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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ㅈ- 5 진인사대천명~ )

by 산산바다 2026. 3. 7.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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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성어(故事成語) (- 5 진인사대천명~ )

 

 

40.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尽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 나라 胡寅致堂讀書管見.

盡人事聽天命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天命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只今 女道士(仙姑)께서는 참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할 일도 다 하지 않아 이 地境에 이르도록 만들었으니, 어떻게 天命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소?

(盡人事以聽天命. 今仙姑旣不能忍, 又人事未盡, 以致如此, 何能言得天命)

 

* 나라 李汝珍鏡花緣

仙姑仙境에 산다는 神仙 할미를 가리킨다. ‘盡人事待天命謀事在人成事在天基本的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資料를 보면 盡人事待天命이 다음과 같이 三國演義에서 由來했다고 說明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를 簡略하게 整理하면 다음과 같다.

 

赤壁大戰에서 劉備孫權聯合軍에게 大敗曹操는 겨우 1千 名軍士를 이끌고 敗走했다. 諸葛亮曹操退却하는 要所要所軍士들을 埋伏시켰는데, 中 華容道埋伏했던 關羽過去曹操에게 입은 恩惠가 있어 차마 曹操를 죽이지 못하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했다. 諸葛亮關羽斬首하려고 하였으나 劉備懇請에 못 이겨 關羽를 살려 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天文을 보니 曹操는 아직 죽을 運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曹操에게 恩惠를 입었던 關羽에게 그 恩惠를 갚으라고 華容道로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方法을 모두 쓰고 하늘의 을 기다렸던 것입니다.(修人事待天命.)”

 

이 이야기가 바로 盡人事待天命의 출전(出典)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修人事待天命이 바로 盡人事待天命이라고 說明을 달고 있다. 그런데 三國演義의 이 部分을 보면 諸葛亮劉備懇請에 못 이기는 척 關雲長容恕하면서 劉備에게 한 말이나, ‘修人事待天命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却說하고, 關雲長(關羽)曹操를 보내 주고 軍士를 이끌고 돌아왔다. ······ 雲長은 홀로 사람 하나, 말 한 匹 獲得하지 못하고 빈 몸으로 돌아와 玄德 (劉備)을 만났다. 孔明 (諸葛亮)이 마침 玄德과 함께 祝賀를 하다가 雲長이 왔다는 報告를 받고 자리를 떠나 술을 들고 맞이하며 말했다. “將軍世上을 덮을 만한 을 세우고 하늘 아래 큰 害惡除去했으니 기쁘오. 멀리까지 나와 慶賀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關雲長이 묵묵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孔明이 말했다. “將軍은 설마하니 우리가 더 일찍 멀리까지 나와 맞이하지 않았다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면서 左右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무슨 까닭에 일찍 報告하지 않았소?” 雲長이 말했다. “아무개가 特別히 죽음을 하러 왔소이다.” 孔明이 말했다. “曹操華容道 길로 오지 않은 건 아니겠지요?” 雲長이 말했다. “그리로 왔소. 그런데 아무개가 無能해서 달아나게 놔두고 말았소.” 孔明이 말했다. “그러면 어떤 將帥兵卒을 잡아왔소?” 雲長對答했다. “아무도 잡지 못했소.” 孔明이 말했다. “이는 雲長曹操가 베푼 옛 恩惠를 생각하여 故意로 풀어 준 것이오. 하지만 軍令狀이 여기에 있으니 軍法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러고는 無事에게 雲長하라고 큰소리로 했다. ······ (以上 第50, 以下 第51) 却說하고, 孔明雲長斬刑하려고 하자 玄德이 말했다. “옛날 우리 세 사람이 結義를 할 때,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盟誓했소. 只今 雲長을 어겼다고 하지만 차마 以前盟誓를 어길 수가 없구려. 暫時 過誤記錄해 두었다가 을 세워 贖罪하게 해 주기를 바라오.” 孔明은 비로소 (關雲長)容恕했다.

