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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禪是佛心

선禪이란? 견성성불(見性成佛)

by 산산바다 2007. 6. 29.

산과바다

 

이란?

 

()이란 중국 대륙에서 5세기에 발전하기 시작한 대승불교의 한 조류이다. 선의 조류는 중국 대륙에서 한 종파로 성립되어 대한민국와 일본 등지로 전파되었는데 이 계통의 여러 분파를 선종(禪宗)이라고 통칭하고 이 계통의 불교를 선불교(禪佛敎)라고 한다. 선종[선불교]은 도교에 많이 영향받았다.

()이라는 낱말은 산스크리트어의 디야나(ध्यान)를 중국 대륙에서 선나(禪那)로 음역하여 유래한 말로 선나(禪那)의 준말이다. 디야나는 대체로 정려(靜慮: 고요히 하는 생각) · 내관(內觀: 내부상으로 찰관) · 내성(內省: 내부상 성찰) · 침잠(沈潛: 내면으로 깊숙히 몰입)의 뜻이 있다. 이런 뜻을 좇아 한역하여 선()을 정() · 정려(靜慮) · 기악(棄惡)이나 사유수(思惟修)라고도 한다.

또한 음을 좇아 한역한 낱말인 선()과 뜻을 좇아 한역한 낱말인 정()을 합하여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의 교의와 특징

 

선종의 최대 목적이자 핵심인 교의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즉 선종은 모든 인간이 내면에 본래 불타의 견성불성(本性佛性)이 있다고 믿고 수행을 이용해 자기 내면에 있는 본래 불타를 발견하여(見性) 열반에 도달(成佛)을 최대로 목적한다.

수행 면에서는 좌선이나 참선을 중요한 수행 방법, 즉 선종의 특징은 정진(精進: 힘써 전진)을 수단으로 삼는다.

선종의 교의 성격을 띠는 실천하는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구는 "이심전심(以心轉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다.

 

이런 문구는 선종이 교종(敎宗)과 판이한 독자성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심전심(以心轉心): 불타의 마음을 마음으로 전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본성을 발견하거나 구명(究明)하여 득도한다. (돈오점수 및 돈오돈수). 본성을 보는 것이 곧 득도, 즉 구경각이다(돈오돈수).

불립문자(不立文字): 경전의 문자에 구애(拘礙)하지 않는다. 보통, 불립문자는 경전 암송이나 정독보다 불타의 뜻을 좇는 수행 중시로 이해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312부경(三乘十二部經) 이외에 별도로 불타의 마음을 전한다. 보통, 교외별전은 조사에서 조사로 이어지는 법통의 전수, 즉 사자상승(師資相承: 스승[]에게서 제자[]에게 법이 이어져 전승) 강조로 이해한다.
선종은 정려(靜慮) · 좌선(坐禪)으로 내관(內觀) · 내성(內省)하여 불성(佛性)을 찾고 설교 · 문자를 떠나 즉시 불타의 마음(佛心)을 중생에게 전하는 종파, 즉 불심종(佛心宗)이다

 

()은 근본불교의 수행 체계인 팔정도(八正道) 중 정정(正定)에 해당한다.

대승불교에서 선()은 보살행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선정 바라밀(禪定波羅蜜)에 해당하며, 선정 바라밀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

 

 

선종의 기원 -

선종의 전통을 보면, 선종의 기원은 고타마 붓다가 영산회(靈山會)에서 말없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제자들 중 오직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故事)에서 찾는다.

 

영가현각(永嘉玄覺: 647~713, 6조 혜능의 제자)증도가(證道歌)에서 보듯이, 선종의 전통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서 숭배한다.

후한 시대(後漢時代: 25~220)에 인도의 좌선(坐禪) 방법을 설법한 선경(禪經)이 한역(漢譯)되었으나 선종으로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선종(禪宗)의 기초 -

그 뒤 470년경이거나 520년 에 보리달마(보리달마(菩提達磨): ?~528[12])가 남인도에서 중국 대륙 남방으로 가서 전파한 선()이 선불교에 직결되는 시초이다.

