늘의 한결같은 즐거움을 그대는 본 적이 있는가?'

그는 내게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 일처세간의 모든 하늘과 너는 함께 앉고 일어나며 서로 말하고 정진하며 선정[]을 닦았는가?'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 일처세간의 모든 하늘에서 한결같이 즐거워하는 자가 일찍이 너에게 와서 (너는 소행이 순박하고 곧으니 마땅히 저 한결같이 즐거운 하늘에 태어날 것이다. 나도 소행이 순박하고 곧았기 때문에 저기에 태어나 즐거움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는 내게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능히 네 몸에서 생각을 일으켜, 신체가 구족하고 모든 근()을 빠짐없이 갖춘 다른 4대의 몸을 변화로 만들 수 있겠는가?'

그는 내게 '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의 말을 성실하고 법에 맞다고 하겠습니까?”

 

 

梵志白佛言此非誠實爲非法言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것은 성실하지도 않고 법다운 말도 아닙니다.”

 

 

佛告梵志如有人言我與彼端正女人交通稱讚婬女餘人問言汝識彼女不爲在何處東方西方南方北方耶答曰不知又問汝知彼女所止土地城邑村落不答曰不知又問汝識彼女父母及其姓字不答曰不知又問汝知彼女爲刹利女爲是婆羅門居士首陀羅女耶答曰不知又問汝知彼女爲長短麤細黑白好醜耶答曰不知云何梵志此人所說爲誠實不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나는 저 단정한 여인과 서로 정을 통했다'고 하면서 그 음녀를 칭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 여자를 아는가? 어디에 있는가? 동쪽서쪽남쪽북쪽, 어디에 있는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모른다.'

'너는 그 여자가 사는 토지성읍촌락을 아는가?'

'모른다.'

'너는 그 여자의 부모와 성명을 아는가?'

'모른다.'

'너는 그 여자가 찰리 종족의 여자인지 바라문거사수다라의 여자인지 아는가?'

'모른다.'

'너는 그 여자가 키가 큰지 작은지, 뚱뚱한지 여위었는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얼굴이 고운지 미운지를 아는가?'

'모른다.'

어떻습니까? 범지여, 이 사람의 말은 성실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梵志彼沙門婆羅門亦復如是無有眞實梵志猶如有人立梯空地餘人問言立梯用爲答曰我欲上堂又問堂何所在答曰不知云何梵志彼立梯者豈非虛妄耶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성실하지 않습니다. 범지여, 그것은 마치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다리를 빈 땅에 세울 때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사다리를 세워 무엇 하려 하는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강당에 올라가려고 한다.'

'강당이 어디에 있는가?'

'모른다.'

어떻습니까? 범지여, 저 사다리를 세우는 사람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答曰如是彼實虛妄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진실로 허망합니다.”

 

 

佛言諸沙門婆羅門亦復如是虛妄無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문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아서 허망하고 진실이 없습니다.”

 

 

佛告布咤婆樓汝言我身色四大六入父母生育乳餔成長衣服莊嚴無常磨滅以此爲我者我說此爲染汙爲淸淨爲得解汝意或謂染汙法不可滅淸淨法不可生常在苦中勿作是念何以故染汙法可滅盡淸淨法可出生處安樂地歡喜愛樂專念一心智慧增廣梵志我於欲界天空處識處不用處有想無想處天說爲染汙亦說淸淨亦說得解汝意或謂染汙法不可滅淸淨法不可生常在苦中勿作是念所以者何染汙可滅淨法可生處安樂地歡喜愛樂專念一心智慧增廣

 

부처님께서 포타바루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나의 색신 4()6()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의복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무상하고 마멸한다. 이것을 나[]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염오(染汚)라 하고 청정(淸淨)이라 하며 득해(得解)라 합니다. 그대는 혹 생각할 것입니다.

'염오법은 멸할 수 없고 청정법은 생기게 할 수 없어 항상 괴로움 가운데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마시오. 무슨 까닭인가? 염오법은 멸하여 다할 수 있고, 청정법은 나게 할 수 있으며, 안락한 곳에 살면 환희하고 애락(愛樂)하며, 한마음으로 생각을 오로지 하면 지혜가 증광(增廣)하기 때문입니다. 범지여, 나는 욕계천공처천식처천불용처천유상무상처천을 염오라 말하고 또한 청정이라 말하며 또한 득해(得解)라 말합니다. 그대는 혹 생각할 것입니다.

'염오법은 멸할 수 없고 청정법은 생길 수 없어 항상 괴로움 가운데 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오. 왜냐 하면 염오법은 멸할 수 있고, 깨끗한 법은 생기게 할 수 있으며, 안락한 곳에 살면 환희하고 애락하며, 한마음으로 생각을 오로지 하면 지혜가 증광하기 때문입니다.”

 

 

爾時象首舍利弗白言世尊當有欲界人身四大諸根時復有欲界天身色界天身空處識處不用處有想無想處天身一時有不世尊當有欲界天身時復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色界天身空處識處無所有處有想無想處天身一時有不世尊當有色界天身時復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色界天身空處識處無所有處有想無想處天身一時有不如是至有想無想處天身時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欲界天身色界天身空處識處無所有處天身一時有不

 

