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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친구와 함께/우리의 만남

강화군 교동도를 둘러보다.

by 산산바다 2013. 3. 5.

산과바다

강화군 교동도 교동읍성터

 

강화군 교동도를 둘러보다.

2013. 3. 2.

우리의 만남-박종규 이계도 홍순호 박상기부부(8명)

강화도 창후리선착장-교동도-교동향교-화개사-교동평야-교동읍성을 둘러보다

 

 

 

 

 

강화도에서 교동도로 연육교가 건설중이다.(좌측이 교동도 우측이 강화도임)

 

 

강화군 교동도 교동향교(喬桐鄕校)-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인천)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12년(1286) 고려(高麗) 유학제거(儒學提擧)로 있던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본명은 향(珦), 1243∼1306) 선생(先生)이 원(元)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孔子像)을 들여와 이 향교(鄕校)에 봉안(奉安)하였다고 전하며, 이후 경도(京都), 각읍(各邑)에 문묘(文廟)를 설치하였다 한다. 조선(朝鮮) 영조(英祖) 17년(1741) 지부(知府) 조호신(趙虎臣)이 화개산(華蓋山) 북록(北麓)에 있던 것을 남록(南麓)으로 옮겼다. 경내(境內)에는 대성전(大成殿), 동·서무(東·西), 명륜당(明倫堂), 동·서재(東·西齋), 제기고(祭器庫), 내·외삼문(內·外三門)이 있다. 대성전에는 중국(中國)의 5성(五聖)과 신라(新羅), 고려(高麗),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유현(儒賢)을 배향(配享)하고 있다.

 

 

대문이 잠겨있어서 들어가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둘러봄

 

 

 

 

 

 

 

 

교동향교에서 나와 4-500m 거리에 화개사가있어 올라본다.

 

화개사(華蓋山) - 고려 때 창건한 목조건물로서 창건연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교동면 상용리의 갈공사에서 묵고 있던 무학대사 낙공선사 지공선사가 이곳 화개사로 공부하러 다니던 곳이라 전한다.

대한불교조계종 화개사

 

 

화개사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바다건너가 석모도이다.

 

 

 

 

 

 

화개사를 나와서 서쪽과 북쪽에 아주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교동읍성 - 강화군 교동도에는 조선 인조7년에(1629년) 경기수영을 설치하며 돌로 쌓은 읍성이 파괴 된채 남아있다. 430m의 둘레에 6m 높이로 쌓고 세 곳에 (동문, 북문, 남문)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던 성이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성 안에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 북문에는 공북루 남문에는 유량루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1753년 (영조 29) 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 부분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약 2시간 걸려 교동도를 둘러보고 교동읍성을 지나 선착장에 와보니  벌써 승선하고있군요.

 

 

 

30여대의 자동차를 싫고 교동도를 멀리하고 강화도로 향한다.

 

 

 

강화도-교동도 연육교 공사가 한창이다.

교동도를 나와서 강화군소재지에 있는 풍물시장에 들리어 둘러보고(가는날이 장날이네!) 점심식사를 함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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