 

달마는 달마선(達摩禪)

 

즉 달마 계통의 선법(禪法)의 전통의 제1대 조사로 불린다. 흔히 선종이라고 하면, 달마선을 뜻하므로 달마는 선종의 제1조이다. 증도가(證道歌)에 나타났듯이, 선종[달마선] 전통을 보면, 보리달마는 마하가섭에서 전승한 선종의 제28조이고 중국 대륙 선종의 제1조이다.

보리달마의 선법(禪法)은 제2조 혜가(慧可: 487~593)를 거쳐 제3조 승찬(僧璨: ?~606[14])으로 전하여졌는데 혜가와 승찬은 북주파불(北周破佛: 574~577의 북주 무제에 의한 불교 탄압)을 피해 서주(舒州)의 완공산(完公山)에 숨어 지냈다.

이후 선법(禪法)은 제3조 승찬으로부터 제4조 도신(道信: 580~651)으로 전해졌는데 기주(蘄州) 황매산(黃梅山)에서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선법을 설법한 제4조 도신과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의 동산법문(東山法門)에서 다수의 탁월한 선자(禪者)들이 배출되어 선종으로서 기초가 확립되었다

남종선·북종선·우두선제5조 홍인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제자로서 신수(神秀: ?~706[18])와 혜능(惠能: 638~713)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선종을 크게 발전시켰다. 신수는 북종(北宗)이라고 불리는 북종선(北宗禪)을 개종(開宗)했고 홍인의 뒤를 이어 선종의 제6조가 된 혜능(惠能)은 남종(南宗)이라고도 불리는 남종선(南宗禪)을 개종(開宗)했다.

일변 보리달마(?~528)에서 제5조 홍인(601~674)을 거쳐 제6조 신수(?~706)의 북종선과 제6조 혜능(638~713)의 남종선으로 이어지는 달마선(達摩禪) 계통과 별도로, 우두(牛頭) 법융(法融: 594~658)은 삼론(三論) 계통의 우두선(牛頭禪)을 개종(開宗)했는데 하루는 선종 제4조 도신(道信: 580~651)이 법융에게 갔는데 법융에게서 교시(敎示)받고서 심요(心要)를 깨달았다고 한다.

남종선 · 북종선 · 우두선 계통의 많은 선자(禪者)가 활약하여 선종 전체는 사상과 실천 모두 크게 발전하였다.

이후 남종선과 북종선의 선종은 한반도 · 일본으로 전파되었는데 남종선이 주로 전파되어 주류를 이루었다.

 

남종선의 융성 -

후난 성(湖南省: 빨강)과 장시 성(江西省: 파랑)중국 대륙에서, 우두선 에서는 법융의 뒤를 이어 지암(智巖) · 혜방(慧方) · 법지(法持) · 지위(智威) · 혜충(慧忠) · 현소(玄素) · 도흠(道欽) · 도림(道林) 등 고승이 많이 배출됐다. 이들은 대체로 우두산 에서 법융의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우두선의 선법(禪法)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당(618~907) 초기에 끊어졌다.

남종선과 북종선은 그 분열은 당(618~907) 초기에 일어났는데 제6조 신수(神秀: ?~706)의 북종선은 점오(漸悟)를 표방하고 제6조 혜능(慧能: 638~713)의 남종선은 돈오(頓悟)를 표방하였다. 신수는 당의 수도였던 장안과 당 시대 동방의 수도라는 의미로 동도(東都)라고 불린 낙양 양경(兩京)을 중심으로 중국 대륙 북부에 북종선을 보급하고 혜능은 장강 이남 지역인 강남(江南)에 남종선을 선양(宣揚)했다.

초기에는 북종선이 성했으나 후에는 남종선이 유력해져 남종선 계통이 중국 대륙선(中國禪)의 주류를 차지하였다.