(却說關雲長放了曹操, 引軍自回. ······ 獨雲長不獲一人一騎, 空身回見玄德. 孔明正與玄德作賀, 忽報雲長至. 孔明忙離坐席, 執杯相迎曰, 且喜將軍立此蓋世之功, 與普天下除大害. 合宜遠接慶賀. 雲長默然. 孔明曰, 將軍莫非因吾等不曾遠接, 故爾不樂樂. 回顧左右曰, 汝等緣何不先報. 雲長曰, 關某特來請死. 孔明曰, 莫非曹操不曾投華容道上來. 雲長曰, 是從那里來. 關某無能, 因此被他走脫. 孔明曰, 拿得甚將士來. 雲長曰, 皆不曾拿. 孔明曰, 此是雲長想曹操昔日之恩, 故意放了. 但旣有軍令狀在此, 不得不按軍法. 遂叱武士推出斬之. ······ 却說孔明欲斬雲長, 玄德曰, 昔吾三人結義時, 誓同生死. 今雲長雖犯法, 不忍違却前盟. 望權記過, 容將功贖罪. 孔明方才饒了.)

 

이 이야기는 50의 마지막 部分51의 첫 部分에 나오는데, 玄德懇請하자 諸葛亮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關雲長容恕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고 있다. 諸葛亮天文을 보고 曹操가 아직 죽을 運命이 아니라며 關羽에게 그 恩惠를 갚을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은 49에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修人事待天命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孔明玄德, 劉琦와 함께 軍幕을 세우고 坐定, 趙雲(趙子龍)에게 말했다. “子龍三千 軍馬를 거느리고 을 건너 지름길로 烏林小路로 가 나무와 갈대가 茂盛한 곳을 골라 埋伏을 하시오. 오늘 밤 四更 以後曹操가 반드시 그 길로 逃亡을 할 것이오. 그들의 軍馬가 지나가면 쯤 지나갔을 때 불을 지르시오. 다 죽이지는 못해도 折半은 죽일 수 있을 거요.” 趙雲이 물었다. “烏林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南郡으로 하는 길이고, 하나는 荊州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로 갈지를 모르겠습니다.” 孔明이 말했다. “南郡으로 가는 길이 하기 때문에 曹操히 그 길로 가지 못할 거요. 반드시 荊州로 간 大軍許昌으로 가게 될 것이오.” 趙雲計略을 받아들고 出發했다.

 

孔明은 또 張飛를 불러 말했다. “翼德 (張飛)三千 兵士를 거느리고 을 건너 이릉(彛陵)의 길을 끊고 葫蘆谷 入口埋伏하시오. ······ 曹操를 잡지는 못해도 翼德의 이판의 이 적지 않을 것이오.” 張飛計策을 받고 出發했다. ······ 孔明玄德에게 말했다. “周公께선 樊口屯兵하여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며 오늘 밤 周郞이 큰 을 세우는 것을 앉아서 보십시오.”

 

이때 雲長이 옆에 있었지만 孔明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雲長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무개가 兄將을 따라 作戰出征하여 여러 해 동안 한 도 뒤처진 적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 큰 을 앞에 두고 軍師께서는 나를 쓰려고 하지 않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오?” 孔明이 웃으며 말했다. “雲長怪異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아무개가 本來 그대를 가장 重要要衝地에 보내려고 했으나, 걸리는 일이 있어 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雲長이 말했다. “무슨 걸리는 일이란 말이오. 빨리 가르쳐 주시오.” 孔明이 말했다. “옛날 曹操가 그대를 優待했으므로 그대가 報答하는 것은 當然할 것이오. 오늘 曹操하여 반드시 華容道로 지나갈 것이오. 萬若 그대를 보내면 分明 그가 지나가도록 풀어 줄 것이오. 그래서 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雲長이 말했다. “軍師께서는 好意를 너무 많이 가지고 계시오. 當時 曹操가 아무개에게 무겁게 해 주었지만 아무개는 이미 顔良文醜를 베어 白馬城包圍를 풀어 주어 다 갚았소. 오늘 만나게 되면 絶對로 놓아 보내지 않으리다.” 孔明이 말했다. “萬若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소?” 雲長이 말했다. “軍法에 의해 處罰받겠소.” 孔明이 말했다. “그렇다면 卽時 文書作成하시오.” 雲長軍令狀을 주었다. 雲長이 말했다. “萬若 曹操가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孔明이 말했다. “나도 그대에게 軍令狀을 주겠소.” 雲長은 크게 기뻐했다.

 

孔明이 말했다. “ 雲長華容의 좁은 길 위의 높은 곳에서 땔나무와 풀을 쌓고 불을 붙여 煙氣를 올려 曹操를 그리로 오도록 誘引하시오.” 雲長이 말했다. “曹操煙氣를 보면 埋伏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어떻게 오려고 하겠소?” 孔明이 웃으며 말했다. “兵法虛虛實實 理論도 듣지 못했소? 曹操用兵하다고 하나 이에만은 그를 속일 수 있을 것이오. 煙氣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虛張聲勢라고 말하고 分明히 이 길로 오게 될 것이오. 將軍에 못 이겨 寬容을 베풀지나 마시오.” 雲長命令을 받잡고 關平周倉 5百 名絞刀手(칼을 지닌 兵士)를 거느리고 華容道埋伏을 하러 갔다.