그 때 상수사리불(象首舍利弗)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욕계(欲界) 사람의 몸으로 4()와 제근(諸根)이 있을 때, 또한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식처불용처(不用處)유상무상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욕계천의 몸으로 있을 때 또한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식처무소유처(無所有處)유상무상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색계천의 몸으로 있을 때 또한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식처무소유처유상무상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으로 있을 때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욕계천의 몸색계천의 몸공처식처무소유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 象首舍利弗: Citta Hatthisriputta)은 질다사리불(質多舍利弗)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다가 후에 환속하였고 나중에 다시 출가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佛告象首舍利弗若有欲界人身四大諸根爾時正有欲界人身四大諸根非欲界天身色界天身空處識處無所有處有想無想處天身如是乃至有有想無想處天身時爾時正有想無想處天身無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欲界天身色界天身空處識處無所有處天身象首譬如牛乳乳變爲酪酪爲生酥生酥爲熟酥熟酥爲醍醐醍醐爲第一象首當有乳時唯名爲乳不名爲酪醍醐如是展轉至醍醐時唯名醍醐不名爲乳不名酪象首此亦如是若有欲界人身四大諸根時無有欲界天身色界天身乃至有想無想處天身如是展轉有有想無想處天身時唯有有想無想處天身無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欲界天身色界天身乃至無所有天身

 

부처님께서 상수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다면, 그 때엔 바로 4대와 모든 근만 있는 욕계 사람의 몸이 있을 뿐이지,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공처식처무소유처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아니다. 그와 같이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이 있을 때에는 바로 유상무상처천의 몸이 있을 뿐,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공처식처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상수(象首), 비유하면 우유와 같다. 우유가 변하여 낙()이 되고, 낙은 생소(?)가 되며 생소는 숙소(?)가 되고 숙소는 제호(?)가 되는데 제호가 제일이다. 상수여, 우유로 있을 때는 오직 우유라고 이름하지, 낙이나 소나 제호라 이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제호가 되었을 때 다만 제호라 이름하지, 우유라고 이름하지 않고 낙이나 소라고도 이름하지 않는다. 상수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처천의 몸일 때에는 오직 유상무상처천의 몸이 있을 뿐,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나아가 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象首於汝意云何若有人問汝言若有過去身時有未來現在身一時有不有未來身時有過去現在身一時有不有現在身時有過去未來身一時有不設有此問者汝云何報

 

상수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과거의 몸으로 있을 때 미래와 현재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미래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현재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현재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미래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象首言設有如是問者我當報言有過去身時唯是過去身無未來現在有未來身時唯是未來身無過去現在有現在身時唯是現在身無過去未來身

 

상수가 아뢰었다.

만일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과거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과거의 몸뿐이요, 미래나 현재의 몸은 없다. 미래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미래의 몸뿐이요, 과거나 현재의 몸은 없다. 현재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현재의 몸뿐이요, 과거나 미래의 몸은 없다.'”

 

 

象首此亦如是有欲界人身四大諸根時無欲界天身色界天身乃至有想無想處天身如是展轉至有想無想處天身時無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欲界天身色界天身至不用處天身

 

상수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처천의 몸으로 있을 때에는,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과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나아가 불용처천의 몸은 없다.

 

 

復次象首若有人問汝言汝曾有過去已滅不未來當生不現在今有不設有是問者汝當云何答

 

또 다음으로 상수여,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너는 일찍이 과거에 멸했던 적이 있는가? 미래에 마땅히 태어날 것인가? 지금 현재에 있는가?'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마땅히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象首白佛言若有是問者當答彼言我曾有過去已滅非不有也有未來當生非不有也現在今有非不有也

 

상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일찍이 과거에 멸했던 적이 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미래에 마땅히 태어날 것이다. 태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에도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佛言象首此亦如是有欲界人身四大諸根時無欲界天身乃至有想無想天身如是展轉至有想無想天身時無有欲界人身四大諸根及欲界天身乃至無所有處天身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수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과 나아가 유상무상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천의 몸이 있을 때에는,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과 욕계천의 몸과 나아가 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爾時象首白佛言世尊我今歸依佛歸依法歸依僧聽我於正法中爲優婆塞自今已後盡形壽不殺不盜不淫不欺不飮酒

 

그러자 상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에게 귀의합니다.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지금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布咤婆樓梵志白佛言我得於佛法中出家受戒不

 

그 때 포타바루 범지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집을 나와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佛告梵志若有異學欲於我法中出家爲道者先四月觀察稱眾人意然後乃得出家受戒雖有是法亦觀人耳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학(異學)이 집을 나와 내 법 가운데서 도를 행하고자 한다면 우선 넉 달 동안 관찰하여 여러 사람의 뜻에 맞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런 법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또한 사람을 보아 할 뿐입니다.”

 

 

梵志白佛言諸有異學欲於佛法中出家受戒者先當四月觀察稱眾人意然後乃得出家受戒如我今者乃能於佛法中四歲觀察稱眾人意然後乃望出家受戒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이학이 집을 나와 부처님 법 가운데서 계를 받고자 한다면 우선 넉 달 동안 관찰하여 여러 사람의 뜻에 맞아야 하고, 그런 뒤에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능히 부처님 법 가운데서 4달 동안 저를 관찰하게 하고 여러 사람의 뜻에 맞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뒤에 집을 나와 계 받기를 바라겠습니다.”

 

 

佛告梵志我先語汝雖有是法當觀其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그대에게 비록 그런 법이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그 사람을 보아서 한다고 말했습니다.”

 

 

彼梵志即於正法中得出家受戒如是不久以信堅固淨修梵行於現法中自身作證生死已盡所作已辦不受後有即成阿羅漢

 

이 때 그 범지는 곧 집을 나와 정법 가운데서 계를 받았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견고한 믿음으로 범행을 깨끗이 닦아 현세에서 몸소 깨달음을 얻었다. 생사를 이미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며 후생의 목숨을 받지 않게 되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爾時布咤婆樓聞佛所說歡喜奉行

그 때 포타바루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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