북종선은 빨리 쇠퇴했지만, 남종선의 혜능(慧能: 638~713)의 문하에는 회양(懷讓: 677~744[23]) · 행사(行思: ?~740[) · 신회(神會: 685~760[25]) 등이 배출되어 후난 성(湖南省)과 장시 성(江西省)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

 

남종선의 회양(懷讓: 677~744)의 계통에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가 선원에어서 집단생활 규범이 된 후대에 백장청규(百丈淸規)라고 불린, 청규(淸規)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계통에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27])을 시조로 하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28])와 앙산혜적(仰山慧寂: 815~891)의 두 선승을 시조로 하는 위앙종(潙仰宗)이 성립했다.

남종선의 행사(行思: ?~740)의 계통에서는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와 조산본적(曹山本寂: 839~901[31])의 두 선승을 시조로 하는 조동종(曹洞宗), 운문문언(雲門文偃: ?~949[32])을 시조로 하는 운문종(雲門宗), 그리고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을 시조로 하는 법안종(法眼宗)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5대에 걸쳐서 위앙종(潙仰宗) · 임제종(臨濟宗) · 조동종(曹洞宗) · 운문종(雲門宗) · 법안종(法眼宗)5(五家) 또는 선가 5(禪家五宗)이 성립되었다.

후에 임제종에서 갈라진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34])황룡파(黃龍派)와 양기방회(楊岐方會)양기파(楊岐派: 996~1046)의 두 파를 더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가칠종으로 분화 · 발전한 남종선은 정토교(淨土敎)와 함께 송나라(960~1279) 시대 이후 불교의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임제종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윽고 선정쌍수(禪淨雙修: 선종과 정토교을 함께 수행하다가 참선과 염불 수행을 함께하다)의 길로 들어섰다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 성립 이 부분의 본문은 간화선, 묵조선입니다.

 

남송(南宋: 1127~1279) 초기에 모두 남종선에 속하는 임제종(臨濟宗)과 조동종(曹洞宗)에서 각각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默照禪)이 성립되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話頭)를 이용하여 득도하려는 선풍(禪風)으로서 임제종(臨濟宗)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주창하였다.

묵조선(默照禪)은 망상과 잡념을 없애고 고요히 좌정하여 득도하려는 선풍(禪風)으로서 조동종(曹洞宗)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주창하였다

 

 

선종의 우리나라 전래 이 부분의 본문은 구산선문입니다.

선종의 우리나라 전래는, ()의 서당 지장(西堂 知藏)에게서 법을 받아 784(선덕왕 5)에 신라로 귀국한 도의(道義)를 시조(始祖)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남북국시대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문이 성립되어 한창 번성했으나 고려 시대에는 점차 쇠퇴하였다.

고려 시대(918~1392)의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조계산(曹溪山)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했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하면서 차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받아 왔고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은 강서(江西)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받아 와서 두 파로 갈리었다.
그러나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 되어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 지금까지 전래한다.

 

 

간화선(看話禪)

 

불교에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골똘히 탐구하는 문제인 화두를 근거로 깨달음에 이르려는 참선법의 하나다.

달마 대사의 창시 이후 중국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곧바로 자기의 마음으로 향해 그 본성을 보아 깨달음을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는 주장 아래 선수행법으로 좌선(坐禪)하는 묵조선(默照禪)이 유행하다 당()대 조주선사(趙州禪師)이후 화두를 잡고 참선하는 간화선이 퍼지기 시작했다.

후에 송()대의 대혜선사(大慧禪師)가 이를 중국 선종의 전통적 수행법으로 확립시켰다.

우리나라에는 고려때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도입됐으며 조선에 들어서는 서산대사(西山大師경허선사(鏡虛禪師) 등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

그동안 한국 불교의 전통 수행법으로 행해져온 화두선보다는 경전 읽기만으로도 도에 이를 수 있는 남방 불교의 위파사나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란이 조계종 내에서 일고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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