 

玄德이 말했다. “내 아우가 義氣를 아주 히 여겨 萬若 曹操가 정말로 華容道로 들어오면 짜로 풀어 주게 될 것이오.” 孔明이 말했다. “제가 밤에 天象을 보니 曹操는 아직 죽을 運命이 아니었습니다. 雲長에게 人情을 남기도록 하게 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玄德이 말했다. “先生神算世上에 따라갈 사람이 없구려.”

(孔明便與玄德, 劉琦升帳坐定, 謂趙雲曰, 子龍可帶三千軍馬, 渡江徑取烏林小路, 揀樹木蘆葦密處埋伏. 今夜四更已後, 曹操必然從那條路奔走. 等他軍馬過, 就半中間放起火來. 雖然不殺他盡絶, 也殺一半. 雲曰, 烏林有兩條路, 一條通南郡, 一條取荊州. 不知向那條路來. 孔明曰, 南郡勢迫, 曹操不敢往. 必來荊州, 然後大軍投許昌而去. 雲領計去了. 又喚張飛曰, 翼德可領三千兵渡江, 截斷彝陵這條路, 去葫蘆谷口埋伏. ······ 雖然不捉得曹操, 翼德這場功料也不小. 飛領計去了. ······ 孔明謂玄德曰, 主公可於樊口屯兵, 凭高而望, 坐看今夜周郞成大功也. 時雲長在側, 孔明全然不睬. 雲長忍耐不住, 乃高聲曰, 關某自隨兄長征戰, 許多年來, 未嘗落後. 今日逢大敵, 軍師却不委用, 此是何意. 孔明笑曰, 雲長勿怪. 某本欲煩足下把一個最緊要的隘口, 怎奈有些違碍, 不敢敎去. 雲長曰, 有何違碍. 願卽見諭. 孔明曰, 昔日曹操待足下甚厚, 足下當有以報之. 今日操兵敗, 必走華容道. 若令足下去時, 必然放他過去. 因此不敢敎去. 雲長曰, 軍師好心多. 當日曹操果是重待某, 某已斬顔良, 誅文醜, 解白馬之圍, 報過他了. 今日撞見, 豈肯放過. 孔明曰, 倘若放了時, 却如何. 雲長曰, 願依軍法. 孔明曰, 如此, 立下文書. 雲長便與了軍令狀. 雲長曰, 若曹操不從那條路上來, 如何. 孔明曰, 我亦與你軍令狀. 雲長大喜. 孔明曰, 雲長可於華容小路高山之處, 堆積柴草, 放起一把火烟, 引曹操來. 雲長曰, 曹操望見烟, 知有埋伏, 如何肯來. 孔明笑曰, 豈不聞兵法虛虛實實之論. 操雖能用兵, 只此可以瞞過他也. 他見烟起, 將謂虛張聲勢, 必然投這條路來. 將軍休得容情. 雲長領了將令, 引關平, 周倉幷五百校刀手, 投華容道埋伏去了. 玄德曰, 吾弟義氣深重, 若曹操果然投華容道去時, 只恐端的放了. 孔明曰, 亮夜觀乾象, 操賊未合身亡. 留這人情, 敎雲長做了, 亦是美事. 玄德曰, 先生神算, 世所罕及)

 

 

41. 진충보국(盡忠報國) 尽忠报国

忠誠을 다하여 나라의 恩惠報答하다.

 

南北朝時代 北周宣帝가 죽고 8의 어린 靜帝가 뒤를 이었다. 朝廷에서는 나이 어린 靜帝後見人 問題意見 對立이 일어났다. 臣下劉昉, 鄭譯 等宣帝가 죽기 頒布命令詐稱하여 楊堅 (隋文帝)丞相으로 세워 靜帝輔佐하게 하려고 했다. 顔之儀宣帝遺志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拒否하고 따르지 않았다. 劉昉 等詔書를 만들어 署名을 하고 顔之儀에게도 署名强要했다. 그러자 顔之儀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宣帝께서 막 돌아가시고 即位皇帝年少하므로 執政하는 大臣들은 마땅히 皇族 中에서 가장 傑出趙王에게 擔當하도록 해야 하오. 여러분들은 朝廷의 큰 恩惠를 입었으므로 마땅히 忠誠을 다하여 나라의 恩惠報答해야지, 어찌하여 帝位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오.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宣帝欺罔할 수는 없소.” 그러자 劉昉 等顔之儀屈服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顔之儀代身해서 自身들이 署名을 했다. 楊堅玉璽를 찾자 顔之儀正色을 하며 말했다. “이것은 天子物件으로 主人이 있는 것인데 宰相이 어찌하여 찾는 것이오?” 楊堅이 크게 하여 顔之儀를 끌어내 죽이라고 했으나 百姓들이 보고 있으므로 죽이지를 못하고 西邊方郡守로 내보내 버렸다.

(宣帝崩, 劉昉, 鄭譯等矯遺詔, 以隋文帝爲丞相, 輔少主. 之儀知非帝旨, 拒而弗從. 昉等草詔署記, 逼之儀連署. 之儀厲聲謂昉等曰, 主上升遐, 嗣子沖幼, 阿衡之任, 宜在宗英. 方今賢戚之內, 趙王最長, 以親以德, 合膺重寄. 公等備受朝恩, 當思盡忠報國, 奈何一旦欲以神器假人. 之儀有死而已, 不能誣罔先帝. 於是昉等知不可屈, 乃代之儀署而行之. 隋文帝後索符璽, 之儀又正色曰, 此天子之物, 自有主者, 宰相何故索之. 於是隋文帝大怒, 命引出, 將戮之, 然以其民之望也, 乃止, 出爲西疆郡守)

 

이 이야기는 周書 顔之儀傳에 나온다. 當時 楊堅의 딸은 宣帝皇后였으므로 宣帝가 죽고 아들 靜帝卽位하자 太后가 되었으며, 楊堅太后의 아버지로서 政權掌握했다. 그리고 結局 北周政權簒奪, 마지막으로 南朝나라를 滅亡시키고 天下統一했으며, 나라의 初代 皇帝(隋文帝)가 되었다. 같은 이야기가 北史 顔之儀傳에도 나온다.

 

盡忠報國은 다음의 典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岳飛에 갇혀 審問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何鑄에게 岳飛鞠問하라고 했다. 岳飛는 윗옷을 찢어 何鑄에게 보여 주었는데, ‘盡忠報國이라는 네 글자가 皮膚 깊이 새겨져 있었다.

(初命何鑄鞫之, 飛裂裳以背示鑄, 有盡忠報國四大字, 深入膚理.)

이 이야기는 宋史 岳飛傳에 나온다. 岳飛南宋名將으로 나라의 侵略에 맞서 싸워 마지막에는 나라의 司令部가 있는 開封 附近까지 壓迫해 들어갔지만, 나라와의 和親主張하는 秦檜 等謀陷으로 召喚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42. 진퇴유곡(進退維谷) = 진퇴양난(進退兩難)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는 窮地에 빠진 狀態

 

* 詩經 大雅 상유(桑柔)263. 桑柔(상유)-詩經 大雅(시경 대아)

成語諷刺桑柔(뽕나무 새잎 돋아)에서 由來하는데, 西周 末暴君厲王을 예백(芮伯)攻擊內容이라고도 하나 正確하지는 않다.

 

< 桑柔 >(뽕나무 새잎 돋아)

菀彼桑柔 (茂盛한 저 부드러운 뽕나무여)

其下侯旬 (그 아래에 두루 그늘졌도다)

捋采其劉 (잎새에 성긴 가지 캐어내어)

瘼此下民 (그 밑의 百姓들이 이 든다)

不殄心憂 (끊임없이 마음 하고)

倉兄塡兮 (들어 가슴 아파라)

倬彼昊天 (偉大한 저 하늘이여)

寧不我矜 (나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으시도다)

 

四牡騤騤 (네 마리 숫말 凜凜하고)

旟旐有翩 (갖가지 깃발들 펄럭인다)

亂生不夷 (亂離가 일어나 平和롭지 못하여)

靡國不泯 (天下가 어지럽고)

民靡有黎 (하지 않은 나라 없으니)

具禍以燼 (모두들 를 입어 겨우 살고 있도다)

於乎有哀 (아아, 애달프다)

國步斯頻 (나라 形便 너무도 危急하도다)

 

國步蔑資 (나라 形便 窮乏하고 物資가 없어)

天不我將 (하늘은 우리를 돕지 아니하시고)

靡所止疑 (머물러 쉴 곳도 없어라)

云徂何往 (어디로 가야 하나)

君子實維 (임께서 마음 쓰시고)

秉心無競 (마음 가지심 비길 데 없도다)

誰生厲階 (每日 같이 더하여)

至今爲梗 (오늘 이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였는가)

 

憂心慇慇 (마음속 시름 하염없어도)

念我土宇 (나라만 생각하노라)

我生不辰 (나의 삶 때를 못 만나)

逢天僤怒 (하늘의 큰 憤怒하심을 만났다)

自西徂東 (西쪽에서 쪽까지)

靡所定處 (安定하고 살 곳 없어)

多我覯痻 (많은 어려움을 하고)

孔棘我圉 (邊方은 더없이 危急하도다)

 

爲謀爲毖 (計略愼重히 세워)

亂況斯削 (어지러운 形便 줄어들리라)

告爾憂恤 (그대에게 걱정과 근심을 하고)

誨爾序爵 (어진 사람 가려내는 일깨워 주리라)

誰能執熱 (누가 뜨거운 物件을 잡고서)

逝不以濯 (물에 손 씻자 하겠는가)

其何能淑 (그 누가 착하단 말인가)

載胥及溺 (모두 물에 빠진 꼴이 되었도다)

 

如彼遡風 (바람을 마주 안은 듯이)

亦孔之僾 (숨이 막히는 것 같도다)

民有肅心 (百姓들은 착해지려는 마음이 있어도)

荓云不逮 (되지 못하게 만드는구나)

好是稼穡 (農事지은 穀食을 좋아하여)

力民代食 (百姓들에게 稅金 거두어 代身 먹어 버려)

稼穡維寶 (農事지은 穀食이 보배 같은데)

代食維好 (代身 먹어 버리기만 좋아할 뿐이다)

 

天降喪亂 (하늘에서 亂離를 내리시어)

滅我立王 (우리들이 세운 임금 滅亡시키고)

降此蟊賊 (누리와 벼벌레들 내리시어)

稼穡卒痒 (農事지은 穀食 모두가 들었다)

哀恫中國 (슬프고 가슴아파라, 우리나라여)

具贅卒荒 (危急해지고 거칠어졌도다)

靡有旅力 (어려움을 막을 아무런 힘도 없어)

以念穹蒼 (푸른 하늘만 바라보고 있도다)

 

維此惠君 (道理를 좇는 임금이시여)

民人所瞻 (百姓들이 우러러봅니다)

秉心宣猶 (마음가짐 밝고 해서)

考愼其相 (愼重輔佐臣下를 생각하신다)

維彼不順 (道理를 쫓지 아니하는 임금)

自獨俾臧 (自己 스스로만의 생각은)

自有肺腸 (自己만의 생각을 갖게 한다)

俾民卒狂 (百姓들 모두 精神 잃게 한다)

 

瞻彼中林 (저 숲속을 바라보니)

甡甡其鹿 (사슴들이 우글거린다)

朋友已譖 (여러 臣下들 서로가 속이고)

不胥以穀 (잘 지내지 않는다)

人亦有言 (사람들 하는 말)

進退維谷 (나아가도 골짜기 물러가도 골짜기)

維此聖人 (이러한 聖人께서는)

瞻言百里 (百 里까지도 바라보시나)

 

維彼愚人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覆狂以喜 (도리어 眩惑되어 기뻐한다)

匪言不能 (말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건만)

胡斯畏忌 (어찌 이렇게도 두려워 말 못하나)

維此良人 (이런 훌륭한 사람들)

弗求弗迪 (하지도 登用하지도 않고)

維彼忍心 (저런 殘忍한 사람들을)

是顧是復 (보살피고 다시 생각하니)

 

民之貪亂 (百姓들은 混亂에 빠져)

寧爲荼毒 (차라리 한 괴로움을 겪는도다)

大風有隧 (큰 바람 일어나 불어)

有空大谷 (큰 골짜기로 불어온다)

維此良人 (이런 훌륭한 사람은)

以爲式穀 (하는 일마다 善良하나)

維彼不順 (저런 順理들 쫓지 아니한 사람은)

征以中垢 (더럽게 때 낀 가운데로 나아간다)

 

大風有隧 (큰 바람 일어나 불어)

貪人敗類 (貪慾스런 들 착한 이들을 敗亡시킨다)

聽言則對 (順從하는 말에만 對答하고)

誦言如醉 (타이르는 말 한 듯이 건성으로 듣는다)

匪用其良 (훌륭한 사람들을 쓰지 못하고)

覆俾我悖 (도리어 내게 道理에 어긋나게 한다)

嗟爾朋友 (, 親舊들이여)

予豈不知而作 (내가 어찌 모르며 하겠는가)

 

如彼飛蟲 (저 날아가는 새를)

時亦弋獲 (주살로 쏘아 잡는 것 같도다)

旣之陰女 (내 그대를 감싸주는데)

反予來赫 (도리어 내게 성을 내는구나.)

民之罔極 (罔極百姓이여)

職凉善背 (정말 背叛을 잘하는구나)

爲民不利 (百姓들에게 不利한 짓을)

如云不克 (애써 하고)

 

民之回遹 (百姓邪惡하여)

職競用力 (다투어 그런 일에 힘쓰고 있다)

民之未戾 (百姓들은 좋지 않아)

職盜爲寇 (도둑질에만 힘쓰고)

凉曰不可 (정말 하여서는 안 된다 하고서도)

覆背善詈 (등을 돌리면 만 잘한다)

雖曰匪予 (비록 나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旣作爾歌 (그대 하여 이 노래를 짓노라)

 

 

43. 징갱취제(懲羹吹虀)

뜨거운 국에 데어서 冷菜를 후후 불고 먹는다는 뜻으로, 番 失敗 한 데 데어서 모든 일에 지나치게 操心함의 比喩

 

징갱취채(懲羹吹菜), 징갱취회(懲羹吹膾)와 같은 뜻이고 비슷한 말로는 징선기여(懲船忌輿), 오우천월(吳牛喘月)이 있다. * 楚辭 七章 惜誦에 나오는 말이다.

 

戰國時代 末葉, 나라에 對抗할 수 있는 勢力두 나라뿐이었다. 그래서 나라 宰相 張儀齊 同盟强化論者나라의 三閭大夫昭王族族長 屈原 (, B.C. 343277)除去하기로 作定하고 機會를 노렸다. 이윽고 나라 懷王寵姬 鄭袖佞臣 勤尙 等屈原憎惡하고 있다는 情報가 들어왔다. 張儀는 곧 그들을 買收하여 屈原失閣 工作을 폈다. 드디어 屈原朝廷에서 逐出되자 張儀懷王에게 나라와 斷交하면 나라의 國土 600割讓하겠다고 提議했다. 그래서 懷王나라와 斷交했으나 張儀約束履行하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안 懷王을 참지 못해 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大敗하고 도리어 接境 地域國土까지 빼앗겼다. 懷王은 지난 일을 後悔하고 屈原을 다시 登用했다. 10이 지난(B.C.299) 어느 날 나라로부터 友互 增進이란 美名 아래 懷王招請하는 使臣이 왔다. 屈原은 믿을 수 없는 나라의 招請해서는 안 된다며 極口 反對했다. 그러나 懷王王子 子蘭强勸에 따라 나라에 갔다가 捕虜가 되어 그 이듬해 客死하고 말았다.

나라에서는 太子王位에 오르고 同生子蘭宰相이 되었다. 屈原懷王을 죽음에 이르게 한 子蘭에게 責任을 물었으나 이는 도리어 讒訴招來하는 結果가 되어 또다시 追放當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46였다.10年間 오직 祖國愛에 불타는 屈原亡命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洞庭湖 周邊放浪하다가 마침내 鬱憤이 복받친 나머지 멱라(汨羅 : 洞庭湖 南쪽을 흐르는 )에 몸을 던져 水中孤魂이 되었다. 以後 사람들은 屈原의 넋을 汨羅之鬼라 일컫고 있다.

󰡔楚辭에 실려 있는 屈原作品 中 大部分은 이 放浪 時節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는 늘 危機祖國을 걱정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佞臣을 미워하며 그의 孤高心情情熱的으로 노래했는데 懲羹吹虀(징갱취제)’楚辭 9惜誦이란 의 첫 句節이다.

 

뜨거운 국에 데어서 冷菜까지 불고 먹는데 懲於羹者 而吹虀兮 어찌하여 그 뜻(懦弱)을 바꾸지 못하는가 何不變此志也‥‥‥‥

 

惜誦屈原自己 以上으로 主君을 생각하고 忠誠盟誓하는 선비가 없음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不拘하고 뭇 사람들로부터 疎外된 것을 憤怒하며 더욱이 어쩔 수 없는 孤獨恨嘆하면서도 그 節操만은 變節하지 않겠다는 慷慨之心吐露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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